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詩와 지구과학

                                                                                                                                          산백 박 희 용

 

 

「庚申病中作 경신병중작

   海峰有璣 해봉유기

 

   病臥一年頭亦白 병와일년두역백

   自羞於學未專工 자수어학미전공

   往時萬卷筌蹄業 왕시만권전제업

   入海籌砂不見終 입해주사불견종

 

   병으로 누운 지 일년 만에 머리털 하얘지니

   스스로 부끄러워라 다 하지 못한 학문

   지난 날 만권의 책은 통발과 올무였고

   바다 가 모래알 셈하기 끝을 보지 못 하였네」

 

『禪詩』(玄岩社, 석지현 편역, 1975, 252p)

 

 

 해봉유기란 분이 뉘신가 회고사가 처연타.

 인생은 草露와 같다더니, 뜨거운 血氣와 탱탱한 肉氣가 엉켜 용맹정진 하던 그 시절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깊은 산속 작은 암자 어두운 골방에 병들어 누운 하얀 머리털의 해골만 남아 시 하나 긁적이나. 이 시 <庚申病中作>을 쓴 며칠 후에 海峰有璣 이 인간 조용히 나뭇가지 몇 개 태운 연기처럼 또 다른 우주 속으로 사라졌을 것.

 「태양을 중심으로 펼쳐진 팽팽한 인력의 한 판 레코드인 태양계 속에서 50억년 전에 티끌이 굳어진 구름에서 태어나 맹렬한 불길에 벼리어진 지구, 대륙과 해양 형성 이후 40억년 동안 10여 번이나 산맥의 형성시대와 빙하시대를 경험하면서 별이 반짝이는 우주 속을 돌고 있는 지구는 아직 젊다. 그래서 앞으로도 대륙이 침몰하여 해양이 되고 해저가 융기하여 대륙이 되는 천지개벽이 수십 번이나 더 일어난다. 가깝게는 인도 판이 아시아 판 아래로 눌려 들어가면서 히말라야 산맥은 해마다 몇 Cm씩 밀려 올려지고 인도 대륙이 사라진다. 에디오피아 지역의 아프리카 대륙이 둘로 쪼개진다.

 앞으로 3~10억년 후에 태양을 빛나게 하는 수소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태양이 서서히 팽창하여 15억년 뒤에는 오리온성좌의 베텔지우스나 안타레스 같은 적색거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후 수십억년 동안 80~100배나 팽창한 태양은 수성과 금성을 금방 불태워 삼키고 지구와 화성을 서서히 불태우다가 마침내 삼켜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곤 수축하여 우주 속에 검은 한 점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세계는 지구의 시간에서 본다면 막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한 인간의 세계는 그 막간에 막간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地球 그 自然과 生命. 제1장 지구의 탄생』(린컨 바네트. (주)한국일보타임

-라이프. 1979)

 

 

 이처럼 거대한 時空 속에서 지구 위에 붙어살고 있는 인간 동물이란 존재, 나는 무엇일까? 인류문명사가 1만년이 채 안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영장류로 분화한 이후에도 수백만년 동안 한갓 짐승으로 살아왔다. 그 이전 수천만년 동안엔 한갓 동물이었다. 그 이전 수억년 동안엔 한갓 생물이었다. 그 이전 수십억년 동안엔 한갓 물질이었다.

 인간의 근본 바탕은 변화이다. 물질에 변화가 없었다면 생물이 없고 동물이 없고 인간이 없다. 나의 탄생과 생존, 사멸 역시 물질 변화의 한 양상이다. 그러므로 나 혼자만 장수하며 만리만복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 인간은 가족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 지구의 물질을 수납, 사용, 배출하다가 몸 기계가 노후하여 기능 작동이 안 되면 죽는 단순한 존재이다. 노후한 기계를 두세 번 까진 고쳐 쓸 수 있지만 더 이상은 못 되는 게 섭리이다.

 음식이 체내에 들어와 소화 되어 에너지가 되기 위해선 산소가 필요하다. 산소는 영양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들지만, 동시에 이산화탄소와 찌꺼기를 남긴다. 또한 산소는 자연 속의 철을 녹슬게 하듯이 인체 안의 철분을 산화시켜 몸을 피곤하게 하여 노후하도록 한다.

 노후는 변화의 종점이다. 이어서 노후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점이다. 내가 사용하고 내뱉는 원소들이 다른 생물들의 영양소가 된다. 그래서 모든 생물들은 연계되어 있고 지구는 하나의 생태계이다. 즉 모든 생물을 안에 품는 하나의 큰 생물체이다.

 

 

 동양과 서양, 해봉유기와 린컨 바네트는 살아간 시공이 다르지만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는 ‘우주의 침묵’이다. ‘우주의 침묵’은 많은 사색인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갖도록 하는 불가사의한 그 무엇, 존재이다.

