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8호...
   2020년 04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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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도르노)/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2947 2013-08-05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도르노)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 브레히트,「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중에서 ‘아우슈비츠 감옥’을 다녀 온 사람이 말한다. 유태인들이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에 독일군이 말했대요. “앞으로 여기서 살 거니까 샤워를 하세요. 가방에 이름을 써 놓으시고요. 나중에 찾아갈 수 있게요.” 이름이 쓰인 가방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단다. “사람들 머리카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머리카락으로 양탄자도 만들었다고 해요.” 아, 인간이 이렇게도 잔인해 질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은 철저히 ‘아우슈비츠 감옥’을 보존하고 있단다. 역사가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독일은 ‘아우슈비츠 감옥’을 그대로 보존하여 ‘아우슈비츠 감옥’을 낳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끊임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일제강점기’가 얼마나 보존되어 있나?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한탄을 한다. ‘3.1 운동’도 모르고 ‘8.15 해방’도 모른단다. 그래서 국사과목을 수능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그들이 왜 ‘일제강점기’를 보존하자는 얘기는 하지 않나? 생생한 역사 현장을 보존하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을 텐데. 경찰서 고문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때 고문한 일본, 조선 경찰들과 고문당한 독립 운동가들을 다 보여주면 될 텐데. 그러면 학생들이 그걸 보면서 우리 역사를 훤히 알 텐데. 그래서 요즘 ‘국사 교육 논쟁’을 보면 분노가 터진다. 정말 그들은 국사 교육을 하길 원하나? 아, 정말 원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국사 교육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 역사 교육’을 생각하면 분노가 터진다. 사마천은 ‘분노가 터져서 책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너무나 분노가 터져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이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 이것밖에 없기에. 현재 우리의 역사는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지 않는 역사’이기에 모든 것이 비틀어져 있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그는 기울어져가는 우 리 역사를 보며 피울음을 토했을 것이다. 그렇다. 공백이 된 역사. 그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을 하라고 다그치는가? 인간은 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인류’이다. 한 인간 속에는 전체 인간의 마음이 함께 흐른다. 오늘은 내 마음 안에 흐르는 ‘인간의 마음’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너무나 비틀어져 버린 내 마음 안에 희미하게나마 흐르는 그 소리는 내게 무엇을 하라고 소리치고 있는가?  
149 정치, 정치인, 정치가 /山白 박 희 용 file
편집자
1141 2013-07-24
 정치, 정치인, 정치가 山白 박 희 용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한국 정치사에 도움을 준 일 가운에 가장 큰 것은 박원순과 안철수 라는 두 인물을 정치계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동안 두 사람은 정치권 밖에서 전자는 아름다운 재단 일에, 후자는 서울대 융합대학원장과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로 각각 사회적 공헌을 크게 해왔다. 그런데 오 시장이 서울시 소재 초등학교 4~6학년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 반대가 다수일 때엔 시장 직을 사퇴하겠다는 승부수를 걸어 2011년 가을에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바람에 급식문제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자기진영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로는 순차적 확대를 지지하는 여론이 다수이기 때문에 서울시의회와 진보진영의 기세를 꺾어 보수진영을 집결한 다음으로 서울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강력하게 수행하여 업적을 남긴 후 이듬해에 있을 보수진영의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화하려는 플랜을 세웠을 것이다. 또 어차피 반년 뒤인 2012년 봄에는 대권주자로 활동하기 위해 시장 직을 사퇴해야 할 바엔 멋진 승부수를 걸어볼 욕심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설사 패배하더라도 보수층을 자극하여 집결시키면 보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큰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승부수가 성립되지 않음으로써 대권 행보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조금만 더 보태면 확대하는 급식비가 될 만한 돈인 수백억의 선거 비용 소모를 불쾌하게 여긴 서울시민들의 외면으로 인하여 개표 유효 투표율 자체가 미달하여 수백억이 헛돈이 되고 말았다. 오세훈 재산이 얼마인 줄 모르지만 신임투표 비용을 사비로 충당하겠다는 선언을 했다면 유효 투표율은 확보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년층들의 적극 투표와 돈에 매우 민감한 서울시민들의 보수 성향을 자극하여 승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승부수의 실패가 몰고 온 후 폭풍은 오세훈과 보수진영의 계산을 초토화 시킬 정도로 거대했다. 민주당 후보가 선출 되어 일으킨 태풍이 B급 정도로만 불어도 승산이 넉넉했는데, 민주당이 아니라 시민운동권과 사회공헌권에서 그만 초대형 태풍이 부는 바람에 보수와 진보 구도 자체가 붕괴하고 오세훈과 유력 시장 주자 급들이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래서 2011년은 우리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광복 후의 정치사를 반추해보면, 민주시민들의 축적된 연대 역량이 군벌 무단정치를 극복하고 1987년 체제를 성립한지 25년, 산천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 변화하는 도중에 있다. 그동안 네 명의 대통령을 보내고 1년 반 정도의 임기가 남은 보수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그때 시점에서 냉철하게 1987년 체제를 반성해보면, 이제 새로운 정치체제로 변화해야만 할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정치학자들과 정치인들이 공감할 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많은 국민이 체제의 변화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제 변화의 필요성과 때가 되었음만을 알았지 실제로 체제 변화를 도모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당리당략과 호불호가 난무하는 정치권에서 87년 체제 변화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변화된다 하더라도 기성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겹겹이 얽힌 짜집기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원순과 안철수의 등장은 폐쇄된 한국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오게 하는 새 출입문의 역할뿐만 아니라 시대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아쉽다면 이 역사적 변화의 핵인 두 인물의 등장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된 것이 아니라 오세훈의 승부수라는 극적인 요소에 의해 촉발 된 점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볼 때는 우연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동안 팽팽하게 축적된 민주시민의 에너지가 작은 자극에 의해 폭발된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적 키 워드는 ‘분노’이다. 오세훈이가 무리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을 보고 많은 지식인들이 분노했지만, 그 두 사람이 가진 분노의 질과 양은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할 정도로 진지했다. 시민운동과 공공분야에서 사회를 위해 삼십 년 동안 헌신해왔지만, 오세훈의 헛짓으로 인해 낭비되는 수백억의 국고를 보곤 개인적인 헌신의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즉 서울시장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서울시가 변화할 수 없으며, 나아가 정치가,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본질적으로 변화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에 우선 서울시장이 되어 서울시정을 바로 세우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5% 지지도의 박원순이 60% 가까운 지지도를 받는 안철수의 흔쾌한 양보를 받아 서울시장에 당선됨으로써 두 사람 모두 승리자가 되고 서울시가 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박 시장은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에서 서울시의 시정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국민과 정치권 일부에서 갖고 있는 시민운동권 출신의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안철수 역시 주지하다시피 이듬해 대선 후보 선출 기간 동안에 유력한 대통령 감으로 부상하였고, 현재는 여야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제3의 정치세력을 집결하고 있다. ‘분노’라는 키워드로 촉발된 두 사람의 정치 실험이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엔 비교적 안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보태어 대선을 거치는 동안 많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여 한국 정치계를 풍성하게 하였다. 반대로 한 시대를 주름잡으며 기세등등하던 인물들이 다양한 사고로 낙마하여 무대 뒤로 사라지도 했다. 비유한다면 정치는 그릇이다. 사회는 그 그릇 속에 담긴 음식이다. 그릇이 견고해야 음식이 잘 건사되어 가족들이 먹을 수 있다. 또 정치는 들판이다. 정치인은 그 들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작은 단위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정치가는 크게 나누어진 각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그릇을 잘 건사하는 사람, 들판을 경영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즉 최고지도자에게 인간사회와 국가의 안위가 위임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선거 원칙에 따라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갖는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선거 원리에 따르면 선거란 여러 인물들을 비교하여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는 제도이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인물이 대표로 뽑히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장 우수한 인물보다 가장 적당한 인물이 뽑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구성원들인 국민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인물이란 고매한 이상보다는 당장의 내 생활에 편리를 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환언한다면, 많은 지성인들이 지적하듯이 민주주의의 최대 맹점인 중우정치가 여전히 현실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정치는 곧 국민들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살펴보더라도 과연 그 시대 상황에 가장 적합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되는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보면, 남한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부인 보수우익의 이익을 수호하는 대표자였으며, 민족자주 노선을 추구하는 애국자가 아니라 종주국인 미국의 대동북아 전략의 하수인이었지 아니한가. 1945년 광복 직후에 조사된 여론을 보면 국민의 60% 이상이 미국식 민주주의나 소련식 공산주의보다는 그 둘을 절충한 사회민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학자들의 논문이 증언한다. 이것은 남한 주민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외세와 그에 조종되는 꼭두각시들에 의해 국민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펼쳐졌고, 결국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을 겪고도 냉전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후의 대통령들을 보면 박정희와 전두환은 말 그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만의 대통령이 되었고, 여타들도 모두 국민들의 지지를 고루 받기보단 한쪽의 지지만을 받은 반쪽 대통령들이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우중정치 요소를 숙명으로 한다지만 그래도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최우수는 아니라도 우수 급 정도는 돼야 하는데 현실 정치는 보통 급의 인물들이 득세하여 대통령이 되었으니 한국정치 발전 속도가 느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 그리고 전두환 독재가 성립할 수 있었던 명분과 실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역시 이념 문제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적화 야욕을 막고 공산 독재체제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자는 자유민주주의는 그들의 독재를 변호하는 최대의 무기였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완성하여 미제의 식민 수탈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시켜 조선혁명을 완성하자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세습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최대의 무기로서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87 체제의 변화를 가속시켜 앞으로 올 30년 한 세대를 경영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이념 문제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1980 년대 이후 제3인터내셔널 차원의 공산주의는 확실히 실패하였으며, 자본주의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념이 가진 이론과 실천 면에서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비판과 자각이 이미 일반화 되어있는 현재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형태의 이념이 우리들의 후손에게 적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오늘을 사는 지식인들의 임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통일을 내다본다면, 그것도 일방적 통일이 아니라 남북의 협상에 의한 통일을 바란다면 우선 남북이 이념면에서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상반된 이념 체제 속에서 70년 가까이 생활한 주민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점진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의 유일한 방법은 역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장점을 취사선택하는 것뿐이다. 이 합의는 한반도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라 지구 전체 차원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상계에서 중심 화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정당정치의 확립이다. 정치의 요체는 인물과 제도인데, 제도가 인물보다 우위냐 아니냐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를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제도에는 국가 이념과 조직도 포함되지만 정당은 제도의 중요한 한 축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라고 누구나 중등교육에서 배우지만 현실에선 정당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왜 정당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느냐 하면 인물 때문이다. 그 인물이 누구냐 하면 바로 대통령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이 된 자는 먼저 여당을 장악한다. 그래서 여당은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만을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인데, 정당이 정당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 거수기 역할을 하게 된 나라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당이라는 제도가 대통령이라는 인물에 의해 붕괴되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도가 인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인물인 대통령이 정당정치를 망가뜨리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직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새로운 체제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임기 재선제나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 독식을 막고 자기들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책략성이 농후하다. 미국을 보면 대통령제를 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 간다. 잘 굴러가는 까닭이 뭔가. 삼권분립이 확실하고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도 수준이지만 국가 조직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영역의 리더들이 자기 고유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만 되면 국가 총수로써 입법부와 사법부의 우위에 서며, 최고로는 국무총리 이하 장차관 등 등, 최저로는 지방 기관장까지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권력을 갖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먹이사슬 피라밋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기에다 공명을 탐하는 지식인들이 가세하면서 대통령의 권위는 더욱 상승하게 된다. 그러한 지식인들은 정통성이 없는 대통령들로 하여금 정통성을 보충하도록 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한 예로 김상협 씨는 고대총장을 할 때만 해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전두환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내는 바람에 오늘날엔 존재가 희미해졌다. 또 김상협이 유명한 바탕은 총장이다. 그것도 다른 대학이 아니라 고려대학교의. 국민들이 건설회사 사장인 이명박이 그래도 대통령 감은 된다고 본 기준이 고려대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태어 4.19 때 상대학생회장으로 선두에 선 의기. 민족 고대를 국민들이 얼마나 존중해 주었는가. 그런데 한 사람은 전두환의 하수가 되고, 한 사람은 고대 인맥을 타고 4대강 난자와 국정원법 위반 등의 난정을 저질러 고려대학교의 명예를 퇴락시키고 말았다. 그들이 족보와 비석에는 몇 자 남겼을지 모르지만 천추만대 두고두고 만고역적의 가면이었음을, 국토의 모성을 난자한 주범으로 규탄받을 것이다. 그래서 지혜적 지식인은 난세를 당하면 공명을 버리고 은둔했다. 현재의 5년 단임제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국가가 발전했다. 5년마다 인재들이 순환하여 집권함으로써 국정 경험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식 정쟁의 위험도를 낮췄다. 