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적 인간(호이징가)


실업
여림

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떼와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떼가 역으로
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내내
순환선 열차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가고 싶은 곳들이 많았다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여느 날의 퇴근길처럼
포장마차에 들러 하루분의 끼니를 해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과일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름다웠다 아내와
아이들의 성적 문제로 조금 실랑이질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어서는 다음날 해야 할 일들로
가슴이 벅차 오히려 잠을 설쳐야 했다

이력서를 쓰기에도 이력이 난 나이
출근길마다 나는 호출기에 메시지를 담는다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일하지 않는 청년 백수들이 많다.

노래방을 운영하시는 지인은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노래방에서 알바를 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야! 대학을 졸업하고서 노래방에서 알바를 하냐?”

그 분은 공고를 나와 ㅅ대기업에서 일하다 10여 년 전에 명퇴를 하셨다.  

‘청년 실업’의 문제는 정말이지 너무나 커다란 사회문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은 성인이 되면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는 반대한다.

동물 중에서 일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나는 일하지 않는 인간을 ‘비정상’으로 보는 인간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인간은 원래 거의 일을 하지 않았어. 원시인들은 하루에 고작 4시간도 일하지 않았다고 해. 그런데 물질문명이 이렇게도 고도로 발전한 지금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해야 해?”

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인간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이 세상을 다시 원시사회로 돌려 놔! 그때는 일을 거의 안 해도 잘 먹고 살 수 있었거든. 그런 사회로 돌려놓기 싫으면 당신들은 이런 세상의 혜택을 다 누리며 사니까 우리처럼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충분히 내 놔!”

나도 젊을 때는 ‘인간은 당연히 일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일하는 동물’을 견딜 수 없었다.

30대 중반,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유희적 인간’으로 바꾸었다.

그러다 나는 치열하게 놀며 나만의 놀이를 발견했다.

글쓰기와 강의였다.

나는 글을 쓸 때와 강의를 할 때 신난다. 정말이지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놀아도 적지만 돈이 들어온다.

물론 나는 내가 ‘노는 동물’이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노는 동물’이 되는 게 불가능할까?

모든 인간이 ‘일하는 동물’이 되어 한평생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이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가?

그렇게 살며 온갖 정신 질환, 자살, 사고로 신음하는 이 인간 세상이 도대체 제대로 된 세상인가?

나는 청년 백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너희들을 일벌레로 길러놓고는 일자리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이 세상의 기성세대로서 참으로 미안하다. 하지만 절대로 기죽지 말거라. 인간은 원래 일하는 존재가 아니란다. 한평생 놀아야 한단다. 신나게 놀면서 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단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너희들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단다. 그런 세상을 우리 함께 만들어 가자. 우리 함께 손을 맞잡으면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