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무시는 생명 무시

 

개산양백 박 희 용

 

 

고전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知的 자기위안이 아니라 현재를 있도록 한 과거의 모든 것들을 면밀하게 살펴 그 공과 과를 변별하며, 그것을 현재의 밑거름으로 삼아 충실한 미래를 도모하자는 의지의 확산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논주 한 『儒敎思想의 문제들』의 모든 말들이 결국 ‘經濟’라는 말 하나 속에 모두 들어간다.

‘경제’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수준과 방법은 다르지만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나름대로 경제활동을 한다. 생물이 공기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경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경제활동이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하며, 그 영향이 자연계에 두루 미치기 때문에 중요성을 갖는다. 인간이 현재 지구의 지배자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경제 활동의 여하에 따라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의 운명이 상하좌우로 요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경제 역시 다른 생물들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자연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 행위일 뿐이다. 요약하면, 살아있을 때는 자연의 물질을 요모조모로 이용하다가 죽으면 즉시 반납하는 것이 인간 경제이고, 이용의 정도와 수준에 따라 풍요한 일생 또는 빈곤한 일생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옛말대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이다.

토지는 모든 경제 활동의 근본이기 때문에 통시대적 중요성을 갖는다. 인간 생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통시대적 중요성’을 넘어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나 현대에나 토지 정책이 국가 경영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 지난 시대에 토지제도의 중요성을 아는 위정자들에 의해 정전제, 직전제 등의 다양한 토지제도가 구안되고 시행되었다. 그래서 그러한 정책들이 봉건국가 경영에 유리한 효과를 가져왔지만 체제가 오래되면서 폐해가 누증하였다.

토지제도가 유명무실해지게 된 까닭은 왕실토지의 확장에도 있지만 권문세가들의 통제되지 않은 토지 소유욕과 공신전의 남발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자들의 토지 매입과 수탈, 백성들의 무기력 또는 태만에 의해 토지 소유가 이동함에 따라 농촌사회가 지주와 소작농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과 신분적 불안이 팽배해지면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어 총체적 경제가 불안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통제되었다면 건국 초에 마련한 본래의 취지대로 토지제도가 작동하여 백성들의 생계가 보장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왕실과 국력이 충실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봉건시대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는 온갖 토지정책이 소용이 없었고, 그 모순이 인화점에 이르자 봉건왕조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질 수 있다. 축적된 자본이 생산현장으로 회귀하지 않고 부동산으로, 특히 토지 소유욕으로 흐르면 과거와 같은 폐단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그러한 자본이 토지로만 몰리지 않고, 경제 활동도 봉건시대와는 달리 농업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 피해가 절대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국민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토지공개념을 기초로 한 토지의 효율적인 관리제와 개인이나 기업의 토지소유 상한제는 국가 유지에 꼭 필요한 근간이다. 어느 시대에나 위정자들은 토지제도의 흐름에 주의해야 한다.

 

조선선비들의 오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이다. 물론 자기 인생은 자기의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맞지만, 매사에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수록 자기에게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타인과 사회에게는 피해를 끼치게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자기 자신을 비움으로써 이룩할 수 있는데, 자신이 꽉 찼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배려하는 친절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조선의 선비들은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속이 꽉 찼다고 여겼다. 갓 태어난 싯다르타가 말했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종교의 벽을 넘어 가장 적절하게 나타난 곳이 선비들 각자의 마음이었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잘 났다고 여겨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자기 생각 말고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용납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것이 장차 그들의 학문과 생활, 나아가 사회와 정치에 그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자긍심이 도를 넘으면 자만이 되고, 자만이 지나치면 아집이 된다. 아집 속에서 생기는 모든 생각은 균형을 상실하고 편견이 된다. 그런데 그 시초인 자긍심이란 사실 좋은 의미를 갖는다. 수신과 치인에 뜻을 세우고 학문을 꾸준히 연마하다보면 자기 신념에 철저해지게 되고, 그 결과로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추게 되는 것이 학문이 깊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어긋나면 사명감과 자긍심이 기형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기형들이 많아지면 학문이 왜곡되고 세상은 소란스러워진다.

