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박물관, 미술관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는 모든 아름다움이 상실되어 있다(모리스)


박물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 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 - 홍조 띤 뺨은 어디 있나요?
칼은 있는데 - 분노는 어디 있나요?
어두운 해질 녘 류트를 퉁기던 새하얀 손은 온데간데없네요.

영원이 결핍된 수만 가지 낡은 물건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어요.
진열장 위에는 콧수염을 늘어뜨린 채
곰팡내 풀풀 풍기는 옛날 파수꾼이
새근새근 단잠을 자고 있어요.

쇠붙이와 점토, 새의 깃털이
모진 시간을 견디고 소리 없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고대 이집트의 말괄량이 소녀가 쓰던 머리핀만이
킬킬대며 웃고 있을 뿐.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쪽 구두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나는 어떨까요, 믿어주세요, 아직도 살아 있답니다.
나와 내 드레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 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를 열망하듯 말이죠.


며칠 전에 일가족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한 여인의 바람이 일가족 네 명의 목숨을 앗아갔단다.

그 여인의 불륜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은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예비사위가 딸에게 얘기하고 딸은 엄마에게 얘기하고 엄마가 자살하고 아버지가 알고 딸이 자살하고 아버지가 자살하고 결국엔 아들까지 자살하게 되었다고 한다.

간음한 여인을 향해 마구 돌을 던지는 자들에게 예수는 외쳤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돌을 던지던 자들은 부끄러움에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현대문명사회에서 이리도 잔혹한 사건이 일어나다니!  

우리는 어쩌다 남의 잘못에 이리도 가혹하게 되었을까?

부모가 죄수여서 항상 죄의식에 시달리던 자베르 형사는 장발장의 죄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의 불타는 정의감의 원천은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 똬리를 튼 죄의식이었던 것이다.  

한 여인의 불륜을 일가족의 자살로 몰아갈 만큼 우리 사회는 지금 깊은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왜 다들 죄인이 되어버렸을까?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누추해서일 것이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 세계는 과학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얼마나 ‘과학주의자’가 되어버렸는가?

과학이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게 되면 우리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은 다 사라져버린다.

예술은 박물관, 미술관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린다.

오로지 ‘적자생존이론’만이 우리들 머리 위를 배회한다.

정글에서 상처 받은 인간은 먹잇감일 뿐이다.

조만간 그 가족의 이야기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들이 살던 집만이 덩그러니 유물처럼 남을 것이다.

그 집은 오래 오래 우리의 경배를 받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테러를 가하지 않으려면 ‘삶의 아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과학은 현대의 종교다.

우리는 과학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들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우리는 ‘경제학(사회과학)’이라는 이름에 걸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다.

사드 배치도 과학의 아름으로 추진될 것이다.

누군가가 과학의 논리로 ‘소녀상 철거 이전’을 얘기할 것이다.

박물관에 가보면 원시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 현대까지 깔끔하게 배열되어있다.

우리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 다행이야! 현대에 태어나서...... .’

우리가 과학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한 우리는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