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8호...
   2020년 04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 오늘방문자 : 
    360
  • 어제방문자 : 
    676
  • 전체방문자 : 
    541,045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70 이런 생각/권서각 file
편집자
1094 2015-02-26
이런 생각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문득 항공기 좌석에 클래스를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기를 탈 때 탑승구는 하나다. 이코노미 클래스 표를 가진 나는 입구의 넓은 클래스의 자리를 지나 뒤쪽에 있는 비좁은 자리에 다리를 오그리고 몇 시간을 견디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같은 항공기 안에서 가진 자의 자리와 그렇지 못한 자의 자리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람의 계급이 나뉘는 공간이 항공기다. 봉건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양반과 노비의 계급이 나뉘었지만 현대사회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현대판 계급사회라 하겠다. 이런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의 변화 과정은 사회적 계급을 없애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귀족과 평민, 양반과 상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등의 계급을 없애고 무두가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의 진보라고 배웠다. 봉건사회에서 봉건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만 있었다면, 그리고 누구도 봉건체제의 계급질서에 항거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희생에 의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사라졌다. 명색이 지역의 유지라고 하는 이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땅콩회항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모두 항공사 사주 딸의 갑질에 대해 분개했다. 어차피 항공기 이야기가 화제니까 나는 항공기의 클래스를 없애는 게 어떻겠느냐고 생뚱맞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좌중에 몇 사람이 픽 하고 비웃었다. 그들에게 나의 말이 생경한 만큼이나 내게는 그 웃음이 낯설게 들렸다. 그리고 나에 대한 공격이 시작 되었다. 그들의 발화 취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많은 돈을 내고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능력에 따라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억울한 것 하나 없다. 적은 돈을 냈으니까 뒷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능력에 따라 사는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큰소리친다. 한센 병 환자 수용시설에 가보면 그들이 직원들을 개 부리듯 한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다. 우리나라는 복지가 과하다. 그들은 나를 종북 좌파로 보고 있음이 확실하다. 나는 화를 참으며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했다. 돈 많은 사람이 자기 집에서 금 수저로 밥을 먹든, 벤츠를 타고 다니든, 호화주택에 살든 그것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수단이나 대중이 같이 쓰는 공간에서 계급이 나뉘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공화국 시민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듯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모멸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기차에 1등석이 사라지고,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고,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민주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이런 목소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묻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해방은 되었지만 진정한 해방이 되지 않았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민주 공화국이 아니다. 식민 지배나 봉건 질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영남에서 섬처럼 외롭다. 글/ 권서각  
169 현재를 잡아라!/고석근 file
편집자
1290 2015-02-16
현재를 잡아라! 샘물 김달진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오랫동안 모셨던 아난다는 중생인 자신과 부처인 석가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석가의 일상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석가의 일상은 매순간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석가에게는 세수하고, 공양을 하고, 걸어가고, 설법을 하는 매순간이 똑같이 중요했다. 석가는 언제나 ‘현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우리는 함께 휩쓸려 흘러간다. 우리에게는 ‘현재’가 없다. 말과 생각으로는 ‘현재’라고 하지만, 그 순간은 휙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은 생생하지 않다. 그래서 한평생이 뜬 구름 같다. 그런데 ‘시간’은 없다. 시간은 우리의 감각 작용에 불과하다(아인슈타인). 오로지 있는 건 ‘현재’ 뿐이다. 우리는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석가).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것들은 우리의 생각, 관념에 불과하다. 우리는 ‘정신의 수직적 시간(메를로 퐁티)’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수평으로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수직으로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가는 시간, ‘찰나’ 속에 머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찰나’ 속에 살 수 없다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평생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겐 자신이 사라지는 ‘죽음’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영생불사를 꿈꾼다. 요즘 엄청나게 비싼 ‘줄기세포주사’를 맞는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 주사가 건강과 젊음을 되찾아 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의 노예가 되어 ‘쏜살 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함께 휩쓸려가는 한 아무리 건강하게 오래 살아도 우리의 삶은 끝내 ‘일장춘몽’이 되고 말 것이다.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보며 조그마한 샘물이 바다같이 넓어지고 나는 동그란 지구의 섬 위에 앉는 기적’ 이런 ‘기적의 삶’은 우리가 ‘현재를 잡는 삶’을 살 때 가능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영생불사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68 술과 담배/권서각 file
편집자
1726 2015-01-21
술과 담배 문학청년시절 글쟁이가 되려면 술과 담배를 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술과 담배를 시작했다. 좋아서 한 것이 아니라 글쟁이가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학습했다 함이 옳을 것이다. 담배는 가장 값이 싼 것부터 한 갑씩 정복해 나갔다. 필터가 없는 금잔디에서 출발해서 가장 비싼 신탄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흡연자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사정으로 인하여 필터가 없는 ‘백조’를 피우며 청춘 시절을 보냈다. 왜 백조를 피우느냐고 물으면 담배는 이름으로 피우는 거라 구라를 치기도 했다. 술은 체질에 맞지 않아 마시면 토하기를 30대 중반까지 반복하다가 30대 중반을 넘어서야 술맛을 알게 되었다. 술맛을 알게 되자 주량이 줄어들어 지금은 막걸리를 조금씩 마시며 술꾼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담배는 아직도 누구 못지않은 골초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흡연자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모욕을 감내하면서도 꿋꿋이 지조를 굽히지 아니했다. 그러나 박그네 정권이 담배 값을 2배 가까이 올리는 바람에 지금은 떨고 있다. 아니 분노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에서 거두는 세수가 1조 원 가량인데 담배세에서 거두는 세수가 7조원이란다. 가난한 시인의 담배 개비 수가 반으로 줄었다. 박그네는 시인을 떨게 한다. 각설하고 술에 대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낮술 김상배 이러면 안되는데 일곱 음절밖에 안 되는 짧은 시다. 그러나 독자로 하여금 시의 길이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모름지기 시는 글의 길이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사람이 사는 곳에 술이 있었다. 술을 먹지 않아도 사람은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는 곳에 술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밥이 사람의 몸을 살아있게 한다면 술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한다. 선배 시인 한 분이 어느 날 술을 함께 마시며 이런 말을 하신 걸 기억한다. “참 이상해. 술은 기분 나쁠 때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 좋을 때 마시면 더 좋아진단 말이야.” 술을 아는 말씀이다. 술은 예로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 사람들 곁에 있었다. 잔치에는 흥을 돋우어주고 제사에는 슬픔을 달래주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한 잔의 술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곡물과 과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나라에서 술 빚는 일을 금하기도 했다. 곡물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소주다. 과일을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코냑이다. 보리를 발효시켜 증류한 것이 위스키다. 예로부터 귀한 술은 많은 양의 과일과 곡물이 필요한 증류주였다. 그래서 술이 밥보다 귀했다. 술이 귀한 음식이라는 이유는 신에게 제사지낼 때 올리는 음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규보는 ‘국선생전’에서 ‘하루라도 이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마음에 비루함이 싹튼다.’고 했다. 또 ‘성정이 맑아서 더 맑히려 해도 맑게 할 수 없고 더 흐리게 하려해도 흐리게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동의보감’에 술을 찾아보면 ‘많이 마시면 취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술은 귀한 음식이지만 과하게 마시면 인간의 무의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곤 한다. 평소에 더없이 도덕적인 사람도 술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무의식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낮술을 찾는 이는 지나치게 무료하거나 지나치게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낮술에 취하면 그 부친도 알아보지 못한다 했으니 마땅히 경계하고 삼가야 하리라. 글 권서각  
167 일상에서 공부하라! (왕양명)/고석근 file
편집자
1146 2014-12-16
일상에서 공부하라! (왕양명) 문구멍 신현득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문학을 공부할 때 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팔당댐 근처 풍광 좋은 곳으로 갔는데, 그 날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문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때였다. 젊은 강사가 내게 '글을 보는 눈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불같이 화가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너는 얼마나 잘 아나?' 그 다음 날 새벽에 혼자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 버렸다. 그 뒤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며 그 강사가 한 말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온 몸이 오글거린다.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나도 이제 강사가 되어 강의를 다니다 보면 '그때의 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강사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그 강사처럼 수강생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줄 때가 있다. 그때의 나처럼 파르르 반응을 보이며 기분 나빠 하는 분들도 있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다.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할 때 사람들에게 쇠파리처럼 달라붙어 그가 스스로 무지하다고 깨달을 때까지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졸지에 '무식한 인간'이 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 부류로 나눠졌다고 한다. '무지의 깨달음'에 환희에 젖는 사람들과 '너는 얼마나 아나?'하고 분노하는 사람들로. 왜 이렇게 나눠질까? 머리로만 공부한 사람은 불같이 화가 날 것이다. 자기도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할 테니까. 소크라테스가 별로 많이 아는 것 같지 않게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일상에서 '진리' '정의' '자유' '사랑' 등을 성찰하며 공부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아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흡사 불철주야 '화두(話頭)'를 잡고 공부하던 승려가 어느 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깨달을 때의 그 느낌을 몸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노자는 말했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言者不知 知者不言)" 언어를 끝까지 밀고 갔던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소크라테스가 언어로만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의 언어의 한계를 깨줄 때 몸으로 공부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의 눈앞에 새로운 진리의 세계가 섬광처럼 스쳐갈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열림의 세계로 들어설 것이다. 가끔 내가 제자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줄 때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을 볼 때 경이감에 젖는다. 사람은 이렇게 크는구나! 아이가 문구멍을 찢고 세상을 내다보듯. 그렇게 키가 크듯.   
166 논리적 분노/권서각 file
편집자
1559 2014-11-25
논리적 분노 문학인은 근본적으로 시대와 불화한다. 왜 그럴까? 세계(universe)는 원초적으로 선과 악이 공존한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하늘은 착하지만은 않다. 만약 하늘이 착하다면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늘은 착한 사람을 끝없이 불행하게 하기도 하고, 악한 이에게 복을 누리게도 한다. 이런 모순적 세계에 대항하는 이가 작가다. 우리 고전 흥부전, 춘향전, 심청전을 다시 보자. 우리가 사는 현실은 흥부와 같이 착하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춘향처럼 권력에 대응해서 정절을 지키면 승리할 수 있는가? 심청처럼 부모에 효도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작가정신이 우리의 고전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우리 고전도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노자의 말처럼 세계는 착한 사람들의 편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은 다 그런 거야”라고 세계의 밝은 면만을 노래해야 하는가? 공자가 ‘자가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物施於人)고 한 것은 세계의 어두운 면을 소멸시켜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퇴계 선생 평생소원이 ‘허물이나 없고자’라고 노래한 것은 자기 내면의 불의한 것들을 소멸해서 완전한 선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즉 정의로운 자기, 정의로운 세계가 성자들의 소망이었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정의의 편에 선 자다. 정의의 편에 선자는 불의와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작가는 시대와 불화한다. 작가가 시대에 순응하고 시대의 어두운 면을 외면한다면 작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작가가 권력의 편에 선다면 악이 선을 억압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세계는 그런 작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작가정신을 나는 논리적 분노라 한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성장, 반공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국가경제가 낮은 수준일 때도 무상교육 등의 복지 정책을 실현했다. 우리는 지금 경제 대국에 속한다. 그럼에도 더 성장해야 한다고, 경제성장을 내걸고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다. 끝없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동자들의 복지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 복지를 말하면 종북으로 몰아세운다. 논리적 근거가 없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다. 기득권층도 가짜 종북을 만들어 분노하고 증오한다. 그들은 근거 없이 분노하고 증오하지만 작가정신은 논리적 분노를 하는 것이다. 글 권서각  
165 인간이란 자기의 운명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자를 말한다 (마르크스)/고석근 file
편집자
1391 2014-11-17
인간이란 자기의 운명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자를 말한다 (마르크스) 복종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 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짐승들은 처음 만나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본다. 눈을 먼저 내리 깔면 진다. 하지만 아무도 눈을 내려 깔지 않으면 서로 간에 힘을 겨룬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상대방이 먹이일 때는 다르다). 서로의 힘만 겨루면 싸움이 끝난다. 짐승들은 이런 '육체적 힘'으로 질서를 잡아간다. 인간 세계는 어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사회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인정한 어떤 '힘'에 의해 서로 간의 서열이 정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힘'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승복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강압적으로 서열이 정해진다면 이렇게 이루어진 질서는 언제라도 전복될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인 '자유'는 '복종'이 뒷받침될 때만이 고유한 빛을 발한다. 인간 간의 복종이 없는 자유는 허망하다. 인간은 홀로 행복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해방된 개인의 자유로운 결사체(마르크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엔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서야 한다. 이 힘은 '권력 없는 사회(아나키즘)'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노자는 는 말했다. '太上, 下知有之. 태상, 하지유지.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안다.' 그는 백성들이 전혀 지배와 권력을 느끼지 않는 지도자가 최고의 지도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남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하는지가 보일 것이다. 자연스레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이끌고 복종할 것이다. 원시 시절엔 누구나 이러한 '온전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너무나 아득하다.   
164 존경과 존중/고석근 file
편집자
1490 2014-01-07
존경과 존중 不尙賢 불상현 使民不爭 사민부쟁 훌륭하다는 사람 떠받들지 말라 사람들 사이에 다투는 일 없어질 것이다 - 노자,「도덕경」중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존경’을 배워왔다. “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니?” 그래서 평소에 ‘누구를 존경할까?’하고 고민해 왔다. ‘위인? 과학자? 선생님? 부모님?...... .’ 그러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전쟁에 나간 계백 장군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생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보며, 계백 장군의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는 장군을 힐난하는 말을 들으며 ‘아차! 내가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다니!’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어떤 원시 부족은 사냥을 아주 잘하는 사람을 가끔 왕따 시킨다고 한다. 그가 잘하면 다른 사람들에겐 사냥의 기회가 잘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한사람으로 인해 전체 부족원들이 신나지 않으니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잘나가는 주인공 옆에는 항상 질투하는 2인자가 있다. 그가 주인공의 잘남을 돋보이게 한다. 그는 주인공의 위대함을 위하여 희생양이 된다. 그 2인자도 못되는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되어 잠자코 있어야 하고. 이 세상은 이렇게 잘난 사람을 추켜세운다. 왜? ‘잘난 한 사람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라니까?’ 정말일까?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만든 이 세상은 살만한가? 다들 안녕하신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존중’이다. 있는 그대로 사람을 봐주는 것. 그래서 모두 인정받고 즐겁게 사는 것.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잘난 사람을 추켜세움으로써 이 존중은 사라진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존경받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존경받는 사람의 흉내를 내며 그의 짝퉁이라도 되고자 한다. 하지만 존경받는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할까? 높은 나무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그를 언제까지 그대로 둘까? 조만간 그는 바닥으로 고꾸라져야 한다.  
