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민심

 

가끔 오르는 집 근처 야산이 있다. 등산도 아니고 산책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걷기 코스다. 집 가까이 이런 산이 있어 주어서 고맙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사각형 아파트에 갇혀 살다가 가끔 천천히 오르며 내리며 볼 것도 보고 들을 것도 들으며 바람도 쐰다.

 

아파트에 살면 날씨와 계절을 잊기 쉽다. 밖에 비가 오는지 혹은 추운지 더운지 알지 못한다. 다행히 산에 오를 수 있어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을 보고 계절의 바뀜을 알 수 있다. 사람도 원래 자연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사람을 자연으로부터 갈라놓는다. 그러니까 산은 내게 있어서 자연과 반자연을 소통하게 하는 통로인 셈이다.

 

언제인가부터 이 야산에 손바닥만한 산밭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소일거리로 평평한 곳을 일구어 만든 밭뙈기들이다. 이렇게 생긴 밭은 대개 기대 이상으로 작물들이 탐스럽게 자란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가 그것이다. 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내가 보는 산밭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산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밭에 온다.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하게 가꾸어진 밭에서 고구마, 고추, 들깨, 땅콩, 배추, 무, 상추 등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좋은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자라는 작물들을 보면서 그 밭을 가꾸는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하기에도 힘겨워 보이는 노인이 유모차로 물을 실어 나르고 거름을 실어 나르고 흙에 몸을 가까이하고 작물을 가꾸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정성이 저 손바닥만한 밭에서 씨앗에 싹을 틔우게 하고 잎과 줄기가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한다. 그 과정이 성스러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서로 모른 척 하가가 쉽다. 산에 오르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림새가 다르듯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래도 밭에 가는 길이나 산책길이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거나 같은 지점에서 쉴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알게 되어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내는 노인이 있다. 허리 굽은 왜소한 노인이었다. 자신의 몸도 힘겹게 추스르는 노인이 어떻게 푸름이 가득한 밭을 가꾸어 내는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가 일구어 내는 밭을 통해서 그의 성실한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를 대하는 태도가 나도 모르게 공손해졌다.

 

4월16일 시민연대에서 주관하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에 다녀왔다. 거리에서 하는 밤 행사였다. 추모시를 낭송해 달라는 주최 측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전에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이 효순이 추모제에도 추모시를 낭송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갔을 때도 시민들이 차린 분향소에서 추모시를 낭송한 적이 있다. 시를 쓰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임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작년 오늘 수학여행 간다고 집 나서더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구나

우리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잊지 않고 있다

다시 개나리가 피고

우리들 가슴에도 노란 개나리 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지겹다고 한다

세월호 이야기 그만하자고 한다

세월호 이제 그만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세월호 진상조사특위’를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한사코 한사코 덮으려고 한다

잊으라고 한다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아이가 수학여행 떠나서

1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왜 돌아오지 않는지 영문도 모른다면

당신은 잊을 수 있는가?

 

왜 세월호가 가라앉았는지

왜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지

왜 가라앉는 배를 보고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영문도 모르는 채

왜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야 했는지

왜 그들은 잊으라고 하는지

왜 한사코 덮으려고 하는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304명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운전자 한 사람이 잘못한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잘못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수학여행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

이 땅의 누구도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울지 마라,

왜 너희들이 돌아오지 못하는지 밝혀지는 그날까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잊지 않겠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

울지 마라, 우리가 잊지 않겠다

-권서각 시 「울지 마라, 우리가 잊지 않겠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쌓여서 나타난 사건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산밭을 일구는 노인 같은 분들만 있으면 이런 비참한 사건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며칠 전이었다. 산을 오르다가 밭둑에 앉아서 쉬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다짜고짜 한숨을 섞어 말을 했다.

“속상해 못살시더.”

그가 가꾼 밭에서 푸른 싹들이 봄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어제 갑자기 밭 임자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기가 이 땅을 사서 측량해 보니 노인이 가꾸는 밭뙈기도 자기가 산 땅에 포함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이제 자기의 땅이니까 당장 농사를 걷어치우라는 것이었다. 노인은 이렇게 자라고 있는 것들을 어찌할 수 없으니 가을에 거둘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애원을 했단다. 당장 그 땅에 무엇을 할 것도 아니면서 그는 막무가내로 당장 농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인은 분노에 차서 말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데 있니껴? 그놈은 노무혀이보다 더 나쁜 놈이래요.”

나는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한 그의 정치적 견해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글 권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