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되는 평은 강산

                                                 - 칼질 한 자들을 모두 일월에 기록하라

 

                                                                                                                                 山白 박 희 용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에이 눈에 확실하게 안 보이는데 무슨’하며 거짓이나 과장인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 강산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무
려 수억 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십년이란 인간의 눈으로 강산의 변화를 확실하게 인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평은 강산이 변화가 아니라 확실하게 변신하는 데는 십년이면 족했다. ‘강산이 변한다’에서, ‘변화’라는 말은 본래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외관상에 약간의 차이를 가진다는 의미이지만, ‘변신’이란 말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평은 강산이 십년 만에 변신을 하긴 하였으나, 감히 변신했다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왕창 망가진 모습이 되어 버렸다. 전래의 변신술은 본질에다가 얼기설기 보태고 빼서 하지만, 현대의 변신술은 외과 수술, 즉 성형 수술인즉슨, 유명한 건축학 학자들과 유능한 건설업자들에 의해 평은 강산이 성형 수술을 받긴 받았는데,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이 무참하게 난자, 유린당한 추레한 몰골이 되어 버렸다.

 

2004년 봄부터, 22년 동안 근무한 안동을 떠나 영주로 전근을 가서는 퇴근길에 평은 강가에서 놀았으니, 내가 본격적으로 평은강과 친해지기 꼭 십년만이다. 영주시내 학교에 근무한 두 해 동안엔 토요일 오후에 강가 미루나무 아래에서 한숨 자거나 강둑을 거닐며 시 <안경을 안 쓰면> 등의 시상을 얻기도 하다가 2006년 3월부터 2011년 2월 말에 명퇴하기까지 5년 동안엔 바로 강가에 있는 평은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바짝 정이 달아올랐다. 요즈음엔 지율스님이 강동리 강둑에 진을 치고, 무참하게 난자당하는 평은 강산을 위령하면서부터 세인들이 평은강의 가치를 높게 보지만, 나는 십년 전부터 나름대로 평은 강산의 수려함과 의미를 느껴 시와 산문으로 표현했으니, 평은강 사랑에서 만큼은 지율스님보다 기득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사랑은 나만을 위한 외사랑일 뿐이고 지율스님의 사랑은 죽어가는 생명들과 난자당하는 강산을 위령하는 참사랑이다. 난자당하는 강산 앞에 서면, 지율스님이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나는 평은강이라 부르지만 행정상에 공식 명칭은 내성천이다. 내성천은 봉화군 태백산 인근 백두대간인 문수산, 옥석산, 선달산 등에서 발원하여 영주시 평은면을 지나 문수면 무섬에서 영주 서천을 만난 다음에 서남행하며 예천 지역을 관류하고는 풍양면 삼강마을에서 낙동강 본류에 들어간다. 나는 그 중에서 영주시 평은면 지역을 흐르는 강을 특별히 이름 하여 ‘평은강’이라 부른다. 이산서원에서부터 영주댐이 건설된 미림까지 약 삼십 리 정도의 구간을 말하는데, 이 구간은 모래사장이 곳곳 구비마다 금빛으로 펼쳐져 있다. 금광리 인동 장씨 유래 비에는 ‘錦江’, 택리지에는 ‘沙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성천’이란 명칭은 발원지인 봉화의 옛 지명이 ‘내성’이기 때문이고, 금강과 사천은 ‘錦沙’, 즉 ‘금빛 모래사장이 비단처럼 펼친 강’의 뜻이다. 어디 가서 이런 모래비단 강을 다시 만나리요. 이름 그대로 화강암반이 깎이고 닳아 쌓인 평은강의 모래사장은 정말 보기가 좋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터벅터벅 걸으면 온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며, 강물에 들어 서 있으면 모래 초침이 사각사각 굴러가는 소리와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 십년 동안 삼십 리 평은강의 온몸을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네 곳 성감대를 사랑했다. 첫 사랑은 2004년부터 2년 동안 주로 토요일 오후에 저 아래 가자골 철교 부근에 미루나무들이 서 있는 강가에서 이루어졌다. 왕 선생과 월~금요일엔 카풀해서 안동-영주 길을 다니지만 토요일엔 내 차를 몰고 퇴근길에 강가에 들러 두세 시간 동안 혼자 놀았다. 자연을 도저히 접할 수 없는 대도시에서 산 게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서 살고 근무도 시골학교에서 계속했지만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진 평은강은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첫해인 2004년에는 그 곳에 자주 가서 잘 놀았으나 이듬해 봄이 되자 강가에 버섯농장이 들어서게 되어 정취가 식었다. 뿐만 아니라 큰 개가 세 마리나 있어 내가 조심스레 지나가도 사납게 컹컹 짖어댔다.

