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20호...
   2020년 06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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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234 성자들의 가르침/권서각 file
편집자
1116 2017-12-25
성자들의 가르침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에 오랜만에 참석했다. 어릴 때 모습은 간곳없고 영락없는 할매, 할배들이었다. 그들 눈에 나도 할배이리라. 어린 시절 이야기 끝에 운동회 날마다 교단에 칼을 꽂으며 행패를 부리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 우리의 눈에 그는 몹쓸 짓을 많이 하는 악인이었다. 후에 삼청교육대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무심코 “그 사람 아직 안 죽었어?”라고 물었다.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대답이다. 왜 그런 물음이 무심코 나왔는지 스스로 놀랐다. 아마 마음 속 어디엔가 그는 벌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남아 있어서였을 것이다. 명심보감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공자께서 가라사대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내리고 선하지 않은 자에게는 화를 내린다고 하셨다.(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반드시 그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씀을 옳다고 믿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그것이 성자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세상이 온전히 망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공자께서는 또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괴롭힘을 당하면 싫으니 나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의 부정적인 것을 하나씩 줄이면서 선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네거티비즘(negativism)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내가 먼저 선을 행하면 그만큼의 선이 되돌아온다는 적극적인 선으로의 의지다. 포지티비즘(positivism)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나신 두 성자가 그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두 타인에 대한 선/사랑을 말씀하신다. 세상은 언제나 바람 잘 날 없고 어쩌면 노자의 말처럼 하늘은 선하기만 한 것이 아닌지도(天地不仁) 모른다. 그러하지만 세상은 온전히 망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스스로 실행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불가사의한 사랑을 가르치고 실행하신 성자이시다. 성자의 가르치심을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살아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 참 좋다. 평화란 말도 참 좋다. 세상은 여러 가지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그럴수록 사랑, 평화,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성자의 가르침이 있어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날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 스님은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며 가까이 지내셨다. 두 분의 모습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이 가까워온다. 올 크리스마스에도 스님들이 성탄을 축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한다면 세상은 한층 평화로울 것이다.  
233 하나는 전체요 전체는 하나다 一卽多 多卽一 (화엄경)/고석근 file
편집자
1222 2017-12-16
하나는 전체요 전체는 하나다 一卽多 多卽一 (화엄경) 점 네루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만한 우주도 없다. 한 아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다들 ‘걔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하더란다. 혐오감이 냄새로 나타나는가 보다. 아이들에게 왕따가 된 그 아이는 선생님들과 지내려한단다. 쉬는 시간에는 선생님들을 찾아가 교과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한단다. 담임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 아이하고만 너무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성경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해 얘기하며 예수처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양들은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왜 우리가 길 잃은 양 한 마리 때문에 피해를 당해야 해? 목자는 전체를 생각해야 하지 않아?” 하지만 예수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 우리는 아플 때 안다. 아픈 부위가 나의 전부임을. 손가락 하나가 아프다고 손가락 하나가 아픈 게 아니다. 다른 부위들이 아픈 손가락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그 손가락의 치유를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우리는 이러한 ‘본성(本性)’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왕따 한 아이를 계속 왕따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결정적 차이는 ‘공감(共感)’의 유무다. 인간은 다른 인간, 존재와 감정을 함께 나누도록 진화하였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만한 우주도 없다.’ 한 인간에게 아픔은 전부다. 그 아픔에 모두 함께 하는 것이 타고난 인간의 마음이다. 아픔으로 우리는 모두 ‘점’ 하나가 된다. 점 하나가 빅뱅을 일으켜 지금의 우주가 되었단다. 언젠가는 우주는 다시 점 하나로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는 아픔을 통해 점 하나가 된다. 우주의 비의(秘義)에 도달한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잃어버렸을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의식은 서구의 자본주의가 만든 의식이다. 자본주의의 중심세력인 부르주아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이런 사고 구조에서는 ‘나’는 사라져버린다. 세상은 나와는 별개로 어떤 힘,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 근대 자본주의 이후 우리는 이런 ‘사고의 틀’로 살아간다. 그래서 왕따의 아픔을 함께 느끼지 못한다. ‘왕따’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스마트 폰을 검색하듯이 나와 남의 아픔을 본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자본주의 이전의 인간은 이런 사고 구조를 갖고 살지 않았다. 원시인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갖고 삼라만상을 만나며 자신의 마음을 점점 확장해 갔다. 이런 마음의 구조를 ‘야생의 사고’라고 한다.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자신의 체험, 아픔을 중심으로 널리 널리 퍼져가기에 다른 사람들, 다른 동식물, 다른 무생물들과 아픔을 함께 한다. 원시인들에게 세상은 점 하나다. 자본주의가 만든 ‘문명의 사고’는 세상과 우리 마음을 황폐화시켰다. ‘포항의 지진’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다들 함께 아프냐고?  
