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  



이시카와 다쿠보쿠

동해 바다 작은 섬 갯바위의 흰 백사장
나 눈물에 젖어
게와 놀았다네.


우리의 대표 시인 백석이 흠모했던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

그는 자살하려고 동해 바닷가에 나갔다가 흰 모래밭 위의 작은 바닷게 한 마리에 눈이 팔려 그 게와 놀다가 자살할 마음도 잊었다고 한다.

우리는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매번 실패하고 만다.

우리의 삶은 ‘반복’이다.  

어제 떠오른 태양이 오늘도 떠오르고 내일도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감탄을 한다.

그들에게는 매번 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에게는 미세하게 느껴지는 그 차이가 태산처럼 커다랗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매순간이 감동적이다.

그들은 ‘반복’이 아니라 매번 ‘신비로운 차이’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 속에서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들뢰즈).  

하지만 ‘의미’에 길들여진 우리는 삶에서 ‘차이’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루한 반복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더욱더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그렇게 부여한 의미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으랴.

그것들은 우리의 정신을 잠시 마비시키는 진통제일 뿐이다.

진통제의 약효가 떨어질 때 쯤 우리는 폭발한다.

살인을 하고, 자살을 하고, 사고가 나고, 질병에 걸린다.

며칠 전에도 한 젊은이가 자살을 했다.

외고와 명문대를 나온 고시생.

그렇게도 착했던 아들이 유서 한 장 없이 자살했다고 부모가 한탄을 했단다.

‘의미’에 지친 그가 평생 ‘의미’를 부여해온 부모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우리는 온갖 고상한 정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