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

                                                                                                                        山白 박 희 용

 

 

 지난 2월 27일에 쓴 칼럼의 제목이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였다.

 

「특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가진 세 번째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 여직원 인권’을 운위하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이어서 밤 11시에 (서울)경찰청장이 가진 사건 중간발표는 촉각을 곤두세웠던 민심의 향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선이 끝난 지금엔 그 사건이 진실로 판명 났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사건은 국가기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덮어 질 수도, 덮어서도 안 된다. 대충 원만하게 정리하면 정보권력이 국가권력을 농단할 수도 있는 면역을 남기기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분명하게 정리하여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의 그 발언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하여 지식인들이 제기하는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빈다. 비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 사는 즐거움으로 박근혜 정부가 잘 하기를 봐야 한다. 이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들이 행복하다. 그래야 박근혜 개인사도 영광되고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도 편안할 것이다.」

라고 끝맺음 하며 박근혜 정부의 순조로운 출발과 좋은 성과가 쌓이기를 빌었다.

 

그러나 왠지 징조가 좋지 않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4개월 되는 이즈음엔 슬슬 과거 정권의 굴곡과 부침 현상이 되풀이 되는 듯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증이 점증하고 있다. 지난 2월만 해도 국정원 직원이 국민을 대상으로 댓글 공작을 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정도였지만, 이후 시간이 갈수록 댓글 공작의 실상이 확대될 뿐만 아니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경찰청 분석팀의 댓글 발견의 결과 보고를 무시하고 “4개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로 댓글을 발견할 수 없었다”라는 허위 발표를 한 것이 탄로 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상부인 김기용 경찰청장이 심야 허위 발표를 명령해서 하급자로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함으로써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 권력의 핵심 실세에까지 넓혀져 버렸다. 지하 깊숙이 꼭꼭 묻어 감출 수 있는 공작이 내부 고발자로 하여 노출되고, 권은희란 날카로운 호미를 만나 그만 파헤쳐지고 말았다. 보태어 각자도생코자 하는 자중지란이 벌어지면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튀는 공처럼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지난 2월에 칼럼에서 지적한대로 정권의 책임자가 초기에 이실직고 하고 관련자 처벌과 국정원 재구성을 통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면 일이 이만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쯤에서 적당하게 소화되었을 것이다.

이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정도가 아니라 불도저로도 못 막을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라는 글을 쓴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난감하기가 그지없다. 국민도 국민이고 야당도 야당이지만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이어 규탄 실천에 나서기 시작하였으니, 먼 과거인 유신시대와 무단시대를 회상할 것 없이 불과 5년 전 이명박 정권 초기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광우병 촛불 사태>의 악몽이 생각나서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지금이야 다수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지만 당시만 해도 500여 만 표란 압도적 차이로 당선된 이명박은 나름대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려는 결심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집권 초기에 촛불시위란 직격탄을 몇 달 동안 당하는 바람에 그도 인간이니 오기랄까 배신감이랄까 뒤틀린 감정에 휩싸이게 되어 이후부터 무리한 국정 수행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광우병 촛불 사태>는 먹거리, 그것도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 사항인 소고기, 그것도 한우가 아니라 미국소에 관한 것으로서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 계층인 도시 소시민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사실 소고기를 꼭 안 먹어도 되고, 사 먹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미국 소고기 말고 한우 고기를 사 먹어도 될 일인데도, 엠비씨 노조를 핵심으로 한 반이명박 세력이 연대하여 정권의 기반을 크게 흔든 사태였다. 또한 미국 소고기 수입에 관한 법안 개정 협상은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서 갑자기 시작한 게 아니고, 노무현 정권 때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을 이어받아 협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대 세력에 의해 바가지를 덮어쓰고 말았다.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복권 당첨 확률보다 더 낮으며 국가에서 예방, 검역, 수입 금지, 유통 제한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데도 불구하고 촛불이 너무 오래 타는 바람에 식상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이명박 정권으로 하여금 오기의 복수심만 팽배토록 하고 말았다. 물론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 정책은 꼭 필요하고,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목적을 깔고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귀착한다는 것을 <광우병 촛불 사태>에서 건진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6년 만에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이야 정통성 시비에 무관하며 앞에서 거론한 바대로 억울한 점이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외통수에 걸리고 말았기에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공권력인 검찰이 원세훈과 김용판 두 사람을 기소한 죄목이 국정원법과 선거법 위반이니 변명이나 발뺌, 분식하기가 거의 불가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이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듯 전혀 상식적이지 못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 몇 몇 여권 인사들이 아직 있으니, 상황 전체를 조감하며 콘트롤 하는 지혜를 가진 책략가가 여권 중심에 부재하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꼬리 자르기를 하든지 몸통을 내놓든지 간에 지금이 마지막 적기인데, 강고한 공권력을 믿는지 국민들의 건망증을 믿는지 보수 세력들의 응원을 믿는지, 아니면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 환부가 더 곪아가고 있다. 이 환부가 피부에 난 상처라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두뇌에 난 상처라서 자칫하면 큰 탈이 날 수가 있기 때문에 초기에 확실히 처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하듯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다. 조선조 500년 역사에 흐르는 중심은 왕권과 민권의 갈등이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좌익과 우익 모두 민권을 중심으로 한 공화국 정체를 추구하였으며, 해방공간과 육이오 전쟁에서 남부의 다수가 민주주의를 선택하였으며, 해방 후 세대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세 독재 권력을 물리친 이유는 민주주의 때문이었다.