또 현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게는 제도전의 기회를 제공을 주고 미워하는 세력에게는 5년 뒤에 미운 꼴 안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 국민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 집권 세력 내에도 여러 정파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야 현직에 있을 때 한몫 챙기자는 욕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 집권을 희망하는 세력들은 국민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후반기부터는 현직 대통령을 조금씩 견제하게 되어 그런대로 정당정치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고쳐서 재선제로 했을 경우에, 대통령은 국가적인 목표보다는 재선을 목표로 국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재선에 도움이 되는 충성파 인물들을 중용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 여권에서는 줄서기와 눈치 보기가 심화되어 국정 운용과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가 어렵게 된다. 5년 단임제가 바르게 운용되면 정당정치가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당정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여 여러 파벌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민주정당의 가치를 나타내야 한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당내 투표에서 이긴 박근혜 후보가 일반국민 참여에서 밀림으로써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게 하여 4대강을 절단 내게 하고, 2012년 민주당 경선 때 당내 투표와 국민참여 투표에서 이긴 손학규 후보가 모바일 민심이라는 국민참여 여론조사에서 밀림으로써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게 하여 결국 대선에서 1년 동안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우세했던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받고서도 패함으로써 민주진영에게 참담한 패배감을 안겨주도록 한 원인인 국민참여라는 환상을 없애야 한다. 정당정치는 가치에 동의하는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당비를 바탕으로 해서 조직된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데, 평소에는 그 정당에 관심이 없던 자들이 경선 기간 동안에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추종자들을 국민이란 이름을 덮어씌워 동원하여 소기의 목적을 쟁취토록 하는 바람에 정당정치의 본령이 그만 일그러지고 말았다. 정당은 당원이 중심이다. 국민참여정치란 명분과 취지는 그럴 듯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장이고 속내는 근기가 가벼운 선동가들의 상용 도구일 뿐이다. 다음으로는 당선된 대통령이 지금처럼 만직을 임명하는 제도와 관습을 없애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과 비서진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임명직 공무원들은 당내 인사위원회에서 다수결로 추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공기업 기관장들은 해당 공기업 출신 가운데에서 국가인사위원회에서 추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의 요체 중의 하나가 인물인데, 행정의 요체 역시 인물이다. 이렇게 요직 인물들을 검증하여 기용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발전할 뿐만 아니라 집권정당도 계파 이익이 보장됨으로써 공존하며 더 좋은 정치를 위해 합심 노력할 수 있다. 인사제도가 합리성을 갖게 되면 정당정치가 활력을 갖게 되고 나아가 정치가 정상적으로 운동하여 국민과 국가가 평안해지게 된다. 87년 체제가 도입된 지 꼭 한 세대 30년 만인 2017년 12월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체제, 즉 개정된 새 헌법 아래 치러지게 될 것 같다. 새로운 체제의 핵심인 제도 면에서는 기존의 5년 단임제를 보완하면서 그동안 누적된 문제점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인물 면에서는 기성과 신생의 인물들이 모두 나서서 국민들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미 2011년에 지각을 뚫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 인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존 정치인들 가운데에도 정치가로 성장할만한 자질과 인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새 인물들과 함께 한다면 분명 한국 정치는 환골탈태할 것이다. 특히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새 정당 창설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데, 이것이 양당정치의 고정된 틀을 깰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느냐 못 갖느냐가 앞으로의 관심사이다. 양당정치의 벽을 넘을지, 벽 앞에서 시들고 말지는 안철수 쪽 인물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지만 역시 일반 국민들의 냉철한 평가에 좌우될 것이다. 인품과 자질은 우수했지만 금력이 없거나 정치자금 수집을 주저했기 때문에 대선 후보기 되지 못한 인물들과 달리 안철수는 다른 면도 우수하지만 일단 정치자금 면에서는 비교적 자기 재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돈만으로도 안 되고 말만으로도 안 되는 것, 어찌 보면 시운이 따라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운이란 시대적 요구 속에서 분출되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에서 분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SNS 시대, 정치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곧바로 국민들의 안테나에 포착된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지식과 정보 습득양이 많기 때문에 구세대처럼 몽매한 정신이 아니라 파릇파릇 민감한 젊은 정신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어설프게 꾸며서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보단 진실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말 한 마디 행동 한 컷, 승부수 한 번 잘못 띄웠다가 졸지에 나락에 떨어진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옳은 정치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금수강산 삼천리에 정치다운 정치가 활짝 펼쳐져서 공자가 꿈꾸던 대동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148 NLL/권서각 file
편집자
1282 2013-07-14
 NLL 권서각 어떤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개인의 삶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모든 행위는 정치의 틀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이다.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 우리는 금강산에도 갈 수 있었고 개성에도 갈 수 있었다. 그러던 남북 관계가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긴장관계로 되돌려졌다. 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개성공단도 철수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금강산에도 개성에도 갈 수가 없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금강산에 갈 수도 있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정치와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정보원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이다. 군사정권 때 민주인사들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죽게 했던 중앙정보부의 바뀐 이름이다. 국정원이 인터넷 활동을 통해 대통령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나서 검찰이 당시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중대한 국기 문란 사건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난 대통령 선거 자체를 부정선거로 규정할만한 중대한 사건이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정권은 치명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 와중에 국정원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과의 대화록을 공개했다. 대화록이 공개되자 여권에서는 노무현이 NLL(서해안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도 하고, 김정일에 보고했다고도 하고 반미 발언을 했다고도 했다. 노무현이 마치 국경을 포기한 종북주의자인 것처럼 들고 일어났다. 노무현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국정원과 여권의 말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누가 봐도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 벗어나려는 꼼수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은 대통령 기록물이다. 대통령 기록물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 없이 공개해서는 안 되는 문서다. 그런데 국정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다. 대선 개입에 이어 또 다른 사고를 친 것이다. 대화록 공개는 앞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북한은 국정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우리의 승인도 없이 공개한 것은 엄중한 도발이라고 비난하며, 종북을 문제 삼는다면 평양을 방문했던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끝장나는 소리다. 외교 관례상 유래 없는 일을 국정원이 저질렀고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어떻게 수습할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4대강 공사처럼. 시간이 지나자 대화록 전문을 검토한 기록 전문가들에 의해 노무현이 NLL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실 NLL은 수시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던 곳이다. 노무현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 해역에 공동 어로구역을 설치하고 인천항과 해주항을 연결하는 경제 특구를 만들 계획이었음이 대화록을 통해 드러났다. NLL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경제 특구라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고자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던 대결 구도를 끊고 다시는 이런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시도였다. 북과의 실무회담 추진 중에 임기가 끝나서 NLL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 후 이명박 정권시절 다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대통령 대화록 공개 사건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들은 언론의 사명을 포기한 느낌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KBS, MBC, YTN 그리고 종편 TV의 보도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보도를 했다. 이를 지적하는 KBS 간부가 또 보직해임 되었다. 권력과 이득을 위해서 못하는 짓이 없는 권력자들과 언론을 보며 깊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47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우파니샤드)/고석근 file
편집자
1228 2013-07-08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나는 먹거리다 (우파니샤드) 천지를 환하게 물들이는 살구나무 꽃가지에 덩치 큰 직박구리 한 마리가 앉아 꽃 속의 꿀을 쪽 쪽 빨아먹고 있었지요. 곁에 있던 누군가 그것을 바라보다가, 꽃가지를 짓누르며 꿀을 빨아먹는 새가 잔인해 보인다며 훠어이 훠어이 쫓아버렸지요. 아니 그렇다면 꿀이 흐르는 꽃가지에 앉은 生이 꿀을 빨아먹지 않고 무얼 먹으란 말입니까. - 고진화,「직박구리」중에서 손님이 보는 데서 닭을 잡아 닭 요리를 해주는 식당들이 생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데서 닭을 잡아 만든 치킨은 잘 먹는데요.’ 하지만 조만간 익숙해질 것이다. 아마 우리 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맛깔스럽게 잘 튀겨진 치킨이 한 때는 신성한 생명체였고 어느 날 잔인하게 죽어갔으리라는 것을. 애써 눈 감고 먹다 보니 차츰 익숙해졌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생명체를 먹는 데서 오는 불편함은 인류의 최초의 조상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꼈으리라고 한다. 우리와 비슷한 얼굴을 한 짐승들을 잡아먹는다는 게 그들은 엄청나게 두려웠을 것이다.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 짐승 시절에는 본능적으로 편안하게 먹었지만 생각이 생기면서 짐승들을 쉽게 잡아먹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시인들은 짐승들을 사냥할 때마다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날 잡을 짐승들의 신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사냥을 했다고 한다. 사냥한 짐승도 요리를 할 때는 먹어야 할 살만 취하고 뼈와 가죽은 그 짐승의 혼이 다시 부활할 수 있도록 집 주변에 고이 걸어 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경건하게 살던 인간이 다른 짐승들을 압도하게 되면서 차츰 오만하게 되어갔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짐승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잡아먹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짐승들을 다시 보게 되면서 우리의 오래 된 본성이 깨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이 본성을 다시 살려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시 경건하게 짐승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공룡이 사라졌듯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먹어야 사는 생명체이다. 그래서 먹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도 다른 생명체들의 먹거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해져야 한다. 생명의 존엄하고 신비로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서로 몸을 나누는 우주의 한 존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146 왕산에서(상주동학농민혁명을 생각하며)/임술랑 file
편집자
1316 2013-07-03
 왕산에서(상주동학농민혁명을 생각하며) 임술랑 상주에는 왕산(王山)이 있다. 상주시민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누가 왕산이라고 말하면 "아 왕산!"하면서 맞장구치기를 자연스레 한다. 그만큼 상주사람들 속에는 왕산이 있다. 왕산은 상주시내 중앙에 위치한 작은 산이다. 평지에 돌출한 고산(孤山)인 것이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상주에 왔을 때 왕산에 있는 관아를 행궁으로 사용하였다. 그 인연 때문에 이 산을 고려왕실의 산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산이 된 것이다. 왕산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고 최근에 심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유적으로는 왕산석불(상주복룡동석불좌상, 보물 119호)과 위암 장지연선생 기념비, 지방관들의 송덕비가 줄지어 있다. 그리고 조그만 정자 백우정(百友亭)이 있다. 상주성이 이 산을 중심으로 둘러져 있었고 성안에 관아가 있었던 것이다. 상주는 통일신라 때 9주 중 한 주였고, 고려 때는 전국 8목 중에 하나였으며, 조선 초에는 200년간 경상감영이 자리 했다. 왕산을 배경으로 있었던 일들은 수도 없겠으나, 그 하나는 1894년(갑오년)에 있었던 상주동학농민혁명이다. 오늘 왕산 둘레길을 거닐며 상주에서 일어 난 동학농민혁명을 생각해 본다. 인성(人性)이 본래 선(善)하다거나 악(惡)하다거나 하는 논쟁은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근세의 학자 이건방(李建芳)은 다산 정약용의 저서인 방례초본(邦禮艸本)에 서문을 썼는데 거기 이르기를 "옛날 성왕(聖王)은 천하를 다스리면서 백성들은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욕심을 고르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럽게 되는 까닭에 예(禮)로써 조절하였으며, 그 욕심을 징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럽게 되는 까닭에 법으로써 제어하였다." 라고 하였다. 백성의 욕심 즉 사악함을 예로써 다스리고 법으로 제어하며 교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 세계에도 서열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도 지배층과 피지배 계급이 존재해 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회 지도층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지도계층이 사회를 잘 이끌지 못한다면 반드시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옛 성인이 말한 백성들의 욕심 즉 인간 본성의 한 가지인 사악한 성질 때문이리라. 신라 말 진성여왕시대인 서기 889년도에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항쟁이 상주지방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원종(元宗)과 애노(哀奴)의 난이라고 한다. 한때 상주성을 점령하므로 중앙군이 파견되어 난을 진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후삼국이 정립하게 되는 시초가 되는 사건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사회 지도 계층이 백성을 교화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생존이 피폐와 위협을 느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며 정당한 것이다. 농민이 흙을 파던 농구를 치켜들고 하늘을 찌를 듯 달려들고 포수는 총구를 겨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구분하였다. 호민은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고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푸줏간 같은 음지에 숨어 지내다가 봉기하여 호령하면 항민이나 원민의 무리는 그들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견훤이요 궁예인 것이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바로 이것이다. 타락 할대로 타락한 지배계급을 괭이로 찍은 것이다. 마치 흙을 파듯 파버린 것이다. 인간에 있어 혁신이란 험난한 것이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한 곳에 안주하지도 못 하는 게 또 인간이기에 낯선 물리에 대한 적응은 인간의 운명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주변국의 야욕에 표적이 된 조국은 혼란을 겪게 된다. 사실 사회지배계층의 타락 아래 신음하는 무지렁 농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는 것이다. 다행이 조선의 위대한 선각 최제우선생이 동학의 도를 높이 들어 밝혀 가르쳤으므로 많은 백성들이 그 길 위에 섰었다. 사회지배계층과 관리들의 타락으로 행정이 이미 마비되었으므로 주민이 스스로 다스리자는 생각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른바 주민자치, 지방자치의 모태가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7일천하에 지나지 않았지만 주민이 스스로 궐기하여 자치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동학혁명이 피폐한 민초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삶에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스스로 용기를 가지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한 것이었다. 난을 주도한 이들은 잡혀 죽고(상주성 태평루 마당에서 농민군 140명이 처형되고 그 시신은 아리랑고개 너머 공동묘지에 버려졌다) 도망가서 후일을 도모하고자 했던 이들은 보은 종곡리 북실에서 2,600명이 몰살당했다.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것이란 그것도 아무런 기반도 조직도 준비 없이 궐기함은 무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이곳 상주지방만의 일이 아니었고 전국에서 동시 다발하였으니 조국의 개화는 그만큼 더 빨랐던 것이다. 그들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다. 왕산은 멀리 바라보이는 산이 아니라 가깝게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다. 상주 왕산에서 120여 년 전 암울한 시대를 발부둥치다 간 임들을 그리며 술잔을 올린다.  