두 번째로 사랑한 성감대는 버섯농장에서 약 1 Km 정도 올라온 곳이었다. 2005년 가을부터 2008년까지 산벚꽃나무 아래에 차를 대놓고 강둑을 따라 걷거나 강가 묵밭에 무성한 풀과 나무들을 만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절골 가는 산길 십 리를 걸어 오르며 명상을 했다. 가끔 전에 놀던 곳을 달려서 지날 때마다 버섯농장 개들이 매섭게 컹컹 짖으며 달려들어 기분이 쌉쌀했다. 그래서 영주시청에다가 ‘강둑을 점령하고 개를 풀어 놓아 행인이 위협을 느껴서야 되겠습니까’하는 민원을 넣고 난 다음부터는 그쪽으로, 첫사랑 맺은 곳으로 가지 않고 신발을 벗어들고 강을 건너서 건너편 둑, 지금 지율스님이 진을 친 강둑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2007년 가을까진 두 번째 사랑 터에서 잘 놀았는데, ‘강가의 하얀 집’이 한 채 세워지는 게 아닌가. 영주시내 약국 한다는 부자가 별장을 한 채 턱 세워 놓으니, 내가 사랑하던 순수한 자연미가 그만 스러지고 말았다. 온갖 잡초들이 번성해서 이곳이야말로 자연 식물원이라고 여겼던 묵밭도 수몰 보상금을 더 많이 타내려고 주인들이 갈아엎고는 촘촘하게 과수 묘목들을 심어버렸다.

 

세 번째로 사랑한 성감대는 상류로 훌쩍 올라온 곳으로 4차선 평은대교 아래 강가인데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다. ‘강가의 하얀 집’이 내뿜는 부와 권위에 기가 질려 아니 옮길 수 없었다. 다리 아래 공터에 주차해놓고 2 Km 강동제에서 두 번 왕복 달리기를 하였다. 마지막 2 Km는 맨발로 슬슬 걸으며 강물과 초목을 좌우에 두고 감상했다. 여름에는 난닝구와 반바지로 달리며 시름을 잊었다. 그런데 공터에 나보다 먼저 대논 차가 있어서 저 위 강둑에 겨우 주차하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며칠 뒤에 공터에 주차하면서 둘러보면 뿌연 화장지 쪼가리가 마구 버려져 있었다. 달리다가, 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수석의 여인이 운전석을 향해 쌔액 웃는 얼굴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공사 차량이 들락날락하니 밀회 차를 볼 수 없었다. 강가에는 상류에서 떠 내려와 뿌리를 내린 산복숭아와 뽕나무가 많아 몇 해 동안 발효 엑기스 잘 먹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강가의 논이 모두 경작 금지 되면서 무성하게 돋아난 쑥을 뜯어 쑥떡을 해 먹고 남겨 냉장시킨 뭉치가 해를 넘겨 아직 세 덩이나 있다.

동네 개들에게 쫓겨 뿔뿔이 헤어진 어미와 자식, 내가 소리 질러 개 두 마리를 쫓고 난 다음에 새끼를 찾는 어미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어디 가서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한참 달리다 둑길 곳곳에 보이는 탄피를 보며 고라니들의 안부를 걱정하다가도, 펄쩍펄쩍 한 줄로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보며 안심했다. 전선이 끊기고 전봇대만 쓸쓸하더니 모래사장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의 굉음이 울리면서 평은 강산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요즘은 온갖 공사 차량과 덤프 트럭이 드나들어 겨우 달리기만 하곤 돌아온다. 이것도 다음 달부터 담수가 시작되어 강둑길이 물속에 잠기는 가을쯤부터는 하지 못 하게 된다. 그리되면 평은 강산에 다시는 발을 딛지 못 하게 되는데, ‘건설 개발’이가 사람 정을 떼도 모질게 뗀다.

 

 

그래도 평은강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곳은 매일 근무하는 평은초등학교 지역이다. 다른 곳들은 퇴근 후나 휴일에 찾지만 근무 지역은 매일 생활하며 평은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을 만나는 곳이다. 교육대학에 다닐 때 나의 낭만은 강가의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었다. 장마로 불어난 냇물에서 아이들을 업어 건너는 내용의 글을 교육대학생 때 쓸 정도로 강가 학교를 그리워했는데, 삼십 년 초등학교 근무에서 마지막 학교가 강가이므로 젊은 시절의 낭만을 완성한 것 아니랴. 그래서 평은 강산은 나의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댐이 들어서고 폐교가 된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돌면서 지역사회와 학교가 차츰 쇠약해졌다. 파장 분위기가 학구 내에 짙어지면서 해마다 전교생의 수가 줄어들어 한 학급이 한 명 또는 세 명이 되는 경우가 생겼다. 순박한 지역 주민들은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대놓고 반대할 수 없으며, 보상금이나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는 순종 의식에 젖어 활기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결손 가정에서 쓸쓸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더욱 의기소침 했다. 몇 년 안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물 아래 잠긴다는 체념이 만연하였다.