기술과 도덕은 물질과 정신의 문제로서 인간생활의 양면을 이루는데, 어느 한쪽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양쪽이 부합되어야만 성립한다. 그런데도 유학자들이 도덕적 이상론에만 치중하고 기술을 소홀히 하였다는 것은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바깥에 나가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하기보다 방안에서 혼자 조용히 공부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물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겠지만, 인간세상을 이루는 다수 군중들은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향유하는 데에서 인생의 가치와 즐거움을 느낀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야 군중의 지지를 많이 받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 사회와 국가를 이끌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지만, 과거 봉건시대 때에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수 선비들이 시대를 지배하였기 때문에 다수 군중들은 물질욕을 억압당하고 선비들의 정신적 가치를 억지로 추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활발한 경제활동보다는 근검과 절약을 통한 최소한의 물질생활을 하게 되었고 국력은 자연히 쇠미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선비들이 자기들의 가치관을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투사시킨 데 있다. 자기들은 현명하나 백성들은 우매하다는 편견 속에서,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고 정신만 중요시 하여 도덕적 금욕을 백성들에게 강요함으로써 백성들의 생기를 저상시켰다. 선비들이야 하루 종일 공부와 사색만 할 수 있지만 백성들은 그것보다는 활발한 신체활동을 더 좋아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간과하고는 권력을 동원하여 백성들을 자기들의 가치관 속으로 강제로 끌어들인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미흡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오류인 것이다. 수도 중심의 도덕적 국가는 선비들의 이상향이었지 백성들의 이상향이 아니었다. 백성들은 도통이나 도덕보다는 생활의 즐거움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그러므로 조선시대란 선비들의 자긍심과 사명감이 자만과 아집으로 변질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인정하지 않은 억압의 시대였다.

한 톨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그 싹이 자라 꽃을 피우고, 늦가을 되어 마침내 다시 한 톨의 씨앗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일러서 현자들은 ‘空’과 ‘虛無’, 또는 ‘佛性同流’라고 말한다. 내공이 깊은 유학적 지식인들 역시 태극에서 시작한 변화가 극치를 이루다가 마침내 다시 태극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알기 때문에 물질을 허상이라 하여 버리고 정신만 취한다. 유학이 이런 구조이다 보니 선비들은 풍요한 물질적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고 검소와 질박한 삶을 선호하였다. 그러니 사회 역시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톨의 씨앗이 품고 있는 의미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씨앗이 싹터 자라 환하게 밝은 꽃을 가득 피우는 데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씨앗들이 맺힐 것이 아닌가. 즉 인간 삶의 의미란 탄생과 죽음의 단순한 되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살아 숨쉬는 과정이 바로 본질인 것이다. 살아 숨쉬려면 정신만 갖고는 안 되고 반드시 물질이 있어야 한다. 물질이 있어야 살아 숨쉴 수 있으므로 물질이 많을수록 더 활발하게 살아 숨 쉴 수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물질을 무시하는 것은 생명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다보면 물질을 소홀하게 여기는 단계에 든다. 모든 것이 ‘空’인데 화려한 재물과 여색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깨달음이 짙어질수록 현실보다는 이상, 몸보다는 정신에게로 집중하게 되어 아주 질박한 의식주생활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런 고상한 경지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수도하는 사람들의 것으로 남아야지 일반 백성들에게 모범적인 삶으로 교육되거나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생산이 있어야 살아 숨 쉴 것 아닌가. 백성들은 물질적 생산을 담당하고 수도자들은 정신적인 생산을 담당함으로써 상호 보완할 수 있다. 몸통이 있어야 머리가 서고 다리가 있어야 생각이 걸을 수 있는 법, 생각과 행동을 할 때엔 인간도 생물이라는 대전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의 선비들이 이런 이치를 통찰하였더라면 정신과 물질의 갈등이 없었을 것이고, 선비 자기 자신과 백성 등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물질적 풍요가 쌓여 국력이 커져 감히 외세가 침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