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3호...
   2019년 1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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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80 향원(鄕原)/권서각 file
편집자
1037 2015-07-23
향원(鄕原) 공자는 사람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 첫째가 군자(君子)다. 중용(中庸)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둘째가 광자(狂者)다. 뜻은 높으나 실천이 그에 미치지 못한 자를 이른다. 셋째가 견자(狷者)다. 광자에는 미치지 못하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이른다. 마지막이 향원(鄕原)이다. 그 마을에서 별다른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이른다. 공자는 향원을 증오했다.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일진대 그는 왜 향원을 미워했을까?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기 때문이다. 자기 철학 없이 강한 편에 서기 때문에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득을 좇아 허물을 감추는 것은 겉으로는 원만하게 보이지만 실은 사이비(似而非)다. 공자는 이들을 덕을 헤치는 자라 했다. 공자는 사회에 악을 끼치는 범죄자보다도 사회에 특별한 해악을 끼치지 않는 향원을 더 미워했을까? 드러나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공자가 아니더라도 미워하고 징계할 사람이 많다. 허물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사람은 어떤 사회에서라도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저절로 그 사회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허물이 드러나는 자가 아니라 허물이 드러나지 않는 자다. 공자가 추구한 최고의 가치는 중용이다. 중용은 중간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변증법적 결론에 가까운 개념이다. 작년에 우리나라에 오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사회적 약자를 찾으시고 약자의 편에서 행동하신 것이 중용에 가까운 행보일 터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자를 편드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에 가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민주주의가 심하게 훼손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건이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회에서 가결한 ‘국회법 개정안’은 폐기되었고 이를 추진했던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사퇴 되었다. 유승민 의원은 사퇴의 변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폭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일어나도 우리사회는 매우 평화롭다. 왜 이렇게 평화로울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자, 그리고 통치자의 뜻에 따라 자신이 가결한 법안도 스스로 철회하고 동료 의원을 내치는 여당의원들을 누가 뽑았던가? 우리 스스로 그런 사람들을 우리의 대표자로 뽑았으니 할 말이 없다. 물론 모든 유권자들이 민주공화국에 반하는 사람들에게 투표한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대개 향원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사회에는 향원의 수효가 너무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도덕적이지만 정치적 선택을 할 때는 늘 중용의 가치 쪽보다는 강자의 편에 서는 향원 말이다. 우리사회에는 공자가 혐오한 향원의 수효가 너무 많은 것 같다.  
179 민주주의여 만세 /고석근 file
편집자
1025 2015-07-10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메르스 환자들이 자신의 행적을 숨기거나, "메르스를 퍼뜨리겠다"며 행패를 부리거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병원을 도망쳐 나갔다는 기사를 읽었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막장까지 가버렸을까? 공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시대 지도자들이 막장까지 가서 그렇다." 인간은 생명체니까 누구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위해 먹어야 하고 자신을 위해 잠을 자야하고 자신을 위해 종족 번식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생겨난 '본성'이다. 인간 사회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무너져 버린다. 사랑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심성이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우리 사회는 무섭다. 앞으로 메르소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침투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책은 '민주주의' 밖에 없다. 한 개인 개인은 이기적이지만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게 되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사랑이 샘물처럼 솟아 나온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힘이다. 그렇게 모든 사회구성원의 마음을 모아가면 사람들 가슴에 사랑이 가득하게 된다. 어떤 위기가 와도 헤쳐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의 내일이 두렵다. 하지만 긴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우리 민중들이다. 나는 막장까지 간 우리 보통 사람들을 믿는다. 우리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많은 지혜를 배울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살 수 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사랑의 샘물이 한 방울 한 방울 솟아날 것이다.  
178 통일대박/권서각 file
편집자
961 2015-06-25
통일대박 대통령께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씀하셨다고 감격하신 분이 여럿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통일대박이란 말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이제는 시사용어가 되어버렸다. 귀에 매우 거슬리는 말이다. 왜 그런 것일까? 대박이란 말은 청소년들이 장난스럽게 쓰는 말이며 국가 통치자의 말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통일이라는 어휘 속에는 우리 민족의 70년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통일대박이란 말 속에는 통일의 결과만 제시되었을 뿐 방법이나 내용이 없다. 그냥 느닷없는 통일대박만 있다. 방법이 없으면 실현불가능이기에 껍데기뿐이다. 불가능인 것을 가능인 것처럼 하는 말은 거짓이다. 통일대박이라고 말해 놓고 통일을 위한 정책은 아무것도 없다. 이명박 정권 때 내려진 5.24조치는 이직도 풀리지 않고 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북을 자극하는 성명을 내고 북은 온갖 험악한 말로 남을 공격하고 있다. 북이 가장 싫어하는 북을 비방하는 대북 풍선 날리기를 표현의 자유라며 용인하고 있다. 통일을 말하면서 실은 북과의 긴장관계를 고조시키고 있다. 남북교류의 조그만 희망인 개성공단마저 늘 위태롭기만 하다. 그러는 동안 나진 선봉 지역에는 중국 자본이 들어와 활발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하고 통일대박을 외치지만 지금까지의 권력은 통일을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이다. 만약 통일을 위해 70년 동안 노력했다면 지금쯤 통일에 조금은 가까이 와 있어야 옳을 것이다. 광복70주년인데 우리는 아직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북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북은 3대 세습이라는 왕조시대의 유물이 아직 남아 있는 나라다. 틈만 나면 남을 향해 온갖 욕설로 적대적 감정을 드러낸다. 남과 북은 공히 갈등을 고조시켜 국민을 통제함으로써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70년 동안에 10년은 통일에 대한 노력이 있긴 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이 그러했다. 이 시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개성공단이 세워지고, 끊어진 철로와 육로가 이어지고, 남북교류가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거의 통일 가까이 간 시기였다. 통일이 무엇인가. 남북의 왕래가 자유로운 것이 통일 아닌가. 이 시기를 지금의 권력자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잃어버린 10년에 그들은 무엇을 잃었던가? 그들의 권력이 그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권력이지 통일이 아니었다. 왜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인데 서로를 적대시하며 긴장관계를 지속하려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이 수수께끼는 우리의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들은 당파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국가의 존망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태의 연원을 노론 벽파에서 찾고 있다. 노론벽파는 사도세자를 죽인 일을 옳다고 했던 세력이다. 이들은 자기 당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가 정조에 대항해서 온갖 정치적 술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도 노론벽파라고 한다. 이 권력이 친일파로 이어지고 이승만은 친일 청산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친일 권력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4.19가 일어났지만 군사독재자가 나타나 4.19를 무력화시켰다. 노론벽파, 친일파, 이승만 독재,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권력의 공통점은 나라보다는 개인과 당파의 권력을 위하는 데 있다. 부도덕한 권력이 우리 근대사의 주류를 형상해 오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대사에 대한 인식 없이는 오늘의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 근대사는 노론벽파, 친일파와 이승만 독재, 그리고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부도덕의 흐름을 형성했고 이 부도덕의 흐름이 한국근대사의 주류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부도덕한 주류는 친일을 미화하고 이승만과 군사독재를 찬양하는 교학사 국사 교과서를 한사코 주장한다. 역사를 왜곡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이 부도덕한 주류의 흐름을 민족, 민중, 민주가 주류가 되는 흐름으로 바꿀 수 있을까? 우리의 다중은 오랜 부도덕의 주류에 길들여져 왔다. 우리 근대사의 모든 혁명은 부도덕한 세력에 의해 패배했다. 동학농민혁명도, 3.1운동도, 4.19. 혁명도, 5.18민주화 운동도 주류에 의해 좌절된 미완의 혁명이었다. 이런 패배의 역사 속에서 주류에 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우리 민족 구성원 사이에 역병처럼 확산되었다. 그래서 주류는 옳고 비주류는 그르다는 그릇된 관념이 형성되었다. 그러기에 선거 때마다 부도덕한 세력에게 자기도 모르게 표를 던지는 어리석음이 되풀이되고 있다. 일찍이 노무현이 말했듯이 우리 어버이들은 자식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제발 나서지 말라. 이제 우리 근대사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하고 우리 민족 구성원과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도덕의 흐름을 도덕의 흐름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야 한다. 부도덕한 권력에 항거했던 동학혁명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통일대박. 좋은 말이다. 통일이 되면 우리민족에게 대박인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통일할 건대? 통일대박이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은 사실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남북의 화해와 교류 없이 통일대박을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계층에서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분단체제가 지속되어야 부도덕한 기득권 세력은 자기들에 반하는 세력을 향해 종북과 좌빨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긴장되어야 권력에 반하는 민주세력을 국가보안법으로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들의 부도덕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177 타인 속에서 신은 나타난다(레비나스) /고석근 file
편집자
929 2015-06-19
타인 속에서 신은 나타난다(레비나스) 연기 브레히트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메르스’, 그는 사라진 후 앞으로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점점 더 싫어하게 될 것이다. 아마 우리는 급기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바이러스를 옮기는 다른 인간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점점 로봇을 닮아갈 것이다. ‘아, 참 좋네. 이제 어떤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끄떡없잖아.’ 로봇은 점점 진화하게 될 것이다. ‘인간을 닮아 참 불편한 게 많네. 괜히 생각을 해야 하고. 에너지를 항상 공급받아야 하고. 귀찮게 일도 해야 하고.’ 차츰 로봇은 돌멩이를 닮아갈 것이다. ‘아, 참 좋아. 이제 인간을 완전히 탈피했네.’ 돌멩이는 미소를 지으며 삭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폴폴폴 흩어져 갈 것이다. 영원히 고통 없는 세상으로.  
