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어의 풍경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생각이나 느낌을 담는 그릇이다. 국어는 한국인의 생각을 담기에 알맞은 그릇이고 중국어는 중국인의 생각을 담기에 알맞다.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담긴 것의 모양이 달라진다. 국어가 바르지 못하면 그 그릇에 담긴 생각도 바르지 못하다. 거친 말을 쓰는 집단은 생각도 행동도 거칠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바른 말 고운 말을 강조한다.

다리가 두껍다, 맛이 틀리다, 벌레에 물려 피부가 간지럽다는 다리가 굵다, 맛이 다르다, 벌레에 물려 피부가 가렵다. 로 고쳐야 한다. 사람에게 붙여야 할 인칭대명사 ‘얘’를 사물을 가리킬 때 쓰는 등 국어를 잘못 쓰는 일이 심해지고 있다. 가령 개나 고양이를 가리키며 “얘 데리고 병원에 가요.”라든지 요리사가 음식에 소금을 넣으며 “얘도 한 스푼 넣어요.”라고 한다. 이렇게 국어를 잘못 사용하는 일은 어휘나 문법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발음의 문제도 있다. 우리 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바르게 발음하는 것도 국어 사랑의 한 측면을 이룬다. 지난 날 교회의 목사님들의 설교 언어는 우리의 일상 언어와 크게 달랐다. ‘예수’를 ‘예슈’라하고 ‘믿습니다’를 ‘밋쉬미다’라고 하신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전 시대에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초창기 미국 선교사들의 영어식 국어 발음에 영향을 받아서이다. 이는 자기보다 우월한 것에 대한 지나친 따라 하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언어의 사대주의라 할만하다.

요즘의 젊은 여성들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기성세대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개의 모음을 ‘오’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입으로 나와야 할 공기를 코로 내보내어 콧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선생님’을 ‘손생니옴’’에 가깝게 발음한다. ‘ㅅ’이나 ‘ㅈ’발음도 유성자음 〔z〕에 가깝게 발음한다. 귀엽게 들리라고 그러는 모양이지만 언어를 다루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거북한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과거의 목사님들이 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듯이 우리의 젊은 여성들이 이른바 걸 그룹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그런 말투가 매력적이고 애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바른 국어사용이 아님은 분명하다. 세종대왕이 들으시면 매우 섭섭해 하실 거다. 국어라는 그릇이 반듯해야 사회가 바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