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보다도 백배는 더 섬세해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니체)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예수는 말했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도 내밀어라!”

만일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예수의 오른 뺨을 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예수가 크게 분노하리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모르는 그에게 분노하는 게 당연하니까.

예수는 ‘사랑’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독사의 자식들아!”

나는 통 큰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한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모씨가 고향에 다녀오면서 마을 이장에게 금일봉을 하사하였는데, 거금 삼천 만원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역시 통이 크신 분이야!”
이장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고 한다.

통이 크다니? 그 돈이 어떻게 그의 손에 쥐어졌는지를 생각하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땀 흘려 그 돈을 모았다면 선뜻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쪼잔한 사람’을 믿는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김수영 시인 같은 사람들을 믿는다.

통 큰 사람들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랑을 알면 얼마나 세심해지는가!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는 지극히 섬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온 몸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내밀 수 있으면서도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들’은 왜 이리도 통이 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