176 우문현답/권서각 file
편집자
886 2015-05-25
우문현답 안동 말 가운데 ‘보-ㅁ 모-니껴?’라는 것이 있다. ‘보면 모릅니까?’라는 뜻이다. 사람마다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필자가 아는 어떤 안동 노인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누가 무엇을 물으면 대개 ‘보-ㅁ 모-니껴?’라고 대답한다. 요즘 텔레비전에 여자 리포터가 등장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장에서 주민과 인터뷰하는 장면에 대개 리포터가 등장한다. 행동과 말씨가 과장되고 애교가 지나치다. 그래서 거북함을 느낄 때가 많다. 가끔 들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묻는다. “지금 뭐하세요?” 나는 이 리포터들에게 안동 노인의 말을 돌려주고 싶다. “보-ㅁ 모-니껴?” 그리고 나의 졸시를 들려주고 싶다. 보면 모릅니까? 의 안동 말은 보-ㅁ 모-니껴? 보와 모를 강하게 발음한다. 아는 이는 알고 모르는 이는 모른다, 의 안동 말은 아-니는 아-고 모-니는 모-ㄴ다. 아와 모를 강하게 발음한다. 따라해 볼래요? 보-ㅁ 모-니껴? 아-니는 아-고 모-니는 모-ㄴ다. 입으로 여러 말 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낫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몸에 밴 말투다. 농사철 땀 흘리며 일하는데 양복 입은 면장님이 찾아와서 올해 농사는 어떻습니까? 하면 보-ㅁ 모-니껴? 하고 선거철 높으신 분이 재래시장 찾아와서 요즘 장사 잘 됩니까? 해도 보-ㅁ 모-니껴? 한다. 지을수록 밑지는 농사짓는다고 업신여김 당하고 애면글면 해도 펴지지 않는 살림살이 우리네 기막힌 사정을 아-니는 아-고 모-니는 모-ㄴ다, 는 것이다. - 권서각의 시 ‘보-ㅁ 모-니껴?’ 무심히 켠 텔레비전에서 안동의 어느 맛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가락국수로 이름난 시장의 허름한 맛집이다. 값도 싸고 맛이 좋아 손님이 만원이었다. 리포터가 예의 그 호들갑스런 말투로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가락국수 맛이 이렇게 좋은 비법이 무엇입니까?”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비법 없니더. 머리가 돌이래서 그래요. 이것밖에 할 줄 모르니더.” 참으로 우문현답이다. 모름지기 장인이란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 모든 것을 걸고 기어코 뜻을 이루어 그 분야에 일인자가 된 사람을 이른다. 오로지 가락국수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한 아주머니의 정성과 노력이 그 현명한 대답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일에 왕도가 없듯이 명품을 만드는 데 비법은 없다. 서울에서 내려와 소백산에 사는 선배가 있다. 며칠 전 그를 찾아가 곡차를 나누었다. 올해가 소백산에 온지 36년이 되는 해란다. 일제 36년과 연수가 같다고 했다. 대개 자급자족하고 돈 쓸 일은 가을에 송이 몇 송이 캐서 해결한다. 산에 오래 살아서 산을 닮은 사람이다. 영화 ‘국제사장’에 흥남철수가 나온다. 그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빅토리아호를 타고 남하했다고 한다. 워낙 과묵한 분이라 만난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빅토리아호 이야기는 그날 첨 들었다. 그래서 술이 꽐라되도록 마시고 급기야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까지 불렀다. 그가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기에 보았다. 리포터와 함께 산 중턱에 나란히 앉았다. 리포토가 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그 특유의 더듬는 어법으로 대답했다. “머, 머, 아무 생각 없지. 머.” 사람이 대자연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우문현답이다. 글 권서각  
175 아빠를 부탁해/고석근 file
편집자
1049 2015-05-15
아빠를 부탁해 유괴 진은영 아주 어렸을 적, 혼자서 별들의 놀이터에 있을 때였다 그는 어디로부턴가 와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내가 두려움에 떨며 처음 울음을 터뜨린 곳은 어느 낯선 집 차가운 요람 속이다 그의 말로 그는 세상에서 덧셈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수만 개의 돌을 쌓아 도시를 만들었다 수만 개의 물방울을 모아 저수지를 만들었다 수만 개의 불꽃은 타고 화성에도 다녀왔다 유괴범, 그에게는 덧셈의 가업을 이을 장자가 필요하다 유괴범, 그의 이름은 아버지다 유괴범, 그는 나를 좁은 철창에 가두었다 옛날을 생각하며 나는 눈물을 흘린다 동쪽 바다에 오른 발을 담그고 서쪽 바다에 왼발 담그고 당신 곁에서 바다 가득 물보라 일으키며 물장구치던 시절 쇠창살에 밤하늘 별들이 비친다 구름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는 어머니 부드러운 빛의 슬픈 손가락이 내 입술을 어루만진다 한 중년 여인이 며칠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얘기하며 울먹인다. 21년 만에 관 속에 누워계신 해골이 되신 아버지 얼굴을 봤단다. “술만 드시면 어머니와 우리들에게 마구 폭력을 휘둘렀어요. 그래서 우리 자매들이 다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좋은 아버지’는 없다는 것을. 흔히 자상하고 사랑을 듬뿍 준 아버지를 좋은 아버지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이상적인 아버지상’ 때문에 힘들다. 머릿속에만 있는 그런 허상의 아버지 때문에 ‘나쁜 아버지’를 둔 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를 가졌다고 하는 딸들을 잘 관찰해보자. 실상이 어떤지. 많은 경우에 딸들은 ‘귀여운 애완견’ ‘예쁜 인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한 인간의 본성을 깨우고 북돋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하여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들’이 이런 사랑을 주었는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듬뿍 준 아빠를 벗어나지 못한 ‘어른 아이들’, 언뜻 보면 이들은 행복하게 보인다. 그들은 미성숙한 아이들이라 항상 깔깔거리고 웃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속은 허하다. 그래서 그들은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항상 즐거운 것들을 찾아 불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집에 오면 쓰러진다. 허무감에 진저리친다. 이 세상의 ‘나쁜 아버지’를 둔 모든 딸들은 알아야 한다. ‘좋은 아버지’는 없다는 것을. 모든 아버지는 ‘모계 사회의 딸들을 부계사회로 납치한 유괴범’이라는 것을. 임제 선사는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를 죽이고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의 맨얼굴을 볼 수 있을 때 모든 부녀관계는 공자가 말하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74 콘크리트 민심/권서각 file
편집자
904 2015-04-28
콘크리트 민심 가끔 오르는 집 근처 야산이 있다. 등산도 아니고 산책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걷기 코스다. 집 가까이 이런 산이 있어 주어서 고맙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사각형 아파트에 갇혀 살다가 가끔 천천히 오르며 내리며 볼 것도 보고 들을 것도 들으며 바람도 쐰다. 아파트에 살면 날씨와 계절을 잊기 쉽다. 밖에 비가 오는지 혹은 추운지 더운지 알지 못한다. 다행히 산에 오를 수 있어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을 보고 계절의 바뀜을 알 수 있다. 사람도 원래 자연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사람을 자연으로부터 갈라놓는다. 그러니까 산은 내게 있어서 자연과 반자연을 소통하게 하는 통로인 셈이다. 언제인가부터 이 야산에 손바닥만한 산밭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소일거리로 평평한 곳을 일구어 만든 밭뙈기들이다. 이렇게 생긴 밭은 대개 기대 이상으로 작물들이 탐스럽게 자란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가 그것이다. 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내가 보는 산밭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산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밭에 온다.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하게 가꾸어진 밭에서 고구마, 고추, 들깨, 땅콩, 배추, 무, 상추 등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좋은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자라는 작물들을 보면서 그 밭을 가꾸는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하기에도 힘겨워 보이는 노인이 유모차로 물을 실어 나르고 거름을 실어 나르고 흙에 몸을 가까이하고 작물을 가꾸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정성이 저 손바닥만한 밭에서 씨앗에 싹을 틔우게 하고 잎과 줄기가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한다. 그 과정이 성스러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서로 모른 척 하가가 쉽다. 산에 오르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림새가 다르듯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래도 밭에 가는 길이나 산책길이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거나 같은 지점에서 쉴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알게 되어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내는 노인이 있다. 허리 굽은 왜소한 노인이었다. 자신의 몸도 힘겹게 추스르는 노인이 어떻게 푸름이 가득한 밭을 가꾸어 내는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가 일구어 내는 밭을 통해서 그의 성실한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를 대하는 태도가 나도 모르게 공손해졌다. 4월16일 시민연대에서 주관하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에 다녀왔다. 거리에서 하는 밤 행사였다. 추모시를 낭송해 달라는 주최 측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전에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이 효순이 추모제에도 추모시를 낭송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갔을 때도 시민들이 차린 분향소에서 추모시를 낭송한 적이 있다. 시를 쓰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임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작년 오늘 수학여행 간다고 집 나서더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구나 우리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잊지 않고 있다 다시 개나리가 피고 우리들 가슴에도 노란 개나리 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지겹다고 한다 세월호 이야기 그만하자고 한다 세월호 이제 그만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세월호 진상조사특위’를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한사코 한사코 덮으려고 한다 잊으라고 한다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아이가 수학여행 떠나서 1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왜 돌아오지 않는지 영문도 모른다면 당신은 잊을 수 있는가? 왜 세월호가 가라앉았는지 왜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지 왜 가라앉는 배를 보고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영문도 모르는 채 왜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야 했는지 왜 그들은 잊으라고 하는지 왜 한사코 덮으려고 하는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304명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운전자 한 사람이 잘못한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잘못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수학여행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 이 땅의 누구도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울지 마라, 왜 너희들이 돌아오지 못하는지 밝혀지는 그날까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잊지 않겠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 울지 마라, 우리가 잊지 않겠다 -권서각 시 「울지 마라, 우리가 잊지 않겠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쌓여서 나타난 사건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산밭을 일구는 노인 같은 분들만 있으면 이런 비참한 사건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며칠 전이었다. 산을 오르다가 밭둑에 앉아서 쉬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다짜고짜 한숨을 섞어 말을 했다. “속상해 못살시더.” 그가 가꾼 밭에서 푸른 싹들이 봄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어제 갑자기 밭 임자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기가 이 땅을 사서 측량해 보니 노인이 가꾸는 밭뙈기도 자기가 산 땅에 포함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이제 자기의 땅이니까 당장 농사를 걷어치우라는 것이었다. 노인은 이렇게 자라고 있는 것들을 어찌할 수 없으니 가을에 거둘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애원을 했단다. 당장 그 땅에 무엇을 할 것도 아니면서 그는 막무가내로 당장 농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인은 분노에 차서 말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데 있니껴? 그놈은 노무혀이보다 더 나쁜 놈이래요.” 나는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한 그의 정치적 견해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글 권서각  
