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는 자로 산다는 것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하고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오백 년 조선왕조가 종말을 고했다. 온 나라의 선비들은 나라 잃은 치욕을 견딜 수 없었다. 조선팔도 각지에서 선비들의 목숨이 꽃잎처럼 떨어졌다. 매천 황현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도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꽃잎처럼 떨어졌다.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도 하구나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왜 귀한 목숨을 버리는가. 세상은 어차피 정의롭지만은 않은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 사는 일은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선비 한 사람 죽는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는가.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도 오지 않겠는가. 자기가 뭐라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나라일로 목숨을 바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선비들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보같이 죽기는 왜 죽어라고 말할 것이다.

바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임기가 끝날 무렵 그의 아내가 어떤 기업인으로부터 100만 불을 받았다. 그 일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모두가 운명이라고 하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그 앞서 권력을 이용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감옥에 갔던 이가 말했다. 꿋꿋하게 버티면 될 것을 왜 벼랑에서 떨어지느냐고. 그도 그가 왜 벼랑에서 떨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천이 절명시를 쓰고 죽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은 그의 시에 나타나 있다. 매천이 글 아는 자였기 때문이다. 매천이나 바보라 불리었던 사람이 글 아는 자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 아는 자의 다른 이름은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어떤 존재이기에 그렇게 쉽게 목숨을 버리는가?

지식인은 글을 읽어 폭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자이다. 왜 글을 읽는가? 참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함이다. 그리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지식인은 왜 시대와 불화하고 괴로워하는가? 모르는 것이 약인데 아니까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끄러워할 줄을 안다. 육체적인 고통이나 물질적인 빈곤은 참을 수 있지만 정신적 치욕은 견딜 수 없다.

반만년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고 왜(倭)라고 불렀던 일본인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 무력하기만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매천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그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꽃잎처럼 떨어졌다. 글 아는 자가 그때 자결한 선비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고통은 또 얼마였을까? 하늘에 묻는다. 왜 그들은 글 아는 자가 되어 스스로 괴로워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