163 홍명희와 김원봉/박희용 file
편집자
1484 2013-12-26
홍명희와 김원봉 산백 박 희 용 김정일 시대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북한의 대남정책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번 장성택이 처형 사건에서 보듯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북한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특히 처형 결정문에서 언급한 나진항 50년 임대와 석탄 등 지하자원 헐값 매각 문제는 지금까지 북한을 그런대로 통제한다고 할 수 있던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직결되는 문제여서 향후 한반도 열전화의 임계점을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선군노선을 주장하는 군부 강경파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계열의 친중파 간에 노선 갈등에서 군부 강경파가 확실하게 승리함으로써 김정일 시대의 균형 외교 노선이 선군노선 쪽으로 휘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서른 살 혈기방장한 영도자 김정은의 충동성과 즉흥성이 발동하여 대남 정책이 비합리적, 소위 혁명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리무중, 시계가 극히 불량한 협곡 속에서 언제 어디에서 돌발 사태가 터질지 조마조마한 상황이 적어도 수년 간 계속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위급 상황이 계속 될수록 그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과 인고도 막심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일상이 고달플 수밖에 없다. 오늘의 상황을 역사적 결과로 본다면, 남북의 상황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원인이 무엇이며 원초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분명히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 성찰의 하나로, 해방 공간에서 북쪽을 선택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홍명희와 김원봉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 선택의 후과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벽초 홍명희의 삶은 1949년을 분수령으로 해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일제시대인 청년기부터 화요회 등 좌익 활동과 임꺽정으로 대표되는 민중문학관을 견지함으로써 좌익문학가로서의 위치를 뚜렷이 했으며, 『임꺽정』을 발표하여 현대문학사에서 민중소설문학의 실체를 처음으로 연 소설가, 문필가로서의 삶을 뚜렷이 역사에 각인했다. 1949년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북한 체제를 선택해 북한에 잔류한 이후 육이오 전쟁 시기부터 1968년 사망할 때까지인 후기엔 북한 부수상 등 고위직을 역임함으로써 좌익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뚜렷이 했다. 북한에서 그가 이룩한 문학적, 정치적 성과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남한에서는 수십 년 동안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 민족문학인으로서의 전기의 삶은 칭송을 받지만, 북한 고위 정치가로서의 후기의 삶은 우리 민족분단사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수우익으로부터 배척 내지 거부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가 몇 년 번부터 그의 문학에 대한 조명이 문단 일각에서 조심스레 제기되다가 그의 고향인 충북 괴산에서 홍명희 문학제가 십 년 여 계속해서 열리면서 차츰 대중성을 갖게 되었다. 벽초 홍명희를 ‘조선의 길’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홍명희가 과연 ‘조선의 길’일까 하는 점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적어도 ‘조선의 길’이란 말에서 먼저 확실하게 정의 되어야 할 말은 ‘조선’이다. 여기서 쓴 ‘조선’이란 말이 북한체제 국가 이름을 의미한다면, ‘조선의 길’에 대하여 남한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필자로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선’이란 말이 1910년 경술년까지 이 땅 화려강산에 존재했던 나라 이름이라면, 또 화려강산에 살고 있는 인민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조선의 길’은 벽초 홍명희에게 붙이는 헌사로선 마땅하지 않다. 백범 선생과 함께 활동할 때까지의 홍명희는 좌익 민족주의자였지만 백범과 결별하고 북한에 남으면서 욱이오 전쟁 개전을 결정할 권력층인 부수상 직위를 장기간 유지함으로써 이미 그는 좌익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빙자한 수령전제 왕조의 하수인이 되고 만 것이다. 홍명희 그는 동족상쟁을 일으킨 원초적 책임의 일부분을 운명적으로 짊어지고 있으므로, 또 이후에는 18년 동안 북한체제를 떠받드는 기둥 역할을 함으로써 남과 북의 모든 인민들을 함께 지칭할 때 사용하는 ‘조선’이란 말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해방공간 이후 60년이 지났어도 아직 이데올로기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박영희가 십여 년 전에 재조명 되었고 요즈음은 홍명희뿐만 아니라 임화가 재조명 되고 있다. 좌익 문학가들의 공과를 논할 때 그들의 문학적 성과를 주요 잣대로 하느냐 아니면 정치적 활동을 잣대로 하느냐 하는 근본적 시각의 차이 때문에 문학적, 사회적, 정치적 평가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 쪽이든 보수 쪽이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들의 문학적 작업과 정치적 활동이 화려강산 인민들, ‘조선 사람들’에게 이익과 평화를 주었는가 아니면 손해와 살육을 주었는가 하는 관점이다. 진보적 관점을 가진 인사들에 의해 좌익문학가들이 과대평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고 보수적 관점을 가진 인사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 문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국 근대사의 빛과 어둠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빛과 어둠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한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한국 현대사가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도 갈등과 투쟁이 치열하였고 끝내 매듭을 풀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갈등과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발생한 빛과 어둠에 대한 명료한 정리가 언젠가 이루어진다면, 어슴푸레한 상태가 걷히고 사물이 분명히 모습을 드러낸다면,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의 실체가 드러난다면 수십 년 동안 대결해온 좌익과 우익의 공과가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다. 결국 좌익과 우익이란 역사적 실체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의미한다. 그러한 관점의 차이가 이론의 차원을 벗어나 현실 생활에 이입 실천됨으로써 우리 현대사가 비극이 되고 말았다. 많은 좌익문학가들이 현장성과 실제성을 강조하며 이론투쟁보다는 실천투쟁 쪽으로 몰려갔다. 그러다보니 문학작품은 이데올로기 선전에 쓰이는 언어도구가 되어 문학성과 예술성은 증발하고 말았다. 문학성과 예술성이 증발된 문학은 이미 문학이 아니고 그것을 남발한 투사들은 어디까지나 정치가이지 문학인이 아니다. 홍명희, 박영희, 임화 등 좌익문학가들이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젊은 시절에 잠시 반짝 빛내고는 문학작품을 이데올로기 선전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좌익정치가가 된 것은 민족문학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참으로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꺽정』 한 편의 소설을 남김으로써 홍명희는 민족소설사에 큰 이름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후의 그의 삶의 행적은 화려강산 남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도 분명하다. 김구 선생은 죽음으로써 역사에 큰 이름을 나겼다. 홍명희 그가 북한을 선택했으면 고위직을 하지 말고 초야에 묻혀 민족소설을 계속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한을 선택하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남한에 돌아와 학계나 문학계에서 활동하였다면 우리민족사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임꺽정』 소설에 맥맥이 흐르는 혁명의 불길은 홍명희 바로 그의 것이었고 그는 그 불길을 북한에서 현실화했다. 충청도 양반 출신이면서도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고 시대를 혁명하려는 그의 불길은 북한에서 활활 타올랐으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왕조 세습독재의 밑거름이요 기둥이 되고만 것은 홍명희나 북한 권력자들의 관점에선 충성일지 모르지만 화려강산 전체적으로 보면, 아니 인구가 훨씬 많은 남한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엄연한 역사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또한 2013년 겨울 현재를 보면, 북한에서 김정은이가 고모부인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정변이 발생하여 한반도 전체가 극심한 위험 상황에 빠져버렸다. 결과론적으로 말해, 홍명희, 박헌영, 김원봉, 임화, 이원조, 백남운 등 월북 유명인사들이 이룩하고자 했던 이상국가가,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만 일으켜 수백만이 살상당하도록 하고, 이후 북한에서 숙청된 수천수만의 피를 먹으며 자란 김일성 왕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그들의 무지가, 헛짓이, 착각이, 오류가 얼마나 한반도 역사에 막심한 과오를 끼쳤는지 후세의 사가들이 곧은 붓으로 상세하게 기록할 것이고 학생들은 그들의 이름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달아 만고의 역도 명단으로 암기할 것이다. 지식인이란 다양한 지식, 우수한 기억력과 판단력을 가진 고급의 지적 존재이다. 그래서 한 시대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지식인의 반열에 드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갖고 있는 보편성이란 사물과 현상에 대한 표피적인 관찰과 인식을 의미한다. 물론 역사를 추동하고 이어가는 동력은 보편성이지만 역사가 어디로 굴러가야 올바르게 굴러간다고 할 수 있는가하는 점은 지식인들의 몫이다. 지식인이란 대중이 갖는 역사적 보편성이 제대로 형성되도록 하는 예지성을 갖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예지성이 이론의 영역에 머물면 사상가이지만 이론을 넘어서 현실세계 혁명 추구에까지 이르면 혁명실천가가 된다. 그 예지성이 작품 속에 녹아들면 문학가이지만 무기로서의 문학을 제련하는데 쓰인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닌 사회운동가, 혁명 운동가인 것이다. 그러한 예지성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든 문학가들이 갖고 있는 우수한 자질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좌익과 우익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가하면 바로 아집에 근거한 지적 오만 때문이다.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하는 지식인은 자기 논리에, 자기 사상의 성에 견고한 방어벽을 설치하고 난 다음 가능한 한 다른 지식인들의 성을 점령하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와 가족의 의식주 생활이 안전하고 풍요로움을 삶의 최종 목표로 하지만 지식인들은 생물적인 일상의 삶보다는 정신적으로 특수한 삶을 희구하기 때문에 자기 사상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다. 지식인들은 물질 소유와 몸의 안락을 사상하면서까지 자기 정신세계의 완성을 추구한다. 그러니 일단 의식에 굳게 형성된 사상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자기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식인은 절대로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설혹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새로운 논리를 자가 보충하면서 자기 사상을 키워나간다. 개인적 지적 오만이 세력을 얻어 집단적, 사회적 오만이 되면 운동성을 갖게 된다. 운동성을 가진 집단, 사회적 오만은 이윽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으로 발전한다. 혁명으로 발전한 사회적 오만은 자기 수정력, 통제력을 상실하여 갖가지 파열음을 내면서도 소기의 목표를 향하여 멧돼지처럼 돌진한다. 초기엔 순수한 문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였던 개인적 오만도 혁명이란 굉음 속에 휩싸이면서 개성을 상실하고 집단성에 물들게 된다. 그 때부턴 문학성이 아니라 운동성, 혁명성이 주류가 되면서 문학은 완전히 탈락하게 된다. 가장 부드러운 지성과 감성이 문학의 본질일진데 가장 견고한 신념과 사상만이 횡행한다면 이미 문학은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자기 사상을 현실에 지나치게 투사하고자 집착한 지식인들에게서 공통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문학가들에게 있어서 좌익이나 우익이란 말은 성립되어선 안 된다. 말하기 쉬워서 중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문학가라면 좌익과 우익이란 사회, 정치적 스펙트럼을 한 눈 안에 볼 수 있어야 한다. 좌 우 어느 한 쪽에서 보면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먼 것은 작게, 소홀히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일제시대와 이후 해방공간에서 좌와 우 어느 한쪽에 경도되어 문학 작품을 쓰고 사회, 정치적 활동을 전개한 사람들은 역사에 역행한 원죄를 걸머지고 있다. 문학이 아무리 사회적 현실을 반영함이 그 본연이라지만 문학이 어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유효하게 쓰이는 선전 도구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시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불관언한 자세로 음풍농월 하고 있는 것은 비겁임이 분명하지만, 반드시 모든 문학이 시대적 고통 해소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교조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일제시대에 유명세를 탐하여 친일문학을 한 작가들은 비겁의 차원이 아니라 민족반역의 차원이기 때문에 문학성이니 사회성이니 시대성이니 하면서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다. 밀양 출신인 김원봉과 윤세주로 대표되는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항일무력투쟁사는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 장한 일이다. 김원봉은 의열단 단장으로 한 시대 의열투쟁을 이끌었고 윤세주는 상해임정 쪽으로 기운 김원봉과 헤어져 의열단 활동을 마감한 후 조선의용대원으로 항일 전선의 최선봉에 섰다. 모택동, 주은래, 주덕 등이 이끈 팔로군이 정강산에서 토벌군인 장개석 군에게 포위당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윤세주가 자기 목숨을 던져 그들의 활로를 타개해주었다. 그 공을 잊지 않은 팔로군은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다음 정강산 전투 현장에 윤세주의 공로비를 세웠다고 한다. 김일성 왕조가 70년이 되어간다. 해방 전까지의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공이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김원봉과 윤세주의 의열단, 조선의용대 활동에 비하면 그 비중이 약하다. 항일 현장성만 놓고 비교하더라도, 김원봉과 윤세주는 광복 때까지 항일 현장인 대륙에 있었지만 김일성은 1940년부터 5년 간 안전지대인 연해주에 있었다. 만주에서의 동북항일연군의 활약상이 대단했지만 1940년 이후엔 거의 소멸되었다. 또, 항일 전투역량과 전과 면만 놓고 비교하더라도, 윤세주, 무정 등의 지도자가 이끈 조선의용대는 수만 병력으로서 1945년 8월까지 여러 차례 일본군과 정규전을 펼쳐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지만, 김일성이 이끈 빨치산은 1940년까지 소규모 유격전을 펼쳐 조선의용대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전과를 거두었다. 전공만을 놓고 따진다면 조선의용대 계열이 북한 지역의 대표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해주에서 소련군의 신임을 받은 김일성 계열이 북한의 지배 세력이 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관점으로 볼 때 가장 안타까운 점은 해방공간에서 김원봉이 극우 세력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타의에 의해 삼팔선을 넘어 북행을 한 사실이다. 해방 후 곧바로 북으로 안 가고 남쪽으로 귀국한 김원봉이 서울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고 고향 밀양에서는 인산인해를 이룬 환영객들의 영접을 받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김원봉은 고향인 남쪽에서 정치인이 되려고 계획했지 북한체제를 추종하는 극좌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테러리즘이지만 식민지 백성들로 보면 속 시원한 쾌거인 의열단의 눈부신 활동을 이끌었고, 30년대 중반 이후엔 우익 위주의 상해임시정부와 좌익 무력인 조선의용대의 연결고리였던 김원봉이 결국 월북함으로써, 그것도 북에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권력 상층부에 오른 것이 아니라 그의 위명을 견제하는 소련 사대주의 세력들에 의해 숙청됨으로써, 그의 고향인 남한에서는 반국가, 반체제범이 되어 그가 이룬 빛나는 항일투쟁 업적이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고, 북한에서는 민족사보다 권력을 선택한 자들에 의해 소외되고 잊혀진 것은 김원봉 그의 개인적인 운명이기도 하지만, 멀리는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누적된 구조적 사회모순과 인간정신의 황폐화가 깊이 곪다가 드디어 20세기 벽두에 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하여 반세기 동안 고름과 피가 흘러내린 우리 민족의 운명이기도 하다 독립국이든 식민지든 한 나라, 한 민족이 가는 길이 문과 무의 조화라면, 문은 상해임정 등의 우익 독립운동 단체가 주류였고 무는 좌익 조선의용대가 주류였다. 그 무력이 독립된 조국, 통일된 조국에 고스란히 들어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북한의 무력이 된 것은 민족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정 장군이 이끈 수만의 조선의용대가 압록강 도강을 소련군으로부터 저지당하여 무정 장군 이하 간부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것은, 남쪽에서 김구 선생 등 상해임정 요인들이 미군의 저지를 당하여 결국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것과 똑같다. 이것은 민족의 해방이 자력이 아니라 타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대표적 좌절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시초가 어긋났기에 해방 이후 남북의 현대사가 비틀어지게 되어 지금 현재까지 제살 제가 깎아먹는 소모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남쪽에선 친일파 기득권 세력이 잔명을 보존하더니 불과 수 년 만에 기세등등하여 항일 독립 운동가를 좌익으로 몰아 탄압하고 위해를 가한 것도 비극이지만, 북쪽에선 항일전선의 전사였던 조선의용대원들이 북한 인민군의 중추가 되어 1950년 6월 남침전쟁의 주력이 된 것은 더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용대의 지휘 장군, 간부 군관들과 전사들, 대륙의 화북과 북만주 전선에서 눈보라를 헤치며 일본군과 전투를 할 땐 분명 꿈에서라도 장래에 남쪽의 동족을 사살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꿈에서라도 내가 흘린 땀과 눈물, 피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란 위장막 아래 장치된 세습왕조 건설을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해마다 봄이면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듯이 어느 누구의 정신이나 고유성과 자아의식을 가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항일전선에 헌신한 열사들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이 땅의 무인이라면 다시는 동족상쟁의 전선에 타의에 의해 내몰리진 않으리라 맹세해야 한다. 