173 절망은 나의 힘(카프카)/고석근 file
편집자
1219 2015-04-13
절망은 나의 힘(카프카) 인식의 힘 -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니체) 최승호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한 승려가 물었다. “거지가 오면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그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다들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우리 모두 하루살이처럼 ‘오늘도 무사히...... .’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살아갈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이니 우리에게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 필요할까? 조주 선사 같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리에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우리는 가끔 차라리 벌레가 되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밥벌레, 밥이나 축내는 밥벌레가 되어 그냥 밥이나 먹으며 꿈틀꿈틀 사는 인생.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의 삶을 살아간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부족했지만 벌레로 변신하고서는 부족한 것이 없다.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 필요할까? 다리가 짧은 도마뱀은 도태되는 게 아니라 날개가 돋아 하늘로 날아오른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자네는 자네의 불행 중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야.” 우리 모두 하루살이로 변신하면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열리지 않을까?  
172 우리말의 풍경/권서각 file [1]
편집자
1312 2015-03-24
우리말의 풍경 티브이를 보다가 거슬리는 말이 들리면 매우 불편하다. 언어에는 그 사회가 반영된다. 역으로 언어가 사회의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언어가 바르지 못하면 사회도 바르지 못하다. 그래서 공자는 그 대상에 맞는 말을 써야 사회가 바르게 된다고 했다.(正名) 개를 개라하고 사람을 사람이라 해야 사회에 혼란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 티브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예능 프로그램이란 말이 있다. 인기 있는 연예인 몇이 농담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예능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사전에서는 예능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1.재주와 기능을 아울러 이르는 말. 2.연극, 영화, 음악, 미술 따위의 예술과 관련된 능력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오빠 언제부터인가 자기의 남자 친구를 오빠라고 한다. 결혼해서도 자기의 남편을 오빠라고 한다. 오빠는 여동생이 손위의 남자 형제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오빠를 오빠라 해야 하지만 남자친구를 오빠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오빠와는 혼인할 수 없는 게 우리사회의 규범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 어지러우면 인간관계도 바를 수가 없다. 홍길동이 들으면 그냥 있지 않을 일이다. 아비를 아비라 하고 형을 형이라 해야 한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존칭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시’가 남용되고 있다. 말끝마다 시가 붙는다. 이는 주로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병원에서 차례가 되면 아무개 님 들어가실게요, 계산대에서 만 원 되시겠습니다, 이런 말 자주 듣는다. 이는 업체를 운영하는 갑이 직원인 을에게 강요해서 생긴 언어의 풍경이다. 손님은 높여야 하겠지만 커피는 높일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는 갑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의 남용은 갑질이 낳은 풍경이라서 더욱 씁쓸하다. 개를 보고 ‘얘’라 한다. ‘얘’는 인칭대명사다. 가까이 있는 아이를 이르는 말이다. 요즘 애완견을 기른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개를 가족과 같이 생각해서인지 ‘얘’ 또는 ‘우리 아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것이 확산되면서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사가 음식재료를 가리키며 ‘얘라고 하기도 한다. 사람이 아닌 사물에 인칭대명사 ’얘‘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개를 시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부모는 돌보지 않으면서 개만 끔찍이 여겨 ’얘‘라고 하는 꼴은 감당하기 힘든 우리말의 풍경이다. 부모보다 개를 더 섬기는 사회는 분명히 가치가 전도된 사회다. 티브이에서 방송되는 언어는 어떤 언어보다 전파력이 강하다. 그럼에도 출연자의 언어사용에 개의치 않고 인기만 있으면 출연시키는 방송사의 태도는 옳지 않다. 시청율과 관계되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률 때문에 우리말의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공영방송은 우리말을 바르게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사명이 있다. 한흰샘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고 하셨다.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신 한흰샘 선생이 오늘의 방송언어를 들으시면 어떻다 여기실까. 글/ 권서각  
171 소유냐 존재냐 (프롬) /고석근 file
편집자
1200 2015-03-16
소유냐 존재냐 (프롬) 사랑 나해철 풀을 떠나며 풀을 죽이는 이 사랑 좀 봐 그대는 바람같이 머물다 가지만 숨 쉬는 법을 아주 잊는 이 풀을 좀 봐. 우리의 사랑은 왜 매번 실패할까? 눈망울은 언제나 휑하니 사랑을 갈구하는데. 그러다 우리는 사랑을 포기한다. ‘사랑을 못 믿겠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을 했는데...... .’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삶의 양식을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으로 나눴다. 그는 ‘이 둘의 삶의 양식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소유’를 택하는 한,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도 말한다. “하느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김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재물을 섬기는 한, 우리는 사랑을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바람처럼 사랑을 찾아 헤맨다. “사랑해. 사랑해.” 우리는 만나는 것들을 온 몸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다 숨이 막혀 죽고 만다. 우리가 ‘물질’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슬프다. 바람처럼 만나 서로를 얼싸안는다. ‘숨이 막혀. 숨이 막혀.’ 화들짝 놀라 서로에게서 떨어진다. 창백한 얼굴로 헤어진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우리는 울먹인다.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다 죽이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될까?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우리의 눈망울 뒤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어 언제나 눈물이 찰랑거린다’  
170 이런 생각/권서각 file
편집자
1019 2015-02-26
이런 생각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문득 항공기 좌석에 클래스를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기를 탈 때 탑승구는 하나다. 이코노미 클래스 표를 가진 나는 입구의 넓은 클래스의 자리를 지나 뒤쪽에 있는 비좁은 자리에 다리를 오그리고 몇 시간을 견디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같은 항공기 안에서 가진 자의 자리와 그렇지 못한 자의 자리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람의 계급이 나뉘는 공간이 항공기다. 봉건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양반과 노비의 계급이 나뉘었지만 현대사회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현대판 계급사회라 하겠다. 이런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의 변화 과정은 사회적 계급을 없애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귀족과 평민, 양반과 상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등의 계급을 없애고 무두가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의 진보라고 배웠다. 봉건사회에서 봉건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만 있었다면, 그리고 누구도 봉건체제의 계급질서에 항거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희생에 의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사라졌다. 명색이 지역의 유지라고 하는 이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땅콩회항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모두 항공사 사주 딸의 갑질에 대해 분개했다. 어차피 항공기 이야기가 화제니까 나는 항공기의 클래스를 없애는 게 어떻겠느냐고 생뚱맞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좌중에 몇 사람이 픽 하고 비웃었다. 그들에게 나의 말이 생경한 만큼이나 내게는 그 웃음이 낯설게 들렸다. 그리고 나에 대한 공격이 시작 되었다. 그들의 발화 취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많은 돈을 내고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능력에 따라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억울한 것 하나 없다. 적은 돈을 냈으니까 뒷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능력에 따라 사는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큰소리친다. 한센 병 환자 수용시설에 가보면 그들이 직원들을 개 부리듯 한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다. 우리나라는 복지가 과하다. 그들은 나를 종북 좌파로 보고 있음이 확실하다. 나는 화를 참으며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했다. 돈 많은 사람이 자기 집에서 금 수저로 밥을 먹든, 벤츠를 타고 다니든, 호화주택에 살든 그것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수단이나 대중이 같이 쓰는 공간에서 계급이 나뉘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공화국 시민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듯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모멸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기차에 1등석이 사라지고,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고,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민주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이런 목소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묻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해방은 되었지만 진정한 해방이 되지 않았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민주 공화국이 아니다. 식민 지배나 봉건 질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영남에서 섬처럼 외롭다. 글/ 권서각  
