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3호...
   2019년 1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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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한국사의 분기점 1801년, 그리고 2012년/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771 2012-10-21
 한국사의 분기점 1801년, 그리고 2012년 양백산인 박희용 인조반정 이후 300년 동안 조선의 집권 주류 세력이 된 서인이 분화한 노론과 소론, 시파, 벽파의 파쟁도 결국 순조 등극 이후부터는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등 몇 몇 문중이 지배하는 세도정치 체제 속에서 소멸되어 버리고, 학문적 교양보다는 천박한 정치적 이해관계 위주의 사고를 하는 외척들의 발호로 인하여 성리학도 차츰 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조 치세 때까지만 해도 움터 자라던 실학의 꽃망울이 신유사옥이라는 독한 꽃샘추위를 당하는 바람에 서학, 천주교와 함께 엮여 절멸하고 말았다.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하는 사건으로 발생한 1791년 11월의 신해사옥이 서론부분이라면 1801년 2월의 신유사옥은 본론 부분, 이해 10월에 터진 황사영밀서 사건은 결론 부분으로서, 이 10년 동안이 천주교사에서는 가장 잔혹한 순교의 시대로 경배 받지만 한국사에서 국운을 가를만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 때 갈 길을 잘 정해야 하는데, 그만 선택을 잘못하는 바람에 200 년 동안 후손들이 개고생을 하게 되었다. 1801년도에만 국한시켜 역사의 책임을 물어보면, 가장 무거운 책임은 정조에게 돌아간다. 그가 좀 더 살았다면 서학과 천주교 문제가 순리로 풀리지 않았을까. 또 순조가 좀 더 장성한 연후에 왕위에 올라 대왕대비의 섭정과 안동 김씨 외척들의 세도정치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이 짧은 걸 어떻게 하겠나, 인명재천이요 나라의 운수인 것을. 정조는 영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순조를 낳은 원빈 박씨라는 밭의 토질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후궁을 들일 때 색기만 보지 말고 영리함을 반드시 살펴야 했는데 살살 꼬리 치니 덥석 물었다가 나온 소생이 나중에 왕위를 계승하니 나라꼴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조선 초기에는 여덟아홉 명씩 생산하던 씨와 밭이 중기로 접어들면서 시들시들하더니 명종 대에 와서 씨가 부실해지고 밭이 척박해지면서 정비 출생이 귀하게 되었다. 이성계의 혈통이 무반이고 상대 할아버지가 여자를 탐해 삼각관계를 하다가 쫓겨 간 것을 보면 정력 하나는 확실하게 센 모양인데, 거기에다가 함경도에서 백여 년 동안 여러 대에 걸쳐 여진족의 밭에다 씨를 뿌렸으니 오죽 튼튼했겠는가. 그러니 정실 소생으로 팔 왕자 구 왕자 생산은 거뜬했고 공주, 서자, 옹주들은 부지기수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토록 튼튼하던 씨도 고량진미에 운동부족, 매일 밤 침소에 궁녀를 갈아들이기를 몇 대 동안 계속하니 어찌 무쇠 같은 씨인들 비실비실 녹아나지 않겠는가. 이런 이치로 하여 중국의 왕조는 길어야 3백 년, 거의 2백 년 기간 동안 십 몇 대 정도의 왕 다음에는 자연적으로 쇠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곤 다시 튼튼한 씨가 폐허에서 자라고. 그런데 조선은 두 배인 5백 년이나 왕조를 유지한 까닭은 왕씨의 부실에도 불구하고 봉건왕조를 떠받드는 사대부들의 골수에 충효정신이 꽉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즉 성리학의 명분론 때문이다. 조선 초기에 태종, 세종, 명종 같은 영리한 왕들과 기득권 계급이 고삐 하여 꿴 ‘고려 충신 정몽주’, ‘절의충신 사육신’이라는 명분, 성리학의 제일 교조인 충효와 불사이군의 명분 앞에 왕에 대한 불경은 전혀 용납될 수가 없었다. 중종의 후궁 소생 아들에서 난 방계인 선조가 왕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효종과 현종 등 몇 말고는 줄줄이 후궁 소생. 왕통이 미약하니, 나중엔 씨가 말라 강화도에까지 가서 씨를 빌려올 지경이 되니 자연적으로 궁중에선 왕위 계승을 노린 암투가 벌어지고, 그에 연통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대부들의 정쟁이 격화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이걸 보면 중기 쯤 되어 경국대전을 수정하여 신권 강화 구조를 만들든지, 그게 안 되면 태종처럼 절대왕권을 휘두르든지, 약한 씨가 도저히 튼실해질 가능성이 낮거나 없으면 아예 씨를 바꾸든지, 양단간에 결단하였더라면 나중에 20세기를 사는 후손들이 왜놈들의 종노릇을 안 해도 되었을 것이 아닌가. 늦어도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중반엔 정치혁명이든 역성혁명이든 있어주었어야 백성들의 삶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반역이나 민란 같은 소요는 제외하고, 인조반정에 반대한 이괄의 난이나 홍경래의 난이나 동학혁명 같은 것이 성공하여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였더라면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다. 소설이지만, 임진왜란의 일등공신으로 온 백성들의 흠모를 받던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 모진 마음으로 살아남은 다음, 전라좌수영과 우수영을 기반으로 한 세력을 동원하여 이성계처럼 새 왕조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이성계가 새 하늘을 열 수 있었던 까닭은 백성들과 사대부들의 전폭적인 신망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신망은 그가 평생토록 남북강산을 종횡으로 쏘다니며 황건적, 왜구 등의 침략을 막아낸 훌륭한 장수였기 때문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썩은 고려를 베어내고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에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성계의 반란’이 아니고 역성혁명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순신이 서해와 남해의 뱃길을 막아 수운에 능한 왜적들이 바다 길로 군대와 군수품을 조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궁핍케 하여 죽어가는 조선을 간신히 살려놓았으니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이성계와 비교한다면 왕권이 튼튼했고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점이다. 이런 점을 염려해서 선조는 이순신을 죽이려 했고, 정유재란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이순신은 군자답게 최선을 다해 왜적을 물리친 다음에 스스로 죽어 멸문지화를 막고자 한 것 아니겠는가. 두 번째 책임은 대왕대비 김씨에게 돌아간다. 자기가 직접 낳은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열두 살 순조가 왕이 되고 오랜 기간 동안 섭정을 하면서 자기 친정 쪽 사람들을 중용하여 왕권을 미약하게 한 원죄가 있다. 명분과 능력도 없이 문중 출신 대왕대비 덕분에 꿰찬 벼슬자리는 토색질하여 재물을 긁어모으는 아주 유효한 갈퀴였을 뿐이다. 달달 긁힌 조선의 백성과 강산은 피골이 상접할 수박에 없었다. 아마 자기 친자식이었으면 출가외인 의식이 투철해 순조의 왕권을 보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보수적인 신료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신유사옥을 일으키도록 한 것은 역사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1801년의 상황을 2012년에 대입해 보자. 정조와 대왕대비 김씨, 그리고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등의 척족들,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대통령, 여당, 야당, 언론, 군부, 등 등.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차이뿐이지 정치 구조와 정치인들의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1801년에 태평성대는 고전 속의 꿈이었고 현실엔 파벌 간에 권력 투쟁이 치열하였다. 2012년에 민주주의는 교과서 속의 수식어일 뿐이고 현실엔 파벌 간에 권력 투쟁이 치열하다. 군주제냐 공화제냐 하는 옷의 차이만 있을 뿐 알몸이기는 똑같다. 그 알몸도, 여유가 있으면 교양을 꾸미지만 조금이라도 몰리면 냉큼 감춘 발톱으로 상대를 할퀴어버린다. 남북분단과 대결의 구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완전히 궤도에 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말로 괜찮은 인물들이 대대로 대통령직을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보니 평온한 타입보다는 역동적인 타입의 인물이 대통령으로 추대 또는 선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통일이 되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두 달이 안 되게 남은 대통령 선거, 빅 3의 행진이 귀와 눈을 어지럽힌다. 그래도 이번 선거는 지난 2007년과는 달리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이 좀 넓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20년 이상씩 내공을 쌓은 후보들이라 깊이와 무게가 있어 보인다. 모두다 우리나라에서 정한 공교육을 알차게 받은 분들이니 얼마나 지식과 교양이 충실한 분들이겠는가. 그러니 안티니 네거티브니 티격태격 하지 마시고 정책과 의지로 멋진 한판 승부 펼쳐 국민들로 하여금 감동토록 하시라. 누가 무어라 해도 역사는 앞으로 걸어간다. 반역이 한 때 발목을 잡아도 진화하는 민중의 에너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린다. 이제 누구나 시대정신이란 말을 쉽게 이해하고 자주 입에 올린다. 큰 목소리로 “과거를 묻어 거름하여 미래를 도모하자”. 2012년은 1801년의 잘못된 선택은 말고, 활연히 민족통일과 번영을 향하여 걸어가시라.  
119 속 보이는 이야기 file
편집자
1330 2012-10-15
 속 보이는 이야기 권석창 우리 손자는 말이야, 귀찮아 죽겠어. 아직 학교에도 안 갔는데 자꾸 책을 사 달라네. 조그만 놈이 글을 알아 가지고 말이야. 나만 귀찮게 해. 이건 속 보이는 이야기기는 하지만 귀엽기는 하다. 어떤 이의 말이나 행동이 겉과 속이 다를 때, 그 다른 점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때 우리는 ‘속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 보이는 말을 들 때 혹은 속 보이는 행동을 접할 때 드는 이가 민망해지고 말 하는 이가 참으로 딱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어떤 국회의원이 자신의 청치 생명을 걸겠다며 한 말이 뉴스의 첫머리를 매일 장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할 때 비밀 회담을 했는데 그때 NNL(서해 북방한계선)을 다시는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국가원수가 NNL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의 영토를 적에게 내준다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비밀 녹취록이 있으니 보면 알 것이 아니냐고 부르댄다. 겉으로 드러난 보도를 들으면, 노무현은 김정일에게 우리의 영토를 넘겨주려는 매국노이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문재인도 같은 매국노인데 어찌 이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뉴스가 날마다 텔레비전의 앞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이 발언을 한 국회의원의 생각과 텔레비전방송 책임자의 속내가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국회의원 주장대로 국정감사를 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아니다. 대통령관련 문서는 15년간 누구도 열람할 수 없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설령 열람을 한다고 해도 외교관례상 우리는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의원도 이런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그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로 돌아가 보자. 사실 NNL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남북의 충돌이 가장 잦은 곳이었다. 노무현은 남북정상회담 당시 휴전선은 법적으로 북한과 미군이 휴정협정에서 체결한 경계선이 맞지만, NNL은 미군이 작전 금지구역으로 남한군이 올라가지 못하게 설정한 선이다, 이것을 국경선이라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헌법에는 북한도 우리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당시에도 한나라당은 충격적인 발언이라고 펄쩍 뛰었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노무현 발언을 다시 끄집어낸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노무현은 당시 남북정상회담에서 NNL지역을 남북이 함께 고기를 잡을 수 있는 평화어업지역으로 만들어 남북의 이익도 도모하고 상호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고 개성공단과 해주 지역에 우리배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이것이 노무현의 생각이었다. 사실 노무현의 뜻대로 되었다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은 연평도 지역의 충돌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연평도 주민은 NNL지역에서 중국 어선들이 고기를 잡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한다. 우리 어민은 고기도 잡지 못하고 군사적 긴장으로 불안에 떨기만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다시 노무현 발언을 다시 문제 삼는 그들의 속은 무엇일까? 우리사회에는 북한 말만 들어도 펄펄 뛰는 사람들이 지배적으로 많다. 북한이니 남북화해니 하는 말만 하면 빨갱이로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것이 모두 표로 연결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간첩이 잡히고 북풍이 불고 총풍이 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속내를 들키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인)  
118 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성격대로 살라(마르크스) file
편집자
1841 2012-10-09
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성격대로 살라(마르크스) 숟가락은 밥상 위에 잘 놓여 있고 발가락은 발끝에 얌전히 달려 있고 담뱃재는 재떨이 속에서 미소 짓고 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이성복,「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들은 그 당시에도 별로 힘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들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그 불편함이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참으로 신났다. 동네 또래들과 꼴을 베고, 냇가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고, 어둑한 골목길을 쏘다니고,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고. 눈이 가득 덮인 산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신나던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말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학교가 읍의 변두리에 있어 읍내 아이들과 우리는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다. 보자기를 메고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우리는 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콧물이 반질반질한 옷소매를 뒤로 감추고 나는 그들이 신나게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날 교실에서 한 아이가 처음 보는 하얀 얇은 종이 뭉치를 가져왔다. 나는 그 종이를 보고 저건 상처에 붙이는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코웃음을 치며 똥 누고 뒤를 닦는 거라고 말했다. 아! 나는 그 뒤 어디가면 말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얌전하고 조용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웃으려 해도 얼굴이 일그러지기만 했다. 쭈뼛쭈뼛 물 위의 기름처럼 아이들 속을 동동 떠다녔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공상이 난무했고 나는 그 공상 나라에서 버텼다. 결국 이 세상에서 튕겨 나오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대로’ 살아 보았다. 학창 시절에 못 해보던 것들을 다 해보았다. 문학 공부하며 밤새껏 술도 마셔보고, 밤거리를 휘젓고 다녀보기도 하고, 그러다 패싸움도 해보고, 경찰서에 끌려가 보기도 하고, 멀찍이서 보기만 하던 데모대에 끼여 도심거리를 행진해 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어깨 걸고 민중가요를 목청껏 불러보기도 하고, 최루탄 냄새를 피해 지하도로 도망가 보기도 하고....... . ‘지랄’을 몇 년 동안 한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랄의 양은 정해져 있다더니 청소년기에 못한 것을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했다. 그때 나는 아내와 아이를 둘이나 둔 가장이었다. ‘겪어야 할 발전 단계’를 겪고 나니 맑디맑은 내가 보였다. 그렇게 힘들었던 학창시절도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세상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아, 바로 내 성격이었다. 성격이 운명이었다. 융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융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그 이유를 찾다보니 성격을 연구하게 되었단다. 내 성격을 알고 나니 그 동안의 모든 나의 고통이 이해되었다. 나의 모든 고통은 내 자신이 내 성격대로 살지 않은 업보였다. 나는 여러 방면의 공부를 하며 내 업보를 풀어나갔다. 결국은 글을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하며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신나는 아이’로 돌아갔다. 융은 말한다. 인간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사람들의 성격이 여러 형태로 진화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사람은 각자의 성격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된다. 성격대로 신나게 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이제 나는 실컷 울고 난 아이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다. 내가 고토록 찾아 헤맸던 삶의 비의는 바로 이거였어!  
