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 혹은 멸종

 

                                                                                                                                              산백 박희용

 

 

「우리도 결국은 포유류의 일종이며, 모든 생명체는 자연이라는 화려한 축제에 초대된 손님이다.」

- 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사라진 후, 지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인류와 함께 사라져갈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기게 될 유산은 무엇인가?

지구가 품고 있는 자원이 한정임을 빤히 알면서도 풍요한 물질생활에 대한 욕망 속으로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가는 인류. 멀지 않은 장래에 물질자원이 고갈되면서, 타인의 소유물과 타국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침략으로 대량 살육이 자행되든지 핵전쟁이 터지든지 환경오염 때문에 불치병이 들든지 간에 인류의 멸종이 도래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각국의 지성인들이 인류 멸종이란 참화를 피하자고 아무리 경고해도, 대중들의 귀는 이기적 물질 획득 경쟁 쪽으로 열려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성적 상호 타협에 의해 경쟁과 투쟁이 통제된다 해도, 결국은 각종 요인에 의한 DNA의 변이와 퇴화에 의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정자와 난자가 쇠약해져서 마침내 몰락 또는 멸종이 오고야 만다. 진화가 반드시 더 편리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 법, 진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오히려 퇴화의 방향으로 전환하여 수백만 년 전의 영장류 초기 상태로 환원하게 될 수도 있다.

앨런 와이즈먼이 역저 『인간 없는 세상』에서 인간 문명이 사라진 지구의 모습을 어디까지나 경고성 가상으로 제시하면서, 세계 모든 인류가 ‘인간 있는 세상’을 더욱 잘 가꾸어나가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지만, 그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체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45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이미 수많은 종이 멸종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멸종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부동의 법칙이 될 수가 없다. 지구 위에서 번식하는 한 가지 생물 종일뿐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구의 제왕으로 온갖 자원을 독점하여 낭비하며, 수 없이 많은 다른 종들을 억압, 추방, 살해, 멸종시키는 비행을 저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을 훼손하고 오염시켜 모든 생물들로 하여금 병사하여 멸종케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뿐만 아니라 다른 종들 모두가 비참한 멸종을 피할 수가 없다. 짧게는 수백 년, 길어야 수천 년 미래 안에 지금 볼 수 있는 종들은 지구에서 사라지고, 오염된 지구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생물들이 출현할 것이다. 대멸종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 없는 세상’이 경고성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상이 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퇴화-운이 좋다면-나 멸종은 곧 인류 문명의 소멸로서 지구는 수천만 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수백, 수천만 년이 흐르면 다시 진화가 반복되어 고급 지능을 갖춘 생물이 출현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소모한 물질은 분자 상태로 흩어졌다가 다시 무기물과 유기물을 형성하여 다양한 자원을 재현할 것이고, 고급지능생물은 그 자원을 활용할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인간 없는 세상’일 뿐이지 ‘생물 없는 세상’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의식 있는 지성인들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멸종을 예감하며 방지책을 세우고자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상누각일 뿐이고, 인구 증가 - 한없는 물질 욕구 - 자원 고갈 - 환경오염 - 대량 살육 전쟁 - 문명 붕괴 - DNA퇴화 등의 절대적 요인 때문에 종의 멸종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이다. 과학을 발달시켜 외계 자원을 끌어 쓰거나 외계로 이주한다 해도 그것은 소규모일 뿐 인류 전부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문명인답게 다양한 방지책으로 수백, 수천 년 간은 호모 사피엔스의 외형을 유지한다 해도 환경 오염과 식품 오염이란 치명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DNA의 변이와 퇴화는 도저히 막을 수 없어 결국은 멸종에 이를 수밖엔 없다.

 

그러나 빤히 알면서도 멸종의 화를 당할 수는 없는 일,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이고 국민이고 지구촌 주민인 우리 인류의 과거, 현재의 모습이 무궁한 미래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방지책을 함께 생각해 보자.

먼저,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인구 증가, 핵전쟁 등으로 생길 인류의 멸망을 막거나 최소화 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인간 지성의 진화뿐이다. 지능이나 지식의 발전만을 강조한 지금까지의 평면 확장적인 문명 의식에서 벗어나 입체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탐욕과 과시를 근거로 하는 번영과 행복이 내포하는 치명적 위험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통찰력을 갖춘 지성의 발전이 필요하다.

대중들의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지도층 엘리트들의 영민한 지성-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에 근거한-이 주류를 이루어야만 사회가 건강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다. 엘리트들이 먼저 내적 자각에 의한 검소와 근면이 실천되어야 하고 외적 실천에 의한 사회적 형평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중들이 믿고 따르게 되어 인간 지성의 일반화가 확산된다.

