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추억

 

 

히틀러의 권력을 만들어 준 사람은 괴벨스라는 천재적인 선전부 장관이다. 괴벨스는 “우리가 어느 나라에 쳐들어가면 국민들은 3가지 부류로 나뉜다. 우리에 저항하는 저항세력(Resistance)과 우리를 따르는 협력세력(Collaborator)과 그 밖의 머뭇거리는 대중(Masses)이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언론을 장악하여 머뭇거리는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 공식은 히틀러에게 절대적 권력을 안겨주었다.

히틀러는 이 공식으로 주변 국가들을 점령했고 유럽 대륙을 나치의 깃발로 덮었다. 점령하는 나라마다 선전을 통해 머뭇거리는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식민지 통치를 했다. 욕망도 지나치면 파국을 맞게 된다. 히틀러는 패배했다. 나치에서 해방된 유럽 나라들에서는 나치 전범과 나치 협력자들을 모두 처형했다. 아직까지도 나치 전범이 발견되면 처형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로 점령했을 때 우리도 저항세력과 협력세력과 머뭇거리는 대중으로 나뉘었다. 일본은 ‘낡은 조선을 발전시킨다.’는 선전을 통해 머뭇거리는 대중을 친일파로 만들어 식민지 통치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그 다음은 조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농토와 자원을 약탈하고 젊은 남녀를 전쟁에 내몰았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다. 해방이 되었으면 친일파가 처벌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새로 건국된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주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경계에 이승만이 있었다.

미국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 이승만의 인격(Personality of RHEE SYNGMAN)이라는 파일이 있다.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승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그는 한 번도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고 한다.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미국 선교사들의 추천으로 유학을 했고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프린스턴 대학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박사라는 명목으로 미국 내 한인들의 지도자가 된 이승만은 하와이로 가서 박용만이 이끌던 국민회의를 폭력과 술수로 장악한다. 그는 교민들이 낸 독립운동자금을 직접 관리하며 재산을 축적하고 호화로운 미국생활을 한다. 기독교계 기호파가 다수인 임시정부 요인들의 추천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나 거기서도 독립운동 자금만 장악하고 권력만 부리다가 탄핵된다.

미국의 태평양전쟁 승리로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다. 권력과 돈의 화신인 이승만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편지를 써서 신임을 얻어 독립 운동가들을 재끼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다. 겉으로 독립투사요 속으론 권력만 추구하던 이승만은 친일파를 중심으로 절대 권력을 구축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이승만을 국부(國父)라 부르고 인자한 할아버지라 생각했다. 우리는 괴벨스가 말하는 선전에 포섭된 ‘머뭇거리는 대중’이었다.

만약 이승만이 한반도에 태어나지 않고 프랑스에 태어났다면 벌써 처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4.19혁명 뒤에 하와이로 망명가서 천수를 누렸다. 이 땅에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이래 100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레지스탕스가 콜라보를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한 번도 언론이 자유로운 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인터넷 검색어 ‘백년전쟁’을 치면 이승만에 대한 동영상 자료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