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3호...
   2019년 1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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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석근 file
편집자
1215 2013-12-06
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옳은 것도 놓아 버리고 그른 것도 놓아 버려라 - 원효,「다 놓아버려」중에서 한 중년 여인이 백화점에서 이웃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유모차에 종이 바구니들이 가득 있더란다. “이게 뭐야? 뭘 이렇게 많아 샀어?”하고 물어보니까 그 아주머니가 “기저귀 버리려고 가져왔어.” “응?” “이 백화점에서 많이 사주니까 그래도 돼.” “참, 그 집 잘사는데요. 왜 그러죠?”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 다들 ‘그녀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럴 때도 우리는 ‘옳다, 그르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무심히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음, 내가 그녀를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군.’하고 자신의 마음을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어찌 부자가 저럴 수 있나?’하고 ‘그녀를 비난하는 마음’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래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다보면 무슨 일로 인해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는 눈이 생긴다. 자신의 마음이 선악을 넘어서 넓어진다. 자신의 넓고 깊은 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그 본래의 마음을 깨달아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올바른 일을 ‘선을 행한다는 생각이 없이’ 행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녀를 비난하고 판단하는 마음에 끌려가게 되면, ‘선행, 올바름’에 집착하게 되고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인해 선악을 판단하는 힘을 잃게 되어 결국은 선을 행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니체는 ‘괴물과 싸울 때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올바른 일, 선행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 가능한 것이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가만히 두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 안다. 흡사 물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자신의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다. 마음을 옥죄게 되면 갇힌 물처럼 썩게 되어 악취를 풍기고 언젠가는 넘쳐흐르며 다른 것들을 해치게 된다.  
160 禪詩와 지구과학/산백 박 희 용 file
편집자
1836 2013-11-24
禪詩와 지구과학 산백 박 희 용 「庚申病中作 경신병중작 海峰有璣 해봉유기 病臥一年頭亦白 병와일년두역백 自羞於學未專工 자수어학미전공 往時萬卷筌蹄業 왕시만권전제업 入海籌砂不見終 입해주사불견종 병으로 누운 지 일년 만에 머리털 하얘지니 스스로 부끄러워라 다 하지 못한 학문 지난 날 만권의 책은 통발과 올무였고 바다 가 모래알 셈하기 끝을 보지 못 하였네」 『禪詩』(玄岩社, 석지현 편역, 1975, 252p) 해봉유기란 분이 뉘신가 회고사가 처연타. 인생은 草露와 같다더니, 뜨거운 血氣와 탱탱한 肉氣가 엉켜 용맹정진 하던 그 시절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깊은 산속 작은 암자 어두운 골방에 병들어 누운 하얀 머리털의 해골만 남아 시 하나 긁적이나. 이 시 <庚申病中作>을 쓴 며칠 후에 海峰有璣 이 인간 조용히 나뭇가지 몇 개 태운 연기처럼 또 다른 우주 속으로 사라졌을 것. 「태양을 중심으로 펼쳐진 팽팽한 인력의 한 판 레코드인 태양계 속에서 50억년 전에 티끌이 굳어진 구름에서 태어나 맹렬한 불길에 벼리어진 지구, 대륙과 해양 형성 이후 40억년 동안 10여 번이나 산맥의 형성시대와 빙하시대를 경험하면서 별이 반짝이는 우주 속을 돌고 있는 지구는 아직 젊다. 그래서 앞으로도 대륙이 침몰하여 해양이 되고 해저가 융기하여 대륙이 되는 천지개벽이 수십 번이나 더 일어난다. 가깝게는 인도 판이 아시아 판 아래로 눌려 들어가면서 히말라야 산맥은 해마다 몇 Cm씩 밀려 올려지고 인도 대륙이 사라진다. 에디오피아 지역의 아프리카 대륙이 둘로 쪼개진다. 앞으로 3~10억년 후에 태양을 빛나게 하는 수소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태양이 서서히 팽창하여 15억년 뒤에는 오리온성좌의 베텔지우스나 안타레스 같은 적색거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후 수십억년 동안 80~100배나 팽창한 태양은 수성과 금성을 금방 불태워 삼키고 지구와 화성을 서서히 불태우다가 마침내 삼켜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곤 수축하여 우주 속에 검은 한 점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세계는 지구의 시간에서 본다면 막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한 인간의 세계는 그 막간에 막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地球 그 自然과 生命. 제1장 지구의 탄생』(린컨 바네트. (주)한국일보타임 -라이프. 1979) 이처럼 거대한 時空 속에서 지구 위에 붙어살고 있는 인간 동물이란 존재, 나는 무엇일까? 인류문명사가 1만년이 채 안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영장류로 분화한 이후에도 수백만년 동안 한갓 짐승으로 살아왔다. 그 이전 수천만년 동안엔 한갓 동물이었다. 그 이전 수억년 동안엔 한갓 생물이었다. 그 이전 수십억년 동안엔 한갓 물질이었다. 인간의 근본 바탕은 변화이다. 물질에 변화가 없었다면 생물이 없고 동물이 없고 인간이 없다. 나의 탄생과 생존, 사멸 역시 물질 변화의 한 양상이다. 그러므로 나 혼자만 장수하며 만리만복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 인간은 가족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 지구의 물질을 수납, 사용, 배출하다가 몸 기계가 노후하여 기능 작동이 안 되면 죽는 단순한 존재이다. 노후한 기계를 두세 번 까진 고쳐 쓸 수 있지만 더 이상은 못 되는 게 섭리이다. 음식이 체내에 들어와 소화 되어 에너지가 되기 위해선 산소가 필요하다. 산소는 영양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들지만, 동시에 이산화탄소와 찌꺼기를 남긴다. 또한 산소는 자연 속의 철을 녹슬게 하듯이 인체 안의 철분을 산화시켜 몸을 피곤하게 하여 노후하도록 한다. 노후는 변화의 종점이다. 이어서 노후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점이다. 내가 사용하고 내뱉는 원소들이 다른 생물들의 영양소가 된다. 그래서 모든 생물들은 연계되어 있고 지구는 하나의 생태계이다. 즉 모든 생물을 안에 품는 하나의 큰 생물체이다. 동양과 서양, 해봉유기와 린컨 바네트는 살아간 시공이 다르지만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는 ‘우주의 침묵’이다. ‘우주의 침묵’은 많은 사색인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갖도록 하는 불가사의한 그 무엇, 존재이다. <庚申病中作>에 표현된 공부에의 집념과 <지구의 탄생>에 기록된 지식의 양과 질은 해봉유기와 린컨 바네트가 ‘우주의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진리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노력이 인류문명사에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를 증거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청소년기에 겪는 정신적 방황기를 통과의례로 넘기고 곧 일상에 적응하지만, 해봉유기는 승려로 린컨 바네트는 지구과학자로 일생을 보내며 청소년기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버리거나 잃지 않고 인간과 우주의 근본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1연 ‘병와일년두역백’을 보면 나이가 40대 중반 쯤이 아닐까 싶다. 침식이 부실한 상태로 수십 년 간 공부에 골몰하다다가 그만 병이 덜컥 들자, 그동안 쌓였던 화기가 치받으며 몸이 쇠약해지고 머리털이 하얗게 쇠어버렸다. 그러잖아도 공부하느라 두뇌를 많이 쓰는 탓에 머리에 혈기가 말라 털이 약해졌는데 병까지 드니 머리가 하얗게 쇨 수밖에. 물론 신분은 중이지만 평소에 삭발을 하지 않고 지냈거나 병석이라 머리를 그냥 두었겠지만. 2연 ‘자수어학미전공’엔 공부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노력이 들어있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시작되는데도 한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중병이 들어 1년 동안이나 누워있으니 얼마나 심사가 괴괴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하는 공부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연 ‘왕시만권전제업’을 보면 젊은 시절부터 무척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팔만대장경이 있지만 여기에서의 ‘만권’은 불경을 포함한 많은 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승려로서의 본분에 맞게 불경만을 읽었다면 ‘만권’이 되지 않는다. 불경대로 믿고 따르며 살았다면 한 생애가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봉유기는 ‘두역백’이듯 아마 머리 기른 승려, 즉 半俗半山人으로 한 생애를 살면서 다양한 지적 탐험을 추구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4연 ‘입해주사불견종’엔 진리를 다 알아내지 못한 지식인의 고뇌가 서려있다. 본래부터 무모한 짓이 진리를 다 알아내려는 욕심이다. 황하의 모래, 바다 가의 모래알처럼 인간이 알아내고자 하는 진리의 양은 무한하다. 무한한 그 속에 덤벙 뛰어 들어가 한 알 한 알 셈 하는 게 얼마나 지난하고 불가해한 일인가. 사정이 그러하니 우주의 시공을 각자 몫대로 살다간, 살아가는, 살러 올 지식인들 모두가 ‘불견종’ 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비로소 ‘왕시만권전제업’임을 알았으니 해봉유기가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면 분명 한 소식 들었을 것이다. 만권의 책을 읽는 목적은 만권의 책 속에서 안주하고자 함이 아니라 전筌과 제蹄, 즉 통발과 올무로 물고기와 토끼를 잡기 위해서이다. 즉 일이관지, 인간과 자연을 한 줄로 꿰는 진리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독서만권’에 자족한다. 그 자족이 넘치면 ‘도를 얻었다’라 희열하며 후손과 제자를 길러 자기의 도를 계승하도록 한다. 그 도란 만권의 책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닌데도 비판을 불허하곤 문도들로 하여금 무조건 숭상하도록 만든다. “사랑방 아래 묵에 미당이 앉았고 양 벽 아래로는 문하생들이 줄 지어 앉아있었다”라고 문 모 시인이, “미당 문단은 하나의 정부였다”라고 고은이 말했다. 시인 역시 승려나 학자들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라면, 미당과 그 문도들은 전과 제를 들고 설쳤지만 물고기와 토끼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전과 제의 기묘함을 자랑하기만 했지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거나 경장을 하고 산속에 들어가 토끼를 잡지 못했다. 온 겨레가 식민지 노예 생활에 처참한데도 일제지배를 미화한 시를 쓴 자들이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자들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자들 역시 양파처럼 문학적 근본이 없다. 미당의 시가 아름답다지만 친일문학에 깊숙이 들어간 시절은 그의 시 세계 자체를 종이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친일문학의 막강한 영향력이 전국적으로 아직도 건재하고, 지방에서도 그 본을 따 호족문인들이 행세하고 있는 게 현실상이다. 전과 제가 무엇에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진리는 정말로 가장 가까이에 있다. 바다 가 모래를 하나하나 세지 않아도 몇 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해봉유기가 ‘입해주사불견종’이라며 자탄했지만, 그것은 그의 인식 방법이 ‘만권’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모래알의 수는 하나다. 지구가 한 덩어리 바위이기 때문에. “바다 가 모래알은 몇 개일까?”라는 해봉유기 등 동양의 사색인들이 던진 질문에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서양에서 린컨 바네트 등의 과학자가 “예, 하나입니다. 수십억년 전에 우주의 티끌들이 인력에 따라 뭉치고 중력에 따라 부딪쳐 불타면서 한 덩어리 큰 공 모양의 바위가 되었답니다.”라 답한다. “ 아 그것, 우리가 공부하는 불경에선 성주괴공 하는 무량무겁의 시방세계 라 하지요.”라며 해봉유기가 린컨 바네트의 과학적 검증에 감사한다. “별 말씀을,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동무이지요. 우리 서양 과학에서 미흡한 부분인 예지력과 상상력 향상에 동양적 사고법이 유효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지식인들이 서로 도우면서 노력하면 ‘우주의 침묵’을 깨뜨리고 절대 진리를 확연히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린컨 바네트가 겸사한다. 둘이 주고받는 인사 말을 들으며, 수백만년, 아니 수십억년 뒤에도 우리 인류의 DNA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2013년 11월 23일 열락연재에서 쓰다  
159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권서각 file
편집자
1092 2013-11-16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 가운데 딸이 아들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오랜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성비는 여아보다 남아 출생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딸이 아들보다 낫다는 말은 어쩌면 입에 발린 소리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사회의 정직하지 못한 일면과 만날 수 있다. 남녀의 출생률을 인공적으로 조절하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가량이 저절로 맞추어진다고 한다. 여아에 비해 남아의 출생 숫자가 많은 것은 전쟁 등으로 요절하는 남자가 많으므로 성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유전자의 활동 때문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사회는 남녀가 균형 있게 짝을 짓고 살아가는 사회일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남자와 여자의 인구수가 균형을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남녀 성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여아 100명당 남아의 수가 106명이 넘으면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사회에 재앙이 온다는 이야기다. 지구상에 이런 심각한 상황에 처한 나라가 중국, 인도,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대개 경제개발을 강조하는 개발도상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우리사회도 이미 여성의 수가 부족하여 장가 못간 남성들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사회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신매매 성격을 띤 일부 비윤리적 결혼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남아선호사상은 뿌리가 깊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외세의 침입을 막는 일이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담당할 강한 힘을 가진 남성이 귀하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농경사회도 아니며, 무기의 발달로 전쟁에서도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남아선호사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 말로도 남녀평등을 당연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는 남아선호 현상이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아의 출산이 여아보다 많은 현상은 의학의 발달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임신초기에 CT촬영으로 남녀를 구분할 수 있어서 선택적으로 출산할 수 있다. 체외수정의 경우 남녀를 선택하여 임신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의학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분명히 법이 금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사회에서 여아보다 남아 출산이 많다는 것은 누군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이런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일어나는 나라는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국가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회계층은 상류계층이라 한다. 이른바 선진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 개발도상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저급한 문화 말이다. 외양상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대단한 나라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끄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것이 거의 돈으로 해결되는 나라다. 죄를 지어도 돈 있는 자에겐 관대하고 가난한 자엔 엄격하다. 정의가 어디 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사정이 이러하니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남녀를 선택적으로 출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獲罪於天無所禱也)고 했다.  