그 선열들이 무엇을 위해 항일전선에서 목숨을 바쳤는지 안다면, 진실로 삼천리 화려강산을 민족을 위한 길이 어느 것인지 나름대로 분별해야만 한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양식 있는 민족적 좌익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가 소련을 호가호위하는 사대주의자들의 정략을 극복하고 북한의 무력이 되었다면 최소한 육이오는 없었을 것이다. 한 시절 민족 유일 무력인 조선의용대를 호령하던 무정 장군이 그만 날개 꺾인 독수리가 되어 겨우 인민군 사단장에 자족하곤 남침전쟁의 도구로 쓰이고 말았다니, 그의 용맹은 선천적이나 그의 역사의식은 선천적이지 못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추해볼 때, 대의를 위해 한 몸을 던질 결기로 가득 찬 열혈남아들의 용맹이 민족과 민중을 위한 바른 길에 쓰여 지도록 하는 역사의식의 함양과 길 터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사에선 몸을 쓰는 용맹한 실천가들의 영역이 있고 정신을 쓰는 침착한 이론가들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해방공간에서 조선의용대 이론가들의 영역이 김일성을 조종한 러시안 이론가들의 영역보다 더 넓지 못하였기에 실패한 것이라고 정리 할 수 있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그 치열했던 민족 운명의 폭발과 분출도 이젠 반세기가 지나니 잦아들고 상처 위에는 커다란 딱지가 덮였다. 남과 북의 생각 있는 인사라면 어는 누구도 그 상처 딱지를 다시 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상처 딱지가 자연스레 떨어지고 뽀오얀 새살이 돋아난 걸 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가 되어야만, 지금은 고향 박물관에서 해방공간 치열했던 이데올로기 차원과 국가권력 관계를 떠나 역사적 관점에서만 대접받고 있는 김원봉과 윤세주 등 밀양 출신의 열혈남아들이 이룬 항일공로가 비로소 청천백일 아래 후세들에게 환하게 읽혀질 것이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장성택이 숙청을 보며, 이참에 북한 정권의 본질을 분명하게 인식한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이 가진 역사적 정당성 때문에 북한을 지지하고 좌익노선을 지지한 사람들도(소위 우익에서 공격용어로 사용하는 종북주의자들) 이번에 분명히 자각 하였을 것이다. 소득 격차가 38배로 벌어진 2013년의 한반도의 남과 북의 상황이 바로 역사적 결과가 아니겠는가. 우리 남한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 시대가 있었지만 수십 수백 수천 명을 한꺼번에 도륙하는 참혹한 처형은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로당 숙청, 연안파와 소련파 숙청, 갑산파 숙청, 심화조 사건 등에서 수천수만 명을 잔인하게 처형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나마 발전한 것은 정치적 반대자들도 처형하지 않고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 살도록 놔두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이 저 지경이 되도록 피폐한 이유는 세습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처형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치적 반대자들과 그 가족들이 모조리 제거됨으로써 북한 사회가 단순화 되고 인재가 부족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역적으로 몰려 3족이 구몰되어도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깊은 산중에 들어가 숨어살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는 한번 숙청되면 모조리 처형되고, 목숨을 구한 자도 즉각 수용소에 구금되어, 설혹 살아남은 자라 할지라도 어디 도망가서 살 반 평의 공간조차 없으니 사회적 생산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 사회에는 순종형 인간들만 남게 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반, 민족의 반이 단순화 되어 버리는 거다. 물론 공식적으로 경쟁국이자 적국인 북한에서 처형된 인사들이 많을수록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한반도 안에서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민족적 차원에서 보면 막대한 인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강제하는 권력에 순종하는 백 명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저항하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자질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므로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가 아니라 미래를 도모하는 통합적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의 총체적 역량의 약화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 시대 잘난 인물이었던 홍명희와 김원봉. 그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지도 벌써 두 세대 너머 지났다. 그들의 선택과 그들이 뿌린 원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2013년의 12월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지 못하고 중간에 숙청되었으니, 그들이 바라는 나라가 김씨왕조는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를 꿈꾸었을까. 2013년 12월 23일 열락연재에서 쓰다  
162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권서각 file
편집자
1453 2013-12-16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다. 진시황이 죽자 권세를 가진 내시 조고가 호해를 왕으로 앉혔다. 그는 자신의 권세를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하니 아첨하는 자들이 말이라고 했다. 사슴을 사슴이라 한 자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모두 누명을 씌워 죽여 버렸다. 사슴을 사슴이라 하고 말을 말이라고 해야 나라가 바르게 설 수 있다. 말이 제 뜻대로 쓰여야 나라가 바로 선다. 공자는 이것을 정명(正名)이라 했다. 말은 그 시회를 재는 척도라 할 수 있다. 말의 쓰임이 바르지 않는 사회는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고 사회가 어지러워지면 사회 구성원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다. ‘자기’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 자신을 뜻하는 명사이며, 앞에서 이미 말한 사람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로도 쓰인다. 그런데 연인들끼리 서로 자기라고 부른다. 3인칭을 2인칭으로 쓰고 있다. 말의 쓰임이 잘못되었다. 젊은 연인들이 어른들 앞에서 ‘자기야’ 라고 부르는 풍경은 손발을 오그라들게 한다. ‘아빠’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애칭으로 쓰이고 있다. 이 말이 쓰이게 된 것은 오래지 않다. 원래 아버지의 애칭은 ‘아배’였다. 아빠가 아배를 밀어내고 널리 쓰이게 되면서 본래의 뜻인 아버지의 애칭이라는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식이 아버지를 아빠라고 하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딸이 출가해서 자기의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기도 하고, 시아버지도 아빠라고 부르고, 유흥가의 여성이 늙은 단골손님을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빠라는 말은 아버지, 남편, 시아버지, 늙은 연인 등의 의미로 확대되어 쓰인다. ‘아빠 안녕’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기에서 아빠는 늙은 연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심히 잘못되었다. 모든 부르는 말에는 애칭이 있다. 할아버지-할배, 할머니-할매, 아버지-아배, 어머니-어매, 아저씨-아재, 아주머니-아지매. 얼마나 고운 우리말인가. 요즘 아주머니들 사이에 새롭게 쓰이는 말이 있다. 자기의 남편을 가리킬 때 ‘우리 아저씨’라는 말을 쓰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다. 이것도 바르지 않다. 아저씨는 삼촌이나 남의 집 어른을 부르는 말이다. 요즘 많이 듣는 말 가운데 ‘종북(從北)’이라는 말이 있다. 북한을 따른다는 뜻이다.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수사하던 검찰총장이이 물러났다. 수사팀장 검사도 물러났다. 국정원 선거 개입을 숨기려는 권력이 있다는 것을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새롭게 밝혀진 댓글 건수가 2,200만 건이 넘는다.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나오고 있다. 천주교 정의평화사제단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그러자 이를 주도한 박창신 신부에게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박 신부님 종북 아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과 권력이 사용하는 종북이라는 말, 그 쓰임이 바르지 않다. 북한을 따르는 것이 종북일진대 그들은 권력에 반하는 것을 종북이라 한다. 종북의 상대편에 ‘종박’이 있다. 종박은 ‘친박연대’라는 정당에서 유래한다. 박근혜와 친한 정치인 모임이라는 뜻이다. 정당 이름 치고는 매우 독특하다. ‘종박’이라는 말은 쓰임이 바르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를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종박은 있지만 종북은 거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서 죽어가고 정치범 수용소가 가득한 북한을 따르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사슴을 사슴이라 하고 종북을 종북이라 해야 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사회는 내일이 없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면 홍길동이 나타난다.  
161 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석근 file
편집자
1289 2013-12-06
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옳은 것도 놓아 버리고 그른 것도 놓아 버려라 - 원효,「다 놓아버려」중에서 한 중년 여인이 백화점에서 이웃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유모차에 종이 바구니들이 가득 있더란다. “이게 뭐야? 뭘 이렇게 많아 샀어?”하고 물어보니까 그 아주머니가 “기저귀 버리려고 가져왔어.” “응?” “이 백화점에서 많이 사주니까 그래도 돼.” “참, 그 집 잘사는데요. 왜 그러죠?”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 다들 ‘그녀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럴 때도 우리는 ‘옳다, 그르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무심히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음, 내가 그녀를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군.’하고 자신의 마음을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어찌 부자가 저럴 수 있나?’하고 ‘그녀를 비난하는 마음’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래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다보면 무슨 일로 인해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는 눈이 생긴다. 자신의 마음이 선악을 넘어서 넓어진다. 자신의 넓고 깊은 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그 본래의 마음을 깨달아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올바른 일을 ‘선을 행한다는 생각이 없이’ 행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녀를 비난하고 판단하는 마음에 끌려가게 되면, ‘선행, 올바름’에 집착하게 되고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인해 선악을 판단하는 힘을 잃게 되어 결국은 선을 행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니체는 ‘괴물과 싸울 때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올바른 일, 선행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 가능한 것이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가만히 두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 안다. 흡사 물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자신의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다. 마음을 옥죄게 되면 갇힌 물처럼 썩게 되어 악취를 풍기고 언젠가는 넘쳐흐르며 다른 것들을 해치게 된다.  
160 禪詩와 지구과학/산백 박 희 용 file
편집자
1933 2013-11-24
禪詩와 지구과학 산백 박 희 용 「庚申病中作 경신병중작 海峰有璣 해봉유기 病臥一年頭亦白 병와일년두역백 自羞於學未專工 자수어학미전공 往時萬卷筌蹄業 왕시만권전제업 入海籌砂不見終 입해주사불견종 병으로 누운 지 일년 만에 머리털 하얘지니 스스로 부끄러워라 다 하지 못한 학문 지난 날 만권의 책은 통발과 올무였고 바다 가 모래알 셈하기 끝을 보지 못 하였네」 『禪詩』(玄岩社, 석지현 편역, 1975, 252p) 해봉유기란 분이 뉘신가 회고사가 처연타. 인생은 草露와 같다더니, 뜨거운 血氣와 탱탱한 肉氣가 엉켜 용맹정진 하던 그 시절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깊은 산속 작은 암자 어두운 골방에 병들어 누운 하얀 머리털의 해골만 남아 시 하나 긁적이나. 이 시 <庚申病中作>을 쓴 며칠 후에 海峰有璣 이 인간 조용히 나뭇가지 몇 개 태운 연기처럼 또 다른 우주 속으로 사라졌을 것. 「태양을 중심으로 펼쳐진 팽팽한 인력의 한 판 레코드인 태양계 속에서 50억년 전에 티끌이 굳어진 구름에서 태어나 맹렬한 불길에 벼리어진 지구, 대륙과 해양 형성 이후 40억년 동안 10여 번이나 산맥의 형성시대와 빙하시대를 경험하면서 별이 반짝이는 우주 속을 돌고 있는 지구는 아직 젊다. 그래서 앞으로도 대륙이 침몰하여 해양이 되고 해저가 융기하여 대륙이 되는 천지개벽이 수십 번이나 더 일어난다. 가깝게는 인도 판이 아시아 판 아래로 눌려 들어가면서 히말라야 산맥은 해마다 몇 Cm씩 밀려 올려지고 인도 대륙이 사라진다. 에디오피아 지역의 아프리카 대륙이 둘로 쪼개진다. 앞으로 3~10억년 후에 태양을 빛나게 하는 수소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태양이 서서히 팽창하여 15억년 뒤에는 오리온성좌의 베텔지우스나 안타레스 같은 적색거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후 수십억년 동안 80~100배나 팽창한 태양은 수성과 금성을 금방 불태워 삼키고 지구와 화성을 서서히 불태우다가 마침내 삼켜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곤 수축하여 우주 속에 검은 한 점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세계는 지구의 시간에서 본다면 막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한 인간의 세계는 그 막간에 막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地球 그 自然과 生命. 제1장 지구의 탄생』(린컨 바네트. (주)한국일보타임 -라이프. 1979) 이처럼 거대한 時空 속에서 지구 위에 붙어살고 있는 인간 동물이란 존재, 나는 무엇일까? 인류문명사가 1만년이 채 안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영장류로 분화한 이후에도 수백만년 동안 한갓 짐승으로 살아왔다. 그 이전 수천만년 동안엔 한갓 동물이었다. 그 이전 수억년 동안엔 한갓 생물이었다. 그 이전 수십억년 동안엔 한갓 물질이었다. 인간의 근본 바탕은 변화이다. 물질에 변화가 없었다면 생물이 없고 동물이 없고 인간이 없다. 나의 탄생과 생존, 사멸 역시 물질 변화의 한 양상이다. 그러므로 나 혼자만 장수하며 만리만복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 인간은 가족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 지구의 물질을 수납, 사용, 배출하다가 몸 기계가 노후하여 기능 작동이 안 되면 죽는 단순한 존재이다. 노후한 기계를 두세 번 까진 고쳐 쓸 수 있지만 더 이상은 못 되는 게 섭리이다. 음식이 체내에 들어와 소화 되어 에너지가 되기 위해선 산소가 필요하다. 산소는 영양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들지만, 동시에 이산화탄소와 찌꺼기를 남긴다. 또한 산소는 자연 속의 철을 녹슬게 하듯이 인체 안의 철분을 산화시켜 몸을 피곤하게 하여 노후하도록 한다. 노후는 변화의 종점이다. 이어서 노후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점이다. 내가 사용하고 내뱉는 원소들이 다른 생물들의 영양소가 된다. 그래서 모든 생물들은 연계되어 있고 지구는 하나의 생태계이다. 즉 모든 생물을 안에 품는 하나의 큰 생물체이다. 동양과 서양, 해봉유기와 린컨 바네트는 살아간 시공이 다르지만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는 ‘우주의 침묵’이다. ‘우주의 침묵’은 많은 사색인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갖도록 하는 불가사의한 그 무엇, 존재이다. <庚申病中作>에 표현된 공부에의 집념과 <지구의 탄생>에 기록된 지식의 양과 질은 해봉유기와 린컨 바네트가 ‘우주의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진리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노력이 인류문명사에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를 증거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청소년기에 겪는 정신적 방황기를 통과의례로 넘기고 곧 일상에 적응하지만, 해봉유기는 승려로 린컨 바네트는 지구과학자로 일생을 보내며 청소년기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버리거나 잃지 않고 인간과 우주의 근본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1연 ‘병와일년두역백’을 보면 나이가 40대 중반 쯤이 아닐까 싶다. 침식이 부실한 상태로 수십 년 간 공부에 골몰하다다가 그만 병이 덜컥 들자, 그동안 쌓였던 화기가 치받으며 몸이 쇠약해지고 머리털이 하얗게 쇠어버렸다. 그러잖아도 공부하느라 두뇌를 많이 쓰는 탓에 머리에 혈기가 말라 털이 약해졌는데 병까지 드니 머리가 하얗게 쇨 수밖에. 물론 신분은 중이지만 평소에 삭발을 하지 않고 지냈거나 병석이라 머리를 그냥 두었겠지만. 2연 ‘자수어학미전공’엔 공부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노력이 들어있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시작되는데도 한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중병이 들어 1년 동안이나 누워있으니 얼마나 심사가 괴괴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하는 공부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연 ‘왕시만권전제업’을 보면 젊은 시절부터 무척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팔만대장경이 있지만 여기에서의 ‘만권’은 불경을 포함한 많은 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승려로서의 본분에 맞게 불경만을 읽었다면 ‘만권’이 되지 않는다. 불경대로 믿고 따르며 살았다면 한 생애가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봉유기는 ‘두역백’이듯 아마 머리 기른 승려, 즉 半俗半山人으로 한 생애를 살면서 다양한 지적 탐험을 추구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4연 ‘입해주사불견종’엔 진리를 다 알아내지 못한 지식인의 고뇌가 서려있다. 