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鄕原)

 

공자는 사람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 첫째가 군자(君子)다. 중용(中庸)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둘째가 광자(狂者)다. 뜻은 높으나 실천이 그에 미치지 못한 자를 이른다. 셋째가 견자(狷者)다. 광자에는 미치지 못하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이른다. 마지막이 향원(鄕原)이다. 그 마을에서 별다른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이른다.

 

공자는 향원을 증오했다.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일진대 그는 왜 향원을 미워했을까?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기 때문이다. 자기 철학 없이 강한 편에 서기 때문에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득을 좇아 허물을 감추는 것은 겉으로는 원만하게 보이지만 실은 사이비(似而非)다. 공자는 이들을 덕을 헤치는 자라 했다.

 

공자는 사회에 악을 끼치는 범죄자보다도 사회에 특별한 해악을 끼치지 않는 향원을 더 미워했을까? 드러나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공자가 아니더라도 미워하고 징계할 사람이 많다. 허물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사람은 어떤 사회에서라도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저절로 그 사회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허물이 드러나는 자가 아니라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 자다.

 

공자가 추구한 최고의 가치는 중용이다. 중용은 중간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변증법적 결론에 가까운 개념이다. 작년에 우리나라에 오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사회적 약자를 찾으시고 약자의 편에서 행동하신 것이 중용에 가까운 행보일 터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자를 편드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에 가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민주주의가 심하게 훼손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건이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회에서 가결한 ‘국회법 개정안’은 폐기되었고 이를 추진했던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사퇴 되었다. 유승민 의원은 사퇴의 변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폭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일어나도 우리사회는 매우 평화롭다. 왜 이렇게 평화로울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자, 그리고 통치자의 뜻에 따라 자신이 가결한 법안도 스스로 철회하고 동료 의원을 내치는 여당의원들을 누가 뽑았던가? 우리 스스로 그런 사람들을 우리의 대표자로 뽑았으니 할 말이 없다.

 

물론 모든 유권자들이 민주공화국에 반하는 사람들에게 투표한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대개 향원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사회에는 향원의 수효가 너무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도덕적이지만 정치적 선택을 할 때는 늘 중용의 가치 쪽보다는 강자의 편에 서는 향원 말이다. 우리사회에는 공자가 혐오한 향원의 수효가 너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