232 어른과 꼰대/권서각 file
편집자
1429 2017-11-26
어른과 꼰대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가리키는 말 가운데 ‘꼰대’라는 비속어가 있다.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가리키는 말 가운데 ‘철부지’란 말이 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간극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이른바 세대차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기성세대는 꼰대이고 모든 젊은이가 철부지인 것은 아니다. 꼰대와 철부지가 단순히 자연연령만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젊다고 모든 젊은이가 철부지는 아니다. 그들에겐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꼰대인 것은 아니다. 어른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꼰대가 될 확률이 더 높다. 우리사회의 나이든 사람들 가운데는 어른의 수효보다 꼰대의 수효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감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꼰대는 부정적인 말이고 어른은 긍정적인 말이다. 누구나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꼰대와 어른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꼰대는 자신이 겪은 경험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이 절대 진리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말끝마다 ‘왕년에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내가 자네 나이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한다. 조그만 지위라도 얻게 되면 내빈소개 할 때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불편해 한다. 그리고 젊은이에게 무언가를 자꾸만 가르치려 한다. 사회는 변하고 가치관도 변한다. 그런데 꼰대는 자기가 젊은 시절 성공한 방법이 지금도 통할 거라고 믿는 자다. 변화된 사회에서 구시대의 방법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자가처럼 하라고 강요한다. 그런 기성세대를 젊은이들은 꼰대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 가운데도 꼰대가 있었다. 대개의 독립지사들은 이미 왕정시대가 끝나고 공화정의 시대가 올 것을 예비했다. 그래서 1920년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체제는 공화제였다. 그런데 몇몇 독립지사들의 독립운동의 목표는 왜놈을 몰아내고 임금을 다시 모시자는 것이었다. 이들을 복벽파라 부른다. 전형적인 꼰대다. 그렇다고 시대의 조류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것이 꼰대를 면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유불리만 추구하면 기회주의자가 되기 쉽다. 어찌해야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젊은이를 철부지로 보지 말아야 한다. 젊은이에게는 어른이 갖지 못한 유연한 사고와 창의력이 있다. 이런 젊은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끊임없이 진보하는 역사 속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는 신세대에게 없는 풍부한 경험이 있다. 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 옳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신세대에 귀를 열 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231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에머슨)/고석근 file
편집자
1031 2017-11-16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에머슨) 솔직히 말해서 나는 김남주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지 몰라 단 한방에 떨어지고 마는 모기인지도 몰라 파리인지도 몰라 뱅글뱅글 돌다 스러지고 마는 그 목숨인지도 몰라 누군가 말하듯 나는 가련한 놈 그 신세인지도 몰라 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 꽃잎인지도 몰라라 꽃잎인지도 피기가 무섭게 싹둑 잘리고 바람에 맞아 갈라지고 터지고 피투성이로 문드러진 꽃잎인지도 몰라라 기어코 기다려 봄을 기다려 피어나고야 말 꽃인지도 몰라라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것이 아닌지 몰라 열개나 되는 발가락으로 열개나 되는 손가락으로 날뛰고 허우적거리다 허구헌 날 술병과 함께 쓰러지고 마는 그 주정인지도 몰라 누군가 말하듯 병신 같은 놈 그 투정인지도 몰라 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 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인지도 눈물로 눈물로 눈물로 출렁이는 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인지도 몰라라 기어코 어둠을 사르고야 말 불빛인지도 그 노래인지도 몰라라 우리는 가끔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아무것도 아닌지 몰라/단 한방에 떨어지고 마는/모기인지도 몰라 파리인지도 몰라/뱅글뱅글 돌다 스러지고 마는/그 목숨인지도 몰라’ 자신이 파리나 모기 목숨 같이 느껴질 때, 우리는 자칫 ‘약자의 정신 승리법’에 빠질 수가 있다.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처럼. ‘비록 졌지만 정신은 내가 우월하므로 결과적으로 이긴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항상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합리화하려는 아Q. 이런 인간 군상들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은 ‘자존심’을 가진 인간들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잘 찾아보면 우리에게 남보다 뛰어난 점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사람들에겐 재벌 회장이 전혀 부럽지 않은 점이 있다. 그들보다 젊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은 재벌 회장 앞에 섰을 때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강의를 할 때 수강생들에게 가끔 질문을 한다. “개미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많은 사람들이 “사자요!” 한다. 이 때 자존심을 갖고 사시는 분들은 말한다. “사자가 개미를 어떻게 이겨요?” 그렇다. 사자는 절대 개미를 이길 수 없다. 지금까지 둘 다 이 지구에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손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지는 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아 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보다 잘난 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자존심이다. 자신과 상대방의 잘난 점과 못난 점을 모두 인정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 ‘자존심’만으로는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다. 자신보다 잘난 점을 가진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고, 못난 사람 앞에서 우쭐해지는 마음으로 어떻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무언가가 잘 나서 자존심이 센 사람은 우리 눈에 멋있게 보일지 모르나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 걸리버가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달걀을 깨는 방법 가지고 목숨을 거는 소인국의 사람들처럼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잘난 점, 못난 점을 떠나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존감’이다. 이런 마음은 어떻게 생겨날까? ‘열개나 되는 발가락으로/열개나 되는 손가락으로/날뛰고 허우적거리다/허구헌 날 술병과 함께 쓰러지고 마는/그 주정인지도 몰라’ ‘누군가 말하듯/병신 같은 놈 그 투정인지도 몰라’ 그러다 ‘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인지도’ 의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때다. ‘눈물로 눈물로 눈물로 출렁이는/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 위에 떨어진/불빛인지도 몰라라 기어코/어둠을 사르고야 말 불빛인지도/그 노래인지도 몰라라’ 인간은 ‘유적존재類的存在(마르크스)’다. 인간은 ‘개인’으로 살아가지만 ‘인류(人類)’로 살아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물방울’이면서도 ‘강물’인 것이다. 자신이 ‘강물’이 되고,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이 되고, 불빛의 ‘노래’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사람, 삼라만상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대로 아름답다. 그의 눈엔 모든 존재가 다 아름답게 보인다. 다시 주말마다 촛불이 켜진다. 우리 모두 강물 위에 떨어지는 불빛이 된다.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이싸)’  
230 민주평화통일/권서각 file
편집자
987 2017-10-25
민주평화통일 스위스 융플라워를 보기위해 전망대에 오르는 산악열차 안에서 여행 중인 독일인 부부를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나라가 위험한데 어떻게 이렇게 여행을 올 수 있느냐고 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이 느끼는 것 같았다. 외국인이 느끼는 전쟁에 대한 체감온도가 우리와 매우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정전 상태인 나라이고 분단 이후 늘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위험의 체감정도가 무디어진 게 사실이다. 현재의 북미관계 남북관계는 분명히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놀랄 만치 평온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영주시협의회장’이라는 생에서 가장 긴 이름의 직함이 주어져 있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1980년 출발한 헌법기구이다. 말 그대로 평화통일에 대한 정책을 의장인 대통령에게 자문하고 평화통일과 관련된 기반을 조성하고 인식을 확산하는 일을 하는 기구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구이기에 책무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더구나 남북관계가 최고로 악화된 상황이라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된 나라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4년 넘게 그야말로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북은 남을 남조선 괴뢰도당이라 하고 남은 북을 주적이라 하고 적대감정을 키우고 있다. 분단은 남과 북의 통치자들의 권력 강화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런 나날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높아지고 위험에 대한 감각은 무디어진 게 사실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 시민들의 소원은 통일이다. 기구의 이름에서 이미 드러나 있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민주통일이요 평화통일이다.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인 나라요 통일의 방법은 전쟁이 아닌 평화동일이다. 이미 북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했다. 우리도 우리의 우방인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핵을 보유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전쟁은 한반도의 재앙이요 인류의 재앙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처음으로 핵무기가 사용된 이후 핵무기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이 서로가 공멸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의 위험 속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전쟁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축구를 하다가 전쟁을 하가도 하고 여자를 얻기 위해서 전쟁을 하기 했다. 기분 나쁜 말 한 마디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성격도 위험의 한 요소다. 평화통일 이전에 전쟁의 위험 요소부터 해소하는 것이 우선과제다. 주어진 직함의 길이만큼이나 책임감이 무겁다.  
