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하지만 자신에게 두 손 가득 흙이 뿌려질 때는
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을 것이다.

  - 브레히트,「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이 땅에」중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의사가 아니다. 죽음이 의사다.”라고 말했다. 죽음보다 더 큰 스승이 있을까?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진정으로 진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는 도를 깨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죽을 때의 그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사니 우리들의 삶이 이리도 너덜너덜하고 누추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죽음의 의례, 제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죽음은 추방되었다. 우리는 이따금 문상을 가며 병원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무섭고 혐오스러운 죽음을 만날 뿐이다.      
  
고흐는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캄캄해져야 할 것이다. 죽음의 깊은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갠지스 강의 죽음이 부럽다. 죽음 곁에 늘 삶이 있을 때 삶은 항상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세상 가득 인공별을 띄워 놓았다. 어디가나 별들이 환하게 빛난다. 우리는 그 불빛 속에서 살아간다. 어둠은 없다. 삶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별빛들은 가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삶이 허기진다. ‘죽음이 없다면 이 세상이 온통 죽음으로 뒤덮이는 것(파브르)’이다.

사르트르는 “죽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어느 날 내 삶이 멈추겠지만, 내 죽음이 내 삶을 규정하지 않고, 내가 늘 생의 충동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죽음을 포함하지 않는 삶. 그건 진정한 삶이 될 수 없다. 생의 충동, 이 안에는 죽음과 삶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생의 충동이 별처럼 우리 삶을 이끌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우리는 격하게 생의 충동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때 우리 마음속에 별들이 뜬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의 충동을 죽여 왔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도 도무지 사는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