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유괴
진은영

아주 어렸을 적, 혼자서 별들의 놀이터에 있을 때였다
그는 어디로부턴가 와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내가 두려움에 떨며 처음 울음을 터뜨린 곳은
어느 낯선 집 차가운 요람 속이다
그의 말로
   그는 세상에서 덧셈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수만 개의 돌을 쌓아 도시를 만들었다
   수만 개의 물방울을 모아 저수지를 만들었다
   수만 개의 불꽃은 타고 화성에도 다녀왔다

유괴범, 그에게는 덧셈의 가업을 이을 장자가 필요하다
유괴범, 그의 이름은 아버지다
유괴범, 그는 나를 좁은 철창에 가두었다

옛날을 생각하며 나는 눈물을 흘린다
동쪽 바다에 오른 발을 담그고
서쪽 바다에 왼발 담그고
당신 곁에서 바다 가득 물보라 일으키며
물장구치던 시절

쇠창살에 밤하늘 별들이 비친다
구름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는 어머니
부드러운 빛의 슬픈 손가락이
내 입술을 어루만진다


한 중년 여인이 며칠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얘기하며 울먹인다. 21년 만에 관 속에 누워계신 해골이 되신 아버지 얼굴을 봤단다.  

“술만 드시면 어머니와 우리들에게 마구 폭력을 휘둘렀어요. 그래서 우리 자매들이 다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좋은 아버지’는 없다는 것을.

흔히 자상하고 사랑을 듬뿍 준 아버지를 좋은 아버지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이상적인 아버지상’ 때문에 힘들다. 머릿속에만 있는 그런 허상의 아버지 때문에 ‘나쁜 아버지’를 둔 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를 가졌다고 하는 딸들을 잘 관찰해보자. 실상이 어떤지.

많은 경우에 딸들은 ‘귀여운 애완견’ ‘예쁜 인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한 인간의 본성을 깨우고 북돋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하여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들’이 이런 사랑을 주었는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듬뿍 준 아빠를 벗어나지 못한 ‘어른 아이들’, 언뜻 보면 이들은 행복하게 보인다.

그들은 미성숙한 아이들이라 항상 깔깔거리고 웃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속은 허하다. 그래서 그들은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항상 즐거운 것들을 찾아 불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집에 오면 쓰러진다. 허무감에 진저리친다.

이 세상의 ‘나쁜 아버지’를 둔 모든 딸들은 알아야 한다. ‘좋은 아버지’는 없다는 것을. 모든 아버지는 ‘모계 사회의 딸들을 부계사회로 납치한 유괴범’이라는 것을.  

임제 선사는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를 죽이고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의 맨얼굴을 볼 수 있을 때 모든 부녀관계는 공자가 말하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