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敬)이라는 글자

 

소수서원 경렴정에서 죽계수 건너편을 바라보면 바위에 새겨진 공경 경(敬)자가 보인다. 경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경자가 성리학의 핵심 사상이며 퇴계 선생의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이다. 흔히 경은 웃어른에 대한 공경, 스승에 대한 공경, 지위가 높은 이에 대한 공경, 임금님에 대한 공경쯤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다.

 

퇴계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도산에 계실 때 23세의 청년 율곡이 도산을 방문했다. 퇴계는 마당에 내려가 젊은 율곡을 맞이했다. 소수서원 강학당 밖 마당에서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엿듣던 대장장이 배순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유생들과 함께 공부하게 하셨다. 사화로 말미암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게 되어 여러모로 부족한 권씨 부인을 공경으로 대하셨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바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퇴계의 경은 나이나 지위에 대한 공경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공경이었던 것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에 대해 연민했던 예수의 가르침도 나 아닌 남에 대한 공경일 것이다. 팔 다리와 머리를 가장 낮은 데 임하게 하여 절하는 불교의 오체투지도 나 아닌 남에 대한 공경일 것이다. 청마 유치환 시인이 경주 여고 교장으로 계실 때 정한 교훈이 ‘나란 나만을 위한 나가 아니다.’이다. 이 또한 타자에 대한 공경을 기반으로 한 가르침이다. 모든 스승의 가르침에는 나 아닌 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이 있다.

우리사회도 날이 갈수록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 상대에 대한 공경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요즘은 대개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지만 얼마 전까지 결혼식에는 주례가 있었다. 주례를 할 때마다 이런 주례사를 하곤 했다. ‘누구를 공경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부인이 화가 나서 베개를 던지면 오체투지 하듯이 납작 엎드리십시오. 그러면 베개는 허공으로 날아가고 가정에는 다시 평화가 가득할 것입니다.’ 이 세상 공경 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