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인플레이션

 

사람만이 말을 사용할 줄 안다. 어떤 이들은 앵무새도 말을 하지 않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앵무새의 그것은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흉내 낼 따름이다. 침팬지도 200여 가지의 소리를 내서 의사소통을 하지만 그것은 다만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는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되는 음성으로 표현되며 문법체계에 의해 의미를 생성한다. 인간은 언어를 가졌기에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만약 인간이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면 결코 개보다 낫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신체적으로 다른 동물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등하다. 신발이 없으면 걸을 수도 없으며 옷을 입지 않고는 추위를 이길 수 없다. 집이 없으면 잠도 잘 수 없다. 개는 신발 없이도 옷 없이도 개집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부리며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말 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호모 로퀜스(Homo loquens)라 한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 생각한다는 얘기다. 말이 없으면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담는 그릇이다. 그가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사고방식이 결정된다. 거친 말을 사용하면 심성이 사납고, 고운 말을 쓰면 심성이 곱다. 바른 말을 쓰면 생각이 바르고 잘못된 말을 쓰면 생각도 비뚤다.

일찍이 공자는 그 대상에 맞는 말을 사용해야 한고 했다. 말을 보고 말이라 해야 하고 사슴을 보고 사슴이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는 어떤 사물을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말은 하나밖에 없다는 일물일어설(Single word theory)을 말하기도 했다. 이것을 이것이라 하고 저것을 저것이라 했을 때 사회도 정상적인 흐름을 가질 수 있다. 말의 쓰임이 올바르지 못하면 그 사회도 위기를 맞게 된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하는 사회는 끝장난 사회다.

만해 한용운의 ‘님’은 절대자 혹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님’이라는 말은 문인들 사이에서 동료 문인에게 저서를 증정할 때 책갈피에 ‘아무개 님’이라고 쓰면서 차츰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님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던 사람은 일부 문인들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병원에서 대기하는 환자를 부를 때도 ‘아무개 님’이라 한다. 님의 숫자가 환자의 숫자만큼 많아졌다. 회사 이사회에서 대표로 선임된 사람을 사장이라 한다. 요즘은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님이다. 무작위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사랑합니다.’라는 말,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 쓰던 말이다.

교사의 경험이 있는 분들 가운데 자기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 내 제자야’ 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제자의 상대편에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를 제자라고 부른 다면 그는 스스로를 스승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스승이라는 말은 참으로 성스러운 말이다. 그래서 공자도 퇴계도 스스로 스승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스승이라는 말은 그를 진정으로 우러르는 제자가 쓸 수 있는 말이다. 나날이 말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 전화 속의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거짓말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이득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거짓말이 참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사회는 말의 질서가 무너진 사회다. 국정원 여직원이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오피스텔에서 일하다가 들켰다. 스스로 안에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문밖에는 경찰, 시민, 선관위 직원 등이 있었다. 이를 두고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감금이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사회에 희망을 걸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