변하지 않는 것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 변하지 않는 가치로 변화하는 것에 대처한다는 뜻이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1945년 가을 귀국하기 전날 밤에 쓰신 친필 휘호다. 지금도 상해임시정부 청사에 걸려 있다. 백범 선생은 왜 많고 많은 좋은 말 가운데 하필 이 글을 쓰셨을까? 당시 임시정부에는 사회주의, 민족주의, 아나키즘 등의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임시정부 요인을 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민족이라는 유일한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범은 사상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지만 민족은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믿음이 있었다.

 

  백범이라는 호는 백정(白丁)이라는 말과 범부(凡夫)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백범은 군역전(軍役田)을 소작하던 하층민의 집안에서 출생했으며 이웃 고을 양반들에게 핍박을 받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임시정부 주석 자리에 추대되었을 때 사양하기도 했다. 그는 독립된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 동지들의 추대로 주석이 되었다. 그의 사람됨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백범이 우려했던 대로 광복 이후에 우리는 좌익 우익이라는 이념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남과 북은 70년 동안 원수로 살아왔다. 마치 사상이 민족보다 우월한 가치가 되어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민족만도 못하게 살아왔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인사검증을 한답시고 공직 후보자에게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다. 북쪽에 있는 동족을 주적이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종북 좌파라고 다그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백범이 들으셨다면 어떻게 여기실까?

 

  사람 사는 세상에는 늘 무슨 주의가 있었다. 정치에도, 문화에도 무슨 주의가 없던 시대가 없었다. 문학에도 고전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사조가 있었지만 주의는 당대에는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지만 시대가 지나면 다른 주의로 바뀌게 마련이다. 사상은 유행가와 같은 것이다. 철 지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사랑, 자유, 평등, 정의, 민족과 같은 가치가 그것이다.

 

  공산권이 몰락한 지구상에서 지금 좌파 우파를 따진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한겨울에 밀짚모자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는데, 보이지도 않고 머릿속에만 있는 사상을 따져서 처벌한다는 것도 넌센스다. 우리사회에서 따져야 할 문제는 정작 따로 있다. 정의로운가? 그렇지 못한가? 자유로운가? 그렇지 못한가? 공정한가? 그렇지 못한가? 이런 문제는 버려두고 오로지 그의 사상이 어떠한가만 따지는 것이 우리의 슬픈 초상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