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5호...
   2020년 0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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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언론이 문제다/권서각 file [1]
편집자
1317 2012-12-16
 언론이 문제다 권서각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검찰개혁, 어떤 이는 양극화문제, 어떤 이는 경제민주화, 어떤 이는 청년실업 문제를 말하지만 이 모든 것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언론문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뜻이 정치에 반영되는 정치제도이고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언론의 공정성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고 그 뜻이 제대로 정치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언론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한마디로 부끄럽다. 조중동을 비롯한 종이신문과 공중파 3사와 종편 텔레비전은 모두 재벌과 정권의 편에서 공정하지 못한 보도를 일삼고 있다. 공영방송인 MBC의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170여일이 넘는 파업을 했다. 여야국회의원들이 MBC정상화에 합의한 뒤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복귀하자마자 파업을 했던 기자와 피디들은 징계를 받거나 한직으로 쫓겨 갔다. 요리실습을 하거나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비리가 드러난 김재철 사장은 유임되었다. MBC를 편파방송의 대명사로 만든 사람이 재신임을 받아 유임된 것이다. MBC가 권력에 장악된 결과다. 뉴스라면 자동으로 9시 MBC뉴스데스크를 보던 사람들이 뉴스데스크를 외면하게 되고 시청률이 떨어지자 뉴스데스크를 8시로 옮겼다. 사람들은 이를 MBC8뉴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김용진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쌍용차 관련 희생자가 열 명을 넘어서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2011년 1월부터 22번째의 희생자가 나온 2012년 4월까지 우리 언론의 보도를 보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각각 78건, 75건을 보도했을 뿐 <동아일보> 1건, <조선일보>가 2건, <중알일보>가 2건, KBS와 MBC가 2건, SBS가 1건을 보도했다. 그것도 희생자들의 태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재벌과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언론은 종이신문 2개 정도가 고작이라 할 수 있다. 이 2개 신문에 근무하는 기자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문사는 대부분의 수입을 광고에 의존하는데 재벌과 권력을 비판하는 신문에 광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부도덕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오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신문과 방송사를 소유한 언론 재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예로 오바마가 재선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언론이 텔레비전 토론 등을 통해 사실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4.19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신문이 사실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론이 사실보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언론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오랜 세월 왜곡보도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기관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며 사전 검열을 했다. 지금 사전검열은 없다. 그 대신 권력이나 재벌이 경제적 불이익을 주어 언론 스스로 복종하게 만든다. 언론사의 사주가 자체검열을 통하여 스스로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게 한다. 이쯤 되면 이미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보도를 통해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언론의 사명일진대 이들은 언론권력을 통해 자신의 지위나 이득을 충족시키고 있다.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일과 다름이 없다. (시인)  
124 ‘선(善)’에 대하여/고석근 file
편집자
1112 2012-12-07
‘선(善)’에 대하여 그 불거져 나온 이마의 핏줄을 보고 있노라면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 브레히트,「악한 자의 가면」중에서 깊은 밤에 고등학생이 술에 취해 운전을 하다 평화롭게 살던 중년 부부의 집으로 돌진했다.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 기자가 아이 집으로 찾아가자 아이 아버지는 문도 열어주지 않고 말했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모르는 사람한테 말해야 해요?” 아이 아버지는 이 세상에 도둑놈 아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처음엔 그도 선했을 것이다. 그러다 그는 온갖 세상의 쓴맛을 맛보며 차츰 악하게 변해갔을 것이다. 결국엔 이마에 핏줄이 불거져 나온 악마 형상의 얼굴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숨쉬기 체온조절 등을 관장하는 파충류 뇌(뇌간), 감정 기억 성욕 식욕을 관할하는 포유류 뇌(변연계), 이성을 관장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영장류 뇌(전두엽)가 함께 존재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 모든 뇌의 기능을 쓰고 살아야 ‘온전한 인간’이 된다. 그런데 악하게 살게 되면 인간 고유의 뇌(전두엽)를 거의 쓰지 않고 살게 되어 포유류나 파충류처럼 살게 된다. 예수는 ‘이 세상을 다 얻더라도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고 말했다. 소탐대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는 목숨까지 걸면서 큰 이익엔 아예 눈을 감고 살아간다. 다들 마음의 눈이 멀어 버렸다. 아들이 사고를 내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는데도 뻔뻔한 인간. 우리 사회가 낳은 괴물이다. 우리는 뻔뻔하게 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 수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급 인사들’이 얼마나 뻔뻔하게 사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런 괴물들과 (마음속에서) 싸우다 보니 니체의 말대로 우리 모두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이 흐려지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하지만 그렇게 악마가 되어 얻은 것들이 영혼을 잃어버렸는데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선하게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남을 위해 행하는 이타주의를 잘못 교육 받아 선행은 남을 위한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이런 선행은 노예의 도덕이다.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게 되면 자신을 위하는 삶과 남을 위하는 삶이 결국엔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전두엽의 기능이다. 우리는 늘 눈 코 뜰새 없이 헉헉대며 열심히 사는데도 가슴이 항상 헛헛하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지 못한 죄에 대한 벌이다. 삼라만상 다 저 태어난 모습으로 사는데 인간만이 태어나지 않은 모습으로 산다.  