117 유교적 달관의 방법/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194 2012-09-22
 유교적 달관의 방법 양백산인 박희용 유교와 유학은 동의어이기도 하면서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나무 한 줄기에서 갈라진 두 가지처럼 같은 자양분을 먹으며 자라지만, 가지가 뻗어갈수록 추구하는 목표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그럼에도 금장태 박사는 꾸준히 ‘유학’이란 말 대신 ‘유교’란 말을 즐겨 쓰며 『유학사상의 문제들』 37p 27행에서 다음과 같이 ‘유교적 달관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한 인간이 죽으면 마음과 육신이 분리되고 사라져 가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것은 부분적 사실이요, 다른 부분에서 그 인간은 그의 혈통을 이은 후손에로 그의 생명이 이어진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일부분은 죽음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놓이고 나머지 일부분은 후손의 생명을 통하여 이어져 가는 것으로 받아들임으로 자기존재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죽은 뒤에 불멸하는 것은 육신도 영혼도 아니다. 다만 육신과 영혼이 돌아가는 우주 그 자체가 영원하고 후손에로 이어가는 생명이 무궁할 수 있다. 유교적 신념에서는 한편으로 인간의 죽음이란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요, 자연에로 돌아가는 것이라 확인하여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후손으로 무궁히 이어진 핏줄의 생명 속에 자신이 부분으로 살아있다는 확신이 죽음에 대한 유교적 달관의 방법이다.」 금 박사의 오랜 내공이 쌓인 위의 말을 비빌 언덕으로 하여 서학,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과 비교한 ‘유교적 달관의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인간은 육신과 정신의 합일체여서 그 둘 중 하나가 상실되면 이미 인간이 아니다. 육신이 상실되면 기껏해야 ‘누구의 魂’으로 불리고 정신이 상실되면 하등 동물이나 살아있는 肉塊로 취급된다. 인간이 숨을 마치면 육신을 이루었던 물질들은 빠르게 분해되어 우주 속으로 환원되고 육신에 퍼져있던 신경계의 감각과 의식은 소멸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두뇌 역시 육신의 일부로서 활동을 종료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저장된 정신의 결정들, 즉 魂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하여선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초기유교 등에서는 육신이 멸하여도 정신은 영혼의 옷으로 갈아입고 시공간 어느 때 어디서든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진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유일신이자 절대적 주재자인 야훼 휘하에 모든 영혼들이 포함된다는 교리를 가지나 불교와 유교는 주재자를 인정은 하되 그 강도가 약한 편으로 영혼 하나하나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인정되고 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에서는 주재자의 수명은 무궁무진하나 일반영혼들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다고 보면서도 그 기간을 명시하지 않는데, 몇 대 위의 조상에 대한 제사가 없고 나의 바로 앞대의 영혼에 대한 추도식만 있으므로 바로 앞의 영혼만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주재자의 수명 역시 무궁무진하나 일반영혼들은 위로 4대손까지 약 120년간 유효하다고 여겨 정성스레 제사를 모신다. 기독교와 천주교에서는 주재자인 야훼를 믿는 영혼은 천당으로, 반기독교인 영혼은 지옥으로 가 머문다고 하면서도 때가 되면 부활하여 다시 사람이 된다는 영혼불멸설을 말하고, 불교 역시 공덕 덕분으로 극락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거나 죄업 때문에 지옥에 가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후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짐승이나 벌레 등으로 태어난다는 윤회설을 말한다. 그에 비해 유교는 부활이나 윤회를 말하지 않고 소멸을 말할 뿐이다. 물론 기독교, 천주교, 불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 부활과 윤회란 어리석은 대중들을 상대로 한 교화 차원의 도구요 방편이다. 그러나 그 도구와 방편들이 초기엔 유효했을지 몰라도 인지가 발전하여 분별력이 향상되면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종교가 자꾸 쇠퇴하면서 사회적 통제의 자리를 법과 권력에 내주게 되었다. 유교에서 제사를 인정하고 정성껏 지내는 까닭이 경험적 사실에 기반 하지 않고 영혼이 120년간 흩어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영혼이 120년간 유효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체험하거나 증명한 사례는 전무하다. 단지 인간은 육신과 정신이 함께 이루어진 존재인데, 죽으면 기의 집합체인 육신의 소멸은 확실하지만 리인 정신의 소멸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리 존중 차원에서 가상한 것이 영혼 120년 유효론인 것이다. 그릇이 깨지면 물이 새 흩어지듯 육신의 기가 흩어지면 정신의 리 역시 흩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즉 영혼이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제사논리란 가상의 것이다. 그에 따른 풍수지리설, 음택론, 조상복덕설, 감응설, 제수설 등 모두 그 가상의 논리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단지 제사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이라면 ‘부모를 통하여 조상과 연결되고 자식을 통하여 후손으로 연결되는 한 매듭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게 하는 점이다. 제사를 통하여 현재의 시공간에 살고 있는 유전적 존재로서의 자기실존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고 조상의 뜻을 이어받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역사적 연결고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제사를 통하여 자신과 가족, 친척들의 심성을 순화하고 윤리도덕을 신장할 수 있으며 문중의 친목과 단결을 돈독히 하여 사회 속에서 건전한 한 부분으로 생활하게 할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제사가 조상 자랑이나 행세의 방편이 되어선 안 되겠지만 훌륭한 조상에 대한 긍지와 든든한 문중에 대한 자부심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좋은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제사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제사가 복잡한 현대문명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먼저, 꼭이 영혼 120년 유효설에 근거한 4대 봉사를 강조할 것은 없다. 그것을 고수하는 가정은 그대로 계속하고, 일반의 가정들은 바로 윗대 또는 할아버지 대까지 지내는 것이 알맞다. 왜냐면 살아서 대면할 수 있는 분들이 할아버지 때까지이기 때문에 그분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물론 그분들이 평소엔 하늘에서 자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횡액을 막아주고 복을 내리다가 제삿날에 자손의 집에 와 제수를 감응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해주시도록 바라는 자손들의 마음일 뿐이다. 제수 문제에 있어서도 과중한 음식 장만과 심리적 부담이 있다. 기일을 잊지 않고 추모하려다 보니 자손들이 모이게 되고, 제군들이 많다보니 음식을 많이 장만하게 되고, 음식을 많이 장만하다보니 이것저것 제상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제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제군들을 직계로 한정하고 제상에 간소하게 올리면서 제군들이 간소하게 식사하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며느리들의 과중한 심적 부담과 신체적 부담을 덜어주어서 제사가 조상 추모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제사 올리는 시간 역시 시대 상황과 제군들의 생활에 맞춰 일몰 직후로 하고 곧 이어 저녁 식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제사 올리는 순서도 가가예문이면서 간소하게 해야 한다. 장례 문제에 있어서도 삼일장으로 하고 부고의 범위를 친척과 지인들로 하며, 화장하여 평장으로 하고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서 후손들로 하여금 추억은 하되 매년마다 관리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얼굴을 아는 후손들이 죽은 다음에는 그 비석조차 저절로 쓰러져 묻힘으로서 모든 흔적을 말끔히 지워야 한다. 또한 원에 따라 수목장이나 풍장을 할 수도 있지만 강물이나 바다에 띄우는 것은 2차 오염 때문에 하지지 말아야 한다. 제사를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 유일신이냐 가신이냐 하는 문제로 보는 것은 좁은 관점이다. 조상이 있으므로 자손이 있는 것은 인간 역시 생물인 이상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만고의 진리이므로 죽은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손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조상의 영혼이 자손을 보우해주면 더욱 좋은 일이지만 영혼 자체가 없으므로 도움을 받을 일이 전혀 없으니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또한 조상이 살아있을 때도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성모님’만 숭배하고, 조상이 죽어서도 당대만 추모는 하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 숭배하면 되는 것이지, 일반 사람들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상숭배, 심지어 악마를 모시는 것이라고 하는 기독교와 천주교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멀게는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낳아주셨을지라도 가깝게는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고 애써 키워주셨으므로 살아계신 부모님께는 효도를 다하고 죽은 부모께는 간소한 제수와 차례로 제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인간의 도리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산 아버지보다 ‘하느님아버지’를 더 소중하게 받들고, 죽은 아버지는 내팽개치고 아득한 ‘하느님 아버지’를 추모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에 예수가 식민지배의 고통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가족과 이웃, 유태 민중들을 보며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인간의 도리를 생각한 바와 크게 다르게 변질되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개화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전통 유교사회와 충돌이 없었으나, 천주교는 17세기 초에 이 땅에 들어온 이후 18세기 말까지 약 150여 년간 잠복기를 가치는 동안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었으나, 교세가 팽창한 18세기 말부터는 유교 전통사회와 크게 갈등을 일으키면서 충돌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 때까지 서학 대접을 받으며 비교적 잠잠하던 천주교가 사회적 여론이 악화되어 조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탄압을 받게 된 것은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유교의 상례와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운 사건 때문이다. 이전까지 그래도 제사를 지내던 그들이 제사를 폐한 까닭은 1790년 북경에서 윤유일을 통해 보내진 질문에 대해 유교제사를 금지를 지시한 구베아 Gouvea 주교의 회답이 조선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사 문제에 대한 천주교 측의 지시가 어떠했는지 제19장 <제사문제와 유교 ․ 천주교의 이해>의 323p에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살펴보면, 제사 문제에 대한 대응이 처음부터 일관되지 않고 때때로 상반되게 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조선의 천주교인 역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조선 사회 역시 큰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고, 민심을 한 곳으로 모아도 감당해내지 못할 대격변의 19세기 100년 동안을 국론분열과 민심 이반의 내부투쟁으로 지새면서 국력을 갉아먹게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20세기의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을 겪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천주교가 명말 중국에 전래된 초기에는 예수회의 마테오리치에 의한 補儒論 내지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공자와 조상에게 드려지는 유교전통의 제사를 신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감사와 추모로 보면서 묵인하였다. 그러나 뒤따라 예수회 내부에서도 이견이 생겨 도미니꼬회와 프란치스꼬 회에서는 공자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숭배로 비판하면서 이른바 의례문제 Quaestio de Ritibus라 일컫는 논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황청도 선교단체의 상반된 주장에 휘말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1645년 9월 12일, 제사금지령을 내렸고 1656년 3월 23일, 교황 알렉산더 7세는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유교제사를 묵인하는 허용령을 내렸다. 다시 교황 클레멘스 Ⅱ세는 1704년 1월 20일, 제사에서 神位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死者의 이름만 사용할 것을 허용하였으며, 1715년 3월 19일, 더욱 강경하게 제사를 금지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742년 7월 11일, 교황 베네딕또 14세는 1715년 칙서를 재확인하여 제사금지령을 확립하는 칙서를 반포하여 100년간의 의례논쟁을 종결짓게 되었다.」 ‘마테오리치에 의한 補儒論 내지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공자와 조상에게 드려지는 유교전통의 제사를 신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감사와 추모로 보면서 묵인하였다.’라는 전래 초기의 제사관이 역시 가장 원만한 관점이었다. 그러나 교세가 확장되면서는 도미니꼬회와 프란치스꼬회가 각자 자기중심적 관점에 따라 제사를 평가함으로써 문제가 꼬이게 되고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즉 배고플 때는 무엇이든지 먹지만 포만해지면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는 것처럼 전래 초기에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발톱을 감추었다가 자리를 잡자 곧 본래의 발톱을 내밀고 제사를 금지하게 되었다. 묵인과 금지가 여러 번 되풀이 되었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천주교 교리 자체가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세 불리하면 적응이라는 미명 아래 숨었다가 세 유리 국면이 되면 까탈스럽게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이기적 교리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에 조선에서 벌어진 제반 상황에 대한 근원적인 책임은 천주교 교리 자체에 있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동방 선교 조직인 북경교구의 구베아 주교에게 있다. 이미 1742년에 제사금지령 칙서가 발표되었기 때문에 윤유일의 문의에 답한 1790년에는 그 칙서를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구베아 주교가 좀더 현명했다면 근본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원만한 응용책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도 갑자기 제사를 폐하는 바람에 당한 탄압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이전까지만 해도 서학에 흥미를 느껴 차츰차츰 연구하다가 천주교를 신앙하게 된 자생적 조선 천주교인의 역사가 두 세기 200년 가까이 됨에도 불구하고, 윤유일을 북경에 보내 구베아 주교의 판결을 자청한 당시의 조선 천주교 지도부들에게 더 깊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학을 통해 알게 된 천주교의 교리에 공감했으면 그 가르침대로 조선의 현실에 적응하면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외국인 중국 북경교구 주교의 유권해석을 구한 것은 그간의 자주적인 천주교 교리 탐구에 대한 불신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천주교가 외부 충격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하고 알찬 성장을 계속하였더라면 천주교도들이나 조선의 백성들 모두가 편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 땅에 뿌리 내린 조선의 천주교로 충실한 조선 교구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외세인 북경 교구 산하에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천주교도들뿐만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와 백성들 역시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한 채 불구가 되고 말았다. 종교의 토착화란 근본교리를 위하여 전통을 거부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의 환경과 전통을 인정하면서 그 속에 조용히 뿌리내리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이 영적인 평화인 이상, 어느 곳에 전래되어 문제를 일으키고 탄압을 초래한다면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물어야지 주변을 탓해선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조선말에 천주교인들이 당한 희생은 물론 안타깝지만 자업자득인 면이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나라보다 지적인 탐구심이 충만한 조선의 사대부들이 왜 천주교도들을 탄압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서학을 묵인했는데도 가장 민감한 제사 문제를 건드리는 천주교에 대항해 유교적 가치를 수호함으로써 봉건사회를 유지하려던 조선 사대부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동양 선교에서 제사 문제가 계속 대두되자 1939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제사금지령이 해제되고, 21세기 초에는 로마 교황청 발표로 제사문제가 해결된 것은, 제사가 꼭 동양 사회에 대한 선교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유교가 지향하고 있는 조상 추모와 공경심이 집약된 것으로 재인식되었기 때문으로, 동양문명에 대한 서양문명의 이해가 더욱 깊어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神主 문제 역시 조상을 상징하는 하나의 表物로 봐야지 거기에 무슨 조상귀신이 깃들어 있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의미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십자가, 불교의 불상의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물론 신주가 십자가와 불상이 갖는 전체적 의미와는 비중이 다르다. 하지만 크게 의지하고 보살핌을 받는 유일신이나 자연이 물론 중요하지만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조상신 역시 소중함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신주를 모시든 안 모시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작은 단위인 가정사 차원인 작은 일이고,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경배하는 것은 사회적 차원의 큰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에 절대자인 유일신만이 존재할 뿐 다른 신들은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거나, 무슨 작은 귀신, 큰 귀신의 위차와 우열을 따지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인간들의 하찮은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몇 십 년마다 인구가 폭증하여 현재로 약 70억이나 되는 데도 불구하고, 혼자인 하느님은 정말로 바빠서 지상의 인간 하나하나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지만, 각 가정의 조상신들은 자기 후손들만 챙기고, 각 마을의 동신들은 자기 지역을 챙기고, 지구 위 나라신들은 자기 나라만 챙기면 되므로 전체적 관리자인 하느님에 비해 훨씬 인간들과 가까워 세세하게 잘 챙겨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샤머니즘의 신들 역시 자기가 맡은 나무, 바위, 골짜기, 산, 물, 집, 방, 길, 모퉁이, 바다, 못 등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함으로써 자기를 숭배하는 인간들에게 보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신교의 교리대로, 유일신만이 존재하더라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는 이상은 작은 귀신들이 존재할 수밖엔 없다. 유일신이 찬송가와 기도, 꽃으로 숭배 받을 때 영혼들이 그 뒤에 시립해 있으므로 함께 숭배 받는 것과 진배없다. 즉 십자가 속에는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의 영혼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 이래 죽은 모든 영혼들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신주 속에는 조상신만이 단출하게 들어있으므로 숭배의 범위가 좁고, 십자가 속에는 하느님과 예수가 크게 들어있으므로 숭배의 범위가 광활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가정이든 교회든 대표인 십자가에 추모를 하고, 유교사회에서는 가정 단위로 자기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십자가와 신주는 크든 작든,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생명의 원천에 대한 고마움의 상징이다. 그렇게 하느님과 조상에 대해 경건한 정성을 표현하는 의례에 문화적 우열의 차이가 언급될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부정이요 불경이다.  
