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의 오류

 

대한민국에는 참으로 독특한 문화가 있다. 전통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외래의 것이 이 땅에 들어오면 이상한 왜곡이 일어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가령 개인주의라는 개념은 전체주의의 반대 개념이다. 국가나 사회보다 사회구성원에 하나인 개인의 가치와 인권에 무게 중심을 두는 사상을 이름이다. 개인주의는 민주주의의 전제가 된다. 그 개인주의가 한국에서는 이기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 기독교의 중심 사상은 사랑이지만 우리나라의 어떤 기독교인들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외침 속에 사랑은 없다. 이런 왜곡 현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문학에서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독자에 의해서 작품이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의도의 오류라 한다. 신동엽은 두루 아는 바와 같이 민중 시인이다.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에는 껍데기와 알맹이가 또렷이 구분된다. 사월혁명, 동학농민전쟁, 아사달과 아사녀의 결혼으로 상징되는 남북통일 등의 가치가 알맹이라 한다면 사월혁명의 정신을, 동학농민전쟁의 정신을, 남북의 평화적 통일 정신을 부정하는 모든 세력들을 껍데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동엽의 삶도 민족주의, 민중 사상, 반외세, 민주주의를 위한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떤 글에서 껍데기와 알맹이가 바뀐 글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앞부분에 조종동, 종편(종일 편파방송)과 같은 논리를 늘어놓은 다음 분노하면서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의 시를 인용하면서 끝맺은 글이었다. 민주주의를 소망하고 부도덕한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껍데기라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의도의 오류를 넘어서 왜곡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신동엽 시인이 읽었다면 어떠하셨을까? 이것이 ‘헬조선’의 현주소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지금은 국회의원인 도종환 시인과 거리를 걷다가 어떤 간판을 같이 보았다. 여당 국회의원 이름이 크게 적힌, 그의 사무실임을 알리는 간판이었다. “아, 이분 사무실이 여기군.” 비록 당은 다르지만 같은 의원이니 눈에 들어왔으리라. 나는 도 의원에게 이분 애송시가 뭔지 아느냐 물었다. 내가 당신이 쓴 ‘담쟁이’라고 하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함께 웃을 수박에 없었다.

 

그 여당 국회의원은 어떤 행사장에서 자기의 애송시라면서 ‘담쟁이’를 낭송했다. 그는 지금까지 민주 세력을 억압하는 편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사실 담쟁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담쟁이의 생태적 특징과 결합된 시다. 어떤 시련도 포기하지 않고 연대해서 나아가면 민주주의는 오리라는 의지가 담긴.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씌어진 시다. 이 시에서 ‘벽’에 해당하는 분이 이 시를 애송시라 하니 놀라운 일이다. 아마 담쟁이처럼 포기하지 않으면, 기득권을 오래 유지하며 민주화 세력을 물리칠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의미로 해석했을 것이다. 이 또한 의도의 오류를 넘어서는 왜곡의 경지이리라.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 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담쟁이, 도종환

 

왜 우리 사회는 어떤 것이 들어오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왜곡된 의미로 변하는 것일까? 참으로 마술 같은 일이지만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상이다. 이러한 왜곡이 일어나는 원인은 뒤틀린 우리의 근대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깊은 병이 들면 그것이 병인 줄 모른다. 민주공화국이면서 비민주적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도 그것이 비민주적임을 모른다. 오죽하면 시위현장에서 들리는 가장 절절하게 외치는 구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일까.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나라에 하루 38명씩이나 자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도 그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면 병이 들어도 병이 든 것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땅에는 종편이 종일 편파방송을 해도 하루 종일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글 권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