158 고통/고석근 file
편집자
1116 2013-11-06
고통 온몸이 으스러지면서 으스러지면서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 황지우,「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중에서 한 중년 여인이 중병에 걸렸단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병원비가 부족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우리 사회에 이런 슬픈 경우는 참으로 많을 것이다. “그 친구에게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죠? 인문학이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나폴레옹은 ‘고통은 언젠가 잘못 보내는 시간의 보복’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떻게 시간을 잘못 보냈을까? 봉사를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는데. 우리는 ‘봉사’를 미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불우한 사람을 돕는 것. 그것은 사실 국가가 할 일이다. 국가가 세금으로 불우한 사람을 도와 줘야 받는 사람도 당당하고 받은 사람도 받은 만큼 국가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부심과 우월감을 갖게 되면 받는 사람은 당당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그런 봉사활동은 잘 보낸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녀는 이런 점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국가의 의무이다. 대다수 선진국은 무상의료가 원칙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주인이다. 그녀는 주인으로서 이런 민주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노력했는가? 나무 한 그루도 최선을 다해 산다. 이런 고통이 이 땅에 다시는 없게 하기 위해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게 인문학의 힘이다. 그녀가 이런 삶의 이치를 성찰한다면 그녀는 고통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157 다윈 진화론의 기초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 비판/山白 박희용 file
편집자
1459 2013-10-23
다윈 진화론의 기초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 비판 山白 박희용 다윈(1809~1882)이 50세 때인 1859년에 발표한 『種의 기원』은 생물진화론의 체계를 확립한 역작으로 생물학사 뿐만 아니라 사상사적으로도 중요한 고전의 하나이다. 다윈은 진화론의 논거로 자연도태설, 적자생존, 생존경쟁 등 세 가지를 제시 한 바, 기존의 학설인 스펜서의 진화론 학설과 헉슬리의 사상운동과 결부되어 19세기 말에 유럽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의 학설은 자연과학분야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마르크스는 『種의 기원』을 “우리들의 견해에 자연사적 기초를 부여 한다”고 평가했는가 하면, 독재자와 지배층에 의해 다윈 진화론의 기초인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反民主主義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되기도 했다. 『種의 기원』은 발표 당시에도 인간 의식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 근대국가 형성에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이후의 세계사를 결정토록 했지만,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명사관의 기초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지성인들은 현대문명이 그 화려한 외형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내면에 치명적인 암소를 갖고 있다고 진단하며, 나아가 현대문명의 위기를 넘어 붕괴까지 예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문명의 논거인 진화론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검증과 치료를 통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함으로써 현대문명의 병증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윈 진화론에 세 축인 자연도태설, 적자생존, 생존경쟁의 이론을 현장 생태계에 적용해보면 실제와 일치한다. 생물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시적 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이론이다. 그러나 승자만 계속 생존하는 게 아니라 패자도 간고하게나마 생존하다가 다시 경쟁력을 갖추거나 다른 생태계로 옮겨가서 생존을 계속한다는 미시적 관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생물사회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 개체 내면에서도 일어난다. 진화의 원리가 생물과 생물의 경쟁과 탈락이라는 부정적인 상황만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꼭이 외면 생물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내면 생물계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것들은 한 개체의 육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에서도 일어난다. 즉 육체도 진화하고 정신도 진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한 개체가 주위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진화된 개체들이 횡적 연대를 구성함으로서 사회의 진화를 이룬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나 조금씩 쌓인 이 진화의 흔적은 개체들의 유전자에 저장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다윈의 논리대로라면 같은 종 안에서 최후에 생존하는 자는 딱 하나여야만 하고, 다른 종끼리의 생존경쟁 또한 일어나야 한다. 그의 논리대로 추종하면 수많은 종들 가운데 최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논리의 단순화, 목적의 함정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에선 무수한 이종들이 상생공존하고 동일 종 안에서도 크고 작은 수많은 개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윈의 논리를 액면 그대로 적용할 수만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윈 진화론을 원본대로 이용한 마르크스와 독재자들이야말로 생물계의 다양성, 진화의 무원칙성을 간과한 자들이 아닐 수 없다. 진화가 자연도태, 적자생존, 생존경쟁 등의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물 구조나 기능이 이전보다 발달되지 않을 수 없다. 개체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개별적으로 퇴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달한다. 육체도 사회에 적응하지만 정신도 사회에 적응하여 갈등과 투쟁보다는 양보와 타협 쪽을 선호하게 된다. 인류가 오늘날 지구에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리동물의 법칙을 제대로 준수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맹수가 비록 강력하지만 개체별로 독립된 생활을 하고 초식동물들이 비록 유약하지만 번식력이 높아 무리가 많은 까닭은, 맹수는 개체 진화 수준에 머물지만 초식동물들은 개체 진화를 사회진화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일반 동물은 진화의 목표를 자기 생존과 무리 보호에만 두기 때문에 진화가 개체 수준에서 되풀이되지만 인간은 목표를 자신과 함께 가족과 사회에 두기 때문에 사회적 진화가 촉진된다. 고릴라나 원숭이보다도 유약한 인류는 영악한 육체진화와 더불어 상대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사회적 진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도덕심과 자비심에까지 정신의 진화가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문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특수한 경우에는 전쟁을 선택하더라도 평상시에는 평화를 선호하는 성향이 형성되었기에 인구가 팽창하였다. 정신의 이러한 진화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가 반드시 절망적이진 않다고 할 수 있다. 진화라는 말이 갖고 있는 ‘종적으로 앞으로 나아가 질적으로 변화 한다’라는 의미는 변화가 갖고 있는 ‘횡적으로 상태가 바뀐다’라는 의미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진화는 답보나 퇴전이 아니라 한 차원 더 높은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진화에 따라 인류 문명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윈 시대 이후 진화론 탐구가 심화하면서 나타난 드 프리이스(H. De Vries)의 돌연변이론은 하늘에서 별도로 둑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진화의 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진화라면 돌연변이는 그것이 갑자기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전과 이후의 생물이 형태상으로는 이질적이지만 본질상으로는 동질이다. 이러한 돌연변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면 진화이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면 퇴화가 된다. 그런데 돌연변이는 진화에 쓰이지 못한 유전자 찌꺼기들이 어쩌다 간혹 나타날 기회를 얻는 것이기 때문에 진화보다 퇴화가 더 많다. 달리 말하면 진화만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퇴화 역시 자연법칙인 셈이다. 앞으로 수천수만 년 동안, 더 길게는 수억 년 동안 앞으로만 향하는 진화가 계속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가깝게는 인간의 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몸의 구조와 형태를 변화시키더라도 그 변화의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진화가 영구히 계속된다고 할 수 없다. 즉 진화가 한계에 이르면 역진화, 즉 퇴화가 진행되어 마침내 생명 발생 초기 단계에까지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진화가 자연법칙이면 퇴화도 자연법칙이 아니겠는가. 문명 역시 일월에 바래다가 마침내 분자 상태로 돌아갈 것 아니겠는가. 또다시 생명이 발생하고 진화가 이루어지고 문명이 발달할 것 아니겠는가. 해부학적 현생 인류가 출현한지 약 20만 년이다.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고 번성하기 시작한지 2만 5천 년 된다. 인간이 그러했듯 호모 사피엔스 줄기에서 새로운 영장류가 출현할 것이다. 진화든 퇴화든 돌연변이든 수만 년 후엔 이 지구상에 현대인의 직계들은 없을 것이다. 다윈 진화론이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적당하지만 미시적으로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시적으로만 올인한 결과로 그 시기가 수만 년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는 생존경쟁에서 적자생존을 가져오고 패자는 자연도태 되도록 하는 기본 원리로서 다윈 진화론의 토대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反민주주의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되기도 했다.>라는 말은 긍정과 부정의 이중성을 갖는다. 민주주의적 사상에서 보면 가당찮은 말이지만 전제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타당한 말이 된다. 더구나 이 말은 공산주의 사상의 한 축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떠받드는 논리적, 생물적인 근거로 이용되면서 인류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육체와 정신 두 면 모두 優性과 劣性이 있다. 한 개체 내에서도 우열이 구분되지만 개체와 개체 사이에서의 우열은 편차가 심하다. 우성에 의한 열성의 지배가 계속되고 열성은 자연도태 되지만 승리한 우성과 우성 사이에서도 경쟁이 이루어져서 다시 우열이 구분된다. 이러한 우열의 구분과 경쟁은 생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가 승자에 의한 패자 멸살이 아니라 용서와 포용의 현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동물들은 자신 이외의 우성을 용납하지 않고 열성은 전부 복속시켜 지배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동물적인 과거 역사를 탈피하고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시대에 결국 진입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생물들에게서 일어나는 우열의 편차는 본능적인 것일지라도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우열의 편차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철학을 反민주주의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하는 것은 다윈이 세운 진화의 원리와 목적을 어긋나는 것이다. 다윈이 『種의 기원』 序言의 끝 문장으로 “또한 나는 <자연도태>는 변화의 방편으로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라고 쓴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였다면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를 결코 反민주주의 사상의 합리화에 이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 역사가 진화의 원리에 따라 독재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로 나가는 것이 대세임이 분명한데도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이론적 근거로 삼는 공산주의는 正진화가 아니라 曲진화 또는 퇴화일 수밖에 없다. 물론 19세기 말에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자행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에 대한 분노와 동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들을 지도해나갈 세력의 명분적 근거로서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가 이용되었겠지만, 이후에 각국의 공산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개 과정을 보면 결국 그것이 오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성과 열성에 대한 이론적 차이는 인식했지만 그것이 동물에게는 일반적인 현상이더라도 인간에게는 특수한 경우가 있음을 간과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대적 요청 때문에 사회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성급했다. 그래서 한 세기 만에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하고 말았다. 개체진화의 우열과 사회진화의 우열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사회진화론에다가 개체진화를 강제로 몰입하였기 때문에 사회라는 형식만 강화되고 인간이라는 내용은 왜소해져서 공산주의 자체가 허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학문의 상호 유기적인 구조면에서 보면 인문학이 미숙한 사회과학은 사상누각이 되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우열의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우성이 지배의 전권을 휘두르는 제도가 아니라 열성의 권리를 보장해주는데 묘미가 있다. 동물 세계에서처럼 강자가 약자를 먹거나 지배하는 원리가 아니라 강자는 존엄하되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해주는 것을 가치로 하는 정신적 구조를 발달시키고 있다. 그것은 법과 제도에 의해서 보장되기도 하지만 강자의 높은 의식작용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가 흩어지지 않고 단단한 결속력을 유지한다. 즉 민주주의 사회는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를 인정하되 ‘폭력 지배’보다는 ‘평화 지배’의 형태로 발전하는 사회이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는 열성이 우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사회, 우성이 열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유동 사회이다. 그러한 유동성은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어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독재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는 닫힌 구조이기 때문에 생명력이 소진되어 마침내 사라지고 말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새 물이 들어오고 헌 물이 나가는 열린 구조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한 사상 중에서 가장 유효적절한 사상인 것이다. 설혹 수십 년 후에 인구 과잉과 자원 고갈 문제 때문에 인류 문명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진화의 원리에 따라 인류는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수 엘리트들이 인류를 지도하자는 우성독재론이나 지구 위에 사는 인구를 줄이자는 열성청소론과 같은 극단론이 다시 제기되지 않고서도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다. 우성이 열성을 폭력으로 지배하는 과거역사가 복원되지 않고도 우열이 모두 공존하는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말 당시 유럽 사상계의 화두가 진보와 자유경쟁이었는데, 다윈 진화론은 그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서 유용하게 쓰였으며, 1860년부터 1880년까지 20년 동안 자연도태설의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간은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상업자본주의로 진입한 단계로서 다윈 진화론이 본의 아니게도 유럽 식민제국주의의 대외 팽창, 침략정책의 명분으로 이용되었다. 유럽의 강국들은 우열의 논리로 자기들의 불법과 비인도성을 변명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양심이니 정의니 종교니 하는 것들은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자연법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교양과 예의, 인격과 문화는 유럽 우성의 것이었지 기타 지역 열성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은 물질적 욕구 충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목표에 일치하고, 「優性에 의한 劣性의 지배」라는 다윈 진화론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지배하는 논리로서 안성맞춤이었다. 19세기 유럽의 종교, 경제, 철학, 과학은 인간의 양심과 지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인종들의 식민제국주의를 떠받치는 거대한 교각이었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할 적에는 순수한 학문적 목적이었는지 몰라도 사망한 1882년까지 20년 동안 자신의 진화론이 어떻게 변질, 곡용 되는지 현장에서 똑똑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가 진정한 의미의 학자라면 진화론의 변질, 곡용, 오용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거나 실망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문명 전체를 조감하는 인문학적 안목이 미흡한 한 사람의 과학자였기 때문에 자기 조국인 영국의 발전과 백인종의 팽창을 진화의 결과로 받아들여 크게 기뻐하였을 것이다. 결국 진화론이라는 좋은 학문이 국가주의의 기반이 되고 말았다. 다윈은 진화론을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했다. 인간 역시 생물이지만 다른 생물들과는 진화의 차원이 다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의 진화도 일반 생물들과 동일한 패턴을 밟기 때문에 유럽 문명의 우성은 당연하고 유럽인들에 의한 지구 지배가 정당하다는 신념을 가졌을 것이다. 다윈이 개인적으로는 그런 신념을 안 가졌을지 몰라도 진화론의 추종들은 그런 신념을 당연히 가졌다. 그 신념의 결과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 한 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는 물질문명의 팽창, 전쟁과 파괴이다. 그러므로 다윈 진화론이 인류 문명사에 끼친 공도 많지만 과 또한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진화가 유럽 백인종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수십 년 느리지만 여타 지역의 유색 인종들에게도 진행되기 때문에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진화가 지구 차원에서 일반화 되었다. 우성이 제아무리 지배하고 말살하려고 했지만 열성은 차분하게 자기 진화를 이루어 마침내 우성에 대항할만한 역량이 되었다. 백인종의 관점에서 본 20세기의 열성 지역도 동북아시아 지역과 여타 지역의 둘로 나눌 수 있다. 동북아의 한국과 중국은 이미 수천 년의 문명을 가진 국가들로서 비록 군사력분야에선 구미 국가들에게 뒤떨어졌지만 다른 물질문명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정신문화 면에서는 구미 국가들보다 월등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미국과 영국의 똘마니인 일본에 식민지로 전락하고 중국이 구미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수십 년 동안 시달린 까닭은, 무력이 약했기 때문이지만 무보다 문을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강력한 무력을 길렀다면 결코 식민지와 반식민지로 전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은 과거의 공동 경험을 교훈으로 하여 문과 무를 함께 진화시킴으로서 강력한 국력을 이루었다. 나아가 물질문명의 피로와 정신문명의 정체 현상을 보이는 구미 국가들을 추월하여 새로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창조할 역량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그 역량이 더욱 발전하여 21세기 새로운 인류문명을 이루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윈 진화론이 내포한 비합리성과 편협성을 걷어내어 올바르게 해석하여 한층 진화된 이론을 정립함으로서 광란의 근대사를 청산하고 인류가 공존공생 하는 대동세상을 성사시킬 것이다. 2013년 중추에 안동 열락연재에서 쓰다  
156 근본에 대한 물음/권서각 file
편집자
1094 2013-10-15
 근본에 대한 물음 권서각 이루어져야 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날 때, 그리하여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고 골머리가 아플 때 우리는 근본에 대한 물음을 하게 된다. 지금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나와 국정원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 밤 284개 연합 시민단체인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도하는 제8차 촛불문화제에는 4만 개의 촛불이 서울의 하늘을 밝혔다. 지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촛불이 서울광장에 켜지고 있다. 왜 다시 촛불이 켜지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모아져서 국민의 의사로 뽑힌 대표가 통치 권력을 가지는 제도다. 진정한 국민의 대표를 뽑으려면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권력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증거가 드러났다. 막대한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은 국가권력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사건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은 경찰, 검찰, 국회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여 적법하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원세훈과 김용판은 증인선서를 하지 않고 이미 증거가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 증언을 했다. 이로 인해 촛불은 더 늘어나고 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사건 초기 국정원 여직원이 오피스텔에서 인터넷 댓글공작을 하다가 발각되었을 때부터 경찰은 댓글을 단 증거가 없다고 허위발표를 해서 대선에 영향을 주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엉뚱하게도 노무현이 NLL 포기발언을 했다는 발표를 한다. 대통령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놓고도 여당은 시간 끌기로 본질을 덮으려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깨어 있는 사람들은 다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지에 대한 근본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의 대학교수, 신부, 학생, 문화인,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아무리 선언을 해도 소용없으니까 다시 촛불이 켜진 것이다. 유래 없이 더운 날씨임에도 수만의 인파가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언론이 기능한다면 뉴스 첫머리에 화면과 같이 보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 어디에도 촛불문화제에 대한 보도를 보기는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서울광장의 촛불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마땅히 보도되어야 할 것이 보도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제 4부라고 부른다. 언론이 사실보도를 해야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고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어야 올바른 통치자를 선택할 수 있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보도, 진실보도에 있다. 지금 우리 언론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광장에 수만의 시민이 모여서 촛불문화제를 여는데도 침묵하고 있다. 지난 MB정권에서 진실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인을 모두 징계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해직 언론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해직된 언론인은 복직되지 않았고 한직으로 쫓겨난 언론인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가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답답함이 오래 지속될수록 촛불은 더 크게 타오를 것이다.  
155 죽음/고석근 file [1]
편집자
1506 2013-10-08
죽음 하지만 자신에게 두 손 가득 흙이 뿌려질 때는 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을 것이다. - 브레히트,「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이 땅에」중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의사가 아니다. 죽음이 의사다.”라고 말했다. 죽음보다 더 큰 스승이 있을까?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진정으로 진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는 도를 깨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죽을 때의 그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사니 우리들의 삶이 이리도 너덜너덜하고 누추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죽음의 의례, 제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죽음은 추방되었다. 우리는 이따금 문상을 가며 병원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무섭고 혐오스러운 죽음을 만날 뿐이다. 고흐는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캄캄해져야 할 것이다. 죽음의 깊은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갠지스 강의 죽음이 부럽다. 죽음 곁에 늘 삶이 있을 때 삶은 항상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세상 가득 인공별을 띄워 놓았다. 어디가나 별들이 환하게 빛난다. 우리는 그 불빛 속에서 살아간다. 어둠은 없다. 삶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별빛들은 가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삶이 허기진다. ‘죽음이 없다면 이 세상이 온통 죽음으로 뒤덮이는 것(파브르)’이다. 사르트르는 “죽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어느 날 내 삶이 멈추겠지만, 내 죽음이 내 삶을 규정하지 않고, 내가 늘 생의 충동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죽음을 포함하지 않는 삶. 그건 진정한 삶이 될 수 없다. 생의 충동, 이 안에는 죽음과 삶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생의 충동이 별처럼 우리 삶을 이끌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우리는 격하게 생의 충동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때 우리 마음속에 별들이 뜬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의 충동을 죽여 왔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도 도무지 사는 것 같지 않다.  
