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보수


만인을 위해서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으로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 김남주,「자유」중에서


언젠가 어머니께서 6.25 전쟁 때 피난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남쪽 어딘가로 피난을 갔는데 먹을 것이 없어 어느 빈집에 가서 쌀을 가져와 밥을 지었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 사실을 아시고는 어머니께 크게 호통을 치시곤 식사를 하지 않으셨단다. 그 전쟁 통에서도 아버지께서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도덕률을 지키셨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께서 그 당시의 대통령 후보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다고 아버지께 조목조목 예를 들어 말씀드려도 아버지께서는 막무가내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대선에서 5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는 문재인 야당 대통령 후보를 빨갱이라고 생각하여 상대 여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고 한다.  

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선생님께서 정치를 하신다면 어떤 일부터 시작하겠습니까?”하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공자는 ‘정명(正名)’이라고 답했다. 자로가 겨우 그거냐고 깎아내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깨우쳐 주었다.
“이름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말(言)이 서지 않고, 말이 서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중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훌륭한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 엉터리 이름 붙이기에 의해 모든 일이 거꾸로 돌아가다니!
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을 가까이서 보면 다들 일상생활에서는 ‘선량한 국민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생활로 눈을 돌려보면 그들은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가로막고 있다. 과연 그들은 이런 사실을 꿈에라도 상상할까?
그래서 슬프다! 우리의 다정한 이웃인 그들이 힘없이 다리를 끌며 뒤뚱거리며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 당신들은 지금 길을 제대로 걸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역사의 길도 제대로 걸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다!

이 역사의 심연을 바라보면 너무나 깊어 현기증이 난다. ‘아, 이 아득한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무리 사적인 차원에서 선할지라도 사회적 차원에서 선하지 않으면 절대로 선할 수 없다.  
그래서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다. ‘오! 아테네 시민들이여, 부디 아테네 시민다운 인간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