123 새 시대의 명분, 민주화 + 경제성장 +소득재분배 +민족통일 /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015 2012-11-22
 새 시대의 명분, 민주화 + 경제성장 +소득재분배 +민족통일 양백산인 박희용 어느 시대나 명분의식의 건전한 작용은 한 사회를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하며, 사회를 강건하게 통합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명분의식의 건전한 작용은 새 시대의 필수이다. 필수이기 위해서는 현대사에 등장했던 몇 번 특수한 명분이 가져온 빛과 어둠을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과거에 박정희와 전두환이가 군벌반란을 감행하면서 안보강화와 경제발전이란 특수한 명분을 제시하여 권력 장악에 성공하고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소수자들의 것이었을 뿐 다수 국민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엔 권좌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소수의 야심가들이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여 특수한 명분을 제시하는 자체가 불법으로 국권을 찬탈하려는 범죄인 것이다. 시대 상황은 갑자기 의도적인 인위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의 내공이 쌓여 서서히 굳어진다. 광복 이후 좌우투쟁, 한국전쟁, 극우독재, 군벌독재 등을 겪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날이 갈수록 가치를 빛내고 있는 까닭은 과거의 고통을 밑거름으로 삼아 미래를 밝히자는 민심이 대세를 이루며 시대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두 세대가 흐르면서 이제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통일 등의 제반 국가 경영의 프레임에 대한 명분이 국민들에게 일반화 되어 있다. 그 덕분으로 분단국인 한국은 세계 10위 권 안에 드는 경제력과 비교적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면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13년은 새 정치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한다. 12월 18일 대선을 앞두고 세 명의 후보가 저마다 새 정치의 적임자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에 나타나는 시대명분과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시대명분이 동질성을 갖는지의 여부는 향후 5년을 좌우하는 중요성을 갖는다. 현재 보통의 한국인에게 형성되고 있는 여러 부문에서의 명분의식을 살펴보자. 정치적인 면에서는 민주주의가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가 덜 굳은 시멘트 판을 휘저으며 훼방하였지만 현명하고 끈기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다시 시멘트 판을 다독여 그들의 발자국을 지웠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물질주의, 사회 양극화, 4대강 유린, 남북관계 악화, 민주주의 퇴보 등의 실정을 자행했지만 한 달도 안 남은 18대 대선에선 분명 역사관이 뚜렷한 새 대통령이 선출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다시 힘차게 약동할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 10년 동안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굳었기 때문에 5년 동안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현대사를 일관하는 거대한 명분이 물질주의자들의 농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민주진영의 후보가 당선되면 다시는 민주주의가 훼손당하지 않도록 국민들의 명분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시급한 일이 언론 민주화이다. 사유 권력화 한 언론을 해체하여 공정화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자본의 독과점금지법을 제정하고 인사권을 주주와 기자들이 민주투표로 선출한 이사회에서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정보도권을 강화하고 오보 시에는 해당 기자와 편집권자를 문책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정당정치 구조의 확립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 집권당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조치하고 집권당의 의원총회에서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와 의결이 되도록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현재의 5년 단임제가 좋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하려면 다시 개헌론 때문에 국론이 분열하고, 재선하기 위하여 무리수를 두어 국정이 혼란해지고 민주주의가 훼손당하기 쉽다. 그것보다는 단임제가 깨끗하다. 정당정치가 활성화 되어 집권당의 정책이 국정의 방향이 되고, 후계 대통령이 그 정당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단임제의 미흡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 국회의원의 수는 현재대로 300명으로 하고 비례대표 명부는 당원들의 직접투표로 정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사업보다는 국가 경영에 관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검찰과 사법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권력집단의 속성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법원과 검찰의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원장과 법무부장관이 갖되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권력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부단한 관찰이 필요하다. 경제정책 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민주경제의 확립이다.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국민경제가 건강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대내적인 차원이고, 대외적으로 경제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재벌이 필수적이다. 재벌이 글로벌 경제시대에 적합한 조직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까닭은 재벌이 개척정신을 갖고 외국으로 진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려 하지 않고 앉아서 편하게 장사할 수 있는 자잘한 분야의 내수시장까지 독점하려는 재벌답지 못한 경영책략 때문이다. 명색이 한국의 유명한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삼켜서야 체면이 서겠는가 말이다. 이런 짓거리에 탐닉하다보니 정신은 미숙하나 덩치만 비대해진 공룡이 되어버렸다. 재벌이 공룡이 되어선 안 된다. 