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 모자라

 

별명이 ‘모지리’라는 선생님이 있었다. ‘모지리’는 ‘모자라다’의 고장 말이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복장이 단정하지도 못했고 언행도 세련되지 못했다. 그래도 학생들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방과 후에는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 선생님을 학생들은 ‘모지리’라 불렀고 본인도 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 학급별 체육대회가 있는 날 그 반 아이들은 등에 ‘모지리’라고 써 붙인 티셔츠를 입었다. 흔히 교사는 보람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졸업 후에 졸업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선생님도 그였다.

 

  오래 전에 ‘바보네 가게’라는 수필이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적이 있다.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주인은 2%가 모자라는 사람이었다. 계산을 잘 하지 못해서 늘 거스름돈을 틀리게 내주는 일이 잦았다. 집에 와서 거스름돈을 세어보면 늘 얼마씩 남곤 했다. 사람들은 그 가게를 바보네 가게라고 불렀다. 이상한 것은 그 바보네 가게엔 늘 손님이 붐빈다는 것이다. 손님이 많으니 매출도 늘고 장사도 잘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 아이들은 요즘처럼 놀이기구가 없어서인지 유난히 악동이라 불리는 개구쟁이가 많았다.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하는 여학생의 고무줄을 끊고 도망하기도 했다. 등하굣길에 죄 없는 개구리를 잡아서 똥구멍에 밀짚을 박아 바람을 넣기도 했다. 자기네 또래와 조금이라도 다른 대상을 지목하여 집요하게 놀리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에 아이들이 ‘떠중이’라고 부르는 선생님이 계셨다. 길을 가다다 그 선생님이 보이면 ‘떠중이’하고 소리치고는 골목으로 도망을 하곤 했다. 그래도 그분은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얼마 전에 옛 친구를 만나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연세는 높으신데 아직도 건강하시고 온화한 표정을 한 노신사가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떠중이’라 부르던 그분은, 실은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정이 많으시고 성품이 너그러우신 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 후일담을 듣지 못했다면 내 맘에는 아직도 그분이 ‘떠중이’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복장이나 언행이 너무 완벽하여 빈틈이 없으면 그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넥타이라도 조금 삐뚤면 다가가서 바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어딘가 한곳이 비어 있다는 것은 타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일이다. 타인과 맺어진 좋은 관계의 끈이 많을수록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타인이 쉴 수 있는 2%의 공간은 마련해 두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