169 현재를 잡아라!/고석근 file
편집자
1211 2015-02-16
현재를 잡아라! 샘물 김달진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오랫동안 모셨던 아난다는 중생인 자신과 부처인 석가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석가의 일상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석가의 일상은 매순간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석가에게는 세수하고, 공양을 하고, 걸어가고, 설법을 하는 매순간이 똑같이 중요했다. 석가는 언제나 ‘현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우리는 함께 휩쓸려 흘러간다. 우리에게는 ‘현재’가 없다. 말과 생각으로는 ‘현재’라고 하지만, 그 순간은 휙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은 생생하지 않다. 그래서 한평생이 뜬 구름 같다. 그런데 ‘시간’은 없다. 시간은 우리의 감각 작용에 불과하다(아인슈타인). 오로지 있는 건 ‘현재’ 뿐이다. 우리는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석가).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것들은 우리의 생각, 관념에 불과하다. 우리는 ‘정신의 수직적 시간(메를로 퐁티)’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수평으로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수직으로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가는 시간, ‘찰나’ 속에 머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찰나’ 속에 살 수 없다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평생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겐 자신이 사라지는 ‘죽음’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영생불사를 꿈꾼다. 요즘 엄청나게 비싼 ‘줄기세포주사’를 맞는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 주사가 건강과 젊음을 되찾아 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의 노예가 되어 ‘쏜살 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함께 휩쓸려가는 한 아무리 건강하게 오래 살아도 우리의 삶은 끝내 ‘일장춘몽’이 되고 말 것이다.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보며 조그마한 샘물이 바다같이 넓어지고 나는 동그란 지구의 섬 위에 앉는 기적’ 이런 ‘기적의 삶’은 우리가 ‘현재를 잡는 삶’을 살 때 가능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영생불사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68 술과 담배/권서각 file
편집자
1630 2015-01-21
술과 담배 문학청년시절 글쟁이가 되려면 술과 담배를 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술과 담배를 시작했다. 좋아서 한 것이 아니라 글쟁이가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학습했다 함이 옳을 것이다. 담배는 가장 값이 싼 것부터 한 갑씩 정복해 나갔다. 필터가 없는 금잔디에서 출발해서 가장 비싼 신탄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흡연자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사정으로 인하여 필터가 없는 ‘백조’를 피우며 청춘 시절을 보냈다. 왜 백조를 피우느냐고 물으면 담배는 이름으로 피우는 거라 구라를 치기도 했다. 술은 체질에 맞지 않아 마시면 토하기를 30대 중반까지 반복하다가 30대 중반을 넘어서야 술맛을 알게 되었다. 술맛을 알게 되자 주량이 줄어들어 지금은 막걸리를 조금씩 마시며 술꾼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담배는 아직도 누구 못지않은 골초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흡연자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모욕을 감내하면서도 꿋꿋이 지조를 굽히지 아니했다. 그러나 박그네 정권이 담배 값을 2배 가까이 올리는 바람에 지금은 떨고 있다. 아니 분노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에서 거두는 세수가 1조 원 가량인데 담배세에서 거두는 세수가 7조원이란다. 가난한 시인의 담배 개비 수가 반으로 줄었다. 박그네는 시인을 떨게 한다. 각설하고 술에 대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낮술 김상배 이러면 안되는데 일곱 음절밖에 안 되는 짧은 시다. 그러나 독자로 하여금 시의 길이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모름지기 시는 글의 길이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사람이 사는 곳에 술이 있었다. 술을 먹지 않아도 사람은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는 곳에 술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밥이 사람의 몸을 살아있게 한다면 술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한다. 선배 시인 한 분이 어느 날 술을 함께 마시며 이런 말을 하신 걸 기억한다. “참 이상해. 술은 기분 나쁠 때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 좋을 때 마시면 더 좋아진단 말이야.” 술을 아는 말씀이다. 술은 예로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 사람들 곁에 있었다. 잔치에는 흥을 돋우어주고 제사에는 슬픔을 달래주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한 잔의 술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곡물과 과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나라에서 술 빚는 일을 금하기도 했다. 곡물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소주다. 과일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코냑이다. 보리를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위스키다. 예로부터 귀한 술은 많은 양의 과일과 곡물이 필요한 증류주였다. 그래서 술이 밥보다 귀했다. 술이 귀한 음식이라는 이유는 신에게 제사지낼 때 올리는 음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규보는 ‘국선생전’에서 ‘하루라도 이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마음에 비루함이 싹튼다.’고 했다. 또 ‘성정이 맑아서 더 맑히려 해도 맑게 할 수 없고 더 흐리게 하려해도 흐리게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동의보감’에 술을 찾아보면 ‘많이 마시면 취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술은 귀한 음식이지만 과하게 마시면 인간의 무의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곤 한다. 평소에 더없이 도덕적인 사람도 술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무의식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낮술을 찾는 이는 지나치게 무료하거나 지나치게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낮술에 취하면 그 부친도 알아보지 못한다 했으니 마땅히 경계하고 삼가야 하리라. 글 권서각  
167 일상에서 공부하라! (왕양명)/고석근 file
편집자
1062 2014-12-16
일상에서 공부하라! (왕양명) 문구멍 신현득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문학을 공부할 때 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팔당댐 근처 풍광 좋은 곳으로 갔는데, 그 날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문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때였다. 젊은 강사가 내게 '글을 보는 눈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불같이 화가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너는 얼마나 잘 아나?' 그 다음 날 새벽에 혼자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 버렸다. 그 뒤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며 그 강사가 한 말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온 몸이 오글거린다.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나도 이제 강사가 되어 강의를 다니다 보면 '그때의 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강사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그 강사처럼 수강생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줄 때가 있다. 그때의 나처럼 파르르 반응을 보이며 기분 나빠 하는 분들도 있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다.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할 때 사람들에게 쇠파리처럼 달라붙어 그가 스스로 무지하다고 깨달을 때까지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졸지에 '무식한 인간'이 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 부류로 나눠졌다고 한다. '무지의 깨달음'에 환희에 젖는 사람들과 '너는 얼마나 아나?'하고 분노하는 사람들로. 왜 이렇게 나눠질까? 머리로만 공부한 사람은 불같이 화가 날 것이다. 자기도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할 테니까. 소크라테스가 별로 많이 아는 것 같지 않게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일상에서 '진리' '정의' '자유' '사랑' 등을 성찰하며 공부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아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흡사 불철주야 '화두(話頭)'를 잡고 공부하던 승려가 어느 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깨달을 때의 그 느낌을 몸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노자는 말했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言者不知 知者不言)" 언어를 끝까지 밀고 갔던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소크라테스가 언어로만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의 언어의 한계를 깨줄 때 몸으로 공부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의 눈앞에 새로운 진리의 세계가 섬광처럼 스쳐갈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열림의 세계로 들어설 것이다. 가끔 내가 제자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줄 때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을 볼 때 경이감에 젖는다. 사람은 이렇게 크는구나! 아이가 문구멍을 찢고 세상을 내다보듯. 그렇게 키가 크듯.   
