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사랑스럽게 창조한다는 것이다.(니체)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아주 오래 전 기관조사로 근무할 때 사망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건널목을 건너던 행인이 기관차에 부딪쳐 논두렁으로 나가떨어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벌벌 떨며 어찌할 줄 모르던 기관사와 달리 나는 침착했다.

매뉴얼대로 널브러진 시체를 차장과 함께 수습하고 승객들을 차에 오르게 하고 보고를 하고 무사히 종착지까지 갔다.  

사람들은 나를 냉정하다고 했다.

나도 나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문학을 공부할 때였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걷잡을 수 없었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다니!  

나는 그 뒤 수시로 술만 마시면 펑펑 울었다.

강사가 되어 수강생들과 뒤풀이를 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어떨 땐 술주정까지 하며 울었다.

한 동화작가는 내 얼굴 표정이 두 가지라고 했다.  

‘천진한 아이’와 ‘데드 마스크’.

노자는 ‘굳음은 죽음이고 부드러움은 삶’이라고 했다.

내가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데드 마스크’를 쓰고서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내 안에 마냥 즐거운 ‘천진한 아이’가 있는 줄 모르고.

서정주 시인은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라고 했다.

그 뒤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고’ 바람이 부는 대로 살다보니 결국엔 ‘친일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

그들의 ‘데드 마스크’ 뒤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고여 있을 것인가?

그들의 ‘데드 마스크’가 이끌어 가는 우리 사회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