116 일본은 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가?/권서각 file
편집자
1519 2012-09-17
 일본은 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가? 우리를 가장 화나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독도 문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발견되고 있는 고지도를 살펴보아도 분명히 독도는 우리 땅이다.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경상북도 울릉군의 땅이다. 대한제국 때에는 일본의 어부들이 독도에서 전복을 따고 강치를 잡기도 했다. 일본 어부들이 독도에 올 때는 일본에 출국허가를 받아야 했고 어획물을 판 수입에 대해서 울릉도 도주에게 세금을 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증거다. 한반도를 침탈하기 위한 러일전쟁 때 일본이 무단점거 하였다가 한일합방이 되면서 한반도와 함께 독도는 일본의 식민지 영토가 되었다. 광복이 되어 일본이 물러가면서 독도는 다시 한국 땅이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점거한 땅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며 사실상 우리의 해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 있다. 일본이 패망하여 한반도에서 물러갔으니 당연히 우리의 국토는 우리의 것이 되고 독도도 우리 땅인 것이다. 일본에 우호적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갑자기 독도를 방문하면서 일본은 다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무슨 근거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승만 시대부터 일본은 한일회담을 시도했지만 이승만 정권도, 장면 정권도 일본과는 수교를 하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 침탈의 잔혹함을 우리 국민이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정희는 5.16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대학생들의 반대 데모에도 불구하고, 앞선 정권에 비해 턱없이 불리한 조건으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했다. 한일청구권자금이라는 것과 정치자금 6,600만 달러를 받고 일본 식민지 통치를 용서했다. 한일회담 과정에서 마지막 남은 협상 안건이 독도문제였다고 한다. 작년에 발간된 ‘독도밀약’(노 다니엘 지음)이라는 연구서에 따르면 독도밀약은 당시 범양상선 박건식 회장의 집에서 김종필의 형 김종락과 일본 건설부장관 고노 이치로 사이에 이루어 졌다. 그 내용은 일본 수상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어 재가를 받았다. 이로써 한일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밝혀진 독도밀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도밀약) 독도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로 본다. 따라서 한일 기본조약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부속조항) 1.독도(다게시마)는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게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확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현재 한국이 점거한 상황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증축이나 건축은 하지 않는다. 4.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이 내용으로 보면 독도는 우리 영토이며 일본의 영토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본에 약속을 한 최종 결재자가 박정희 대통령이시다. 결국 박정희 시대의 독도밀약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분은 일찍이 천황에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다가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하시고 일본육사에 들어가 일본군 장교가 되어 광복군을 토벌하셨다. 이후 오카모토 미노루로 다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 충성하셨다. 지금 그의 생가는 성역화 되었고 서울에 기념관이 세워졌다. 글 권서각. 시인  
115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고석근 file
편집자
1358 2012-09-10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 장 루슬로의 시 <세월의 강물> 중에서 산에서 돌에 눌린 풀을 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돌을 걷어 내자 노랗게 견디고 있는 풀의 몸이 드러난다. 풀이 일어서려 몸을 꿈틀거린다. 언젠간 풀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다시 푸르게 자라날 것이다. 사람은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노랗게 쓰러져 버리곤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어떨 땐 ‘없는 무게’를 느끼곤 쓰러지기도 한다. 사람에겐 ‘생각’이란 게 있어서 헛것을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풀은 자연스레 ‘진초사(盡草事)’를 한다. 그래서 풀은 대천명(待天命)하며 산다. 하지만 사람은 거의 진인사(盡人事)를 하지 못한다. 진인사(盡人事)를 해야 대천명(待天命)을 할 수 있는데, 진인사(盡人事)를 하기도 전에 노랗게 쓰러져 말라버린다. 진인사(盡人事)하여 대천명(待天命)하는 삶은 얼마나 찬란할까? 내 안의 모든 것이 깨어나는 느낌! 우주에 자신이 충만하게 존재하는 신비감! 나혜석은 “나는 실컷 살지 못했어!”하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실컷 살지 못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114 거룩한 죽음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 / 강태규 file
무궁화
1403 2012-09-05
거룩한 죽음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 / 강태규/ 위인을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탄생만큼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자연의 섭리만큼 거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계절이다. 88세 까지 팔팔하다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잘 나누고 잠결에 혼백이 떠난다는 것은 큰 복인 것은 분명하다. 객지 생활 속에 가장 부러운 장면들은 여전히 삼대가 같이 사는 고향 같은 터에 자리한 가족공동체들을 보는 것이다. 정치나 경제 뉴스 앞머리에는 지방 어디어디 출신이 어찌어찌 출세하여 나라를 대표하고 기업을 대표하고 청년 때부터 환갑이 넘도록 큰 일꾼이 되어 성공하여 노구를 이끌고도 나라걱정에 몰두하는 장면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소설적인 상상력을 발동하여 가족사의 속살들을 조합하여 들여다보면, 그리 부러울만한 가족공동체 또는 지역공동체의 더부살이에 성공적일까 하는 데는 좀 의심이 든다. 객지의 삶 속에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는 데는 그런 큰 일꾼들에게는 너무 바빠서, 또는 일중독으로 ‘휴’ 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였을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우린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들의 변화들 또한 계절만큼이나 급변하는 시대에 있다. 청량사(淸凉寺) 산 속에도 고밀도 방송수신 접시안테나로 속세를 그대로 들여다본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의 정련된 죽음에 대한 자세들까지 도전받고 있고 그 죽음조차도 인스탄트 일회용 접시요리처럼 값어치가 없어지고 있다. 두 번째, 제도권에 자리한 병원 침상만큼, 들어눕는 환자들도 많지만 그중에 약물연장형(藥物延長型) 노후들도 많다. 불확실한 노후에 버금가는 수익자책임전가형의 각종 보험상품들도 병원산업과 긴밀하고도 견고하게 결속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노후자금 탈취형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 가족부양비와 자녀양육비가 현재시점에서 중산층의 붕괴 및 신자유주의 소비양식에 견주어 볼 때, 너무 과도하여 예전의 자녀의존형이 부모의존형으로 급속하게 전이되고 있고 최종적으로 노인의 안락한 휴식을 빼앗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우려들은 지방형 가족공동체들에서는 그나마 보완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도시형 빈민층과 도시형 명목상 중산층에게는 치명적이다. 우리 인간만이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과학자들의 연구들에 의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한 때 논리력, 언어, 문화, 자아인식 등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분짓는 특징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근년, 생물학 학술지인 Current Biology에 발표된 나이 많은 침팬지의 죽음을 대하는 동료와 자식의 반응을 본다면 침팬지가 장례를 지내거나 우리와 죽음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그것들의 인식을 엿보기 충분하다. 연구를 주도한 앤더슨박사는 동물원에서 돌보던 영장류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치료를 위해 동료들과 격리시킨채로 두거나 안락사시키는 것보다는 동료들이 곁에서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 더욱 인도적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걸맞는 죽음 또한 가족과 동료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연명형 치료는 우리의 거룩한 죽음을 빼앗는다는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유물론적인 사고에 닿을 때면, 사실 죽음 이후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우주의 먼지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극락과 환생은 종교적 상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기억을 유대하는 것은 우주만상의 생명현상의 하나로 인간 스스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기도 하겠지만 과장할 필요 또한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학정신에 천착하는 행위 또한 이야기를 유대하는 한가지 양식이며 소통이며, 우리가 언어도구를 가졌기 때문에 막사발이든, 접시든, 우아한 청자를 빚어내든, 단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잘 키운 자식이라 하더라도 노구의 부모를 모시는 자식만큼 훌륭한 자식은 없다. 현대의 변질된 죽음의식이 침팬지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 있음에 두려운 마음이 스며든다. 다시금, 가족애와 동료애가 우리의 관계망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게한다. 당대에는 답이 없을 듯한 암울한 현실에 망연자실해지더라도, 그 관계망을 위협하는 제도권의 전략들을 간파하여 복원해야하는 것이 차세대만의 몫이겠는가. 우리는 너무 많이 그리고 빨리 사는 것 같다. 젊은이도 마찬가지이지만 노인이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 빼앗겼다면 다시 되찾고 싶다. 벌써 가을이다. ※ 참고사이트 1. http://www.youtube.com/watch?v=d89SlFc3qjI&feature=player_detailpage 2. http://www.youtube.com/watch?v=3SQR_PaCtEE&feature=player_detailpage  
113 氣土理木論 자연주의와 인문주의/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277 2012-08-22
 氣土理木論 자연주의와 인문주의 양백산인 박희용 금장태 著 『儒學思想의 문제들』 제16장 <楊朱의 자연과 인간> 2절 <양주사상에서의 자연과 진실존재> 263p 1행부터 12행까지에는 『列子』<天端篇>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실질적 존재의 기본범주인 천 ․ 지 ․ 인도 “氣의 맑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 天이 되고 흐리고 가벼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 地가 되며 조화된 氣는 人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천지도 氣의 精을 머금고, 만물도 氣를 바탕으로 변화 ․ 생성하는 것(淸輕者上爲天 濁重者下爲地 沖和氣者爲人 故天地含精 萬物化生)”이라 이해하였다.」 「이러한 氣論的 생성세계에서는 天 ․ 地 ․ 人 ․ 聖 ․ 物의 각 개별적 존재영역이 그 근거에는 공통적 동질요소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 개별 존재영역의 차이는 상하적 우열관계나 지배관계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기능적 독립성과 한계성을 밝힘으로써 상호평등적이고 자립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에서 자연주의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 두 문장을 비빌 언덕으로 하여 리기의 관계가 자연주의와 인간주의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列子에 ‘天地含精 萬物化生’과 금장태에 ‘그 근거에는 공통적 동질요소를 가지게 되는 것’이란 말처럼 氣의 세계인 자연주의는 모든 天 ․ 地 ․ 人 ․ 聖 ․ 物의 각 개별적 존재영역 뿐만 아니라 인간이 두뇌로 생각해 낸 모든 이념과 사상이 서 있는 바탕이요 논리 전개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자연주의가 각 개별적 존재영역과 사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꼭이 절대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나무가 흙에 바탕 하여 생장하나 나무와 흙, 나무와 나무는 이미 서로 별개이듯이 각 개별적 존재영역과 사상은 서로서로 별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흙에서 왔기 때문에 넓게 보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 상황에 적응하는 상태의 차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천지가 氣의 精을 머금은 단계까지는 자연주의이지만 일단 그 기가 동하기 시작하여 만물이 변화 ․ 생성하는 단계부터는 자연주의로 정의되는 본질이 아니라 인간주의로 정의되는 현상이 된다. 본질이 중요하나 현재하는 현상 역시 못잖게 중요하다. 氣土理木, 氣를 흙이라 하면 理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의 氣란 물질의 세계인 자연을 이름이고, 理란 기가 조립 ․ 합성된 상태와 작동을 이름이다. 즉 氣는 본질이고 理는 현상이다. 흙을 떠난 나무가 살 수 없듯이 본질을 떠난 현상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와 리의 관계는 비교나 우열이 아니라 상생과 의존의 관계이다. 기가 바탕이므로 밑에 놓이고 리가 현상이어서 그 위에 놓이기 때문에 理上氣下이고, 기가 源泉이고 리가 流水이나 앞에서 보아, 즉 현상을 중심으로 보아 理先氣後, 理前氣後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착시현상을 걷어내고 기와 리의 관계를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氣土理木과 氣泉理江으로 상징되는 氣先理後, 氣元理分, 氣一理殊가 된다. 기가 거대한 저수지이고 리는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지류이다. 氣는 검은 암컷, 즉 玄牝으로서 만물만사를 잉태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태어난 만물만사는 개체를 이룬 기가 방출하는 리에 따라 살아간다. 즉 생물의 육신은 기의 집합이고 살아가는 방법인 정신은 기의 감각적 표현, 즉 리인 것이다. 그래서 기와 리, 즉 육신과 정신은 경중을 다투는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하는 의존의 관계가 된다. 리와 기의 관계가 사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봉건시대 수많은 학자들이 설왕설래하면서 다양한 학설을 표출해 놓았다. 그런데 그 학설들의 대부분이 상하, 선후, 전후관계 등으로 리를 앞세우고 기를 뒤에 놓았다. 시대적 필요에 따라서는 理主氣從이라 하여 리를 극대화 하고 기를 극소화 하기도하였다. 등급 짓기 좋아하는 자들은 선현들의 말씀에 추종하여 리를 기보다 앞세우거나 위에 놓고는 리만이 만물만사를 주재하는 지선이라고 자리매김 했다. 그러고는 학문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봉건시대는 갈수록 우물 안이 되었다. 靜의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인데 왜 氣는 끝없이 움직이는가, 氣는 어떻게 조립되고 합성하고 작동하여 개별적 존재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 역시 바탕인 자연주의에 의거하고 있다. 태양열로 인하여 공기가 데워지면 상승하고, 냉각하면 하강하듯이 氣 역시 熱冷의 영향을 받는다. 熱은 원자, 수소폭탄의 원리처럼 우주의 점점에서 폭발하는 항성이고, 冷은 차갑게 침묵하는 우주공간의 면면이다. 우주의 원자들은 열과 랭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 수시로 움직이고 변화한다. 벽돌 하나는 단조롭지만 많은 벽돌을 쌓아 올리면 높은 탑이 된다. 탑을 높이 쌓으려는 것이 욕망이지만 과도한 부하에 걸리면 탑이 와르르 무너져 다시 하나의 벽돌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가 핵 융합하여 수소폭탄이 되기도 하고 무거운 우라늄이 핵 분열하여 원자폭탄이 된다. 둘 다 서서히 반응하면 열을 발생하지만 임계질량을 넘으면 갑자기 폭발하여 熱源이 된다. 단기적으로는 가벼운 수소와 무거운 우라늄 사이에 모든 원소들이 나열되나, 장기적으로는 수소가 중첩하여 차츰 무거운 원소로 변화하고 무거운 원소가 붕괴하여 가벼운 원소로 변화하면서 한계 질량의 범위 속에서 순환하고 있다. 