다음으로 필요한 조치는 산아제한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이 향상되면서 인류는 자연 생물계의 평형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구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여 사용함으로써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미 개체수 과다로 하여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문명의 붕괴를 막는, 또는 지연시키는 가장 시급한 방법은 인구제한이다. 지구상에 살아가기에 적당한 인구수를 산정하고, 각 가정에서 1 ~2명의 자녀를 낳아 잘 키우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산아제한이 잘 되고 있으나 후진국에선 안 된다는 점이 큰 문제점이다. 후진국일수록 동물적인 측면이 강하여 임신과 출산을 자연 그대로 하고 있다. 후진국 사회에선 피임 대책 없이 그냥 섹스를 해서 낳은 아이들이 많아지고, 선진국 사회에선 선별해서 낳아 기르는 아이들도 차츰 감소해 지구 전체적으로는 지역적 편차가 심하게 발생한다. 한 세기 안에 선진국 인구는 극소수이고 후진국 인구가 절대 다수가 되어 고급 문명보다는 대중 문명이 강화될 것이고, 생명의 원리에 의해 결국엔 선진국 고급 문명이 쇠락하고 말 것이다.

특히 기독교와 천주교 등의 종교에서는 낳는 대로 모두 길러야 한다는 교리 때문에 불임과 낙태를 범죄시하고 있어서 인구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 주장은 구시대적 종교 생명관이다. 현대적, 과학적, 합리적인 생명관은 생명을 일단 출산 이후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 정자 기간, 난자 기간, 수태 기간 동안은 생명을 위한 준비기일 뿐이다.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욕망이 만든 모든 잉태를 존중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하되, 생명 선별권을 부모와 사회가 가져야 한다.

생명에 대한 개념 정의가 확실해져야 하고, 생명 현상을 자연력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인위적 통제가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검증과 통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과학이 도리어 폭군이나 소수 집단에 의해 생명을 소멸시키는 악역을 맡게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물질적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활용이다.

지구 역사 45억 년은 생물의 발생과 진화의 역사이다. 생물은 물질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생물과 물질은 동체이다. 그러므로 물질적 욕망은 일정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한 물질적 욕망이 발동하여 현대문명이 이루어 놓은 모든 업적들-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또는 군사적인 것 모두-은 생물인 인류의 위대한 성과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문명은 극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성인들은 지금이 인류문명의 극성기임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붕괴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화를 불러 일으켜 문명의 붕괴뿐만 아니라 결국 인류 멸종에 이른다고. 정말 그럴까? 아니다, 인간은 원래 생물이므로 생물의 운명답게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 자체를 백안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게 아닐 수 없다.

지성인들은 인류가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문명의 붕괴는 곧 다가온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먹고 마시고 즐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인 인간이 그러한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서도 생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문명의 붕괴를 막는 방법이 ‘물질적 욕망은 죄악이므로 버려야 한다’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물질적 욕망은 생물의 본질이므로 존중되어야 한다. 단 사회적 조건에 알맞도록 욕망하여야 한다.’라는 적극적 개념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누구나 문명의 붕괴와 인류 멸종을 바라지 않는다. 붕괴와 멸종을 피할 수 있는 방법, 물질적 욕망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중요한 것은 물질적 욕망에 대한 제한적 접근이다. 거기에는 개체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 두 곳에서의 조절과 통제가 필요하다. 개체적인 면에서는 정신적 만족을 물질적 가치에서 구하지 말고 자원 소유와 소비의 자발적 제한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가치에서 구하는 지적 성숙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지성인들에 의한 사회적 계도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인간의 마음과 지능이 아직 진화 도중에 있으므로 다양한 교육과 사회적 운동에 의해 정신문화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정도가 향상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정한 인구 증가, 검소한 물질 자원 이용, 갈등과 전쟁의 쇠퇴, 환경 정화, 음식 정화 등이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DNA의 病 변화와 퇴화는 방지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때는 건강한 DNA를 확보하기 위하여 하는 수없이 DNA 분석과 편집, 인공 수정과 배아, 출산 등이 일상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호모 시피엔스 사피엔스의 마음과 지능이 현상 유지로 인구 증가 - 한없는 물질 욕구 - 자원 고갈 - 환경오염 - 대량 살육 전쟁 - DNA퇴화 등이 지속되면 인류의 미래는 갈수록 어두워진다. 반대로 고급의 마음과 지능이 입체화 된 지성의 힘으로 그러한 장애를 극복한다면 인류의 미래와 문명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을 잘 읽고 인류의 미래와 문명의 발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앨런 와이즈먼이란 인간이 적정한 인류 수효가 10억 정도라고 계획하는 유대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동양의 한반도 남부 영남 땅에 사는 어느 寒士에게 든다.