 <庚申病中作>에 표현된 공부에의 집념과 <지구의 탄생>에 기록된 지식의 양과 질은 해봉유기와 린컨 바네트가 ‘우주의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진리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노력이 인류문명사에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를 증거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청소년기에 겪는 정신적 방황기를 통과의례로 넘기고 곧 일상에 적응하지만, 해봉유기는 승려로 린컨 바네트는 지구과학자로 일생을 보내며 청소년기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버리거나 잃지 않고 인간과 우주의 근본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1연 ‘병와일년두역백’을 보면 나이가 40대 중반 쯤이 아닐까 싶다. 침식이 부실한 상태로 수십 년 간 공부에 골몰하다다가 그만 병이 덜컥 들자, 그동안 쌓였던 화기가 치받으며 몸이 쇠약해지고 머리털이 하얗게 쇠어버렸다. 그러잖아도 공부하느라 두뇌를 많이 쓰는 탓에 머리에 혈기가 말라 털이 약해졌는데 병까지 드니 머리가 하얗게 쇨 수밖에. 물론 신분은 중이지만 평소에 삭발을 하지 않고 지냈거나 병석이라 머리를 그냥 두었겠지만.

 2연 ‘자수어학미전공’엔 공부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노력이 들어있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시작되는데도 한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중병이 들어 1년 동안이나 누워있으니 얼마나 심사가 괴괴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하는 공부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연 ‘왕시만권전제업’을 보면 젊은 시절부터 무척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팔만대장경이 있지만 여기에서의 ‘만권’은 불경을 포함한 많은 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승려로서의 본분에 맞게 불경만을 읽었다면 ‘만권’이 되지 않는다. 불경대로 믿고 따르며 살았다면 한 생애가 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봉유기는 ‘두역백’이듯 아마 머리 기른 승려, 즉 半俗半山人으로 한 생애를 살면서 다양한 지적 탐험을 추구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4연 ‘입해주사불견종’엔 진리를 다 알아내지 못한 지식인의 고뇌가 서려있다. 본래부터 무모한 짓이 진리를 다 알아내려는 욕심이다. 황하의 모래, 바다 가의 모래알처럼 인간이 알아내고자 하는 진리의 양은 무한하다. 무한한 그 속에 덤벙 뛰어 들어가 한 알 한 알 셈 하는 게 얼마나 지난하고 불가해한 일인가. 사정이 그러하니 우주의 시공을 각자 몫대로 살다간, 살아가는, 살러 올 지식인들 모두가 ‘불견종’ 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비로소 ‘왕시만권전제업’임을 알았으니 해봉유기가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면 분명 한 소식 들었을 것이다. 만권의 책을 읽는 목적은 만권의 책 속에서 안주하고자 함이 아니라 전筌과 제蹄, 즉 통발과 올무로 물고기와 토끼를 잡기 위해서이다. 즉 일이관지, 인간과 자연을 한 줄로 꿰는 진리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독서만권’에 자족한다. 그 자족이 넘치면 ‘도를 얻었다’라 희열하며 후손과 제자를 길러 자기의 도를 계승하도록 한다. 그 도란 만권의 책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닌데도 비판을 불허하곤 문도들로 하여금 무조건 숭상하도록 만든다.

 “사랑방 아래 묵에 미당이 앉았고 양 벽 아래로는 문하생들이 줄 지어 앉아있었다”라고 문 모 시인이, “미당 문단은 하나의 정부였다”라고 고은이 말했다. 시인 역시 승려나 학자들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라면, 미당과 그 문도들은 전과 제를 들고 설쳤지만 물고기와 토끼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전과 제의 기묘함을 자랑하기만 했지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거나 경장을 하고 산속에 들어가 토끼를 잡지 못했다. 온 겨레가 식민지 노예 생활에 처참한데도 일제지배를 미화한 시를 쓴 자들이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자들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자들 역시 양파처럼 문학적 근본이 없다. 미당의 시가 아름답다지만 친일문학에 깊숙이 들어간 시절은 그의 시 세계 자체를 종이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친일문학의 막강한 영향력이 전국적으로 아직도 건재하고, 지방에서도 그 본을 따 호족문인들이 행세하고 있는 게 현실상이다. 전과 제가 무엇에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진리는 정말로 가장 가까이에 있다. 바다 가 모래를 하나하나 세지 않아도 몇 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해봉유기가 ‘입해주사불견종’이라며 자탄했지만, 그것은 그의 인식 방법이 ‘만권’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모래알의 수는 하나다. 지구가 한 덩어리 바위이기 때문에.

 “바다 가 모래알은 몇 개일까?”라는 해봉유기 등 동양의 사색인들이 던진 질문에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서양에서 린컨 바네트 등의 과학자가 “예, 하나입니다. 수십억년 전에 우주의 티끌들이 인력에 따라 뭉치고 중력에 따라 부딪쳐 불타면서 한 덩어리 큰 공 모양의 바위가 되었답니다.”라 답한다.

 “ 아 그것, 우리가 공부하는 불경에선 성주괴공 하는 무량무겁의 시방세계 라 하지요.”라며 해봉유기가 린컨 바네트의 과학적 검증에 감사한다.

 “별 말씀을,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동무이지요. 우리 서양 과학에서 미흡한 부분인 예지력과 상상력 향상에 동양적 사고법이 유효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지식인들이 서로 도우면서 노력하면 ‘우주의 침묵’을 깨뜨리고 절대 진리를 확연히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린컨 바네트가 겸사한다.

 둘이 주고받는 인사 말을 들으며, 수백만년, 아니 수십억년 뒤에도 우리 인류의 DNA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2013년 11월 23일 열락연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