계속 공룡이다가는 서로 경쟁적으로 주변의 먹이를 다 먹어 치우고는 마침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재벌은 코끼리가 되어야 한다. 덩치는 크나 유순하고 사리분별을 잘하여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코끼리 같은 재벌의 모습이라야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지나치게 비만한 재벌을 근육질화 시켜 세계를 무대로 뛸 활동력을 강화시키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계층 간 불화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벌과 부자들이 소유욕에 상처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여 마련한 재원으로 사회복지정책을 착실하게 전개해야 한다. 재벌과 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우거나 닦달하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긍지심을 갖고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할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들을 공공의 적으로 보는 서민들의 관점을 불식시켜야 하고, 그들이 국가를 경영할 세금의 대부분을 내고 국민들의 복지를 향상할 자금을 댄다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기제를 제공해야 한다. 재벌이 명분론적 정당성을 품을 때 국가경제의 중심축으로 우뚝 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국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권리이고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가난은 불편하고 부끄럽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봉건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의 민주주의 시대에는 자기 노력에 따라 부자가 될 수 있다. 정신이 똑바로 박혀있고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번듯한 신체와 노동력을 가졌으면서도 일은 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이나 받으려 하면서 부자들에게 적개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장애인이나 병자, 노동력을 소진한 노인들과 고아들에게는 적당한 복지를 펴야하지만, 노동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이고 일률적인 복지를 주기보다는 자립하여 일할 수 있는 의지와 여건을 조성하여 주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남북관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축적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공적을 한순간에 파괴할 수 있는 뇌관이다. 그 뇌관이 터지면 전쟁이란 블랙홀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먼저 뇌관이 발화되어야 화약이 폭발하므로, 전쟁을 방지하자면 뇌관인 남북관계를 잘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남한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로 대북정책이 소수 권력자들의 수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의 협의에서 나오기 때문에 안정적이지만, 북한은 전제군주 일인 지배체제로 대남정책이 소수에서 일방적으로 나오고 검토 없이 과격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것이 문제이다. 분단 이후 67년의 시간이 흘렀다. 초기의 조급한 통일의지도 세월과 함께 녹슬고, 남과 북이 한 나라라는 뿌리에서 나왔으나 나날이 갈수록 다른 나라로 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만연하고 있다. 통일은 절대적인 목표이지만, 다시 전쟁을 거쳐야한다면 단연코 통일을 거절하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통일하기보다는 양국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교류와 협력을 하는 방법이 가장 타당성을 가진다. 이제는 무력 사용이 공멸이라는 인식이 남북의 지도층과 국민들에게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2013년에 남쪽에 다시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인 남북협상이 전개될 것이다. 남쪽에서 염려하는 바인 남침은 북한 국력이 작아서 단기적으로는 전투에서 승리해도 장기적으로는 전쟁에서 패할 것을 잘 아는 북한 지배층의 판단 때문에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으며, 북쪽에서 염려하는 바인 북침은 대통령 개인과 소수 집권층이 국회와 국민들의 동의 없이 자의로 저지를 수 없도록 법과 제도적으로 통제되고 있으며, 미국의 북폭이나 북침 문제도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협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대내외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남한과 북한이 2013년 봄에는 다시 대화와 협상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대결과 전쟁보다는 대화와 협상이 훨씬 이득이 된다는 점은 남북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인식하니, 새로 시작하는 대회에서는 욕심내지 말고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체결한 남북합의안대로만 일단 시행하면 될 것이다. 결과에 따라 다음 정권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남북협력 사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기와 냉전 대결기에 서로 원수가 된 남북의 노년 세대들이 거의 다 사망하였기 때문에 감정적인 면에서 한결 유연성이 있을 것이다. 현재인들은 과거인에게 빚진 게 없다. 왜냐면 한국전쟁기에 살아남은 사람이 남긴 씨앗이 현재인이기 때문이다. 총각으로 죽은 자의 씨는 끊어졌다. 어린 나를 놔두고 전쟁 중에 부모가 죽었을 수도 있지만, 전쟁에서 나의 부모가 살아났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원수진 일이 없다. 그러므로 부모를 죽인 ‘불공대천지원수’라는 말은 명분적 정당성이 미약하다. 2013년을 맞이하는 남북 지식인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온 세계 각국이 저마다 살려고 아우성치는 장엄한 생존경쟁의 지구에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이 서로 싸워봐야 이득 되는 게 추호도 없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권력은 국민들이 좀 잘 살게 해달라고 내게 한 부탁이며, 남북에 가득한 무력은 한반도 곳곳에 살고 있는 동족이 마련해준 것이다. 권력으로 사회를 안정되게 하고, 무력으로 다시는 외침을 당하지 않는 한반도를 만들어 달라는 겨레의 소망이 절절하다. 권력으로 일신의 부귀를 탐하고 무력으로 동족을 살상하라는 게 아니다. 남과 북의 지식인들이 권력과 무력의 명분론적 정당성을 뚜렷이 하여야만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행복할 것이다.  