154 원효의 和諍思想과 大乘論 / 山白 朴 喜 鎔 file
편집자
1751 2013-09-24
원효의 和諍思想과 大乘論 - 은정희 역주『원효의 大乘起信論 疏 ․ 別記』論註 山白 朴 喜 鎔 1. 원효와 『大乘起信論 疏 ․ 別記』 「大乘起信論」은 산스크리트 원본이 없는 탓으로 印度撰述인가 中國撰述인가가 논란되어 오기도 하지만, 대승불교 시대의 후기에 나타난 불교사상서 중 가장 뛰어난 논서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유포된 ‘大乘起信’ 사상을 馬鳴이 논리적 체계를 갖추어 「大乘起信論」을 썼고, 여기에다 원효가 「起信論 疏」와 「起信論 別記」를 보탬으로써 비로소 『大乘起信論 疏 ․ 別記』가 완성되어 신라불교철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책 『원효의 大乘起信論 疏 ․ 別記』는 1977년 海印僧伽學院에서 간행한 『大乘起信論疏記會本』을 텍스트로 하여, 은정희 철학박사가 이기영의 『韓國의 佛敎思想』 ․ 성낙훈의 『韓國의 思想大全集 Ⅰ(元曉外)』 ․ 김탄허의 『懸吐解釋 起信論』을 저본으로 하여 국문으로 번역한 것을 1991년 5월에 <일지사>에서 출간하였다. 은정희 박사는 책의 解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大乘起信論」은 인도에서 그 당시 대립되고 있던 양대 불교사상, 즉 中觀派와 瑜伽(唯識)派의 사상을 지양 ․ 화합시켜 眞과 俗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迷汚한 현실생활(俗) 가운데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행함에 의하여 완성된 人格(眞)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며, 한편 깨달음의 단계(眞)에 이른 사람은 아직 迷汚한 단계(俗)에 있는 중생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임을 주장함으로써 眞俗一如의 사상을 잘 나타낸 논서이다. 원효는 이 「大乘起信論」을 만나자마자 바로 자신의 구도적 학문과 삶의 자세와 너무도 일치함에 크게 감명을 느끼고 연구에 매진하여 7種의 연구서를 냈다. 「大乘起信論」 본문의 구조는 因緣分, 立義分, 解釋分, 修行信心分, 勸修利益分 등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因緣分’에서는 이 논을 짓게 된 이유를 말하였고, ‘立義分’에서는 이 논의 대의, 즉 一心, 二門, 三大를 제시하였다. ‘解釋分’은 앞서의 입의분에서 제시한 一心, 二門을 구체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大乘起信論」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다시 顯示正義, 對治邪執, 分別發趣道相의 셋으로 나뉘어진다. 우선 正義를 드러냄에 있어서 一心(衆生心)을 心眞如門과 心生滅門의 둘로 크게 구분하였다. 心眞如門에서는 如實空, 如實不空 등을 말하여 마음의 淸淨한 面을 묘사하였으며, 心生滅門에서는 阿黎耶識의 覺과 不覺의 二義와 薰習 등을 말하여 마음의 染淨緣起를 밝혔다. 다음으로 邪執을 對治함에 있어, 人 ․ 法 二執의 對治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發心 修行하여 道에 나아감을 분별하는 상에서는 信成就發心, 解行發心, 證發心의 세 가지 발심을 말한다. ‘修行信心分’에서는 앞서의 ‘해석분’ 중의 發趣道相이 不定聚衆生 중의 勝人을 위한 설명임에 비하여 여기서는 부정취중생 중의 劣人을 위하여 四信, 五行 및 他力念佛을 설한다. 마지막 勸修利益分에서는 이 논을 믿고 닦으면 막대한 이익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였다. 원효의 기신론관에서 특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효는 그의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기신론의 성격을 中觀思想과 唯識思想의 止揚 ․ 綜合이라고 판석한다. 즉 「기신론」은 마음의 청정한 면만을 주로 찬탄하고 강조해 온 중관사상과 마음의 염오한 면을 주로 밝혀 온 유가사상을 잘 조화시켜 眞俗不二의 뜻을 밝힌 것이라 본 것이다. 둘째, 원효는 그의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우리의 迷妄한 마음, 즉 無明이 본래의 청정한 마음 즉 진여를 훈습하여 不覺心이 처음으로 일어난 無明業相, 이 무명업상 즉 極微한 動念에 의하여 所緣境相을 볼 수 있게 되는 轉相, 그리고 이 전상에 의하여 경계를 나타내는 現相 등 세 가지 미세한 마음, 곧 三細識이 아라야식(Alayavijnana)位에 해당된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원효는 아라야식의 覺義에 의하여 자성청정한 覺의 상태로 환멸한 후의 本覺의 성격 즉 智淨相과 不思議業相에 대하여 自利와 利他의 두 가지 면을 배대시킴으로써 心源에 도달한 覺者는 깨달은 상태(自利)에 안주하지 말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 노력해야 함(利他)을 역설한다. 결국 원효가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眞俗一如, 不住涅槃의 사상이었으니, 이는 出世間的 自利만이 불교의 진의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깨달음의 세계를 이룩해야 한다(利他)는 대승불교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은정희 박사가 정리한 「대승기신론」 본문의 구조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序分: 歸敬頌 2. 正宗分 가. 因緣分: 造論八因 나. 立義分: 一心, 二門, 三大 心眞如門......二種眞如(如實空, 如實不空)................. 體 心生滅.......阿黎耶의 二義 自 顯示正義.....一心.. 染淨生滅 生滅因緣.........五意, 意識 體 三 心生滅門 六染, 二礙 ․ 生滅相 ....麤細의 相 ․ 義 相 大 다. 解釋分: 染淨薰習 .............................四種薰習 用 對治邪執 ................................人 ․ 法 二執의 對治 分別發趣道相 .........................三種發心 라. 修行信心分 ...........................................四信, 五行, 勝方便(他力念佛) 마. 勸修利益分 ...........................................信謗損益과 勸修 3. 流通分 .................................廻向頌 * 정확한 도표는 첨부물 참조 다음으로, 은정희 박사는 원효의 생애와 저술, 포교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국유사』와 『宋高僧傳』에 의하면, 원효는 신라 26대 진평왕 39년인 서기 617년에 현재 경북 경산군 자인면인 押梁郡 佛地村의 밤나무 밑에서 薛仍皮公의 손자요 談襟乃末의 아들로 태어났다. 兒名이 ‘새털’이라는 의미인 誓幢인 그는 10여세에 출가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 大覺國師 義天이 남긴 詩에 의하면, 백제 땅 전주 孤大山에서 고구려 고승인 普德和尙의 講下에서 「열반경」과 「유마경」등을 배웠다고 하며, 또『삼국유사』朗智來雲條와 釋惠空傳을 보면 朗智와 惠空에게서도 배웠다고 한다.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인용문을 통하여 그가 불교학 전반에 걸쳐서뿐만 아니라, 『논어』, 『노자』, 『장자』 등 유가서와 도가서에도 정통하고 있음을 볼 때,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그의 修學經歷을 짐작할 수 있다. 『三國遺事』에 의하면, 원효는 30세인 646년에 「普譯華嚴經疏」, 「十問和諍論」, 「大乘起信論別記」, 「發心文」, 「名僧集說」 등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여러 문헌에 의하면, 원효의 저서는 100여 종의 240여 편(또는 85 종의 170여 편)으로 알려져 있고, 그 연구 범위도 小 ․ 大乘, 經, 律, 論 등 거의 모든 부문을 다 망라하고 있다. 그의 저술 목록 중에서 가장 분량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唯識系와 律學部門, 그리고 起信論에 관련된 것들이며, 현존하는 것 중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法華經宗要 1권, 大慧度經宗要 1권, 涅槃經宗要 1권, 無量壽經宗要 1권, 金剛三昧經論 3권, 起信論疏 2권, 起信論別記 1권, 二障義 1권, 中邊分別論疏 第2권, 華嚴經疏 第3권, 十門和諍論 斷片. 원효는 染淨無二, 眞俗一如라는 그의 학문적 이론을 통일기인 당시의 신라 사회에서 대중과 함께 몸소 실행에 옮겼던 실천가였다. 불교의 수용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층과 일반 서민층 사이에는 아직도 괴리가 있는 때에, 惠空, 惠宿, 大安 등의 뒤를 이어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지방의 촌락, 街巷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無碍박을 두드리고 無碍歌를 부르면서 교화에 노력하여 불교를 일상생활화시킴으로써 대중들에게 유익한 의지처가 되게 하였다. 원효는 대중 교화의 행각을 마친 뒤에는 失戒와 환속의 의미인 小姓居士가 아닌 불교사상가의 의미인 元曉和尙으로 돌아가 穴寺에서 신문왕 6년인 서기 686년 3월 30일에 70세의 생애를 마쳤다. 2. 해제 (8~16p) (1) 3p 역주자 서문 2행: 「우리나라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 원효」 [논주] 元曉가 있어 신라의 하늘이 밝음은 사실이지만, 혼자만이 밝힌 게 아니라 당대에나 후대에서 義湘과 孤雲 같은 석학들도 함께 밝혔다. 하물며 아직 제대로 그 가치가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이나 시간의 퇴적층에 종적이 묻힌 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신라라는 한 시대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어느 시대에나 해당된다. 그러므로 한 현자가 일군 사상을 액면 그대로 봐야지, 거기에다 수식어를 덧붙임으로써 지성인들로 하여금 오히려 가치를 심상하게 하거나 식상하게 할 수 있다. 수식어가 붙은 채로 시간이 쌓일수록 중생심의 후인들로 하여금 궁금증의 착시현상을 심화시켜 우상숭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여, 마침내 한 현자가 처음으로 하늘을 밝힌 뜻과는 엉뚱한 결과가 생긴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문명사 전체를 통관하여 계속 일어나는데, 그 원인은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동물’인 보통사람들이 ‘사유하는 인간’인 사상가들을 만날 때 갖게 되는 존경심 -기쁨, 믿음, 두려움, 부러움. 시샘 등이 혼재된-이 순수한 느낌 그대로 유지되면 정신적 노고의 부담을 덜고 삶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여러 가지 수식어가 보태어짐과 동시에 개인적 상상과 집단적 구조화가 진행되면서 ‘밝은 하늘’이 다양한 기상변화를 하게 되고, 그 아래에 사는 중생들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지식은 언어와 기억력을 도구로 하여 제 앞에 주어진 그대로 학습하지만, 지성은 비판정신을 축으로 하고 사실을 벼리로 하여 새로운 가치를 포획하려고 한다. 지식인은 기존의 가치관으로 기성의 사상을 추종하나, 지성인은 기존의 가치를 변증하며 기성의 사상을 비판적 분석과 검증을 통해 변화시킨다. 즉 지식은 줄기로서 보수이고 지성은 우듬지로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은 방안에 앉아 상 위에 놓인 물고기를 먹는 사람이고 지성인은 강에서 그물을 들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다. 성장을 두려워하는 나무는 자랄 수 없고 그물질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싱싱한 물고기를 먹을 수 없다. 새물이 솟아나지 않는 샘은 한갓 웅덩이일 뿐이고, 새물이 흘러들어오지 않고 헌물이 흘러나가지 않는 강은 한갓 큰 웅덩이일 뿐이다. 들 다 곧 썩고 마른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생각이 솟아나지 않는 사상계는 묵은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서로 부딪치다가 타버려 재가 되고 마는 한갓 잡탕 도가니일 뿐이다. ‘밝은 하늘’이 다양한 기상변화를 하게 되고, 그 아래에 사는 중생들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은 ‘생각하는 동물’인 보통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인 사상가들에게 있다. 아니 정확하게 분별한다면 ‘사유하는 척 하는 인간’인 ‘고급지식인’들에게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부러움과 시기심이란 양날의 칼로 재단하여 자기들의 장식물로 만든다. 자기의 장식물이 더 화려하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식어, 더 뻥튀긴 존칭어들이다. 그러한 화려한 장식에 혹하여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중생심들을 기름으로 하여 ‘고급지식인’이 생존한다. 그러므로 학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은 기존의 가치와 기성의 사상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식인과 지성인의 중간 단계인 ‘고급지식인’이다. 한국문화사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큰 해악을 끼친 계층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은정희 박사가 ‘고급지식인’이란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 원효’라는 말 보다는 ‘우리나라가 낳은 훌륭한 불교사상가 원효’ 정도의 표현이 알맞지 않을까 한다. ‘불세출의 천재’라는 말은 학문적인 표현이 아니라 영웅주의와 국가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로서 자칫 우상화의 빌미가 될 수가 있다. 화장과 수식어를 모두 걷어낸 맨얼굴을 봐야 그 인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원효를 한국정신사에서 신라의 한 하늘을 밝힌 우수한 불교사상가 중의 한 사람으로 봐야지, 과도한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은 원효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게 할 수 없는 선입견이 되기도 한다. (2) 11p 9~12행: 「그는 불교사상을 연구함에 있어 어느 一宗, 一派에 구애됨이 없이 “萬法이 一佛乘에 총섭 되어야 하는 것은 마치 大海 중에 일체 衆流가 들어가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금강삼매경론)고 하여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의 상호대립적인 교의를 다 융회하여 一佛乘에로 귀결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뭇 경전의 부분적인 면을 통합하여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하고, 불교의 지극히 공변된 뜻을 열어 모든 사상가들의 서로 다른 諍論들을 和會시킨다”(열반경종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和諍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논주] 원효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和諍의 방법에 의하여 眞俗不二의 사상을 나타내려 한 대표적인 것으로 「大乘起信論 疏」와 「大乘起信論 別記」를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은 30세인 646년에 「普譯華嚴經疏」, 「十問和諍論」 등과 함께 썼다. 당시의 동북아 정세는 신라, 고구려, 백제가 상호 간에 치열한 전쟁을 통해 통일을 선접하려고 하는 비상 시기였다. 또한 세 나라는 각기 당나라 세력을 이용하기 위하여 치열한 외교전도 병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삼국 상쟁의 시대에서 살고 있는 원효가 승려 신분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평화주의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불교에서 찾아 좀더 심화시켜 불교사상으로 만든 것이 和諍思想이다. 또한 668년에 고구려 멸망과 676년에 당나라 안동도호부의 요동 故城 옮김으로써 삼국통일이 완성됨에 따라 삼국 유민들의 통일체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하여서는 和諍思想의 강화가 더욱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30세 때의 和諍思想을 좀 더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 「金剛三昧經論」과 「涅槃經宗要」는 원효가 50대인 삼국통일 직후인 670년 전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和諍思想은 평화의 시대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전쟁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교사상이라기보다는 국가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책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창 혈기 방장한 38세에서 44세 사이인 서기 654~660년경에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음으로써 태종무열왕의 통일 정책 추진에 음양으로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승려인 그가 국책에 협조하여 삼국의 유민들을 융합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화쟁사상의 심화와 정립이었다. 결국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갖기 때문에, 화쟁사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제대로 짜여졌다고 보기가 어렵다. 국가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불교사상이기 때문에 불교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여실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집필의 시대적 배경이 이러하다보니, 馬鳴이「大乘起信論」에서 말하고자 했던 본지와 원효가 「大乘起信論 疏」와 「大乘起信論 別記」에서 말하고자 한 취지가 미묘한 차이점을 가질 수가 있다. 물론 馬鳴이 말한 ‘大乘’의 개념을 원효가 정확하게 파악하여 순수한 의미의 화쟁사상으로 발전시켰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처한 시대적, 정치적 입장에서만 해석하여 작위인 화쟁 개념을 윤색하는 도구로 이용했을 수도 있다. 원효가 고승으로 역사에 이름이 크게 남고, 그의 화쟁사상이 오늘날까지 내내 칭송을 받는 까닭은 물론 심오한 불교사상 때문이지만, 그의 왕실에서의 위치와 화쟁사상이 삼국통일에 정신적으로 기여한 공로가 국가로부터 칭송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원효가 분황사 법회에서 강론하고자 준비한 「金剛三昧經論」을 훔쳐간 자는 단순한 시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작위인 화쟁사상’을 거부하는 파들이 아니었는가 한다. 또는 신라의 통일정책에 협조하고 있는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피지배 고구려나 백제 출신의 승려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 당시는 불교가 신라에 들어온 지 약 100년 되는 때로서 갓 수입된 불교 교리에 대한 해석을 두고 다양한 학파들 간에 한창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화쟁론의 대두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적 필요도 있었겠지만 종교적 필요에 의해서도 다양한 불교사상들을 정리할 시점에 이르렀고, 그것을 원효가 화쟁사상을 통해 시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화쟁사상으로 묶어 정리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물건이라면 쉽게 묶어 정리할 수 있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의 정신작용은 쉽게 정리할 수가 없다. 권력으로 한 때는 정리할 수 있지만 곧 풀어져서 다시 복잡, 미묘해지는 게 사상계이다. 세상에는 귀납법도 필요하고 연역법도 필요하다. 더구나 고등 정신작용의 결과인 사상에 있어서는 어느 한 쪽만이 유효적절한 것이 아니라 양 쪽 모두 타당성을 갖고 있다. 화쟁사상은 귀납법만을 선호한다. 비유이지만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참 좋은 말이지만, 바다가 갖고 있는 한 맛이 반드시 진리인 것은 아니다. 또 이 말은 온갖 물줄기들은 아직 진리가 아니고 바다만이 진리라는 것인데, 이것은 진리의 상대성보다는 절대성만을 강조하는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다. 한 진리만 있어 여기저기에 두루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진리가 있어서 상황에 따라 쓰임새가 각각 다르다. ‘온갖 물줄기’인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 등은 연역법이다. 각각의 주제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개념을 상황에 맞추어 풀어나간다. 小乘과 大乘이 갖는 개인과 사회의 근본은 같다하여도 그 변화는 이질적이다. 相이 性에서 나왔지만 현상은 본질과는 이미 다른 모습이다. 頓과 漸이 수행을 목표로 하는 점은 같지만 이미 실제에서는 차이를 갖는다. 이것들은 비유하자면 한 줄기 나무와 같다. 아랫부분은 기본이고 윗부분은 성장, 즉 변화이다. 小乘과 性, 漸은 기본이고 大乘과 相, 頓은 변화이다. 大乘과 相, 頓이 小乘과 性, 漸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달라져서 마침내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이 된다. 그 변화된 모습이 기본과는 다르지만, 애초에 기본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기본이 뚜렷해야만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小乘과 性, 漸의 개념을 변화인 大乘과 相, 頓과 분변해야 한다. 그러므로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 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방법은 귀납적이 아니라 연역적이어야 한다. 화쟁사상과 같이 각각의 개념들이 갖는 고유성을 뭉뚱그려 묶어 낯선 공통성으로 장식하는 귀납법이 아니라 각각의 개념들이 갖는 고유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연역법이 보다 자연스러운 인식을 갖도록 할 것이다. ‘중화융합과 一佛乘에 총섭’이란 말은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말이지만, 자칫하면 大 ․ 小乘, 性 ․ 相, 頓 ․ 漸 등이 가진 본래의 개념을 모호하게 하여 변화무쌍한 진리를 인식하는데 있어 오류를 초래할 수가 있다. 性 ․ 相은 본질과 현상의 문제이고 漸 ․ 頓은 수행 방법의 문제이며, 小 ․ 大乘은 개인과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호 대립적이 아니라 상호 연관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性 없는 相이 없고 相 없는 性은 준비이며, 漸이 쌓여서 한 순간에 발효하는 것이 頓이다. 小乘이 충실하면 저절로 大乘이 된다. 이렇게 한 줄기 나무처럼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차이일 뿐 서로 이어져 있다. 승려들과 문중, 사찰에 따라 교리의 차이, 주장의 차이, 실천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각기 아랫부분에서 난 가지와 윗부분에서 난 가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지가 있어야 나무가 살 수 있듯이 性漸小 부분에서도 다양한 논리의 가지가 돋아서 뻗어가고, 相頓大 부분에서도 다양한 논리가 펼쳐짐으로써 불교철학이 한층 풍요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지들 모두가 한 줄기에서 나왔음을 잊지 않아야지, 근본을 잊어버리고 말단만 고집한다면 결국 근본이 고사하여 마침내 모든 가지들이 죽을 것이다. 원효의 화쟁론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각 부분에서 난 가지의 차이에 집착하여 줄기 전체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불교계가 격심한 교리 갈등을 겪고 있었기에 원효가 화쟁론을 주창했겠지만, 반드시 교리 갈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 즉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된 승려들 간의 파쟁이나 사찰들 간의 세력 경쟁 때문이었을 수가 있다. 性 ․ 相, 漸 ․ 頓, 小 ․ 大乘에 대한 교리는 이미 초보적인 것으로 대부분의 승려들이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상호 대립적인 갈등이 있었다면 불교사상계의 수준이 한참 미흡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데에도 원효가 새삼스럽게 화쟁론을 주창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적시하기 보다는 다른 목적을 띄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3. 대승기신론 소 ․ 별기 (권1) (17~98p) (1) 19p 7~11행: 「第一標宗體者 然夫大乘之爲體也 蕭焉空寂 湛爾沖玄,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 在言裏也 四辨不能談其狀, 欲言大矣 入無內而莫遺 欲言微矣 苞無外而有餘, 引之於有 一如用之而空 獲之於無 萬物乘之而生, 不知何以言之 强號之謂大乘」 [음역] 「제일표종체자 연부대승지위체야 소언공적 담이충현, 현지우현지 기출만상지표 적지우적지 유재백가지담, 비상표야 오안불능견기구 재언리야 사변불능담기상, 욕언대의 입무내이막유 욕언미의 포무외이유여, 인지어유 일여용지이공 획지어무 만물승지이생, 부지하이언지 강호지위대승」 [논주] 먼저, 은정희는 다음과 같이 국역하고 있다. 「처음 종체(宗體)를 나타내는 것은, 저 대승(大乘)의 체(體)체됨이 고요하여 적막하며, 깊어서 그윽하다. (이 대승의 체가) 깊고 또 깊으나, 어찌 만상(萬像)의 밖을 벗어났겠으며, 고요하고 또 고요하나 오히려 백가(百家)의 말 속에 있다. 만상의 밖을 벗어나지 않았으나 오안(五眼)으로 그 몸을 볼 수 없으며, 백가의 말 속에 있으나 사변(思辨)으로 그 모양을 말할 수 없다. 크다고 말하고 싶으나 안이 없는 것에 들어가도 남김이 없고, 작다고 말하고 싶으나 밖이 없는 것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다. 유(有)로 이끌려고 하나 진여(眞如)도 이를 써서 공(空)하고, 무(無)에 두려고 하나 만물이 이(대승의 체)를 타고 생기니, 무엇이라고 말해야 될지 몰라 억지로 이름하여 대승이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국역해 본다. 「제일 먼저 종체를 말하고자 한다. 대체로 저 대승의 본질은 고요하여 적막하며 깊어서 그윽하다. 그윽하고도 그윽하나 어찌 만상의 표현 밖이며(나타나지 않는 게 있으며), 고요하고 고요하나 오히려 백가의 말 속에 있다. 만상으로 표현되나 오안으로 그 몸을 볼 수 없으며, 말 속에 있으나 사변으로 그 모양을 말할 수 없다. 크다고 말하고자 하나 들어가도 안이 없어 남음이 없고. 작다고 말하고자 하나 밖이 없음을 꾸러미하고도(감싸고도) 남음이 있다. 유로 이끌려고 하나 일여의 작용이 공하고 무에 얻으려고 하나 만물이 이것을 타고 생기니, 이것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이름 지어 불러서 대승이라고 한다.」 그런데 몇 구절에서는 기존의 국역이 미흡하여 전체적 의미가 순조롭게 흐르지 못한다. 그 몇 구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존의 국역에서 미흡한 부분을 밝혀 본다. 