그렇게 피를 먹으며 자란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은 대통령 선거인데, 그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국가의 전위가 되어야 할 국정원이 일개 정권의 하수가 되어 댓글 공작이란 촉수를 뻗쳤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공무원들이 나라와 국민 전체보다 한시적 정권, 한 개인과 조직의 사익에 충성했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파수꾼으로서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기관의 공무원들이 검찰에서 기소장에 적시한대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거역한 것은 단죄 받아야 마땅한 범죄인 것이다.

그래도 국정원 직원의 댓글 공작은 국정원에서 주장하는 대로 대국민 이념 홍보 차원에서 보면 일말의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허위 발표와 압력 행사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이다. 범죄 차원을 넘어 반역죄, 내란죄에 버금가는 중대한 국기 문란 사건이다. 앞서의 국정원 직원들은 그래도 업무 성격을 띄고 있지만. 김용판이의 허위 발표는 의도적, 계획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저지른 반역 행위이다. 만약 며칠 전에 김용판이가 발설한대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윗선인 김기용과 다른 상부가 개입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박근혜 정권이라는 한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안전운행 여부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발본색원에 나서야 하지만 국민들도 이참에 민주주의를 확실히 다지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김용판이가 등장하기 전에는 원만한 수습책이면 됐지만 이젠 엔간한 수습책으로는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사일구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도화선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주검이었고, 유월항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도화선은 이한열의 장례식에 모인 백만 민중이었다. 민중은 둔중하기 때문에 엔간한 자극에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논리적 설득보다는 감정적 행동에 더 빨리 반응한다. 12월 18일 대선을 사흘 앞두고도 아직 부동이었던 백만 여 표심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은 대선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에 김용판이가 “댓글 없습니다” 라고 발표한 직후였다. 이 부동표 백만 표는 생각이 깊은 사람들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 신중한 마음들이었다. 그들은 국정원 댓글 공작에 대하여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서 결정을 보류하던 차에, 박근혜 후보가 “여직원 감금은 인권 유린이며 문 후보는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공석에서 하자, 오랜 경륜을 쌓은 박근혜 후보가 저렇게 말한다면 틀림없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 믿음을 확실하게 담보한 것이 바로 김용판의 심야 발표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 공권력의 도적적 권위를 믿은 그 표심을 얻어서 박근혜 후보가 100만표 차이로 승리하였다.

이제 김용판의 발표가 거짓이었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그의 거짓말은 선거에 작용하여 권력의 정통성에 의문이 들도록 하였으며 국가 공권력의 도덕적 권위를 더럽힘으로서 국가에 큰 손해를 입혔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정보를 들었는지 몰라도 박 후보는 온 국민들이 주시하는 토론회 자리에서 분명히 사실이 아니며 문 후보의 잘못이라고 공박했었다. 김용판이가 거짓이므로 박 후보의 공박이 거짓이 되었다. 두 거짓 때문에 표심을 결정한 최후의 부동표가 당락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니, 결과적으로 부동표의 오류가 역사의 물굽이를 다르게 흐르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눈 깊은 국민들에게는 정권의 정통성이 태생에서부터 오류로 간주되는 것이다. 부동표 당사자들은 ‘속았구나, 마지막까지 살폈는데, 결과적으로 표 잘못 했구나’하며 자책할 것이고, 박 후보는 ‘이제 와서 알고 보니 중인환시리에 거짓을 말했구나, 적반하장 했구나’ 하며 자책할 것이니,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적인 면에서 동정이 간다.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이다. 시공적 상황은 하나임에도 사람마다 진영마다 변명의 논리가 다른 것은 ‘정의’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잘못이다, 우리의 잘못이다”라고 시원하게 실토하는 사람이 없고, 설사 잘못을 안다 해도 공개적으로 실토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경우에 따라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며 정의를 죽여 말려선 포장지로 두껍게 싸서 제단 위에 모시기도 한다.