122 대화/권서각 file [1]
편집자
1393 2012-11-15
 대화 갑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친구다. 원칙과 규칙을 존중하는 이른바 모범적인 사람이다. 그의 조부는 지방 부호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대다가 몰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이른바 수구꼴통으로 분류된다. 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사법시험 공부를 하다가 실패한 백수다. 일찍이 우리사회의 권력자들의 비리가 심각함을 보고 시민의 권리를 찾는 시민운동 단체에 관여해온 친구다. 수꼴에서 좌빨이라 부르는 인물이다. 필자는 이 두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므로 가끔 셋이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느 날 갑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셋이 주막에서 막걸리 사발을 마주했다. 선거철이므로 어쩌다 이야기가 정치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갑은 을이 좌빨인 줄 모르고, 을은 갑이 수꼴인 줄 모르는 상태다. 갑: 이번 대선에 나온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유력한 후보 같은가? 을: 자네가 서울사람이니 우리보다 더 잘 알지 않겠나. 갑: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경험이 많은 박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문과 안은 믿지를 못하겠어. 처음에 정치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었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을: (물끄러미 갑을 바라보다가) 자네 혹시 조선일보 보는가? 갑: 어떻게 알았어? 조선일보가 그래도 가장 믿을만한 신문 아닌가? 을: 역시 그렇군. 우리는 그걸 신문이라 하지 않고 찌라시라 하네.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던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직하고 권력의 편에서 왜곡보도를 일삼는 신문 아닌가? 갑: 하기야 서울대 나와서 조선일보 기자하던 우리 종형도 그때 해직 당했지. 을: 그런 신문의 보도를 자네는 그대로 외우고 있네. 나는 자네 조부께서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일을 알고 있는데, 그 돈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조 단위가 넘을 걸세. 갑: 맞아, 조부님이 그 재산만 지켰더라면 나는 넉넉하게 살았을 걸세. 을: 그런 가문의 후손이 어찌 조선일보의 보도를 그대로 믿고 친일을 했던 독재자의 딸을 지지하다니 나는 이해가 되지 않네. 갑: 독재자의 딸이라서 대통령 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리고 나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대통령이 제일 훌륭했다고 생각해. 가난하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게 해준 분이 아닌가? 그분이 아니면 우리가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겠나? 을: 독재자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니 문제지. 그리고 나는 그사람 혼자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네. 산업화 시기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한 사람들의 희생은 어떻게 하고? 그리고 그분은 다가끼 마사오, 오카모토 미노루로 창씨개명을 하고 간도 토벌대에서 독립군울 잡다가 해방공간에서는 남노당 활동을 했고, 4,19이후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아닌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수없이 희생시키지 않았던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의 후손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는가? 갑: 그 분이 그럴 리가 없네. 그건 처음 듣는 소리일세. 그런데 자네는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보게. 삐딱하게 보지 말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자면 작은 잘못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두 사람의 대화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 생각에 대한 변명을 견강부회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말하기가 결코 제대로 된 대화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런 대화 끝에는 뜨악해지기 쉽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낳은 지극히 서글픈 풍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글 / 권서각  
121 꿈/고석근 file
편집자
1356 2012-11-06
 꿈 그들은 술을 퍼마시다가 그녀에게 침을 뱉기 시작했다 이제 막 강에서 올라온 그녀는 도대체 영문을 몰랐다 그녀는 길 잃은 인어였다 그녀의 매끄러운 살결위로 욕설이 흘렀다 음란한 짓거리가 그녀의 황금 젖가슴을 뒤덮었다 .............................중략.............................. 그녀는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강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깨끗해져 빗속의 하얀 돌처럼 빛났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헤엄쳤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향해 죽음을 향해 헤엄쳐갔다. - 네루다,「인어와 술꾼들의 우화」 그녀는 꿈이 의사였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갑작스런 사촌동생의 죽음을 보고 나중에 커서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지만 선생님들과의 마찰이 심해 학교 성적이 떨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꾸만 엇나가는 행동을 하게 되고 급기야는 가출을 하게 되었단다. 