원소들이 질량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순환하는 까닭은 熱과 冷이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소들은 항상 변화하고 유동하며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인력과 중력에 의해 뭉쳐지고, 뭉침이 과도하면 압력에 의해 열이 발생한다. 열이 오래 계속되면 원소들의 결합이 풀어지면서 다시 흩어진다. 흩어진 원소들은 다시 변화하고 유동하면서 집산의 때를 기다린다. 이러한 현상은 전체적으로는 모든 우주에서, 부분적으로는 우리 우주에서, 세부적으로는 은하계에서, 미시적으로는 태양계-지구에서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현란하게 일어나고 있다. 상상한다면,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실재적 현재가 다른 우주에서는 과거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우주, 즉 다른 세상에서 겪었던 일들이 우리 우주의 현재에 되풀이 되고 있으며, 내가 겪고 있는 현재가 다른 우주에서는 미래가 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상이 가능한 까닭은 자연주의, 즉 모든 우주가 공통적 동질요소를 갖기 때문이다. 더 짙은 공통적 동질요소를 공유하는 우리 우주-태양계-지구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사는 인간들의 생각과 행위, 발생하는 사건들은 서로 짙은 연관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氣土理木, 氣는 흙이요 理는 나무이기 때문에 理氣不相雜이요 不相離이다. 기는 본래부터 動性이 있어 움직이다가 상충, 응집하여 사물을 이루었다가 일정한 시간-일러서 수명-이 지나면 상충, 분해한다. 先人들이 금과옥조로 받드는 ‘태극을 이루는 陽이 動이고 陰이 靜이다’란 말은 핵심까지 통찰하지 못한 표피적인 말이다. 양이 동이라는 말은 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란 뜻인데, 목수가 재목을 하나하나 가져다가 집을 짓듯 양이 음을 하나하나 가져와서 사물을 구성한다는 것은 양이 목수의 역할을 한다는, 즉 主宰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성립하는 말로 양과 리의 가치가 음과 기의 가치보다 당연히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작위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선현들의 논리에 대하여 한 점 의심을 품거나 반론하는 것이 당최 금기시된 봉건시대에, 후학들이 처음부터 이러한 작위적 논리를 절대명제로 해서 성리학을 아무리 궁구해봐야 과정만 피로할 뿐이고 결과 역시 난삽할 뿐이다. 動靜은 理가 아니라 氣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陰인 氣의 세계에서 因緣한 氣가 聚하여 사물을 이룬 상태가 陽인데, 기의 면에서 말하면 氣靜이다. 陽인 聚氣가 散하여 자유인 상태로 환원하는 것이 氣動이다. 이 때 理는 聚하여 작동하는 원리, 散하여 환원하는 원리이다. 즉 기는 흙이나 그 기가 응집하여 이룬 나무는 리이다. 나무가 흙에서 나오듯 리가 기에서 나오나 형체를 달리하기 때문에 理氣不相雜이요 不相離인 것이다. 기와 리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자연주의와 인간주의의 관계를 살펴보자. 금장태의 말대로 자연주의에서는 개별 존재영역이 상호평등적이고 자립적인 관계를 갖지만 인간주의에서는 天 ․ 地 ․ 人 ․ 聖 ․ 物의 개별 영역들이 차별성을 갖는다. 우월한 인간들과 저급한 인간들의 天 ․ 地가 각기 다르며, 소유할 수 있는 聖과 物 역시 엄격히 차별된다. 자연주의의 보편적 원리와 인간주의의 보편적 질서가 서로 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날카롭게 충돌한다. 자연주의는 보기에 좋은 장식용 현수막으로 내걸어 놓고 실제로는 인간주의를 칼같이 적용하고 있다. 자연주의는 고도의 정신작용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의 것이고 인간주의는 일상인들의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도의 정신작용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자연주의가 당연히 최선이겠지만, 현실세계는 그렇지 못하므로 차선인 자연주의와 인간주의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현실적이다. 그러나 현대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둘의 괴리 현상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자연주의는 창고 구석에 처박히다 못해 폐품으로 낙인찍혀서 아예 내다 버려지고 인간주의만이 지구 도처를 쏘다니고 있다. 상호평등성의 자연주의는 버림받고 상호차별성의 인간주의만 홀로 사랑받고 있다. 자연주의가 바탕으로서 중요하지만 인간주의 역시 소중하다. 기가 흙이고 리가 나무이듯이 자연주의는 흙이고 인간주의는 나무이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문명을 이루어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문명을 속성으로 하는 인간주의가 현실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간주의는 자연주의의 거대한 품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인간주의가 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주의를 먼저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반대로 자연주의를 무시하고 인간주의만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자연주의는 몸이고 인간주의는 옷이다. 옷은 상황과 계절에 따라 바꾸어 입을 수 있지만 몸은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 문명 역시 인류생활에 필요한 한 벌의 옷이다. 문명은 옷처럼 상황과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즉 인간주의도 변화한다. 봉건시대에 인간주의가 가졌던 불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현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우선 필요하다. 복잡다단한 현대문명에 자연주의를 직접 적용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다. 거시적 관점에서 자연주의가 갖고 있는 ‘상호평등적이고 자립적인 관계’를 투시함으로써 현대문명의 산물인 현대인간주의의 장단점을 걸러낼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의 신장으로 개체적 삶의 의미를 생산하고 겸허한 예의 실천과 법규 준수로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등, 뼈대는 자연주의로 세우고 살은 인간주의로 채움으로서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의 관계에 생기가 감돌 것이다. 氣土理木, 흙을 떠난 나무는 곧 고사하고 만다. 기의 드넓은 바탕을 망각하고 홀로 잘난 척하는 리는 곧 붕괴하고 만다. 자연주의의 넉넉한 품을 떠난 인간주의는 곧 고장이 나고 만다. 자연주의는 현대문명의 불구를 정형하고 지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이다. 자연주의는 玄牝 검은 암컷처럼 만물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다시 불러들여 치유하기도 한다. 2012년 8월 20일 초가을에 안동 열락연재에서  
112 강은 흘러야 한다/권서각 file
편집자
1504 2012-08-16
 강은 흘러야 한다 강을 막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강은 흘러야 강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의 문명은 강에서 발생했다고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도문명, 황하문명이 모두 강가에서 발생했다. 강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물을 주고, 물과 늪과 모래에 다양한 생물종을 서식하게 하며 숲에 물을 공급하여 자연을 살아있게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도 무수히 있을 것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의 문명이 강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강은 인간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자라듯이 인간은 강에 생명줄을 대고 살아왔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강은 인간이 함부로 파헤치거나 막거나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섬김의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강을 섬겨왔다. 강을 막기 시작한 것은 서양인들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 달리 서양 사람들은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이용해서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이른바 그들의 자연과학이라는 것이 자연을 이용하기 위해 자연의 분석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산업사회를 만들었고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자연을 이용해서 필요 이상의 생산을 하고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게 되었다. 한동안 과학의 발달로 인간은 분수에 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자연의 이용이 재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을 만큼 자연은 파괴되어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되었다. 지금 서양에서는 댐을 허물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는 4대강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국고를 들여 온 나라의 강에 보를 만들었다. 4대강을 개발하여 가뭄과 홍수를 막고 그 주위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여가도 즐기면 얼마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될까? 강물에는 유람선이 떠 있고 그 주위에는 상업시설과 문화시설을 만들어 여가를 즐기는 광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부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4대강 공사를 강행했다. 이미 강에는 녹조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강물이 죽어간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댐을 허무는 추세임에도 우리는 막고 있다. 강을 막는 것은 뒷북을 치는 일이며 헛발질을 하는 일이다. 미래 사회의 경쟁력은 자연을 얼마나 잘 보존했는가, 생물종을 얼마나 다양하게 보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강에 둑을 쌓고 보를 막는 일은 물을 어항에 담는 일과 같다. 그 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종은 한정된다. 생물종이 줄어든다는 것은 생태계가 파괴는 것이며 강을 죽이는 일이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다. 내성천 모래밭이 물에 잠기고 있다. 모래에 살던 수많은 생물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전국의 환경단체들이 내성천으로 모이고 있다. 권서각, 시인  
111 쥐 둔갑 타령/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1680 2012-08-10
 쥐 둔갑 타령 줄거리 서 첨지 영감이 쥐에게 손톱 발톱을 주며 키웠는데, 어느 날 쥐가 서 첨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둔갑해 사랑방을 꿰차고 서 첨지 영감을 내쫓았다. 쫓겨난 서첨지 영감은 산 속을 헤매다 절을 발견하고선 스님에게 자신의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자 스님은 고양이를 가져가 가짜 서첨지 앞에 던지라고 했다. 서첨지가 고양이를 갖고 내려와 가짜 서첨지 앞에 던지자 가짜는 쥐로 변하여 도망가고 서첨지는 비로소 가족과 재회하게 되었다. ........................................................................................................................... 사람들은 늘 내게 물어요 "넌 뭐가 될래? 의사, 댄서, 잠수부?" 사람들은 늘 나를 괴롭혀요 "넌 뭐가 될래?" 마치 내가 나 아닌 게 되길 바라는 듯이 - 데니스 리의 시 <넌 뭐가 될래?>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수렵 시대, 농경 사회에서는 ‘나’의 문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짐승과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져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도시 간에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가 대두하였다. 도시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하였다. 손톱과 발톱은 ‘내 것’이지만 버려도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어둠 속에 사는 쥐가 먹어 ‘나’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싫은 내 모습, 버려도 될 것 같은 내 모습들은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어두운 ‘내’가 되어 돌아온다. 사실 ‘내게서 버릴 것’은 하나도 없는데, 세상은 ‘나를 무엇이 되라’고 강요한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되지 못한 나’는 버려지게 된다. 한데 빛이 커질수록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고상하게 살려고 하던 사람이 위선자가 되어 감옥에 갇힐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황당할까? 고상하게 살기 위해 버렸던 자신의 속물근성이 결국은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양이가 필요하다. 어둠속을 꿰뚫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위선자가 된 자신을 ‘그냥 무심하게, 고양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위선자를 벗어날 수 있다. 물처럼 자신의 중심을 비우며 흘러가야 한다. 인간이 어디 정해진 게 있는가? 착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악이 강하게 우리 중심에 자리 잡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저런 것들은 내가 아니야!’라고 하면 할수록 저런 것들로 내가 바뀐다. 내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물처럼 천연덕스럽게.  
110 대통령은 우리의 무엇인가 file
무궁화
1456 2012-08-03
대통령은 우리의 무엇인가 강태규/ <대통령>은 어감 자체가, 제일 막중한 통감으로 해석될 때가 있다. 영어로 표현되는 내각의 최고책임자인 “미니스터”나 “the chief executive of a republic” 으로 표현되는 “프레지던트” 속에는 분명 위임받은 권한의 대행자임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지만 대통령이라는 언어의 감각은 사뭇 권위적이며 무소불위한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언어는 지속적으로 변위와 진화와 변동적인 시대의 감각적인 함의를 가진 동적인 ‘verse' 인 것은 분명한 듯하며, 그러한 연유로 사전의 개정판이 반복되는 것 또한 그 방증일 것이다. 지난, 서울 이전문제나 국어기본법의 한글전용정책의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등장한 관습헌법상 개념을 주목해 볼만하다. 쉬운 구어체로 풀어본다면, 오랫동안 (사실은 오랫동안이라 할 수도 없다. 재판관들의 습득된 법인식의 소요세월이 고작해야 30년 전후일 것이므로)사용해온 제도를 굳이 지금 바꿀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법이란, 과거에 쌓아온 판단의 근거에 준해서 제도적으로 설정된 울타리라고 볼 때는, 울타리 바깥을 넘지 않겠다는 법의 의지라고도 본다. 실로 우리 문학인은 심리적 울타리까지의 극복과 그 변연의 확장이 사명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닿을 때, 우리가 허물고 새로 구축해야 할 울타리 또한 만만치 않음도 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미래의 헤게모니 구축에 있어 새 의자에 앉힐 인물들은 그 교육에 의해 계급적 재생산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므로. 지금 우리 앞에는 정치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대선후보자가 등장했다. 강준만 교수의 <안철수의 힘>에서의 표현대로 “증오의 종식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의 가장 적합한 후보의 등장이다. 즉, 승자독식의 증오와 적대의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도 본다는 데 필자는 동감하며 통합과 타협을 통해, 리더십이 아니라 팔로십을 통해 진보와 보수의 양극단을 순리적으로 다듬어 가는, 이념대결에서 나아가 국민 실리의 대결국면을 즐겁게 누려보는 희망을 선사하리라 본다. 그리하여 국민의 위임을 총괄하여 수행하는 그런 국가대표에게 금메달의 얄팍한 국수적 희비를 넘어 노무현정부 시절처럼 끌어내리는 데 부화뇌동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부의 한계와 문제점 또한 일찌감치 그리고, 충분히 소통되는 말과 제도와 습관들을 개진하면서 새 정권의 성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제투성이의 민주당 또한 국민이 나서서 재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혀 다른 상머슴을 만나게 되는 꿈을 미리 준비한다. 차라리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쇼크” 먹을 준비를 미리 해야 할 것이다. 지난 시절 우리 스스로가 “쥐떼”가 아니었나를 무릎 치게 되는 그런, 마음의 울타리 조차 없이 율려의 세상으로 드는 빗장을 열어 볼 수 있는 시대가 목전이 아니리 코끝 앞에 왔다고 생각하니 신명이 난다. 나는 기도하듯 한 음, 한 소절 노래할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정도령이 왔음도 알게될 거라는 그런 여름밤의 꿈을 꾼다. 깨지 말지니, 그 꿈이 개꿈일지언정.  
