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분노



문학인은 근본적으로 시대와 불화한다. 왜 그럴까? 세계(universe)는 원초적으로 선과 악이 공존한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하늘은 착하지만은 않다. 만약 하늘이 착하다면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늘은 착한 사람을 끝없이 불행하게 하기도 하고, 악한 이에게 복을 누리게도 한다. 이런 모순적 세계에 대항하는 이가 작가다.


우리 고전 흥부전, 춘향전, 심청전을 다시 보자. 우리가 사는 현실은 흥부와 같이 착하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춘향처럼 권력에 대응해서 정절을 지키면 승리할 수 있는가? 심청처럼 부모에 효도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작가정신이 우리의 고전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우리 고전도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노자의 말처럼 세계는 착한 사람들의 편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은 다 그런 거야”라고 세계의 밝은 면만을 노래해야 하는가?


공자가 ‘자가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物施於人)고 한 것은 세계의 어두운 면을 소멸시켜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퇴계 선생 평생소원이 ‘허물이나 없고자’라고 노래한 것은 자기 내면의 불의한 것들을 소멸해서 완전한 선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즉 정의로운 자기, 정의로운 세계가 성자들의 소망이었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정의의 편에 선 자다. 정의의 편에 선자는 불의와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작가는 시대와 불화한다. 작가가 시대에 순응하고 시대의 어두운 면을 외면한다면 작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작가가 권력의 편에 선다면 악이 선을 억압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세계는 그런 작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작가정신을 나는 논리적 분노라 한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성장, 반공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국가경제가 낮은 수준일 때도 무상교육 등의 복지 정책을 실현했다. 우리는 지금 경제 대국에 속한다. 그럼에도 더 성장해야 한다고, 경제성장을 내걸고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다. 끝없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동자들의 복지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 복지를 말하면 종북으로 몰아세운다. 논리적 근거가 없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다. 기득권층도 가짜 종북을 만들어 분노하고 증오한다. 그들은 근거 없이 분노하고 증오하지만 작가정신은 논리적 분노를 하는 것이다.


글 권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