대학에 진학도 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 부모님의 강요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지만 사는 게 너무나 허망해 술을 가까이 하게 되었단다.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성당에 다니는 고향 친구를 만나 세례를 받고 천주고 신자가 되었단다. 드디어 평안을 찾게 되었단다. 짧은 몇 줄의 글로 요약되는 한 여인의 30여년의 삶. 과연 그녀는 정말 평안을 찾게 되었을까? 그녀가 찾았다고 생각하는 평안은 거짓이다. 절대신 주 하느님의 품 안에 안겼다는 자기 최면에 의해 잠시 평안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 것뿐이다. 어느 날 문득 최면에서 깨어난 그녀는 풀 한포기 없는 황야에 저 혼자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모시는 주님은 그동안 자신이 의존했던 술을 대신 한 것뿐이다. 술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은 채 아기가 되어 엄마 품에 포근히 안길 수 있었을 것이다. 술에서 깨어났을 때의 허무감을 견딜 수 없어 주님 품에 안겼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주님 품에 안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 품안도 조만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가 의사가 되겠다는 원을 세운 것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원시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그 증거가 자신들이 사는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나무였다. 나무는 땅 속과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거룩한 존재였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이 우주에서 자신이 가장 존귀하다는 것을 깨달은 석가도 나무 아래서 도를 깨쳤다. 그녀가 의사가 되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거룩한 원을 세운 것은 이 땅에 나무 한 그루의 씨앗이 심어진 순간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우주의 마음이 섬광처럼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 씨앗을 계속 키워갔어야 했다. 자신 속에 있는(느낀) 한 줄기 우주의 마음을 꾸준히 키워갔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가 어디 그런 꿈을 키워주나? 아이가 의사가 되겠다고 하면 ‘그래, 돈 잘 버는 직업을 선택 했군.’ 하지 한 어린 영혼이 사랑을 꿈꾸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어른들이 있나? 그렇게 하여 그녀의 거룩한 꿈은 우리 사회의 속물적인 분위기 속에 흡수되어 버리고 그녀는 꿈 없이 살게 되었다. 꿈 없는 몸뚱이는 ‘아기’를 원할 뿐이다. 아기는 어른이 되어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하기보다는 엄마 품에서 젖을 실컷 먹고 새근새근 잠만 자고 싶을 뿐이다. 술이 그녀에게 아기가 되게 했고 이제는 주님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절대신 주 하느님은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만날 수 있지 철모르는 아기가 되어서는 만날 수 없다. 그녀는 이제 모든 술을 끊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 나무 한 그루의 씨앗을 심은 그 순간으로. 아직 씨앗은 흙 속에 깊숙이 파묻힌 채 깊은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흙을 북돋워주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조만간 씨앗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싹을 틔우고 잎을 내밀 것이다. 땅 위로 고개를 내밀고 팔을 뻗고 무럭무럭 키를 키워갈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그녀는 기적처럼 하늘에 계시는 주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로소 그녀에게 깊은 평안이 찾아 올 것이다.  
120 한국사의 분기점 1801년, 그리고 2012년/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818 2012-10-21
 한국사의 분기점 1801년, 그리고 2012년 양백산인 박희용 인조반정 이후 300년 동안 조선의 집권 주류 세력이 된 서인이 분화한 노론과 소론, 시파, 벽파의 파쟁도 결국 순조 등극 이후부터는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등 몇 몇 문중이 지배하는 세도정치 체제 속에서 소멸되어 버리고, 학문적 교양보다는 천박한 정치적 이해관계 위주의 사고를 하는 외척들의 발호로 인하여 성리학도 차츰 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조 치세 때까지만 해도 움터 자라던 실학의 꽃망울이 신유사옥이라는 독한 꽃샘추위를 당하는 바람에 서학, 천주교와 함께 엮여 절멸하고 말았다.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하는 사건으로 발생한 1791년 11월의 신해사옥이 서론부분이라면 1801년 2월의 신유사옥은 본론 부분, 이해 10월에 터진 황사영밀서 사건은 결론 부분으로서, 이 10년 동안이 천주교사에서는 가장 잔혹한 순교의 시대로 경배 받지만 한국사에서 국운을 가를만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 때 갈 길을 잘 정해야 하는데, 그만 선택을 잘못하는 바람에 200 년 동안 후손들이 개고생을 하게 되었다. 1801년도에만 국한시켜 역사의 책임을 물어보면, 가장 무거운 책임은 정조에게 돌아간다. 그가 좀 더 살았다면 서학과 천주교 문제가 순리로 풀리지 않았을까. 또 순조가 좀 더 장성한 연후에 왕위에 올라 대왕대비의 섭정과 안동 김씨 외척들의 세도정치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이 짧은 걸 어떻게 하겠나, 인명재천이요 나라의 운수인 것을. 