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문득 항공기 좌석에 클래스를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기를 탈 때 탑승구는 하나다. 이코노미 클래스 표를 가진 나는 입구의 넓은 클래스의 자리를 지나 뒤쪽에 있는 비좁은 자리에 다리를 오그리고 몇 시간을 견디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같은 항공기 안에서 가진 자의 자리와 그렇지 못한 자의 자리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람의 계급이 나뉘는 공간이 항공기다. 봉건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양반과 노비의 계급이 나뉘었지만 현대사회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현대판 계급사회라 하겠다. 이런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의 변화 과정은 사회적 계급을 없애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귀족과 평민, 양반과 상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등의 계급을 없애고 무두가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의 진보라고 배웠다. 봉건사회에서 봉건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만 있었다면, 그리고 누구도 봉건체제의 계급질서에 항거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희생에 의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사라졌다.

 

명색이 지역의 유지라고 하는 이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땅콩회항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모두 항공사 사주 딸의 갑질에 대해 분개했다. 어차피 항공기 이야기가 화제니까 나는 항공기의 클래스를 없애는 게 어떻겠느냐고 생뚱맞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좌중에 몇 사람이 픽 하고 비웃었다. 그들에게 나의 말이 생경한 만큼이나 내게는 그 웃음이 낯설게 들렸다. 그리고 나에 대한 공격이 시작 되었다.

 

그들의 발화 취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많은 돈을 내고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능력에 따라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억울한 것 하나 없다. 적은 돈을 냈으니까 뒷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능력에 따라 사는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큰소리친다. 한센 병 환자 수용시설에 가보면 그들이 직원들을 개 부리듯 한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다. 우리나라는 복지가 과하다.

 

그들은 나를 종북 좌파로 보고 있음이 확실하다. 나는 화를 참으며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했다. 돈 많은 사람이 자기 집에서 금 수저로 밥을 먹든, 벤츠를 타고 다니든, 호화주택에 살든 그것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수단이나 대중이 같이 쓰는 공간에서 계급이 나뉘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공화국 시민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듯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모멸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기차에 1등석이 사라지고,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고,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민주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이런 목소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묻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해방은 되었지만 진정한 해방이 되지 않았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민주 공화국이 아니다. 식민 지배나 봉건 질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영남에서 섬처럼 외롭다. 글/ 권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