166 논리적 분노/권서각 file
편집자
1459 2014-11-25
논리적 분노 문학인은 근본적으로 시대와 불화한다. 왜 그럴까? 세계(universe)는 원초적으로 선과 악이 공존한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하늘은 착하지만은 않다. 만약 하늘이 착하다면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늘은 착한 사람을 끝없이 불행하게 하기도 하고, 악한 이에게 복을 누리게도 한다. 이런 모순적 세계에 대항하는 이가 작가다. 우리 고전 흥부전, 춘향전, 심청전을 다시 보자. 우리가 사는 현실은 흥부와 같이 착하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춘향처럼 권력에 대응해서 정절을 지키면 승리할 수 있는가? 심청처럼 부모에 효도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작가정신이 우리의 고전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우리 고전도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노자의 말처럼 세계는 착한 사람들의 편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은 다 그런 거야”라고 세계의 밝은 면만을 노래해야 하는가? 공자가 ‘자가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物施於人)고 한 것은 세계의 어두운 면을 소멸시켜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퇴계 선생 평생소원이 ‘허물이나 없고자’라고 노래한 것은 자기 내면의 불의한 것들을 소멸해서 완전한 선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즉 정의로운 자기, 정의로운 세계가 성자들의 소망이었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정의의 편에 선 자다. 정의의 편에 선자는 불의와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작가는 시대와 불화한다. 작가가 시대에 순응하고 시대의 어두운 면을 외면한다면 작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작가가 권력의 편에 선다면 악이 선을 억압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세계는 그런 작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작가정신을 나는 논리적 분노라 한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성장, 반공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국가경제가 낮은 수준일 때도 무상교육 등의 복지 정책을 실현했다. 우리는 지금 경제 대국에 속한다. 그럼에도 더 성장해야 한다고, 경제성장을 내걸고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다. 끝없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동자들의 복지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 복지를 말하면 종북으로 몰아세운다. 논리적 근거가 없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다. 기득권층도 가짜 종북을 만들어 분노하고 증오한다. 그들은 근거 없이 분노하고 증오하지만 작가정신은 논리적 분노를 하는 것이다. 글 권서각  
165 인간이란 자기의 운명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자를 말한다 (마르크스)/고석근 file
편집자
1273 2014-11-17
인간이란 자기의 운명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자를 말한다 (마르크스) 복종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 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짐승들은 처음 만나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본다. 눈을 먼저 내리 깔면 진다. 하지만 아무도 눈을 내려 깔지 않으면 서로 간에 힘을 겨룬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상대방이 먹이일 때는 다르다). 서로의 힘만 겨루면 싸움이 끝난다. 짐승들은 이런 '육체적 힘'으로 질서를 잡아간다. 인간 세계는 어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사회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인정한 어떤 '힘'에 의해 서로 간의 서열이 정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힘'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승복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강압적으로 서열이 정해진다면 이렇게 이루어진 질서는 언제라도 전복될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인 '자유'는 '복종'이 뒷받침될 때만이 고유한 빛을 발한다. 인간 간의 복종이 없는 자유는 허망하다. 인간은 홀로 행복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해방된 개인의 자유로운 결사체(마르크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엔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서야 한다. 이 힘은 '권력 없는 사회(아나키즘)'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노자는 는 말했다. '太上, 下知有之. 태상, 하지유지.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안다.' 그는 백성들이 전혀 지배와 권력을 느끼지 않는 지도자가 최고의 지도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남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하는지가 보일 것이다. 자연스레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이끌고 복종할 것이다. 원시 시절엔 누구나 이러한 '온전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너무나 아득하다.   
164 존경과 존중/고석근 file
편집자
1404 2014-01-07
존경과 존중 不尙賢 불상현 使民不爭 사민부쟁 훌륭하다는 사람 떠받들지 말라 사람들 사이에 다투는 일 없어질 것이다 - 노자,「도덕경」중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존경’을 배워왔다. “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니?” 그래서 평소에 ‘누구를 존경할까?’하고 고민해 왔다. ‘위인? 과학자? 선생님? 부모님?...... .’ 그러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전쟁에 나간 계백 장군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생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보며, 계백 장군의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는 장군을 힐난하는 말을 들으며 ‘아차! 내가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다니!’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어떤 원시 부족은 사냥을 아주 잘하는 사람을 가끔 왕따 시킨다고 한다. 그가 잘하면 다른 사람들에겐 사냥의 기회가 잘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한사람으로 인해 전체 부족원들이 신나지 않으니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잘나가는 주인공 옆에는 항상 질투하는 2인자가 있다. 그가 주인공의 잘남을 돋보이게 한다. 그는 주인공의 위대함을 위하여 희생양이 된다. 그 2인자도 못되는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되어 잠자코 있어야 하고. 이 세상은 이렇게 잘난 사람을 추켜세운다. 왜? ‘잘난 한 사람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라니까?’ 정말일까?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만든 이 세상은 살만한가? 다들 안녕하신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존중’이다. 있는 그대로 사람을 봐주는 것. 그래서 모두 인정받고 즐겁게 사는 것.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잘난 사람을 추켜세움으로써 이 존중은 사라진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존경받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존경받는 사람의 흉내를 내며 그의 짝퉁이라도 되고자 한다. 하지만 존경받는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할까? 높은 나무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그를 언제까지 그대로 둘까? 조만간 그는 바닥으로 고꾸라져야 한다.  