109 성리학의 두 발, 사변과 실천/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2205 2012-07-23
 성리학의 두 발, 사변과 실천 양백산인 박희용 고려 말의 대학자인 익재 이제현(1287년~1367년)의 實學觀은 그의 문집 『익재난고』권9(하), 「史贊」, <成王>에 보이는 ‘거부과 去浮夸 , 무독실 務篤實, 구신민지리 求新民之理, 궁행심득 躬行心得’과 같은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이는 당시 원나라에서 성행하던 실천적인 주자학풍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큰 듯하다. - 최영성의 『한국유학통사』上卷 330p - 당대의 현인이었던 이제현이 원에서 수입한 것은, 그로부터 약 250년 뒤인 조선 중, 후기부터 극성한 ‘사변적 주자학풍’이 아니라 ‘실천적 주자학풍’이었다. 이 말은 주자학풍에는 ‘사변적’과 ‘실천적’의 양면이 있다는 것으로, 주자가 조선에 알려진 바인 ‘사변적 논리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현실을 개혁하려는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신시대를 지나 안향, 이제현, 백이정, 이색, 정몽주 등 현자들에 의해 새로이 싹튼 고려 문화가 최영, 이성계 등의 무장들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면 고려의 국운이 다시 흥성하였을 것이다. 고려 멸망이라는 역사적 변환이 없었다면 이제현에 의해 수입된 ‘실천적 주자학풍’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물론 개국파인 정도전, 권근 등에 의해 그 맥이 이어져 조선 초기의 문운을 융성케 했지만, 중기 이후 조선을 지배한 주류는 실세하여 산림에 은거한 학자들이 주자학의 사변성에 깊이 천착하여 배양한 ‘사변적 성리학’이었다. 고려 말기 유학의 학맥은 安珦(순흥. 1243~1306. 1289 주자전서 도입)-白頤正(1247~1323. 1314 주자학 연구)-禹倬(안동. 1263~1342. 역학 연구, 사변적 연구 방법 선구, 理學 창시자)-李齊賢(1287~1367. 경학과 성리학의 병진, 유학의 실학화)-李穡(1328~1396)으로 이어진다. 이색에 이르러 큰 호수를 이룬 유학은 고려를 유지하자는 절의파인 정몽주-길재-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사변적 성리학파와, 새 왕조 조선을 세운 혁신파인 정도전-권근-정인지-신숙주로 이어지는 실용적 경세학파로 양분되어 흘렀다. 1289년 안향이 『주자전서』를 원에서 수입한지 약 100년 뒤에 신유학의 번성과 함께 구왕조가 몰락하고 신왕조가 건립되었다. 시대 풍조에 맞는 『주역』을 중심으로 한 역성혁명파의 실용적 경세학이 주류가 되었고, 『춘추』를 중심으로 한 절의파의 사변적 성리학은 비주류가 되었다. 조선 건국 후 약 150년 동안 태평성대를 유지한 바탕은 관학파의 실용적 경세학이다. 그러나 산림으로 들어가 그동안 뿌리를 내린 성리학이 그 세력을 현실화하면서 차츰 관학파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한 갈등의 산물이 네 번에 걸친 士禍이다. 연속되는 士禍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은 지식인들에게 더욱 심화되어 마침내 1550년 이후부터는 관학파의 실용적 경세학을 밀어내고 주류 학문이 되었다. 안향이 『주자전서』를 수입한 고려 말 이후부터 서양 문명이 수입되기 시작한 조선말까지의 한국사를 관류한 두 흐름은 실용적 경세학과 사변적 성리학이다. 이 두 흐름은 동전의 양면이면서도 역사상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였다. 조선의 개국과 초기엔 실용적 경세학이 우세였고, 퇴계학과 율곡학이 융성한 조선 중기엔 성리학이 우세였다. 국력의 피폐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조선 말기엔 성리학 일변도의 위험성을 간파한 선각들이 실학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속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탐하면서도 겉으로는 정신을 논하는 성리학의 사변적 고답성을 끝내 돌파하지 못하였다. 실용적 경세학과 사변적 성리학은 사상의 양면이다. 한 시대에 그 둘이 조화롭게 나타나면 문명이 발달하고, 서로 상극이 되면 난세가 된다. 한 시대에 그 둘이 함께 등장하여 조화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시대마다 교대로 나타나야 국력을 유지할 수 있는데, 조선은 중기 이후 사변적 성리학의 시대가 계속 되었기 때문에 국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사변적 성리학을 마루고 실용적 경세학의 시대로 변화하였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후 강제된 시련기인 일제 침략,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사변적 성리학은 모든 책임을 지고 퇴장하고, 서양문명의 영향을 깊이 받은 실용적 경세학이 재등장함으로서 한국이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용적 경세학은 줄기이고 사변적 성리학은 꽃이다. 사변적 성리학만을 최고로 여기고 실용적 경세학을 천시하는 것은 꽃만 탐하고 줄기를 버리는 것과 같다. 줄기를 떠난 꽃은 잠시 화려하지만 곧 시들고 말듯이 성리학은 경세학이라는 받침이 든든해야만 번성할 수 있다. 성리학이 마음이라면 경세학은 몸이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면 건강을 곧 해치고 만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내가 사는 시대와 후손들이 살아갈 시대를 생각하는 지식인이라면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이 얼마나 큰 역사적 범죄인가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선현으로 추앙받는 대학자라 해도 자기 학문만을 고집하고 타 학설을 극력 부정하며, 심지어 반대 학파를 사문난적의 이단으로 몰아 정치적 탄압을 자행한 것은 ‘爲己之學’의 의미를 오독하였기 때문으로, 마땅히 후학들로부터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범부는 명분을 우습게 알아 명예욕을 가장 먼저 버리지만 識者는 명분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 명예욕을 가장 끝에 버린다. 명예욕은 정신적 가치이다. 한 생애 동안 학문으로 닦은 명예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자기 정신의 기둥이다. 그래서 늙어갈수록 명예, 자기 학문에 집착한다. 그 기둥이 훌륭하다는 말은 백번 들어도 흐뭇하지만, 옳지 않다거나 삐뚤어졌다는 말을 한 마디라도 들으면 극심한 분노에 빠진다. 선비라면 항상 불치하문하는 겸허한 자세여야 함에도, 명예욕에 집착된 자들은 그러한 분노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정신의 기둥을 더욱 장식하거나 비판자를 사문난적으로 매도하며 엄중히 문책하였다. 그러므로 명예욕에 들끓는 자들은 입으로는 아무리 유식한 말을 내뱉어도 뼈와 피는 이미 선비가 아니다. 정신의 기둥이 옳지 않는데도 장식에만 급급하는 것은 위선이요, 논리가 아니라 비방이나 형벌로 비판자를 억압하는 것은 폭력이다. 한국사에서 보면 이러한 학문적 폭력이 비일비재하다. 학설의 차이, 표현의 차이를 학문적으로 해결하지 아니하고 당파적, 정치적 폭력으로 해결한 경우가 매우 많다. 이런 면에서 이색에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조광조-이이-송시열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학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퇴계가 사변성이 짙은 안향-우탁-이색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정맥으로 치고, 백이정-이제현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접은 까닭은 그 역시 경세성보다 사변성을 추종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40세까지 경학을 공부하다가 40세 넘어서 비로소 『주자대전』을 접하고 그 깊이에 몰입하기만 하였지, 그것이 통달하고 난 다음에는 신속히 빠져나와야 할 정신의 늪인 것을 미처 몰랐다. 그러기에는 그의 몸과 마음이 이미 노쇠하여 빠져나올 시간이 없었다. 그가 20세 전후부터 주자학을 접하였더라면 생각의 폭이 훨씬 넓어져서 사변성과 경세성의 균형을 회복하였을 것이다. 그에 의해 본격적으로 흥기된 성리학은 경세성이 축소되고 사변성이 강조된 경직된 모습이 시대가 흐를수록 심해졌고, 그에 따라 士氣가 퇴전되어 국운이 피폐해졌다. 문명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에로 이동하기 시작한 21세기 벽두에, 그 중심의 핵인 新儒學이 사변과 실천의 두 발을 어떻게 행보하여야 할까. 줄기가 튼튼해야 꽃이 실하고, 두 발이 튼튼해야 역사의 지평을 굳세게 멀리 갈 수 있는 법.  
108 의도의 오해/권서각 file
편집자
1745 2012-07-16
 의도의 오해 권서각 (한국작가회의 이사) 문학이 죽고 시가 죽은 시대라고 말한다. 그래도 몇몇 시인의 시는 독자들이 깊이 공감하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도종환의 「담쟁이」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도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시에 속할 것이다. 마을과 집이 사라지고 빌과 아파트만 있는 삭막한 시대에도 시가 읽힌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도종환 시인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전교조는 우리 지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어버이연합의 노인들은 해체하라고 성화인 단체다. 이 시는 민주화 운동 관련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담쟁이는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면 아무리 높은 벽도 올라간다. ‘담쟁이’를 깨어 있는 민중에, ‘여럿이 함께’는 민중의 연대에 비유했다. 독재와 억압의 벽이 아무리 높아도 민중이 연대해서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도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며 진보적 생각을 가진 시인이다. 연탄은 자기 몸을 태워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는 희생적 삶의 비유다. ‘너’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아온, 힘 있는 자를 뜻한다. 「너에게 묻는다」는 자기의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남을 위해 희생한, 그러나 지금은 힘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도종환 시의 ‘벽’ 같은 사람, 안도현 시의 ‘너’ 같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의외로 이들 시를 자신의 애송시라고 한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가 된다. 그분들 나름대로 이 시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담쟁이’의 경우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자신의 삶을 담쟁이에 비유한 것이다.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는 자기를 지지하는 추종자들과 함께 한다는 뜻일 터이다. ‘너에게 묻는다’의 경우도 지금까지 남에게 비난 받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연탄재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향해 너는 나처럼 힘겹게 살아보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문학용어에 ‘의도의 오류’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문학작품이 작가가 쓸 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의도의 오해’라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교과부 교육평가원에서는 도종환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사실상 삭제하라는 공문을 교과서 발행 출판사에 보냈다가 국민적 저항으로 철회했다.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는 보기에도 민망한 헛발질을 하였다. 도종환이 자기네 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치졸한 권력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문학을 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저절로 떠오르는 물음이 있다. 누가 이들에게 권력을 주었는가?  
107 도깨비감투/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2489 2012-07-08
 도깨비감투 줄거리 한 나무꾼이 산에 갔다가 도깨비들을 만나 도깨비감투를 얻게 되었다. 그것을 쓰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감투를 쓰고 남의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번잡한 시장에서 지나가던 사람의 담뱃불에 감투에 구멍이 나게 된 그는 아내에게 감투를 기워 달라고 하였다. 아내는 빨간 헝겊을 받쳐서 기워 주었다. 또 다시 그는 도둑질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도둑을 맞은 사람들은 빨간 천 조각이 왔다 갔다 하면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빨간 천 조각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덮쳐 그를 붙잡고 흠씬 두들겨 팼다. .......................................................................................................................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그리고 나, 이 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詩)> 중에서 감투 없이 맨머리로 산다는 건 참으로 힘들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머리부터 보기 때문이다. 머리에 무엇을 썼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다. 감투는 곧 한 인간의 정체성이 되었다. 세상의 감투란 각자의 역할일 뿐인데, 우리는 감투(직업, 직책)를 신분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에 잘 맞지 않는 감투를 쓰려 한다. 그러니 우리 삶은 늘 버겁다. 머리가 무겁고 몸짓이 어색하다. 한평생이 뜬 구름처럼 흘러간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쓰는 모든 감투는 배역일 뿐이다. 배우가 그 배역이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연극이 어떻게 되겠는가? 연극 전체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맡는 여러 역할도 그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 전체가 망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무꾼이 도깨비감투를 쓰고는 연극한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인생은 얼마나 풍요로웠을까?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테고, 여러 어려움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도와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삶은 나날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감투를 쓰고는 완전히 그 감투가 되어버렸다. 인간의 마음이 없는 감투가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 그는 패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들 삶이 어찌 이다지도 그 나무꾼을 닮았는가? 멀쩡하던 사람도 감투를 쓰고 나면 갑자기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행동거지가 달라진다. ‘그’는 간 곳이 없다. 감투를 쓰고서 그 감투역(役)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은 끝까지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소에 자신을 마음껏 느끼며 살아야 한다. 뺨을 스쳐가는 바람, 흙을 밟는 즐거움, 온 몸을 감싸 안는 따스한 햇살, 지저귀는 새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 목소리...... 아이처럼 즐겁게 살아야 한다. 이 동심을 가슴 가득 품고 있으면 감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내가 맡고 싶고, 맡을 수 있는 감투를 쓰고 유쾌하게 그 배역을 즐기면 된다. 우리는 이미 많은 감투를 쓰고 있다. 즐거운 연극 놀이를 해 보자!  
