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을 하지 말아라!(원효)


대추 따는 노래
이달

이웃 집 꼬마가 대추 따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할 걸요.”  


설총이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좌우명을 아버지 원효대사에게 부탁드리자 원효대사는 아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착한 일을 하지 말아라!”

설총이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그럼 악한 일을 하고 살라는 말씀입니까?”

이에 원효대사가 일갈하였다.

“착한 일도 하지 말라 하였거늘 하물며 악한 일을 생각하느냐?”

착한 일을 많이 행한 한 목사가 추문에 휩싸였다.

벌써 30여 년 전이다.

그 목사님을 어느 모임에서 뵌 적이 있다.

그 목사님의 확신에 찬 말이 귀에 쟁쟁하다.

“40일 동안 금식하며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가끔 그 목사님의 ‘착한 행적들’을 언론에서 접했다.    

인간에게는 ‘지랄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인간에게는 ‘지랄이라는 일탈 행위가 불가피하다’는 ‘무시무시한 윤리학’이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끝내 ‘지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세상은 착한 일을 강요한다.

어른들은 착한 아이를 참 좋아한다.

나중에 어떻게 되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착한 아이가 다 악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지 못한 ‘지랄’은 어디로 갈까?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히 몸 안을 떠돌아다닐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어딘가 많이 아프다.

그래서 이웃 집 할아버지 집에 몰래 대추를 따러 온 꼬마가 귀엽다.

들킨 꼬마는 외려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할 걸요.”

이런 ‘파렴치한 아이’가 있는 옛 마을이 그립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지랄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달 시인은 홍길동을 쓴 허균의 스승이라고 한다.

‘지랄의 시’를 썼기에 멋있는 스승이 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