본래부터 무모한 짓이 진리를 다 알아내려는 욕심이다. 황하의 모래, 바다 가의 모래알처럼 인간이 알아내고자 하는 진리의 양은 무한하다. 무한한 그 속에 덤벙 뛰어 들어가 한 알 한 알 셈 하는 게 얼마나 지난하고 불가해한 일인가. 사정이 그러하니 우주의 시공을 각자 몫대로 살다간, 살아가는, 살러 올 지식인들 모두가 ‘불견종’ 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비로소 ‘왕시만권전제업’임을 알았으니 해봉유기가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면 분명 한 소식 들었을 것이다. 만권의 책을 읽는 목적은 만권의 책 속에서 안주하고자 함이 아니라 전筌과 제蹄, 즉 통발과 올무로 물고기와 토끼를 잡기 위해서이다. 즉 일이관지, 인간과 자연을 한 줄로 꿰는 진리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독서만권’에 자족한다. 그 자족이 넘치면 ‘도를 얻었다’라 희열하며 후손과 제자를 길러 자기의 도를 계승하도록 한다. 그 도란 만권의 책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닌데도 비판을 불허하곤 문도들로 하여금 무조건 숭상하도록 만든다. “사랑방 아래 묵에 미당이 앉았고 양 벽 아래로는 문하생들이 줄 지어 앉아있었다”라고 문 모 시인이, “미당 문단은 하나의 정부였다”라고 고은이 말했다. 시인 역시 승려나 학자들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라면, 미당과 그 문도들은 전과 제를 들고 설쳤지만 물고기와 토끼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전과 제의 기묘함을 자랑하기만 했지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거나 경장을 하고 산속에 들어가 토끼를 잡지 못했다. 온 겨레가 식민지 노예 생활에 처참한데도 일제지배를 미화한 시를 쓴 자들이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자들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자들 역시 양파처럼 문학적 근본이 없다. 미당의 시가 아름답다지만 친일문학에 깊숙이 들어간 시절은 그의 시 세계 자체를 종이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친일문학의 막강한 영향력이 전국적으로 아직도 건재하고, 지방에서도 그 본을 따 호족문인들이 행세하고 있는 게 현실상이다. 전과 제가 무엇에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진리는 정말로 가장 가까이에 있다. 바다 가 모래를 하나하나 세지 않아도 몇 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해봉유기가 ‘입해주사불견종’이라며 자탄했지만, 그것은 그의 인식 방법이 ‘만권’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모래알의 수는 하나다. 지구가 한 덩어리 바위이기 때문에. “바다 가 모래알은 몇 개일까?”라는 해봉유기 등 동양의 사색인들이 던진 질문에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서양에서 린컨 바네트 등의 과학자가 “예, 하나입니다. 수십억년 전에 우주의 티끌들이 인력에 따라 뭉치고 중력에 따라 부딪쳐 불타면서 한 덩어리 큰 공 모양의 바위가 되었답니다.”라 답한다. “ 아 그것, 우리가 공부하는 불경에선 성주괴공 하는 무량무겁의 시방세계 라 하지요.”라며 해봉유기가 린컨 바네트의 과학적 검증에 감사한다. “별 말씀을,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동무이지요. 우리 서양 과학에서 미흡한 부분인 예지력과 상상력 향상에 동양적 사고법이 유효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지식인들이 서로 도우면서 노력하면 ‘우주의 침묵’을 깨뜨리고 절대 진리를 확연히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린컨 바네트가 겸사한다. 둘이 주고받는 인사 말을 들으며, 수백만년, 아니 수십억년 뒤에도 우리 인류의 DNA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2013년 11월 23일 열락연재에서 쓰다  
159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권서각 file
편집자
1157 2013-11-16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 가운데 딸이 아들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오랜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성비는 여아보다 남아 출생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딸이 아들보다 낫다는 말은 어쩌면 입에 발린 소리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사회의 정직하지 못한 일면과 만날 수 있다. 남녀의 출생률을 인공적으로 조절하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가량이 저절로 맞추어진다고 한다. 여아에 비해 남아의 출생 숫자가 많은 것은 전쟁 등으로 요절하는 남자가 많으므로 성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유전자의 활동 때문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사회는 남녀가 균형 있게 짝을 짓고 살아가는 사회일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남자와 여자의 인구수가 균형을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남녀 성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여아 100명당 남아의 수가 106명이 넘으면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사회에 재앙이 온다는 이야기다. 지구상에 이런 심각한 상황에 처한 나라가 중국, 인도,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대개 경제개발을 강조하는 개발도상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우리사회도 이미 여성의 수가 부족하여 장가 못간 남성들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사회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신매매 성격을 띤 일부 비윤리적 결혼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남아선호사상은 뿌리가 깊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외세의 침입을 막는 일이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담당할 강한 힘을 가진 남성이 귀하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농경사회도 아니며, 무기의 발달로 전쟁에서도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남아선호사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 말로도 남녀평등을 당연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는 남아선호 현상이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아의 출산이 여아보다 많은 현상은 의학의 발달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임신초기에 CT촬영으로 남녀를 구분할 수 있어서 선택적으로 출산할 수 있다. 체외수정의 경우 남녀를 선택하여 임신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의학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분명히 법이 금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사회에서 여아보다 남아 출산이 많다는 것은 누군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이런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일어나는 나라는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국가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회계층은 상류계층이라 한다. 이른바 선진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 개발도상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저급한 문화 말이다. 외양상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대단한 나라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끄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것이 거의 돈으로 해결되는 나라다. 죄를 지어도 돈 있는 자에겐 관대하고 가난한 자엔 엄격하다. 정의가 어디 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사정이 이러하니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남녀를 선택적으로 출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獲罪於天無所禱也)고 했다.  
158 고통/고석근 file
편집자
1181 2013-11-06
고통 온몸이 으스러지면서 으스러지면서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 황지우,「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중에서 한 중년 여인이 중병에 걸렸단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병원비가 부족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우리 사회에 이런 슬픈 경우는 참으로 많을 것이다. “그 친구에게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죠? 인문학이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나폴레옹은 ‘고통은 언젠가 잘못 보내는 시간의 보복’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떻게 시간을 잘못 보냈을까? 봉사를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는데. 우리는 ‘봉사’를 미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불우한 사람을 돕는 것. 그것은 사실 국가가 할 일이다. 국가가 세금으로 불우한 사람을 도와 줘야 받는 사람도 당당하고 받은 사람도 받은 만큼 국가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부심과 우월감을 갖게 되면 받는 사람은 당당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그런 봉사활동은 잘 보낸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녀는 이런 점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국가의 의무이다. 대다수 선진국은 무상의료가 원칙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주인이다. 그녀는 주인으로서 이런 민주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노력했는가? 나무 한 그루도 최선을 다해 산다. 이런 고통이 이 땅에 다시는 없게 하기 위해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게 인문학의 힘이다. 그녀가 이런 삶의 이치를 성찰한다면 그녀는 고통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157 다윈 진화론의 기초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 비판/山白 박희용 file
편집자
1523 2013-10-23
다윈 진화론의 기초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 비판 山白 박희용 다윈(1809~1882)이 50세 때인 1859년에 발표한 『種의 기원』은 생물진화론의 체계를 확립한 역작으로 생물학사 뿐만 아니라 사상사적으로도 중요한 고전의 하나이다. 다윈은 진화론의 논거로 자연도태설, 적자생존, 생존경쟁 등 세 가지를 제시 한 바, 기존의 학설인 스펜서의 진화론 학설과 헉슬리의 사상운동과 결부되어 19세기 말에 유럽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의 학설은 자연과학분야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마르크스는 『種의 기원』을 “우리들의 견해에 자연사적 기초를 부여 한다”고 평가했는가 하면, 독재자와 지배층에 의해 다윈 진화론의 기초인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反民主主義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되기도 했다. 『種의 기원』은 발표 당시에도 인간 의식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 근대국가 형성에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이후의 세계사를 결정토록 했지만,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명사관의 기초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지성인들은 현대문명이 그 화려한 외형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내면에 치명적인 암소를 갖고 있다고 진단하며, 나아가 현대문명의 위기를 넘어 붕괴까지 예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문명의 논거인 진화론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검증과 치료를 통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함으로써 현대문명의 병증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윈 진화론에 세 축인 자연도태설, 적자생존, 생존경쟁의 이론을 현장 생태계에 적용해보면 실제와 일치한다. 생물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시적 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이론이다. 그러나 승자만 계속 생존하는 게 아니라 패자도 간고하게나마 생존하다가 다시 경쟁력을 갖추거나 다른 생태계로 옮겨가서 생존을 계속한다는 미시적 관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생물사회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 개체 내면에서도 일어난다. 진화의 원리가 생물과 생물의 경쟁과 탈락이라는 부정적인 상황만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꼭이 외면 생물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내면 생물계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것들은 한 개체의 육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에서도 일어난다. 즉 육체도 진화하고 정신도 진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한 개체가 주위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진화된 개체들이 횡적 연대를 구성함으로서 사회의 진화를 이룬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나 조금씩 쌓인 이 진화의 흔적은 개체들의 유전자에 저장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다윈의 논리대로라면 같은 종 안에서 최후에 생존하는 자는 딱 하나여야만 하고, 다른 종끼리의 생존경쟁 또한 일어나야 한다. 그의 논리대로 추종하면 수많은 종들 가운데 최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논리의 단순화, 목적의 함정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에선 무수한 이종들이 상생공존하고 동일 종 안에서도 크고 작은 수많은 개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윈의 논리를 액면 그대로 적용할 수만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윈 진화론을 원본대로 이용한 마르크스와 독재자들이야말로 생물계의 다양성, 진화의 무원칙성을 간과한 자들이 아닐 수 없다. 진화가 자연도태, 적자생존, 생존경쟁 등의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물 구조나 기능이 이전보다 발달되지 않을 수 없다. 개체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개별적으로 퇴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달한다. 육체도 사회에 적응하지만 정신도 사회에 적응하여 갈등과 투쟁보다는 양보와 타협 쪽을 선호하게 된다. 인류가 오늘날 지구에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리동물의 법칙을 제대로 준수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맹수가 비록 강력하지만 개체별로 독립된 생활을 하고 초식동물들이 비록 유약하지만 번식력이 높아 무리가 많은 까닭은, 맹수는 개체 진화 수준에 머물지만 초식동물들은 개체 진화를 사회진화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일반 동물은 진화의 목표를 자기 생존과 무리 보호에만 두기 때문에 진화가 개체 수준에서 되풀이되지만 인간은 목표를 자신과 함께 가족과 사회에 두기 때문에 사회적 진화가 촉진된다. 고릴라나 원숭이보다도 유약한 인류는 영악한 육체진화와 더불어 상대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사회적 진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도덕심과 자비심에까지 정신의 진화가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문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특수한 경우에는 전쟁을 선택하더라도 평상시에는 평화를 선호하는 성향이 형성되었기에 인구가 팽창하였다. 정신의 이러한 진화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가 반드시 절망적이진 않다고 할 수 있다. 진화라는 말이 갖고 있는 ‘종적으로 앞으로 나아가 질적으로 변화 한다’라는 의미는 변화가 갖고 있는 ‘횡적으로 상태가 바뀐다’라는 의미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진화는 답보나 퇴전이 아니라 한 차원 더 높은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진화에 따라 인류 문명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윈 시대 이후 진화론 탐구가 심화하면서 나타난 드 프리이스(H. De Vries)의 돌연변이론은 하늘에서 별도로 둑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진화의 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진화라면 돌연변이는 그것이 갑자기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전과 이후의 생물이 형태상으로는 이질적이지만 본질상으로는 동질이다. 이러한 돌연변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면 진화이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면 퇴화가 된다. 그런데 돌연변이는 진화에 쓰이지 못한 유전자 찌꺼기들이 어쩌다 간혹 나타날 기회를 얻는 것이기 때문에 진화보다 퇴화가 더 많다. 달리 말하면 진화만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퇴화 역시 자연법칙인 셈이다. 앞으로 수천수만 년 동안, 더 길게는 수억 년 동안 앞으로만 향하는 진화가 계속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가깝게는 인간의 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몸의 구조와 형태를 변화시키더라도 그 변화의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진화가 영구히 계속된다고 할 수 없다. 즉 진화가 한계에 이르면 역진화, 즉 퇴화가 진행되어 마침내 생명 발생 초기 단계에까지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진화가 자연법칙이면 퇴화도 자연법칙이 아니겠는가. 문명 역시 일월에 바래다가 마침내 분자 상태로 돌아갈 것 아니겠는가. 또다시 생명이 발생하고 진화가 이루어지고 문명이 발달할 것 아니겠는가. 해부학적 현생 인류가 출현한지 약 20만 년이다.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고 번성하기 시작한지 2만 5천 년 된다. 인간이 그러했듯 호모 사피엔스 줄기에서 새로운 영장류가 출현할 것이다. 진화든 퇴화든 돌연변이든 수만 년 후엔 이 지구상에 현대인의 직계들은 없을 것이다. 다윈 진화론이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적당하지만 미시적으로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시적으로만 올인한 결과로 그 시기가 수만 년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는 생존경쟁에서 적자생존을 가져오고 패자는 자연도태 되도록 하는 기본 원리로서 다윈 진화론의 토대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反민주주의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되기도 했다.