정의의 문자적 해석은 ‘바르고 옳음’이다. 확대한다면 ‘밝음, 당연함, 의연함, 확실함, 상식, 원칙, 양심, 선량함, 많음, 다수, 민주주의’ 등이 된다. 이것은 우주자연의 법칙으로서 산하인 천지만물을 관류한다. 그러므로 정의는 인간에게 적용되며 인간들의 집합체인 조직과 사회, 기관과 국가에도 적용된다. 정의의 내면적 표현은 도덕이고 외면적 표현은 법률로서 둘 다 인간 사회의 표리를 이룬다. 삶이 정의 자체인 사람은 아주 드물지만, 정의를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다. 그래서 항상 정의는 양지가 되고 불의는 음지가 된다.

도덕과 법률이 표리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고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어긋나기 때문에 난해한 문제가 생긴다. 개인의 표리부동은 작은 영향을 끼치지만 사회 조직과 기관의 표리부동은 심대한 영양을 끼친다. 국정원법과 공정선거법은 국민들의 합의를 집약한 사회적 정의이다. 그러한 사회적 정의에 대한 무시는 곧 개인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를 생각하는 이들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분노한다. 그 분노하는 이들은 보통의 국민들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공직에 있는 지식인들에게도 있다. 권은희 수사과장과 같이 소신과 용기를 가진 엘리트들도 필요하지만, 상부의 명령이 정의에 역행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수행하는 젊은 공직자들의 비애가 줄어들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이발을 다 마치고, “낭팰시더, 나는 박근혜 안 찍었지만 일단 당선 됐으니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데, 이런 사건이 들통 나고 말았으니, 대학생들도 시국선언에다 가두시위 할 것 같고, 하여튼 앞으로 많이 시끄럽게 생겼니더”라고 말했더니, “대통령 됐는데 뭐 어쩔 거여, 뭐 마구 잡아넣으면 되지요”라는 주인의 한 줄 대답이 돌아왔다.

경상도 안동 땅 어느 이발소의 60대 남자가 하는 말대로, ‘이왕에 당선 되었으니 어쩔거여’ 논리라면 ‘일단 일을 저지르고 나면 장땡이다’ 또는 ‘남의 물건이라도 일단 내가 차지하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으며, ‘뭐 마구 잡아넣으면’ 논리라면 설득이나 타협과 같은 민주주의 원리는 장식용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니, 만약에라도 그런 무식한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다시 퇴보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총칼과 탱크로 밀어붙여도 피를 먹으며 자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인데 다시 물러서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에 대응해 정권은 온갖 공권력을 동원해서 강제로 누르려 할 것이 아닌가. 그 다음부터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는 우리 국민들이 과거에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선 안 되고, 그렇게 되어선 국민들이 피곤하다. 그러므로 어떡하든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집권 여당 쪽 인사들은 정의에 입각한 결정을 내려서 다수 국민들로부터 정통성을 다시 확인 받아야 할 것이다. 국민 여론과 감정을 무시하고 강권을 발동하고 책략을 사용하여 난국을 수습한다 해도, 중간을 좋아하는 다수 국민들의 묵인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소수지만 생각하며 사는 국민들의 냉소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후세 사가들의 직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과 문 후보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 습득으로 인한 발언 오류를 수정하고, 전 정권의 전위인 국정원과 경찰, 집권 여당에 똬리 틀고 있는 일부 야심가들의 오만방자함을 엄히 다스려 다시는 그러한 반정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치국에 노력하노라면 태생의 하자를 아물게 하고 훌륭한 대통령으로 청사에 기록될 것이다. 관련자들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이실직고 석고대죄하여 국민의 심판에 따름으로써 대통령의 정통성를 재정비하고 운신을 자유롭게 하는 큰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야 모두들 유위유능한 국가적 엘리트들 아닌가. 권력을 위한 정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의만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의 나침판이 될 것이다. 하향의 필부도 훤히 알고 있는 출구 전략을 등한시한다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엔 없다.

정의는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내 마음의 가시덤불 속에 정좌하고 있는 정의를 찾아내면 나도 좋고 남도 좋다. 자유가 공기라면 정의는 양식이다. 조악한 양식으로 겨우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양질의 양식으로 생명이 건강한 세상이 훨씬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