이 글은 대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앞 구절과 뒷 구절이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먼저,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과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이 서로 짝을 이루며, 다음으로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와 <在言裏也 四辨不能談其狀>이 서로 짝을 이룬다. 이어서 <欲言大矣 入無內而莫遺>과 <欲言微矣 苞無外而有餘>가, <引之於有 一如用之而空>과 <獲之於無 萬物乘之而生>이 서로 짝을 이룬다. 첫째로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과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을 살펴보자. 은정희는 <(이 대승의 체가) 깊고 또 깊으나, 어찌 만상(萬像)의 밖을 벗어났겠으며, 고요하고 또 고요하나 오히려 백가(百家)의 말 속에 있다>라고 역주하고 있다. 주 2)에서 이기영, 성낙훈, 탄허 등 세 사람의 역주를 예로 들었는데, 앞부분인 <玄之又玄之>와 <寂之又寂之, 뒷부분인 <猶在百家之談>,는 네 사람이 동일하나 뒷부분인 <豈出萬像之表>에서는 각기 다르게 역주하고 있어서 의미가 혼란스럽다. 이기영은 <어찌 만상을 표출시킬 수 있으며>로, 성낙훈은 <어찌 만상의 밖에 벗어났으랴>로, 탄허는 <어찌 萬像의 밖에 벗어나며>로, 은정희는 <어찌 만상(萬像)의 밖을 벗어났겠으며>로 각각 국역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한자는 ‘出’과 ‘表’이다. 이기영은 둘을 합하여 ‘표출’로 보나, 성낙훈, 탄허, 은정희는 ‘出’을 ‘벗어나며’로 보고 ‘表’를 ‘밖’으로 보는 점은 같으나, 조사에서 성낙훈과 탄허는 ‘에’로 쓰나 은정희는 ‘을’을 쓰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원효가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후 문맥을 통해 살펴보면, 분명 (이 대승의 체가) 현묘하고도 현묘하기 때문에 마치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쉬우나 사실은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이 그 현묘함의 표상이라는 것이므로 네 사람이 국역한대로는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선 ‘表’는 ‘밖’이 아니라 나타남, 즉 ‘표현’이어야 ‘出’이 갖는 ‘벗어나다’가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 세 사람의 ‘만상의 밖에(을) 벗어나며’라는 역주는 도저히 뜻이 통하지 않는 비문성을 갖는다. 어찌 만상의 밖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만상의 밖이란 무엇이며 어디인가 하는 문제, 어떻게 벗어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역주대로라면 대승은 몇 차 방정식을 푸는 듯한 매우 난해한 논리로서, 현실적인 간단명료한 논리로 구성된 대승사상을 지향하는 원효의 뜻과는 달리 엉뚱한 지적 유희에 머물기 쉽다. 그래서 어렵게 읽을 것 없이 원문 그대로 <어찌 만물의 표상을 벗어나겠느냐>, <어찌 만물의 표상 밖이겠느냐>, 즉 <그 현묘함은 만물에 그대로 나타난다>라고 읽으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에서 ‘非像表也’가 문제이다. 이기영은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로, 성낙훈은 <만상의 밖이 아니건만>으로, 탄허는 <像 밖이 아니건만>으로, 은정희는 <만상의 밖을 벗어나지 않았으나>로 각각 국역하고 있다. 이처럼 국역이 다른 까닭은 ‘非’ 자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이다. 네 사람이 이 구절에서 만큼은 서로 다른 국역을 하고 있어서 이 문단의 전체적인 뜻이 난조를 보이고 있다. 이 ‘非’를 ‘아니면’으로 읽으면 뜻이 풀린다. 즉 <만물의 표상이 아니면> 또는 <만물로 나타나지 않으면>이 되어 이어서 오는 <오안으로 그 몸(현묘의 체현, 즉 대승)을 볼 수 없으며.와 어울린다. 이렇게 하여 <非像表也 五眼不能見其軀>는 앞에서 말한 <玄之又玄之 豈出萬像之表>를 강조하는 말이 된다. 이어서 오는 <在言裏也 四辨不能談其狀>에서도 ‘在言裏也’가 혼란을 가져온다. 이것을 이기영은 <또 말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로, 성낙훈은 <언설의 안에 있으나>로, 탄허는 <말 속에 있음이여>로, 은정희는 <백가의 말 속에 있으나>로 읽는다. ‘在言裏’를 앞의 ‘猶在百家之談’에 이어서 직역하면 <백가의 말 속에 있다>가 된다. 그러나 이대로 읽으면 이어서 오는 <四辨不能談其狀>의 ‘사변으로 그 모양을 말할 수 없다’와 상충한다. 그런데 원효가 앞에서 <寂之又寂之 猶在百家之談>라고 말한 취지에 이어서 생각해 보면, <고요하고 고요함>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낸 말이 ‘百家之談’이기 때문에 ‘四辨’은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구체적인 말’이란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이어서 읽어보면 <백가의 말 속에 있지 않으면 사변으로 그 모양을 말 할 수 없다>가 된다. 앞의 ‘非’를 이 두 대구 모두에 적용하면 문의가 활연하게 풀린다. 다음으로, <欲言大矣 入無內而莫遺>과 <欲言微矣 苞無外而有餘>에 대한 국역은 네 사람이 같은데 대승이 무한하게 크기도하고 지극하게 작기도 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두루 들어있다는 존재론적 측면을 말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引之於有 一如用之而空>과 <獲之於無 萬物乘之而生>는 대승의 작용론적 측면을 말하는데, ‘之’는 주체인 대승이며 ‘有’와 ‘無’가 가상의 목적, ‘空’과 ‘生’이 실제의 변화이며, ‘一如’가 본질이고 ‘萬物’이 현상이다. 또한 ‘引’과 ‘獲’, ‘用’과 ‘乘’이 작용이 된다. 은정희의 <유(有)로 이끌려고 하나 진여(眞如)도 이를 써서 공(空)하고, 무(無)에 두려고 하나 만물이 이(대승의 체)를 타고 생기니>라는 국역대로 읽어도 무난하나, 그 뜻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유에서 그것(대승)을 이끌어도 진여가 그것을(대승) 사용하여 공이 되고 무에서 그것을 얻고자 해도 만물이 그것을 타고서 생한다>로 읽을 필요가 있다. 대승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에 대하여 원효가 말하고자 한 바를 살펴보면, 대승은 어느 한 곳에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으로 ‘有’와 ‘無’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一如’라는 본질과 ‘萬物’이라는 현상의 양쪽 벽 사이를 오고간다는 것이다. 대승을 ‘有’에 두면 일여가 곧 대승에 작용하여 공으로 만들고, 대승을 ‘無’에 두면 만물이 곧 대승을 타고서 생겨 번성하게 되니, 대승이란 물건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음이다. 이 ‘大乘’이란 말은 곧 ‘道’라는 말인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원효는 大乘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사유를 펼친다. 「대승기신론」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노장사상이 담긴 어구에서 볼 수 있듯이 원효는 자기 논리를 전개하는데 있어 노장의 견해를 차용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선을 긋고 있기도 하다. 노자가 ‘玄’과 ‘寂’을 처음과 끝이 있는 평면으로 본다면 원효는 그것을 회전하는 입체로 본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현적이 무형이라면 원효의 현적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은 두 사람이 생존한 시대적 배경에서 찾아야 한다. 노자는 춘추전국시대를 간고하게 살면서 본질을 추구하는 무위와 은둔 지향이었으나, 원효는 30세인 한창 시절인 서기 646년 삼국통일 준비기에 공주의 남편으로 풍요하게 살면서 본질과 현상의 양면을 함께 보고 취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원효와 노자는 대승, 곧 도를 인식하는 관점은 같지만 그 작용과 효용 면에서는 각자 갈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자가 낫다거나 원효가 낫다거나 비교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동일한 인식의 관점을 가졌으나 그것을 푸는 과정에서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에 알맞도록 변용하였을 따름이다. 노자는 철저한 개인적 삶의 태도를 통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법을 제시하였고, 원효는 시대와 민중을 함께 품어나가자는 사회적 삶의 태도를 통하여 현실계를 화엄세상으로 변화시키자는 의지를 제시한 것이다. 원효는 본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인식의 무게 중심을 실천적 현상에 두는 현실주의자였다. 삼국통일의 국책에 적극 협력하여 화쟁사상을 주창하여 국력을 결집하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무애행을 펼쳐서 난후의 혼란한 민심을 수습한 실천철학 면에서 뿐만 아니라, 대승의 체가 깊고 고요하나 ‘萬像之表 ’와 ‘在百家之談’을 벗어나지 않는다며 현실적 실천성을 강조하는 대승 개념에 대한 정의에서도 볼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一萬의 말들은 ‘大乘’에서 나와 화려하게 피다가 다시 ‘大乘’으로 돌아갈 것이다. 즉 대승은 인식의 어느 한 점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씨앗이다가 폴이다가 다시 씨앗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계속>  
153 꿈과 직업/고석근 file
편집자
1252 2013-09-04
꿈과 직업 사람들은 늘 내게 물어요 “넌 뭐가 될래? 의사, 댄서, 잠수부?” 사람들은 늘 나를 괴롭혀요 “넌 뭐가 될래?” 마치 내가 나 아닌 게 되길 바라는 듯이 - 데니스 리,「넌 뭐가 될래?」중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들어왔다. “네 꿈은 뭐야?” 그러면 우리는 무슨 근사한 직업을 댔다. “판검사요.” “과학자요.” “스포츠 선수요.” “연예인이요.” 하지만 직업이 꿈이 될 수 있을까? 직업이 꿈이라면 왜 그 많은 꿈을 이룬 사람들이 불행하게 살아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난치병으로 죽어간 사촌 언니를 보고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의대에 가지 못하고 평범하게 사는 주부가 되었다. 그녀가 의대에 가기 위해 열심히 한 공부는 그녀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단지 입시에 합격하기 위해 한 공부는 불합격하는 순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녀가 아픈 사람을 낫게 하겠다는 꿈을 가슴에 안고 공부를 했다면 그 공부는 그녀가 어떤 길을 가건 그녀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의대에 가지 않더라도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일과 관련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녀가 아픈 사람을 치유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갔다면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이다.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음악을 좋아했더라면 음악으로 치료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그녀는 음악 치료의 대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오로지 ‘의대 합격’이라는 화두에만 매달렸기에 그녀의 잠재력은 입시 위주의 공부에만 한정되어 발현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시험에 실패하자 그녀는 다른 것은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녀가 설사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훌륭한 의사가 되었을까? 의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았더라도 그녀는 올바른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훌륭한 의사가 되는 못했을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면 그녀의 뜻과는 다르게 그녀는 무능한 의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은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한다. 자신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힘. 솟구쳐 올라오는 힘. 이런 힘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어떤 직업이라는 꽃을 활짝 피우게 될 것이다. 그 꽃은 사람들에게 짙은 향기를 뿜으며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152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 혹은 멸종/산백 박희용 file
편집자
1459 2013-08-24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 혹은 멸종 산백 박희용 「우리도 결국은 포유류의 일종이며, 모든 생명체는 자연이라는 화려한 축제에 초대된 손님이다.」 - 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사라진 후, 지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인류와 함께 사라져갈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기게 될 유산은 무엇인가? 지구가 품고 있는 자원이 한정임을 빤히 알면서도 풍요한 물질생활에 대한 욕망 속으로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가는 인류. 멀지 않은 장래에 물질자원이 고갈되면서, 타인의 소유물과 타국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침략으로 대량 살육이 자행되든지 핵전쟁이 터지든지 환경오염 때문에 불치병이 들든지 간에 인류의 멸종이 도래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각국의 지성인들이 인류 멸종이란 참화를 피하자고 아무리 경고해도, 대중들의 귀는 이기적 물질 획득 경쟁 쪽으로 열려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성적 상호 타협에 의해 경쟁과 투쟁이 통제된다 해도, 결국은 각종 요인에 의한 DNA의 변이와 퇴화에 의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정자와 난자가 쇠약해져서 마침내 몰락 또는 멸종이 오고야 만다. 진화가 반드시 더 편리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 법, 진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오히려 퇴화의 방향으로 전환하여 수백만 년 전의 영장류 초기 상태로 환원하게 될 수도 있다. 앨런 와이즈먼이 역저 『인간 없는 세상』에서 인간 문명이 사라진 지구의 모습을 어디까지나 경고성 가상으로 제시하면서, 세계 모든 인류가 ‘인간 있는 세상’을 더욱 잘 가꾸어나가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지만, 그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체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45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이미 수많은 종이 멸종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멸종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부동의 법칙이 될 수가 없다. 지구 위에서 번식하는 한 가지 생물 종일뿐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구의 제왕으로 온갖 자원을 독점하여 낭비하며, 수 없이 많은 다른 종들을 억압, 추방, 살해, 멸종시키는 비행을 저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을 훼손하고 오염시켜 모든 생물들로 하여금 병사하여 멸종케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뿐만 아니라 다른 종들 모두가 비참한 멸종을 피할 수가 없다. 짧게는 수백 년, 길어야 수천 년 미래 안에 지금 볼 수 있는 종들은 지구에서 사라지고, 오염된 지구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생물들이 출현할 것이다. 대멸종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 없는 세상’이 경고성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상이 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운이 좋다면-나 멸종은 곧 인류 문명의 소멸로서 지구는 수천만 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수백, 수천만 년이 흐르면 다시 진화가 반복되어 고급 지능을 갖춘 생물이 출현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소모한 물질은 분자 상태로 흩어졌다가 다시 무기물과 유기물을 형성하여 다양한 자원을 재현할 것이고, 고급지능생물은 그 자원을 활용할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인간 없는 세상’일 뿐이지 ‘생물 없는 세상’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의식 있는 지성인들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멸종을 예감하며 방지책을 세우고자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상누각일 뿐이고, 인구 증가 - 한없는 물질 욕구 - 자원 고갈 - 환경오염 - 대량 살육 전쟁 - 문명 붕괴 - DNA퇴화 등의 절대적 요인 때문에 종의 멸종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이다. 과학을 발달시켜 외계 자원을 끌어 쓰거나 외계로 이주한다 해도 그것은 소규모일 뿐 인류 전부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문명인답게 다양한 방지책으로 수백, 수천 년 간은 호모 사피엔스의 외형을 유지한다 해도 환경 오염과 식품 오염이란 치명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DNA의 변이와 퇴화는 도저히 막을 수 없어 결국은 멸종에 이를 수밖엔 없다. 그러나 빤히 알면서도 멸종의 화를 당할 수는 없는 일,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이고 국민이고 지구촌 주민인 우리 인류의 과거, 현재의 모습이 무궁한 미래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방지책을 함께 생각해 보자. 먼저,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인구 증가, 핵전쟁 등으로 생길 인류의 멸망을 막거나 최소화 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인간 지성의 진화뿐이다. 지능이나 지식의 발전만을 강조한 지금까지의 평면 확장적인 문명 의식에서 벗어나 입체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탐욕과 과시를 근거로 하는 번영과 행복이 내포하는 치명적 위험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통찰력을 갖춘 지성의 발전이 필요하다. 대중들의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지도층 엘리트들의 영민한 지성-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에 근거한-이 주류를 이루어야만 사회가 건강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다. 엘리트들이 먼저 내적 자각에 의한 검소와 근면이 실천되어야 하고 외적 실천에 의한 사회적 형평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중들이 믿고 따르게 되어 인간 지성의 일반화가 확산된다. 다음으로 필요한 조치는 산아제한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이 향상되면서 인류는 자연 생물계의 평형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구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여 사용함으로써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미 개체수 과다로 하여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문명의 붕괴를 막는, 또는 지연시키는 가장 시급한 방법은 인구제한이다. 지구상에 살아가기에 적당한 인구수를 산정하고, 각 가정에서 1 ~2명의 자녀를 낳아 잘 키우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산아제한이 잘 되고 있으나 후진국에선 안 된다는 점이 큰 문제점이다. 후진국일수록 동물적인 측면이 강하여 임신과 출산을 자연 그대로 하고 있다. 후진국 사회에선 피임 대책 없이 그냥 섹스를 해서 낳은 아이들이 많아지고, 선진국 사회에선 선별해서 낳아 기르는 아이들도 차츰 감소해 지구 전체적으로는 지역적 편차가 심하게 발생한다. 한 세기 안에 선진국 인구는 극소수이고 후진국 인구가 절대 다수가 되어 고급 문명보다는 대중 문명이 강화될 것이고, 생명의 원리에 의해 결국엔 선진국 고급 문명이 쇠락하고 말 것이다. 특히 기독교와 천주교 등의 종교에서는 낳는 대로 모두 길러야 한다는 교리 때문에 불임과 낙태를 범죄시하고 있어서 인구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 주장은 구시대적 종교 생명관이다. 현대적, 과학적, 합리적인 생명관은 생명을 일단 출산 이후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 정자 기간, 난자 기간, 수태 기간 동안은 생명을 위한 준비기일 뿐이다.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욕망이 만든 모든 잉태를 존중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하되, 생명 선별권을 부모와 사회가 가져야 한다. 생명에 대한 개념 정의가 확실해져야 하고, 생명 현상을 자연력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인위적 통제가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검증과 통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과학이 도리어 폭군이나 소수 집단에 의해 생명을 소멸시키는 악역을 맡게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물질적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활용이다. 지구 역사 45억 년은 생물의 발생과 진화의 역사이다. 생물은 물질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생물과 물질은 동체이다. 그러므로 물질적 욕망은 일정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한 물질적 욕망이 발동하여 현대문명이 이루어 놓은 모든 업적들-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또는 군사적인 것 모두-은 생물인 인류의 위대한 성과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문명은 극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성인들은 지금이 인류문명의 극성기임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붕괴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화를 불러 일으켜 문명의 붕괴뿐만 아니라 결국 인류 멸종에 이른다고. 정말 그럴까? 아니다, 인간은 원래 생물이므로 생물의 운명답게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 자체를 백안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게 아닐 수 없다. 지성인들은 인류가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문명의 붕괴는 곧 다가온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먹고 마시고 즐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인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서도 생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문명의 붕괴를 막는 방법이 ‘물질적 욕망은 죄악이므로 버려야 한다’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물질적 욕망은 생물의 본질이므로 존중되어야 한다. 단 사회적 조건에 알맞도록 욕망하여야 한다.’라는 적극적 개념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누구나 문명의 붕괴와 인류 멸종을 바라지 않는다. 붕괴와 멸종을 피할 수 있는 방법, 물질적 욕망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중요한 것은 물질적 욕망에 대한 제한적 접근이다. 거기에는 개체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 두 곳에서의 조절과 통제가 필요하다. 개체적인 면에서는 정신적 만족을 물질적 가치에서 구하지 말고 자원 소유와 소비의 자발적 제한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가치에서 구하는 지적 성숙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지성인들에 의한 사회적 계도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인간의 마음과 지능이 아직 진화 도중에 있으므로 다양한 교육과 사회적 운동에 의해 정신문화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정도가 향상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정한 인구 증가, 검소한 물질 자원 이용, 갈등과 전쟁의 쇠퇴, 환경 정화, 음식 정화 등이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DNA의 病 변화와 퇴화는 방지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때는 건강한 DNA를 확보하기 위하여 하는 수없이 DNA 분석과 편집, 인공 수정과 배아, 출산 등이 일상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호모 시피엔스 사피엔스의 마음과 지능이 현상 유지로 인구 증가 - 한없는 물질 욕구 - 자원 고갈 - 환경오염 - 대량 살육 전쟁 - DNA퇴화 등이 지속되면 인류의 미래는 갈수록 어두워진다. 반대로 고급의 마음과 지능이 입체화 된 지성의 힘으로 그러한 장애를 극복한다면 인류의 미래와 문명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을 잘 읽고 인류의 미래와 문명의 발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앨런 와이즈먼이란 인간이 적정한 인류 수효가 10억 정도라고 계획하는 유대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동양의 한반도 남부 영남 땅에 사는 어느 寒士에게 든다. 「최초의 아메리카인들의 후손 대부분이 유럽인과 접촉한 지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끔찍하게 죽어버린 암울한 사실을 말한다. 스페인인들의 칼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 대부분은 아무 항체가 없었기 때문에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백일해 등의 구세계 병균에 쓰러지고 말았다. 