>라는 말은 긍정과 부정의 이중성을 갖는다. 민주주의적 사상에서 보면 가당찮은 말이지만 전제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타당한 말이 된다. 더구나 이 말은 공산주의 사상의 한 축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떠받드는 논리적, 생물적인 근거로 이용되면서 인류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육체와 정신 두 면 모두 優性과 劣性이 있다. 한 개체 내에서도 우열이 구분되지만 개체와 개체 사이에서의 우열은 편차가 심하다. 우성에 의한 열성의 지배가 계속되고 열성은 자연도태 되지만 승리한 우성과 우성 사이에서도 경쟁이 이루어져서 다시 우열이 구분된다. 이러한 우열의 구분과 경쟁은 생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가 승자에 의한 패자 멸살이 아니라 용서와 포용의 현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동물들은 자신 이외의 우성을 용납하지 않고 열성은 전부 복속시켜 지배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동물적인 과거 역사를 탈피하고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시대에 결국 진입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생물들에게서 일어나는 우열의 편차는 본능적인 것일지라도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우열의 편차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철학을 反민주주의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하는 것은 다윈이 세운 진화의 원리와 목적을 어긋나는 것이다. 다윈이 『種의 기원』 序言의 끝 문장으로 “또한 나는 <자연도태>는 변화의 방편으로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라고 쓴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였다면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를 결코 反민주주의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 역사가 진화의 원리에 따라 독재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로 나가는 것이 대세임이 분명한데도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이론적 근거로 삼는 공산주의는 正진화가 아니라 曲진화 또는 퇴화일 수밖에 없다. 물론 19세기 말에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자행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에 대한 분노와 동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들을 지도해나갈 세력의 명분적 근거로서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가 이용되었겠지만, 이후에 각국의 공산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개 과정을 보면 결국 그것이 오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성과 열성에 대한 이론적 차이는 인식했지만 그것이 동물에게는 일반적인 현상이더라도 인간에게는 특수한 경우가 있음을 간과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대적 요청 때문에 사회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성급했다. 그래서 한 세기 만에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하고 말았다. 개체진화의 우열과 사회진화의 우열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사회진화론에다가 개체진화를 강제로 몰입하였기 때문에 사회라는 형식만 강화되고 인간이라는 내용은 왜소해져서 공산주의 자체가 허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학문의 상호 유기적인 구조면에서 보면 인문학이 미숙한 사회과학은 사상누각이 되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우열의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우성이 지배의 전권을 휘두르는 제도가 아니라 열성의 권리를 보장해주는데 묘미가 있다. 동물 세계에서처럼 강자가 약자를 먹거나 지배하는 원리가 아니라 강자는 존엄하되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해주는 것을 가치로 하는 정신적 구조를 발달시키고 있다. 그것은 법과 제도에 의해서 보장되기도 하지만 강자의 높은 의식작용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가 흩어지지 않고 단단한 결속력을 유지한다. 즉 민주주의 사회는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를 인정하되 ‘폭력 지배’보다는 ‘평화 지배’의 형태로 발전하는 사회이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는 열성이 우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사회, 우성이 열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유동 사회이다. 그러한 유동성은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어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독재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는 닫힌 구조이기 때문에 생명력이 소진되어 마침내 사라지고 말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새 물이 들어오고 헌 물이 나가는 열린 구조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한 사상 중에서 가장 유효적절한 사상인 것이다. 설혹 수십 년 후에 인구 과잉과 자원 고갈 문제 때문에 인류 문명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진화의 원리에 따라 인류는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수 엘리트들이 인류를 지도하자는 우성독재론이나 지구 위에 사는 인구를 줄이자는 열성청소론과 같은 극단론이 다시 제기되지 않고서도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다. 우성이 열성을 폭력으로 지배하는 과거역사가 복원되지 않고도 우열이 모두 공존하는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말 당시 유럽 사상계의 화두가 진보와 자유경쟁이었는데, 다윈 진화론은 그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서 유용하게 쓰였으며, 1860년부터 1880년까지 20년 동안 자연도태설의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간은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상업자본주의로 진입한 단계로서 다윈 진화론이 본의 아니게도 유럽 식민제국주의의 대외 팽창, 침략정책의 명분으로 이용되었다. 유럽의 강국들은 우열의 논리로 자기들의 불법과 비인도성을 변명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양심이니 정의니 종교니 하는 것들은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자연법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교양과 예의, 인격과 문화는 유럽 우성의 것이었지 기타 지역 열성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은 물질적 욕구 충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목표에 일치하고,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다윈 진화론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지배하는 논리로서 안성맞춤이었다. 19세기 유럽의 종교, 경제, 철학, 과학은 인간의 양심과 지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인종들의 식민제국주의를 떠받치는 거대한 교각이었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할 적에는 순수한 학문적 목적이었는지 몰라도 사망한 1882년까지 20년 동안 자신의 진화론이 어떻게 변질, 곡용 되는지 현장에서 똑똑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가 진정한 의미의 학자라면 진화론의 변질, 곡용, 오용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거나 실망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문명 전체를 조감하는 인문학적 안목이 미흡한 한 사람의 과학자였기 때문에 자기 조국인 영국의 발전과 백인종의 팽창을 진화의 결과로 받아들여 크게 기뻐하였을 것이다. 결국 진화론이라는 좋은 학문이 국가주의의 기반이 되고 말았다. 다윈은 진화론을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했다. 인간 역시 생물이지만 다른 생물들과는 진화의 차원이 다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의 진화도 일반 생물들과 동일한 패턴을 밟기 때문에 유럽 문명의 우성은 당연하고 유럽인들에 의한 지구 지배가 정당하다는 신념을 가졌을 것이다. 다윈이 개인적으로는 그런 신념을 안 가졌을지 몰라도 진화론의 추종들은 그런 신념을 당연히 가졌다. 그 신념의 결과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 한 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는 물질문명의 팽창, 전쟁과 파괴이다. 그러므로 다윈 진화론이 인류 문명사에 끼친 공도 많지만 과 또한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진화가 유럽 백인종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수십 년 느리지만 여타 지역의 유색 인종들에게도 진행되기 때문에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진화가 지구 차원에서 일반화 되었다. 우성이 제아무리 지배하고 말살하려고 했지만 열성은 차분하게 자기 진화를 이루어 마침내 우성에 대항할만한 역량이 되었다. 백인종의 관점에서 본 20세기의 열성 지역도 동북아시아 지역과 여타 지역의 둘로 나눌 수 있다. 동북아의 한국과 중국은 이미 수천 년의 문명을 가진 국가들로서 비록 군사력분야에선 구미 국가들에게 뒤떨어졌지만 다른 물질문명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정신문화 면에서는 구미 국가들보다 월등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미국과 영국의 똘마니인 일본에 식민지로 전락하고 중국이 구미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수십 년 동안 시달린 까닭은, 무력이 약했기 때문이지만 무보다 문을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강력한 무력을 길렀다면 결코 식민지와 반식민지로 전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은 과거의 공동 경험을 교훈으로 하여 문과 무를 함께 진화시킴으로서 강력한 국력을 이루었다. 나아가 물질문명의 피로와 정신문명의 정체 현상을 보이는 구미 국가들을 추월하여 새로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창조할 역량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그 역량이 더욱 발전하여 21세기 새로운 인류문명을 이루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윈 진화론이 내포한 비합리성과 편협성을 걷어내어 올바르게 해석하여 한층 진화된 이론을 정립함으로서 광란의 근대사를 청산하고 인류가 공존공생 하는 대동세상을 성사시킬 것이다. 2013년 중추에 안동 열락연재에서 쓰다  
156 근본에 대한 물음/권서각 file
편집자
1156 2013-10-15
 근본에 대한 물음 권서각 이루어져야 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날 때, 그리하여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고 골머리가 아플 때 우리는 근본에 대한 물음을 하게 된다. 지금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나와 국정원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 밤 284개 연합 시민단체인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도하는 제8차 촛불문화제에는 4만 개의 촛불이 서울의 하늘을 밝혔다. 지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촛불이 서울광장에 켜지고 있다. 왜 다시 촛불이 켜지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모아져서 국민의 의사로 뽑힌 대표가 통치 권력을 가지는 제도다. 진정한 국민의 대표를 뽑으려면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권력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증거가 드러났다. 막대한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은 국가권력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사건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은 경찰, 검찰, 국회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여 적법하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원세훈과 김용판은 증인선서를 하지 않고 이미 증거가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 증언을 했다. 이로 인해 촛불은 더 늘어나고 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사건 초기 국정원 여직원이 오피스텔에서 인터넷 댓글공작을 하다가 발각되었을 때부터 경찰은 댓글을 단 증거가 없다고 허위발표를 해서 대선에 영향을 주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엉뚱하게도 노무현이 NLL 포기발언을 했다는 발표를 한다. 대통령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놓고도 여당은 시간 끌기로 본질을 덮으려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깨어 있는 사람들은 다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지에 대한 근본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의 대학교수, 신부, 학생, 문화인,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아무리 선언을 해도 소용없으니까 다시 촛불이 켜진 것이다. 유래 없이 더운 날씨임에도 수만의 인파가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언론이 기능한다면 뉴스 첫머리에 화면과 같이 보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 어디에도 촛불문화제에 대한 보도를 보기는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서울광장의 촛불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마땅히 보도되어야 할 것이 보도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제 4부라고 부른다. 언론이 사실보도를 해야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고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어야 올바른 통치자를 선택할 수 있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보도, 진실보도에 있다. 지금 우리 언론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광장에 수만의 시민이 모여서 촛불문화제를 여는데도 침묵하고 있다. 지난 MB정권에서 진실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인을 모두 징계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해직 언론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해직된 언론인은 복직되지 않았고 한직으로 쫓겨난 언론인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가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답답함이 오래 지속될수록 촛불은 더 크게 타오를 것이다.  
155 죽음/고석근 file [1]
편집자
1565 2013-10-08
죽음 하지만 자신에게 두 손 가득 흙이 뿌려질 때는 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을 것이다. - 브레히트,「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이 땅에」중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의사가 아니다. 죽음이 의사다.”라고 말했다. 죽음보다 더 큰 스승이 있을까?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진정으로 진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는 도를 깨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죽을 때의 그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사니 우리들의 삶이 이리도 너덜너덜하고 누추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죽음의 의례, 제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죽음은 추방되었다. 우리는 이따금 문상을 가며 병원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무섭고 혐오스러운 죽음을 만날 뿐이다. 고흐는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캄캄해져야 할 것이다. 죽음의 깊은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갠지스 강의 죽음이 부럽다. 죽음 곁에 늘 삶이 있을 때 삶은 항상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세상 가득 인공별을 띄워 놓았다. 어디가나 별들이 환하게 빛난다. 우리는 그 불빛 속에서 살아간다. 어둠은 없다. 삶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별빛들은 가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삶이 허기진다. ‘죽음이 없다면 이 세상이 온통 죽음으로 뒤덮이는 것(파브르)’이다. 사르트르는 “죽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어느 날 내 삶이 멈추겠지만, 내 죽음이 내 삶을 규정하지 않고, 내가 늘 생의 충동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죽음을 포함하지 않는 삶. 그건 진정한 삶이 될 수 없다. 생의 충동, 이 안에는 죽음과 삶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생의 충동이 별처럼 우리 삶을 이끌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우리는 격하게 생의 충동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때 우리 마음속에 별들이 뜬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의 충동을 죽여 왔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도 도무지 사는 것 같지 않다.  
154 원효의 和諍思想과 大乘論 / 山白 朴 喜 鎔 file
편집자
1871 2013-09-24