정조는 영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순조를 낳은 원빈 박씨라는 밭의 토질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후궁을 들일 때 색기만 보지 말고 영리함을 반드시 살펴야 했는데 살살 꼬리 치니 덥석 물었다가 나온 소생이 나중에 왕위를 계승하니 나라꼴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조선 초기에는 여덟아홉 명씩 생산하던 씨와 밭이 중기로 접어들면서 시들시들하더니 명종 대에 와서 씨가 부실해지고 밭이 척박해지면서 정비 출생이 귀하게 되었다. 이성계의 혈통이 무반이고 상대 할아버지가 여자를 탐해 삼각관계를 하다가 쫓겨 간 것을 보면 정력 하나는 확실하게 센 모양인데, 거기에다가 함경도에서 백여 년 동안 여러 대에 걸쳐 여진족의 밭에다 씨를 뿌렸으니 오죽 튼튼했겠는가. 그러니 정실 소생으로 팔 왕자 구 왕자 생산은 거뜬했고 공주, 서자, 옹주들은 부지기수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토록 튼튼하던 씨도 고량진미에 운동부족, 매일 밤 침소에 궁녀를 갈아들이기를 몇 대 동안 계속하니 어찌 무쇠 같은 씨인들 비실비실 녹아나지 않겠는가. 이런 이치로 하여 중국의 왕조는 길어야 3백 년, 거의 2백 년 기간 동안 십 몇 대 정도의 왕 다음에는 자연적으로 쇠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곤 다시 튼튼한 씨가 폐허에서 자라고. 그런데 조선은 두 배인 5백 년이나 왕조를 유지한 까닭은 왕씨의 부실에도 불구하고 봉건왕조를 떠받드는 사대부들의 골수에 충효정신이 꽉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즉 성리학의 명분론 때문이다. 조선 초기에 태종, 세종, 명종 같은 영리한 왕들과 기득권 계급이 고삐 하여 꿴 ‘고려 충신 정몽주’, ‘절의충신 사육신’이라는 명분, 성리학의 제일 교조인 충효와 불사이군의 명분 앞에 왕에 대한 불경은 전혀 용납될 수가 없었다. 중종의 후궁 소생 아들에서 난 방계인 선조가 왕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효종과 현종 등 몇 말고는 줄줄이 후궁 소생. 왕통이 미약하니, 나중엔 씨가 말라 강화도에까지 가서 씨를 빌려올 지경이 되니 자연적으로 궁중에선 왕위 계승을 노린 암투가 벌어지고, 그에 연통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대부들의 정쟁이 격화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이걸 보면 중기 쯤 되어 경국대전을 수정하여 신권 강화 구조를 만들든지, 그게 안 되면 태종처럼 절대왕권을 휘두르든지, 약한 씨가 도저히 튼실해질 가능성이 낮거나 없으면 아예 씨를 바꾸든지, 양단간에 결단하였더라면 나중에 20세기를 사는 후손들이 왜놈들의 종노릇을 안 해도 되었을 것이 아닌가. 늦어도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중반엔 정치혁명이든 역성혁명이든 있어주었어야 백성들의 삶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반역이나 민란 같은 소요는 제외하고, 인조반정에 반대한 이괄의 난이나 홍경래의 난이나 동학혁명 같은 것이 성공하여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였더라면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다. 소설이지만, 임진왜란의 일등공신으로 온 백성들의 흠모를 받던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 모진 마음으로 살아남은 다음, 전라좌수영과 우수영을 기반으로 한 세력을 동원하여 이성계처럼 새 왕조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이성계가 새 하늘을 열 수 있었던 까닭은 백성들과 사대부들의 전폭적인 신망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신망은 그가 평생토록 남북강산을 종횡으로 쏘다니며 황건적, 왜구 등의 침략을 막아낸 훌륭한 장수였기 때문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썩은 고려를 베어내고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에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성계의 반란’이 아니고 역성혁명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순신이 서해와 남해의 뱃길을 막아 수운에 능한 왜적들이 바다 길로 군대와 군수품을 조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궁핍케 하여 죽어가는 조선을 간신히 살려놓았으니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이성계와 비교한다면 왕권이 튼튼했고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점이다. 이런 점을 염려해서 선조는 이순신을 죽이려 했고, 정유재란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이순신은 군자답게 최선을 다해 왜적을 물리친 다음에 스스로 죽어 멸문지화를 막고자 한 것 아니겠는가. 두 번째 책임은 대왕대비 김씨에게 돌아간다. 자기가 직접 낳은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열두 살 순조가 왕이 되고 오랜 기간 동안 섭정을 하면서 자기 친정 쪽 사람들을 중용하여 왕권을 미약하게 한 원죄가 있다. 명분과 능력도 없이 문중 출신 대왕대비 덕분에 꿰찬 벼슬자리는 토색질하여 재물을 긁어모으는 아주 유효한 갈퀴였을 뿐이다. 달달 긁힌 조선의 백성과 강산은 피골이 상접할 수박에 없었다. 아마 자기 친자식이었으면 출가외인 의식이 투철해 순조의 왕권을 보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보수적인 신료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신유사옥을 일으키도록 한 것은 역사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1801년의 상황을 2012년에 대입해 보자. 정조와 대왕대비 김씨, 그리고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등의 척족들,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대통령, 여당, 야당, 언론, 군부, 등 등.