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고도 좋은 아빠 전성시대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사익과 공익의 충돌, 약자의 법적 보호판단, 공익간 충돌, 탄핵소추 등에 따른 법리 충돌을 보합하는 종결지점이요, 법의 지배에 가치를 유지하거나 미래지향적인 선언적 의미를 (결정적으로) 부여하면서 하위 재판의 평결에 판단준거를 제시하고 선언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헌법위에 법률이 있고 법률위에 지침이 있다는 법학교수들의 자조 또한 진행형인 시대에 있다.


  우리는 법학을 공부한 지도자, 경영학을 전공한 지도자, 전자공학을 이수한 지도자를 접해왔고, 또 접할 것이다. 이제 권력의 학문인 법학이 천박한 도덕률의 속성들이 지원하고 또 근친교배되어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필자 또한 인문학계 지원 경험은 50세가 넘어 하였었지, 젊은 시절에는 법학과에 지원하기도 한 이력이 있다. 과장된 표현으로 나쁜놈 전성시대로의 편입에 실패한 전력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동흡 후보자의 청문회를 통한 시시비비는 차라리 사소하다고 본다. 선비적 도덕률을 요구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현재의 지배권력의 속성 중에 견주어 볼 때, 스케일이 너무 작고 재산 모으기에도 별 볼 일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돈은 로펌에 편입되어 재벌을 변호하는 송사 한 두건만 하면 모을 수 있는 정도이며, 현재 강남 3구에 사는 60대 자산가의 평균재력에도 못 미친다.


  문제는 공익성 지위에 있는 권력자의 현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 청문회다.  굳이 나열해 보겠다. 국회의원, 지자체의원, 국세청, 검찰, 중앙지 미디어, 언론기관의 상층 구조들이 대표적이다.

그 분들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이동흡 후보자에 비하면 훨씬 용의주도한 인물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필자는 대선 과정 중에 혁혁한 공을 세우거나 실기하는 전략가들의 승전보나 패전보를 통해서도 읽었다.


  H신문 4쪽에는 일곱 분의 인사청문 특위위원들의 사진을 싣고 있다. 권성동, 강은희, 김도읍, 김성태, 김재경, 김진태, 안효대 의원들이다. 이동흡 후보자에 대해 “별 하자 없다” 로 판단하고 있다.  필자는 충분하게 이해한다. 그 정도는 별 하자가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용의주도한 권력의 속성을 이미 채득하고 실천하고 있음을 매우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청문회를 통해 읽는 교묘한 공격과 수비 진영을 보아도 그 이면에는 청문회 후에는 처지가 역전될 것임도 다 알 것이다. 이미 다가오는 새정부의 헤게모니 또한 그 속성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헌재 한 명의 재판관의 역할이 국회의원 열명 보다 더 필요하다는 것은 국회의원의 상투를 잡을 수 있는 몇안되는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다시 걱정되는 것은 나머지 여덟의 재판관 조차 의심이 들게하는 우려 때문이며, 아마도 별반 다를까하는 자괴감이 오히려 두렵다.


  경국대전보다도 헐거워진 작금의 법전이 그 두께와 반비례로 사람은 작아지고 국가만 커졌다. 실로 두려운 계절들의 연속일 것이다. 한번도 외침을 하지않은 우리의 조국이 자꾸만 몸살을 앓고있는 형국은 결국 시민교육의 잘못에도 기인할거라는 생각도 한다. 시인 조차도 정신병을 앓는 시대다. 작가로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찬란한 현업 문학의 에이스들도 월 오십만원 정도의 원고료수입이라면, 상위 이백명에 포함된다고 한다. 문학이 밥벌이가 아님은 자명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자기정체성과 몸부림을 독자에게 전달하기도하고,  허물벗기처럼 자기단련을 통해 사회변동을 희망하고 위로하고 부르짖는 그 울림들이 언젠가 나비효과처럼 슬픔을 나누고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은 그들의 아름다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이동흡을 톱아보며, 아무리 선비의 시대가 아니라하더라도, 나 또한 이동흡 세대로부터 교육을 받아 그 속성이 내안에 재생산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통절감 또한 감출 수가 없다.

놓칠 뻔 했다. 스펙 좋은 세 따님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아빠였을까.


  작금, 더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에, 착하지는 못하더라도 덜 나쁜 놈으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이 괴로운 시대에, 착한 놈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 싶다.  새해의 바램이다.<姜泰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