원효의 和諍思想과 大乘論 - 은정희 역주『원효의 大乘起信論 疏 ․ 別記』論註 山白 朴 喜 鎔 1. 원효와 『大乘起信論 疏 ․ 別記』 「大乘起信論」은 산스크리트 원본이 없는 탓으로 印度撰述인가 中國撰述인가가 논란되어 오기도 하지만, 대승불교 시대의 후기에 나타난 불교사상서 중 가장 뛰어난 논서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유포된 ‘大乘起信’ 사상을 馬鳴이 논리적 체계를 갖추어 「大乘起信論」을 썼고, 여기에다 원효가 「起信論 疏」와 「起信論 別記」를 보탬으로써 비로소 『大乘起信論 疏 ․ 別記』가 완성되어 신라불교철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책 『원효의 大乘起信論 疏 ․ 別記』는 1977년 海印僧伽學院에서 간행한 『大乘起信論疏記會本』을 텍스트로 하여, 은정희 철학박사가 이기영의 『韓國의 佛敎思想』 ․ 성낙훈의 『韓國의 思想大全集 Ⅰ(元曉外)』 ․ 김탄허의 『懸吐解釋 起信論』을 저본으로 하여 국문으로 번역한 것을 1991년 5월에 <일지사>에서 출간하였다. 은정희 박사는 책의 解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大乘起信論」은 인도에서 그 당시 대립되고 있던 양대 불교사상, 즉 中觀派와 瑜伽(唯識)派의 사상을 지양 ․ 화합시켜 眞과 俗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迷汚한 현실생활(俗) 가운데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행함에 의하여 완성된 人格(眞)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며, 한편 깨달음의 단계(眞)에 이른 사람은 아직 迷汚한 단계(俗)에 있는 중생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임을 주장함으로써 眞俗一如의 사상을 잘 나타낸 논서이다. 원효는 이 「大乘起信論」을 만나자마자 바로 자신의 구도적 학문과 삶의 자세와 너무도 일치함에 크게 감명을 느끼고 연구에 매진하여 7種의 연구서를 냈다. 「大乘起信論」 본문의 구조는 因緣分, 立義分, 解釋分, 修行信心分, 勸修利益分 등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因緣分’에서는 이 논을 짓게 된 이유를 말하였고, ‘立義分’에서는 이 논의 대의, 즉 一心, 二門, 三大를 제시하였다. ‘解釋分’은 앞서의 입의분에서 제시한 一心, 二門을 구체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大乘起信論」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다시 顯示正義, 對治邪執, 分別發趣道相의 셋으로 나뉘어진다. 우선 正義를 드러냄에 있어서 一心(衆生心)을 心眞如門과 心生滅門의 둘로 크게 구분하였다. 心眞如門에서는 如實空, 如實不空 등을 말하여 마음의 淸淨한 面을 묘사하였으며, 心生滅門에서는 阿黎耶識의 覺과 不覺의 二義와 薰習 등을 말하여 마음의 染淨緣起를 밝혔다. 다음으로 邪執을 對治함에 있어, 人 ․ 法 二執의 對治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發心 修行하여 道에 나아감을 분별하는 상에서는 信成就發心, 解行發心, 證發心의 세 가지 발심을 말한다. ‘修行信心分’에서는 앞서의 ‘해석분’ 중의 發趣道相이 不定聚衆生 중의 勝人을 위한 설명임에 비하여 여기서는 부정취중생 중의 劣人을 위하여 四信, 五行 및 他力念佛을 설한다. 마지막 勸修利益分에서는 이 논을 믿고 닦으면 막대한 이익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였다. 원효의 기신론관에서 특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효는 그의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기신론의 성격을 中觀思想과 唯識思想의 止揚 ․ 綜合이라고 판석한다. 즉 「기신론」은 마음의 청정한 면만을 주로 찬탄하고 강조해 온 중관사상과 마음의 염오한 면을 주로 밝혀 온 유가사상을 잘 조화시켜 眞俗不二의 뜻을 밝힌 것이라 본 것이다. 둘째, 원효는 그의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우리의 迷妄한 마음, 즉 無明이 본래의 청정한 마음 즉 진여를 훈습하여 不覺心이 처음으로 일어난 無明業相, 이 무명업상 즉 極微한 動念에 의하여 所緣境相을 볼 수 있게 되는 轉相, 그리고 이 전상에 의하여 경계를 나타내는 現相 등 세 가지 미세한 마음, 곧 三細識이 아라야식(Alayavijnana)位에 해당된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원효는 아라야식의 覺義에 의하여 자성청정한 覺의 상태로 환멸한 후의 本覺의 성격 즉 智淨相과 不思議業相에 대하여 自利와 利他의 두 가지 면을 배대시킴으로써 心源에 도달한 覺者는 깨달은 상태(自利)에 안주하지 말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 노력해야 함(利他)을 역설한다. 결국 원효가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眞俗一如, 不住涅槃의 사상이었으니, 이는 出世間的 自利만이 불교의 진의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깨달음의 세계를 이룩해야 한다(利他)는 대승불교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은정희 박사가 정리한 「대승기신론」 본문의 구조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序分: 歸敬頌 2. 正宗分 가. 因緣分: 造論八因 나. 立義分: 一心, 二門, 三大 心眞如門......二種眞如(如實空, 如實不空)................. 體 心生滅.......阿黎耶의 二義 自 顯示正義.....一心.. 染淨生滅 生滅因緣.........五意, 意識 體 三 心生滅門 六染, 二礙 ․ 生滅相 ....麤細의 相 ․ 義 相 大 다. 解釋分: 染淨薰習 .............................四種薰習 用 對治邪執 ................................人 ․ 法 二執의 對治 分別發趣道相 .........................三種發心 라. 修行信心分 ...........................................四信, 五行, 勝方便(他力念佛) 마. 勸修利益分 ...........................................信謗損益과 勸修 3. 流通分 .................................廻向頌 * 정확한 도표는 첨부물 참조 다음으로, 은정희 박사는 원효의 생애와 저술, 포교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국유사』와 『宋高僧傳』에 의하면, 원효는 신라 26대 진평왕 39년인 서기 617년에 현재 경북 경산군 자인면인 押梁郡 佛地村의 밤나무 밑에서 薛仍皮公의 손자요 談襟乃末의 아들로 태어났다. 兒名이 ‘새털’이라는 의미인 誓幢인 그는 10여세에 출가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 大覺國師 義天이 남긴 詩에 의하면, 백제 땅 전주 孤大山에서 고구려 고승인 普德和尙의 講下에서 「열반경」과 「유마경」등을 배웠다고 하며, 또『삼국유사』朗智來雲條와 釋惠空傳을 보면 朗智와 惠空에게서도 배웠다고 한다.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인용문을 통하여 그가 불교학 전반에 걸쳐서뿐만 아니라, 『논어』, 『노자』, 『장자』 등 유가서와 도가서에도 정통하고 있음을 볼 때,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그의 修學經歷을 짐작할 수 있다. 『三國遺事』에 의하면, 원효는 30세인 646년에 「普譯華嚴經疏」, 「十問和諍論」, 「大乘起信論別記」, 「發心文」, 「名僧集說」 등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여러 문헌에 의하면, 원효의 저서는 100여 종의 240여 편(또는 85 종의 170여 편)으로 알려져 있고, 그 연구 범위도 小 ․ 大乘, 經, 律, 論 등 거의 모든 부문을 다 망라하고 있다. 그의 저술 목록 중에서 가장 분량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唯識系와 律學部門, 그리고 起信論에 관련된 것들이며, 현존하는 것 중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法華經宗要 1권, 大慧度經宗要 1권, 涅槃經宗要 1권, 無量壽經宗要 1권, 金剛三昧經論 3권, 起信論疏 2권, 起信論別記 1권, 二障義 1권, 中邊分別論疏 第2권, 華嚴經疏 第3권, 十門和諍論 斷片. 원효는 染淨無二, 眞俗一如라는 그의 학문적 이론을 통일기인 당시의 신라 사회에서 대중과 함께 몸소 실행에 옮겼던 실천가였다. 불교의 수용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층과 일반 서민층 사이에는 아직도 괴리가 있는 때에, 惠空, 惠宿, 大安 등의 뒤를 이어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지방의 촌락, 街巷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無碍박을 두드리고 無碍歌를 부르면서 교화에 노력하여 불교를 일상생활화시킴으로써 대중들에게 유익한 의지처가 되게 하였다. 원효는 대중 교화의 행각을 마친 뒤에는 失戒와 환속의 의미인 小姓居士가 아닌 불교사상가의 의미인 元曉和尙으로 돌아가 穴寺에서 신문왕 6년인 서기 686년 3월 30일에 70세의 생애를 마쳤다. 2. 해제 (8~16p) (1) 3p 역주자 서문 2행: 「우리나라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 원효」 [논주] 元曉가 있어 신라의 하늘이 밝음은 사실이지만, 혼자만이 밝힌 게 아니라 당대에나 후대에서 義湘과 孤雲 같은 석학들도 함께 밝혔다. 하물며 아직 제대로 그 가치가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이나 시간의 퇴적층에 종적이 묻힌 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신라라는 한 시대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어느 시대에나 해당된다. 그러므로 한 현자가 일군 사상을 액면 그대로 봐야지, 거기에다 수식어를 덧붙임으로써 지성인들로 하여금 오히려 가치를 심상하게 하거나 식상하게 할 수 있다. 수식어가 붙은 채로 시간이 쌓일수록 중생심의 후인들로 하여금 궁금증의 착시현상을 심화시켜 우상숭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여, 마침내 한 현자가 처음으로 하늘을 밝힌 뜻과는 엉뚱한 결과가 생긴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문명사 전체를 통관하여 계속 일어나는데, 그 원인은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동물’인 보통사람들이 ‘사유하는 인간’인 사상가들을 만날 때 갖게 되는 존경심 -기쁨, 믿음, 두려움, 부러움. 시샘 등이 혼재된-이 순수한 느낌 그대로 유지되면 정신적 노고의 부담을 덜고 삶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여러 가지 수식어가 보태어짐과 동시에 개인적 상상과 집단적 구조화가 진행되면서 ‘밝은 하늘’이 다양한 기상변화를 하게 되고, 그 아래에 사는 중생들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지식은 언어와 기억력을 도구로 하여 제 앞에 주어진 그대로 학습하지만, 지성은 비판정신을 축으로 하고 사실을 벼리로 하여 새로운 가치를 포획하려고 한다. 지식인은 기존의 가치관으로 기성의 사상을 추종하나, 지성인은 기존의 가치를 변증하며 기성의 사상을 비판적 분석과 검증을 통해 변화시킨다. 즉 지식은 줄기로서 보수이고 지성은 우듬지로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은 방안에 앉아 상 위에 놓인 물고기를 먹는 사람이고 지성인은 강에서 그물을 들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다. 성장을 두려워하는 나무는 자랄 수 없고 그물질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싱싱한 물고기를 먹을 수 없다. 새물이 솟아나지 않는 샘은 한갓 웅덩이일 뿐이고, 새물이 흘러들어오지 않고 헌물이 흘러나가지 않는 강은 한갓 큰 웅덩이일 뿐이다. 들 다 곧 썩고 마른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생각이 솟아나지 않는 사상계는 묵은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서로 부딪치다가 타버려 재가 되고 마는 한갓 잡탕 도가니일 뿐이다. ‘밝은 하늘’이 다양한 기상변화를 하게 되고, 그 아래에 사는 중생들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은 ‘생각하는 동물’인 보통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인 사상가들에게 있다. 아니 정확하게 분별한다면 ‘사유하는 척 하는 인간’인 ‘고급지식인’들에게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부러움과 시기심이란 양날의 칼로 재단하여 자기들의 장식물로 만든다. 자기의 장식물이 더 화려하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식어, 더 뻥튀긴 존칭어들이다. 그러한 화려한 장식에 혹하여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중생심들을 기름으로 하여 ‘고급지식인’이 생존한다. 그러므로 학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은 기존의 가치와 기성의 사상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식인과 지성인의 중간 단계인 ‘고급지식인’이다. 한국문화사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큰 해악을 끼친 계층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은정희 박사가 ‘고급지식인’이란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 원효’라는 말 보다는 ‘우리나라가 낳은 훌륭한 불교사상가 원효’ 정도의 표현이 알맞지 않을까 한다. ‘불세출의 천재’라는 말은 학문적인 표현이 아니라 영웅주의와 국가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로서 자칫 우상화의 빌미가 될 수가 있다. 화장과 수식어를 모두 걷어낸 맨얼굴을 봐야 그 인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원효를 한국정신사에서 신라의 한 하늘을 밝힌 우수한 불교사상가 중의 한 사람으로 봐야지, 과도한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은 원효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게 할 수 없는 선입견이 되기도 한다. (2) 11p 9~12행: 「그는 불교사상을 연구함에 있어 어느 一宗, 一派에 구애됨이 없이 “萬法이 一佛乘에 총섭 되어야 하는 것은 마치 大海 중에 일체 衆流가 들어가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금강삼매경론)고 하여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의 상호대립적인 교의를 다 융회하여 一佛乘에로 귀결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뭇 경전의 부분적인 면을 통합하여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하고, 불교의 지극히 공변된 뜻을 열어 모든 사상가들의 서로 다른 諍論들을 和會시킨다”(열반경종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和諍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논주] 원효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和諍의 방법에 의하여 眞俗不二의 사상을 나타내려 한 대표적인 것으로 「大乘起信論 疏」와 「大乘起信論 別記」를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은 30세인 646년에 「普譯華嚴經疏」, 「十問和諍論」 등과 함께 썼다. 당시의 동북아 정세는 신라, 고구려, 백제가 상호 간에 치열한 전쟁을 통해 통일을 선접하려고 하는 비상 시기였다. 또한 세 나라는 각기 당나라 세력을 이용하기 위하여 치열한 외교전도 병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삼국 상쟁의 시대에서 살고 있는 원효가 승려 신분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평화주의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불교에서 찾아 좀더 심화시켜 불교사상으로 만든 것이 和諍思想이다. 또한 668년에 고구려 멸망과 676년에 당나라 안동도호부의 요동 故城 옮김으로써 삼국통일이 완성됨에 따라 삼국 유민들의 통일체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하여서는 和諍思想의 강화가 더욱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30세 때의 和諍思想을 좀 더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 「金剛三昧經論」과 「涅槃經宗要」는 원효가 50대인 삼국통일 직후인 670년 전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和諍思想은 평화의 시대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전쟁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교사상이라기보다는 국가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책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창 혈기 방장한 38세에서 44세 사이인 서기 654~660년경에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음으로써 태종무열왕의 통일 정책 추진에 음양으로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승려인 그가 국책에 협조하여 삼국의 유민들을 융합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화쟁사상의 심화와 정립이었다. 결국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갖기 때문에, 화쟁사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제대로 짜여졌다고 보기가 어렵다. 국가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불교사상이기 때문에 불교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여실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집필의 시대적 배경이 이러하다보니, 馬鳴이「大乘起信論」에서 말하고자 했던 본지와 원효가 「大乘起信論 疏」와 「大乘起信論 別記」에서 말하고자 한 취지가 미묘한 차이점을 가질 수가 있다. 물론 馬鳴이 말한 ‘大乘’의 개념을 원효가 정확하게 파악하여 순수한 의미의 화쟁사상으로 발전시켰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처한 시대적, 정치적 입장에서만 해석하여 작위인 화쟁 개념을 윤색하는 도구로 이용했을 수도 있다. 원효가 고승으로 역사에 이름이 크게 남고, 그의 화쟁사상이 오늘날까지 내내 칭송을 받는 까닭은 물론 심오한 불교사상 때문이지만, 그의 왕실에서의 위치와 화쟁사상이 삼국통일에 정신적으로 기여한 공로가 국가로부터 칭송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원효가 분황사 법회에서 강론하고자 준비한 「金剛三昧經論」을 훔쳐간 자는 단순한 시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작위인 화쟁사상’을 거부하는 파들이 아니었는가 한다. 또는 신라의 통일정책에 협조하고 있는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피지배 고구려나 백제 출신의 승려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 당시는 불교가 신라에 들어온 지 약 100년 되는 때로서 갓 수입된 불교 교리에 대한 해석을 두고 다양한 학파들 간에 한창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화쟁론의 대두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적 필요도 있었겠지만 종교적 필요에 의해서도 다양한 불교사상들을 정리할 시점에 이르렀고, 그것을 원효가 화쟁사상을 통해 시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화쟁사상으로 묶어 정리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물건이라면 쉽게 묶어 정리할 수 있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의 정신작용은 쉽게 정리할 수가 없다. 권력으로 한 때는 정리할 수 있지만 곧 풀어져서 다시 복잡, 미묘해지는 게 사상계이다. 세상에는 귀납법도 필요하고 연역법도 필요하다. 더구나 고등 정신작용의 결과인 사상에 있어서는 어느 한 쪽만이 유효적절한 것이 아니라 양 쪽 모두 타당성을 갖고 있다. 화쟁사상은 귀납법만을 선호한다. 비유이지만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참 좋은 말이지만, 바다가 갖고 있는 한 맛이 반드시 진리인 것은 아니다. 또 이 말은 온갖 물줄기들은 아직 진리가 아니고 바다만이 진리라는 것인데, 이것은 진리의 상대성보다는 절대성만을 강조하는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다. 한 진리만 있어 여기저기에 두루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진리가 있어서 상황에 따라 쓰임새가 각각 다르다. ‘온갖 물줄기’인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 등은 연역법이다. 각각의 주제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개념을 상황에 맞추어 풀어나간다. 小乘과 大乘이 갖는 개인과 사회의 근본은 같다하여도 그 변화는 이질적이다. 相이 性에서 나왔지만 현상은 본질과는 이미 다른 모습이다. 頓과 漸이 수행을 목표로 하는 점은 같지만 이미 실제에서는 차이를 갖는다. 이것들은 비유하자면 한 줄기 나무와 같다. 아랫부분은 기본이고 윗부분은 성장, 즉 변화이다. 小乘과 性, 漸은 기본이고 大乘과 相, 頓은 변화이다. 大乘과 相, 頓이 小乘과 性, 漸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달라져서 마침내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이 된다. 그 변화된 모습이 기본과는 다르지만, 애초에 기본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기본이 뚜렷해야만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小乘과 性, 漸의 개념을 변화인 大乘과 相, 頓과 분변해야 한다. 그러므로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 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방법은 귀납적이 아니라 연역적이어야 한다. 화쟁사상과 같이 각각의 개념들이 갖는 고유성을 뭉뚱그려 묶어 낯선 공통성으로 장식하는 귀납법이 아니라 각각의 개념들이 갖는 고유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연역법이 보다 자연스러운 인식을 갖도록 할 것이다. ‘중화융합과 一佛乘에 총섭’이란 말은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말이지만, 자칫하면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 등이 가진 본래의 개념을 모호하게 하여 변화무쌍한 진리를 인식하는데 있어 오류를 초래할 수가 있다. 性 ․ 相은 본질과 현상의 문제이고 漸 ․ 頓은 수행 방법의 문제이며, 小 ․ 大乘은 개인과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호 대립적이 아니라 상호 연관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性 없는 相이 없고 相 없는 性은 준비이며, 漸이 쌓여서 한 순간에 발효하는 것이 頓이다. 