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공부하라! (왕양명)


문구멍
신현득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문학을 공부할 때 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팔당댐 근처 풍광 좋은 곳으로 갔는데, 그 날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문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때였다.  

젊은 강사가 내게 '글을 보는 눈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불같이 화가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너는 얼마나 잘 아나?'  

그 다음 날 새벽에 혼자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 버렸다.

그 뒤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며 그 강사가 한 말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온 몸이 오글거린다.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나도 이제 강사가 되어 강의를 다니다 보면 '그때의 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강사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그 강사처럼 수강생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줄 때가 있다.

그때의 나처럼 파르르 반응을 보이며 기분 나빠 하는 분들도 있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다.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할 때 사람들에게 쇠파리처럼 달라붙어 그가 스스로 무지하다고 깨달을 때까지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졸지에 '무식한 인간'이 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 부류로 나눠졌다고 한다.

'무지의 깨달음'에 환희에 젖는 사람들과 '너는 얼마나 아나?'하고 분노하는 사람들로.

왜 이렇게 나눠질까?  

머리로만 공부한 사람은 불같이 화가 날 것이다. 자기도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할 테니까. 소크라테스가 별로 많이 아는 것 같지 않게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일상에서 '진리' '정의' '자유' '사랑' 등을 성찰하며 공부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아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흡사 불철주야 '화두(話頭)'를 잡고 공부하던 승려가 어느 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깨달을 때의 그 느낌을 몸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노자는 말했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言者不知 知者不言)"

언어를 끝까지 밀고 갔던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소크라테스가 언어로만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의 언어의 한계를 깨줄 때 몸으로 공부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의 눈앞에 새로운 진리의 세계가 섬광처럼 스쳐갈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열림의 세계로 들어설 것이다.

가끔 내가 제자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줄 때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을 볼 때 경이감에 젖는다.

사람은 이렇게 크는구나! 아이가 문구멍을 찢고 세상을 내다보듯. 그렇게 키가 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