 

「최초의 아메리카인들의 후손 대부분이 유럽인과 접촉한 지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끔찍하게 죽어버린 암울한 사실을 말한다. 스페인인들의 칼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 대부분은 아무 항체가 없었기 때문에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백일해 등의 구세계 병균에 쓰러지고 말았다. 스페인인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약 2,500만 명이 살고 있었다는 멕시코의 경우만 해도 100년 뒤에 살아남은 사람은 100만 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다른 종이 멸종될 때까지 결코 굽힐 줄 모르는 우리의 킬러 본능만이 아니다.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본능도 문제인 것이다.

1970년에는 케냐 전체에 2만 마리나 퍼져 있던 검은코뿔소가 이제는 4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동양에서 약으로 쓴다면서 뿔 하나에 2만 5,000달러에 거래되고, 예맨에서 기념용 칼의 손잡이에 소용되면서 모조리 밀렵당했다.

케냐인들은 1953년 애버데어 숲에 들어가 마우마우 반군 게릴라 조직을 결성하고 백인 지주들에게 테러 공격을 가했다. 영국은 본국에서 몇 개 사단을 파견하여 애버데어와 케냐 산을 폭격했다. 수천 명의 케냐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목숨을 잃은 영국인은 100명 정도였다. 1963년에 휴전협상이 이루어졌고, 압도적인 다수 의견에 따라 ‘우루(독립)’를 성취했다.

흑백의 대비가 선명한 콜로부스원숭이의 수염 텁수룩한 용모는 분명 불가의 승려와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동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이 실려 간 목적지는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라비아였다. 케냐 해안의 몸사바는 19세기 중반까지 인간의 육체를 실어낸 선적항이 되었다. 총부리를 들이대고 물건을 포획하기 위해 중아아프리카로 몰려온 아라비아 노예 상인들의 마지막 행선지이기도 했다.」

「영국인들이 노예 매매를 그만둔 19세기 말까지, 아프리카 중앙 평원에서 몸바사의 경매장에 이르는 상아와 노예의 운반로에서 죽어간 코끼리와 인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극동에서 사치품에 대한 애호가 뜨거워졌는데, 그들이 원한 사치품에는 상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아에 대한 욕심은 여러 세기 동안 노예 매매에 대한 투자를 자극했던 욕망을 능가하지 않았던가.

제2차 세계대전 역사가라면 중국이 미국의 고철을 다 사들이는 목적에 대해 매우 우려하며 의심할 것이다.」

 

좋은 책 『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 당신이 다양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빚어낸 현란한 문장으로 엮은 한 권 책에서 물질문명의 붕괴와 인류의 멸종을 근심하기 전에 당신의 조상인 백인종, 그 중에서 앵글로 섹슨족이 저지른 죄업에 대한 사죄와 참회가 정중히 이루어져야만 진실로 인류의 미래를 근심하는 지성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의 왜곡된 물질문명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누구에 의해 이용되었는지, 양식 있는 학자라면, 아니 의식 있는 저널리스트라면 정확히 보아야 하고 정확히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 남부의 반이 넘는 면적의 땅에서 평화스럽게 살던 테즈메이니아인들이 왜 멸종했는지 사실대로 증언해야 하지 않을까?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들이 왜 어떻게 살육 되었는지 정확하게 증언해야만 옳은 지성인이라 일컬을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북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수많은 인류가 누구에 의해 수백 년 동안 피식민의 고통을 겪었는지, 일본이 누구에게서 침략을 배워서는 그것을 아시아 이웃 인류들에게 써먹었었는지 정확하게 통찰해야만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 2차 세계대전이 어느 인종에 의해서 발발되어 수천만 인류가 살상 당했으며,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지구 위를 돌아다니며 약소국의 물질을 수탈해서는 어디로 가져가는지를 분명하게 규명해야만 인종을 초월한 지구주의자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보태어 불교에 대한 이해, 극동 나라 사람들의 정신문화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향상시켜야 하지 않을까?

앨런 와이즈먼, 당신의『인간 없는 세상』이 ‘유색 인종 없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미래 인류의 행복’을 목적한다면, 많은 문장을 수정, 삭제해야만 하리.

 

 

                                                   2013년 8월 24일 안동 열락연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