163 홍명희와 김원봉/박희용 file
편집자
1376 2013-12-26
홍명희와 김원봉 산백 박 희 용 김정일 시대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북한의 대남정책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번 장성택이 처형 사건에서 보듯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북한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특히 처형 결정문에서 언급한 나진항 50년 임대와 석탄 등 지하자원 헐값 매각 문제는 지금까지 북한을 그런대로 통제한다고 할 수 있던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직결되는 문제여서 향후 한반도 열전화의 임계점을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선군노선을 주장하는 군부 강경파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계열의 친중파 간에 노선 갈등에서 군부 강경파가 확실하게 승리함으로써 김정일 시대의 균형 외교 노선이 선군노선 쪽으로 휘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서른 살 혈기방장한 영도자 김정은의 충동성과 즉흥성이 발동하여 대남 정책이 비합리적, 소위 혁명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리무중, 시계가 극히 불량한 협곡 속에서 언제 어디에서 돌발 사태가 터질지 조마조마한 상황이 적어도 수년 간 계속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위급 상황이 계속 될수록 그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과 인고도 막심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일상이 고달플 수밖에 없다. 오늘의 상황을 역사적 결과로 본다면, 남북의 상황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원인이 무엇이며 원초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분명히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 성찰의 하나로, 해방 공간에서 북쪽을 선택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홍명희와 김원봉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 선택의 후과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벽초 홍명희의 삶은 1949년을 분수령으로 해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일제시대인 청년기부터 화요회 등 좌익 활동과 임꺽정으로 대표되는 민중문학관을 견지함으로써 좌익문학가로서의 위치를 뚜렷이 했으며, 『임꺽정』을 발표하여 현대문학사에서 민중소설문학의 실체를 처음으로 연 소설가, 문필가로서의 삶을 뚜렷이 역사에 각인했다. 1949년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북한 체제를 선택해 북한에 잔류한 이후 육이오 전쟁 시기부터 1968년 사망할 때까지인 후기엔 북한 부수상 등 고위직을 역임함으로써 좌익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뚜렷이 했다. 북한에서 그가 이룩한 문학적, 정치적 성과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남한에서는 수십 년 동안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 민족문학인으로서의 전기의 삶은 칭송을 받지만, 북한 고위 정치가로서의 후기의 삶은 우리 민족분단사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수우익으로부터 배척 내지 거부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가 몇 년 번부터 그의 문학에 대한 조명이 문단 일각에서 조심스레 제기되다가 그의 고향인 충북 괴산에서 홍명희 문학제가 십 년 여 계속해서 열리면서 차츰 대중성을 갖게 되었다. 벽초 홍명희를 ‘조선의 길’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홍명희가 과연 ‘조선의 길’일까 하는 점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적어도 ‘조선의 길’이란 말에서 먼저 확실하게 정의 되어야 할 말은 ‘조선’이다. 여기서 쓴 ‘조선’이란 말이 북한체제 국가 이름을 의미한다면, ‘조선의 길’에 대하여 남한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필자로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선’이란 말이 1910년 경술년까지 이 땅 화려강산에 존재했던 나라 이름이라면, 또 화려강산에 살고 있는 인민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조선의 길’은 벽초 홍명희에게 붙이는 헌사로선 마땅하지 않다. 백범 선생과 함께 활동할 때까지의 홍명희는 좌익 민족주의자였지만 백범과 결별하고 북한에 남으면서 욱이오 전쟁 개전을 결정할 권력층인 부수상 직위를 장기간 유지함으로써 이미 그는 좌익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빙자한 수령전제 왕조의 하수인이 되고 만 것이다. 홍명희 그는 동족상쟁을 일으킨 원초적 책임의 일부분을 운명적으로 짊어지고 있으므로, 또 이후에는 18년 동안 북한체제를 떠받드는 기둥 역할을 함으로써 남과 북의 모든 인민들을 함께 지칭할 때 사용하는 ‘조선’이란 말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해방공간 이후 60년이 지났어도 아직 이데올로기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박영희가 십여 년 전에 재조명 되었고 요즈음은 홍명희뿐만 아니라 임화가 재조명 되고 있다. 좌익 문학가들의 공과를 논할 때 그들의 문학적 성과를 주요 잣대로 하느냐 아니면 정치적 활동을 잣대로 하느냐 하는 근본적 시각의 차이 때문에 문학적, 사회적, 정치적 평가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 쪽이든 보수 쪽이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들의 문학적 작업과 정치적 활동이 화려강산 인민들, ‘조선 사람들’에게 이익과 평화를 주었는가 아니면 손해와 살육을 주었는가 하는 관점이다. 진보적 관점을 가진 인사들에 의해 좌익문학가들이 과대평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고 보수적 관점을 가진 인사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 문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국 근대사의 빛과 어둠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빛과 어둠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한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한국 현대사가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도 갈등과 투쟁이 치열하였고 끝내 매듭을 풀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갈등과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발생한 빛과 어둠에 대한 명료한 정리가 언젠가 이루어진다면, 어슴푸레한 상태가 걷히고 사물이 분명히 모습을 드러낸다면,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의 실체가 드러난다면 수십 년 동안 대결해온 좌익과 우익의 공과가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다. 결국 좌익과 우익이란 역사적 실체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의미한다. 그러한 관점의 차이가 이론의 차원을 벗어나 현실 생활에 이입 실천됨으로써 우리 현대사가 비극이 되고 말았다. 많은 좌익문학가들이 현장성과 실제성을 강조하며 이론투쟁보다는 실천투쟁 쪽으로 몰려갔다. 그러다보니 문학작품은 이데올로기 선전에 쓰이는 언어도구가 되어 문학성과 예술성은 증발하고 말았다. 문학성과 예술성이 증발된 문학은 이미 문학이 아니고 그것을 남발한 투사들은 어디까지나 정치가이지 문학인이 아니다. 홍명희, 박영희, 임화 등 좌익문학가들이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젊은 시절에 잠시 반짝 빛내고는 문학작품을 이데올로기 선전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좌익정치가가 된 것은 민족문학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참으로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꺽정』 한 편의 소설을 남김으로써 홍명희는 민족소설사에 큰 이름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후의 그의 삶의 행적은 화려강산 남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도 분명하다. 김구 선생은 죽음으로써 역사에 큰 이름을 나겼다. 홍명희 그가 북한을 선택했으면 고위직을 하지 말고 초야에 묻혀 민족소설을 계속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한을 선택하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남한에 돌아와 학계나 문학계에서 활동하였다면 우리민족사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임꺽정』 소설에 맥맥이 흐르는 혁명의 불길은 홍명희 바로 그의 것이었고 그는 그 불길을 북한에서 현실화했다. 충청도 양반 출신이면서도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고 시대를 혁명하려는 그의 불길은 북한에서 활활 타올랐으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왕조 세습독재의 밑거름이요 기둥이 되고만 것은 홍명희나 북한 권력자들의 관점에선 충성일지 모르지만 화려강산 전체적으로 보면, 아니 인구가 훨씬 많은 남한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엄연한 역사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또한 2013년 겨울 현재를 보면, 북한에서 김정은이가 고모부인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정변이 발생하여 한반도 전체가 극심한 위험 상황에 빠져버렸다. 결과론적으로 말해, 홍명희, 박헌영, 김원봉, 임화, 이원조, 백남운 등 월북 유명인사들이 이룩하고자 했던 이상국가가,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만 일으켜 수백만이 살상당하도록 하고, 이후 북한에서 숙청된 수천수만의 피를 먹으며 자란 김일성 왕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그들의 무지가, 헛짓이, 착각이, 오류가 얼마나 한반도 역사에 막심한 과오를 끼쳤는지 후세의 사가들이 곧은 붓으로 상세하게 기록할 것이고 학생들은 그들의 이름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달아 만고의 역도 명단으로 암기할 것이다. 지식인이란 다양한 지식, 우수한 기억력과 판단력을 가진 고급의 지적 존재이다. 그래서 한 시대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지식인의 반열에 드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갖고 있는 보편성이란 사물과 현상에 대한 표피적인 관찰과 인식을 의미한다. 물론 역사를 추동하고 이어가는 동력은 보편성이지만 역사가 어디로 굴러가야 올바르게 굴러간다고 할 수 있는가하는 점은 지식인들의 몫이다. 지식인이란 대중이 갖는 역사적 보편성이 제대로 형성되도록 하는 예지성을 갖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예지성이 이론의 영역에 머물면 사상가이지만 이론을 넘어서 현실세계 혁명 추구에까지 이르면 혁명실천가가 된다. 그 예지성이 작품 속에 녹아들면 문학가이지만 무기로서의 문학을 제련하는데 쓰인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닌 사회운동가, 혁명 운동가인 것이다. 