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인, 정치가

 

                                                                                                                                            山白 박 희 용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한국 정치사에 도움을 준 일 가운에 가장 큰 것은 박원순과 안철수 라는 두 인물을 정치계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동안 두 사람은 정치권 밖에서 전자는 아름다운 재단 일에, 후자는 서울대 융합대학원장과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로 각각 사회적 공헌을 크게 해왔다.

그런데 오 시장이 서울시 소재 초등학교 4~6학년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 반대가 다수일 때엔 시장 직을 사퇴하겠다는 승부수를 걸어 2011년 가을에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바람에 급식문제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자기진영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로는 순차적 확대를 지지하는 여론이 다수이기 때문에 서울시의회와 진보진영의 기세를 꺾어 보수진영을 집결한 다음으로 서울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강력하게 수행하여 업적을 남긴 후 이듬해에 있을 보수진영의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화하려는 플랜을 세웠을 것이다. 또 어차피 반년 뒤인 2012년 봄에는 대권주자로 활동하기 위해 시장 직을 사퇴해야 할 바엔 멋진 승부수를 걸어볼 욕심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설사 패배하더라도 보수층을 자극하여 집결시키면 보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큰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승부수가 성립되지 않음으로써 대권 행보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조금만 더 보태면 확대하는 급식비가 될 만한 돈인 수백억의 선거 비용 소모를 불쾌하게 여긴 서울시민들의 외면으로 인하여 개표 유효 투표율 자체가 미달하여 수백억이 헛돈이 되고 말았다. 오세훈 재산이 얼마인 줄 모르지만 신임투표 비용을 사비로 충당하겠다는 선언을 했다면 유효 투표율은 확보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년층들의 적극 투표와 돈에 매우 민감한 서울시민들의 보수 성향을 자극하여 승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승부수의 실패가 몰고 온 후 폭풍은 오세훈과 보수진영의 계산을 초토화 시킬 정도로 거대했다. 민주당 후보가 선출 되어 일으킨 태풍이 B급 정도로만 불어도 승산이 넉넉했는데, 민주당이 아니라 시민운동권과 사회공헌권에서 그만 초대형 태풍이 부는 바람에 보수와 진보 구도 자체가 붕괴하고 오세훈과 유력 시장 주자 급들이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래서 2011년은 우리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광복 후의 정치사를 반추해보면, 민주시민들의 축적된 연대 역량이 군벌 무단정치를 극복하고 1987년 체제를 성립한지 25년, 산천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 변화하는 도중에 있다. 그동안 네 명의 대통령을 보내고 1년 반 정도의 임기가 남은 보수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그때 시점에서 냉철하게 1987년 체제를 반성해보면, 이제 새로운 정치체제로 변화해야만 할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정치학자들과 정치인들이 공감할 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많은 국민이 체제의 변화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제 변화의 필요성과 때가 되었음만을 알았지 실제로 체제 변화를 도모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당리당략과 호불호가 난무하는 정치권에서 87년 체제 변화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변화된다 하더라도 기성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겹겹이 얽힌 짜집기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원순과 안철수의 등장은 폐쇄된 한국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오게 하는 새 출입문의 역할뿐만 아니라 시대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아쉽다면 이 역사적 변화의 핵인 두 인물의 등장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된 것이 아니라 오세훈의 승부수라는 극적인 요소에 의해 촉발 된 점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볼 때는 우연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동안 팽팽하게 축적된 민주시민의 에너지가 작은 자극에 의해 폭발된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적 키 워드는 ‘분노’이다. 오세훈이가 무리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을 보고 많은 지식인들이 분노했지만, 그 두 사람이 가진 분노의 질과 양은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할 정도로 진지했다. 시민운동과 공공분야에서 사회를 위해 삼십 년 동안 헌신해왔지만, 오세훈의 헛짓으로 인해 낭비되는 수백억의 국고를 보곤 개인적인 헌신의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즉 서울시장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서울시가 변화할 수 없으며, 나아가 정치가,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본질적으로 변화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에 우선 서울시장이 되어 서울시정을 바로 세우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5% 지지도의 박원순이 60% 가까운 지지도를 받는 안철수의 흔쾌한 양보를 받아 서울시장에 당선됨으로써 두 사람 모두 승리자가 되고 서울시가 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박 시장은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에서 서울시의 시정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국민과 정치권 일부에서 갖고 있는 시민운동권 출신의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안철수 역시 주지하다시피 이듬해 대선 후보 선출 기간 동안에 유력한 대통령 감으로 부상하였고, 현재는 여야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제3의 정치세력을 집결하고 있다. ‘분노’라는 키워드로 촉발된 두 사람의 정치 실험이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엔 비교적 안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보태어 대선을 거치는 동안 많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여 한국 정치계를 풍성하게 하였다. 반대로 한 시대를 주름잡으며 기세등등하던 인물들이 다양한 사고로 낙마하여 무대 뒤로 사라지도 했다.