小乘이 충실하면 저절로 大乘이 된다. 이렇게 한 줄기 나무처럼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차이일 뿐 서로 이어져 있다. 승려들과 문중, 사찰에 따라 교리의 차이, 주장의 차이, 실천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각기 아랫부분에서 난 가지와 윗부분에서 난 가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지가 있어야 나무가 살 수 있듯이 性漸小 부분에서도 다양한 논리의 가지가 돋아서 뻗어가고, 相頓大 부분에서도 다양한 논리가 펼쳐짐으로써 불교철학이 한층 풍요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지들 모두가 한 줄기에서 나왔음을 잊지 않아야지, 근본을 잊어버리고 말단만 고집한다면 결국 근본이 고사하여 마침내 모든 가지들이 죽을 것이다. 원효의 화쟁론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각 부분에서 난 가지의 차이에 집착하여 줄기 전체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불교계가 격심한 교리 갈등을 겪고 있었기에 원효가 화쟁론을 주창했겠지만, 반드시 교리 갈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 즉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된 승려들 간의 파쟁이나 사찰들 간의 세력 경쟁 때문이었을 수가 있다. 性 ․ 相, 漸 ․ 頓, 小 ․ 大乘에 대한 교리는 이미 초보적인 것으로 대부분의 승려들이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상호 대립적인 갈등이 있었다면 불교사상계의 수준이 한참 미흡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데에도 원효가 새삼스럽게 화쟁론을 주창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적시하기 보다는 다른 목적을 띄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3. 대승기신론 소 ․ 별기 (권1) (17~98p) (1) 19p 7~11행: 「第一標宗體者 然夫大乘之爲體也 蕭焉空寂 湛爾沖玄,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 在言裏也 四辨不能談其狀, 欲言大矣 入無內而莫遺 欲言微矣 苞無外而有餘, 引之於有 一如用之而空 獲之於無 萬物乘之而生, 不知何以言之 强號之謂大乘」 [음역] 「제일표종체자 연부대승지위체야 소언공적 담이충현, 현지우현지 기출만상지표 적지우적지 유재백가지담, 비상표야 오안불능견기구 재언리야 사변불능담기상, 욕언대의 입무내이막유 욕언미의 포무외이유여, 인지어유 일여용지이공 획지어무 만물승지이생, 부지하이언지 강호지위대승」 [논주] 먼저, 은정희는 다음과 같이 국역하고 있다. 「처음 종체(宗體)를 나타내는 것은, 저 대승(大乘)의 체(體)체됨이 고요하여 적막하며, 깊어서 그윽하다. (이 대승의 체가) 깊고 또 깊으나, 어찌 만상(萬像)의 밖을 벗어났겠으며, 고요하고 또 고요하나 오히려 백가(百家)의 말 속에 있다. 만상의 밖을 벗어나지 않았으나 오안(五眼)으로 그 몸을 볼 수 없으며, 백가의 말 속에 있으나 사변(思辨)으로 그 모양을 말할 수 없다. 크다고 말하고 싶으나 안이 없는 것에 들어가도 남김이 없고, 작다고 말하고 싶으나 밖이 없는 것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다. 유(有)로 이끌려고 하나 진여(眞如)도 이를 써서 공(空)하고, 무(無)에 두려고 하나 만물이 이(대승의 체)를 타고 생기니, 무엇이라고 말해야 될지 몰라 억지로 이름하여 대승이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국역해 본다. 「제일 먼저 종체를 말하고자 한다. 대체로 저 대승의 본질은 고요하여 적막하며 깊어서 그윽하다. 그윽하고도 그윽하나 어찌 만상의 표현 밖이며(나타나지 않는 게 있으며), 고요하고 고요하나 오히려 백가의 말 속에 있다. 만상으로 표현되나 오안으로 그 몸을 볼 수 없으며, 말 속에 있으나 사변으로 그 모양을 말할 수 없다. 크다고 말하고자 하나 들어가도 안이 없어 남음이 없고. 작다고 말하고자 하나 밖이 없음을 꾸러미하고도(감싸고도) 남음이 있다. 유로 이끌려고 하나 일여의 작용이 공하고 무에 얻으려고 하나 만물이 이것을 타고 생기니, 이것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이름 지어 불러서 대승이라고 한다.」 그런데 몇 구절에서는 기존의 국역이 미흡하여 전체적 의미가 순조롭게 흐르지 못한다. 그 몇 구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존의 국역에서 미흡한 부분을 밝혀 본다. 이 글은 대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앞 구절과 뒷 구절이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먼저,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과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이 서로 짝을 이루며, 다음으로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와 <在言裏也 四辨不能談其狀>이 서로 짝을 이룬다. 이어서 <欲言大矣 入無內而莫遺>과 <欲言微矣 苞無外而有餘>가, <引之於有 一如用之而空>과 <獲之於無 萬物乘之而生>이 서로 짝을 이룬다. 첫째로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과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을 살펴보자. 은정희는 <(이 대승의 체가) 깊고 또 깊으나, 어찌 만상(萬像)의 밖을 벗어났겠으며, 고요하고 또 고요하나 오히려 백가(百家)의 말 속에 있다>라고 역주하고 있다. 주 2)에서 이기영, 성낙훈, 탄허 등 세 사람의 역주를 예로 들었는데, 앞부분인 <玄之又玄之>와 <寂之又寂之, 뒷부분인 <猶在百家之談>,는 네 사람이 동일하나 뒷부분인 <豈出萬像之表>에서는 각기 다르게 역주하고 있어서 의미가 혼란스럽다. 이기영은 <어찌 만상을 표출시킬 수 있으며>로, 성낙훈은 <어찌 만상의 밖에 벗어났으랴>로, 탄허는 <어찌 萬像의 밖에 벗어나며>로, 은정희는 <어찌 만상(萬像)의 밖을 벗어났겠으며>로 각각 국역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한자는 ‘出’과 ‘表’이다. 이기영은 둘을 합하여 ‘표출’로 보나, 성낙훈, 탄허, 은정희는 ‘出’을 ‘벗어나며’로 보고 ‘表’를 ‘밖’으로 보는 점은 같으나, 조사에서 성낙훈과 탄허는 ‘에’로 쓰나 은정희는 ‘을’을 쓰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원효가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후 문맥을 통해 살펴보면, 분명 (이 대승의 체가) 현묘하고도 현묘하기 때문에 마치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쉬우나 사실은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이 그 현묘함의 표상이라는 것이므로 네 사람이 국역한대로는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선 ‘表’는 ‘밖’이 아니라 나타남, 즉 ‘표현’이어야 ‘出’이 갖는 ‘벗어나다’가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 세 사람의 ‘만상의 밖에(을) 벗어나며’라는 역주는 도저히 뜻이 통하지 않는 비문성을 갖는다. 어찌 만상의 밖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만상의 밖이란 무엇이며 어디인가 하는 문제, 어떻게 벗어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역주대로라면 대승은 몇 차 방정식을 푸는 듯한 매우 난해한 논리로서, 현실적인 간단명료한 논리로 구성된 대승사상을 지향하는 원효의 뜻과는 달리 엉뚱한 지적 유희에 머물기 쉽다. 그래서 어렵게 읽을 것 없이 원문 그대로 <어찌 만물의 표상을 벗어나겠느냐>, <어찌 만물의 표상 밖이겠느냐>, 즉 <그 현묘함은 만물에 그대로 나타난다>라고 읽으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에서 ‘非像表也’가 문제이다. 이기영은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로, 성낙훈은 <만상의 밖이 아니건만>으로, 탄허는 <像 밖이 아니건만>으로, 은정희는 <만상의 밖을 벗어나지 않았으나>로 각각 국역하고 있다. 이처럼 국역이 다른 까닭은 ‘非’ 자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이다. 네 사람이 이 구절에서 만큼은 서로 다른 국역을 하고 있어서 이 문단의 전체적인 뜻이 난조를 보이고 있다. 이 ‘非’를 ‘아니면’으로 읽으면 뜻이 풀린다. 즉 <만물의 표상이 아니면> 또는 <만물로 나타나지 않으면>이 되어 이어서 오는 <오안으로 그 몸(현묘의 체현, 즉 대승)을 볼 수 없으며.와 어울린다. 이렇게 하여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는 앞에서 말한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를 강조하는 말이 된다. 이어서 오는 <在言裏也 四辨不能談其狀>에서도 ‘在言裏也’가 혼란을 가져온다. 이것을 이기영은 <또 말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로, 성낙훈은 <언설의 안에 있으나>로, 탄허는 <말 속에 있음이여>로, 은정희는 <백가의 말 속에 있으나>로 읽는다. ‘在言裏’를 앞의 ‘猶在百家之談’에 이어서 직역하면 <백가의 말 속에 있다>가 된다. 그러나 이대로 읽으면 이어서 오는 <四辨不能談其狀>의 ‘사변으로 그 모양을 말할 수 없다’와 상충한다. 그런데 원효가 앞에서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라고 말한 취지에 이어서 생각해 보면, <고요하고 고요함>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낸 말이 ‘百家之談’이기 때문에 ‘四辨’은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구체적인 말’이란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이어서 읽어보면 <백가의 말 속에 있지 않으면 사변으로 그 모양을 말 할 수 없다>가 된다. 앞의 ‘非’를 이 두 대구 모두에 적용하면 문의가 활연하게 풀린다. 다음으로, <欲言大矣 入無內而莫遺>과 <欲言微矣 苞無外而有餘>에 대한 국역은 네 사람이 같은데 대승이 무한하게 크기도하고 지극하게 작기도 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두루 들어있다는 존재론적 측면을 말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引之於有 一如用之而空>과 <獲之於無 萬物乘之而生>는 대승의 작용론적 측면을 말하는데, ‘之’는 주체인 대승이며 ‘有’와 ‘無’가 가상의 목적, ‘空’과 ‘生’이 실제의 변화이며, ‘一如’가 본질이고 ‘萬物’이 현상이다. 또한 ‘引’과 ‘獲’, ‘用’과 ‘乘’이 작용이 된다. 은정희의 <유(有)로 이끌려고 하나 진여(眞如)도 이를 써서 공(空)하고, 무(無)에 두려고 하나 만물이 이(대승의 체)를 타고 생기니>라는 국역대로 읽어도 무난하나, 그 뜻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유에서 그것(대승)을 이끌어도 진여가 그것을(대승) 사용하여 공이 되고 무에서 그것을 얻고자 해도 만물이 그것을 타고서 생한다>로 읽을 필요가 있다. 대승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에 대하여 원효가 말하고자 한 바를 살펴보면, 대승은 어느 한 곳에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으로 ‘有’와 ‘無’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一如’라는 본질과 ‘萬物’이라는 현상의 양쪽 벽 사이를 오고간다는 것이다. 대승을 ‘有’에 두면 일여가 곧 대승에 작용하여 공으로 만들고, 대승을 ‘無’에 두면 만물이 곧 대승을 타고서 생겨 번성하게 되니, 대승이란 물건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음이다. 이 ‘大乘’이란 말은 곧 ‘道’라는 말인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원효는 大乘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사유를 펼친다. 「대승기신론」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노장사상이 담긴 어구에서 볼 수 있듯이 원효는 자기 논리를 전개하는데 있어 노장의 견해를 차용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선을 긋고 있기도 하다. 노자가 ‘玄’과 ‘寂’을 처음과 끝이 있는 평면으로 본다면 원효는 그것을 회전하는 입체로 본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현적이 무형이라면 원효의 현적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은 두 사람이 생존한 시대적 배경에서 찾아야 한다. 노자는 춘추전국시대를 간고하게 살면서 본질을 추구하는 무위와 은둔 지향이었으나, 원효는 30세인 한창 시절인 서기 646년 삼국통일 준비기에 공주의 남편으로 풍요하게 살면서 본질과 현상의 양면을 함께 보고 취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원효와 노자는 대승, 곧 도를 인식하는 관점은 같지만 그 작용과 효용 면에서는 각자 갈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자가 낫다거나 원효가 낫다거나 비교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동일한 인식의 관점을 가졌으나 그것을 푸는 과정에서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에 알맞도록 변용하였을 따름이다. 노자는 철저한 개인적 삶의 태도를 통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법을 제시하였고, 원효는 시대와 민중을 함께 품어나가자는 사회적 삶의 태도를 통하여 현실계를 화엄세상으로 변화시키자는 의지를 제시한 것이다. 원효는 본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인식의 무게 중심을 실천적 현상에 두는 현실주의자였다. 삼국통일의 국책에 적극 협력하여 화쟁사상을 주창하여 국력을 결집하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무애행을 펼쳐서 난후의 혼란한 민심을 수습한 실천철학 면에서 뿐만 아니라, 대승의 체가 깊고 고요하나 ‘萬像之表 ’와 ‘在百家之談’을 벗어나지 않는다며 현실적 실천성을 강조하는 대승 개념에 대한 정의에서도 볼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一萬의 말들은 ‘大乘’에서 나와 화려하게 피다가 다시 ‘大乘’으로 돌아갈 것이다. 즉 대승은 인식의 어느 한 점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씨앗이다가 폴이다가 다시 씨앗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계속>  
153 꿈과 직업/고석근 file
편집자
1317 2013-09-04
꿈과 직업 사람들은 늘 내게 물어요 “넌 뭐가 될래? 의사, 댄서, 잠수부?” 사람들은 늘 나를 괴롭혀요 “넌 뭐가 될래?” 마치 내가 나 아닌 게 되길 바라는 듯이 - 데니스 리,「넌 뭐가 될래?」중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들어왔다. “네 꿈은 뭐야?” 그러면 우리는 무슨 근사한 직업을 댔다. “판검사요.” “과학자요.” “스포츠 선수요.” “연예인이요.” 하지만 직업이 꿈이 될 수 있을까? 직업이 꿈이라면 왜 그 많은 꿈을 이룬 사람들이 불행하게 살아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난치병으로 죽어간 사촌 언니를 보고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의대에 가지 못하고 평범하게 사는 주부가 되었다. 그녀가 의대에 가기 위해 열심히 한 공부는 그녀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단지 입시에 합격하기 위해 한 공부는 불합격하는 순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녀가 아픈 사람을 낫게 하겠다는 꿈을 가슴에 안고 공부를 했다면 그 공부는 그녀가 어떤 길을 가건 그녀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의대에 가지 않더라도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일과 관련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녀가 아픈 사람을 치유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갔다면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이다.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음악을 좋아했더라면 음악으로 치료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그녀는 음악 치료의 대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오로지 ‘의대 합격’이라는 화두에만 매달렸기에 그녀의 잠재력은 입시 위주의 공부에만 한정되어 발현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시험에 실패하자 그녀는 다른 것은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녀가 설사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훌륭한 의사가 되었을까? 의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았더라도 그녀는 올바른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훌륭한 의사가 되는 못했을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면 그녀의 뜻과는 다르게 그녀는 무능한 의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은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한다. 자신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힘. 솟구쳐 올라오는 힘. 이런 힘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어떤 직업이라는 꽃을 활짝 피우게 될 것이다. 그 꽃은 사람들에게 짙은 향기를 뿜으며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152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 혹은 멸종/산백 박희용 file
편집자
1522 2013-08-24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 혹은 멸종 산백 박희용 「우리도 결국은 포유류의 일종이며, 모든 생명체는 자연이라는 화려한 축제에 초대된 손님이다.」 - 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사라진 후, 지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인류와 함께 사라져갈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기게 될 유산은 무엇인가? 지구가 품고 있는 자원이 한정임을 빤히 알면서도 풍요한 물질생활에 대한 욕망 속으로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가는 인류. 멀지 않은 장래에 물질자원이 고갈되면서, 타인의 소유물과 타국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침략으로 대량 살육이 자행되든지 핵전쟁이 터지든지 환경오염 때문에 불치병이 들든지 간에 인류의 멸종이 도래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각국의 지성인들이 인류 멸종이란 참화를 피하자고 아무리 경고해도, 대중들의 귀는 이기적 물질 획득 경쟁 쪽으로 열려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성적 상호 타협에 의해 경쟁과 투쟁이 통제된다 해도, 결국은 각종 요인에 의한 DNA의 변이와 퇴화에 의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정자와 난자가 쇠약해져서 마침내 몰락 또는 멸종이 오고야 만다. 진화가 반드시 더 편리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 법, 진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오히려 퇴화의 방향으로 전환하여 수백만 년 전의 영장류 초기 상태로 환원하게 될 수도 있다. 앨런 와이즈먼이 역저 『인간 없는 세상』에서 인간 문명이 사라진 지구의 모습을 어디까지나 경고성 가상으로 제시하면서, 세계 모든 인류가 ‘인간 있는 세상’을 더욱 잘 가꾸어나가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지만, 그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체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45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이미 수많은 종이 멸종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멸종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부동의 법칙이 될 수가 없다. 지구 위에서 번식하는 한 가지 생물 종일뿐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구의 제왕으로 온갖 자원을 독점하여 낭비하며, 수 없이 많은 다른 종들을 억압, 추방, 살해, 멸종시키는 비행을 저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을 훼손하고 오염시켜 모든 생물들로 하여금 병사하여 멸종케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뿐만 아니라 다른 종들 모두가 비참한 멸종을 피할 수가 없다. 