229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말라붙은 당신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펄 벅)/고석근 file
편집자
1034 2017-10-15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말라붙은 당신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펄 벅) 이십억 광년의 고독 다나카와 슌타로 인류는 작은 공 위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그러나 때때로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지난 수요일 밤 공부 모임에 퇴직한 남자분이 왔다. ‘아저씨’가 공부하러 오면 긴장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서는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오랜 가부장 문화와 군사 문화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퇴직자 분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하자 자신의 삶의 이력을 짧게 얘기하고 나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는 모 시인의 시까지 낭송했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해서인지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사시는 듯 했다. 한 평생 열심히 살아오다 일에서 물러난 남자의 마음은 어떨까? 퇴직한 후 한 순간에 무너지는 많은 남자들을 보면 은퇴자의 속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가장 무서운 게 ‘외로움’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외로움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날 것이다. 그런데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니? (한 때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 시인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시인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고 말한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까지 하면서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고 한다. 물론 시적 수사라고 볼 수 있지만 ‘하느님’ 같은 초월적 존재나 ‘산 그림자’ 같은 무생물까지 외롭다고 하는 것에는 훌륭한 시가 갖는 미적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인은 외롭다.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자꾸만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외롭지 않았다. 자본주의 이후 형성된 인간의 특징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인간상이다. 그런데 이 시는 외로운 사람에게 외로움을 극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외로움 속에 주저앉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운 사람에게 일시적으로는 위안의 묘약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외로움을 넘어서야 한다. 외로움 속에 빠져들면 우리는 ‘피학증 환자(마조히즘)’가 된다. 자신을 학대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 사회의 현란한 밤풍경은 우리의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시는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를 ‘힐링’해 줄 뿐이다. 우리는 단호히 ‘힐링’을 거부해야 한다. 힐링해주는 예술(시)로부터 탈주해야 한다. 외로움에 ‘정면으로 직면(세상이 다 외롭다고 자위하지 말고)’하게 되면 우리 안에서 외로움을 넘어 혼자 무소의 뿔처럼 가게 하는 힘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운 게 아니라 고독해져야 한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폴 틸리히)’인 것이다. 외로움에 젖지 않고 고독해지면 우리의 깊은 곳에서 ‘인류의 지혜’가 깨어난다. 한 인간의 무의식에는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깨친 지혜들이 깊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독해진 인간은 ‘작은 나’를 넘어서 ‘큰 나’로 나아간다. 외로움에 젖은 인간은 ‘작은 나’에 계속 머물러 자신을 점점 쪼그라들게 한다. 우리는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이렇게도 깊은 고독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우리 자신을 오롯이 맡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이렇게 자신의 외로움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깊은 무의식에서 ‘이십억 광년의 지혜’가 깨어난다. 외로움을 수동적으로 견디며 사는 세상에서는 폭력(남을 향해, 자신을 향해)이 난무한다. 그래서 퇴직한 그 남자의 깊은 외로움이 슬프다. 외로움의 병을 주고 힐링의 약을 주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는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받아들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혼자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남과 함께 갈 수 있다.  
228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한용운)/고석근
편집자
1087 2017-09-16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한용운) 나룻배와 行人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에로틱한 작품으로 세상의 비난을 받던 마광수 교수가 자살했다고 한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세상의 도덕윤리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했다. 그도 교수의 품격을 잃은 ‘방탕한 인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삶과 죽음을 보니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가! 세상은 그를 애도하는 분위기로 돌변했다. 르네 지라르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희생재물로 사람을 바치고는 그를 성스러운 존재로 만든다.” 그가 살아있을 땐 왜 그를 존중하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 성적 담론에서는 얼마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가! 이런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희생재물이 필요하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사회를 바꾸면 자신들의 음흉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적당한 사람’을 희생재물로 삼는 것이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한 사람을 잡아 죽이고는 죽인 죄의식을 씻기 위해 이번엔 그를 칭송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엔 사랑, 에로티시즘이 난무한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사랑, 에로티시즘이 폭력적으로 드러나는가? 우리 사회보다 개방되어있는 서구에서는 성범죄가 우리 사회보다 훨씬 적다는데. 사랑, 에로티시즘이 얼마나 고결하고 숭고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사람은 만해 한용운 시인일 것이다. 그는 “내가 어떻게 너를 통해서만 내가 되는가... 내가 나를 너에게 양도하고 너 속에 나를 상실할 때만 내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여연화라는 여인을 사랑하며 그녀를 통해 진정한 ‘나’로 태어나는 신비로움을 깨달았나 보다. 그래서 그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고 하여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보편적 사랑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노래했다. 우리는 그의 시 ‘나룻배와 行人’을 보살행을 노래한 시로 이해한다. 보살의 무조건적인 사랑. 맞다. 하지만 그런 숭고한 사랑은 어디서 싹이 트는가!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 우리 눈에 진흙투성이로 보이는 이성간의 사랑이 숭고한 사랑의 씨앗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진흙투성이를 견디지 못한다. 워낙 완고한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자신의 성적 욕망이 더러운 진흙투성이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성적 욕망은 연꽃을 피우지 못하고 점점 더 썩어가는 진흙투성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성적 담론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사람을 비난한다. 자신 속의 더러운 진흙투성이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자라면서 이성 간의 사랑을 제대로 해 본 사람은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크나큰 사랑을 느낄 것이다. ‘나는 나룻배/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이런 숭고한 사랑을 모르고 사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황폐한가! 마광수 교수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연꽃을 피우는 진흙’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죽음을 단지 숭고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아닐 것이다.  