도시에 거주하는 부재지주들은 그러잖아도 토지 값이 헐해서 팔기도 어렵던 차에 영주댐 덕택으로 거금의 보상금을 챙겨서 즐거워했지만, 노인들만 남은 소규모 자영 농가는 받은 보상금으로는 어디 가서 대토할 곳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상업 종사자들은 영주댐이 완공되면 유원지가 될 이주지에서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역민들 중에서 가장 곤란한 층은 소작농과 농업노동들이다. 어디 가서 새로 소작을 얻기도 어렵고 날품을 팔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2013년 6월이면, 열두 명으로 줄어든 금광리의 평은초등학교는 다행히 폐교는 면하고 평은리 옛 학교 건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곧 오랜 교직 생활에 마지막 학교의 추억조차 물속에 들어가 버린다.

 

영주댐 건설의 필요성에 대하여 많은 주장들과 정책들이 있지만, 평은강이 안고 있는 지형적 특성, 생물로 치면 숙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재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는 놋점마을에 지형을 보면 강폭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좁다. 강폭이 상대적으로 좁다고 볼 수 있는 여러 곳은 거의 500m 정도 되는 강폭과 주변의 농경지가 넓게 펼쳐있어서 댐을 쌓기가 어렵다. 하지만 놋점 지형은 100m 남짓 되는 강폭과 양쪽에 높은 산이 있어 댐의 최적지이다. 그래서 건축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앞의 넓은 유역과 좁은 강폭을 대비해 보면서 댐을 생각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그 위 강가 마을인 내매리 출신인 임명삼 작가도 영주댐 건설 얘기를 듣더니, “아 거기 미림 말이지, 하마 옛날부터 댐 쌓기 적당한 곳이라는 말이 있었지”라고 말했다. 이걸 보면 지역 주민들도 내면적으로는 댐에 대하여 체념, 또는 묵인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평은댐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숙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평은강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발원지도 깊을 뿐만 아니라 굽이치며 흐르는 사행천의 모습과 안고 있는 모래사장을 보면 영락없이 여성스럽다. 그러므로 놋점마을 부근 지형은 비유한다면 여성의 질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위 평은역 일대의 금광리는 자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질을 빡빡하게 막아 자궁을 팽팽하게 하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 이득을 얻으려고 획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획책은 자연의 근본 섭리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질이 튼튼해야, 즉 양 쪽에 산이 가까이 있어 질을 강건하게 하여야 자궁에 옳은 생산물이 잉태된다. 여기서 말하는 ‘옳은 생산물’이란 유원지, 정화용수, 공업용수, 농업용수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들의 평화로운 삶을 말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평화롭게 살려면 물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물은 깨끗해야 한다. 물은 고이면 썩고 흐르면 깨끗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에다 영주댐을 쌓아 막아서 자궁에 물을 가득 고이게 한다는 것은 평은강 유역의 생물들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넓게는 영주, 더 넓게는 경상북도와 대한민국은 병들게 하는 것이다. 댐이란 것은 유역의 생물들에게 크게 피해가 없는 계곡이나 협곡에다가 만드는 것이지, 많은 생물들의 삶의 터전인 비산비야 지대에다가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4대강 사업이 졸속으로 완공되어 많은 문제점이 발생되면서, 완공 전에는 찬양 일색이었던 보수 언론들조차 4대강 사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기 전에, 그를 지지한 다수가 바로 우리 주변의 국민들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대운하 정책을 홍보한 덕택에 정동영 후보를 500여만 표 차이로 압승한 이명박에게 4대강은 외려 불만스러웠을 따름이다. 보수층들이 대운하 정책은 지나치다고 겨우 달래어서 다행히 온 국토가 절단 나는 횡액을 면하였지 아니한가.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내세운 명분을 한 마디로 뭉친다면 ‘개발하여 풍요롭게 잘 살아보세’가 아닌가. 현재와 미래의 풍요를 희망하는 다수 국민들이 그에 동조했지 아니한가. 세상 구조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구조라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하게도 한쪽이 잘 살면 다른 쪽이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되어 있다. 이 섭리를 확대하여 자연 생태계에 적용한다면 인간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선 반드시 자연을 갉아먹도록 되어 있다. 요즘의 주요 뉴스 중에 하나가 밀양 송전탑 문제인데, 송전탑 아래 마을 사람들이야 생존권 문제이든 보상금 문제이든 심각한 문제이고 환경과 생명을 사랑하는 운동권 인사들에게는 호재이지만, 전국적으로 다수 국민들이 볼 때는 소수가 국책 사업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진정으로 현지 주민들의 분노와 고통에 동정한다면, 문제의 근원인 에너지 절약부터 실천하는 게 마땅한데도 온 국민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경제 발전이라 여긴다. 저마다 온갖 전자 제품을 향유하며 도시 아파트마다 에어컨이 없는 집이 없다. 인류문명 자체가 에너지 소모형이기 때문에 문명의 근본을 바꾸지 않은 한에는 인류의 쇠락 또는 멸종이 불과 수천 년, 아니 빠르면 불과 수 백 년 후라고 많은 석학들이 예언하고 있다. 영주댐 문제를 인류문명의 종말 징조에다 확대하여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가늘게나마 연계되어 있음은 확실하다.

