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에 대한 물음

 

권서각

 

이루어져야 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날 때, 그리하여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고 골머리가 아플 때 우리는 근본에 대한 물음을 하게 된다. 지금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나와 국정원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7일 밤 284개 연합 시민단체인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도하는 제8차 촛불문화제에는 4만 개의 촛불이 서울의 하늘을 밝혔다. 지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촛불이 서울광장에 켜지고 있다.

왜 다시 촛불이 켜지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모아져서 국민의 의사로 뽑힌 대표가 통치 권력을 가지는 제도다. 진정한 국민의 대표를 뽑으려면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권력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증거가 드러났다.

막대한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은 국가권력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사건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은 경찰, 검찰, 국회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여 적법하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원세훈과 김용판은 증인선서를 하지 않고 이미 증거가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 증언을 했다. 이로 인해 촛불은 더 늘어나고 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사건 초기 국정원 여직원이 오피스텔에서 인터넷 댓글공작을 하다가 발각되었을 때부터 경찰은 댓글을 단 증거가 없다고 허위발표를 해서 대선에 영향을 주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엉뚱하게도 노무현이 NLL 포기발언을 했다는 발표를 한다. 대통령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놓고도 여당은 시간 끌기로 본질을 덮으려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깨어 있는 사람들은 다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지에 대한 근본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의 대학교수, 신부, 학생, 문화인,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아무리 선언을 해도 소용없으니까 다시 촛불이 켜진 것이다. 유래 없이 더운 날씨임에도 수만의 인파가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언론이 기능한다면 뉴스 첫머리에 화면과 같이 보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 어디에도 촛불문화제에 대한 보도를 보기는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서울광장의 촛불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마땅히 보도되어야 할 것이 보도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제 4부라고 부른다. 언론이 사실보도를 해야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고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어야 올바른 통치자를 선택할 수 있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보도, 진실보도에 있다. 지금 우리 언론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광장에 수만의 시민이 모여서 촛불문화제를 여는데도 침묵하고 있다. 지난 MB정권에서 진실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인을 모두 징계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해직 언론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해직된 언론인은 복직되지 않았고 한직으로 쫓겨난 언론인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가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답답함이 오래 지속될수록 촛불은 더 크게 타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