227 귀태(鬼胎)라는 말/권서각 file
편집자
1134 2017-08-25
귀태(鬼胎)라는 말 귀태라는 말은 무속신앙에서 나온 말이다. 귀태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삼국유사다. 신라 진지왕은 빼어난 미인인 도화부인에 마음이 끌려 궁궐로 불러 후궁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도화부인은 남편이 있는 몸이라 하여 거절한다. 진지왕이 죽은 후 귀신이 되어 도화부인과 사통하여 비형랑(鼻荊郞)이 태어난다. 이를 들은 진평왕이 벼슬을 주어 궁에 살게 하지만, 비형랑은 늘 궁을 나와 귀신과 즐겨 놀았다. 비형랑과 같이 귀신과 사람이 사통하여 난 아이를 귀태라 한다. 귀태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속신앙은 우리의 토속신앙이다.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민족은 무속신앙을 믿었다. 무속신앙의 무(巫)라는 글자는 종교의 원형을 보여준다. 위의 가로획은 하늘, 아래의 가로획은 땅을 뜻한다. 가운데 세로획은 하늘과 땅의 소통을 뜻한다. 두 개의 사람인(人)자는 무녀(巫女)와 박수무당(남자무당)을 뜻한다. 무당은 하늘의 신과 땅의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존재이니 오늘의 사제나 승려와 같은 역할을 했다. 진평왕이 비형랑을 진지왕의 차남으로 인정한 것도 무속신앙을 믿었기 때문이다. 도화살((桃花煞)이라는 말은 도화부인처럼 한 남자와 살지 못하고 여러 남자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말한다. 무속신앙의 흔적은 우리 생활 곳곳에 남아 있다. 귀태라는 말 때문에 나라가 매우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2013년 민주당 원내대변인 홍익표 의원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귀태라는 말을 사용했다. 기시 노부스케(1급 전범, 만주국 실권자)와 박정희(창씨개명 다가키 마사오)는 만주국의 귀태라는 말이 있다면서 지금 한국과 일본에는 귀태의 후손이 정상으로 있다는 말을 했다. 당시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막말이라고 거세게 항의하며 국회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홍익표 의원은 책에 나온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견디지 못하고 대변인 직에서 물러났다. 자유한국당 서울시당위원장이라는 분의 공식석상에서의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재인이가 청와대를 5년 동안 전세 내어 우리 보수 주류 세력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아주 나쁜 놈, 깡패 같은 놈이기 때문에 젊잖게 나가다가는 나라꼴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주사파라고도 했다. 주사파라는 말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빨갱이라는 말이다. 어떤 근거로 그리 말하는지 아무래도 막말인 듯하다. 막말의 사전적 풀이는 ‘되는대로 말하거나 속되게 하는 말’이다. 홍익표의 귀태의 후손이라는 말은 막말일까?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권은 국정농단으로 퇴출되었으니 그의 말이 마냥 막말은 아닌 듯도 하다. 어느 말이 막말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226 청춘시대에 갖가지 우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이 되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노신) /고석근 file
편집자
901 2017-08-15
청춘시대에 갖가지 우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이 되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노신) 여덟 살의 꿈 부산 부전초 1학년 박채연 나는 ○○ 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해 교육계의 논쟁이 뜨겁다. 한 교사에게 들은 얘기다. “아이들을 참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보면 거의 다 기간제 교사예요.” 왜 그럴까? 정규직 선생님들은 그 어려운 임용 시험을 치르느라 학창시절을 오로지 공부벌레로 보냈기에 아이들과 마음을 제대로 나눌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화하면 다른 예비 교사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을 것이다. 나는 70년대에 국립사범대학을 다녔다. 그 때는 졸업하면 임용 시험 없이 100% 교사로 발령이 나니 다른 직종으로 가려는 학생 외에는 아무도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교수님들이 시험 문제도 참 쉽게 내 주셨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여행을 하고 여러 써클(동아리) 활동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보고 연애도 열심히 했다.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야학 교사로도 많이 활동했다. 지금은 임용 시험이 고시 수준이라고 하니 엄청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교사로 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교사들이 미용사가 되기 위해 ‘국제중학교를 나와서/민사고를 나와서/하버드대를 갈 거다.’라고 결심하는 ‘여덟 살의 꿈’을 이해하고 도와 줄 수 있을까? 사람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큰다. 청춘 시절에 갖가지 우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좋은 교사가 될 수 있겠는가? 오로지 공부만 했으니 지식 전달에는 자신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교사가 아니라 입시 학원 강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논쟁’이 ‘전반적인 교사 양성 과정에 대한 사회적 논쟁’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교사는 대학 시절만이라도 갖가지 우행을 저지르며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런 교사들은 아이들의 갖가지 우행을 지켜보며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225 그 사람의 말/권서각 file
편집자
837 2017-07-25
그 사람의 말 언어(Language)의 어원은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서 왔고 한다. 로고스는 이성(理性) 혹은 논리라는 뜻이 있다. 인간의 감성(感性)을 가리키는 파토스(Pathos)와 상대적 지점에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언어는 인간의 능력 가운데 하나인 논리적 사고 능력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말을 바르게 잘 하거나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논리적 사고능력을 가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말을 바르게 하는 사람은 정상적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옛 어른들도 사람을 볼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먼저 보았다. 이 때 언(言)이 곧 언어능력이다. “아유, 클 났네... 다 죽었네... 다 죽었어... 왜 그거를 못 막았어... 그거를 얘기를 좀 짜 보고... 그러니까 고한테 정신 바짝 차리라고... 얘네들이 이게 완전히 조작품이고 얘네들이 이거를 훔쳐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걸로...” 지금은 감옥에 있는 최순실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이 사람의 말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주어 서술어의 호응이 되지 않아 논리적이지 않다. 낱말의 선택이 매우 부적절하다. 