145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 山白 박 희 용 file
편집자
1216 2013-06-22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 山白 박 희 용 지난 2월 27일에 쓴 칼럼의 제목이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였다. 「특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가진 세 번째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 여직원 인권’을 운위하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이어서 밤 11시에 (서울)경찰청장이 가진 사건 중간발표는 촉각을 곤두세웠던 민심의 향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선이 끝난 지금엔 그 사건이 진실로 판명 났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사건은 국가기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덮어 질 수도, 덮어서도 안 된다. 대충 원만하게 정리하면 정보권력이 국가권력을 농단할 수도 있는 면역을 남기기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분명하게 정리하여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의 그 발언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하여 지식인들이 제기하는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빈다. 비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 사는 즐거움으로 박근혜 정부가 잘 하기를 봐야 한다. 이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들이 행복하다. 그래야 박근혜 개인사도 영광되고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도 편안할 것이다.」 라고 끝맺음 하며 박근혜 정부의 순조로운 출발과 좋은 성과가 쌓이기를 빌었다. 그러나 왠지 징조가 좋지 않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4개월 되는 이즈음엔 슬슬 과거 정권의 굴곡과 부침 현상이 되풀이 되는 듯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증이 점증하고 있다. 지난 2월만 해도 국정원 직원이 국민을 대상으로 댓글 공작을 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정도였지만, 이후 시간이 갈수록 댓글 공작의 실상이 확대될 뿐만 아니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경찰청 분석팀의 댓글 발견의 결과 보고를 무시하고 “4개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로 댓글을 발견할 수 없었다”라는 허위 발표를 한 것이 탄로 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상부인 김기용 경찰청장이 심야 허위 발표를 명령해서 하급자로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함으로써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 권력의 핵심 실세에까지 넓혀져 버렸다. 지하 깊숙이 꼭꼭 묻어 감출 수 있는 공작이 내부 고발자로 하여 노출되고, 권은희란 날카로운 호미를 만나 그만 파헤쳐지고 말았다. 보태어 각자도생코자 하는 자중지란이 벌어지면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튀는 공처럼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지난 2월에 칼럼에서 지적한대로 정권의 책임자가 초기에 이실직고 하고 관련자 처벌과 국정원 재구성을 통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면 일이 이만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쯤에서 적당하게 소화되었을 것이다. 이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정도가 아니라 불도저로도 못 막을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라는 글을 쓴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난감하기가 그지없다. 국민도 국민이고 야당도 야당이지만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이어 규탄 실천에 나서기 시작하였으니, 먼 과거인 유신시대와 무단시대를 회상할 것 없이 불과 5년 전 이명박 정권 초기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광우병 촛불 사태>의 악몽이 생각나서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지금이야 다수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지만 당시만 해도 500여 만 표란 압도적 차이로 당선된 이명박은 나름대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려는 결심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집권 초기에 촛불시위란 직격탄을 몇 달 동안 당하는 바람에 그도 인간이니 오기랄까 배신감이랄까 뒤틀린 감정에 휩싸이게 되어 이후부터 무리한 국정 수행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광우병 촛불 사태>는 먹거리, 그것도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 사항인 소고기, 그것도 한우가 아니라 미국소에 관한 것으로서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 계층인 도시 소시민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사실 소고기를 꼭 안 먹어도 되고, 사 먹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미국 소고기 말고 한우 고기를 사 먹어도 될 일인데도, 엠비씨 노조를 핵심으로 한 반이명박 세력이 연대하여 정권의 기반을 크게 흔든 사태였다. 또한 미국 소고기 수입에 관한 법안 개정 협상은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서 갑자기 시작한 게 아니고, 노무현 정권 때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을 이어받아 협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대 세력에 의해 바가지를 덮어쓰고 말았다.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복권 당첨 확률보다 더 낮으며 국가에서 예방, 검역, 수입 금지, 유통 제한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데도 불구하고 촛불이 너무 오래 타는 바람에 식상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이명박 정권으로 하여금 오기의 복수심만 팽배토록 하고 말았다. 물론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 정책은 꼭 필요하고,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목적을 깔고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귀착한다는 것을 <광우병 촛불 사태>에서 건진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6년 만에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이야 정통성 시비에 무관하며 앞에서 거론한 바대로 억울한 점이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외통수에 걸리고 말았기에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공권력인 검찰이 원세훈과 김용판 두 사람을 기소한 죄목이 국정원법과 선거법 위반이니 변명이나 발뺌, 분식하기가 거의 불가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이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듯 전혀 상식적이지 못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 몇 몇 여권 인사들이 아직 있으니, 상황 전체를 조감하며 콘트롤 하는 지혜를 가진 책략가가 여권 중심에 부재하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꼬리 자르기를 하든지 몸통을 내놓든지 간에 지금이 마지막 적기인데, 강고한 공권력을 믿는지 국민들의 건망증을 믿는지 보수 세력들의 응원을 믿는지, 아니면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 환부가 더 곪아가고 있다. 이 환부가 피부에 난 상처라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두뇌에 난 상처라서 자칫하면 큰 탈이 날 수가 있기 때문에 초기에 확실히 처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하듯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다. 조선조 500년 역사에 흐르는 중심은 왕권과 민권의 갈등이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좌익과 우익 모두 민권을 중심으로 한 공화국 정체를 추구하였으며, 해방공간과 육이오 전쟁에서 남부의 다수가 민주주의를 선택하였으며, 해방 후 세대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세 독재 권력을 물리친 이유는 민주주의 때문이었다. 그렇게 피를 먹으며 자란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은 대통령 선거인데, 그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국가의 전위가 되어야 할 국정원이 일개 정권의 하수가 되어 댓글 공작이란 촉수를 뻗쳤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공무원들이 나라와 국민 전체보다 한시적 정권, 한 개인과 조직의 사익에 충성했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파수꾼으로서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기관의 공무원들이 검찰에서 기소장에 적시한대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거역한 것은 단죄 받아야 마땅한 범죄인 것이다. 그래도 국정원 직원의 댓글 공작은 국정원에서 주장하는 대로 대국민 이념 홍보 차원에서 보면 일말의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허위 발표와 압력 행사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이다. 범죄 차원을 넘어 반역죄, 내란죄에 버금가는 중대한 국기 문란 사건이다. 앞서의 국정원 직원들은 그래도 업무 성격을 띄고 있지만. 김용판이의 허위 발표는 의도적, 계획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저지른 반역 행위이다. 만약 며칠 전에 김용판이가 발설한대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윗선인 김기용과 다른 상부가 개입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박근혜 정권이라는 한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안전운행 여부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발본색원에 나서야 하지만 국민들도 이참에 민주주의를 확실히 다지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김용판이가 등장하기 전에는 원만한 수습책이면 됐지만 이젠 엔간한 수습책으로는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사일구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도화선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주검이었고, 유월항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도화선은 이한열의 장례식에 모인 백만 민중이었다. 민중은 둔중하기 때문에 엔간한 자극에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논리적 설득보다는 감정적 행동에 더 빨리 반응한다. 12월 18일 대선을 사흘 앞두고도 아직 부동이었던 백만 여 표심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은 대선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에 김용판이가 “댓글 없습니다” 라고 발표한 직후였다. 이 부동표 백만 표는 생각이 깊은 사람들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 신중한 마음들이었다. 그들은 국정원 댓글 공작에 대하여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서 결정을 보류하던 차에, 박근혜 후보가 “여직원 감금은 인권 유린이며 문 후보는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공석에서 하자, 오랜 경륜을 쌓은 박근혜 후보가 저렇게 말한다면 틀림없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 믿음을 확실하게 담보한 것이 바로 김용판의 심야 발표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 공권력의 도적적 권위를 믿은 그 표심을 얻어서 박근혜 후보가 100만표 차이로 승리하였다. 이제 김용판의 발표가 거짓이었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그의 거짓말은 선거에 작용하여 권력의 정통성에 의문이 들도록 하였으며 국가 공권력의 도덕적 권위를 더럽힘으로서 국가에 큰 손해를 입혔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정보를 들었는지 몰라도 박 후보는 온 국민들이 주시하는 토론회 자리에서 분명히 사실이 아니며 문 후보의 잘못이라고 공박했었다. 김용판이가 거짓이므로 박 후보의 공박이 거짓이 되었다. 두 거짓 때문에 표심을 결정한 최후의 부동표가 당락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니, 결과적으로 부동표의 오류가 역사의 물굽이를 다르게 흐르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눈 깊은 국민들에게는 정권의 정통성이 태생에서부터 오류로 간주되는 것이다. 부동표 당사자들은 ‘속았구나, 마지막까지 살폈는데, 결과적으로 표 잘못 했구나’하며 자책할 것이고, 박 후보는 ‘이제 와서 알고 보니 중인환시리에 거짓을 말했구나, 적반하장 했구나’ 하며 자책할 것이니,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적인 면에서 동정이 간다.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이다. 시공적 상황은 하나임에도 사람마다 진영마다 변명의 논리가 다른 것은 ‘정의’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잘못이다, 우리의 잘못이다”라고 시원하게 실토하는 사람이 없고, 설사 잘못을 안다 해도 공개적으로 실토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경우에 따라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며 정의를 죽여 말려선 포장지로 두껍게 싸서 제단 위에 모시기도 한다. 정의의 문자적 해석은 ‘바르고 옳음’이다. 확대한다면 ‘밝음, 당연함, 의연함, 확실함, 상식, 원칙, 양심, 선량함, 많음, 다수, 민주주의’ 등이 된다. 이것은 우주자연의 법칙으로서 산하인 천지만물을 관류한다. 그러므로 정의는 인간에게 적용되며 인간들의 집합체인 조직과 사회, 기관과 국가에도 적용된다. 정의의 내면적 표현은 도덕이고 외면적 표현은 법률로서 둘 다 인간 사회의 표리를 이룬다. 삶이 정의 자체인 사람은 아주 드물지만, 정의를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다. 그래서 항상 정의는 양지가 되고 불의는 음지가 된다. 도덕과 법률이 표리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고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어긋나기 때문에 난해한 문제가 생긴다. 개인의 표리부동은 작은 영향을 끼치지만 사회 조직과 기관의 표리부동은 심대한 영양을 끼친다. 국정원법과 공정선거법은 국민들의 합의를 집약한 사회적 정의이다. 그러한 사회적 정의에 대한 무시는 곧 개인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를 생각하는 이들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분노한다. 그 분노하는 이들은 보통의 국민들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공직에 있는 지식인들에게도 있다. 권은희 수사과장과 같이 소신과 용기를 가진 엘리트들도 필요하지만, 상부의 명령이 정의에 역행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수행하는 젊은 공직자들의 비애가 줄어들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이발을 다 마치고, “낭팰시더, 나는 박근혜 안 찍었지만 일단 당선 됐으니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데, 이런 사건이 들통 나고 말았으니, 대학생들도 시국선언에다 가두시위 할 것 같고, 하여튼 앞으로 많이 시끄럽게 생겼니더”라고 말했더니, “대통령 됐는데 뭐 어쩔 거여, 뭐 마구 잡아넣으면 되지요”라는 주인의 한 줄 대답이 돌아왔다. 경상도 안동 땅 어느 이발소의 60대 남자가 하는 말대로, ‘이왕에 당선 되었으니 어쩔거여’ 논리라면 ‘일단 일을 저지르고 나면 장땡이다’ 또는 ‘남의 물건이라도 일단 내가 차지하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으며, ‘뭐 마구 잡아넣으면’ 논리라면 설득이나 타협과 같은 민주주의 원리는 장식용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니, 만약에라도 그런 무식한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다시 퇴보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총칼과 탱크로 밀어붙여도 피를 먹으며 자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인데 다시 물러서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에 대응해 정권은 온갖 공권력을 동원해서 강제로 누르려 할 것이 아닌가. 그 다음부터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는 우리 국민들이 과거에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선 안 되고, 그렇게 되어선 국민들이 피곤하다. 그러므로 어떡하든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집권 여당 쪽 인사들은 정의에 입각한 결정을 내려서 다수 국민들로부터 정통성을 다시 확인 받아야 할 것이다. 국민 여론과 감정을 무시하고 강권을 발동하고 책략을 사용하여 난국을 수습한다 해도, 중간을 좋아하는 다수 국민들의 묵인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소수지만 생각하며 사는 국민들의 냉소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후세 사가들의 직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과 문 후보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 습득으로 인한 발언 오류를 수정하고, 전 정권의 전위인 국정원과 경찰, 집권 여당에 똬리 틀고 있는 일부 야심가들의 오만방자함을 엄히 다스려 다시는 그러한 반정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치국에 노력하노라면 태생의 하자를 아물게 하고 훌륭한 대통령으로 청사에 기록될 것이다. 관련자들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이실직고 석고대죄하여 국민의 심판에 따름으로써 대통령의 정통성를 재정비하고 운신을 자유롭게 하는 큰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야 모두들 유위유능한 국가적 엘리트들 아닌가. 권력을 위한 정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의만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의 나침판이 될 것이다. 하향의 필부도 훤히 알고 있는 출구 전략을 등한시한다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엔 없다. 정의는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내 마음의 가시덤불 속에 정좌하고 있는 정의를 찾아내면 나도 좋고 남도 좋다. 자유가 공기라면 정의는 양식이다. 조악한 양식으로 겨우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양질의 양식으로 생명이 건강한 세상이 훨씬 좋지 아니한가.  
144 표현의 자유 /권서각 [1]
편집자
1506 2013-06-16
 표현의 자유 인터넷 사이트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에 올라온 글들이 도를 넘었다. 이로 말미암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베는 수구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유머 사이트다. 그들은 5.18 광주 학살에 희생된 시신이 든 관 사진을 올리고 홍어 택배 중이라는 등의 5.18을 폄하하는 표현을 했다.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지정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특정 지역 사람들을 비하했다. 일베는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모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베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반발했다. 이에 일베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수구 쪽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들어 일베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로 말미암아 표현의 자유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모두 표현의 자유는 인정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잘못된 표현에 대해서 공격하고 비난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논리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논쟁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는 무엇이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1987년 프랑스 리온2대학의 포리송 교수는 ‘아우슈비츠의 루머’라는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에 포르송은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UN인권위원회에 탄원을 하게 되고 미국의 세계적 석학인 노엄 촘스키도 여기에 서명한다. 촘스키는 이 일로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이 찍힌다. 촘츠키는 그의 저서를 통해 유대인 학살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것이라고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노엄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범이라는 탁월한 논리를 개발한 문법학자이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 세계 지성인들이 존경하는 석학이다.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라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촘스키의 주장에 동의한다.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가 있다. 물론 인간은 진실과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것도 세월이 지나면 바뀔 수가 있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말했다가 수난을 당했던 갈릴레이의 말은 지금 진실이 되었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는 진실에 앞선다. 일베는 쓰레기다. 그렇지만 일베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으로 보장되면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염려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릇된 주장을 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이를 반박하고 비판할 표현의 자유가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반역사적이거나 반인륜적인 표현들은 정화된다. TV조선과 채널A에서 5.18을 북한 게릴라의 소행이라는 방송을 했다. 이에 보수논객인 조갑제가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일베는 조갑제를 종북좌파라 했다. 우리나라 대표 수구논객인 조갑제를 종북좌파라 하는 것은 일베가 막말을 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헛소리는 이렇게 정화된다. 이번에 새누리당과 수구 쪽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것에 대해 크게 환영한다. 고맙다. 지금까지 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미네르바를 처벌하고 피디수첩의 기자와 피디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권력에 반하는 발언을 한 사람들을 무수히 사찰하고 처벌했다. 군사정권 시절, 그리고 MB정권시절 우리의 표현의 자유는 짐바브웨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외신들이 평했다. 이제 그들이 표현의 자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고맙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처벌받았던 민주인사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을 제안한다.  
143 이윽고 홀로- 영혼만이 남았네(에밀리 디킨슨) /고석근 file
편집자
1836 2013-06-02
..이윽고 홀로- 영혼만이 남았네(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중략................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 에밀리 디킨슨,「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중에서 복권을 사이에 두고 연인관계의 남녀가 법정싸움까지 갔단다. 여자가 복권을 사 남자에게 주었는데 그게 5억 원에 당첨되었단다. 남자는 여자가 복권을 자신에게 주었으니 당첨금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여자는 복권을 자신이 샀으니 당첨금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단다.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건 앞으로 당첨금은 두 사람에게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 당첨금이 복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이 사건을 예로 들어 설문 조사를 했더니 70%의 남녀가 연인관계가 깨어지더라도 당첨금을 갖겠다고 했단다. 우리사회가 자본주의의 극한까지 갔다는 느낌이다. 돈이 모든 신을 제치고 유일신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에게 돈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중요하다. 우리는 둘 다 가질 수는 없을까? 복권을 받은 남자는 공짜로 5억 원을 갖게 되었으니 여자에게 2억 5천만 원을 줄 수 없었을까? 혼자 다 가지려하면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을 테고 여자가 가만히 있더라도 혼자 다 가지면 연인관계가 깨어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돈 때문에 연인관계가 깨어지고 나면 자신의 영혼이 망가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70%의 남녀가 연인관계가 깨어지더라도 당첨금을 갖겠다고 한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영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완전히 물화(物化)되었나 보다. 사람 사이에 돈이 개입되는 순간, 사람의 혼은 망가진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사람의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소유’가 인간세상의 근원적인 악이다. ‘소유’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무엇을 가져도 갖지 않아도 불행해진다. 따라서 가장 좋은 세상은 ‘무소유의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라 우리는 소유 없이 살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소유로 본다면 우리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5억 원의 행운이 하늘에서 연인 앞에 별처럼 떨어졌을 때 그 5억 원을 복으로 만들 수 있는 연인이 얼마나 될까? 그 힘이 없는 한 우리는 제대로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아직 풋풋해야 할 젊은이들이 이렇게 병들었다는 게 우리사회의 슬픈 모습이다. 이제 우리사회가 바닥까지 갔으니 위로 틔어 오르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사회의 ‘인문학 붐’을 보면 다들 마음속에서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데.  
