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개산양백 박 희 용

 

 1987년 강경대-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6월 항쟁이 이룬 5년 단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래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5명의 25년 치세가 지나고 2013년 2월 25일에 여성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정치사에서는 이어지는 이 기간을 제6공화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1948년 8월 건국 이후 1987년까지 40년 동안에 무려 5번의 공화국이 성립하였다는 것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치사가 그만큼 험난했다는 증거이다. 헌법정신인 민주주의에 비교적 충실했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은 1960년 4월부터 1961년 6월 까지 장면정부 1년과 1963년부터 1970년까지의 박정희 대통령 당선과 재선 기간 8년, 합하여 채 10년이 안 된다. 나머지 30년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이 철권을 휘두르며 문민독재, 군벌독재를 한 기간이다.

 요즈음 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대가 흘러 수명을 다한 87년 체제를 접자고 하는 논의가 일고 있다. 여야 공히 이미 4년 중임제를 골간으로 한 개헌론을 말하고 있으며, 새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17년 경에는 개헌이 공론화 할 것 같다. 그런데, 제6공화국을 지탱한 87년 체제의 골간인 5년 단임제의 장점을 새삼스럽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5년 단임제를 함으로써 대통령들 개인적으로는 재선과 장기독재에 대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어 퇴임한 뒤에도 안전한 여생을 보낼 수 있으며 나라 전체적으로도 신선한 세력으로 수뇌부가 교체되어 국가의 활력이 계속될 수 있다.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측에서 말하는 정책의 연속성 문제는 정당정치를 정상화, 활성화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은 일단 당선되고 난 다음부터는 여당을 권력의 들러리로 만들려고 욕심을 내었다. 그러다보니 정당정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제 2013년부터는 정부-국회-법원의 3권 분립이 분명히 이루어지고, 국회가 국가 운영의 중심으로 두렷하게 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개헌론이 전개될 경우에, 정당정치가 정상화 되기 위한 방안으로서 각료의 과반수를 대통령 소속 국회의원이나 당원으로 하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재작년 여름에 박원순과 안철수 두 사람이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서울시장이 되어 서울을 변화시키겠다”라는 말을 하며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하였다. 박원순은 시민운동가로, 안철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살아있는 위인으로 실릴 정도의 벤쳐기업인으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사회적인 명예를 누리고 두루 존경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울시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개인이 사회적으로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여도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정치 지도자가 한 번 잘못하면 그 피해가 사회적, 국가적으로 엄청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인 우중정치 속에서는 소수의 깨어있는 유권자들의 힘이란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유권자 앞에 나서서 그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다행히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어 직무를 성실히 수행 중이고, 안철수는 비록 지난 번 대선 도중에 사퇴하였지만 한국정치의 미래 주자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어 나라의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들이 정치의 중요성을 늦게나마 안 것은 다행이다.

 한국정치사에서 30년 동안의 독재기간을 갖게 된 근본 원인은 소수의 책략에 이용당한 우중정치 때문이다. 부정선거가 횡행하였지만 다수가 지지하였기에 이승만 정권이 유지되었고, 3선 개헌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는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으며, 전두환의 7년 임기 체육관 선출 개헌안 역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부정과 강압이 있었지만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통과의례가 성립할 수 있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한열 열사의 세 번 죽임이 폭로되지 않았다면 4 ․ 19 혁명과 6월 항쟁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승만의 형식적 사과와 문책으로 흐지부지 수습되어 이승만은 계속 권좌에 앉았을 것이고, 하나회 군벌을 동원한 탄압책으로 민심을 꺾은 다음에는 적당한 절충헌법을 만들어 야당과 민심을 달랜 뒤 전두환의 난 때 회맹한대로 장성들이 돌아가며 해먹고 있을 거다. 그만큼 우리나라국민들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다. 인성이 착하다고 할까 용하다고 할까, 독재를 용인, 묵인 하다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나서주겠지 눈치 보다가, 김주열과 이한열이가 처참하게 죽은 뒤에야 폭발한다.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에서도 감정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하였다. 여당 진영에서는 복고 감정이, 야당 진영에서는 복수 감정이 끓어 넘쳤다.

 특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가진 세 번째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 여직원 인권’을 운위하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이어서 밤 11시에 경찰청장이 가진 사건 중간발표는 촉각을 곤두세웠던 민심의 향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선이 끝난 지금엔 그 사건이 진실로 판명 났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지 아니한가. 박 후보가 오판하도록 경찰에서 오류 정보를 제공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선거 전략상 부정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중요한 대선후보토론회에서 말을 잘못 한 것은 사실이다. 이 사건은 국가기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덮어 질 수도, 덮어서도 안 된다. 대충 원만하게 정리하면 정보권력이 국가권력을 농단할 수도 있는 면역을 남기기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분명하게 정리하여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의 그 발언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하여 지식인들이 제기하는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나의 마음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국정원을 수술하여 진정으로 나라와 겨레에 충성하는 국가조직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선 때 공약은 지켜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정신이고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말이 허탕하면 사람이 허탕하다. 정치는 말이므로 말이 허탕하면 정치가 허탕하다. 정치가 허탕하면 국민들이 고단하다. 뿐만 아니라 말한 그 정치인의 인생도 허탕하다. 공약은 정치인의 말의 결집이다. 허탕한 말로 꾸민 공약으로 당선된 자는 결국 망조로 든다. 공약은 꼭 이행 할 것만 주장해야 하고, 그 공약으로 당선되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하늘을 두 쪽 낼 자신이 없으면 엎드려 싹싹 빌어야 한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 궁정동 안가에서 심복부하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지 33년, 한 세대가 지나 그의 장녀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갔다. 후세 사가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상반된 두 개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누구나 공과 과의 두 면을 갖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그 편차가 명료하다. 국민들은 편을 나누어 상반된 측면을 갖지만 가족은 과는 작게, 공은 크게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당연하다. 하지만 공인과 사인는 엄격히 구분해야 하고, 더구나 나라의 대통령이 된 입장으로서는 아버지를 공적존재로 보는 눈을 가져야만 한다. 즉 과는 과대로 공은 공대로 보되, 과는 보충하여 해소시키고 공은 늘여서 빛나게 하겠다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 아랫대의 도리일 것이다.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빈다. 비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 사는 즐거움으로 박근혜 정부가 잘 하기를 봐야 한다. 이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들이 행복하다. 그래야 박근혜 개인사도 영광되고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도 편안할 것이다. 5년 참 짧다. 자연의 시간에 비하면 인생은 수유이고, 인생 팔십에 비하면 5년 임기 순간이다. 순간이지만 영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가의 능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