태블릿 피시를 ‘조작품’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쓰고 피시를 공개한 언론사 사람들을 ‘얘네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그’ 저‘와 같은 지시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서 내용이 불분명하다. 그리고 통화내용도 거짓으로 사건을 꾸미라는 부도덕한 지시다. 얼마 전 검찰 조사에서는 특검이 자기와 딸과 손자 삼대를 멸망시키려 한다고 했다. 이 때 사용한 ‘멸망’이라는 낱말은 잘못 쓰인 말이다. 멸망과 호응되는 말은 ‘나라’다. 나라가 멸망했다는 말은 있어도 사람이 멸망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며칠 전 재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이 재판장에 40여 년 동안 지켜본 박대통령을 나오시게 해서 너무 많은 죄인인 것 같습니다. 박대통령께선 절대 뇌물이나 이런 걸 갖고 나라를 움직였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찰이 몰고 가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 재판이 진정하게 박대통령이 허물을 벗는 나라를 위해 여태까지 일했던 대통령으로 남도록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너무 많은 죄인은’는 무엇이며 ‘몰고 가는 형태’는 무엇이며 ‘뇌물을 가지고 나라를 움직인다.’는 건 무엇인가? 한마디로 언어능력 수준이 너무나 미약하다. 상식적 사고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차라리 청소 아줌마가 했다는 “염병하네.”가 훨씬 수준 높은 언어다. 우리는 이런 사람에게 나라 일을 자문 받고 연설문을 고쳐달라고 하는 분을 국가원수로 뽑고 그녀의 통치를 받았다.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그렇게 했던가에 대해 생각해볼 때다.  
224 계절의 여왕/권서각
편집자
1003 2017-05-25
계절의 여왕 언제부터인가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불렀다. 노천명의 시 ‘푸른 오월’의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데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록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많은 수효의 꽃이 피는 계절이기에 그러하리라. 오월에 피는 꽃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꽃이 장미다. 온통 신록인 천지에 유독 붉은 꽃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백과사전에서는 장미를 오월의 여왕이라 한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장미를 사랑했다. 장미를 너무 사랑해서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 그가 스스로 쓴 묘비명에는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 기쁨’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미 남의 여자가 된 루 살로메를 사랑했던 가엾은 남자의 독백은 아니었을까. 신이 처음 장미를 만들었을 때 큐피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장미에 입술을 댔다. 꽃 속에 숨어 있던 벌이 놀라서 큐피드의 입술을 쏘았다. 비너스는 벌의 침을 뽑아 장미 줄기에 꽂아 두었다. 그것이 가시가 되었다. 그 후로도 큐피드는 장미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고 장미를 사랑했다고 한다. 장미의 꽃말은 ‘애정’, ‘행복한 사람’이다. 가장 열정적인 사랑에는 가장 치명적인 것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시에 찔리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여왕께 무릎을 꿇고 고백하고 싶은 계절이 오월이다. 우리 절기로 입하(立夏)와 소만(小滿) 무렵이 오월이다. 올해 입하가 양력으로 5월 5일이었고 소만이 21일이다. 소만은 24절기 가운데 햇볕이 가장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서 누리에 가득 찬다는 절기다. 만물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절기라는 뜻이다. ‘동국세시기’에는 이 계절에 계집아이들이 봉숭아꽃을 으깨어 손톱에 물을 들이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속설에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오월은 사랑의 계절이다. 신라 향가 헌화가는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면서 부른 노래다.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이 동해 바닷가를 지날 때 벼랑의 진달래꽃을 보고 갖고 싶다고 하자 소에게 풀을 뜯기던 머리카락이 하얀 노인이 벼랑에 올라가 꽃을 꺾어 바쳤다 한다.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이 노인에게 암벽등반을 하게 한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노인에게까지 충만한 기운을 준다. 계절의 여왕 오월은 더없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녀 앞에 삼가 무릎을 꿇고 뚜껑바위 산에 핀 들꽃 한 다발을 바친다. 여왕이여 사양하지 말고 받아 주시라.  
223 인생의 본질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통해 완성해가는 것이다(사르트르)/고석근 file
편집자
1023 2017-05-15
인생의 본질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통해 완성해가는 것이다(사르트르)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 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그림책 ‘108번 째 아기양(아야노 이마이 글, 그림)’에서 주인공 여자 아이 수아는 잠을 자려고 양을 센다. 양 1 마리, 양 2 마리, 양 3 마리...... . 양들이 차례대로 침대를 넘어가는데, 쿵 소리가 나더니 이마에 커다란 혹이 볼록 솟은 108번째 양이 침대를 넘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있다. 108번째 양이 울먹이며 말했다. “흑흑, 역시 난 안 되겠어요.” 그래서 수아는 톱으로 침대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108번째 양이 후닥닥 달려와 몸을 날려 구멍으로 쏙 들어가 멋지게 발을 착 내디뎠다. 마침내 양들이 몸을 둘둘 말고 수아는 다리를 쭉 뻗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무의식이 도와주고 무의식과 연결된 온 우주가 도와준다) 문제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을 때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이다(키에르케고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촛불이 세상을 다 밝힐 듯 했는데, 온갖 흉흉한 바람이 곳곳에서 불어오고 있다. 삶을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괴테)’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은 한평생 자유를 향한 간절한 꿈을 꾸었기에 수많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느 날 김수영 시인은 팽이를 돌리는 아이를 본다. ‘팽이가 돈다/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내 앞에서 돈다’ 김수영 시인은 팽이에게서 깊은 가르침을 듣는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다. 우리가 2017년의 봄에 틔운 싹들이 어떻게 자라고 열매를 맺을 것인가? 순전히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가 간절히 피워 올렸던 ‘촛불’을 각자의 가슴에 고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스스로 제 길을 찾아 굴러가게 될 것이다.  