142 난자되는 평은 강산/ 山白 박 희 용/ file
편집자
1662 2013-05-22
 난자되는 평은 강산 - 칼질 한 자들을 모두 일월에 기록하라 山白 박 희 용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에이 눈에 확실하게 안 보이는데 무슨’하며 거짓이나 과장인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 강산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무 려 수억 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십년이란 인간의 눈으로 강산의 변화를 확실하게 인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평은 강산이 변화가 아니라 확실하게 변신하는 데는 십년이면 족했다. ‘강산이 변한다’에서, ‘변화’라는 말은 본래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외관상에 약간의 차이를 가진다는 의미이지만, ‘변신’이란 말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평은 강산이 십년 만에 변신을 하긴 하였으나, 감히 변신했다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왕창 망가진 모습이 되어 버렸다. 전래의 변신술은 본질에다가 얼기설기 보태고 빼서 하지만, 현대의 변신술은 외과 수술, 즉 성형 수술인즉슨, 유명한 건축학 학자들과 유능한 건설업자들에 의해 평은 강산이 성형 수술을 받긴 받았는데,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이 무참하게 난자, 유린당한 추레한 몰골이 되어 버렸다. 2004년 봄부터, 22년 동안 근무한 안동을 떠나 영주로 전근을 가서는 퇴근길에 평은 강가에서 놀았으니, 내가 본격적으로 평은강과 친해지기 꼭 십년만이다. 영주시내 학교에 근무한 두 해 동안엔 토요일 오후에 강가 미루나무 아래에서 한숨 자거나 강둑을 거닐며 시 <안경을 안 쓰면> 등의 시상을 얻기도 하다가 2006년 3월부터 2011년 2월 말에 명퇴하기까지 5년 동안엔 바로 강가에 있는 평은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바짝 정이 달아올랐다. 요즈음엔 지율스님이 강동리 강둑에 진을 치고, 무참하게 난자당하는 평은 강산을 위령하면서부터 세인들이 평은강의 가치를 높게 보지만, 나는 십년 전부터 나름대로 평은 강산의 수려함과 의미를 느껴 시와 산문으로 표현했으니, 평은강 사랑에서 만큼은 지율스님보다 기득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사랑은 나만을 위한 외사랑일 뿐이고 지율스님의 사랑은 죽어가는 생명들과 난자당하는 강산을 위령하는 참사랑이다. 난자당하는 강산 앞에 서면, 지율스님이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나는 평은강이라 부르지만 행정상에 공식 명칭은 내성천이다. 내성천은 봉화군 태백산 인근 백두대간인 문수산, 옥석산, 선달산 등에서 발원하여 영주시 평은면을 지나 문수면 무섬에서 영주 서천을 만난 다음에 서남행하며 예천 지역을 관류하고는 풍양면 삼강마을에서 낙동강 본류에 들어간다. 나는 그 중에서 영주시 평은면 지역을 흐르는 강을 특별히 이름 하여 ‘평은강’이라 부른다. 이산서원에서부터 영주댐이 건설된 미림까지 약 삼십 리 정도의 구간을 말하는데, 이 구간은 모래사장이 곳곳 구비마다 금빛으로 펼쳐져 있다. 금광리 인동 장씨 유래 비에는 ‘錦江’, 택리지에는 ‘沙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성천’이란 명칭은 발원지인 봉화의 옛 지명이 ‘내성’이기 때문이고, 금강과 사천은 ‘錦沙’, 즉 ‘금빛 모래사장이 비단처럼 펼친 강’의 뜻이다. 어디 가서 이런 모래비단 강을 다시 만나리요. 이름 그대로 화강암반이 깎이고 닳아 쌓인 평은강의 모래사장은 정말 보기가 좋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터벅터벅 걸으면 온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며, 강물에 들어 서 있으면 모래 초침이 사각사각 굴러가는 소리와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 십년 동안 삼십 리 평은강의 온몸을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네 곳 성감대를 사랑했다. 첫 사랑은 2004년부터 2년 동안 주로 토요일 오후에 저 아래 가자골 철교 부근에 미루나무들이 서 있는 강가에서 이루어졌다. 왕 선생과 월~금요일엔 카풀해서 안동-영주 길을 다니지만 토요일엔 내 차를 몰고 퇴근길에 강가에 들러 두세 시간 동안 혼자 놀았다. 자연을 도저히 접할 수 없는 대도시에서 산 게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서 살고 근무도 시골학교에서 계속했지만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진 평은강은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첫해인 2004년에는 그 곳에 자주 가서 잘 놀았으나 이듬해 봄이 되자 강가에 버섯농장이 들어서게 되어 정취가 식었다. 뿐만 아니라 큰 개가 세 마리나 있어 내가 조심스레 지나가도 사납게 컹컹 짖어댔다. 두 번째로 사랑한 성감대는 버섯농장에서 약 1 Km 정도 올라온 곳이었다. 2005년 가을부터 2008년까지 산벚꽃나무 아래에 차를 대놓고 강둑을 따라 걷거나 강가 묵밭에 무성한 풀과 나무들을 만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절골 가는 산길 십 리를 걸어 오르며 명상을 했다. 가끔 전에 놀던 곳을 달려서 지날 때마다 버섯농장 개들이 매섭게 컹컹 짖으며 달려들어 기분이 쌉쌀했다. 그래서 영주시청에다가 ‘강둑을 점령하고 개를 풀어 놓아 행인이 위협을 느껴서야 되겠습니까’하는 민원을 넣고 난 다음부터는 그쪽으로, 첫사랑 맺은 곳으로 가지 않고 신발을 벗어들고 강을 건너서 건너편 둑, 지금 지율스님이 진을 친 강둑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2007년 가을까진 두 번째 사랑 터에서 잘 놀았는데, ‘강가의 하얀 집’이 한 채 세워지는 게 아닌가. 영주시내 약국 한다는 부자가 별장을 한 채 턱 세워 놓으니, 내가 사랑하던 순수한 자연미가 그만 스러지고 말았다. 온갖 잡초들이 번성해서 이곳이야말로 자연 식물원이라고 여겼던 묵밭도 수몰 보상금을 더 많이 타내려고 주인들이 갈아엎고는 촘촘하게 과수 묘목들을 심어버렸다. 세 번째로 사랑한 성감대는 상류로 훌쩍 올라온 곳으로 4차선 평은대교 아래 강가인데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다. ‘강가의 하얀 집’이 내뿜는 부와 권위에 기가 질려 아니 옮길 수 없었다. 다리 아래 공터에 주차해놓고 2 Km 강동제에서 두 번 왕복 달리기를 하였다. 마지막 2 Km는 맨발로 슬슬 걸으며 강물과 초목을 좌우에 두고 감상했다. 여름에는 난닝구와 반바지로 달리며 시름을 잊었다. 그런데 공터에 나보다 먼저 대논 차가 있어서 저 위 강둑에 겨우 주차하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며칠 뒤에 공터에 주차하면서 둘러보면 뿌연 화장지 쪼가리가 마구 버려져 있었다. 달리다가, 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수석의 여인이 운전석을 향해 쌔액 웃는 얼굴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공사 차량이 들락날락하니 밀회 차를 볼 수 없었다. 강가에는 상류에서 떠 내려와 뿌리를 내린 산복숭아와 뽕나무가 많아 몇 해 동안 발효 엑기스 잘 먹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강가의 논이 모두 경작 금지 되면서 무성하게 돋아난 쑥을 뜯어 쑥떡을 해 먹고 남겨 냉장시킨 뭉치가 해를 넘겨 아직 세 덩이나 있다. 동네 개들에게 쫓겨 뿔뿔이 헤어진 어미와 자식, 내가 소리 질러 개 두 마리를 쫓고 난 다음에 새끼를 찾는 어미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어디 가서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한참 달리다 둑길 곳곳에 보이는 탄피를 보며 고라니들의 안부를 걱정하다가도, 펄쩍펄쩍 한 줄로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보며 안심했다. 전선이 끊기고 전봇대만 쓸쓸하더니 모래사장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의 굉음이 울리면서 평은 강산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요즘은 온갖 공사 차량과 덤프 트럭이 드나들어 겨우 달리기만 하곤 돌아온다. 이것도 다음 달부터 담수가 시작되어 강둑길이 물속에 잠기는 가을쯤부터는 하지 못 하게 된다. 그리되면 평은 강산에 다시는 발을 딛지 못 하게 되는데, ‘건설 개발’이가 사람 정을 떼도 모질게 뗀다. 그래도 평은강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곳은 매일 근무하는 평은초등학교 지역이다. 다른 곳들은 퇴근 후나 휴일에 찾지만 근무 지역은 매일 생활하며 평은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을 만나는 곳이다. 교육대학에 다닐 때 나의 낭만은 강가의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었다. 장마로 불어난 냇물에서 아이들을 업어 건너는 내용의 글을 교육대학생 때 쓸 정도로 강가 학교를 그리워했는데, 삼십 년 초등학교 근무에서 마지막 학교가 강가이므로 젊은 시절의 낭만을 완성한 것 아니랴. 그래서 평은 강산은 나의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댐이 들어서고 폐교가 된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돌면서 지역사회와 학교가 차츰 쇠약해졌다. 파장 분위기가 학구 내에 짙어지면서 해마다 전교생의 수가 줄어들어 한 학급이 한 명 또는 세 명이 되는 경우가 생겼다. 순박한 지역 주민들은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대놓고 반대할 수 없으며, 보상금이나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는 순종 의식에 젖어 활기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결손 가정에서 쓸쓸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더욱 의기소침 했다. 몇 년 안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물 아래 잠긴다는 체념이 만연하였다. 도시에 거주하는 부재지주들은 그러잖아도 토지 값이 헐해서 팔기도 어렵던 차에 영주댐 덕택으로 거금의 보상금을 챙겨서 즐거워했지만, 노인들만 남은 소규모 자영 농가는 받은 보상금으로는 어디 가서 대토할 곳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상업 종사자들은 영주댐이 완공되면 유원지가 될 이주지에서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역민들 중에서 가장 곤란한 층은 소작농과 농업노동들이다. 어디 가서 새로 소작을 얻기도 어렵고 날품을 팔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2013년 6월이면, 열두 명으로 줄어든 금광리의 평은초등학교는 다행히 폐교는 면하고 평은리 옛 학교 건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곧 오랜 교직 생활에 마지막 학교의 추억조차 물속에 들어가 버린다. 영주댐 건설의 필요성에 대하여 많은 주장들과 정책들이 있지만, 평은강이 안고 있는 지형적 특성, 생물로 치면 숙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재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는 놋점마을에 지형을 보면 강폭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좁다. 강폭이 상대적으로 좁다고 볼 수 있는 여러 곳은 거의 500m 정도 되는 강폭과 주변의 농경지가 넓게 펼쳐있어서 댐을 쌓기가 어렵다. 하지만 놋점 지형은 100m 남짓 되는 강폭과 양쪽에 높은 산이 있어 댐의 최적지이다. 그래서 건축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앞의 넓은 유역과 좁은 강폭을 대비해 보면서 댐을 생각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그 위 강가 마을인 내매리 출신인 임명삼 작가도 영주댐 건설 얘기를 듣더니, “아 거기 미림 말이지, 하마 옛날부터 댐 쌓기 적당한 곳이라는 말이 있었지”라고 말했다. 이걸 보면 지역 주민들도 내면적으로는 댐에 대하여 체념, 또는 묵인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평은댐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숙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평은강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발원지도 깊을 뿐만 아니라 굽이치며 흐르는 사행천의 모습과 안고 있는 모래사장을 보면 영락없이 여성스럽다. 그러므로 놋점마을 부근 지형은 비유한다면 여성의 질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위 평은역 일대의 금광리는 자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질을 빡빡하게 막아 자궁을 팽팽하게 하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 이득을 얻으려고 획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획책은 자연의 근본 섭리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질이 튼튼해야, 즉 양 쪽에 산이 가까이 있어 질을 강건하게 하여야 자궁에 옳은 생산물이 잉태된다. 여기서 말하는 ‘옳은 생산물’이란 유원지, 정화용수, 공업용수, 농업용수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들의 평화로운 삶을 말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평화롭게 살려면 물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물은 깨끗해야 한다. 물은 고이면 썩고 흐르면 깨끗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에다 영주댐을 쌓아 막아서 자궁에 물을 가득 고이게 한다는 것은 평은강 유역의 생물들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넓게는 영주, 더 넓게는 경상북도와 대한민국은 병들게 하는 것이다. 댐이란 것은 유역의 생물들에게 크게 피해가 없는 계곡이나 협곡에다가 만드는 것이지, 많은 생물들의 삶의 터전인 비산비야 지대에다가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4대강 사업이 졸속으로 완공되어 많은 문제점이 발생되면서, 완공 전에는 찬양 일색이었던 보수 언론들조차 4대강 사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기 전에, 그를 지지한 다수가 바로 우리 주변의 국민들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대운하 정책을 홍보한 덕택에 정동영 후보를 500여만 표 차이로 압승한 이명박에게 4대강은 외려 불만스러웠을 따름이다. 보수층들이 대운하 정책은 지나치다고 겨우 달래어서 다행히 온 국토가 절단 나는 횡액을 면하였지 아니한가.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내세운 명분을 한 마디로 뭉친다면 ‘개발하여 풍요롭게 잘 살아보세’가 아닌가. 현재와 미래의 풍요를 희망하는 다수 국민들이 그에 동조했지 아니한가. 세상 구조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구조라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하게도 한쪽이 잘 살면 다른 쪽이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되어 있다. 이 섭리를 확대하여 자연 생태계에 적용한다면 인간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선 반드시 자연을 갉아먹도록 되어 있다. 요즘의 주요 뉴스 중에 하나가 밀양 송전탑 문제인데, 송전탑 아래 마을 사람들이야 생존권 문제이든 보상금 문제이든 심각한 문제이고 환경과 생명을 사랑하는 운동권 인사들에게는 호재이지만, 전국적으로 다수 국민들이 볼 때는 소수가 국책 사업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진정으로 현지 주민들의 분노와 고통에 동정한다면, 문제의 근원인 에너지 절약부터 실천하는 게 마땅한데도 온 국민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경제 발전이라 여긴다. 저마다 온갖 전자 제품을 향유하며 도시 아파트마다 에어컨이 없는 집이 없다. 인류문명 자체가 에너지 소모형이기 때문에 문명의 근본을 바꾸지 않은 한에는 인류의 쇠락 또는 멸종이 불과 수천 년, 아니 빠르면 불과 수 백 년 후라고 많은 석학들이 예언하고 있다. 영주댐 문제를 인류문명의 종말 징조에다 확대하여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가늘게나마 연계되어 있음은 확실하다. 평은강의 숙명이든 권력의 정책이든 건설업자의 이권 때문이든 간에 이제 평은강은 공식적으로 다음 달이면 사망선고를 받아 본래의 모습을 흘려보내고 질을 막아 물을 잔뜩 밴 만삭의 몸으로 인간들 앞에 선다. 여기까지는 광주학살에 동원 명령을 받고 민간인 탄압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군인들의 운명처럼 국가적 정책 차원의 수리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폭도라고 보이면 닥치는 대로 학살하라”는 공식적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분노와 폭력성으로 민간인들을 마구 학살한 잔혹한 군인들처럼 영주댐 둘레를 뺑 돌아 57Km 도로를 낸다면서 산기슭은 마구 깎아대는 짓은, 건설 사업이 아니라 자연 파괴를 목적으로 한 폭력이라고 아니 말 할 수 없다.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난자’요 ‘유린’이다. 소를 잡을 때도 ‘각을 뜬다’라는 말처럼 요모조모 살피며 질서 있게 칼질한다. 물고기를 잡아 배를 따도 칼질을 순서대로 한다. 그런데 평은 강산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소나 물고기를 다듬는 칼질이 아니라 도마 위에 강산을 쇠뭉치로 마구 내리쳐서 살점과 뼈를 튀게 하는 난도질이다. 그래서 ‘난자’요 ‘유린’이다. 모성의 강 평은강을 흐르지 못하도록 한 것만 해도 크나 큰 불효인데, 둘레 산들을 흉측한 모습으로 외과 수술하는 것은 평은 강산을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거대한 음모이다. 영주댐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산간 도로를 내어서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산기슭을 깎아 도로를 낸 다음, 유한계층의 드라이브 코스, 아베크 족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딱이라고 광고하여 국고를 올리자는 정책인가? 누가 57Km를 뱅뱅 돌면서 드라이브를 할까. 주변에 더 좋은 코스가 많이 있는데도 말이다. 댐이야 수명이 100년 정도이니 나중에 철거하면 강산이 복구되지만. 한번 파괴된 산은 다시는 복구할 수 없다. 7,8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인근의 안동댐과 임하댐을 보면 댐 자체는 거대하고 넓은 들판이 온통 호수로 되었지만 주변 산들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도로를 내더라도 꼭 필요한 곳에만 내고, 멀리서 보더라도 깎아내린 산기슭과 도로가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에 비하면 영주댐의 산들은 21세기에 민주화된 국가로부터 학대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속되게 말한다면, 문명이 발달한 현대일수록 자연을 조져도 무참하게 조져대고 있다. 향토말로 해서 강산이 절단 나고 있다. 댐은 국책사업이라 치더라도, 평은강 둘레 모든 산을 망가뜨린 순환 도로를 누가 발상하였는지 필히 규명하여야 한다. 국토 개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관료는 반드시 생명과 환경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통해 소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건설업자들의 이권 다툼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관청의 주체적인 수요에 의해서 건설 사업이 입안 되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소형업체나 전국 단위의 대형 건설업체들이 자기들의 수요에 의해 도로, 교량, 공공건물, 댐, 관개 시설 등의 국가적 건설 사업을 기획한 다음에 관청에 로비하여 성사시킨다면, 그것은 국토를 파괴하는 참혹한 짓, 매국 행패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모든 대형 공사에 대하여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주댐과 둘레 도로에 대하여 시공자와 감독자들뿐만 아니라 건설 정책 입안자, 결재자 및 시공 때와 완공 때까지에 중앙관서와 지방관서장의 실명제를 반드시 시행하여 일월에 남겨야 한다. 후세들이 공과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역사책에 분명히 기록하여야 한다. 다음 달, 2013년 유월이 오면 내 사랑 평은 강산과 이별한다. “정든 땅 언덕 위에”유행가 가사처럼 평은 강산을 십년 동안 깊숙이 사랑했다. 나만의 소유였던 성감대 네 곳을 차례로 빼앗겼지만 십년 동안 행복했다. 남은 내 생애 동안에 다시는 이런 사랑이 오지 않으리라 익히 알지만, 평은 강산이 무참하게 난자당하는 광경을 보며, 한국인의 미래,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덮칠 불길한 징조를 두려워한다. 2013년 5월 21일 양백재에서 쓰다  
