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구나

 

봄이라고 발음해 보면 입술이 따뜻해진다. 겨우내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봄은 희망, 꿈, 부활, 생명 등을 상징하는 기다림의 언어다. 내 친구는 봄을 좋아하여 딸의 이름을 봄이라고 지었다. 그 애가 지금 유럽에 갔다니 이 땅에 봄은 없는 셈이다. 봄이 오면 노인들은 어두운 방에서 나와 지팡이를 짚고 봄볕을 쬔다. 개도 노인을 따라 꼬리를 흔들며 마실을 간다. 얼었던 물이 풀려 개울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 끝이 한결 부드럽다. 땅에서는 움이 돋고 나뭇가지 끝에는 꽃망울이 나온다. 겨우내 어두운 곳에 있던 생명들이 살아 있음을 증거한다.

봄은 농촌에 가장 먼저 찾아온다. 봄이 오면 농부들은 땅을 갈고 거름을 내고 씨앗을 뿌린다. 가을에 거둘 결실을 생각하며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농촌은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가을에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농사짓는 데 드는 비용을 넘지 못한다. 지으면 지을수록 밑지는 것이 농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이농현상이다. 농촌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마을에는 빈집이 생기고 도회지로 갈수 없는 노인과 개 몇 마리만 남았다. 마을에 아이 우는 소리가 끊인 지 오래다. 농사가 세상에 으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농촌에 봄이 와도 이제 봄이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것이 계절의 봄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말만 민주주의이지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멀기만 하다. 3.1절의 원래 명칭이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었다고 한다. 일본 식민지 세력을 몰아내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3.1혁명의 정신이었고 그 결과 이듬해인 1920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틀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1945년 해방 후에 세워진 우리나라의 명칭도 대한민국이고 국가 형태는 민주공화국이었지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아직 멀다.

우리 민주주의 역사 100년은 3.1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왕조국가의 틀이 민주공화국으로 바뀐 것이 3.1혁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미완의 혁명인 4.19, 5.18 민주항쟁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의 제단에 몸 바쳐 투쟁하며 이어온 것이 우리 민주주의 100년의 역사였다. 올해 봄과 함께 박근혜 정부가 출발했다. 선거 전에 유세할 때는 경제 민주화를 말하며, 소통을 말하며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던 민주정부를 말하더니 취임 후에는 180도 태도가 바뀌었다. 부도덕하고 비민주적인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고, 정부조직 안을 국회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무서운 태도를 보였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8%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농촌을 살린다는 정책도 노동자들을 인간답게 살게 한다는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치에도 봄은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민주주의는 계절의 봄처럼 그냥 오는 것 아니다. 비민주적인 것들과 싸워서 얻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오는 것이 봄이다. 군사정권시대 이성부 시인은 민주주의를 봄에 비유해서 이렇게 노래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의 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