222 공주약전/권서각 file
편집자
955 2017-04-25
공주약전 옛날 어느 나라 왕궁에 공주가 살았습니다. 왕궁은 파란 기와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원래 왕국이 아니라 공화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 아버지가 기마병을 몰고 와서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왕이 되자 그녀도 공주가 되었습니다. 이웃 나라들은 민주공화국이었지만 그는 스스로 왕이 되어 그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들을 역당이라는 누명을 씌워 법의 이름으로 주리를 틀고 참하였습니다.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공주는 그런 부왕의 통치를 보며 궁궐에서 자랐습니다. 모든 것은 아랫사람이 알아서 해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주는 보통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거울을 보며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거울은 공주가 제일 예쁘다고 대답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은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먼저 왕비가 괴한이 쏜 화살에 맞아 서거했습니다. 감히 왕비를 시해하는 나쁜 놈이 있다는 사실에 공주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때 이상한 주술사가 나타나서 달콤한 말로 공주를 위로했습니다. 주술사는 공주의 말에 추호의 거스름이 없었습니다. 공주는 세상에 믿을 사람은 오직 주술사 한 사람 뿐이라 여겼습니다. 아메리카라는 큰 나라 사신의 장계는 주술사가 공주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지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왕비가 서거하자 공주는 왕비의 구실을 대신했습니다. 공주의 권위가 한층 높아진 샘입니다. 얼마 후 부왕도 신하의 칼을 맞고 붕어하게 되어 공주는 왕궁을 떠나야 했습니다. 얼마 후 백성들은 공주가 불쌍하다며 공주를 공화국의 통치자로 추대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다시 파란 왕궁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주가 통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백성도 있었지만 그들은 적당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간 주술사도 세상을 떠나서 주술사의 딸이 공주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공주는 오로지 주술사의 딸의 말만 믿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주술사의 딸은 공주를 움직여 나라 일을 마음대로 농단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이게 나라냐고 하며 촛불을 들고 왕궁 앞마당에 모여 밤을 샜습니다. 원로원의 결정으로 공주는 궁에서 쫓겨나고 다시 포도청 옥사에 갇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공주는 자기만이 옳다고 여겼기에 자기 말에 토를 다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나쁜 사람 또는 배신자라 하고 가차 없이 찍어냈습니다. 다른 왕자와 공주, 충성스런 신하도 한 마디만 토를 달면 나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포도청 옥사에 갇혀서도 옥바라지하는 신하 가운데 토를 다는 자가 있으면 내쳤습니다. 그리하여 공주 곁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늘 공주가 불쌍하다고 하던 백성들의 말이 옳았습니다. 공주는 참으로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221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괴테)/고석근 file
편집자
859 2017-04-15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괴테) 등 이도윤 새끼들이 모두 떠난 사람의 쭈그러진 늙은 등은 허전하여 바라볼수록 눈물이 난다 위대하여라 등이여 이 땅의 모든 새끼들을 업어낸 외로움이여 한 할머니가 ‘약장수’에게 사기를 당했단다. 수 백 만원을 날렸다고 딸이 울부짖는다. “다 제 탓이에요.” 그 딸은 몇 년 동안 아이들 교육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엄마가 매일 집으로 찾아왔단다. “엄마, 그만 좀 와.”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단다. “그렇게 굳건하던 엄마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엄마는 한없이 강하나 늙은 여자는 얼마나 무력한가! 무력한 늙은 여자는 다시 엄마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살갑게 대하는 젊은 약장수들이 자식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알면서도 속는다고 한다. 이경자 소설가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모소족의 ‘모계사회’에 가서야 비로소 깊은 안식을 찾았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소유물로 묶지 않는 사회. 그래서 서로가 사랑과 평등으로 만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사는 가부장 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인간’이 될 수 없다. 남자는 평생 처자식을 위해 일벌레가 되어야 하고.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남편과 자식이 다 떠난 늙은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노자는 여성은 도(道)에 가깝다고 했다. ‘여성성’은 어둠과 빛을 함께 품은 새벽과 같다고 했다. ‘남성성’은 어둠과 빛을 명확히 나눈다. 그런데 어디 세상살이가 그렇게 명확히 나눠지는가? 그래서 남성성이 지배하는 가부장 사회는 살벌해진다. 삭막해진다. 명확한 것들(돈, 권력, 법 등)이 지배하고 명확함을 위해 전쟁이 일상이 된다. 골목 여기저기에 나와 앉아 있는 할머니들. 표정이 없으시다. 눈 속이 텅 비어 있다. 우리 사회의 처절한 모습이다.  