141 깨어 있는 정신/권서각 file
편집자
1275 2013-05-15
 깨어 있는 정신 권서각 젊은 시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시인이 아마 김수영일 것이다. 그의 시와 그의 행동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 강연에서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사회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혼돈스럽다. 그리하여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 이들 더욱 그립다. 그의 시 가운데 ‘눈’이 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시 ‘눈’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김소월이나 서정주 시를 대하는 것처럼 읽으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김수영은 우상을 깨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눈은 순수함과 깨끗함을 상징한다. 가래는 눈과 대조되는 의미다. 눈이 살아 있다는 것은 눈이 우리에게 순수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마당에 내린 눈을 바라보고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라고 반복해서 요구한다. 이쯤 되면 시인의 의도가 조금은 밝혀진다. 김수영은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시인들에게 기침을 하여 몸속의 더러운 것을 모두 뱉고 눈에게 부끄럽지 않는 깨끗한 영혼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눈에게 당당할 수 있는 곧은 정신과 순수한 영혼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가 발표된 1957년은 이승만 독재정권 시대다. 그 후 1960년에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졌던 학생들에 의해 4.19혁명이 일어났다. 4. 19는 자유, 민주, 정의를 요구하는 순수한 정신에 의해 일어났다. 4.19혁명의 결과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린다. 김수영 시에서 4.19 정신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의 시에는 늘 자유와 민주와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1948년 4월 19일은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 단일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평양으로 출발한 날이기도 하다. 선거 때마다 설문조사에서 우리 정치인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호출되는 인물이 백범 김구 선생이다. 김구 선생이 북으로 향할 때 그를 따르는 군중들이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길을 막았다. 선생은 길을 막은 군중들에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 70이 넘었다.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 이대로 가면 한국은 분단될 것이고,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그 후 자신의 권력만을 추구했던 남의 극우파와 북의 극좌파에 의해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백범은 암살되고 그의 예언대로 우리는 6.25의 비극을 겪었다. 분단의 비극은 나라보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운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 분단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봄이라지만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우리사회도 안개 속이다. 이럴 때일수록 김수영 같은 백범 같은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 사람 사무치게 그립다.  
140 항상 깨어있어라(예수)/고석근 file
편집자
1322 2013-05-06
항상 깨어있어라(예수) 거기 별들이 글을 쓴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건 나 역시 글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풀어쓴다. - 파스,「친교(親交)」중에서 우리는 남을 챙기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한다. 걸어도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느낌이 든다. 유령 같은 느낌. 그래서 삶이 뜬 구름 같다. 허망하다. 농경사회는 사람과 사람, 자연이 함께 어우러졌으나 근대화 이후의 산업사회는 사회 전체가 거대한 공장처럼 돌아간다. 시계에 맞춰 사람들이 먹고 쉬고 일한다. 그래서 근대 교육을 받은 우리는 자신의 느낌보다는 어떤 규범에 의해 움직이는데 익숙하다. 더더구나 우리사회는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있어 개인성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하나의 기계부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새로이 등장하는 현대지식정보화사회는 이런 ‘산업사회형 인간형’을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계발하는 창의적인 인간’을 원하게 되었다. ‘기계부품처럼 일하는 인간’은 인간보다 훨씬 정교한 진짜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명상’이 유행이다. 명상은 ‘깨어 있음’이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채는 것이다. 걸어가면서 온 몸으로 걷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생각이 구름처럼 내 머리 속으로 흘러오면 그냥 두어야 한다. 생각은 잠시 머물다가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다. 그럼 생각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두면 된다. 그러면 결정해야 할 생각들은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인류의 지혜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인류의 지혜가 정답을 찾아낼 것이다. 어느 순간 섬광처럼 무의식이 답을 줄 것이다. 이렇게 명상을 생활화하다보면 머리는 항상 맑아지게 된다. 다른 사람들 말이 잘 들리고 다른 사물들과도 잘 교감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인류이고 우주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자신 안에서 영혼이 충만해 오는 느낌이 들게 될 것이다. ‘깨어 있는 인간’은 본성을 잘 간직한 인간이다. 어느 시대나 위대한 삶을 산 사람은 다 이런 인간형이었다. ‘깨어 있는 인간’이 되면 자신의 진정한 행복도 찾게 되고 동시에 많은 세속적 가치들도 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현대사회는 여러 면에서 참혹하지만 ‘깨어 있는 인간’에 의해 서서히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게 될 것이다.  
139 심학사상과 도학사상의 관계 / 개산양백 박 희용 file
편집자
1722 2013-04-23
 심학사상과 도학사상의 관계 개산양백 박 희용 모든 학문은 인간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넓게 보면 목표와 본질이 같으나, 학문마다의 특성에 따라 구분한다면 불학과 유학이 갈라지고, 또 유학도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심학과 도학이다. 도학은 소학을 중심 경전으로 하여 일관되게 전해지나 심학은 대학과 주역을 중심 경전으로 하나 양명학과 성리학으로 갈라져서 저마다의 깊이를 더했다. 물론 성리학자들 모두가 도학을 기반으로 하여 심학을 연구하였지만, 엄밀히 구분한다면 도학자와 심학자는 목표론적인 면에서 구분된다. 도학이 유학 본래의 학풍에 충실하여 현실적인 실천을 위주로 하였다면 심학은 리기론과 인성론에 집중하여 관념적인 논증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목표하는 바가 상이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여 실학을 본다면, 실학은 기존의 성리학적 관념의 세계보다는 고전유학에 뿌리 한 도학을 다시 뿌리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형원 ․ 이익 등 실학의 거봉들이 율곡과 퇴계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것일 뿐이고 전체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율곡과 퇴계는 성리학자로 이름이 남았지 실학자로 자리매김 받지는 않기 때문에, 실학이란 유형원과 이익의 독창성이 도학에 뿌리를 두고 발흥된 학문이 아닐 수 없다. 율곡과 퇴계 중에서 누구의 학문이 실학에 더 영향을 끼쳤을까를 분별한다면, 율곡이 도학자인 조광조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에 비하여 퇴계는 리기론자인 이언적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므로 율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학에 영향을 준 선학이 율곡이냐 퇴계냐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영향을 따지는 까닭은 실학파 내부에도 있지만 외부에도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현대에 들어서면서 실학이 재조명을 받다보니, 현대 실학자들 가운데에는 자기들의 학맥을 조선 성리학의 학문세계에 접목시켜 역사성을 보장받으려 하고, 현대 성리학파들 가운데에는 실학을 자기들의 영역 안에 흡수하여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 실학자들의 저서를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자기들 학파에 유리한 부분들을 발췌해서 강조하다보니 ‘영향’이란 말이 쓰이게 된 것이다. 물론 실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물건이 아니라 기존의 학문을 자양으로 하여 개발 된 것이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는 성리학과 달랐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의 <오학론>에서 보듯 실학의 출발점은 기존 성리학 세계의 부정이었다. 15세기 이후 200여 년 동안 조선의 주류 학문으로 행세해온 성리학이 분명 환부를 앓고 있음을 직시한 유형원이 17세기 들어 겨우 일으켜 세운 학문이 바로 실학이다. 이후 200여 년 동안 실학자들이 성리학자들과 치열한 투쟁을 벌였으나 결국 탄압을 받아 패배하고 말았지 아니한가. 그 탓에 조선은 패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실학과 성리학은 엄연히 구분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책임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다. 탄압의 중심이 율곡을 종장으로 하는 서인-노론 세력이었으니 하물며 율곡은 실학과는 정신이나 실천면에서 상이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실학에 끼친 성리학자들의 영향을 논하고, 실학을 성리학 속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학문의 본질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지나친 말일지 모르지만 인간 심성에 근본을 파헤쳐 보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선과 악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선인이 한 때 악 쪽으로 흐르지만 곧 회귀하는 것은 선의 磁場이 강하기 때문이요, 악인이 잠시 선의 흉내를 내지만 곧 돌아가는 것은 악의 자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 學人들도 선과 악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학문을 함에 경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며, 안으로는 나를 충실하게 하고 밖으로는 이웃과 사회를 위함에 있으며, 축적한 학문이 잘 발효되어 지혜가 밝고 겸손한 자는 선한 학인이고, 축적한 학문의 양만 매일 재며 안으로 자기 존재에 만족하고 밖으로 과시하려고 하는 자는 악한 악인이다. 善學人은 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간구하나 惡學人은 고이지도 않았는데도 달달 긁어서 퍼내기 바쁘다. 시대를 좁혀 조선조 때만 보더라도, 많은 학인들이 있었지만 전부가 선 또는 전부가 악이라고 단정 짓지는 못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두 종류로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조선 중기부터 대두된 민생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실천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학계 평가에서 실학자라는 소리를 듣는 학인들은 대부분이 선학인이 될 것이고, 17세기 말 경에 거의 정리된 태극론, 리기론, 인성론 등을, 인간의 내면적 본질은 시대를 초월하므로 궁구하여 끝까지 밝힌다는 명분으로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 자들, 진지한 학문적 탐구 목적이 아니라 자가 도취적 지적 유희, 자기 과시의 수단, 명문벌족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교과서로 이용한 자들, 현학적인 관념론에만 집착하여 공리공론을 일삼은 자들, 실학을 하학이라고 모멸한 자들, 오로지 공부만 한답시고 생업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 모두가 악학인이 될 것이다. 오늘날 실학에 대한 평가가 상승하면서 실학자들에 대한 탐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 실학의 연원과 계보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작은 물줄기라고 할 수 있는 유형원과 저수지라고 할 수 있는 이익이 선대의 누구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았는가가 관심사로 부각하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학설, 조광조-이이의 설과 이황의 설이 있다. 반계와 성호 두 사람 모두 선현들의 학문을 사숙하면서 그 요체를 자기화한 독학 중심이었지 사사받은 스승이 없다. 즉 실학의 연원은 어느 누구라고 특정 지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곡학 계통에서는 이이로, 퇴계학 계통에서는 이황으로 실학의 연원을 규정짓는 것은 반계와 성호의 독공력을 가볍게 보는 게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내내 지겹도록 싸워서 식상한 퇴율논쟁, 사색당파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실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앞서의 선학들이 축적한 학문 업적을 밑거름으로 하여, 이전의 많은 성리학자들이 중시한 본질론과는 달리 현상론을 중시한 새로운 관점의 학문이다. 실학자들이 현상론을 중시한다고 해서 본질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관념론자들은 본질에만 집착하고 현상은 매우 가볍게 여겼지만, 실학자들은 본질은 현상을 통해서 발현되고 현상은 본질에 따라 형성된다는 등가의 관점에서 본질과 현상을 보았다.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그 발현인 현상을 무시하는 것은 씨앗을 일 년 내내 시렁에 매달아 놓고 즐기는 것과 같고, 본질을 소홀히 하고 현상만을 중시하는 것은 뿌리 없는 꽃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나날이 쇠퇴하는 국운이 눈앞에 빤히 보이는 조선 말기에도 대를 이어 본질론에 집착한 명분론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실학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실학자들은 소수로 변방에서 풍우를 맞음으로써 조선 성리학은 수명을 다하였다. 시대 변화에 둔감한 명분론자들 모두 惡學人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학문을 하는 목적 중의 하나는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것이다. 국망에 이르게 한 원인을 하나하나 규명하고, 시대마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들에 대한 검증과 혹독한 비판을 통해서만 다시는 그러한 오류가 미래에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래서 선과 악, 이분법의 잣대가 필요하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의 조합으로, 이 중 어느 하나가 없으면 존재가 성립할 수 없다. 정신은 사고 작용을 하는 이성과 감성이란 두 개의 속성을 가졌고 육체는 취득 작용을 하는 욕구와 감정이란 두 개의 원초적 본능을 가졌다. 이성은 순차적 질서를 준 상태의 객관적 사고이며 감성은 다양한 가변성을 준 상태의 주관적 사고이다. 이 두 개의 사고 작용이 교직하면서 이루는 것이 정신이다. 날줄이나 씨줄 하나만으로는 옷감이 짜여질 수 없듯이 이성이나 감성 하나만으로는 인간이 올바르게 설 수 없다. 흔히들 감정과 감성을 혼동하여 감정이 정화된 상태를 감성이라고 하는데, 감정은 육체의 즉각적인 반응이며 감성은 사고 작용의 한 면이라는 차이를 갖는다. 육체의 취득 작용인 욕구와 감정은 이기적 활동이 왕성하다. 그러나 이기적 활동만 활발하면 다른 인간들과 상충하게 된다. 그래서 조절과 타협이 필요한데, 그 때 사용되는 것이 정신이다. 이성은 직선적 사고, 감성은 곡선적 사고로서 상호 보완한다. 직선만으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고 곡선과 어울려야만 하듯이 정신 역시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온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성에 근거를 둔 도학과 감성에 근거를 둔 사장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 인간이나 사회, 국가가 온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만을 숭상하게 된다면 반드시 후유증이 발생하게 된다. 무인시대를 초래한 고려조 때의 부화한 사장풍조도 경계해야 하지만 도학 일변도를 강제한 조광조 등 신진 사림들의 행보 역시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착점과 행마가 결국 자기 숨통을 자기가 조여서 조선이란 대마가 질식사하도록 하였으니 도학 숭상은 학문적 패착이 되고만 것이다. 교각살우, 살아서 펄펄 뛰는 생물인 인간사회가 소학 책 속에 강제로 넣어지는 바람에 그만 시들고 말았다. 조광조 이후 성리학자들의 찬란한 학문 업적이란 겉으로는 백성 교화라는 명분을 달았지만 속으로는 양반층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무기였다. 성리학 자체가 논리적 모호성을 최대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학문에서, 유명세를 타면 반드시 부패한다. 한 학자가 유명해지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로 우우 쏠려서 우상으로 받든다. 우상은 마침내 영원불변의 진리가 되어 종교적 절대가 된다. 동시에 미이라가 되어 단상에 모셔진다. 영원히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이 영원히 살아 있으려면 끊임없이 비판 과정을 겪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선이 살아있으려면 초기에 학문의 다양성이 인정되었어야 했다. 학문과 정치가 확실하게 구분되어야 했다. 학문하는 자들이, 특히 과거 급제 한 성리학자들이 권세와 학문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 자기 학문을 고집한 탓에 정치가 학문의 하수가 되고 말았다. 학자들은 초야에서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경세가들은 조정에서 정책 개발에만 치중하였다면 조선의 역사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높은 관직을 역임한 자들은 이미 학자가 아니라 관료일 뿐이다. 즉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명분 자체가 허구였다. 유학, 성리학 자체가 가진 현실 지향성이란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학만이 유일이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보다는 손해가 훨씬 많았다. 한 시대의 것에 만족해야 할 조광조의 도학이 후세에까지 남는 바람에 조선의 역사가 굴레를 꿰이고 말았다. 최영성 저 『한국유학통사』 600p의 김정국의 『사재집』에서 언급된 조광조의 행적을 보면 아직 수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면을 볼 수 있는데, 조광조 그가 좀 더 수양이 된 40대 이후에 현달하였더라면 도학과 개혁이 착실히 추진되어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좋았을 것이다.  