스페인인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약 2,500만 명이 살고 있었다는 멕시코의 경우만 해도 100년 뒤에 살아남은 사람은 100만 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다른 종이 멸종될 때까지 결코 굽힐 줄 모르는 우리의 킬러 본능만이 아니다.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본능도 문제인 것이다. 1970년에는 케냐 전체에 2만 마리나 퍼져 있던 검은코뿔소가 이제는 4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동양에서 약으로 쓴다면서 뿔 하나에 2만 5,000달러에 거래되고, 예맨에서 기념용 칼의 손잡이에 소용되면서 모조리 밀렵당했다. 케냐인들은 1953년 애버데어 숲에 들어가 마우마우 반군 게릴라 조직을 결성하고 백인 지주들에게 테러 공격을 가했다. 영국은 본국에서 몇 개 사단을 파견하여 애버데어와 케냐 산을 폭격했다. 수천 명의 케냐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목숨을 잃은 영국인은 100명 정도였다. 1963년에 휴전협상이 이루어졌고, 압도적인 다수 의견에 따라 ‘우루(독립)’를 성취했다. 흑백의 대비가 선명한 콜로부스원숭이의 수염 텁수룩한 용모는 분명 불가의 승려와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동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이 실려 간 목적지는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라비아였다. 케냐 해안의 몸사바는 19세기 중반까지 인간의 육체를 실어낸 선적항이 되었다. 총부리를 들이대고 물건을 포획하기 위해 중아아프리카로 몰려온 아라비아 노예 상인들의 마지막 행선지이기도 했다.」 「영국인들이 노예 매매를 그만둔 19세기 말까지, 아프리카 중앙 평원에서 몸바사의 경매장에 이르는 상아와 노예의 운반로에서 죽어간 코끼리와 인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극동에서 사치품에 대한 애호가 뜨거워졌는데, 그들이 원한 사치품에는 상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아에 대한 욕심은 여러 세기 동안 노예 매매에 대한 투자를 자극했던 욕망을 능가하지 않았던가. 제2차 세계대전 역사가라면 중국이 미국의 고철을 다 사들이는 목적에 대해 매우 우려하며 의심할 것이다.」 좋은 책 『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 당신이 다양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빚어낸 현란한 문장으로 엮은 한 권 책에서 물질문명의 붕괴와 인류의 멸종을 근심하기 전에 당신의 조상인 백인종, 그 중에서 앵글로 섹슨족이 저지른 죄업에 대한 사죄와 참회가 정중히 이루어져야만 진실로 인류의 미래를 근심하는 지성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의 왜곡된 물질문명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누구에 의해 이용되었는지, 양식 있는 학자라면, 아니 의식 있는 저널리스트라면 정확히 보아야 하고 정확히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 남부의 반이 넘는 면적의 땅에서 평화스럽게 살던 테즈메이니아인들이 왜 멸종했는지 사실대로 증언해야 하지 않을까?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들이 왜 어떻게 살육 되었는지 정확하게 증언해야만 옳은 지성인이라 일컬을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북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수많은 인류가 누구에 의해 수백 년 동안 피식민의 고통을 겪었는지, 일본이 누구에게서 침략을 배워서는 그것을 아시아 이웃 인류들에게 써먹었었는지 정확하게 통찰해야만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 2차 세계대전이 어느 인종에 의해서 발발되어 수천만 인류가 살상 당했으며,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지구 위를 돌아다니며 약소국의 물질을 수탈해서는 어디로 가져가는지를 분명하게 규명해야만 인종을 초월한 지구주의자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보태어 불교에 대한 이해, 극동 나라 사람들의 정신문화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향상시켜야 하지 않을까? 앨런 와이즈먼, 당신의『인간 없는 세상』이 ‘유색 인종 없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미래 인류의 행복’을 목적한다면, 많은 문장을 수정, 삭제해야만 하리. 2013년 8월 24일 안동 열락연재에서 쓰다  
151 말의 인플레이션/권서각 file
편집자
1383 2013-08-20
말의 인플레이션 사람만이 말을 사용할 줄 안다. 어떤 이들은 앵무새도 말을 하지 않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앵무새의 그것은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흉내 낼 따름이다. 침팬지도 200여 가지의 소리를 내서 의사소통을 하지만 그것은 다만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는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되는 음성으로 표현되며 문법체계에 의해 의미를 생성한다. 인간은 언어를 가졌기에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만약 인간이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면 결코 개보다 낫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신체적으로 다른 동물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등하다. 신발이 없으면 걸을 수도 없으며 옷을 입지 않고는 추위를 이길 수 없다. 집이 없으면 잠도 잘 수 없다. 개는 신발 없이도 옷 없이도 개집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부리며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말 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호모 로퀜스(Homo loquens)라 한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 생각한다는 얘기다. 말이 없으면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담는 그릇이다. 그가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사고방식이 결정된다. 거친 말을 사용하면 심성이 사납고, 고운 말을 쓰면 심성이 곱다. 바른 말을 쓰면 생각이 바르고 잘못된 말을 쓰면 생각도 비뚤다. 일찍이 공자는 그 대상에 맞는 말을 사용해야 한고 했다. 말을 보고 말이라 해야 하고 사슴을 보고 사슴이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는 어떤 사물을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말은 하나밖에 없다는 일물일어설(Single word theory)을 말하기도 했다. 이것을 이것이라 하고 저것을 저것이라 했을 때 사회도 정상적인 흐름을 가질 수 있다. 말의 쓰임이 올바르지 못하면 그 사회도 위기를 맞게 된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하는 사회는 끝장난 사회다. 만해 한용운의 ‘님’은 절대자 혹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님’이라는 말은 문인들 사이에서 동료 문인에게 저서를 증정할 때 책갈피에 ‘아무개 님’이라고 쓰면서 차츰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님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던 사람은 일부 문인들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병원에서 대기하는 환자를 부를 때도 ‘아무개 님’이라 한다. 님의 숫자가 환자의 숫자만큼 많아졌다. 회사 이사회에서 대표로 선임된 사람을 사장이라 한다. 요즘은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님이다. 무작위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사랑합니다.’라는 말,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 쓰던 말이다. 교사의 경험이 있는 분들 가운데 자기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 내 제자야’ 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제자의 상대편에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를 제자라고 부른 다면 그는 스스로를 스승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스승이라는 말은 참으로 성스러운 말이다. 그래서 공자도 퇴계도 스스로 스승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스승이라는 말은 그를 진정으로 우러르는 제자가 쓸 수 있는 말이다. 나날이 말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 전화 속의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거짓말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이득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거짓말이 참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사회는 말의 질서가 무너진 사회다. 국정원 여직원이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오피스텔에서 일하다가 들켰다. 스스로 안에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문밖에는 경찰, 시민, 선관위 직원 등이 있었다. 이를 두고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감금이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사회에 희망을 걸기는 어렵다.  
150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도르노)/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2772 2013-08-05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도르노)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 브레히트,「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중에서 ‘아우슈비츠 감옥’을 다녀 온 사람이 말한다. 유태인들이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에 독일군이 말했대요. “앞으로 여기서 살 거니까 샤워를 하세요. 가방에 이름을 써 놓으시고요. 나중에 찾아갈 수 있게요.” 이름이 쓰인 가방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단다. “사람들 머리카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머리카락으로 양탄자도 만들었다고 해요.” 아, 인간이 이렇게도 잔인해 질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은 철저히 ‘아우슈비츠 감옥’을 보존하고 있단다. 역사가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독일은 ‘아우슈비츠 감옥’을 그대로 보존하여 ‘아우슈비츠 감옥’을 낳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끊임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일제강점기’가 얼마나 보존되어 있나?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한탄을 한다. ‘3.1 운동’도 모르고 ‘8.15 해방’도 모른단다. 그래서 국사과목을 수능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그들이 왜 ‘일제강점기’를 보존하자는 얘기는 하지 않나? 생생한 역사 현장을 보존하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을 텐데. 경찰서 고문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때 고문한 일본, 조선 경찰들과 고문당한 독립 운동가들을 다 보여주면 될 텐데. 그러면 학생들이 그걸 보면서 우리 역사를 훤히 알 텐데. 그래서 요즘 ‘국사 교육 논쟁’을 보면 분노가 터진다. 정말 그들은 국사 교육을 하길 원하나? 아, 정말 원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국사 교육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 역사 교육’을 생각하면 분노가 터진다. 사마천은 ‘분노가 터져서 책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너무나 분노가 터져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이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 이것밖에 없기에. 현재 우리의 역사는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지 않는 역사’이기에 모든 것이 비틀어져 있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그는 기울어져가는 우 리 역사를 보며 피울음을 토했을 것이다. 그렇다. 공백이 된 역사. 그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을 하라고 다그치는가? 인간은 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인류’이다. 한 인간 속에는 전체 인간의 마음이 함께 흐른다. 오늘은 내 마음 안에 흐르는 ‘인간의 마음’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너무나 비틀어져 버린 내 마음 안에 희미하게나마 흐르는 그 소리는 내게 무엇을 하라고 소리치고 있는가?  
149 정치, 정치인, 정치가 /山白 박 희 용 file
편집자
1080 2013-07-24
 정치, 정치인, 정치가 山白 박 희 용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한국 정치사에 도움을 준 일 가운에 가장 큰 것은 박원순과 안철수 라는 두 인물을 정치계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동안 두 사람은 정치권 밖에서 전자는 아름다운 재단 일에, 후자는 서울대 융합대학원장과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로 각각 사회적 공헌을 크게 해왔다. 그런데 오 시장이 서울시 소재 초등학교 4~6학년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 반대가 다수일 때엔 시장 직을 사퇴하겠다는 승부수를 걸어 2011년 가을에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바람에 급식문제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자기진영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로는 순차적 확대를 지지하는 여론이 다수이기 때문에 서울시의회와 진보진영의 기세를 꺾어 보수진영을 집결한 다음으로 서울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강력하게 수행하여 업적을 남긴 후 이듬해에 있을 보수진영의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화하려는 플랜을 세웠을 것이다. 또 어차피 반년 뒤인 2012년 봄에는 대권주자로 활동하기 위해 시장 직을 사퇴해야 할 바엔 멋진 승부수를 걸어볼 욕심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설사 패배하더라도 보수층을 자극하여 집결시키면 보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큰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승부수가 성립되지 않음으로써 대권 행보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조금만 더 보태면 확대하는 급식비가 될 만한 돈인 수백억의 선거 비용 소모를 불쾌하게 여긴 서울시민들의 외면으로 인하여 개표 유효 투표율 자체가 미달하여 수백억이 헛돈이 되고 말았다. 오세훈 재산이 얼마인 줄 모르지만 신임투표 비용을 사비로 충당하겠다는 선언을 했다면 유효 투표율은 확보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년층들의 적극 투표와 돈에 매우 민감한 서울시민들의 보수 성향을 자극하여 승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승부수의 실패가 몰고 온 후 폭풍은 오세훈과 보수진영의 계산을 초토화 시킬 정도로 거대했다. 민주당 후보가 선출 되어 일으킨 태풍이 B급 정도로만 불어도 승산이 넉넉했는데, 민주당이 아니라 시민운동권과 사회공헌권에서 그만 초대형 태풍이 부는 바람에 보수와 진보 구도 자체가 붕괴하고 오세훈과 유력 시장 주자 급들이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래서 2011년은 우리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광복 후의 정치사를 반추해보면, 민주시민들의 축적된 연대 역량이 군벌 무단정치를 극복하고 1987년 체제를 성립한지 25년, 산천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 변화하는 도중에 있다. 그동안 네 명의 대통령을 보내고 1년 반 정도의 임기가 남은 보수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그때 시점에서 냉철하게 1987년 체제를 반성해보면, 이제 새로운 정치체제로 변화해야만 할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정치학자들과 정치인들이 공감할 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많은 국민이 체제의 변화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제 변화의 필요성과 때가 되었음만을 알았지 실제로 체제 변화를 도모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당리당략과 호불호가 난무하는 정치권에서 87년 체제 변화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변화된다 하더라도 기성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겹겹이 얽힌 짜집기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원순과 안철수의 등장은 폐쇄된 한국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오게 하는 새 출입문의 역할뿐만 아니라 시대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아쉽다면 이 역사적 변화의 핵인 두 인물의 등장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된 것이 아니라 오세훈의 승부수라는 극적인 요소에 의해 촉발 된 점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볼 때는 우연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동안 팽팽하게 축적된 민주시민의 에너지가 작은 자극에 의해 폭발된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적 키 워드는 ‘분노’이다. 오세훈이가 무리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을 보고 많은 지식인들이 분노했지만, 그 두 사람이 가진 분노의 질과 양은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할 정도로 진지했다. 시민운동과 공공분야에서 사회를 위해 삼십 년 동안 헌신해왔지만, 오세훈의 헛짓으로 인해 낭비되는 수백억의 국고를 보곤 개인적인 헌신의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즉 서울시장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서울시가 변화할 수 없으며, 나아가 정치가,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본질적으로 변화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에 우선 서울시장이 되어 서울시정을 바로 세우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5% 지지도의 박원순이 60% 가까운 지지도를 받는 안철수의 흔쾌한 양보를 받아 서울시장에 당선됨으로써 두 사람 모두 승리자가 되고 서울시가 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박 시장은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에서 서울시의 시정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국민과 정치권 일부에서 갖고 있는 시민운동권 출신의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안철수 역시 주지하다시피 이듬해 대선 후보 선출 기간 동안에 유력한 대통령 감으로 부상하였고, 현재는 여야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제3의 정치세력을 집결하고 있다. ‘분노’라는 키워드로 촉발된 두 사람의 정치 실험이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엔 비교적 안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보태어 대선을 거치는 동안 많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여 한국 정치계를 풍성하게 하였다. 반대로 한 시대를 주름잡으며 기세등등하던 인물들이 다양한 사고로 낙마하여 무대 뒤로 사라지도 했다. 비유한다면 정치는 그릇이다. 사회는 그 그릇 속에 담긴 음식이다. 그릇이 견고해야 음식이 잘 건사되어 가족들이 먹을 수 있다. 또 정치는 들판이다. 정치인은 그 들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작은 단위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정치가는 크게 나누어진 각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그릇을 잘 건사하는 사람, 들판을 경영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즉 최고지도자에게 인간사회와 국가의 안위가 위임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선거 원칙에 따라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갖는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선거 원리에 따르면 선거란 여러 인물들을 비교하여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는 제도이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인물이 대표로 뽑히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장 우수한 인물보다 가장 적당한 인물이 뽑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구성원들인 국민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인물이란 고매한 이상보다는 당장의 내 생활에 편리를 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환언한다면, 많은 지성인들이 지적하듯이 민주주의의 최대 맹점인 중우정치가 여전히 현실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정치는 곧 국민들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살펴보더라도 과연 그 시대 상황에 가장 적합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되는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보면, 남한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부인 보수우익의 이익을 수호하는 대표자였으며, 민족자주 노선을 추구하는 애국자가 아니라 종주국인 미국의 대동북아 전략의 하수인이었지 아니한가. 1945년 광복 직후에 조사된 여론을 보면 국민의 60% 이상이 미국식 민주주의나 소련식 공산주의보다는 그 둘을 절충한 사회민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학자들의 논문이 증언한다. 이것은 남한 주민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외세와 그에 조종되는 꼭두각시들에 의해 국민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펼쳐졌고, 결국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을 겪고도 냉전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후의 대통령들을 보면 박정희와 전두환은 말 그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만의 대통령이 되었고, 여타들도 모두 국민들의 지지를 고루 받기보단 한쪽의 지지만을 받은 반쪽 대통령들이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우중정치 요소를 숙명으로 한다지만 그래도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최우수는 아니라도 우수 급 정도는 돼야 하는데 현실 정치는 보통 급의 인물들이 득세하여 대통령이 되었으니 한국정치 발전 속도가 느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 그리고 전두환 독재가 성립할 수 있었던 명분과 실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역시 이념 문제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적화 야욕을 막고 공산 독재체제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자는 자유민주주의는 그들의 독재를 변호하는 최대의 무기였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완성하여 미제의 식민 수탈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시켜 조선혁명을 완성하자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세습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최대의 무기로서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87 체제의 변화를 가속시켜 앞으로 올 30년 한 세대를 경영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이념 문제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1980 년대 이후 제3인터내셔널 차원의 공산주의는 확실히 실패하였으며, 자본주의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념이 가진 이론과 실천 면에서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비판과 자각이 이미 일반화 되어있는 현재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형태의 이념이 우리들의 후손에게 적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오늘을 사는 지식인들의 임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통일을 내다본다면, 그것도 일방적 통일이 아니라 남북의 협상에 의한 통일을 바란다면 우선 남북이 이념면에서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상반된 이념 체제 속에서 70년 가까이 생활한 주민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점진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의 유일한 방법은 역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장점을 취사선택하는 것뿐이다. 