106 시인의 결핵 / 강태규 file
무궁화
1710 2012-07-02
시인의 결핵 / 결핵감염의 기원은 BC 7000년 전의 화석에서 발견되었다니 석기 시대 이후 인류와 동물이 같이 겪어온 내력의 세균성 질병 중의 하나다. 물론 이러한 사실도 19세기 세균학자 코흐에 의해 명명된 이후의 일이다. 결핵은 에이즈의 발호 이전 까지만 해도 우리 문학에서 고통의 질병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잃게하는 소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의 병’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불치의 질병이었지만, 21 세기, 지금은 진단 기술과 치료 프로그램이 상당히 체계화 되어, 약제 내성을 가진 균만 아니라면 치료에 낙관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핵의 위험성은 그 발병 원인체를 알아내는 과정에 감기로 오인되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치료약제를 여러 달 이상 먹어야 하는 까다로운 세균성 질병이기도 하여, 잠복감염 기간 또한 길어 군인 막사나 학교와 같이 1 미터 이내에 접촉하는 환경에서는 쉽게 전파되기도 한다. 물론 개인별 유전력과 면역력에 따라 8할 정도는 감염을 비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약물사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에는 여러 약제에 듣지 않는 '다제 내성' 감염에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한 때, 미군병원에 집단질병 역학을 연구하는 방역관 일로 밥벌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예방의학 군의관이 들려준 이야기 중의 하나로, 핵잠수함 승무원의 결핵감염 연구를 소개해 주었는데, 좁은 복층 침대의 1 미터 이내가 임상적 감염범위라는 연구결과였다. 공기감염, 비말감염으로 전파된다 하여도 체외로 배출 되는 이 균의 감염력의 한계를 가늠하게하는 사례로 곱을 수 있겠다. 집단 사육하는 동물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도태를 해야하는 법정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물은 사람처럼 생후 1 개월 이내 비씨지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 통상, 젖소를 포함하여 소와 사슴이 주요 감염대상이 되고 있지만, 여러 논문에 의하면 동물원의 코끼리를 포함한 모든 포유류도 적지않은 감염보고가 있고 사람과 교차감염이 됨으로 사육사에게도 쉽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구제역 유행 이후에 필자는 직업상 여러 농장의 순회 중에 결핵감염 여부를 선별적으로 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에서와 마찬가지로 목장주나 목장 직원이 소들을 보정틀에 목을 고정 시킨 후에 소의 꼬리 앞부분 내측이나 측면 부위에 투베르클린 반응검사용 약제 소량을 피부 밑에 주사하고 2 ~ 3일 후에 그 반응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사람과 동일하다. 문제는 사슴이다. 사슴은 요즘처럼 뿔을 자르는 시기가 아니면 정황적으로 어렵다. 물론 까다롭기도 하지만, 이 사슴들은 매우 민감하여, 마취하지 않고 접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깨죽지의 털을 제거한 후에 접종을 권하기도 하지만, 차선으로는 항문 또는 회음부의 잘 보이는 부위를 택하여 접종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접종하였다 해도 며칠 후 확인하는 과정에는 목장주가 바쁘거나 다시 보정 또는 마취하는 과정은 동물에게 대단한 압박임으로 필자는 작은 쌍안경과 인내만으로 소들과 사슴들을 관찰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교과서에 없는 일이다. 사슴은 외부 동물인 나를 향하는 경계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목부와 같은 칙칙한 옷을 입고 척후병처럼 인내한다. 소의 경우는 꼬리를 들거나 흔들 때를 기다리거나, 사슴은 그의 옆구리를 나에게 노출시키는 대략 이 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표시한 접종 부위를 렌즈로 포착하는 것이다. 노동자 시인인 고철은 혈혈단신으로 위로삼아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지티비 방송을 통해 그의 일상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나는 화면으로 강아지들의 건강진단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인에게 필자가 관찰한 바를 전했더니 모두 수긍을 했다. 관찰은 그래서 나를 지방에서도 수의사로 밥벌이를 하게하며, 목장주인들과도, 집짐승과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오형제의 넷째로 자란 나도 둘째형의 결핵감염으로 인해 나 또한 폐장 안에 초기감염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바쁘고 폼나는 일들과 소통의 부재로 옛시절의 좁게 같이 살던 기억은 이미 아득하다. 진작 나는 내 어머니와 형제들, 더 나아가 내 아들 까지 관찰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더욱 멀어진다. 나는 지방생활을 통하여 갇힌 짐승들과는 겨우 소통하면서도 진작 내 핏줄의 변연에 너무 멀리 왔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공을 연마하게 한다. 그리하여 글로써 또 다른 시인과, 또는 드물지만 독자들과 소통한다. 어쩌면, 시 쓰기가 아니었다면, 나를 관찰하고 나를 소통하지 못하였으리라. 내 가슴의 결핵흔적이 싫지 않음은 그 속에 피의 연대를 같이한 기억이 소중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와 부처의 시대도 그러했겠지만, 여전히 우리의 환경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생 면역력에 의존하는 시기로 더 가까이 몰리고 있는 것 같다. 기망과 허언 속에서라도, 상처의 흔적은 시를 쓰게 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동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느 때 즈음에서야 상처들이 연꽃처럼 피울 것인가. 내 삶의 초라한 훈장처럼 스스로 다독이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105 육신과 마음의 관계/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462 2012-06-22
 육신과 마음의 관계 - 금장태 박사의 「인간존재의 근본구조」 논주 양백산인 박희용 철학박사 금장태가 쓴 『儒學思想의 문제들』제2장 「유교의 인간이해」2절 「인간존재의 특성」2항 「인간존재의 근본구조」32p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인간의 생명은 생물학적으로는 육신의 기능에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인격적으로는 마음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음은 육신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육신을 명령하고 주재하는 지위에 있는 존재이다. 마음도 육신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인간생명의 주체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성품과 욕망은 모두 마음에 깃들어 있으면서 각각 하늘과 땅에서 근원하는 것으로 구분될 수 있다. 유교이념에서는 하늘로부터 부여된 성품은 순수한 선이요, 보편적 이치이며 불멸적인 존재라 인식되고 있다.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 육신은 선의 기준으로부터 이탈하기 쉬운 가능성을 가진 충동적 힘이요, 개체적이면서 가멸적 존재이다. 마음은 선과 악이 실현되는 계기요 현장이며, 개체적이고 가멸적인 충동을 그릇으로 삼아, 보편적이고 불멸적인 이치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 양자를 결합하는 인격의 중심을 가리킨다. 따라서 마음은 인간이 성품을 발견하여 하늘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필수적인 통로라 할 수 있으며, 하늘이 세계를 주재하는 지위에 상응하여 인간 자신의 신체를 주재하는 지위에 있음을 주목한다.」 금 박사의 유학 공부는 이중 구조를 가진 듯하다. 학부 시절에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공부하고 대학원 시절은 유학의 본산인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력에서 보듯 그의 유학관은 종교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의 저서 곳곳에서 학문으로서의 유학보다는 종교로서의 유교를 강조하는 논지를 읽을 수 있다. 위의 글 중 ‘마음은 하늘이 세계를 주재하는 지위에 상응하여 인간 자신의 신체를 주재하는 지위에 있음’이라고 하며, 비록 인격신이라고 직접 지칭하지는 않지만 하늘을 큰 신으로, 마음을 신체를 주재하는 지위, 즉 작은 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육신<마음<하늘’이라는 종교적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여 논리를 전개함으로서, 성리학이 갖고 있는 학문성보다는 원시유학의 제례성을 강조함으로서 수많은 저작활동에도 불구하고 유학의 다양성과 각 학파들에 대한 심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학문으로서의 유학이 심화되어야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지 종교로서의 유교가 강조되어서는 개인적 수양이나 전통 유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전제된 글을 분석해 보자. 앞 문단에서, 금 박사는 육신을 말할 때는 ‘있겠지만’, ‘것은 아니나’, ‘받을 수 있지만’이란 연결어미를 사용하여 육신의 존재 가치를 일단 인정하는 모호성을 보인 다음에, ‘볼 수 있다’, ‘존재이다’, ‘이해된다’, ‘구분될 수 있다’라는 확정형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마음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육신은 존재와 가치가 희미하지만 마음은 뚜렷하다는 마음 우선, 즉 종교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연결어미의 모호성을 걷어내고 육신과 마음의 관계를 직시하면, ‘받을 수 있지만’이 아니라 마음은 육신의 영향을 깊이, 절대로 받는다. 육신의 현상적 표현이 마음이다. 인간생명의 주체는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마음이 잉태되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잉태된다. 몸이라는 그릇이 마련되어야 마음이 그 속에 담긴다. 그릇이 깨어지면, 즉 몸이 흩어지면 마음도 새거나 흩어져버린다. 그러므로 마음은 몸의 종속물이다. 그러나 시간이 누적하여 마음이 성숙하면 앞나서서 몸을 이끈다. 태어나서부터 유년기까지는 몸의 욕구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나 몸이 계속 성장함에 따라 마음도 성장한다. 20세경에 몸은 성장을 완성하나 마음은 계속 성장하여 드디어 몸을 이끄는 위치에 오른다. 마음의 성장이 올곧게 된 사람은 육신의 욕망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으나, 마음의 성장이 짧거나 왜곡된 사람은 육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다. 마음의 근본은 육신이기 때문에 마음이 앞나서서 육신을 이끌더라도 근본인 육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육신의 욕망은 물이나 불과 같기 때문에 물이 순리로 흐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듯 육신의 욕망이 순리로 흐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불은 활동의 근원이다. 물과 불이 알맞은 때와 곳에서 상호작용을 원활히 하면 생명이 윤택하다. 마음의 고결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지나치면 육신을 피폐하게 한다. 육신의 욕망을 무조건 저열한 것, 추잡한 것으로 치부하고서 오로지 마음의 순수성만을 추구하면 편협한 唯心論으로 흐르게 된다. 그리하여 육신을 음지에 가두고 마음을 양지에 내놓아 홀로 설치게 하면, 꺾어온 꽃이 곧 시들 듯이 육신이란 물과 토양에서 분리된 마음은 곧 시들고 만다. 마찬가지로 물질의 조합체인 육신의 욕망을 본질로 보고 마음이란 것은 육신의 허상으로 보는 唯物論 역시 온당하지 않다. 그렇다고 유물론과 유심론의 조화를 말하는 것은 논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가식이다. 유물론을 중심한다하여 마음의 가치가 훼손되는 게 아니다. 유물은 마음의 바탕이다. 마음이 꽃나무라면 유물은 화분이다. 화분이 튼실하고 그 속에 든 흙이 비옥해야 꽃나무가 잘 자란다. 육신이 튼실하고 영양상태가 양호해야 마음의 꽃나무가 잘 자라고 마침내 개화하여 꽃과 열매를 맺는다. 유물론에 덮씌워져 있는 19세기적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걷어내고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물질을 강조한다고 하여 정신이 무시되거나, 정신을 강조한다고 해서 물질이 무시되어서는 온전한 인간 삶의 양면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육신이 있어서 마음이 있는 것이지 육신이 소멸하면 마음 역시 따라서 소멸하고 만다. 생시에는 마음이나 죽으면 靈魂이 된다고 하는데, 靈魂은 죽은 자의 모습과 언행이 산자들의 관념상에 떠오른 影像일뿐이다. 육신의 끝이 마음의 끝이다. 마음은 고결하고 육신은 저열하다는 고정관념에 묶인 사람들은 유심론을 적극 주장하면서 유물론을 뱀 보듯이 한다. 육신은 허상이 아니라 본질이고 마음의 근저이기 때문에 유물론 역시 고결하다. 육신의 욕망은 생명체를 존속시키기 위한 생리적 현상일 뿐이지 도덕적 잣대로 재단할 대상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울고 목이 마르면 액체로 보이는 것이면 아무 것이나 마신다. 마음이 성장하지 않는 동물들은 육신의 욕망에 따라 자동적으로 행위한다. 그러나 몸의 성장에 따라 마음이 성장하는 인간은 차츰 육신의 욕망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줄 알게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더라도 독립생활을 하는 맹수들은 육신의 욕망에 투철하지만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사회생활에 적응하면서 대체로 온순해진다. 마찬가지로 고독한 인간은 육신의 욕망에 탐닉하지만 사회생활에 익숙한 인간들은 마음이 육신의 욕망을 조절한다. 마음이 모습을 온전히 갖추게 되면 유물론이 환골탈태 하여 마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자양분이 된다. 즉 유심론이 유물론을 앞서는 단계가 된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이런 단계에까지 오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물과 유심의 경계에 머물며 오락가락한다. 마음의 성장이 육신의 성장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은 범죄의 가시밭길을 걷지만, 육신의 성장에 맞게 마음이 성장한 사람이라도 어떤 사안에 닥쳤을 때 마음으로는 통제를 하고 싶지만 과도한 육신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서 사회적 해를 끼치기도 한다. 생물인 이상 누구나 사회적 가치보다 개인적 욕망을 우선하는 게 사실이다. 단지 사회적 통제 때문에 마음속에 잠복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내공이 깊은 도덕군자라 하더라도 마음속에서는 욕망이 갈등하고 아찔한 유혹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진다. 그러므로 유교이념에서처럼 인간의 성품은 하늘로부터 부여된 순수한 선이요 보편적 이치이며 불멸적인 존재라고 확언할 수 없다. 또한 권근이 「입학도설」제1도인 「天人心性合一之圖」에서 말한 대로 육신이 욕망과 연결되어 선의 기준으로부터 이탈하기 쉬운 가능성을 가진 충동적인 힘이요 개체적이며 가멸적인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마음이 꼭하게 선과 악이 실현되는 계기요 현장이며, 육신의 욕망을 그릇으로 삼아 보편적이고 불멸적인 이치를 받아들여 마음과 몸을 결합하는 인격의 중심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육신은 시공간적 제약을 받아 한계를 갖지만 마음이 인간의 성품을 발견하여 하늘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필수적인 통로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그 통로의 외벽은 육신이다.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은 생명이다. 이때 말하는 ‘하늘’이란 어떤 인격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말하며, 생명은 가깝게는 부모로부터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자연으로부터 받았다. 즉 대자연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섭리는 동일하다. 대자연의 기와 리가 한 점에 응집되어 內循環을 시작한 것이 생명이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 外循環을 위해 흩어지는 시점이 사망이다. 물질의 본질인 원자와 그 결합체인 분자들이 육신을 형성하여 생시 동안 내부에서 순환하다가 분자의 산화작용으로 인하여 피로 물질이 누적되어 한계에 이르면 자연적으로 분해, 소멸작용이 일어난다. 한 개체에서 내순환을 종료한 원자들은 다시 대자연 속으로 흩어져 외순환을 하다가 다시 한 개체 속으로 들어가 내순환을 시작하여 생명체를 형성한다. 이렇듯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은 화학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나비효과’에서 보듯 물리적인 면에서도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지구의 생명체는 서로 존중하여야 한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는 내순환과 외순환으로 연계되어 있고, 그 외연은 우주 전체로 확대되므로 인간의 육신과 마음이 갖는 고귀한 가치와 함께 그 한계를 적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성은 소멸을 전제로 하여 시작된다. 생명은 시작이고 사망을 마침이다. 지구가 갖고 있는 물질의 질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 개체 내에서만 내순환이 무한정 계속되면 다른 개체들이 새로 형성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한 개체가 소멸되어야 그가 갖고 있던 질량이 외순환을 통해 다른 개체의 내순환으로 옮겨갈 수 있다. 모든 인간들이 자기만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데, 내순환과 외순환의 원리로 보면 그것이 얼마나 헛된 욕망인지 알 수 있다. 무조건 무병장수를 탐내기보다 내가 갖고 있는 내순환의 기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 독수, 독물 등으로 내순환 기능을 망치지 않으면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다할 수 있다. 생물과 무생물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문명과 인류의 세계에도 지구질량불변의 법칙은 적용된다. 식자들은 물질문명의 팽창과 인구의 팽창으로 인하여 지구가 갖고 있는 자원 고갈로 인하여 인류의 멸망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인류 중심의 고정관념의 소산이다. 50억년이나 되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가 주인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만년이 안 된다. 그동안 써버린 지구자원은 인류의 문명을 위한 것이었지 지구에 사는 다른 생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즉 인류는 자기 몫의 자원을 자신만의 내순환을 위해 모두 소모하였기 때문에 지구 전체적 차원의 외순환 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소멸 시점을 맞지 않을 수 없다. 인류가 소멸되고 난 다음에는, 앞으로 지구가 수십억 년의 미래 역사를 갖기 때문에 공룡시대처럼 어떤 다른 생물체가 자기들의 번식에 적합한 자원을 이용해서 번성할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걸어 갈 향방은 발전, 극성, 쇠퇴의 외길이다. 