그러한 예지성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든 문학가들이 갖고 있는 우수한 자질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좌익과 우익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가하면 바로 아집에 근거한 지적 오만 때문이다.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하는 지식인은 자기 논리에, 자기 사상의 성에 견고한 방어벽을 설치하고 난 다음 가능한 한 다른 지식인들의 성을 점령하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와 가족의 의식주 생활이 안전하고 풍요로움을 삶의 최종 목표로 하지만 지식인들은 생물적인 일상의 삶보다는 정신적으로 특수한 삶을 희구하기 때문에 자기 사상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다. 지식인들은 물질 소유와 몸의 안락을 사상하면서까지 자기 정신세계의 완성을 추구한다. 그러니 일단 의식에 굳게 형성된 사상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자기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식인은 절대로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설혹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새로운 논리를 자가 보충하면서 자기 사상을 키워나간다. 개인적 지적 오만이 세력을 얻어 집단적, 사회적 오만이 되면 운동성을 갖게 된다. 운동성을 가진 집단, 사회적 오만은 이윽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으로 발전한다. 혁명으로 발전한 사회적 오만은 자기 수정력, 통제력을 상실하여 갖가지 파열음을 내면서도 소기의 목표를 향하여 멧돼지처럼 돌진한다. 초기엔 순수한 문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였던 개인적 오만도 혁명이란 굉음 속에 휩싸이면서 개성을 상실하고 집단성에 물들게 된다. 그 때부턴 문학성이 아니라 운동성, 혁명성이 주류가 되면서 문학은 완전히 탈락하게 된다. 가장 부드러운 지성과 감성이 문학의 본질일진데 가장 견고한 신념과 사상만이 횡행한다면 이미 문학은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자기 사상을 현실에 지나치게 투사하고자 집착한 지식인들에게서 공통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문학가들에게 있어서 좌익이나 우익이란 말은 성립되어선 안 된다. 말하기 쉬워서 중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문학가라면 좌익과 우익이란 사회, 정치적 스펙트럼을 한 눈 안에 볼 수 있어야 한다. 좌 우 어느 한 쪽에서 보면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먼 것은 작게, 소홀히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일제시대와 이후 해방공간에서 좌와 우 어느 한쪽에 경도되어 문학 작품을 쓰고 사회, 정치적 활동을 전개한 사람들은 역사에 역행한 원죄를 걸머지고 있다. 문학이 아무리 사회적 현실을 반영함이 그 본연이라지만 문학이 어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유효하게 쓰이는 선전 도구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시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불관언한 자세로 음풍농월 하고 있는 것은 비겁임이 분명하지만, 반드시 모든 문학이 시대적 고통 해소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교조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일제시대에 유명세를 탐하여 친일문학을 한 작가들은 비겁의 차원이 아니라 민족반역의 차원이기 때문에 문학성이니 사회성이니 시대성이니 하면서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다. 밀양 출신인 김원봉과 윤세주로 대표되는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항일무력투쟁사는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 장한 일이다. 김원봉은 의열단 단장으로 한 시대 의열투쟁을 이끌었고 윤세주는 상해임정 쪽으로 기운 김원봉과 헤어져 의열단 활동을 마감한 후 조선의용대원으로 항일 전선의 최선봉에 섰다. 모택동, 주은래, 주덕 등이 이끈 팔로군이 정강산에서 토벌군인 장개석 군에게 포위당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윤세주가 자기 목숨을 던져 그들의 활로를 타개해주었다. 그 공을 잊지 않은 팔로군은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다음 정강산 전투 현장에 윤세주의 공로비를 세웠다고 한다. 김일성 왕조가 70년이 되어간다. 해방 전까지의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공이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김원봉과 윤세주의 의열단, 조선의용대 활동에 비하면 그 비중이 약하다. 항일 현장성만 놓고 비교하더라도, 김원봉과 윤세주는 광복 때까지 항일 현장인 대륙에 있었지만 김일성은 1940년부터 5년 간 안전지대인 연해주에 있었다. 만주에서의 동북항일연군의 활약상이 대단했지만 1940년 이후엔 거의 소멸되었다. 또, 항일 전투역량과 전과 면만 놓고 비교하더라도, 윤세주, 무정 등의 지도자가 이끈 조선의용대는 수만 병력으로서 1945년 8월까지 여러 차례 일본군과 정규전을 펼쳐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지만, 김일성이 이끈 빨치산은 1940년까지 소규모 유격전을 펼쳐 조선의용대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전과를 거두었다. 전공만을 놓고 따진다면 조선의용대 계열이 북한 지역의 대표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해주에서 소련군의 신임을 받은 김일성 계열이 북한의 지배 세력이 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관점으로 볼 때 가장 안타까운 점은 해방공간에서 김원봉이 극우 세력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타의에 의해 삼팔선을 넘어 북행을 한 사실이다. 해방 후 곧바로 북으로 안 가고 남쪽으로 귀국한 김원봉이 서울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고 고향 밀양에서는 인산인해를 이룬 환영객들의 영접을 받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김원봉은 고향인 남쪽에서 정치인이 되려고 계획했지 북한체제를 추종하는 극좌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테러리즘이지만 식민지 백성들로 보면 속 시원한 쾌거인 의열단의 눈부신 활동을 이끌었고, 30년대 중반 이후엔 우익 위주의 상해임시정부와 좌익 무력인 조선의용대의 연결고리였던 김원봉이 결국 월북함으로써, 그것도 북에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권력 상층부에 오른 것이 아니라 그의 위명을 견제하는 소련 사대주의 세력들에 의해 숙청됨으로써, 그의 고향인 남한에서는 반국가, 반체제범이 되어 그가 이룬 빛나는 항일투쟁 업적이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고, 북한에서는 민족사보다 권력을 선택한 자들에 의해 소외되고 잊혀진 것은 김원봉 그의 개인적인 운명이기도 하지만, 멀리는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누적된 구조적 사회모순과 인간정신의 황폐화가 깊이 곪다가 드디어 20세기 벽두에 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하여 반세기 동안 고름과 피가 흘러내린 우리 민족의 운명이기도 하다 독립국이든 식민지든 한 나라, 한 민족이 가는 길이 문과 무의 조화라면, 문은 상해임정 등의 우익 독립운동 단체가 주류였고 무는 좌익 조선의용대가 주류였다. 그 무력이 독립된 조국, 통일된 조국에 고스란히 들어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북한의 무력이 된 것은 민족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정 장군이 이끈 수만의 조선의용대가 압록강 도강을 소련군으로부터 저지당하여 무정 장군 이하 간부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것은, 남쪽에서 김구 선생 등 상해임정 요인들이 미군의 저지를 당하여 결국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것과 똑같다. 이것은 민족의 해방이 자력이 아니라 타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대표적 좌절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시초가 어긋났기에 해방 이후 남북의 현대사가 비틀어지게 되어 지금 현재까지 제살 제가 깎아먹는 소모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남쪽에선 친일파 기득권 세력이 잔명을 보존하더니 불과 수 년 만에 기세등등하여 항일 독립 운동가를 좌익으로 몰아 탄압하고 위해를 가한 것도 비극이지만, 북쪽에선 항일전선의 전사였던 조선의용대원들이 북한 인민군의 중추가 되어 1950년 6월 남침전쟁의 주력이 된 것은 더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용대의 지휘 장군, 간부 군관들과 전사들, 대륙의 화북과 북만주 전선에서 눈보라를 헤치며 일본군과 전투를 할 땐 분명 꿈에서라도 장래에 남쪽의 동족을 사살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꿈에서라도 내가 흘린 땀과 눈물, 피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란 위장막 아래 장치된 세습왕조 건설을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해마다 봄이면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듯이 어느 누구의 정신이나 고유성과 자아의식을 가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항일전선에 헌신한 열사들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이 땅의 무인이라면 다시는 동족상쟁의 전선에 타의에 의해 내몰리진 않으리라 맹세해야 한다. 그 선열들이 무엇을 위해 항일전선에서 목숨을 바쳤는지 안다면, 진실로 삼천리 화려강산을 민족을 위한 길이 어느 것인지 나름대로 분별해야만 한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양식 있는 민족적 좌익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가 소련을 호가호위하는 사대주의자들의 정략을 극복하고 북한의 무력이 되었다면 최소한 육이오는 없었을 것이다. 한 시절 민족 유일 무력인 조선의용대를 호령하던 무정 장군이 그만 날개 꺾인 독수리가 되어 겨우 인민군 사단장에 자족하곤 남침전쟁의 도구로 쓰이고 말았다니, 그의 용맹은 선천적이나 그의 역사의식은 선천적이지 못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추해볼 때, 대의를 위해 한 몸을 던질 결기로 가득 찬 열혈남아들의 용맹이 민족과 민중을 위한 바른 길에 쓰여 지도록 하는 역사의식의 함양과 길 터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사에선 몸을 쓰는 용맹한 실천가들의 영역이 있고 정신을 쓰는 침착한 이론가들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해방공간에서 조선의용대 이론가들의 영역이 김일성을 조종한 러시안 이론가들의 영역보다 더 넓지 못하였기에 실패한 것이라고 정리 할 수 있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그 치열했던 민족 운명의 폭발과 분출도 이젠 반세기가 지나니 잦아들고 상처 위에는 커다란 딱지가 덮였다. 