이 합의는 한반도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라 지구 전체 차원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상계에서 중심 화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정당정치의 확립이다. 정치의 요체는 인물과 제도인데, 제도가 인물보다 우위냐 아니냐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를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제도에는 국가 이념과 조직도 포함되지만 정당은 제도의 중요한 한 축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라고 누구나 중등교육에서 배우지만 현실에선 정당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왜 정당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느냐 하면 인물 때문이다. 그 인물이 누구냐 하면 바로 대통령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이 된 자는 먼저 여당을 장악한다. 그래서 여당은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만을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인데, 정당이 정당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 거수기 역할을 하게 된 나라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당이라는 제도가 대통령이라는 인물에 의해 붕괴되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도가 인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인물인 대통령이 정당정치를 망가뜨리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직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새로운 체제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임기 재선제나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 독식을 막고 자기들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책략성이 농후하다. 미국을 보면 대통령제를 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 간다. 잘 굴러가는 까닭이 뭔가. 삼권분립이 확실하고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도 수준이지만 국가 조직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영역의 리더들이 자기 고유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만 되면 국가 총수로써 입법부와 사법부의 우위에 서며, 최고로는 국무총리 이하 장차관 등 등, 최저로는 지방 기관장까지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권력을 갖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먹이사슬 피라밋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기에다 공명을 탐하는 지식인들이 가세하면서 대통령의 권위는 더욱 상승하게 된다. 그러한 지식인들은 정통성이 없는 대통령들로 하여금 정통성을 보충하도록 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한 예로 김상협 씨는 고대총장을 할 때만 해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전두환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내는 바람에 오늘날엔 존재가 희미해졌다. 또 김상협이 유명한 바탕은 총장이다. 그것도 다른 대학이 아니라 고려대학교의. 국민들이 건설회사 사장인 이명박이 그래도 대통령 감은 된다고 본 기준이 고려대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태어 4.19 때 상대학생회장으로 선두에 선 의기. 민족 고대를 국민들이 얼마나 존중해 주었는가. 그런데 한 사람은 전두환의 하수가 되고, 한 사람은 고대 인맥을 타고 4대강 난자와 국정원법 위반 등의 난정을 저질러 고려대학교의 명예를 퇴락시키고 말았다. 그들이 족보와 비석에는 몇 자 남겼을지 모르지만 천추만대 두고두고 만고역적의 가면이었음을, 국토의 모성을 난자한 주범으로 규탄받을 것이다. 그래서 지혜적 지식인은 난세를 당하면 공명을 버리고 은둔했다. 현재의 5년 단임제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국가가 발전했다. 5년마다 인재들이 순환하여 집권함으로써 국정 경험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식 정쟁의 위험도를 낮췄다. 또 현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게는 제도전의 기회를 제공을 주고 미워하는 세력에게는 5년 뒤에 미운 꼴 안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 국민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 집권 세력 내에도 여러 정파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야 현직에 있을 때 한몫 챙기자는 욕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 집권을 희망하는 세력들은 국민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후반기부터는 현직 대통령을 조금씩 견제하게 되어 그런대로 정당정치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고쳐서 재선제로 했을 경우에, 대통령은 국가적인 목표보다는 재선을 목표로 국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재선에 도움이 되는 충성파 인물들을 중용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 여권에서는 줄서기와 눈치 보기가 심화되어 국정 운용과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가 어렵게 된다. 5년 단임제가 바르게 운용되면 정당정치가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당정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여 여러 파벌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민주정당의 가치를 나타내야 한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당내 투표에서 이긴 박근혜 후보가 일반국민 참여에서 밀림으로써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게 하여 4대강을 절단 내게 하고, 2012년 민주당 경선 때 당내 투표와 국민참여 투표에서 이긴 손학규 후보가 모바일 민심이라는 국민참여 여론조사에서 밀림으로써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게 하여 결국 대선에서 1년 동안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우세했던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받고서도 패함으로써 민주진영에게 참담한 패배감을 안겨주도록 한 원인인 국민참여라는 환상을 없애야 한다. 정당정치는 가치에 동의하는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당비를 바탕으로 해서 조직된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데, 평소에는 그 정당에 관심이 없던 자들이 경선 기간 동안에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추종자들을 국민이란 이름을 덮어씌워 동원하여 소기의 목적을 쟁취토록 하는 바람에 정당정치의 본령이 그만 일그러지고 말았다. 정당은 당원이 중심이다. 국민참여정치란 명분과 취지는 그럴 듯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장이고 속내는 근기가 가벼운 선동가들의 상용 도구일 뿐이다. 다음으로는 당선된 대통령이 지금처럼 만직을 임명하는 제도와 관습을 없애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과 비서진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임명직 공무원들은 당내 인사위원회에서 다수결로 추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공기업 기관장들은 해당 공기업 출신 가운데에서 국가인사위원회에서 추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의 요체 중의 하나가 인물인데, 행정의 요체 역시 인물이다. 이렇게 요직 인물들을 검증하여 기용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발전할 뿐만 아니라 집권정당도 계파 이익이 보장됨으로써 공존하며 더 좋은 정치를 위해 합심 노력할 수 있다. 인사제도가 합리성을 갖게 되면 정당정치가 활력을 갖게 되고 나아가 정치가 정상적으로 운동하여 국민과 국가가 평안해지게 된다. 87년 체제가 도입된 지 꼭 한 세대 30년 만인 2017년 12월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체제, 즉 개정된 새 헌법 아래 치러지게 될 것 같다. 새로운 체제의 핵심인 제도 면에서는 기존의 5년 단임제를 보완하면서 그동안 누적된 문제점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인물 면에서는 기성과 신생의 인물들이 모두 나서서 국민들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미 2011년에 지각을 뚫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 인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존 정치인들 가운데에도 정치가로 성장할만한 자질과 인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새 인물들과 함께 한다면 분명 한국 정치는 환골탈태할 것이다. 특히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새 정당 창설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데, 이것이 양당정치의 고정된 틀을 깰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느냐 못 갖느냐가 앞으로의 관심사이다. 양당정치의 벽을 넘을지, 벽 앞에서 시들고 말지는 안철수 쪽 인물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지만 역시 일반 국민들의 냉철한 평가에 좌우될 것이다. 인품과 자질은 우수했지만 금력이 없거나 정치자금 수집을 주저했기 때문에 대선 후보기 되지 못한 인물들과 달리 안철수는 다른 면도 우수하지만 일단 정치자금 면에서는 비교적 자기 재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돈만으로도 안 되고 말만으로도 안 되는 것, 어찌 보면 시운이 따라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운이란 시대적 요구 속에서 분출되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에서 분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SNS 시대, 정치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곧바로 국민들의 안테나에 포착된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지식과 정보 습득양이 많기 때문에 구세대처럼 몽매한 정신이 아니라 파릇파릇 민감한 젊은 정신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어설프게 꾸며서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보단 진실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말 한 마디 행동 한 컷, 승부수 한 번 잘못 띄웠다가 졸지에 나락에 떨어진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옳은 정치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금수강산 삼천리에 정치다운 정치가 활짝 펼쳐져서 공자가 꿈꾸던 대동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148 NLL/권서각 file
편집자
1211 2013-07-14
 NLL 권서각 어떤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개인의 삶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모든 행위는 정치의 틀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이다.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 우리는 금강산에도 갈 수 있었고 개성에도 갈 수 있었다. 그러던 남북 관계가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긴장관계로 되돌려졌다. 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개성공단도 철수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금강산에도 개성에도 갈 수가 없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금강산에 갈 수도 있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정치와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정보원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이다. 군사정권 때 민주인사들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죽게 했던 중앙정보부의 바뀐 이름이다. 국정원이 인터넷 활동을 통해 대통령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나서 검찰이 당시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중대한 국기 문란 사건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난 대통령 선거 자체를 부정선거로 규정할만한 중대한 사건이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정권은 치명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 와중에 국정원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과의 대화록을 공개했다. 대화록이 공개되자 여권에서는 노무현이 NLL(서해안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도 하고, 김정일에 보고했다고도 하고 반미 발언을 했다고도 했다. 노무현이 마치 국경을 포기한 종북주의자인 것처럼 들고 일어났다. 노무현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국정원과 여권의 말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누가 봐도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 벗어나려는 꼼수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은 대통령 기록물이다. 대통령 기록물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 없이 공개해서는 안 되는 문서다. 그런데 국정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다. 대선 개입에 이어 또 다른 사고를 친 것이다. 대화록 공개는 앞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북한은 국정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우리의 승인도 없이 공개한 것은 엄중한 도발이라고 비난하며, 종북을 문제 삼는다면 평양을 방문했던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끝장나는 소리다. 외교 관례상 유래 없는 일을 국정원이 저질렀고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어떻게 수습할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4대강 공사처럼. 시간이 지나자 대화록 전문을 검토한 기록 전문가들에 의해 노무현이 NLL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실 NLL은 수시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던 곳이다. 노무현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 해역에 공동 어로구역을 설치하고 인천항과 해주항을 연결하는 경제 특구를 만들 계획이었음이 대화록을 통해 드러났다. NLL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경제 특구라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고자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던 대결 구도를 끊고 다시는 이런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시도였다. 북과의 실무회담 추진 중에 임기가 끝나서 NLL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 후 이명박 정권시절 다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대통령 대화록 공개 사건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들은 언론의 사명을 포기한 느낌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KBS, MBC, YTN 그리고 종편 TV의 보도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보도를 했다. 이를 지적하는 KBS 간부가 또 보직해임 되었다. 권력과 이득을 위해서 못하는 짓이 없는 권력자들과 언론을 보며 깊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47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우파니샤드)/고석근 file
편집자
1159 2013-07-08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우파니샤드) 천지를 환하게 물들이는 살구나무 꽃가지에 덩치 큰 직박구리 한 마리가 앉아 꽃 속의 꿀을 쪽 쪽 빨아먹고 있었지요. 곁에 있던 누군가 그것을 바라보다가, 꽃가지를 짓누르며 꿀을 빨아먹는 새가 잔인해 보인다며 훠어이 훠어이 쫓아버렸지요. 아니 그렇다면 꿀이 흐르는 꽃가지에 앉은 生이 꿀을 빨아먹지 않고 무얼 먹으란 말입니까. - 고진화,「직박구리」중에서 손님이 보는 데서 닭을 잡아 닭 요리를 해주는 식당들이 생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데서 닭을 잡아 만든 치킨은 잘 먹는데요.’ 하지만 조만간 익숙해질 것이다. 아마 우리 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맛깔스럽게 잘 튀겨진 치킨이 한 때는 신성한 생명체였고 어느 날 잔인하게 죽어갔으리라는 것을. 애써 눈 감고 먹다 보니 차츰 익숙해졌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생명체를 먹는 데서 오는 불편함은 인류의 최초의 조상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꼈으리라고 한다. 우리와 비슷한 얼굴을 한 짐승들을 잡아먹는다는 게 그들은 엄청나게 두려웠을 것이다.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 짐승 시절에는 본능적으로 편안하게 먹었지만 생각이 생기면서 짐승들을 쉽게 잡아먹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시인들은 짐승들을 사냥할 때마다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날 잡을 짐승들의 신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사냥을 했다고 한다. 사냥한 짐승도 요리를 할 때는 먹어야 할 살만 취하고 뼈와 가죽은 그 짐승의 혼이 다시 부활할 수 있도록 집 주변에 고이 걸어 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경건하게 살던 인간이 다른 짐승들을 압도하게 되면서 차츰 오만하게 되어갔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짐승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잡아먹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짐승들을 다시 보게 되면서 우리의 오래 된 본성이 깨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이 본성을 다시 살려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시 경건하게 짐승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공룡이 사라졌듯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먹어야 사는 생명체이다. 그래서 먹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도 다른 생명체들의 먹거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해져야 한다. 생명의 존엄하고 신비로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서로 몸을 나누는 우주의 한 존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146 왕산에서(상주동학농민혁명을 생각하며)/임술랑 file
편집자
1252 2013-07-03
 왕산에서(상주동학농민혁명을 생각하며) 임술랑 상주에는 왕산(王山)이 있다. 상주시민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누가 왕산이라고 말하면 "아 왕산!"하면서 맞장구치기를 자연스레 한다. 그만큼 상주사람들 속에는 왕산이 있다. 왕산은 상주시내 중앙에 위치한 작은 산이다. 평지에 돌출한 고산(孤山)인 것이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상주에 왔을 때 왕산에 있는 관아를 행궁으로 사용하였다. 그 인연 때문에 이 산을 고려왕실의 산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산이 된 것이다. 왕산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고 최근에 심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유적으로는 왕산석불(상주복룡동석불좌상, 보물 119호)과 위암 장지연선생 기념비, 지방관들의 송덕비가 줄지어 있다. 그리고 조그만 정자 백우정(百友亭)이 있다. 상주성이 이 산을 중심으로 둘러져 있었고 성안에 관아가 있었던 것이다. 상주는 통일신라 때 9주 중 한 주였고, 고려 때는 전국 8목 중에 하나였으며, 조선 초에는 200년간 경상감영이 자리 했다. 왕산을 배경으로 있었던 일들은 수도 없겠으나, 그 하나는 1894년(갑오년)에 있었던 상주동학농민혁명이다. 오늘 왕산 둘레길을 거닐며 상주에서 일어 난 동학농민혁명을 생각해 본다. 인성(人性)이 본래 선(善)하다거나 악(惡)하다거나 하는 논쟁은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근세의 학자 이건방(李建芳)은 다산 정약용의 저서인 방례초본(邦禮艸本)에 서문을 썼는데 거기 이르기를 "옛날 성왕(聖王)은 천하를 다스리면서 백성들은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욕심을 고르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럽게 되는 까닭에 예(禮)로써 조절하였으며, 그 욕심을 징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럽게 되는 까닭에 법으로써 제어하였다." 라고 하였다. 백성의 욕심 즉 사악함을 예로써 다스리고 법으로 제어하며 교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 세계에도 서열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도 지배층과 피지배 계급이 존재해 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회 지도층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지도계층이 사회를 잘 이끌지 못한다면 반드시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옛 성인이 말한 백성들의 욕심 즉 인간 본성의 한 가지인 사악한 성질 때문이리라. 신라 말 진성여왕시대인 서기 889년도에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항쟁이 상주지방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원종(元宗)과 애노(哀奴)의 난이라고 한다. 한때 상주성을 점령하므로 중앙군이 파견되어 난을 진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후삼국이 정립하게 되는 시초가 되는 사건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사회 지도 계층이 백성을 교화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생존이 피폐와 위협을 느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며 정당한 것이다. 농민이 흙을 파던 농구를 치켜들고 하늘을 찌를 듯 달려들고 포수는 총구를 겨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구분하였다. 호민은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고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푸줏간 같은 음지에 숨어 지내다가 봉기하여 호령하면 항민이나 원민의 무리는 그들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견훤이요 궁예인 것이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바로 이것이다. 타락 할대로 타락한 지배계급을 괭이로 찍은 것이다. 마치 흙을 파듯 파버린 것이다. 인간에 있어 혁신이란 험난한 것이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한 곳에 안주하지도 못 하는 게 또 인간이기에 낯선 물리에 대한 적응은 인간의 운명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주변국의 야욕에 표적이 된 조국은 혼란을 겪게 된다. 사실 사회지배계층의 타락 아래 신음하는 무지렁 농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는 것이다. 다행이 조선의 위대한 선각 최제우선생이 동학의 도를 높이 들어 밝혀 가르쳤으므로 많은 백성들이 그 길 위에 섰었다. 사회지배계층과 관리들의 타락으로 행정이 이미 마비되었으므로 주민이 스스로 다스리자는 생각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른바 주민자치, 지방자치의 모태가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7일천하에 지나지 않았지만 주민이 스스로 궐기하여 자치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동학혁명이 피폐한 민초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삶에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스스로 용기를 가지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한 것이었다. 난을 주도한 이들은 잡혀 죽고(상주성 태평루 마당에서 농민군 140명이 처형되고 그 시신은 아리랑고개 너머 공동묘지에 버려졌다) 도망가서 후일을 도모하고자 했던 이들은 보은 종곡리 북실에서 2,600명이 몰살당했다.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것이란 그것도 아무런 기반도 조직도 준비 없이 궐기함은 무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이곳 상주지방만의 일이 아니었고 전국에서 동시 다발하였으니 조국의 개화는 그만큼 더 빨랐던 것이다. 그들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다. 왕산은 멀리 바라보이는 산이 아니라 가깝게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다. 상주 왕산에서 120여 년 전 암울한 시대를 발부둥치다 간 임들을 그리며 술잔을 올린다.  