138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구나/권서각 file
편집자
1375 2013-04-18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구나 봄이라고 발음해 보면 입술이 따뜻해진다. 겨우내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봄은 희망, 꿈, 부활, 생명 등을 상징하는 기다림의 언어다. 내 친구는 봄을 좋아하여 딸의 이름을 봄이라고 지었다. 그 애가 지금 유럽에 갔다니 이 땅에 봄은 없는 셈이다. 봄이 오면 노인들은 어두운 방에서 나와 지팡이를 짚고 봄볕을 쬔다. 개도 노인을 따라 꼬리를 흔들며 마실을 간다. 얼었던 물이 풀려 개울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 끝이 한결 부드럽다. 땅에서는 움이 돋고 나뭇가지 끝에는 꽃망울이 나온다. 겨우내 어두운 곳에 있던 생명들이 살아 있음을 증거한다. 봄은 농촌에 가장 먼저 찾아온다. 봄이 오면 농부들은 땅을 갈고 거름을 내고 씨앗을 뿌린다. 가을에 거둘 결실을 생각하며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농촌은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가을에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농사짓는 데 드는 비용을 넘지 못한다. 지으면 지을수록 밑지는 것이 농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이농현상이다. 농촌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마을에는 빈집이 생기고 도회지로 갈수 없는 노인과 개 몇 마리만 남았다. 마을에 아이 우는 소리가 끊인 지 오래다. 농사가 세상에 으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농촌에 봄이 와도 이제 봄이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것이 계절의 봄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말만 민주주의이지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멀기만 하다. 3.1절의 원래 명칭이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었다고 한다. 일본 식민지 세력을 몰아내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3.1혁명의 정신이었고 그 결과 이듬해인 1920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틀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1945년 해방 후에 세워진 우리나라의 명칭도 대한민국이고 국가 형태는 민주공화국이었지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아직 멀다. 우리 민주주의 역사 100년은 3.1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왕조국가의 틀이 민주공화국으로 바뀐 것이 3.1혁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미완의 혁명인 4.19, 5.18 민주항쟁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의 제단에 몸 바쳐 투쟁하며 이어온 것이 우리 민주주의 100년의 역사였다. 올해 봄과 함께 박근혜 정부가 출발했다. 선거 전에 유세할 때는 경제 민주화를 말하며, 소통을 말하며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던 민주정부를 말하더니 취임 후에는 180도 태도가 바뀌었다. 부도덕하고 비민주적인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고, 정부조직 안을 국회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무서운 태도를 보였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8%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농촌을 살린다는 정책도 노동자들을 인간답게 살게 한다는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치에도 봄은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민주주의는 계절의 봄처럼 그냥 오는 것 아니다. 비민주적인 것들과 싸워서 얻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오는 것이 봄이다. 군사정권시대 이성부 시인은 민주주의를 봄에 비유해서 이렇게 노래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의 시 「봄」   
137 자연에서 배우자?/고석근 file
편집자
1121 2013-04-07
자연에서 배우자?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불감위야) 爲無爲則無不治(위무위칙무불치) 무릇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나서서 어떤 일을 도모하지 못 하게 한다. 억지로 하는 함이 없으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 노자,「도덕경」중에서 한 유명 과학자가 TV에 나와서 자연에서 배우자고 설파하고 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자연에서 배우자고? 그게 가능한가? 그는 실례로 흰개미들을 든다. 흰개미들은 지도자도 없이 설계도도 없이 멋진 건축물들을 만든단다.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모여 10년 동안 연구를 한 결과, 흰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각기 알아서 하는 게 그 비결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회사에서도 ‘각자 알아서 하기’를 받아들이잔다. 이미 새로운 경영학 이론으로 많은 선진국 회사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전에 어디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어느 종교 단체에서 수련회를 갔단다. 목적지에 가서 명상을 하고는 수련생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단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식사 준비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더란다. 그럼 회사도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게 그 과학자의 생각일 것이다. 정말 이렇게 하면 될까? 그 과학자는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 종교 단체의 수련회는 어떤 이익을 창출하러 간 게 아니다. ‘각자의 정신적 가치’를 높이러 갔기에 각자 알아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돈’을 버는 게 목적이고 그 돈을 나중에는 분배해야 한다. 어떻게 분배하지? 그런데 회사원들을 그냥 두면 알아서 자기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할까?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이 열심히 번 돈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그들은 어떻게 할까? 그럼 제대로 분배하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나라 회사 구조가 제대로 분배하는 구조인가? 제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회사원들이 알아서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경영기법이 나온다면? 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노예도 이런 노예가 없다. 사람도 자연이다. 사람을 자연스럽게 하면 자연의 지혜들은 자연스레 나온다. 사람을 자연스럽게 두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의 지혜들을 도입하자는 발상은 어이없으면서도 무섭다. 이런 발상이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자본가들의 생각이니까 말이다. 지식정보화사회가 되면서 기존의 노동자가 아닌 새로운 노동자가 필요해졌다. 스스로 자기계발을 하는 노동자. 그 과학자는 신자유주의 자본가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자 상’을 과학의 이름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136 당신이 늙어가는 것에 대해 file [2]
푸름살이
1627 2013-04-03
당신이 늙어가는 것에 대해 박래녀 당신은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마음은 청춘이라지요. 그 말에 반박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지천명을 넘길 때까지는, 아니, 팔순이 넘어도 마음은 청춘이지요. 미래보다 과거의 모습에 집착하고, 젊은이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요. 다리에 힘이 빠지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길 때쯤이면 건강식품이다. 한약이다. 양약이다. 머리맡에 약 소쿠리 챙겨놓고 밥은 안 먹어도 약은 먹지요. 곧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팔순 노인이 되어도 지팡이 짚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유모차 밀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다가 알지요. 지팡이나 유모차 없이 삽짝 나서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유모차를 밀고 지팡이를 짚지요. 날이 갈수록 그것과 익숙해져서 내 몸처럼 되어버려도 마음은 청춘이지요. 내가 기운이 왜 빠지는 것일까. 무엇을 먹어야 펄펄 기운이 살아 오를까. 시도 때도 없이 자식들을 괴롭히게 되지요. 전화만 하면 앓는 소리를 내지요. 처음 어린애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를 때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지요. 나,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 소릴 들을 만큼 늙지 않았어. 아저씨, 아줌마라고 불러 줘. 애원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아들딸이 과년해서 시집 장가보낼 나이란 것을 깨달을 때면 손자 손녀를 안고 싶지요. 손자손녀가 시집장가 갈 나이가 되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죽어야지 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집착은 좋다는 약품, 좋다는 건강식품을 두루 섭렵하고 싶지요. 좀 더 젊게 살고 싶다는. 이 좋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억울하고 아깝지요. 장성한 자식들 집 떠나 제 식솔 거느리고 살아도 부모는 자식이 떠난 것을 인정할 수 없지요. 언제나 부르면 달려와 줄 것이란 믿음이 철통같지요. 이래라저래라 늘 지시하고 품어주려고만 애쓰지요. 상노인이 된 어느 순간, 늙은 남편은 늙은 아내에게 젊어서부터 해 왔던 것처럼 변함없이 받들어 모시기를 바라고, 당신 건강만 챙기지요. 늙은 아내는 남편 수발드는 것도 지겹고, 밥 해 먹기도 싫고, 두 사람이 입고 벗는 옷가지조차 씻기 싫고, 집안 청소나 자잘한 살림 하는 것이 지겨워지지요. 며느리가 밥상을 차려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노모나 노부는 첫째 맏며느리에게 의탁하고자 합니다. 맏이는 당연히 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예전에 자신이 그러했듯이, 대가족 제도 일 때야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던 일이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언감생심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맏이가 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하면 길길이 화를 내지요. 그러다 두 번째, 세 번째, 편한 자식을 찾지요. 순한 며느리, 말 잘 듣는 며느리에게 집착을 하지요. 보살피면 보살피는 것보다 더 보살펴 달라고 보채게 되는 나이가 옵니다. 여든이 넘으면 이승보다 저승길이 열려 있는데도 노인은 모릅니다. 몸이 아프다거나 병원행일 때 처음에는 자식들이 모두 놀라 달려오지요. 부모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들어줄 듯이 설치지만 두 번, 세 번, 거듭되면 자식에게 부모가 참으로 무거운 짐이 됩니다. 요즘은 편하게 요양원으로 직행 시키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요양원 행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오십대 부모는 누구나 늙으면 요양원 들어가겠다고 대답합니다만 막상 팔십이 넘어서면 그 마음이 그대로 보장 될까요? 일단 요양원에 들어가면 죽어서 나옵니다. 처음에는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지요. 가진 돈이 있으면 만고 편한 백성이지요. 요양원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프면 약 주고, 때 되면 밥 주니까요. 요양원 생활이 길어지면 자식들이 슬슬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이젠 돌아가시라는 암묵적인 뜻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어떤 할머니는 영감님 돌아가시고 오래 혼자 살았어요. 기운 있을 때는 품삯 일도 하고, 희망근로도 나가며 잘 살았지요. 가끔 들어다보는 자식들도 예뻤지요. 자식들이 주는 용돈 모아놨다가 힘들어 죽겠다는 자식이나 손자에게 목돈 주는 재미도 있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부터 기운이 빠집니다. 끼니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 집니다. 자식에게 아프다고 자꾸 전화를 넣습니다. 처음에는 부를 때마다 어김없이 달려오던 자식들도 슬슬 꽁무니를 빼더랍니다. 요양원에 넣어 달라고 했답니다. 자유의지로 들어간 요양원이라 참으로 편하고 좋더랍니다. 주말만 되면 온갖 먹음직스러운 음식 바리바리 싸서 면회 오는 자식들 덕분에 행복하더랍니다. 그러다가 슬슬 자식들 발길이 끊어지니 외롭더랍니다. 집에 보내달라고 떼를 썼지요. 집으로 왔어요. 오랜만에 집에 오니 살 것 같더랍니다. 한동안 집에서 생활했는데. 금세 밥 챙겨 먹는 게 싫더랍니다.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갔지요. 얼마 전, 그 할머니 검은 리무진 타고 선산에 묻혔습니다. 사람의 일생이 그렇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지내는 부모 제사도 지내기 싫어하는 며느리가 속출하는 세상입니다. 겨우 이틀 고생하면 끝나는 제산데도. 그렇습니다. 며느리도 늙어가기 때문입니다. 늙으면 몸이 아파지고, 만사 귀찮아지기 때문입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이 들어 쩔쩔 매게 되면 제사가 무슨 소용 있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때쯤이면 자신의 늙음만 생각하지 자신도 돌아가신 부모와 똑 같이 제 자식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리란 생각조차 안 하는 겁니다. 물론 얼마간은 잘하고 싶지요. 부모 모습이 바로 뒷날 내 모습이란 것을 아는 자식이나 며느리라면 그 부모에게 조금이나마 더 잘 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지요. 그 노력이 치매로 이어지거나 뇌졸중 같은 중병으로 명보전만 하고 눕게 되면 요양원 행이지요. 요양원 생활이 오래되면 매달 들어가는 요양원 비가 아깝습니다. 처음에는 못 모시니까 그 정도는 지출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 해 두 해 시부모 명줄이 길어지면 매달 나가는 돈이 짐이 됩니다. 가족간의 다툼이 또 일어나지요. 부모는 자식의 그런 냉정함을 알까요? 아닙니다. 요양원에 들어가도 더 오래 이 좋은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입맛 없다하면서도 산해진미 먹고 싶습니다. 기운 없다 하면서도 사철 꽃구경, 단풍구경 다니고 싶습니다. 쓸쓸한 노후가 시작되는 것은 너무 오래 살기 때문이란 것을 잊어버립니다. 한동안 자식에 대한 원망도 있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하는 마음은 그리움으로 바뀌고, 치매는 현재를 잊고 행복했거나 불행했거나 과거 어느 시점에서 놀게 되지요. 오래 사는 것이 형벌이란 생각을 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죄인이기도 합니다. 전생에 얼마나 업이 많으면 불면 날아갈까, 떨어지면 다칠까, 금지옥엽으로 키운 자식에게 홀대를 받으면서도 명줄을 놓지 못할까요. 인간의 한 생이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주팔자를 모르니 알 수 없지요. 내 명이 얼마나 될지 어떻게 알겠어요. 가능하면 건강할 때 죽는 것이 행복입니다. 내 생각은 일흔과 팔순 사이가 가장 죽기 좋은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내 나이가 벌써 환갑을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바야흐로 봄이 깊어가는 마당입니다. 매화꽃 푸지게 피더니 지고, 진달래와 개나리는 아직 만개했습니다. 엊그제부터 앵두꽃이 피기 시작했군요. 송이 째 뚝뚝 떨어져버린 동백 잎은 기름을 바른 듯 반질반질합니다. 화살나무 잎과 찔레나무 잎은 제법 푸른빛이 무성합니다. 겨우내 뼈만 앙상하던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끝에도 구기자 열매만한 잎눈이 돋았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앙상한 가지를 소담스럽게 감싸겠지요. 이렇듯 자연은 사계절을 어김없이 돌아 제 자리에 옵니다. 인간의 한 생도 그렇습니다. 나무 한그루가 해마다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다시 피우듯 부모가 죽고, 자식이 부모가 되었다가 부모와 비슷한 길을 걸어 죽고 나면 그 자식이 또 부모가 됩니다. 우주 섭리고 순환이지요. 당신도 늙어가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2013. 3.  