220 염병(染病)/권서각 file
편집자
1047 2017-03-26
염병(染病) 염병은 장티푸스의 옛말이다. 지금은 예방도 가능하고 치료도 가능한 병이지만 전 시대에는 염병에 대한 치료 방법이 없었다. 염병에 걸린 사람은 일단 전염을 막기 위해서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격리되었다. 거의 죽게 되지만 용하게 살아난다 해도 머리카락이 빠지고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된다. 마치 염하다가 놓친 사람 같다. 지랄은 간질의 속된 말이다. 간질이 발작되면 사지가 뒤틀리고 거품을 내는 흉측한 증상이 얼마간 지속된다. 둘 다 몹쓸 병이다. 국정을 농단한 강남 아줌마가 특검에 불려가면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억울하다고 하며 별로 좋지 못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를 지켜보던 환경 미화원 아줌마가 참다못하여 ‘염병하네.’라고 일갈하셨다. 이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시원하다고 했다. 미화원 아줌마가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되었다. 사실 ‘염병하네.’는 ‘지랄 염병하네.’의 줄임말이다. 너무 심한 욕설이기에 써서는 안 될 말이다. 공공의 자리에서 비속어는 쓰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느 시대이든 욕이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가령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심해서 싸움이 났을 때 예의를 갖추어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어떤 사람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점잖은 어조로 “당신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유 없이 저에게 폭력을 행하십니까? 그 연유를 일러주시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욕을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욕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때로는 필요하기에 사라지지 않는다. 욕의 문장구조와 문법을 따져서 그 의미를 분석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욕 가운데 개자식(Son of bitch)이 있다. 이는 암캐를 모친으로 둔 사람이란 뜻이지만 사람이 개에게서 태어날 수 없으니 그 말의 뜻을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다. 지랄 염병도 마찬가지다. 간질과 장티푸스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냥 매우 몹쓸 사람이란 한 묶음의 말로 보아 감탄사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우리 조상들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도리에도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나무랄 때 ‘지랄 염병하네’라는 말을 쓰곤 했다. 명백하게 헌법을 어긴 사실이 밝혀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특검의 조사로 법을 어긴 사람들이 구속되었다. 국민의 80%가 위법을 인정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잘못되었다, 특검이 잘못되었다고 몸에 태극기를 휘감고 광장에 모여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예절을 갖추어 논리적으로 대응할 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때 쓰라고 우리 조상은 참으로 적절한 감탄사를 마련해 두셨다.  
219 하늘의 명령이 인간의 본성이다 天命之謂性 (공자) / 고석근 file
편집자
1046 2017-03-16
하늘의 명령이 인간의 본성이다 天命之謂性 (공자)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하늘(天)은 우주 만물의 근원이자 원리인 신(神)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느님(天)’의 뜻에 따라 살려고 했다. 인간 세상은 ‘하늘의 아들(天子)’이 통치했다. 그러다 ‘하늘의 뜻(天命)’이 ‘인간의 본성(性)’으로 나타난다는 사상이 등장했다. 신화시대가 끝나고 인문학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 인간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 인류의 스승인 4대 성인,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일생을 사신 분들이다. ‘본성의 소리’에 따라 죽음도 불사한 분들이다. 가장 멋있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온 몸으로 보여주신 분들이다. 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성인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인간 세상의 주인(민주주의)’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본성을 깨쳐나가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성숙시켜 가면 루소가 말하는 ‘자신의 의지(개인의지)’가 ‘우리 모두의 의지(일반의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광장에서 각 개인의 마음을 모아 ‘이 시대의 마음’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고 하는 ‘망상’일 것이다. 자신의 ‘망상’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독선’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먹구름/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붕 덮은/쇠항아리/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가 ‘마음속 구름을 닦고/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망상’ ‘독선’에 빠진 사람들도 함께 품으며 ‘서럽게/아 엄숙한 세상을/서럽게/눈물 흘리며’ 살아가야 한다. 광장에 두 개의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하늘 아래에 있다. 우리의 깊은 마음에서는 하나로 만나고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이 자리 잡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가야 한다. 아직 우리 어느 누구도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고 하지 말자!  
218 촛불/권서각 file
편집자
902 2017-02-26
촛불 촛불은 다른 불에 비해 약한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아궁이불은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장작을 넣으라는 동작을 요구하지만 촛불은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고 했다. 제 몸을 태우며 고요히 타오르는 촛불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지점이 바슐라르에 공감하게 하는 지점이다. 촛불은 고요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한다. 대개 종교의식에서 촛불을 켜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리라. 또한 촛불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때 길을 밝혀주기도 한다. 그래서 촛불의 힘은 경이롭다.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툭하면 군복을 입고 가스통을 들고 나와 불을 붙이려는 할배들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불을 확 질러버리겠다고 위협을 해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만 있고 깊은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분별없는 행위는 어릿광대와 다르지 않다. 어릿광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웃음거리일 뿐이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하나 둘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수백만의 인파가 광장에 모였지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조그만 불편함도 끼치지 않았다. 촛불을 나누어주는 사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 화장실을 안내하는 사람,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 사람, 사람들. 모르는 사람끼리도 오랜 친구처럼 서로 반갑다. 촛불을 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그의 말대로 되지 않았다. 비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제 몸을 태우면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하나 둘 모여서 100만, 1000만이 되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시위 앞에 불법이란 수식어를 달고 차벽을 치고 물대포를 쏘던 경찰도 촛불 앞에서 한발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국회는 촛불의 요구에 응답해서 탄핵을 의결했다. 독일의 유력 언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한국의 촛불 문화제를 보도하면서 ‘민주주의 역사가 한국보다 긴 유럽이 오히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썼다. 촛불로 인해서 우리민족이 지닌 수준 높은 저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016년 촛불은 1919년 ‘3.1혁명’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우리민족 구성원을 하나 되게 하였다. 촛불은 다른 어떤 불보다 강하다. 제 몸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려는 간절함은 하늘에 가 닿으리라.  
