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과 불화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가 있다. 주인공 윤영감은 친일을 하여 거부가 된다. 부자지만 인력거꾼과 운임을 가지고 다투는 노랑이다. 졸부가 흔히 그러하듯이 윤영감은 그의 미천한 가문을 우뚝 세우기 위한 꿈을 꾼다. 그의 꿈은 그의 손자가 군수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자를 군청에 취직을 시킨 다음 총독부 관리에게 교섭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경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이 온다. 그의 손자가 사상관계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상이란 일본식민지통치에 반하는 불온한 사상이다. 윤영감은 이렇게 독백한다. ‘이런 태평천하에 왜 그런 짓을 해?’

채만식의 또 다른 소설 ‘치숙(痴叔)’이 있다. 바보 아저씨란 뜻이다. 주인공 ‘나’는 보통학교 4년을 다닌 사람으로 일본인 상점에 취직해서 일한다. 생활방식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일본인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 ‘나’는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아저씨가 사회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일로 경찰에 불려 다니고 취직조차 하지 못하고 거지꼴로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그런 학벌을 가졌다면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를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일본인들이 물러갔다. 거리에는 태극기의 물결이 넘실대고 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해방이 된 이후 우리는 윤영감이나, ‘나’와 같은 사람을 친일파라고 부르고, 윤영감의 손자나 아저씨와 같은 사람을 독립운동가라 불렀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친일파의 후손들과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조상이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기 때문에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명목상 해방이 되었지만 완전한 해방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친일인명사전’ 발간하는데도 친일파의 거센 저항을 받아야 했다. 친일파와 시대에 순응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그래서 오늘의 현실도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기회에 참석했다. 160여명의 동기생들 가운데 해마다 50여명의 친구들이 각지에서 모인다. 초등학교 동기회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옛날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두가 소중한 동무들이다. 그런데 한 친구가 너는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정치 이야기는 하나마나이고 하다가 보면 끝판에는 다투기 마련이기에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꾸 묻기에 아마 자네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친구들은 이른바 5060세대이니 물으나 마나다. 친구가 말했다.

“내가 누구를 지지할 것 같은가?”

“자네들 모두 1번 아닌가?”

“당연히 1번이지. 그럼 너는 아니구나, 너 이 새끼, 다음부터 동기회에 나오지 마!”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년에도 동기회에 나갈 것이다. 채만식의 소설에 나오는 윤영감의 손자나 바보 아저씨는 이른바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자이다. 늘 현실과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성찰하고 비판하니까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태도를 시대에 순응하는 자들은 삐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비판적인 자들에 의해서 진화한다. 비판 없는 사회는 정체되기 마련이다. 이번 대선을 결정지은 사람들 가운데는 소신을 가지고 후보를 선택한 분도 있겠지만 주로 내 동무들과 같이 시대에 순응하는 사람들이었다. 시대와 불화하는 자들은 앞으로 몇 년간 멘붕(mental 崩壞)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