135 남북통합 道연방국가론/ 開山兩白 박희용 file
편집자
1136 2013-03-22
남북통합 道연방국가론 開山兩白 박희용 통일 절대주의자들에게는 통일만이 살 길일지 모르지만, 일상에 바빠 통일에 대하여 관심이 없거나, 분단 상태 이대로 지내도 무방하다거나, 통일을 꼭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새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통일은 상대적 가치가 되어 왜소해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 여론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분단 상태에서 받는 피해가 워낙 크고 통일이 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기 때문에, 난해하더라도 통일만큼은 다수를 설득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남북에 두 국가 체제가 존재하는 한에는 대립-경쟁이라는 소모적 긴장과 도발-전쟁이라는 파괴적 공포가 필연적으로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종료시키기 위하여 많은 우국지사들이 여러 가지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남과 북 두 지역의 지도층들은 국민 다수의 여론을 바탕으로 한 통일정책을 세워 추진하기 보다는 현재 집권 세력의 기호와 이익에 부합되는 통일 방안만을 추구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남한 사람들이 이미 해방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조선 해방’ 이란 명분을 내걸고 군사력에 의한 통일을 선호하고 있으며, 남한 역시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를 구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북진통일, 햇볕정책, 흡수통일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통일 방법론을 대별하면 평화적인 방법, 무력적인 방법, 붕괴-흡수의 방법 등 세 가지가 있다. 무력적인 방법은 이미 1950년에 사용하였는데 거기에 따른 피해가 엄청나다는 것을 이미 체험하였고, 다시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보다 훨씬 더 막대한 피해, 결국 민족의 절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이제는 남북이 서로 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어 전쟁이 일어나 어느 한쪽이 승리한다고 해도 패자 못지않게 피해가 크고, 점령지에 대한 통치에 있어서도 많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패한 쪽 주민들은 앙앙불락하며 복수의 기회를 엿보다가 때가 되면 내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 흡수통일론은 우익보수 세력의 대표인 이명박정부가 200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경제가 더욱 곤궁해져 생활고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이 저항 하거나 대거 이탈함으로써 북한 체제가 내부 붕괴를 일으켜 남한 쪽으로 흡수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감나무 밑에서 홍시가 떨어지기 바라는 심정으로 집권 이후 5년 동안 대북 봉쇄-고립정책을 계속했다. 이러한 대북정책이 지속되다 보니 남북 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북한은 핵개발을 집요하게 추진하면서 대남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고 경제난과 식량난을 돌파하기 위해 중국에 더욱 의지하게 되어 경제적 식민지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북한의 지배층들이 붕괴의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이지만, 분단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다수인 주민들도 자기 국가가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들에게 남한은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이고 북한이 조국인 것이다. 최악의 경우가 되더라도 인간 심리 근저에 가라앉아 있는 지역의식, 부족국가의식이 발동하여 자기들 국가를 유지하려 노력할 것이다. 설혹 붕괴가 현실화 되어 남한에 흡수된다 해도, 3등 국민 대접을 받으며 기죽어 사는 것보단 김정은 세습권력을 대체한 새 권력을 중심으로 한 지역 기득권을 유지하며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사태가 돌변하여 북한이 붕괴하고 흡수가 이루어지면, 우익멸공 세력들이 세습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숙청을 집요하게 요구, 실행할 게 뻔하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 지배층 인사들이 처형, 수형, 추방 될 것이다. 북한 인구가 약 2400만 인데 다 숙청할 순 없을 거고 골수분자만 척결, 처형한다 해도 족히 400만은 될 것이다. 가족까지 다 처형할 순 없을 터이니 남은 가족, 친척, 지인들의 가슴에 더 짙은 원한이 쌓이게 되어 북한 지역에 대한 통치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테러, 반란,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점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이 북한지역을 전략적 완충지대로 여길 뿐만 아니라 이미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경제권을 거머쥐었기 때문에 붕괴-흡수를 용납할 리가 없다. 북한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면 구해주고 그 대가로 더 많은 이권을 챙길 것이다. 설혹 북한이 남한에 흡수된다 해도 기존의 권리를 주장하고 챙길 것이기 때문에 통일한국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지경에 처할 것이다. 붕괴가 시작 되었을 때 가장 우려되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은 주변 강국들이 저마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군사력을 북한 지역에 투입시키는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광업권의 확보 정도로 만족할 것이지만 미국은 북한 남부지역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보장받으려 할 것이고, 중국은 북부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 최소한 평안북도 지역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과감하게 실행할 것이다. 자칫하면 한사군 같은 꼴이 날 수 있다. 특히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우라늄과 철광석에 대한 지분 다툼으로 강대국 간에 국지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흡수통일론은 전쟁이라는 수단만 피할 뿐 무력통일론과 차이점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흡수통일론은 성공된다 해도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은 하지하책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평화적인 통일 밖에 없다. 그런데 다수가 평화적 방법을 원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법론에서는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로는 연방제 방안이다. 2000년의 6 · 15 남북정상회담 정신에 따라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개의 지역 단위를 기준으로 하여 남한은 ‘국가연합형 연방제’, 북한은 ‘느슨한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10년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구보수 세력을 대표한 이병박정부의 대북 강경책 탓도 있지만 남북 모두에서 연방제에 의한 통일론은 사라지고 오히려 남북 대결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대에 남북 둘 다 통일에 대한 진지한 협의보다는 정치적 명분론에 치중하면서 연방제를 논했기 때문에 연방제 통일론의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전쟁을 치른 두 국가가 연방제를 논한다는 자체가 이미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 두 지역을 근거로 한 연방제 안은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연방제에 대한 미련은 남북 모두 갖고 있다. 현재는 신냉전기이지만 2013년 남한에 평화통일 정책을 추구할 새 정권이 수립되면 다시 부각될 명제이다. 둘째로는 남북 총선거론이다. 남한이야 오랜 기간 동안 민주주의 비밀선거를 많이 하였기에 익숙하지만, 오랫동안 노동당 추천의 단독후보에게 찬반하는 것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에게 총선거는 낯설고 거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또 북한 지역에서 자유로운 선거 운동이나 투표가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또 남한의 인구가 북한보다 두 배이기 때문에 북한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수가 적고, 대통령도 남한 출신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북한 쪽으로서는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혹여 북한이 이 안을 수용하여 남북 총선거가 실시되면 투표 현장에서는 남과 북 둘로 나뉘는 지역감정적인 요소가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로는 한반도 영세중립론이 있다. 하지만 중립국임을 인정받기 위해 최소한 한 세기 동안은 마음 졸이며 주변 국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주변 국가들이 영세중립국 상태로 계속 놔둔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강력한 군사력을 포기하게 됨으로서 천 년 만에 일으킨 우리 한민족의 에너지를 저상시킬 수 있다. 자칫하면 영세중립국보다는 영세약소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현실성과 미래성이 매우 낮다. 끝으로 국가연합론, 즉 1국 2체제론이 있다. 이것도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로는 남한과 북한이 대외 형식상으로는 한 나라의 국호와 국기를 사용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기존의 두 국가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방안, 둘째로는 기존의 국호, 국기, 국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올림픽이나 환경회의 같은 비정치적 국제행사 참여는 한 국호, 국기로 하는 방안, 셋째로는 내부적으로는 두 국가 체제를 유지하나 대외적으로는 한 국호, 국기를 들고 모든 분야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이 있다. 남북 간에 국가연합론이 논의되기 위해선 상호 인정과 협력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허용과 도움 없이는 시작되기가 어렵다. 성공한다 해도 완전한 통일로 가는 도정 중의 중간 기착지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통일이 되기까지 수십 년이 더 필요하다. 그래도 국가연합론이 남북 양쪽에서 수용할 수 있는 요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이 안이 합의된다면, 그 다음부터의 통일 과정은 상호 인정과 협력 - 1국 2체제 국가연합단계 - 2개 국가 연방제 단계 - 총선거 - 1국가 1체제 완전한 통일의 단계를 거칠 것이다. 무력적인 방법 불가, 연방제 난망, 총선거 난망, 영세중립론 미흡, 국가연합론 미숙이니 어떻게 하면 평화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래도 국가연합 단계를 거친 연방제 방안이 가장 유효하다는 것, 남북이 근접 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방제가 말은 쉽지만 실행하기엔 어렵다. 충격 완화 장치 없이 남북 두 지역의 정권과 체제가 큰 틀에서 한 국가가 되는 연방제로는 남북 간의 정치적, 심리적 거리가 본질적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충격을 완화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방법을 내포한 새로운 개념의 연방제 방안이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로 ‘남북통합 道연방국가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한국인에게 체질화 되어 있는 지연과 혈연 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기존의 연방제가 남북이라는 두 지역 정권을 근거로 했다면 이 방안은 조선시대의 8도와 현대의 서울, 평양을 합한 10개 道정부를 자치공화국으로 한 연방공화국 방안이다. 남북통일은 정치적, 지리적 개념이지만 남북통합은 거기에 정서적, 심리적 개념을 보탠 것이다. 하지만 남북통일도 어려운 현실에서 남북통합이라는 말은 언어의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은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최선의 개념이다. 통합은 과거든 현재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의 역사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품을 수 있는 아량과 배려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의 역사를 폄훼하기보단 존중하고 편입시키는 넓은 역사관에서 출발한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이루어지되 후회 없는 통일, 긍정적인 통일이 되어야만 한다. 무력통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평화적 통일 방안들이 갖고 있는 결함과 위험 요인들이 무시된 채로 성급한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발생할 문제는 이전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후세들에게 안겨줄 것이다. 잘못된 통일, 부실 통일이라면 아예 가지 않는 것, 차라리 분단 유지가 더 나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도 한반도 분단 상태에서 얻는 이득보다 통일 상태에서 얻는 이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 동북아가 계속해서 긴장과 대결의 상태로 있는 것보다 한반도가 통일됨으로써 동북아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져서 거대한 경제권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특히 남과 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긍정적인 시각과 역할이 필요하다. G2로서 패권은 추구하되,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지 말고 이 넓은 지구에서 각기 동양과 서양의 맹주국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집중하면 될 것이다. 인류의 선진문명을 리드하는 G2답게 세계평화와 우주개발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 대립과 전쟁에 에너지를 투사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고 경제성이 높은 사업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인류 문명이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는지는 누구나 예측한다. 그러면서도 선뜻 동참하기 어려운 것은 폐쇄적인 국가 이기주의 때문이다. 그러나 폐쇄적 국가주의보다 개방적 세계주의가 인류 문명사 발전 단계로 보나 지구적 차원의 생존 면에서나 훨씬 이득이 많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반도 주변 국가들도 평상심으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철 대국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하지도 못하는 나사 신세인 한반도의 남과 북. 나사 스스로 움직여 조임을 풀 순 없더라도 동북아 평화의 빛을 발산함으로써 두 강철 대국들이 나사를 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빛의 광원에서 니크롬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남북통합 道연방국가론’이 아닐까 한다. 구리선이나 철선, 나무나 종이는 발광, 발열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134 이승만의 추억/권서각 file
편집자
1238 2013-03-15
 이승만의 추억 히틀러의 권력을 만들어 준 사람은 괴벨스라는 천재적인 선전부 장관이다. 괴벨스는 “우리가 어느 나라에 쳐들어가면 국민들은 3가지 부류로 나뉜다. 우리에 저항하는 저항세력(Resistance)과 우리를 따르는 협력세력(Collaborator)과 그 밖의 머뭇거리는 대중(Masses)이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언론을 장악하여 머뭇거리는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 공식은 히틀러에게 절대적 권력을 안겨주었다. 히틀러는 이 공식으로 주변 국가들을 점령했고 유럽 대륙을 나치의 깃발로 덮었다. 점령하는 나라마다 선전을 통해 머뭇거리는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식민지 통치를 했다. 욕망도 지나치면 파국을 맞게 된다. 히틀러는 패배했다. 나치에서 해방된 유럽 나라들에서는 나치 전범과 나치 협력자들을 모두 처형했다. 아직까지도 나치 전범이 발견되면 처형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로 점령했을 때 우리도 저항세력과 협력세력과 머뭇거리는 대중으로 나뉘었다. 일본은 ‘낡은 조선을 발전시킨다.’는 선전을 통해 머뭇거리는 대중을 친일파로 만들어 식민지 통치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그 다음은 조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농토와 자원을 약탈하고 젊은 남녀를 전쟁에 내몰았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다. 해방이 되었으면 친일파가 처벌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새로 건국된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주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경계에 이승만이 있었다. 미국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 이승만의 인격(Personality of RHEE SYNGMAN)이라는 파일이 있다.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승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그는 한 번도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고 한다.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미국 선교사들의 추천으로 유학을 했고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프린스턴 대학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박사라는 명목으로 미국 내 한인들의 지도자가 된 이승만은 하와이로 가서 박용만이 이끌던 국민회의를 폭력과 술수로 장악한다. 그는 교민들이 낸 독립운동자금을 직접 관리하며 재산을 축적하고 호화로운 미국생활을 한다. 기독교계 기호파가 다수인 임시정부 요인들의 추천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나 거기서도 독립운동 자금만 장악하고 권력만 부리다가 탄핵된다. 미국의 태평양전쟁 승리로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다. 권력과 돈의 화신인 이승만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편지를 써서 신임을 얻어 독립 운동가들을 재끼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다. 겉으로 독립투사요 속으론 권력만 추구하던 이승만은 친일파를 중심으로 절대 권력을 구축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이승만을 국부(國父)라 부르고 인자한 할아버지라 생각했다. 우리는 괴벨스가 말하는 선전에 포섭된 ‘머뭇거리는 대중’이었다. 만약 이승만이 한반도에 태어나지 않고 프랑스에 태어났다면 벌써 처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4.19혁명 뒤에 하와이로 망명가서 천수를 누렸다. 이 땅에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이래 100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레지스탕스가 콜라보를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한 번도 언론이 자유로운 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인터넷 검색어 ‘백년전쟁’을 치면 이승만에 대한 동영상 자료를 볼 수 있다.  