217 예술은 전례 없는, 예상치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존재의 질을 생성한다(가따리)/고석근 file
편집자
746 2017-02-15
예술은 전례 없는, 예상치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존재의 질을 생성한다(가따리) 바기날 플라워 진수미 여름 학기 여성학 종강한 뒤, 화장실 바닥에 거울 놓고 양 다리 활짝 열었다. 선분홍 꽃잎 한 점 보았다. 이럴 수가! 오, 모르게 꽃이었다니 아랫배 깊숙이 구근 한덩이 이렇게 숨겨져 있었구나 하얀 크리넥스 입입으로 피워낸 꽃잎처럼 철따라 점점(點點)이 피꽃 게우며, 울컥 불컥 목젖 헹구며, 나 물오른 한줄기 꽃이였다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긍정하게 되는 경이로운 순간. 이 시를 읽고 여성의 특정 부위를 묘사했다고 해서 ‘성적 자극’을 받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일 이 시가 대다수 사람들이 ‘성적 자극’만 받는다면 이 시는 실패한 시일 것이다. 아니면 대다수 사람들이 ‘변태’가 되었든지. 남자들은 모른다. 여성이 얼마나 자신의 몸을 부정하고 사는 지를. 그래서 이 시는 우리의 깊은 ‘미적 감수성’을 깨우는 좋은 시다. 국회의원 회관에서 전시된 작품 ‘더러운 잠’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나는 원작은 보지 못했다. 그 작품을 인터넷 신문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 작품을 패러디한 원작에서는 백인 여성이 나체로 누워있고 옆에 흑인 여성이 서 있다. 그 당시는 흑인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백인은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나체로 ‘당당하게’ 누워있다. 혹 ‘더러운 잠’의 작가도 세월호가 침몰하는데도 나체로 ‘당당하게’ 누워있는 대통령을 묘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사람들의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것 같다. ‘더러운 잠’에서 ‘여성의 나체’가 무엇을 보여주는 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모아졌으면 좋겠다. 단지 여성의 비하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미적 충격을 주는지. 칸트는 우리 가슴 속의 도덕률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은 ‘미적 감수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미적 인간’이 될 때 이 세상은 우리 가슴 속의 도덕률이 아름답게 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더러운 잠’이 우리의 사회의 미적 감수성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16 노란 리본/권서각 file
편집자
895 2017-01-26
노란 리본 노란 리본의 유래는 4세기 경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노래 ‘그녀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She wore a yellow ribbon)’가 널리 불리어지면서 노란 리본은 영국인의 가슴에 무사귀환의 상징으로 자리합니다. 17세기 청교도 혁명 때는 병사들이 노란 띠를 두르고 전쟁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피트 하밀이 뉴욕포스트에 ‘고잉홈(Going Home)’이라는 글을 연재합니다. 형기를 마친 죄수가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자기를 용서한다면 마을에 있는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고 편지를 씁니다. 남자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참나무에는 수많은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1973년 우리도 알고 있는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라는 노래로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 지게 됩니다. 이후로 노란 리본은 무사히 돌아오라는 상징으로 널리 쓰이게 됩니다. 2014년 4일 16일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꽃다운 아이들 304명이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았습니다. 구조할 수 있었지만 구조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노란 리본을 단 채 문상을 간 적이 있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왜 아직도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느냐고 나무랐습니다. 자기 부모가 죽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로 죽었는데 아직도 왜 그걸 달고 다니느냐고 나무랐습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참 지나서 그가 소리를 질러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많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참으로 암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아마 노란 리본을 종북의 상징쯤으로 읽었을지 모릅니다. 세월호 침몰에는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왜 학생들이 타기로 한 배가 하루 전에 세월호로 바뀌었는지, 왜 선장도 바뀌었는지, 왜 그날 세월호만 출항했는지, 사고가 났을 때 왜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지, 왜 그 시각 국가재난구조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는지, 왜 그들이 죽어야 했는지, 왜 국가는 진상을 덮으려고만 했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아이들은 비록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침몰의 진실이 밝혀져서 304명 부모 가슴의 한이라도 풀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15 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성격대로 살아라(마르크스)/고석근 file
편집자
1022 2017-01-16
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성격대로 살아라(마르크스) 똥지게 심호택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 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내 어린 시절은 공부가 최고인 시대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는 오전 수업이 끝나면 전교 석차대로 교실의 자리가 재배치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땐 복도 벽에 전교 50등까지의 성적표를 붙여놓았다. 그럼 이제 막 은퇴하고 있는 동창생들의 삶은 어떨까? 행복도 성적순일까? 대체로 다들 불행해 보인다. 다들 ‘소인배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말했다. ‘소인배는 한평생 편안함을 추구하다가 죽을 때 힘들고 군자는 일생을 힘들게 살지만 죽을 때 비로소 편안하다.’ ‘소인배’로 산 인생이 어찌 행복할 것인가! 하지만 이제 조물주가 준 ‘좋은 머리’로 편하게 살기조차 힘든 시대가 되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기 때문이다. 한 동창생은 나라가 부도가 났을 때 열심히 건물을 사 놓았다. 그 덕분에 그 친구는 조물주보다 더 높은 건물주가 되었다. 그 친구 자식들은 공부를 못해도 평생 호의호식할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무나 건물주가 될 수 있나? 오랫동안 ‘소인배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서는 깊은 허무가 느껴진다. 편하기로 말하면 저 굴러가는 돌멩이가 더 편하지 않는가? 괴테는 말했다. ‘나이 30이 넘으면 살았다 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30세 전까지는 ‘군자의 삶’을 산다. 적어도 ‘쪽팔리는 삶’을 살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그러다 30이 넘으면 서서히 염치가 없어지고 소인배가 되어간다. 대선 후보들이 ‘기본 소득제’를 공약으로 내 걸 것이라고 한다. 국민 누구에게나 기본 소득을 보장해주면 - 어느 경제학자가 쓴 글을 보니 우리나라 경제력으로 보아 일인당 200만원을 줄 수 있다고 하지만 한 100만원씩만 주어도 - 사람들은 그 돈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까? 우리는 비로소 ‘소인배의 삶’을 벗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편안한 삶보다는 무언가 의미 있는 삶, 보람 있는 삶, 신나는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소인배의 일생(一生)’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