인간의 번식본능 때문에 인구가 한 세기마다 배로 증가할 것이고, 지능의 발달에 따라 문명은 더욱 발달할 것이고, 인류문명은 물질을 섭취, 소화, 배설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 할수록 가용 물질의 양이 줄어들 것이고, 가용물질이 부족할수록 인간 대 인간, 지역 대 지역, 민족 대 민족, 국가 대 국가, 인종 대 인종 간에 갈등과 전쟁이 빈발할 것이다. 전쟁이 극도에 도달하면 핵이 사용될 것이고, 핵겨울은 지구를 빙하기에 강제로 들게 하여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의 절멸을 초래할 것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성주괴공, 춘하추동, 극성쇠락 등의 원리가 인류문명사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수십억 년 동안에 걸쳐서 몇 번 되풀이 했듯이 그 혹독한 핵겨울 빙하기를 자연스럽게 극복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백, 수천만 년 후에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새 세상은 인류의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군집성의 사회적 동물이고 지능이 우수하기 때문에, 진화의 원리를 간파하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서로 살상하다가 공멸하는 핵겨울 빙하기를 피하기 위하여 노력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 그러한 노력은 크게 두 가지, 물질과 마음 두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물질 분야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적정한 인구 유지이다. 국가 단위나 지역 단위로 적절한 인구 정책을 시행하여 인구가 과밀화 되는 현상을 방지함과 동시에 인류 DNA를 고급화하여야 한다. 하지만 적정한 인구가 유지되더라도 지구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자원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 자원 소비의 최소화, 대체 자원의 개발, 타 행성 자원 도입 등의 외형적인 노력과 동시에 물질과 에너지를 재활용, 순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학기술을 개발하여야 한다. 또한 인간 육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대응이 필요하다. 외모와 신체 기관, 체모와 손가락 등을 보면 인류가 아직 진화 과정에 놓여있는데, 그 진화가 유효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적정 인구 유지, 물질 순환 등의 조치가 성공하더라도 인간의 DNA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화하거나 퇴화해서는 만사 헛일이다. 물질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제는 마음 분야이다.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인식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통찰하는 지혜의 원점이 마음이다. 지금까지 모든 철학과 종교, 학문과 예술 같은 인문학이 응시하는 목표는 인간과 사회의 마음이 갖는 본질적 가치였다. 마음을 하늘로, 육신을 땅으로 하여 땅이 하늘의 지배를 받듯 마음이 육신을 지배한다는 관념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을 중요시 했다. 그러다보니 육신은 현실에서 온갖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무시 또는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고, 마음은 그 본질이 제대로 구명되지도 못한 채 온갖 장식을 입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철학과 종교, 학문과 예술이 현실과 유리되어 현학성만을 띄게 되었다. 생각과 입으로는 문명의 붕괴와 인류의 멸망을 말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려는 이중의 인식 구조가 고착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섭하여야 한다. 인문학의 뿌리가 자연과학이고 자연과학의 현현이 인문학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문학이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 수준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이치와 현현이라는 본질로 가야하고, 자연과학이 물질적 풍요만 추구하는 수준을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이치 규명과 물질 순환 구조의 개선이라는 본질로 가야한다. 사회적으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 개체적으로는 마음과 육신의 통섭이 필요하다. 마음을 꺾은 꽃가지가 아니라 흙속에 뿌리내린 꽃나무로 가꾸어야 한다. 동물마다 각기 마음을 갖고 있지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 까닭은 인간이 갖는 마음의 양과 질이 여타 동물들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신체구조와 뇌를 가진 미물들의 마음은 단순하지만 복잡한 신체구조와 뇌 구조를 가진 인간의 마음은 매우 복잡 미묘하다. 인간마다 갖고 있는 마음의 모양과 색깔은 공통점이 많지만 일정한 차이점을 가진다. 또한 인간마다 마음의 크기, 깊이, 굳기, 밀도, 개폐 정도가 다르다.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해야 할 것은 공통점을 수용하고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이 마음을 연구하면서도 종내에는 실패하고 마는 까닭은 자기의 마음을 기준으로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재단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수준 높은 불변의 마음을 갖고 있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잣대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재단하였기 때문에 판판이 대중들의 마음은 저급하며 불완전하다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또한 자기는 육신의 욕망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대중들은 욕망의 노예로만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자기만이 예쁜 꽃이고 다른 것들은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꽃의 자만과 같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있는 산이나 들이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혼자 또는 무더기로 피어있어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서 혁명이 필요하다. 그 혁명의 씨앗은 자기 마음의 나르시즘을 벗어나는 것이다. 마음은 수시로 표변하지만 육신의 욕망은 한 곳으로 집중하려는 자연의 이치이다. 물론 타인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욕망은 선별되어 마땅하지만 욕망이라고 하여 모두 무조건 억제, 배척되어서는 안 된다. 크고 작은 욕망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 마음을 소통하게 하는 방법이 된다. 욕망을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다보면 광산의 선별라인에서 잡석이 가려지고 원광이 나타나듯이 유익한 욕망은 육신과 마음의 생기가 되고 무익, 유해한 욕망은 사라지게 된다. 욕망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선택의 문제이다. 인식과 선택에 따라서 개인적 악이냐 사회적 악이냐가 구별된다. 선과 악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선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악이고 개인적으로는 악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선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식과 선택의 차이에 의해 개인적 문제, 사회적 문제, 국가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당사자인 개인이 선과 악에 대한 인식과 선택을 유효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사회적 환경이 중요하다. 물론 그 중심은 자각이다. 성인에게 있어 선과 악에 대한 인식과 선택의 주체는 마음이다. 그래서 금 박사의 말대로 마음이 ‘하늘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필수적인 통로’인 것이다. 우주 속에 작은 한 점으로 존재하는 행성 지구의 대자연 속에서 식물과 동물은 탄생, 성장, 사멸이라는 같은 과정의 한살이를 한다. 인간의 일생을 식물인 복숭아나무에 비유하자면, 한 그루의 묘목이 성장하여 줄기가 굵어지고 가지와 잎을 가지는 것은 인간이 성장하며 온전한 육신을 바탕으로 감각과 의식이 깊어지는 것이고, 복숭아꽃은 마음의 성숙을 향한 화사한 펼침이라 할 수 있다. 꽃의 화사한 펼침이 열매를 향한 노력이듯 마음공부는 온전한 마음을 향한 노력이다. 복숭아나무의 모든 노력이 견고한 씨앗의 완성으로 향하듯 인간의 마음 역시 완전을 추구한다. 완전히 성숙된 마음이라야 비로소 육신의 가멸적인 충동을 억제하고 유효하게 주재하는 지위가 된다. 이때의 마음이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대자연에서 생명체가 받아들이는 감각과 의식의 영양이 집중된 종결점이자 현재와 미래에 제시되는 모든 행위의 시발점이다. 꽃의 화사함은 인간 삶의 보람과 즐거움이고, 씨앗의 견고함은 인간 마음의 완성이다. 복숭아나무가 꽃과 씨앗을 위해 노력하듯 인간 역시 삶의 의미와 마음의 완성을 위해 노력함이 마땅하다. 한 그루의 나무도 가뭄과 폭풍우 등의 자연재해와 벌목 등의 인위재해를 당하지 않은 한에는 생생지리의 이치에 따라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한다. 그러나 나무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삶과 마음의 가치에 대한 자각이 부실해서 물질문명의 발달에 비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태어 다른 인간의 생명까지 죽이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이 生生之理에 맞춰 살려고 노력하는데, 지능이 가장 우수하다는 인간동물만은 걸핏하면 ‘죽는다, 죽여버리겠다’라는 소리가 입에 달렸다. 아주 이기적인 이유를 대며 자살과 살인을 선택한다. 어떤 명분과 이유로라도, 자살과 살인은 꽃을 피워 완전한 열매를 맺으라는 생명의 원리에 역행하는 우매한 짓이며, 육신과 마음의 관계를 확실하게 통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19세기 서양 문명에서 잉태되어 이후 두 세기 동안 지구의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 흐름은 자본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이다. 그중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득세하여 각자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상충하고 있다. 이미 공산주의는 그 한계성이 노정되어 소멸기로 접어들었고, 자본주의 역시 극성기를 구가할수록 내적으로는 공동화 현상이 생겨나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하여 많은 지성인들이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아나키즘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물론 현대의 과밀한 인구와 복잡한 사회구조를 간과한 아나키즘의 순박성이 문제시 되지만, 아나키즘의 선구자인 클로포트킨이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고 말한 의미를 인간의 육신과 마음의 관계, 나아가 생물과의 관계에 비추어보면,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壬辰季夏初澣 說樂然齋에서  
104 사랑한다는 말/권서각 file
편집자
1521 2012-06-15
 사랑한다는 말 전화를 받으면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애교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의 요지는 자기 회사의 상품을 사 달라는 주문이다. 이때 사랑한다는 말이 입에 발린 소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예쁘게 단장한 젊은 여성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물건을 살 때 에누리 한 푼 할 수 없는 비정함에서 그 웃음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선거철이 되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후보자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한다. 그리고 유권자 여러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당선되어 유권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유권자를 사랑한다던 그 말이 진정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사랑의 표현을 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기교를 배운다. 비싼 교육비를 내고 미소 짓는 법, 인사하는 법, 친절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후보자들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이미지 연출 지도를 받기도 한다. 사랑받기 위한 노력이다. 이쯤 되면 사랑이 이미 사랑이 아니라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내들도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남편들은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꽃을 사서 바치고, 보석을 사서 바치고, 아내와 분위기 있는 곳에서 우아한 식사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심지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지상의 모든 아내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백마 탄 왕자님의 사랑의 고백을 듣기를 원한다. 시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시에는 머리로 쓰는 시, 가슴으로 쓰는 시, 온몸으로 쓰는 시가 있다고 한다. ‘풀’이라는 시를 쓴 김수영 시인은 흔히 온몸으로 시를 쓴 시인으로 분류된다. 그의 시에는 절실함과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쓰지 않으면 죽을 만큼 절실한 표현 욕구를 통해 쓴 시라는 뜻이다. 쓰나마나한 시가 아니라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쓴 시 말이다. 그런 시가 감동을 준다. 덧붙이면 김수영은 아내를 늘 여편네라 불렀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다. 시를 사랑으로 바꾸면, 사랑에도 머리로 하는 사랑, 가슴으로 하는 사랑, 온몸으로 하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2000년 전 예수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런 사랑이 온몸으로 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자기희생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랑이라 했다. 그의 사랑은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들이 발을 다칠까봐 허리를 굽혀 유리를 줍는 사랑이었다. 말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학생도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가면 마음의 문을 연다. 교육이든 정치든 또 통일이든, 이 세상 사랑으로 풀지 못할 것이 어디 있으랴. 글 권서각(한국작가회의 이사)  
103 혹부리 영감/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1667 2012-06-07
 혹부리 영감 줄거리 혹부리 영감이 어느 날 산으로 나무 하러 갔다가 길을 잃어 빈집에 들어갔다. 무서워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도깨비들이 나타났다. 도깨비들이 그 노래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자 혹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도깨비들은 그 혹을 떼고는 보물을 주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웃 마을의 또 다른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나오는 곳을 묻는 도깨비들에게 혹에서 나온다고 하자, 도깨비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다른 혹마저 붙여 주었다. ............................................................................................................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중에서 노래 부를 때 우리는 ‘원래의 우리 자신’이 된다. 우주의 본질은 춤인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세상은 물질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에너지들이 들끓는 거대한 무도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이 좋으면 마음이 마구 설레고 저절로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마냥 좋아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처의 얼굴이 우리의 진면목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본 모습을 띨 때 모든 것이 잘 된다. 물론 세속적 가치들도 상으로 주어진다. 혹부리 영감이 노래를 불러 혹도 떼고 보물도 얻듯이. 하지만 나쁜 의도를 갖고 노래를 하면 그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기에 오히려 재앙이 따른다. 따라서 이 세상은 이 모습 이대로가 사실은 낙원인 것이다. 다만 우리의 나쁜 의도가 문제인 것이다. 이 세상의 궁극적 도(道)란 ‘마냥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즐거워하려해서는 즐거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을 꾸준히 응시하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하게 된다. 우리의 나쁜 의도만 풀어주면 마음은 저절로 즐거워 춤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건 우리의 나쁜 의도를 알아채기 위한 것이다. 좋은 문학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있거나, 허황한 사상을 갖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특히 의도적으로 잘하려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잘하려는 마음’은 이미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이웃 마을의 혹부리 영감이 보물을 얻어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려 했어도 도깨비들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을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다. 노자는 이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했다. 혹부리 영감처럼 절망에 빠졌을 때,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자연스럽게 풀어줄 기회를 얻는다. 평소에는 아무래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 살기 때문이다.  