남과 북의 생각 있는 인사라면 어는 누구도 그 상처 딱지를 다시 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상처 딱지가 자연스레 떨어지고 뽀오얀 새살이 돋아난 걸 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가 되어야만, 지금은 고향 박물관에서 해방공간 치열했던 이데올로기 차원과 국가권력 관계를 떠나 역사적 관점에서만 대접받고 있는 김원봉과 윤세주 등 밀양 출신의 열혈남아들이 이룬 항일공로가 비로소 청천백일 아래 후세들에게 환하게 읽혀질 것이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장성택이 숙청을 보며, 이참에 북한 정권의 본질을 분명하게 인식한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이 가진 역사적 정당성 때문에 북한을 지지하고 좌익노선을 지지한 사람들도(소위 우익에서 공격용어로 사용하는 종북주의자들) 이번에 분명히 자각 하였을 것이다. 소득 격차가 38배로 벌어진 2013년의 한반도의 남과 북의 상황이 바로 역사적 결과가 아니겠는가. 우리 남한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 시대가 있었지만 수십 수백 수천 명을 한꺼번에 도륙하는 참혹한 처형은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로당 숙청, 연안파와 소련파 숙청, 갑산파 숙청, 심화조 사건 등에서 수천수만 명을 잔인하게 처형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나마 발전한 것은 정치적 반대자들도 처형하지 않고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 살도록 놔두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이 저 지경이 되도록 피폐한 이유는 세습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처형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치적 반대자들과 그 가족들이 모조리 제거됨으로써 북한 사회가 단순화 되고 인재가 부족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역적으로 몰려 3족이 구몰되어도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깊은 산중에 들어가 숨어살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는 한번 숙청되면 모조리 처형되고, 목숨을 구한 자도 즉각 수용소에 구금되어, 설혹 살아남은 자라 할지라도 어디 도망가서 살 반 평의 공간조차 없으니 사회적 생산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 사회에는 순종형 인간들만 남게 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반, 민족의 반이 단순화 되어 버리는 거다. 물론 공식적으로 경쟁국이자 적국인 북한에서 처형된 인사들이 많을수록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한반도 안에서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민족적 차원에서 보면 막대한 인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강제하는 권력에 순종하는 백 명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저항하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자질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므로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가 아니라 미래를 도모하는 통합적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의 총체적 역량의 약화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 시대 잘난 인물이었던 홍명희와 김원봉. 그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지도 벌써 두 세대 너머 지났다. 그들의 선택과 그들이 뿌린 원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2013년의 12월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지 못하고 중간에 숙청되었으니, 그들이 바라는 나라가 김씨왕조는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를 꿈꾸었을까. 2013년 12월 23일 열락연재에서 쓰다  
162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권서각 file
편집자
1355 2013-12-16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다. 진시황이 죽자 권세를 가진 내시 조고가 호해를 왕으로 앉혔다. 그는 자신의 권세를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하니 아첨하는 자들이 말이라고 했다. 사슴을 사슴이라 한 자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모두 누명을 씌워 죽여 버렸다. 사슴을 사슴이라 하고 말을 말이라고 해야 나라가 바르게 설 수 있다. 말이 제 뜻대로 쓰여야 나라가 바로 선다. 공자는 이것을 정명(正名)이라 했다. 말은 그 시회를 재는 척도라 할 수 있다. 말의 쓰임이 바르지 않는 사회는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고 사회가 어지러워지면 사회 구성원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다. ‘자기’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 자신을 뜻하는 명사이며, 앞에서 이미 말한 사람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로도 쓰인다. 그런데 연인들끼리 서로 자기라고 부른다. 3인칭을 2인칭으로 쓰고 있다. 말의 쓰임이 잘못되었다. 젊은 연인들이 어른들 앞에서 ‘자기야’ 라고 부르는 풍경은 손발을 오그라들게 한다. ‘아빠’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애칭으로 쓰이고 있다. 이 말이 쓰이게 된 것은 오래지 않다. 원래 아버지의 애칭은 ‘아배’였다. 아빠가 아배를 밀어내고 널리 쓰이게 되면서 본래의 뜻인 아버지의 애칭이라는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식이 아버지를 아빠라고 하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딸이 출가해서 자기의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기도 하고, 시아버지도 아빠라고 부르고, 유흥가의 여성이 늙은 단골손님을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빠라는 말은 아버지, 남편, 시아버지, 늙은 연인 등의 의미로 확대되어 쓰인다. ‘아빠 안녕’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기에서 아빠는 늙은 연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심히 잘못되었다. 모든 부르는 말에는 애칭이 있다. 할아버지-할배, 할머니-할매, 아버지-아배, 어머니-어매, 아저씨-아재, 아주머니-아지매. 얼마나 고운 우리말인가. 요즘 아주머니들 사이에 새롭게 쓰이는 말이 있다. 자기의 남편을 가리킬 때 ‘우리 아저씨’라는 말을 쓰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다. 이것도 바르지 않다. 아저씨는 삼촌이나 남의 집 어른을 부르는 말이다. 요즘 많이 듣는 말 가운데 ‘종북(從北)’이라는 말이 있다. 북한을 따른다는 뜻이다.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수사하던 검찰총장이이 물러났다. 수사팀장 검사도 물러났다. 국정원 선거 개입을 숨기려는 권력이 있다는 것을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새롭게 밝혀진 댓글 건수가 2,200만 건이 넘는다.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나오고 있다. 천주교 정의평화사제단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그러자 이를 주도한 박창신 신부에게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박 신부님 종북 아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과 권력이 사용하는 종북이라는 말, 그 쓰임이 바르지 않다. 북한을 따르는 것이 종북일진대 그들은 권력에 반하는 것을 종북이라 한다. 종북의 상대편에 ‘종박’이 있다. 종박은 ‘친박연대’라는 정당에서 유래한다. 박근혜와 친한 정치인 모임이라는 뜻이다. 정당 이름 치고는 매우 독특하다. ‘종박’이라는 말은 쓰임이 바르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를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종박은 있지만 종북은 거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서 죽어가고 정치범 수용소가 가득한 북한을 따르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사슴을 사슴이라 하고 종북을 종북이라 해야 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사회는 내일이 없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면 홍길동이 나타난다.  
161 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석근 file
편집자
1212 2013-12-06
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옳은 것도 놓아 버리고 그른 것도 놓아 버려라 - 원효,「다 놓아버려」중에서 한 중년 여인이 백화점에서 이웃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유모차에 종이 바구니들이 가득 있더란다. “이게 뭐야? 뭘 이렇게 많아 샀어?”하고 물어보니까 그 아주머니가 “기저귀 버리려고 가져왔어.” “응?” “이 백화점에서 많이 사주니까 그래도 돼.” “참, 그 집 잘사는데요. 왜 그러죠?”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 다들 ‘그녀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럴 때도 우리는 ‘옳다, 그르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무심히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음, 내가 그녀를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군.’하고 자신의 마음을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어찌 부자가 저럴 수 있나?’하고 ‘그녀를 비난하는 마음’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래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다보면 무슨 일로 인해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는 눈이 생긴다. 자신의 마음이 선악을 넘어서 넓어진다. 자신의 넓고 깊은 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그 본래의 마음을 깨달아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올바른 일을 ‘선을 행한다는 생각이 없이’ 행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녀를 비난하고 판단하는 마음에 끌려가게 되면, ‘선행, 올바름’에 집착하게 되고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인해 선악을 판단하는 힘을 잃게 되어 결국은 선을 행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니체는 ‘괴물과 싸울 때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올바른 일, 선행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 가능한 것이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가만히 두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 안다. 흡사 물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자신의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다. 마음을 옥죄게 되면 갇힌 물처럼 썩게 되어 악취를 풍기고 언젠가는 넘쳐흐르며 다른 것들을 해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