133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장자) /고석근 file
편집자
2270 2013-03-04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장자) 의자였는데 내가앉으니도마였다 베개였는데 내가베니작두였다 - 김언희,「의자였는데」중에서 나는 자주 악몽을 꾼다. 교련 시간인데 무기고에 갔더니 내 총이 부러져 있다. 다른 아이들은 각자 총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고 있는데. 또 어떨 때는 출석부를 들고 아침 조회하러 가는데 도무지 교실을 찾을 수가 없다. 헉헉대다 깨어나면 휴 모든 게 끝이다. 아침이 참으로 평화롭다. 내 방이 더없이 아늑하다. 어느 선사의 말처럼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극락’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역사는 깨어나고 싶어 하는 악몽과도 같다’고 했다. 인생은 참으로 살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 켐벨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려는 존재라고 했다. 또 장자는 ‘삶은 살아야하는 신비이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 숙제를 하듯이 산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지쳐있다. 니체는 인간 정신에 대해 3단계의 변화를 말한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헉헉대며 걸어가는 낙타의 운명을 거부해야 한다. 짐을 벗어던지고 사자처럼 포효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항상 즐거운 ‘아이’가 되어야 한다. 즐거운 아이가 되려면 낙타의 꿈, 사자의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악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꿈에서 깨어나면 우리는 순식간에 최고의 인간, ‘아이’가 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풍경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들이다. 갓 태어난 아기 눈엔 자신과 사물들, 사물들과 사물들이 구별되어 보이지 않는다. 혼돈이다. 그러다 의식이 커가며 바깥에 풍경이 태어난다. 삼라만상은 우리 의식이 창조한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의 작용에 불과하다. 즉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한 괴로움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 마음은 항상 모든 것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악, 미추, 길고 짧음, 높고 낮음 등등. 따라서 꿈속에서는 이 이분법의 감옥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성철)로 보일 때까지 우리는 고통스럽다. 맑디맑은 물엔 삼라만상이 그래도 비친다. 우리 마음이 맑디맑아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 때,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희로애락의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장자는 지극한 즐거움은 즐거움 없음(至樂無樂)이라고 했다.  
132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개산양백 박희용 file
편집자
1040 2013-02-27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개산양백 박 희 용 1987년 강경대-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6월 항쟁이 이룬 5년 단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래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5명의 25년 치세가 지나고 2013년 2월 25일에 여성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정치사에서는 이어지는 이 기간을 제6공화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1948년 8월 건국 이후 1987년까지 40년 동안에 무려 5번의 공화국이 성립하였다는 것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치사가 그만큼 험난했다는 증거이다. 헌법정신인 민주주의에 비교적 충실했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은 1960년 4월부터 1961년 6월 까지 장면정부 1년과 1963년부터 1970년까지의 박정희 대통령 당선과 재선 기간 8년, 합하여 채 10년이 안 된다. 나머지 30년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이 철권을 휘두르며 문민독재, 군벌독재를 한 기간이다. 요즈음 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대가 흘러 수명을 다한 87년 체제를 접자고 하는 논의가 일고 있다. 여야 공히 이미 4년 중임제를 골간으로 한 개헌론을 말하고 있으며, 새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17년 경에는 개헌이 공론화 할 것 같다. 그런데, 제6공화국을 지탱한 87년 체제의 골간인 5년 단임제의 장점을 새삼스럽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5년 단임제를 함으로써 대통령들 개인적으로는 재선과 장기독재에 대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어 퇴임한 뒤에도 안전한 여생을 보낼 수 있으며 나라 전체적으로도 신선한 세력으로 수뇌부가 교체되어 국가의 활력이 계속될 수 있다.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측에서 말하는 정책의 연속성 문제는 정당정치를 정상화, 활성화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은 일단 당선되고 난 다음부터는 여당을 권력의 들러리로 만들려고 욕심을 내었다. 그러다보니 정당정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제 2013년부터는 정부-국회-법원의 3권 분립이 분명히 이루어지고, 국회가 국가 운영의 중심으로 두렷하게 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개헌론이 전개될 경우에, 정당정치가 정상화 되기 위한 방안으로서 각료의 과반수를 대통령 소속 국회의원이나 당원으로 하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재작년 여름에 박원순과 안철수 두 사람이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서울시장이 되어 서울을 변화시키겠다”라는 말을 하며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하였다. 박원순은 시민운동가로, 안철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살아있는 위인으로 실릴 정도의 벤쳐기업인으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사회적인 명예를 누리고 두루 존경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울시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개인이 사회적으로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여도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정치 지도자가 한 번 잘못하면 그 피해가 사회적, 국가적으로 엄청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인 우중정치 속에서는 소수의 깨어있는 유권자들의 힘이란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유권자 앞에 나서서 그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다행히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어 직무를 성실히 수행 중이고, 안철수는 비록 지난 번 대선 도중에 사퇴하였지만 한국정치의 미래 주자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어 나라의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들이 정치의 중요성을 늦게나마 안 것은 다행이다. 한국정치사에서 30년 동안의 독재기간을 갖게 된 근본 원인은 소수의 책략에 이용당한 우중정치 때문이다. 부정선거가 횡행하였지만 다수가 지지하였기에 이승만 정권이 유지되었고, 3선 개헌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는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으며, 전두환의 7년 임기 체육관 선출 개헌안 역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부정과 강압이 있었지만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통과의례가 성립할 수 있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한열 열사의 세 번 죽임이 폭로되지 않았다면 4 ․ 19 혁명과 6월 항쟁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승만의 형식적 사과와 문책으로 흐지부지 수습되어 이승만은 계속 권좌에 앉았을 것이고, 하나회 군벌을 동원한 탄압책으로 민심을 꺾은 다음에는 적당한 절충헌법을 만들어 야당과 민심을 달랜 뒤 전두환의 난 때 회맹한대로 장성들이 돌아가며 해먹고 있을 거다. 그만큼 우리나라국민들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다. 인성이 착하다고 할까 용하다고 할까, 독재를 용인, 묵인 하다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나서주겠지 눈치 보다가, 김주열과 이한열이가 처참하게 죽은 뒤에야 폭발한다.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에서도 감정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하였다. 여당 진영에서는 복고 감정이, 야당 진영에서는 복수 감정이 끓어 넘쳤다. 특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가진 세 번째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정원 여직원 인권’을 운위하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이어서 밤 11시에 경찰청장이 가진 사건 중간발표는 촉각을 곤두세웠던 민심의 향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선이 끝난 지금엔 그 사건이 진실로 판명 났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지 아니한가. 박 후보가 오판하도록 경찰에서 오류 정보를 제공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선거 전략상 부정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중요한 대선후보토론회에서 말을 잘못 한 것은 사실이다. 이 사건은 국가기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덮어 질 수도, 덮어서도 안 된다. 대충 원만하게 정리하면 정보권력이 국가권력을 농단할 수도 있는 면역을 남기기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분명하게 정리하여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의 그 발언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하여 지식인들이 제기하는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나의 마음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국정원을 수술하여 진정으로 나라와 겨레에 충성하는 국가조직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선 때 공약은 지켜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정신이고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말이 허탕하면 사람이 허탕하다. 정치는 말이므로 말이 허탕하면 정치가 허탕하다. 정치가 허탕하면 국민들이 고단하다. 뿐만 아니라 말한 그 정치인의 인생도 허탕하다. 공약은 정치인의 말의 결집이다. 허탕한 말로 꾸민 공약으로 당선된 자는 결국 망조로 든다. 공약은 꼭 이행 할 것만 주장해야 하고, 그 공약으로 당선되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하늘을 두 쪽 낼 자신이 없으면 엎드려 싹싹 빌어야 한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 궁정동 안가에서 심복부하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지 33년, 한 세대가 지나 그의 장녀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갔다. 후세 사가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상반된 두 개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누구나 공과 과의 두 면을 갖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그 편차가 명료하다. 국민들은 편을 나누어 상반된 측면을 갖지만 가족은 과는 작게, 공은 크게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당연하다. 하지만 공인과 사인는 엄격히 구분해야 하고, 더구나 나라의 대통령이 된 입장으로서는 아버지를 공적존재로 보는 눈을 가져야만 한다. 즉 과는 과대로 공은 공대로 보되, 과는 보충하여 해소시키고 공은 늘여서 빛나게 하겠다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 아랫대의 도리일 것이다.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빈다. 비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 사는 즐거움으로 박근혜 정부가 잘 하기를 봐야 한다. 이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들이 행복하다. 그래야 박근혜 개인사도 영광되고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도 편안할 것이다. 5년 참 짧다. 자연의 시간에 비하면 인생은 수유이고, 인생 팔십에 비하면 5년 임기 순간이다. 순간이지만 영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가의 능력이 아닐까.  
131 순응과 불화/권서각 file
편집자
1396 2013-02-16
 순응과 불화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가 있다. 주인공 윤영감은 친일을 하여 거부가 된다. 부자지만 인력거꾼과 운임을 가지고 다투는 노랑이다. 졸부가 흔히 그러하듯이 윤영감은 그의 미천한 가문을 우뚝 세우기 위한 꿈을 꾼다. 그의 꿈은 그의 손자가 군수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자를 군청에 취직을 시킨 다음 총독부 관리에게 교섭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경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이 온다. 그의 손자가 사상관계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상이란 일본식민지통치에 반하는 불온한 사상이다. 윤영감은 이렇게 독백한다. ‘이런 태평천하에 왜 그런 짓을 해?’ 채만식의 또 다른 소설 ‘치숙(痴叔)’이 있다. 바보 아저씨란 뜻이다. 주인공 ‘나’는 보통학교 4년을 다닌 사람으로 일본인 상점에 취직해서 일한다. 생활방식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일본인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 ‘나’는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아저씨가 사회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일로 경찰에 불려 다니고 취직조차 하지 못하고 거지꼴로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그런 학벌을 가졌다면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를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일본인들이 물러갔다. 거리에는 태극기의 물결이 넘실대고 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해방이 된 이후 우리는 윤영감이나, ‘나’와 같은 사람을 친일파라고 부르고, 윤영감의 손자나 아저씨와 같은 사람을 독립운동가라 불렀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친일파의 후손들과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조상이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기 때문에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명목상 해방이 되었지만 완전한 해방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친일인명사전’ 발간하는데도 친일파의 거센 저항을 받아야 했다. 친일파와 시대에 순응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그래서 오늘의 현실도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기회에 참석했다. 160여명의 동기생들 가운데 해마다 50여명의 친구들이 각지에서 모인다. 초등학교 동기회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옛날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두가 소중한 동무들이다. 그런데 한 친구가 너는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정치 이야기는 하나마나이고 하다가 보면 끝판에는 다투기 마련이기에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꾸 묻기에 아마 자네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친구들은 이른바 5060세대이니 물으나 마나다. 친구가 말했다. “내가 누구를 지지할 것 같은가?” “자네들 모두 1번 아닌가?” “당연히 1번이지. 그럼 너는 아니구나, 너 이 새끼, 다음부터 동기회에 나오지 마!”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년에도 동기회에 나갈 것이다. 채만식의 소설에 나오는 윤영감의 손자나 바보 아저씨는 이른바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자이다. 늘 현실과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성찰하고 비판하니까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태도를 시대에 순응하는 자들은 삐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비판적인 자들에 의해서 진화한다. 비판 없는 사회는 정체되기 마련이다. 이번 대선을 결정지은 사람들 가운데는 소신을 가지고 후보를 선택한 분도 있겠지만 주로 내 동무들과 같이 시대에 순응하는 사람들이었다. 시대와 불화하는 자들은 앞으로 몇 년간 멘붕(mental 崩壞)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