102 질투는 너의 힘/강태규 file
무궁화
1709 2012-06-01
질투는 너의 힘 미워하는 마음은 제대로 바라보는 시야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그러나 때로는 질투와 욕망이 버무려진 마음은 어떤 일을 추진하게 하는 (사람을 포함한 생물진화의 우점종 속에 계대되어 강화되어온 현재 작동중인 유전자에 의한) 힘이 되기도 할 것이며, 그것의 순방향과 역방향은 스스로 선택과 폐기를 반복하면서 아슬하게 생태계와 문명을 이때껏 지켜온 동인들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불경이나 성경에 견주어 볼 때, 불온한 발상이거나 지극히 유물론적 사고의 경도인지도 모르나, 본시 사람은 부처나, 거룩함의 아들이라고 아무리 전파를 하여도, 지금껏 지구라는 행성의 우점종으로 남은 내력을 곱아보면, 오히려 이기적이고 사악한 고등유전자의 생물로 ‘살아 남아 번성한 지금’ 으로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요즘이다. 총선의 결과분석 중에 드러난 현상인, 가난한 계급이 어찌하여 양의 가면을 하고 있는 야수의 계급에 투표했는 지가 ‘기억하고 의심하는 능력’ 을 퇴화시킨 우리와 주변의 기득권층임을 부인할 수도 없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차라리 터놓고 소담을 하는 술자리라고 해보자. 웃는 얼굴로 고민없이 부처님 같은 소재가 일견 폼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문화단체 운영비를 요구할 때나, 교육계나, 공적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폼나는 (좀 의심스럽더라도) 정부정책 동화적 사업계획서가 우선적으로 예산배정되고 있고, 그 앞줄에 서서 추진하는 대표자에게 힘이 쏠린다. 중요한 포탈에 있는 의사결정권자도 더 큰 욕망을 위해서는 어떤 결정들을 하고 있는지 뻔하게 보인다.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쓰는 것도 멋 적지만, 20세기를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달, 필자는 구제역 때문에 지연된 과제 하나를 마무리 했다. 가축의 기생충연구 중에 하나를 발표했는데, 뻔한 결론이지만, 기생충을 안전한 식육을 유지하면서 피해를 효율적으로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이러저러한 증거를 동원하여 백신을 개발하자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이따금씩 생각하고 여러나라의 과학적 자료들도 참고하다보니, 기생충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고 기생충의 마음속으로 들여다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구 껍질의 상판이 이동하기 전부터 버텨온 지극한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도 생겼다. 생태계가 열악해질수록 몸집이 큰 생명체는 개체수의 포화점 도달이 빨라, 일찍 소멸한다는 것이다. 보잘것 없이 보이는 미물들은 적은 에너지로 살아남거나 버티면 그 열정 하나로 기어코 남는다는 것. 나는 이 소망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50키로그램도 채 안되는 몸집으로 살아남았다. 방송사 진짜노조는 공룡의 편에서 구축된 논리에 기대는 한편의 방송인들과 균열 되거나 구획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즈음에 이 대결국면은 의도적으로 연장되어 진행될 것이다. 시를 공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필자도 일견한 장면이지만, 자유실천에 뿌리한 현재의 작가회의 소속 지역문단 시인(다른 단체도 겹가입하였는 지도 모르나)인, 나보다는 젊은 시인의 차에 동승한 적이 있었는데, “사대강 개발을 반대하는 빨갱이 문인이 있다” 라는 그의 의견을 듣고, 이런 작가도 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사실에 대한 나의 경악과 경의가 동시에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알것도 같다. 그런 지식인 또는 작가가 왜 지금 번성하는 토양인지를. 나는 아직도 소망한다. 내 아들이 삼성직원일지라도, 큰 공룡은 포화점이 빨리 도달할 것임으로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 지금, 힘이 있는 계급 또는 부류는 더 큰 결속력으로 왼손이 모르는 악행을 당연한 정의라고 구역예배를 할 것이고, 백일 불공을 드릴 것이다. 바퀴벌레여, 좀 더 힘써 열망과 분노를 키워 버텨라. 10억년 후 태양계가 팽창하기 훨씬 전까지 너의 세계가 올찌니.  
101 진보는 우듬지, 보수는 줄기/박희용 file
편집자
1724 2012-05-25
 진보는 우듬지, 보수는 줄기 나의 친구 정수, 잘 계신지 그리고 가내 두루 안녕하신지. 전번 중락이네 사위 보는 잔치에 가서 재경 친구들을 만나 잘 대접받고 놀다 왔지만 그날 자네를 못 뵈어 좀 서운했네. 여류세월, 시간은 흐르는 물이라더니 벌써 2012년 초여름이 진하네. 오랜만에 자네 이름으로 온 메일이어서 반가웠네. 며칠 전에 서울 가 머물다가 어제 오전에 안동으로 내려오기 직전에 도착한 반가운 자네의 메일,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서 잠깐 열어보았네. 내려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아래와 같은 점이 눈에 걸리더군. 비록 견문과 식견이 부족한 시골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하찮은 말이지만 불쾌하시더라도 일독하여 주시면 고맙겠네. 먼저, 자네가 보내온 문서의 제목은 <FW: 정당 국기계양대에 조기가 왼말?>였네. 사진 두 장, 하나는 4월6일 금요일 오후3시경 막말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통합당 노원구갑 김용민 후보와 민주당사에 걸린 태극기 사진이고, 또 하나는 지난해 5월 한명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짖밟고 헤맑게 사진촬영’을 한 사진이더군. 장황하지만 거기에 쓰인 글을 먼저 살펴보겠네. 《민주통합당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대한민국 제 1야당원들에 의해 태극기는 무참히 능욕당했다. 4월6일 금요일 오후3시경 막말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통합당 노원구갑 김용민 후보와 사과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민주통합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애국여성들의모임 레이디블루가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순간 행사 참가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위를 쳐다보니 믿기 어려운 장면이 보였다. 민주통합당 당사 옥상에 걸린 게양대에 태극기가 조기로 달려있는 것이었다. 바로 옆 자신들의 당 깃발은 당당하게 달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태극기를 자신들의 당 보다 못한 취급을 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주위에 있던 국민들은 분노했다. 우리 대한민국의 얼굴인 태극기가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제1야당 본거지에서, 태극기가 능욕 당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분노였다.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통합당을 강력히 규탄하자 한참 후에 관계자들이 나와서 부랴부랴 태극기를 다시 계양했다. 애국 시민들의 정의로운 목소리가 없었다면 민주통합당은 계속해서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모독했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태극기 능욕은 상습적이다. 지난해 5월 한명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짖밟고 헤맑게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얼굴을 짖밟는 자가 전 총리였고 제1야당의 대표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태극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홍모 제공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 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아 46:28)》 자네가 보낸 메일의 사진 두 장과 글을 읽고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네. (1) 우선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선전문인데 오자가 몇 있더군 계양 < 게양 揭揚, 왼말 < 왠말, 헤맑게 < 해맑게, 짖밟고 < 짓밟고 등이 표준 철자법에 맞는 어휘가 아닐까 하네. (2) 제목이 ‘선거에 졌다고 조기가 왼말’인데, 항의 집회가 4월 6일이면 선거가 4월 11일이니 5일 전 아니가?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는가? 제목 넣을 때 간과한 것 같군. (3) 첫 번째 사진을 보니 의도적으로 조기를 달았다기보다는 태극기 게양할 때 소홀한 것 같아. 조기는 깃폭만큼 내려야 하는데 한 1/3정도 내려오지 않았나? 아마 집회 참가자들의 감정이 매우 과격한 상태이다 보니 그것이 오버 랩 된 것이 아닐까 하네만. (4) 두 번째 사진을 보니 나도 태극기 위에 서있는 게 일단 눈에 거슬리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故 노무현대통령 2주기 추모식으로 중간에 추모비가 있는데, 한명숙 대표가 헌화하는 모습이 찍힌 것 같네. 추모식과 추모비 개념을 적용하면 가능한 장면이지만 태극기를 신성시 하는 군중들로 보면 하자가 되지. 하지만 요즈음 시대적 풍조는 태극기를 공공장소에선 국가의 상징으로 신성시하지만 옷이나 모자 스포츠용품 등에 디자인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줄 아네. 모양도 좀 변형시키기도 하더군. 그게 몇 년 전엔가 법률로도 공표된 줄로 아네. 그러니 태극기를 바탕으로 한 전직 대통령 추모비와 제1양당 대표의 헌화는 자연스러운 장면이 아닐까 하네. (5) ‘민주통합당에 대한민국은 없었다’라는 말과 ‘태극기가 능욕 당했다’라는 말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지나치게 내세운 선동문구가 아닐까 하네. ‘민주통합당’, ‘대한민국’, ‘태극기’, ‘능욕’이란 말은 서로가 생소할뿐더러 의미 단절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네. 민주통합당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반은 되는데, 그들이 정말 그렇다면 절단 날 일이 아니가. 몰라 혹여 일부 사람들이 그럴지는 몰라도 다수는 건강한 대한민국의 건강한 국민임은 분명하지 아니한가. 이 땅에 삶의 발을 딛고 사는 사람치고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없네.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비하, 무시하는 자들은 종북주의자들과 극좌 모험주의자들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측들의 사주를 받아 과격하고 선동적인 말과 행동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반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민주당을 비방하는 것은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이 평화롭게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하네. 민주주의는 건전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여론에 따른 다수결 원칙을 존중하면서 성장하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 해도 미흡하면 질책해야 하고, 내가 반대하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잘하는 점이 있으면 칭찬해 주어야만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성장하네. 혁명은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지만 건강한 정치는 말과 글로서 이루어지네. 규탄할 것이 있다고 해서 극우파인 어버이연합과 레이디블루처럼 우르르 몰려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하네. 물론 극좌파들의 불법집회와 시위도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것도 당연하네. 5월 내내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문제로 나라가 소란하네. 이석기, 김재연, 이상규, 이정희 등 구당권파 사람들 나름대로는 제대로 조사받지도 못했는데 과장되게 마녀 사냥을 당하는 억울한 분기가 있겠지.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회의방해와 폭력사태가 인터넷 중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시청됨으로서 대다수 국민들이 그들의 반민주주의 행패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네. 민주주의의 생명은 절차 중시 아닌가. 어떠한 명분으로도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종북과 반국가, 비사회적인 극좌 모험주의가 폭로되고 말았네. 이번에 우리 국민들은 진보에도 참과 거짓이 있음을 알았네. 물론 보수에도 참과 거짓이 있을 걸세. 이념 문제는 20세기 내내 우리 겨레의 정신과 생활을 혼란하게 하여 상쟁하도록 하는 요인일세. 이번 사태를 통해서 크게 진보와 보수라는 두 진영에도 양쪽 가에 각각 5% 정도의 극우와 극좌가 있고 다음으로 각각 10% 정도의 강우와 강좌가 있고, 중간을 기준으로 70% 정도의 중도층이 있음이 확연해 졌네. 이 70% 정도의 중도층이 극좌와 극우를 견제하면서 확실한 무게 중심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네. 과격한 극좌와 극우 사람들은 서로가 빙탄물상용이라서 “ 몽땅 쓸어버려라, 척결하라, 숙청하라” 등등 말을 함부로 내뱉는데, 이념과 생각이 다르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이해와 용인을 도모해야지 폭언과 폭력을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평화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6) 홍모의 제공이더군. 에레미아 46:28을 언급한 걸 보니 목사 또는 장로가 아닌가 싶네. 예수는 그 당시로서는 굉장한 진보주의자였네.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 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적 고통을 가장 가슴 아파하며 자기 민족에게 생명의 길을 개척해주기 위해 헌신한 선각자였네. 나도 1976년 9월 초에 여산 제2하사관학교를 마치고 용산역에서 선교하는 아주머니로부터 휴대용 성경을 한권 증정 받아 육군종합학교 시절에 찬찬히 읽어보았네.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깊은 감명을 받았네. 33년 동안 세상에서 산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더군. 결국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위협받는다고 여긴 유대교단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선각적 진보주의자로서의 진리 추구와 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네. 오늘날 대중 종교들이 물신주의, 배금주의, 대형주의 등에 탐닉하고 있는 것은 예수나 석가모니, 공자 등의 성현들이 제시한 진리의 길하고는 생판 다르지 않을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보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예수의 삶을 오늘과 미래에 부활하는 길이 아닐까 하네. 정수, 번잡한 변명만 늘어놓았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한 세대가 훌쩍 흘러갔다보니 서로가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이젠 모습이 다르고 이젠 생각이 다르고 이젠 이념이 다르네. 특히나 우리의 향토인 영남, 그 중에서도 경북, 그 중에서도 경북북부 지방은 아주 단단한 보수 풍토이지. 이 지역에 살면서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여서 섬처럼 참 고독하다네. 자주는 못 만나지만 가끔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 카페에 오른 글들을 살펴보면 재경 동창들은 90% 이상이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더군. 진보든 보수든 그것들은 생각의 차이일 뿐이 아닌가. 그것이 가족이나 이웃, 친지나 친구들의 사이에서 장애로 작용해선 안 되네. 서로의 생각과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가치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는 나무의 우듬지로서 하늘을 향하여 자라는 부분이고 보수는 그 우듬지가 단단해져서 무게를 갖춘 줄기가 아닌가. 우듬지를 부정하거나 줄기를 부정해서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지 아니한가. 우리가 이 나이 되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을 잘 준비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어버이연합과 레이디블루 회원들의 마음도 이와 같음은 분명하네. 그분들이 무슨 돈과 명예를 위해서 행동 대열에 참가하였겠는가. 단지 이 나이 되어서 우리들이 경계하여할 할 점이라면, 나만이 옳다 우리만이 옳다라는 아집이 아닐까 하네. 장강이 지류를 받아들이고 대하가 세상의 모든 강을 받아들이듯 노년기엔 청년기보다 더 머리와 가슴과 마음을 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네. 그래야 지혜로운 노인으로 아름답고 편안하게 나의 생애를 마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네나 나나 지향하는 목표는 동일한 것은 분명하네.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 건안하시게. 2012년 5월 24일 안동에서 양백산인 박희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