 

비유한다면 정치는 그릇이다. 사회는 그 그릇 속에 담긴 음식이다. 그릇이 견고해야 음식이 잘 건사되어 가족들이 먹을 수 있다. 또 정치는 들판이다. 정치인은 그 들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작은 단위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정치가는 크게 나누어진 각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그릇을 잘 건사하는 사람, 들판을 경영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즉 최고지도자에게 인간사회와 국가의 안위가 위임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선거 원칙에 따라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갖는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선거 원리에 따르면 선거란 여러 인물들을 비교하여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는 제도이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인물이 대표로 뽑히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장 우수한 인물보다 가장 적당한 인물이 뽑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구성원들인 국민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인물이란 고매한 이상보다는 당장의 내 생활에 편리를 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환언한다면, 많은 지성인들이 지적하듯이 민주주의의 최대 맹점인 중우정치가 여전히 현실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정치는 곧 국민들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살펴보더라도 과연 그 시대 상황에 가장 적합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되는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보면, 남한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부인 보수우익의 이익을 수호하는 대표자였으며, 민족자주 노선을 추구하는 애국자가 아니라 종주국인 미국의 대동북아 전략의 하수인이었지 아니한가. 1945년 광복 직후에 조사된 여론을 보면 국민의 60% 이상이 미국식 민주주의나 소련식 공산주의보다는 그 둘을 절충한 사회민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학자들의 논문이 증언한다. 이것은 남한 주민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외세와 그에 조종되는 꼭두각시들에 의해 국민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펼쳐졌고, 결국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을 겪고도 냉전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후의 대통령들을 보면 박정희와 전두환은 말 그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만의 대통령이 되었고, 여타들도 모두 국민들의 지지를 고루 받기보단 한쪽의 지지만을 받은 반쪽 대통령들이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우중정치 요소를 숙명으로 한다지만 그래도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최우수는 아니라도 우수 급 정도는 돼야 하는데 현실 정치는 보통 급의 인물들이 득세하여 대통령이 되었으니 한국정치 발전 속도가 느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 그리고 전두환 독재가 성립할 수 있었던 명분과 실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역시 이념 문제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적화 야욕을 막고 공산 독재체제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자는 자유민주주의는 그들의 독재를 변호하는 최대의 무기였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완성하여 미제의 식민 수탈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시켜 조선혁명을 완성하자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세습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최대의 무기로서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87 체제의 변화를 가속시켜 앞으로 올 30년 한 세대를 경영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이념 문제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1980 년대 이후 제3인터내셔널 차원의 공산주의는 확실히 실패하였으며, 자본주의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념이 가진 이론과 실천 면에서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비판과 자각이 이미 일반화 되어있는 현재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형태의 이념이 우리들의 후손에게 적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오늘을 사는 지식인들의 임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통일을 내다본다면, 그것도 일방적 통일이 아니라 남북의 협상에 의한 통일을 바란다면 우선 남북이 이념면에서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상반된 이념 체제 속에서 70년 가까이 생활한 주민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점진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의 유일한 방법은 역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장점을 취사선택하는 것뿐이다. 이 합의는 한반도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라 지구 전체 차원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상계에서 중심 화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정당정치의 확립이다. 정치의 요체는 인물과 제도인데, 제도가 인물보다 우위냐 아니냐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를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제도에는 국가 이념과 조직도 포함되지만 정당은 제도의 중요한 한 축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라고 누구나 중등교육에서 배우지만 현실에선 정당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왜 정당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느냐 하면 인물 때문이다. 그 인물이 누구냐 하면 바로 대통령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이 된 자는 먼저 여당을 장악한다. 그래서 여당은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만을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인데, 정당이 정당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 거수기 역할을 하게 된 나라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당이라는 제도가 대통령이라는 인물에 의해 붕괴되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도가 인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인물인 대통령이 정당정치를 망가뜨리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직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새로운 체제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임기 재선제나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 독식을 막고 자기들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책략성이 농후하다. 미국을 보면 대통령제를 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 간다. 잘 굴러가는 까닭이 뭔가. 삼권분립이 확실하고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도 수준이지만 국가 조직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영역의 리더들이 자기 고유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만 되면 국가 총수로써 입법부와 사법부의 우위에 서며, 최고로는 국무총리 이하 장차관 등 등, 최저로는 지방 기관장까지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권력을 갖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먹이사슬 피라밋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기에다 공명을 탐하는 지식인들이 가세하면서 대통령의 권위는 더욱 상승하게 된다.

그러한 지식인들은 정통성이 없는 대통령들로 하여금 정통성을 보충하도록 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한 예로 김상협 씨는 고대총장을 할 때만 해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전두환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내는 바람에 오늘날엔 존재가 희미해졌다. 또 김상협이 유명한 바탕은 총장이다. 그것도 다른 대학이 아니라 고려대학교의. 국민들이 건설회사 사장인 이명박이 그래도 대통령 감은 된다고 본 기준이 고려대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태어 4.19 때 상대학생회장으로 선두에 선 의기. 민족 고대를 국민들이 얼마나 존중해 주었는가. 그런데 한 사람은 전두환의 하수가 되고, 한 사람은 고대 인맥을 타고 4대강 난자와 국정원법 위반 등의 난정을 저질러 고려대학교의 명예를 퇴락시키고 말았다. 그들이 족보와 비석에는 몇 자 남겼을지 모르지만 천추만대 두고두고 만고역적의 가면이었음을, 국토의 모성을 난자한 주범으로 규탄받을 것이다. 그래서 지혜적 지식인은 난세를 당하면 공명을 버리고 은둔했다.