145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 山白 박 희 용 file
편집자
1144 2013-06-22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 山白 박 희 용 지난 2월 27일에 쓴 칼럼의 제목이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였다. 「특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가진 세 번째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 여직원 인권’을 운위하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이어서 밤 11시에 (서울)경찰청장이 가진 사건 중간발표는 촉각을 곤두세웠던 민심의 향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선이 끝난 지금엔 그 사건이 진실로 판명 났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사건은 국가기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덮어 질 수도, 덮어서도 안 된다. 대충 원만하게 정리하면 정보권력이 국가권력을 농단할 수도 있는 면역을 남기기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분명하게 정리하여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의 그 발언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하여 지식인들이 제기하는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빈다. 비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 사는 즐거움으로 박근혜 정부가 잘 하기를 봐야 한다. 이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들이 행복하다. 그래야 박근혜 개인사도 영광되고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도 편안할 것이다.」 라고 끝맺음 하며 박근혜 정부의 순조로운 출발과 좋은 성과가 쌓이기를 빌었다. 그러나 왠지 징조가 좋지 않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4개월 되는 이즈음엔 슬슬 과거 정권의 굴곡과 부침 현상이 되풀이 되는 듯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증이 점증하고 있다. 지난 2월만 해도 국정원 직원이 국민을 대상으로 댓글 공작을 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정도였지만, 이후 시간이 갈수록 댓글 공작의 실상이 확대될 뿐만 아니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경찰청 분석팀의 댓글 발견의 결과 보고를 무시하고 “4개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로 댓글을 발견할 수 없었다”라는 허위 발표를 한 것이 탄로 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상부인 김기용 경찰청장이 심야 허위 발표를 명령해서 하급자로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함으로써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 권력의 핵심 실세에까지 넓혀져 버렸다. 지하 깊숙이 꼭꼭 묻어 감출 수 있는 공작이 내부 고발자로 하여 노출되고, 권은희란 날카로운 호미를 만나 그만 파헤쳐지고 말았다. 보태어 각자도생코자 하는 자중지란이 벌어지면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튀는 공처럼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지난 2월에 칼럼에서 지적한대로 정권의 책임자가 초기에 이실직고 하고 관련자 처벌과 국정원 재구성을 통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면 일이 이만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쯤에서 적당하게 소화되었을 것이다. 이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정도가 아니라 불도저로도 못 막을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라는 글을 쓴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난감하기가 그지없다. 국민도 국민이고 야당도 야당이지만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이어 규탄 실천에 나서기 시작하였으니, 먼 과거인 유신시대와 무단시대를 회상할 것 없이 불과 5년 전 이명박 정권 초기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광우병 촛불 사태>의 악몽이 생각나서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지금이야 다수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지만 당시만 해도 500여 만 표란 압도적 차이로 당선된 이명박은 나름대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려는 결심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집권 초기에 촛불시위란 직격탄을 몇 달 동안 당하는 바람에 그도 인간이니 오기랄까 배신감이랄까 뒤틀린 감정에 휩싸이게 되어 이후부터 무리한 국정 수행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광우병 촛불 사태>는 먹거리, 그것도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 사항인 소고기, 그것도 한우가 아니라 미국소에 관한 것으로서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 계층인 도시 소시민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사실 소고기를 꼭 안 먹어도 되고, 사 먹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미국 소고기 말고 한우 고기를 사 먹어도 될 일인데도, 엠비씨 노조를 핵심으로 한 반이명박 세력이 연대하여 정권의 기반을 크게 흔든 사태였다. 또한 미국 소고기 수입에 관한 법안 개정 협상은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서 갑자기 시작한 게 아니고, 노무현 정권 때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을 이어받아 협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대 세력에 의해 바가지를 덮어쓰고 말았다.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복권 당첨 확률보다 더 낮으며 국가에서 예방, 검역, 수입 금지, 유통 제한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데도 불구하고 촛불이 너무 오래 타는 바람에 식상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이명박 정권으로 하여금 오기의 복수심만 팽배토록 하고 말았다. 물론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 정책은 꼭 필요하고,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목적을 깔고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귀착한다는 것을 <광우병 촛불 사태>에서 건진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6년 만에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이야 정통성 시비에 무관하며 앞에서 거론한 바대로 억울한 점이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외통수에 걸리고 말았기에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공권력인 검찰이 원세훈과 김용판 두 사람을 기소한 죄목이 국정원법과 선거법 위반이니 변명이나 발뺌, 분식하기가 거의 불가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이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듯 전혀 상식적이지 못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 몇 몇 여권 인사들이 아직 있으니, 상황 전체를 조감하며 콘트롤 하는 지혜를 가진 책략가가 여권 중심에 부재하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꼬리 자르기를 하든지 몸통을 내놓든지 간에 지금이 마지막 적기인데, 강고한 공권력을 믿는지 국민들의 건망증을 믿는지 보수 세력들의 응원을 믿는지, 아니면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 환부가 더 곪아가고 있다. 이 환부가 피부에 난 상처라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두뇌에 난 상처라서 자칫하면 큰 탈이 날 수가 있기 때문에 초기에 확실히 처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하듯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다. 조선조 500년 역사에 흐르는 중심은 왕권과 민권의 갈등이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좌익과 우익 모두 민권을 중심으로 한 공화국 정체를 추구하였으며, 해방공간과 육이오 전쟁에서 남부의 다수가 민주주의를 선택하였으며, 해방 후 세대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세 독재 권력을 물리친 이유는 민주주의 때문이었다. 그렇게 피를 먹으며 자란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은 대통령 선거인데, 그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국가의 전위가 되어야 할 국정원이 일개 정권의 하수가 되어 댓글 공작이란 촉수를 뻗쳤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공무원들이 나라와 국민 전체보다 한시적 정권, 한 개인과 조직의 사익에 충성했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파수꾼으로서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기관의 공무원들이 검찰에서 기소장에 적시한대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거역한 것은 단죄 받아야 마땅한 범죄인 것이다. 그래도 국정원 직원의 댓글 공작은 국정원에서 주장하는 대로 대국민 이념 홍보 차원에서 보면 일말의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허위 발표와 압력 행사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이다. 범죄 차원을 넘어 반역죄, 내란죄에 버금가는 중대한 국기 문란 사건이다. 앞서의 국정원 직원들은 그래도 업무 성격을 띄고 있지만. 김용판이의 허위 발표는 의도적, 계획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저지른 반역 행위이다. 만약 며칠 전에 김용판이가 발설한대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윗선인 김기용과 다른 상부가 개입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박근혜 정권이라는 한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안전운행 여부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발본색원에 나서야 하지만 국민들도 이참에 민주주의를 확실히 다지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김용판이가 등장하기 전에는 원만한 수습책이면 됐지만 이젠 엔간한 수습책으로는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사일구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도화선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주검이었고, 유월항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도화선은 이한열의 장례식에 모인 백만 민중이었다. 민중은 둔중하기 때문에 엔간한 자극에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논리적 설득보다는 감정적 행동에 더 빨리 반응한다. 12월 18일 대선을 사흘 앞두고도 아직 부동이었던 백만 여 표심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은 대선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에 김용판이가 “댓글 없습니다” 라고 발표한 직후였다. 이 부동표 백만 표는 생각이 깊은 사람들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 신중한 마음들이었다. 그들은 국정원 댓글 공작에 대하여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서 결정을 보류하던 차에, 박근혜 후보가 “여직원 감금은 인권 유린이며 문 후보는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공석에서 하자, 오랜 경륜을 쌓은 박근혜 후보가 저렇게 말한다면 틀림없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 믿음을 확실하게 담보한 것이 바로 김용판의 심야 발표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 공권력의 도적적 권위를 믿은 그 표심을 얻어서 박근혜 후보가 100만표 차이로 승리하였다. 이제 김용판의 발표가 거짓이었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그의 거짓말은 선거에 작용하여 권력의 정통성에 의문이 들도록 하였으며 국가 공권력의 도덕적 권위를 더럽힘으로서 국가에 큰 손해를 입혔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정보를 들었는지 몰라도 박 후보는 온 국민들이 주시하는 토론회 자리에서 분명히 사실이 아니며 문 후보의 잘못이라고 공박했었다. 김용판이가 거짓이므로 박 후보의 공박이 거짓이 되었다. 두 거짓 때문에 표심을 결정한 최후의 부동표가 당락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니, 결과적으로 부동표의 오류가 역사의 물굽이를 다르게 흐르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눈 깊은 국민들에게는 정권의 정통성이 태생에서부터 오류로 간주되는 것이다. 부동표 당사자들은 ‘속았구나, 마지막까지 살폈는데, 결과적으로 표 잘못 했구나’하며 자책할 것이고, 박 후보는 ‘이제 와서 알고 보니 중인환시리에 거짓을 말했구나, 적반하장 했구나’ 하며 자책할 것이니,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적인 면에서 동정이 간다.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이다. 시공적 상황은 하나임에도 사람마다 진영마다 변명의 논리가 다른 것은 ‘정의’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잘못이다, 우리의 잘못이다”라고 시원하게 실토하는 사람이 없고, 설사 잘못을 안다 해도 공개적으로 실토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경우에 따라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며 정의를 죽여 말려선 포장지로 두껍게 싸서 제단 위에 모시기도 한다. 정의의 문자적 해석은 ‘바르고 옳음’이다. 확대한다면 ‘밝음, 당연함, 의연함, 확실함, 상식, 원칙, 양심, 선량함, 많음, 다수, 민주주의’ 등이 된다. 이것은 우주자연의 법칙으로서 산하인 천지만물을 관류한다. 그러므로 정의는 인간에게 적용되며 인간들의 집합체인 조직과 사회, 기관과 국가에도 적용된다. 정의의 내면적 표현은 도덕이고 외면적 표현은 법률로서 둘 다 인간 사회의 표리를 이룬다. 삶이 정의 자체인 사람은 아주 드물지만, 정의를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다. 그래서 항상 정의는 양지가 되고 불의는 음지가 된다. 도덕과 법률이 표리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고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어긋나기 때문에 난해한 문제가 생긴다. 개인의 표리부동은 작은 영향을 끼치지만 사회 조직과 기관의 표리부동은 심대한 영양을 끼친다. 국정원법과 공정선거법은 국민들의 합의를 집약한 사회적 정의이다. 그러한 사회적 정의에 대한 무시는 곧 개인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를 생각하는 이들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분노한다. 그 분노하는 이들은 보통의 국민들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공직에 있는 지식인들에게도 있다. 권은희 수사과장과 같이 소신과 용기를 가진 엘리트들도 필요하지만, 상부의 명령이 정의에 역행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수행하는 젊은 공직자들의 비애가 줄어들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이발을 다 마치고, “낭팰시더, 나는 박근혜 안 찍었지만 일단 당선 됐으니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데, 이런 사건이 들통 나고 말았으니, 대학생들도 시국선언에다 가두시위 할 것 같고, 하여튼 앞으로 많이 시끄럽게 생겼니더”라고 말했더니, “대통령 됐는데 뭐 어쩔 거여, 뭐 마구 잡아넣으면 되지요”라는 주인의 한 줄 대답이 돌아왔다. 경상도 안동 땅 어느 이발소의 60대 남자가 하는 말대로, ‘이왕에 당선 되었으니 어쩔거여’ 논리라면 ‘일단 일을 저지르고 나면 장땡이다’ 또는 ‘남의 물건이라도 일단 내가 차지하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으며, ‘뭐 마구 잡아넣으면’ 논리라면 설득이나 타협과 같은 민주주의 원리는 장식용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니, 만약에라도 그런 무식한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다시 퇴보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총칼과 탱크로 밀어붙여도 피를 먹으며 자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인데 다시 물러서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에 대응해 정권은 온갖 공권력을 동원해서 강제로 누르려 할 것이 아닌가. 그 다음부터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는 우리 국민들이 과거에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선 안 되고, 그렇게 되어선 국민들이 피곤하다. 그러므로 어떡하든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집권 여당 쪽 인사들은 정의에 입각한 결정을 내려서 다수 국민들로부터 정통성을 다시 확인 받아야 할 것이다. 국민 여론과 감정을 무시하고 강권을 발동하고 책략을 사용하여 난국을 수습한다 해도, 중간을 좋아하는 다수 국민들의 묵인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소수지만 생각하며 사는 국민들의 냉소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후세 사가들의 직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과 문 후보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 습득으로 인한 발언 오류를 수정하고, 전 정권의 전위인 국정원과 경찰, 집권 여당에 똬리 틀고 있는 일부 야심가들의 오만방자함을 엄히 다스려 다시는 그러한 반정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치국에 노력하노라면 태생의 하자를 아물게 하고 훌륭한 대통령으로 청사에 기록될 것이다. 관련자들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이실직고 석고대죄하여 국민의 심판에 따름으로써 대통령의 정통성를 재정비하고 운신을 자유롭게 하는 큰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야 모두들 유위유능한 국가적 엘리트들 아닌가. 권력을 위한 정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의만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의 나침판이 될 것이다. 하향의 필부도 훤히 알고 있는 출구 전략을 등한시한다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엔 없다. 정의는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내 마음의 가시덤불 속에 정좌하고 있는 정의를 찾아내면 나도 좋고 남도 좋다. 자유가 공기라면 정의는 양식이다. 조악한 양식으로 겨우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양질의 양식으로 생명이 건강한 세상이 훨씬 좋지 아니한가.  
144 표현의 자유 /권서각 [1]
편집자
1408 2013-06-16
 표현의 자유 인터넷 사이트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에 올라온 글들이 도를 넘었다. 이로 말미암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베는 수구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유머 사이트다. 그들은 5.18 광주 학살에 희생된 시신이 든 관 사진을 올리고 홍어 택배 중이라는 등의 5.18을 폄하하는 표현을 했다.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지정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특정 지역 사람들을 비하했다. 일베는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모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베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반발했다. 이에 일베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수구 쪽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들어 일베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로 말미암아 표현의 자유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모두 표현의 자유는 인정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잘못된 표현에 대해서 공격하고 비난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논리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논쟁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는 무엇이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1987년 프랑스 리온2대학의 포리송 교수는 ‘아우슈비츠의 루머’라는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에 포르송은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UN인권위원회에 탄원을 하게 되고 미국의 세계적 석학인 노엄 촘스키도 여기에 서명한다. 촘스키는 이 일로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이 찍힌다. 촘츠키는 그의 저서를 통해 유대인 학살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것이라고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노엄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범이라는 탁월한 논리를 개발한 문법학자이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 세계 지성인들이 존경하는 석학이다.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라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촘스키의 주장에 동의한다.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가 있다. 물론 인간은 진실과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것도 세월이 지나면 바뀔 수가 있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말했다가 수난을 당했던 갈릴레이의 말은 지금 진실이 되었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는 진실에 앞선다. 일베는 쓰레기다. 그렇지만 일베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으로 보장되면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염려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릇된 주장을 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이를 반박하고 비판할 표현의 자유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반역사적이거나 반인륜적인 표현들은 정화된다. TV조선과 채널A에서 5.18을 북한 게릴라의 소행이라는 방송을 했다. 이에 보수논객인 조갑제가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일베는 조갑제를 종북좌파라 했다. 우리나라 대표 수구논객인 조갑제를 종북좌파라 하는 것은 일베가 막말을 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헛소리는 이렇게 정화된다. 이번에 새누리당과 수구 쪽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것에 대해 크게 환영한다. 고맙다. 지금까지 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미네르바를 처벌하고 피디수첩의 기자와 피디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권력에 반하는 발언을 한 사람들을 무수히 사찰하고 처벌했다. 군사정권 시절, 그리고 MB정권시절 우리의 표현의 자유는 짐바브웨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외신들이 평했다. 이제 그들이 표현의 자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고맙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처벌받았던 민주인사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을 제안한다.  
143 이윽고 홀로- 영혼만이 남았네(에밀리 디킨슨) /고석근 file
편집자
1743 2013-06-02
..이윽고 홀로- 영혼만이 남았네(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중략................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 에밀리 디킨슨,「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중에서 복권을 사이에 두고 연인관계의 남녀가 법정싸움까지 갔단다. 여자가 복권을 사 남자에게 주었는데 그게 5억 원에 당첨되었단다. 남자는 여자가 복권을 자신에게 주었으니 당첨금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여자는 복권을 자신이 샀으니 당첨금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단다.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건 앞으로 당첨금은 두 사람에게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 당첨금이 복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이 사건을 예로 들어 설문 조사를 했더니 70%의 남녀가 연인관계가 깨어지더라도 당첨금을 갖겠다고 했단다. 우리사회가 자본주의의 극한까지 갔다는 느낌이다. 돈이 모든 신을 제치고 유일신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에게 돈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중요하다. 우리는 둘 다 가질 수는 없을까? 복권을 받은 남자는 공짜로 5억 원을 갖게 되었으니 여자에게 2억 5천만 원을 줄 수 없었을까? 혼자 다 가지려하면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을 테고 여자가 가만히 있더라도 혼자 다 가지면 연인관계가 깨어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돈 때문에 연인관계가 깨어지고 나면 자신의 영혼이 망가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70%의 남녀가 연인관계가 깨어지더라도 당첨금을 갖겠다고 한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영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완전히 물화(物化)되었나 보다. 사람 사이에 돈이 개입되는 순간, 사람의 혼은 망가진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사람의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소유’가 인간세상의 근원적인 악이다. ‘소유’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무엇을 가져도 갖지 않아도 불행해진다. 따라서 가장 좋은 세상은 ‘무소유의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라 우리는 소유 없이 살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소유로 본다면 우리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5억 원의 행운이 하늘에서 연인 앞에 별처럼 떨어졌을 때 그 5억 원을 복으로 만들 수 있는 연인이 얼마나 될까? 그 힘이 없는 한 우리는 제대로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아직 풋풋해야 할 젊은이들이 이렇게 병들었다는 게 우리사회의 슬픈 모습이다. 이제 우리사회가 바닥까지 갔으니 위로 틔어 오르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사회의 ‘인문학 붐’을 보면 다들 마음속에서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데.  