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차이뿐이지 정치 구조와 정치인들의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1801년에 태평성대는 고전 속의 꿈이었고 현실엔 파벌 간에 권력 투쟁이 치열하였다. 2012년에 민주주의는 교과서 속의 수식어일 뿐이고 현실엔 파벌 간에 권력 투쟁이 치열하다. 군주제냐 공화제냐 하는 옷의 차이만 있을 뿐 알몸이기는 똑같다. 그 알몸도, 여유가 있으면 교양을 꾸미지만 조금이라도 몰리면 냉큼 감춘 발톱으로 상대를 할퀴어버린다. 남북분단과 대결의 구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완전히 궤도에 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말로 괜찮은 인물들이 대대로 대통령직을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보니 평온한 타입보다는 역동적인 타입의 인물이 대통령으로 추대 또는 선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통일이 되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두 달이 안 되게 남은 대통령 선거, 빅 3의 행진이 귀와 눈을 어지럽힌다. 그래도 이번 선거는 지난 2007년과는 달리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이 좀 넓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20년 이상씩 내공을 쌓은 후보들이라 깊이와 무게가 있어 보인다. 모두다 우리나라에서 정한 공교육을 알차게 받은 분들이니 얼마나 지식과 교양이 충실한 분들이겠는가. 그러니 안티니 네거티브니 티격태격 하지 마시고 정책과 의지로 멋진 한판 승부 펼쳐 국민들로 하여금 감동토록 하시라. 누가 무어라 해도 역사는 앞으로 걸어간다. 반역이 한 때 발목을 잡아도 진화하는 민중의 에너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린다. 이제 누구나 시대정신이란 말을 쉽게 이해하고 자주 입에 올린다. 큰 목소리로 “과거를 묻어 거름하여 미래를 도모하자”. 2012년은 1801년의 잘못된 선택은 말고, 활연히 민족통일과 번영을 향하여 걸어가시라.  
119 속 보이는 이야기 file
편집자
1376 2012-10-15
 속 보이는 이야기 권석창 우리 손자는 말이야, 귀찮아 죽겠어. 아직 학교에도 안 갔는데 자꾸 책을 사 달라네. 조그만 놈이 글을 알아 가지고 말이야. 나만 귀찮게 해. 이건 속 보이는 이야기기는 하지만 귀엽기는 하다. 어떤 이의 말이나 행동이 겉과 속이 다를 때, 그 다른 점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때 우리는 ‘속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 보이는 말을 들 때 혹은 속 보이는 행동을 접할 때 드는 이가 민망해지고 말 하는 이가 참으로 딱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어떤 국회의원이 자신의 청치 생명을 걸겠다며 한 말이 뉴스의 첫머리를 매일 장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할 때 비밀 회담을 했는데 그때 NNL(서해 북방한계선)을 다시는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국가원수가 NNL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의 영토를 적에게 내준다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비밀 녹취록이 있으니 보면 알 것이 아니냐고 부르댄다. 겉으로 드러난 보도를 들으면, 노무현은 김정일에게 우리의 영토를 넘겨주려는 매국노이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문재인도 같은 매국노인데 어찌 이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뉴스가 날마다 텔레비전의 앞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이 발언을 한 국회의원의 생각과 텔레비전방송 책임자의 속내가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국회의원 주장대로 국정감사를 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아니다. 대통령관련 문서는 15년간 누구도 열람할 수 없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설령 열람을 한다고 해도 외교관례상 우리는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의원도 이런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그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로 돌아가 보자. 사실 NNL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남북의 충돌이 가장 잦은 곳이었다. 노무현은 남북정상회담 당시 휴전선은 법적으로 북한과 미군이 휴정협정에서 체결한 경계선이 맞지만, NNL은 미군이 작전 금지구역으로 남한군이 올라가지 못하게 설정한 선이다, 이것을 국경선이라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헌법에는 북한도 우리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당시에도 한나라당은 충격적인 발언이라고 펄쩍 뛰었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노무현 발언을 다시 끄집어낸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노무현은 당시 남북정상회담에서 NNL지역을 남북이 함께 고기를 잡을 수 있는 평화어업지역으로 만들어 남북의 이익도 도모하고 상호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고 개성공단과 해주 지역에 우리배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이것이 노무현의 생각이었다. 사실 노무현의 뜻대로 되었다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은 연평도 지역의 충돌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연평도 주민은 NNL지역에서 중국 어선들이 고기를 잡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한다. 우리 어민은 고기도 잡지 못하고 군사적 긴장으로 불안에 떨기만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다시 노무현 발언을 다시 문제 삼는 그들의 속은 무엇일까? 우리사회에는 북한 말만 들어도 펄펄 뛰는 사람들이 지배적으로 많다. 북한이니 남북화해니 하는 말만 하면 빨갱이로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것이 모두 표로 연결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간첩이 잡히고 북풍이 불고 총풍이 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속내를 들키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인)  
