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옳은가?

 

역사의 진화 과정을 보면 왕이라는 1인 권력의 통치에서 개인에게로 권력이 나뉘어져 온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국민(people)에게서 나온다는 명제가 당연한 시대까지 왔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Democracy)를 인류가 발견한 최선의 정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은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민중에 의해 정치적 결정이 내려진다. 그렇다면 민중은 항상 옳은가?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민중에 의해서 선택된 국가 권력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젊은이들이 ‘헬조선’과 ‘흙수저’를 외치게 하고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냉전체제로 돌려놓은 일이 그것이다. 사드(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위체계) 배치까지 거론되는 한반도는 지금 매우 위태롭다.

 

우리 정치권력이 한반도를 이토록 위태롭게 몰고 가도 우리 정치권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 여기서 다시 민중은 옳은가? 라는 물음과 만나게 된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정권을 지지하는 민중은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가?

 

여기서 떠오르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히틀러가 지배했던 나치 정권 때의 독일 민중이다. 독일 민중은 히틀러를 지지했고 히틀러의 니치 정권은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고 유럽을 피로 물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남기고 몰락했다. 이때 히틀러를 지지했던 독일의 민중을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민중은 누구인가, 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 구성원 가운데 다수를 민중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숫자의 많음을 가리킬 뿐이다. 민중은 대중과 구별되어야 한다. 독일 나치 정권 시대에 괴벨스의 선동으로 강자의 편에 섰던 대중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권력자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거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사람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중일지라도 민중은 아니다.

 

민중의 개념은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긴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1. 자신의 이득보다 더불어 산다는 쪽에 선 사람이어야 한다. 2.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치 시대 독일의 대중은 앞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에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있다.

 

지금 전쟁을 말하며 사드 배치를 말하는 권력자들은 어떠한가? 지금 장관이나 권력자 가운데는 병역 기피자가 많다. 사드 배치를 요구하며 자신의 지역구엔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을 지지하는 대중들도 사회에 기여하는 삶보다는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는 성향의 사람들이다. 민중은 옳다. 민주주의도 옳다. 다만 민중에서 부도덕한 권력을 지지하는 대중들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옛말에 물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했다. 지금 우리의 대중들은 공중파 방송, 신문, 케이블 종편 방송, 인터넷 등이 부도덕한 권력에 대변자 노릇을 하고 있다. 나치 치하의 괴벨스의 선동에 못지않다. 민중을 어리석은 대중으로 만들고 있다. 부도덕한 정보의 홍수에 우리 민중을 빠뜨리고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깨어있는 민중으로. 깨어나서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