 

평은강의 숙명이든 권력의 정책이든 건설업자의 이권 때문이든 간에 이제 평은강은 공식적으로 다음 달이면 사망선고를 받아 본래의 모습을 흘려보내고 질을 막아 물을 잔뜩 밴 만삭의 몸으로 인간들 앞에 선다. 여기까지는 광주학살에 동원 명령을 받고 민간인 탄압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군인들의 운명처럼 국가적 정책 차원의 수리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폭도라고 보이면 닥치는 대로 학살하라”는 공식적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분노와 폭력성으로 민간인들을 마구 학살한 잔혹한 군인들처럼 영주댐 둘레를 뺑 돌아 57Km 도로를 낸다면서 산기슭은 마구 깎아대는 짓은, 건설 사업이 아니라 자연 파괴를 목적으로 한 폭력이라고 아니 말 할 수 없다.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난자’요 ‘유린’이다. 소를 잡을 때도 ‘각을 뜬다’라는 말처럼 요모조모 살피며 질서 있게 칼질한다. 물고기를 잡아 배를 따도 칼질을 순서대로 한다. 그런데 평은 강산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소나 물고기를 다듬는 칼질이 아니라 도마 위에 강산을 쇠뭉치로 마구 내리쳐서 살점과 뼈를 튀게 하는 난도질이다. 그래서 ‘난자’요 ‘유린’이다. 모성의 강 평은강을 흐르지 못하도록 한 것만 해도 크나 큰 불효인데, 둘레 산들을 흉측한 모습으로 외과 수술하는 것은 평은 강산을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거대한 음모이다. 영주댐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산간 도로를 내어서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산기슭을 깎아 도로를 낸 다음, 유한계층의 드라이브 코스, 아베크 족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딱이라고 광고하여 국고를 올리자는 정책인가? 누가 57Km를 뱅뱅 돌면서 드라이브를 할까. 주변에 더 좋은 코스가 많이 있는데도 말이다.

댐이야 수명이 100년 정도이니 나중에 철거하면 강산이 복구되지만. 한번 파괴된 산은 다시는 복구할 수 없다. 7,8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인근의 안동댐과 임하댐을 보면 댐 자체는 거대하고 넓은 들판이 온통 호수로 되었지만 주변 산들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도로를 내더라도 꼭 필요한 곳에만 내고, 멀리서 보더라도 깎아내린 산기슭과 도로가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에 비하면 영주댐의 산들은 21세기에 민주화된 국가로부터 학대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속되게 말한다면, 문명이 발달한 현대일수록 자연을 조져도 무참하게 조져대고 있다. 향토말로 해서 강산이 절단 나고 있다.

댐은 국책사업이라 치더라도, 평은강 둘레 모든 산을 망가뜨린 순환 도로를 누가 발상하였는지 필히 규명하여야 한다. 국토 개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관료는 반드시 생명과 환경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통해 소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건설업자들의 이권 다툼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관청의 주체적인 수요에 의해서 건설 사업이 입안 되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소형업체나 전국 단위의 대형 건설업체들이 자기들의 수요에 의해 도로, 교량, 공공건물, 댐, 관개 시설 등의 국가적 건설 사업을 기획한 다음에 관청에 로비하여 성사시킨다면, 그것은 국토를 파괴하는 참혹한 짓, 매국 행패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모든 대형 공사에 대하여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주댐과 둘레 도로에 대하여 시공자와 감독자들뿐만 아니라 건설 정책 입안자, 결재자 및 시공 때와 완공 때까지에 중앙관서와 지방관서장의 실명제를 반드시 시행하여 일월에 남겨야 한다. 후세들이 공과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역사책에 분명히 기록하여야 한다.

 

다음 달, 2013년 유월이 오면 내 사랑 평은 강산과 이별한다. “정든 땅 언덕 위에”유행가 가사처럼 평은 강산을 십년 동안 깊숙이 사랑했다. 나만의 소유였던 성감대 네 곳을 차례로 빼앗겼지만 십년 동안 행복했다. 남은 내 생애 동안에 다시는 이런 사랑이 오지 않으리라 익히 알지만, 평은 강산이 무참하게 난자당하는 광경을 보며, 한국인의 미래,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덮칠 불길한 징조를 두려워한다.

 

 

                                                          2013년 5월 21일 양백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