짧게는 수백 년, 길어야 수천 년 미래 안에 지금 볼 수 있는 종들은 지구에서 사라지고, 오염된 지구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생물들이 출현할 것이다. 대멸종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 없는 세상’이 경고성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상이 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운이 좋다면-나 멸종은 곧 인류 문명의 소멸로서 지구는 수천만 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수백, 수천만 년이 흐르면 다시 진화가 반복되어 고급 지능을 갖춘 생물이 출현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소모한 물질은 분자 상태로 흩어졌다가 다시 무기물과 유기물을 형성하여 다양한 자원을 재현할 것이고, 고급지능생물은 그 자원을 활용할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인간 없는 세상’일 뿐이지 ‘생물 없는 세상’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의식 있는 지성인들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멸종을 예감하며 방지책을 세우고자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상누각일 뿐이고, 인구 증가 - 한없는 물질 욕구 - 자원 고갈 - 환경오염 - 대량 살육 전쟁 - 문명 붕괴 - DNA퇴화 등의 절대적 요인 때문에 종의 멸종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이다. 과학을 발달시켜 외계 자원을 끌어 쓰거나 외계로 이주한다 해도 그것은 소규모일 뿐 인류 전부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문명인답게 다양한 방지책으로 수백, 수천 년 간은 호모 사피엔스의 외형을 유지한다 해도 환경 오염과 식품 오염이란 치명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DNA의 변이와 퇴화는 도저히 막을 수 없어 결국은 멸종에 이를 수밖엔 없다. 그러나 빤히 알면서도 멸종의 화를 당할 수는 없는 일,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이고 국민이고 지구촌 주민인 우리 인류의 과거, 현재의 모습이 무궁한 미래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방지책을 함께 생각해 보자. 먼저,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인구 증가, 핵전쟁 등으로 생길 인류의 멸망을 막거나 최소화 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인간 지성의 진화뿐이다. 지능이나 지식의 발전만을 강조한 지금까지의 평면 확장적인 문명 의식에서 벗어나 입체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탐욕과 과시를 근거로 하는 번영과 행복이 내포하는 치명적 위험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통찰력을 갖춘 지성의 발전이 필요하다. 대중들의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지도층 엘리트들의 영민한 지성-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에 근거한-이 주류를 이루어야만 사회가 건강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다. 엘리트들이 먼저 내적 자각에 의한 검소와 근면이 실천되어야 하고 외적 실천에 의한 사회적 형평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중들이 믿고 따르게 되어 인간 지성의 일반화가 확산된다. 다음으로 필요한 조치는 산아제한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이 향상되면서 인류는 자연 생물계의 평형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구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여 사용함으로써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미 개체수 과다로 하여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문명의 붕괴를 막는, 또는 지연시키는 가장 시급한 방법은 인구제한이다. 지구상에 살아가기에 적당한 인구수를 산정하고, 각 가정에서 1 ~2명의 자녀를 낳아 잘 키우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산아제한이 잘 되고 있으나 후진국에선 안 된다는 점이 큰 문제점이다. 후진국일수록 동물적인 측면이 강하여 임신과 출산을 자연 그대로 하고 있다. 후진국 사회에선 피임 대책 없이 그냥 섹스를 해서 낳은 아이들이 많아지고, 선진국 사회에선 선별해서 낳아 기르는 아이들도 차츰 감소해 지구 전체적으로는 지역적 편차가 심하게 발생한다. 한 세기 안에 선진국 인구는 극소수이고 후진국 인구가 절대 다수가 되어 고급 문명보다는 대중 문명이 강화될 것이고, 생명의 원리에 의해 결국엔 선진국 고급 문명이 쇠락하고 말 것이다. 특히 기독교와 천주교 등의 종교에서는 낳는 대로 모두 길러야 한다는 교리 때문에 불임과 낙태를 범죄시하고 있어서 인구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 주장은 구시대적 종교 생명관이다. 현대적, 과학적, 합리적인 생명관은 생명을 일단 출산 이후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 정자 기간, 난자 기간, 수태 기간 동안은 생명을 위한 준비기일 뿐이다.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욕망이 만든 모든 잉태를 존중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하되, 생명 선별권을 부모와 사회가 가져야 한다. 생명에 대한 개념 정의가 확실해져야 하고, 생명 현상을 자연력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인위적 통제가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검증과 통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과학이 도리어 폭군이나 소수 집단에 의해 생명을 소멸시키는 악역을 맡게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물질적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활용이다. 지구 역사 45억 년은 생물의 발생과 진화의 역사이다. 생물은 물질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생물과 물질은 동체이다. 그러므로 물질적 욕망은 일정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한 물질적 욕망이 발동하여 현대문명이 이루어 놓은 모든 업적들-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또는 군사적인 것 모두-은 생물인 인류의 위대한 성과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문명은 극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성인들은 지금이 인류문명의 극성기임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붕괴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화를 불러 일으켜 문명의 붕괴뿐만 아니라 결국 인류 멸종에 이른다고. 정말 그럴까? 아니다, 인간은 원래 생물이므로 생물의 운명답게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 자체를 백안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게 아닐 수 없다. 지성인들은 인류가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문명의 붕괴는 곧 다가온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먹고 마시고 즐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인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서도 생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문명의 붕괴를 막는 방법이 ‘물질적 욕망은 죄악이므로 버려야 한다’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물질적 욕망은 생물의 본질이므로 존중되어야 한다. 단 사회적 조건에 알맞도록 욕망하여야 한다.’라는 적극적 개념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누구나 문명의 붕괴와 인류 멸종을 바라지 않는다. 붕괴와 멸종을 피할 수 있는 방법, 물질적 욕망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중요한 것은 물질적 욕망에 대한 제한적 접근이다. 거기에는 개체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 두 곳에서의 조절과 통제가 필요하다. 개체적인 면에서는 정신적 만족을 물질적 가치에서 구하지 말고 자원 소유와 소비의 자발적 제한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가치에서 구하는 지적 성숙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지성인들에 의한 사회적 계도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인간의 마음과 지능이 아직 진화 도중에 있으므로 다양한 교육과 사회적 운동에 의해 정신문화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정도가 향상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정한 인구 증가, 검소한 물질 자원 이용, 갈등과 전쟁의 쇠퇴, 환경 정화, 음식 정화 등이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DNA의 病 변화와 퇴화는 방지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때는 건강한 DNA를 확보하기 위하여 하는 수없이 DNA 분석과 편집, 인공 수정과 배아, 출산 등이 일상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호모 시피엔스 사피엔스의 마음과 지능이 현상 유지로 인구 증가 - 한없는 물질 욕구 - 자원 고갈 - 환경오염 - 대량 살육 전쟁 - DNA퇴화 등이 지속되면 인류의 미래는 갈수록 어두워진다. 반대로 고급의 마음과 지능이 입체화 된 지성의 힘으로 그러한 장애를 극복한다면 인류의 미래와 문명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을 잘 읽고 인류의 미래와 문명의 발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앨런 와이즈먼이란 인간이 적정한 인류 수효가 10억 정도라고 계획하는 유대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동양의 한반도 남부 영남 땅에 사는 어느 寒士에게 든다. 「최초의 아메리카인들의 후손 대부분이 유럽인과 접촉한 지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끔찍하게 죽어버린 암울한 사실을 말한다. 스페인인들의 칼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 대부분은 아무 항체가 없었기 때문에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백일해 등의 구세계 병균에 쓰러지고 말았다. 스페인인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약 2,500만 명이 살고 있었다는 멕시코의 경우만 해도 100년 뒤에 살아남은 사람은 100만 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다른 종이 멸종될 때까지 결코 굽힐 줄 모르는 우리의 킬러 본능만이 아니다.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본능도 문제인 것이다. 1970년에는 케냐 전체에 2만 마리나 퍼져 있던 검은코뿔소가 이제는 4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동양에서 약으로 쓴다면서 뿔 하나에 2만 5,000달러에 거래되고, 예맨에서 기념용 칼의 손잡이에 소용되면서 모조리 밀렵당했다. 케냐인들은 1953년 애버데어 숲에 들어가 마우마우 반군 게릴라 조직을 결성하고 백인 지주들에게 테러 공격을 가했다. 영국은 본국에서 몇 개 사단을 파견하여 애버데어와 케냐 산을 폭격했다. 수천 명의 케냐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목숨을 잃은 영국인은 100명 정도였다. 1963년에 휴전협상이 이루어졌고, 압도적인 다수 의견에 따라 ‘우루(독립)’를 성취했다. 흑백의 대비가 선명한 콜로부스원숭이의 수염 텁수룩한 용모는 분명 불가의 승려와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동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이 실려 간 목적지는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라비아였다. 케냐 해안의 몸사바는 19세기 중반까지 인간의 육체를 실어낸 선적항이 되었다. 총부리를 들이대고 물건을 포획하기 위해 중아아프리카로 몰려온 아라비아 노예 상인들의 마지막 행선지이기도 했다.」 「영국인들이 노예 매매를 그만둔 19세기 말까지, 아프리카 중앙 평원에서 몸바사의 경매장에 이르는 상아와 노예의 운반로에서 죽어간 코끼리와 인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극동에서 사치품에 대한 애호가 뜨거워졌는데, 그들이 원한 사치품에는 상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아에 대한 욕심은 여러 세기 동안 노예 매매에 대한 투자를 자극했던 욕망을 능가하지 않았던가. 제2차 세계대전 역사가라면 중국이 미국의 고철을 다 사들이는 목적에 대해 매우 우려하며 의심할 것이다.」 좋은 책 『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 당신이 다양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빚어낸 현란한 문장으로 엮은 한 권 책에서 물질문명의 붕괴와 인류의 멸종을 근심하기 전에 당신의 조상인 백인종, 그 중에서 앵글로 섹슨족이 저지른 죄업에 대한 사죄와 참회가 정중히 이루어져야만 진실로 인류의 미래를 근심하는 지성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의 왜곡된 물질문명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누구에 의해 이용되었는지, 양식 있는 학자라면, 아니 의식 있는 저널리스트라면 정확히 보아야 하고 정확히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 남부의 반이 넘는 면적의 땅에서 평화스럽게 살던 테즈메이니아인들이 왜 멸종했는지 사실대로 증언해야 하지 않을까?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들이 왜 어떻게 살육 되었는지 정확하게 증언해야만 옳은 지성인이라 일컬을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북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수많은 인류가 누구에 의해 수백 년 동안 피식민의 고통을 겪었는지, 일본이 누구에게서 침략을 배워서는 그것을 아시아 이웃 인류들에게 써먹었었는지 정확하게 통찰해야만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 2차 세계대전이 어느 인종에 의해서 발발되어 수천만 인류가 살상 당했으며,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지구 위를 돌아다니며 약소국의 물질을 수탈해서는 어디로 가져가는지를 분명하게 규명해야만 인종을 초월한 지구주의자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보태어 불교에 대한 이해, 극동 나라 사람들의 정신문화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향상시켜야 하지 않을까? 앨런 와이즈먼, 당신의『인간 없는 세상』이 ‘유색 인종 없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미래 인류의 행복’을 목적한다면, 많은 문장을 수정, 삭제해야만 하리. 2013년 8월 24일 안동 열락연재에서 쓰다  
151 말의 인플레이션/권서각 file
편집자
1464 2013-08-20
말의 인플레이션 사람만이 말을 사용할 줄 안다. 어떤 이들은 앵무새도 말을 하지 않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앵무새의 그것은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흉내 낼 따름이다. 침팬지도 200여 가지의 소리를 내서 의사소통을 하지만 그것은 다만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는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되는 음성으로 표현되며 문법체계에 의해 의미를 생성한다. 인간은 언어를 가졌기에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만약 인간이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면 결코 개보다 낫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신체적으로 다른 동물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등하다. 신발이 없으면 걸을 수도 없으며 옷을 입지 않고는 추위를 이길 수 없다. 집이 없으면 잠도 잘 수 없다. 개는 신발 없이도 옷 없이도 개집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부리며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말 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호모 로퀜스(Homo loquens)라 한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 생각한다는 얘기다. 말이 없으면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담는 그릇이다. 그가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사고방식이 결정된다. 거친 말을 사용하면 심성이 사납고, 고운 말을 쓰면 심성이 곱다. 바른 말을 쓰면 생각이 바르고 잘못된 말을 쓰면 생각도 비뚤다. 일찍이 공자는 그 대상에 맞는 말을 사용해야 한고 했다. 말을 보고 말이라 해야 하고 사슴을 보고 사슴이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는 어떤 사물을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말은 하나밖에 없다는 일물일어설(Single word theory)을 말하기도 했다. 이것을 이것이라 하고 저것을 저것이라 했을 때 사회도 정상적인 흐름을 가질 수 있다. 말의 쓰임이 올바르지 못하면 그 사회도 위기를 맞게 된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하는 사회는 끝장난 사회다. 만해 한용운의 ‘님’은 절대자 혹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님’이라는 말은 문인들 사이에서 동료 문인에게 저서를 증정할 때 책갈피에 ‘아무개 님’이라고 쓰면서 차츰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님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던 사람은 일부 문인들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병원에서 대기하는 환자를 부를 때도 ‘아무개 님’이라 한다. 님의 숫자가 환자의 숫자만큼 많아졌다. 회사 이사회에서 대표로 선임된 사람을 사장이라 한다. 요즘은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님이다. 무작위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사랑합니다.’라는 말,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 쓰던 말이다. 교사의 경험이 있는 분들 가운데 자기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 내 제자야’ 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제자의 상대편에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를 제자라고 부른 다면 그는 스스로를 스승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스승이라는 말은 참으로 성스러운 말이다. 그래서 공자도 퇴계도 스스로 스승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스승이라는 말은 그를 진정으로 우러르는 제자가 쓸 수 있는 말이다. 나날이 말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 전화 속의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거짓말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이득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거짓말이 참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사회는 말의 질서가 무너진 사회다. 국정원 여직원이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오피스텔에서 일하다가 들켰다. 스스로 안에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문밖에는 경찰, 시민, 선관위 직원 등이 있었다. 이를 두고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감금이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사회에 희망을 걸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