142 난자되는 평은 강산/ 山白 박 희 용/ file
편집자
1525 2013-05-22
 난자되는 평은 강산 - 칼질 한 자들을 모두 일월에 기록하라 山白 박 희 용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에이 눈에 확실하게 안 보이는데 무슨’하며 거짓이나 과장인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 강산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무 려 수억 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십년이란 인간의 눈으로 강산의 변화를 확실하게 인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평은 강산이 변화가 아니라 확실하게 변신하는 데는 십년이면 족했다. ‘강산이 변한다’에서, ‘변화’라는 말은 본래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외관상에 약간의 차이를 가진다는 의미이지만, ‘변신’이란 말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평은 강산이 십년 만에 변신을 하긴 하였으나, 감히 변신했다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왕창 망가진 모습이 되어 버렸다. 전래의 변신술은 본질에다가 얼기설기 보태고 빼서 하지만, 현대의 변신술은 외과 수술, 즉 성형 수술인즉슨, 유명한 건축학 학자들과 유능한 건설업자들에 의해 평은 강산이 성형 수술을 받긴 받았는데,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이 무참하게 난자, 유린당한 추레한 몰골이 되어 버렸다. 2004년 봄부터, 22년 동안 근무한 안동을 떠나 영주로 전근을 가서는 퇴근길에 평은 강가에서 놀았으니, 내가 본격적으로 평은강과 친해지기 꼭 십년만이다. 영주시내 학교에 근무한 두 해 동안엔 토요일 오후에 강가 미루나무 아래에서 한숨 자거나 강둑을 거닐며 시 <안경을 안 쓰면> 등의 시상을 얻기도 하다가 2006년 3월부터 2011년 2월 말에 명퇴하기까지 5년 동안엔 바로 강가에 있는 평은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바짝 정이 달아올랐다. 요즈음엔 지율스님이 강동리 강둑에 진을 치고, 무참하게 난자당하는 평은 강산을 위령하면서부터 세인들이 평은강의 가치를 높게 보지만, 나는 십년 전부터 나름대로 평은 강산의 수려함과 의미를 느껴 시와 산문으로 표현했으니, 평은강 사랑에서 만큼은 지율스님보다 기득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사랑은 나만을 위한 외사랑일 뿐이고 지율스님의 사랑은 죽어가는 생명들과 난자당하는 강산을 위령하는 참사랑이다. 난자당하는 강산 앞에 서면, 지율스님이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나는 평은강이라 부르지만 행정상에 공식 명칭은 내성천이다. 내성천은 봉화군 태백산 인근 백두대간인 문수산, 옥석산, 선달산 등에서 발원하여 영주시 평은면을 지나 문수면 무섬에서 영주 서천을 만난 다음에 서남행하며 예천 지역을 관류하고는 풍양면 삼강마을에서 낙동강 본류에 들어간다. 나는 그 중에서 영주시 평은면 지역을 흐르는 강을 특별히 이름 하여 ‘평은강’이라 부른다. 이산서원에서부터 영주댐이 건설된 미림까지 약 삼십 리 정도의 구간을 말하는데, 이 구간은 모래사장이 곳곳 구비마다 금빛으로 펼쳐져 있다. 금광리 인동 장씨 유래 비에는 ‘錦江’, 택리지에는 ‘沙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성천’이란 명칭은 발원지인 봉화의 옛 지명이 ‘내성’이기 때문이고, 금강과 사천은 ‘錦沙’, 즉 ‘금빛 모래사장이 비단처럼 펼친 강’의 뜻이다. 어디 가서 이런 모래비단 강을 다시 만나리요. 이름 그대로 화강암반이 깎이고 닳아 쌓인 평은강의 모래사장은 정말 보기가 좋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터벅터벅 걸으면 온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며, 강물에 들어 서 있으면 모래 초침이 사각사각 굴러가는 소리와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 십년 동안 삼십 리 평은강의 온몸을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네 곳 성감대를 사랑했다. 첫 사랑은 2004년부터 2년 동안 주로 토요일 오후에 저 아래 가자골 철교 부근에 미루나무들이 서 있는 강가에서 이루어졌다. 왕 선생과 월~금요일엔 카풀해서 안동-영주 길을 다니지만 토요일엔 내 차를 몰고 퇴근길에 강가에 들러 두세 시간 동안 혼자 놀았다. 자연을 도저히 접할 수 없는 대도시에서 산 게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서 살고 근무도 시골학교에서 계속했지만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진 평은강은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첫해인 2004년에는 그 곳에 자주 가서 잘 놀았으나 이듬해 봄이 되자 강가에 버섯농장이 들어서게 되어 정취가 식었다. 뿐만 아니라 큰 개가 세 마리나 있어 내가 조심스레 지나가도 사납게 컹컹 짖어댔다. 두 번째로 사랑한 성감대는 버섯농장에서 약 1 Km 정도 올라온 곳이었다. 2005년 가을부터 2008년까지 산벚꽃나무 아래에 차를 대놓고 강둑을 따라 걷거나 강가 묵밭에 무성한 풀과 나무들을 만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절골 가는 산길 십 리를 걸어 오르며 명상을 했다. 가끔 전에 놀던 곳을 달려서 지날 때마다 버섯농장 개들이 매섭게 컹컹 짖으며 달려들어 기분이 쌉쌀했다. 그래서 영주시청에다가 ‘강둑을 점령하고 개를 풀어 놓아 행인이 위협을 느껴서야 되겠습니까’하는 민원을 넣고 난 다음부터는 그쪽으로, 첫사랑 맺은 곳으로 가지 않고 신발을 벗어들고 강을 건너서 건너편 둑, 지금 지율스님이 진을 친 강둑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2007년 가을까진 두 번째 사랑 터에서 잘 놀았는데, ‘강가의 하얀 집’이 한 채 세워지는 게 아닌가. 영주시내 약국 한다는 부자가 별장을 한 채 턱 세워 놓으니, 내가 사랑하던 순수한 자연미가 그만 스러지고 말았다. 온갖 잡초들이 번성해서 이곳이야말로 자연 식물원이라고 여겼던 묵밭도 수몰 보상금을 더 많이 타내려고 주인들이 갈아엎고는 촘촘하게 과수 묘목들을 심어버렸다. 세 번째로 사랑한 성감대는 상류로 훌쩍 올라온 곳으로 4차선 평은대교 아래 강가인데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다. ‘강가의 하얀 집’이 내뿜는 부와 권위에 기가 질려 아니 옮길 수 없었다. 다리 아래 공터에 주차해놓고 2 Km 강동제에서 두 번 왕복 달리기를 하였다. 마지막 2 Km는 맨발로 슬슬 걸으며 강물과 초목을 좌우에 두고 감상했다. 여름에는 난닝구와 반바지로 달리며 시름을 잊었다. 그런데 공터에 나보다 먼저 대논 차가 있어서 저 위 강둑에 겨우 주차하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며칠 뒤에 공터에 주차하면서 둘러보면 뿌연 화장지 쪼가리가 마구 버려져 있었다. 달리다가, 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수석의 여인이 운전석을 향해 쌔액 웃는 얼굴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공사 차량이 들락날락하니 밀회 차를 볼 수 없었다. 강가에는 상류에서 떠 내려와 뿌리를 내린 산복숭아와 뽕나무가 많아 몇 해 동안 발효 엑기스 잘 먹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강가의 논이 모두 경작 금지 되면서 무성하게 돋아난 쑥을 뜯어 쑥떡을 해 먹고 남겨 냉장시킨 뭉치가 해를 넘겨 아직 세 덩이나 있다. 동네 개들에게 쫓겨 뿔뿔이 헤어진 어미와 자식, 내가 소리 질러 개 두 마리를 쫓고 난 다음에 새끼를 찾는 어미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어디 가서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한참 달리다 둑길 곳곳에 보이는 탄피를 보며 고라니들의 안부를 걱정하다가도, 펄쩍펄쩍 한 줄로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보며 안심했다. 전선이 끊기고 전봇대만 쓸쓸하더니 모래사장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의 굉음이 울리면서 평은 강산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요즘은 온갖 공사 차량과 덤프 트럭이 드나들어 겨우 달리기만 하곤 돌아온다. 이것도 다음 달부터 담수가 시작되어 강둑길이 물속에 잠기는 가을쯤부터는 하지 못 하게 된다. 그리되면 평은 강산에 다시는 발을 딛지 못 하게 되는데, ‘건설 개발’이가 사람 정을 떼도 모질게 뗀다. 그래도 평은강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곳은 매일 근무하는 평은초등학교 지역이다. 다른 곳들은 퇴근 후나 휴일에 찾지만 근무 지역은 매일 생활하며 평은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을 만나는 곳이다. 교육대학에 다닐 때 나의 낭만은 강가의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었다. 장마로 불어난 냇물에서 아이들을 업어 건너는 내용의 글을 교육대학생 때 쓸 정도로 강가 학교를 그리워했는데, 삼십 년 초등학교 근무에서 마지막 학교가 강가이므로 젊은 시절의 낭만을 완성한 것 아니랴. 그래서 평은 강산은 나의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댐이 들어서고 폐교가 된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돌면서 지역사회와 학교가 차츰 쇠약해졌다. 파장 분위기가 학구 내에 짙어지면서 해마다 전교생의 수가 줄어들어 한 학급이 한 명 또는 세 명이 되는 경우가 생겼다. 순박한 지역 주민들은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대놓고 반대할 수 없으며, 보상금이나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는 순종 의식에 젖어 활기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결손 가정에서 쓸쓸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더욱 의기소침 했다. 몇 년 안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물 아래 잠긴다는 체념이 만연하였다. 도시에 거주하는 부재지주들은 그러잖아도 토지 값이 헐해서 팔기도 어렵던 차에 영주댐 덕택으로 거금의 보상금을 챙겨서 즐거워했지만, 노인들만 남은 소규모 자영 농가는 받은 보상금으로는 어디 가서 대토할 곳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상업 종사자들은 영주댐이 완공되면 유원지가 될 이주지에서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역민들 중에서 가장 곤란한 층은 소작농과 농업노동들이다. 어디 가서 새로 소작을 얻기도 어렵고 날품을 팔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2013년 6월이면, 열두 명으로 줄어든 금광리의 평은초등학교는 다행히 폐교는 면하고 평은리 옛 학교 건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곧 오랜 교직 생활에 마지막 학교의 추억조차 물속에 들어가 버린다. 영주댐 건설의 필요성에 대하여 많은 주장들과 정책들이 있지만, 평은강이 안고 있는 지형적 특성, 생물로 치면 숙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재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는 놋점마을에 지형을 보면 강폭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좁다. 강폭이 상대적으로 좁다고 볼 수 있는 여러 곳은 거의 500m 정도 되는 강폭과 주변의 농경지가 넓게 펼쳐있어서 댐을 쌓기가 어렵다. 하지만 놋점 지형은 100m 남짓 되는 강폭과 양쪽에 높은 산이 있어 댐의 최적지이다. 그래서 건축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앞의 넓은 유역과 좁은 강폭을 대비해 보면서 댐을 생각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그 위 강가 마을인 내매리 출신인 임명삼 작가도 영주댐 건설 얘기를 듣더니, “아 거기 미림 말이지, 하마 옛날부터 댐 쌓기 적당한 곳이라는 말이 있었지”라고 말했다. 이걸 보면 지역 주민들도 내면적으로는 댐에 대하여 체념, 또는 묵인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평은댐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숙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평은강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발원지도 깊을 뿐만 아니라 굽이치며 흐르는 사행천의 모습과 안고 있는 모래사장을 보면 영락없이 여성스럽다. 그러므로 놋점마을 부근 지형은 비유한다면 여성의 질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위 평은역 일대의 금광리는 자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질을 빡빡하게 막아 자궁을 팽팽하게 하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 이득을 얻으려고 획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획책은 자연의 근본 섭리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질이 튼튼해야, 즉 양 쪽에 산이 가까이 있어 질을 강건하게 하여야 자궁에 옳은 생산물이 잉태된다. 여기서 말하는 ‘옳은 생산물’이란 유원지, 정화용수, 공업용수, 농업용수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들의 평화로운 삶을 말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평화롭게 살려면 물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물은 깨끗해야 한다. 물은 고이면 썩고 흐르면 깨끗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에다 영주댐을 쌓아 막아서 자궁에 물을 가득 고이게 한다는 것은 평은강 유역의 생물들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넓게는 영주, 더 넓게는 경상북도와 대한민국은 병들게 하는 것이다. 댐이란 것은 유역의 생물들에게 크게 피해가 없는 계곡이나 협곡에다가 만드는 것이지, 많은 생물들의 삶의 터전인 비산비야 지대에다가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4대강 사업이 졸속으로 완공되어 많은 문제점이 발생되면서, 완공 전에는 찬양 일색이었던 보수 언론들조차 4대강 사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기 전에, 그를 지지한 다수가 바로 우리 주변의 국민들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대운하 정책을 홍보한 덕택에 정동영 후보를 500여만 표 차이로 압승한 이명박에게 4대강은 외려 불만스러웠을 따름이다. 보수층들이 대운하 정책은 지나치다고 겨우 달래어서 다행히 온 국토가 절단 나는 횡액을 면하였지 아니한가.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내세운 명분을 한 마디로 뭉친다면 ‘개발하여 풍요롭게 잘 살아보세’가 아닌가. 현재와 미래의 풍요를 희망하는 다수 국민들이 그에 동조했지 아니한가. 세상 구조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구조라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하게도 한쪽이 잘 살면 다른 쪽이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되어 있다. 이 섭리를 확대하여 자연 생태계에 적용한다면 인간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선 반드시 자연을 갉아먹도록 되어 있다. 요즘의 주요 뉴스 중에 하나가 밀양 송전탑 문제인데, 송전탑 아래 마을 사람들이야 생존권 문제이든 보상금 문제이든 심각한 문제이고 환경과 생명을 사랑하는 운동권 인사들에게는 호재이지만, 전국적으로 다수 국민들이 볼 때는 소수가 국책 사업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진정으로 현지 주민들의 분노와 고통에 동정한다면, 문제의 근원인 에너지 절약부터 실천하는 게 마땅한데도 온 국민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경제 발전이라 여긴다. 저마다 온갖 전자 제품을 향유하며 도시 아파트마다 에어컨이 없는 집이 없다. 인류문명 자체가 에너지 소모형이기 때문에 문명의 근본을 바꾸지 않은 한에는 인류의 쇠락 또는 멸종이 불과 수천 년, 아니 빠르면 불과 수 백 년 후라고 많은 석학들이 예언하고 있다. 영주댐 문제를 인류문명의 종말 징조에다 확대하여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가늘게나마 연계되어 있음은 확실하다. 평은강의 숙명이든 권력의 정책이든 건설업자의 이권 때문이든 간에 이제 평은강은 공식적으로 다음 달이면 사망선고를 받아 본래의 모습을 흘려보내고 질을 막아 물을 잔뜩 밴 만삭의 몸으로 인간들 앞에 선다. 여기까지는 광주학살에 동원 명령을 받고 민간인 탄압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군인들의 운명처럼 국가적 정책 차원의 수리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폭도라고 보이면 닥치는 대로 학살하라”는 공식적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분노와 폭력성으로 민간인들을 마구 학살한 잔혹한 군인들처럼 영주댐 둘레를 뺑 돌아 57Km 도로를 낸다면서 산기슭은 마구 깎아대는 짓은, 건설 사업이 아니라 자연 파괴를 목적으로 한 폭력이라고 아니 말 할 수 없다.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난자’요 ‘유린’이다. 소를 잡을 때도 ‘각을 뜬다’라는 말처럼 요모조모 살피며 질서 있게 칼질한다. 물고기를 잡아 배를 따도 칼질을 순서대로 한다. 그런데 평은 강산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소나 물고기를 다듬는 칼질이 아니라 도마 위에 강산을 쇠뭉치로 마구 내리쳐서 살점과 뼈를 튀게 하는 난도질이다. 그래서 ‘난자’요 ‘유린’이다. 모성의 강 평은강을 흐르지 못하도록 한 것만 해도 크나 큰 불효인데, 둘레 산들을 흉측한 모습으로 외과 수술하는 것은 평은 강산을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거대한 음모이다. 영주댐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산간 도로를 내어서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산기슭을 깎아 도로를 낸 다음, 유한계층의 드라이브 코스, 아베크 족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딱이라고 광고하여 국고를 올리자는 정책인가? 누가 57Km를 뱅뱅 돌면서 드라이브를 할까. 주변에 더 좋은 코스가 많이 있는데도 말이다. 댐이야 수명이 100년 정도이니 나중에 철거하면 강산이 복구되지만. 한번 파괴된 산은 다시는 복구할 수 없다. 7,8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인근의 안동댐과 임하댐을 보면 댐 자체는 거대하고 넓은 들판이 온통 호수로 되었지만 주변 산들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도로를 내더라도 꼭 필요한 곳에만 내고, 멀리서 보더라도 깎아내린 산기슭과 도로가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에 비하면 영주댐의 산들은 21세기에 민주화된 국가로부터 학대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속되게 말한다면, 문명이 발달한 현대일수록 자연을 조져도 무참하게 조져대고 있다. 향토말로 해서 강산이 절단 나고 있다. 댐은 국책사업이라 치더라도, 평은강 둘레 모든 산을 망가뜨린 순환 도로를 누가 발상하였는지 필히 규명하여야 한다. 국토 개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관료는 반드시 생명과 환경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통해 소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건설업자들의 이권 다툼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관청의 주체적인 수요에 의해서 건설 사업이 입안 되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소형업체나 전국 단위의 대형 건설업체들이 자기들의 수요에 의해 도로, 교량, 공공건물, 댐, 관개 시설 등의 국가적 건설 사업을 기획한 다음에 관청에 로비하여 성사시킨다면, 그것은 국토를 파괴하는 참혹한 짓, 매국 행패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모든 대형 공사에 대하여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주댐과 둘레 도로에 대하여 시공자와 감독자들뿐만 아니라 건설 정책 입안자, 결재자 및 시공 때와 완공 때까지에 중앙관서와 지방관서장의 실명제를 반드시 시행하여 일월에 남겨야 한다. 후세들이 공과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역사책에 분명히 기록하여야 한다. 다음 달, 2013년 유월이 오면 내 사랑 평은 강산과 이별한다. “정든 땅 언덕 위에”유행가 가사처럼 평은 강산을 십년 동안 깊숙이 사랑했다. 나만의 소유였던 성감대 네 곳을 차례로 빼앗겼지만 십년 동안 행복했다. 남은 내 생애 동안에 다시는 이런 사랑이 오지 않으리라 익히 알지만, 평은 강산이 무참하게 난자당하는 광경을 보며, 한국인의 미래,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덮칠 불길한 징조를 두려워한다. 2013년 5월 21일 양백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