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란 물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다(임제)



백거이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바가 있고
사물에는 애당초 꼭 그래야만 되는 법도 없어
누가 너를 일러 춤을 잘 춘다 하는가
한가롭게 서 있을 때만 못한 것을
 


인간은 왜 자신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는 걸까?

물개처럼 헤엄치려 하고 치타처럼 달리려 하고 새처럼 날려고 하고 꾀꼬리처럼 노래하려 하고 나무처럼 높이높이 자라려 하고...... .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조급하다. 고요히 앉아 쉴 수가 없다.

기계처럼 빠르게 돌아간다. 바빠야 제대로 살고 있는 듯하다.  

공자는 자신의 마음에 중심을 두고 이 세상을 그때그때 알맞게 살라고 한다. 중용이다.

우리는 이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유혹하는 대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누군가의 손에 의해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길을 가다 한가롭게 서 있는 학을 보는 백거이 시인은 그 무엇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가며 기적을 느낄 것이다.

한 승려가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거지가 오면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그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우리는 당연히 ‘거지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편견일 뿐이다.

어찌 거지라고 항상 부족하기만 하겠는가?

거지도 보통 사람들처럼 충분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유심히 그를 살펴본다면 우리가 그에게서 얻을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조주 선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너 자신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라!”  

조주 선사는 ‘텅 빈 충만, 부족함이 없는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눈엔 거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거지에게서 불성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자꾸만 결핍을 강요한다.

사후에 천국이 있다느니 극락이 있다느니 미래에는 지상낙원이 도래한다느니...... .

땅 위를 걸어가는 기적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