현재의 5년 단임제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국가가 발전했다. 5년마다 인재들이 순환하여 집권함으로써 국정 경험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식 정쟁의 위험도를 낮췄다. 또 현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게는 제도전의 기회를 제공을 주고 미워하는 세력에게는 5년 뒤에 미운 꼴 안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 국민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 집권 세력 내에도 여러 정파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야 현직에 있을 때 한몫 챙기자는 욕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 집권을 희망하는 세력들은 국민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후반기부터는 현직 대통령을 조금씩 견제하게 되어 그런대로 정당정치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고쳐서 재선제로 했을 경우에, 대통령은 국가적인 목표보다는 재선을 목표로 국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재선에 도움이 되는 충성파 인물들을 중용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 여권에서는 줄서기와 눈치 보기가 심화되어 국정 운용과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가 어렵게 된다.

5년 단임제가 바르게 운용되면 정당정치가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당정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여 여러 파벌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민주정당의 가치를 나타내야 한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당내 투표에서 이긴 박근혜 후보가 일반국민 참여에서 밀림으로써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게 하여 4대강을 절단 내게 하고, 2012년 민주당 경선 때 당내 투표와 국민참여 투표에서 이긴 손학규 후보가 모바일 민심이라는 국민참여 여론조사에서 밀림으로써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게 하여 결국 대선에서 1년 동안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우세했던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받고서도 패함으로써 민주진영에게 참담한 패배감을 안겨주도록 한 원인인 국민참여라는 환상을 없애야 한다. 정당정치는 가치에 동의하는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당비를 바탕으로 해서 조직된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데, 평소에는 그 정당에 관심이 없던 자들이 경선 기간 동안에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추종자들을 국민이란 이름을 덮어씌워 동원하여 소기의 목적을 쟁취토록 하는 바람에 정당정치의 본령이 그만 일그러지고 말았다. 정당은 당원이 중심이다. 국민참여정치란 명분과 취지는 그럴 듯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장이고 속내는 근기가 가벼운 선동가들의 상용 도구일 뿐이다.

다음으로는 당선된 대통령이 지금처럼 만직을 임명하는 제도와 관습을 없애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과 비서진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임명직 공무원들은 당내 인사위원회에서 다수결로 추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공기업 기관장들은 해당 공기업 출신 가운데에서 국가인사위원회에서 추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의 요체 중의 하나가 인물인데, 행정의 요체 역시 인물이다. 이렇게 요직 인물들을 검증하여 기용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발전할 뿐만 아니라 집권정당도 계파 이익이 보장됨으로써 공존하며 더 좋은 정치를 위해 합심 노력할 수 있다. 인사제도가 합리성을 갖게 되면 정당정치가 활력을 갖게 되고 나아가 정치가 정상적으로 운동하여 국민과 국가가 평안해지게 된다.

 

87년 체제가 도입된 지 꼭 한 세대 30년 만인 2017년 12월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체제, 즉 개정된 새 헌법 아래 치러지게 될 것 같다. 새로운 체제의 핵심인 제도 면에서는 기존의 5년 단임제를 보완하면서 그동안 누적된 문제점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인물 면에서는 기성과 신생의 인물들이 모두 나서서 국민들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미 2011년에 지각을 뚫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 인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존 정치인들 가운데에도 정치가로 성장할만한 자질과 인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새 인물들과 함께 한다면 분명 한국 정치는 환골탈태할 것이다. 특히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새 정당 창설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데, 이것이 양당정치의 고정된 틀을 깰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느냐 못 갖느냐가 앞으로의 관심사이다. 양당정치의 벽을 넘을지, 벽 앞에서 시들고 말지는 안철수 쪽 인물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지만 역시 일반 국민들의 냉철한 평가에 좌우될 것이다. 인품과 자질은 우수했지만 금력이 없거나 정치자금 수집을 주저했기 때문에 대선 후보기 되지 못한 인물들과 달리 안철수는 다른 면도 우수하지만 일단 정치자금 면에서는 비교적 자기 재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돈만으로도 안 되고 말만으로도 안 되는 것, 어찌 보면 시운이 따라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운이란 시대적 요구 속에서 분출되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에서 분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SNS 시대, 정치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곧바로 국민들의 안테나에 포착된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지식과 정보 습득양이 많기 때문에 구세대처럼 몽매한 정신이 아니라 파릇파릇 민감한 젊은 정신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어설프게 꾸며서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보단 진실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말 한 마디 행동 한 컷, 승부수 한 번 잘못 띄웠다가 졸지에 나락에 떨어진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옳은 정치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금수강산 삼천리에 정치다운 정치가 활짝 펼쳐져서 공자가 꿈꾸던 대동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