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정신

 

권서각

 

 

젊은 시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시인이 아마 김수영일 것이다. 그의 시와 그의 행동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 강연에서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사회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혼돈스럽다. 그리하여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 이들 더욱 그립다. 그의 시 가운데 ‘눈’이 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시 ‘눈’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김소월이나 서정주 시를 대하는 것처럼 읽으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김수영은 우상을 깨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눈은 순수함과 깨끗함을 상징한다. 가래는 눈과 대조되는 의미다. 눈이 살아 있다는 것은 눈이 우리에게 순수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마당에 내린 눈을 바라보고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라고 반복해서 요구한다. 이쯤 되면 시인의 의도가 조금은 밝혀진다.

김수영은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시인들에게 기침을 하여 몸속의 더러운 것을 모두 뱉고 눈에게 부끄럽지 않는 깨끗한 영혼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눈에게 당당할 수 있는 곧은 정신과 순수한 영혼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가 발표된 1957년은 이승만 독재정권 시대다. 그 후 1960년에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졌던 학생들에 의해 4.19혁명이 일어났다. 4. 19는 자유, 민주, 정의를 요구하는 순수한 정신에 의해 일어났다. 4.19혁명의 결과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린다. 김수영 시에서 4.19 정신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의 시에는 늘 자유와 민주와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1948년 4월 19일은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 단일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평양으로 출발한 날이기도 하다. 선거 때마다 설문조사에서 우리 정치인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호출되는 인물이 백범 김구 선생이다. 김구 선생이 북으로 향할 때 그를 따르는 군중들이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길을 막았다. 선생은 길을 막은 군중들에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 70이 넘었다.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 이대로 가면 한국은 분단될 것이고,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그 후 자신의 권력만을 추구했던 남의 극우파와 북의 극좌파에 의해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백범은 암살되고 그의 예언대로 우리는 6.25의 비극을 겪었다. 분단의 비극은 나라보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운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 분단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봄이라지만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우리사회도 안개 속이다. 이럴 때일수록 김수영 같은 백범 같은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 사람 사무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