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권서각

 

 

어떤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개인의 삶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모든 행위는 정치의 틀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이다.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 우리는 금강산에도 갈 수 있었고 개성에도 갈 수 있었다. 그러던 남북 관계가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긴장관계로 되돌려졌다. 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개성공단도 철수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금강산에도 개성에도 갈 수가 없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금강산에 갈 수도 있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정치와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정보원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이다. 군사정권 때 민주인사들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죽게 했던 중앙정보부의 바뀐 이름이다. 국정원이 인터넷 활동을 통해 대통령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나서 검찰이 당시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중대한 국기 문란 사건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난 대통령 선거 자체를 부정선거로 규정할만한 중대한 사건이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정권은 치명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 와중에 국정원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과의 대화록을 공개했다. 대화록이 공개되자 여권에서는 노무현이 NLL(서해안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도 하고, 김정일에 보고했다고도 하고 반미 발언을 했다고도 했다. 노무현이 마치 국경을 포기한 종북주의자인 것처럼 들고 일어났다. 노무현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국정원과 여권의 말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누가 봐도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 벗어나려는 꼼수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은 대통령 기록물이다. 대통령 기록물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 없이 공개해서는 안 되는 문서다. 그런데 국정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다. 대선 개입에 이어 또 다른 사고를 친 것이다. 대화록 공개는 앞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북한은 국정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우리의 승인도 없이 공개한 것은 엄중한 도발이라고 비난하며, 종북을 문제 삼는다면 평양을 방문했던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끝장나는 소리다. 외교 관례상 유래 없는 일을 국정원이 저질렀고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어떻게 수습할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4대강 공사처럼.

시간이 지나자 대화록 전문을 검토한 기록 전문가들에 의해 노무현이 NLL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실 NLL은 수시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던 곳이다. 노무현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 해역에 공동 어로구역을 설치하고 인천항과 해주항을 연결하는 경제 특구를 만들 계획이었음이 대화록을 통해 드러났다. NLL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경제 특구라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고자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던 대결 구도를 끊고 다시는 이런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시도였다. 북과의 실무회담 추진 중에 임기가 끝나서 NLL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 후 이명박 정권시절 다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대통령 대화록 공개 사건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들은 언론의 사명을 포기한 느낌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KBS, MBC, YTN 그리고 종편 TV의 보도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보도를 했다. 이를 지적하는 KBS 간부가 또 보직해임 되었다. 권력과 이득을 위해서 못하는 짓이 없는 권력자들과 언론을 보며 깊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