118 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성격대로 살라(마르크스) file
편집자
1870 2012-10-09
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성격대로 살라(마르크스) 숟가락은 밥상 위에 잘 놓여 있고 발가락은 발끝에 얌전히 달려 있고 담뱃재는 재떨이 속에서 미소 짓고 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이성복,「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들은 그 당시에도 별로 힘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들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그 불편함이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참으로 신났다. 동네 또래들과 꼴을 베고, 냇가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고, 어둑한 골목길을 쏘다니고,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고. 눈이 가득 덮인 산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신나던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말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학교가 읍의 변두리에 있어 읍내 아이들과 우리는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다. 보자기를 메고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우리는 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콧물이 반질반질한 옷소매를 뒤로 감추고 나는 그들이 신나게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날 교실에서 한 아이가 처음 보는 하얀 얇은 종이 뭉치를 가져왔다. 나는 그 종이를 보고 저건 상처에 붙이는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코웃음을 치며 똥 누고 뒤를 닦는 거라고 말했다. 아! 나는 그 뒤 어디가면 말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얌전하고 조용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웃으려 해도 얼굴이 일그러지기만 했다. 쭈뼛쭈뼛 물 위의 기름처럼 아이들 속을 동동 떠다녔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공상이 난무했고 나는 그 공상 나라에서 버텼다. 결국 이 세상에서 튕겨 나오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대로’ 살아 보았다. 학창 시절에 못 해보던 것들을 다 해보았다. 문학 공부하며 밤새껏 술도 마셔보고, 밤거리를 휘젓고 다녀보기도 하고, 그러다 패싸움도 해보고, 경찰서에 끌려가 보기도 하고, 멀찍이서 보기만 하던 데모대에 끼여 도심거리를 행진해 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어깨 걸고 민중가요를 목청껏 불러보기도 하고, 최루탄 냄새를 피해 지하도로 도망가 보기도 하고....... . ‘지랄’을 몇 년 동안 한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랄의 양은 정해져 있다더니 청소년기에 못한 것을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했다. 그때 나는 아내와 아이를 둘이나 둔 가장이었다. ‘겪어야 할 발전 단계’를 겪고 나니 맑디맑은 내가 보였다. 그렇게 힘들었던 학창시절도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세상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아, 바로 내 성격이었다. 성격이 운명이었다. 융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융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그 이유를 찾다보니 성격을 연구하게 되었단다. 내 성격을 알고 나니 그 동안의 모든 나의 고통이 이해되었다. 나의 모든 고통은 내 자신이 내 성격대로 살지 않은 업보였다. 나는 여러 방면의 공부를 하며 내 업보를 풀어나갔다. 결국은 글을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하며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신나는 아이’로 돌아갔다. 융은 말한다. 인간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사람들의 성격이 여러 형태로 진화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사람은 각자의 성격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된다. 성격대로 신나게 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이제 나는 실컷 울고 난 아이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다. 내가 고토록 찾아 헤맸던 삶의 비의는 바로 이거였어!  
117 유교적 달관의 방법/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225 2012-09-22
 유교적 달관의 방법 양백산인 박희용 유교와 유학은 동의어이기도 하면서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나무 한 줄기에서 갈라진 두 가지처럼 같은 자양분을 먹으며 자라지만, 가지가 뻗어갈수록 추구하는 목표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그럼에도 금장태 박사는 꾸준히 ‘유학’이란 말 대신 ‘유교’란 말을 즐겨 쓰며 『유학사상의 문제들』 37p 27행에서 다음과 같이 ‘유교적 달관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한 인간이 죽으면 마음과 육신이 분리되고 사라져 가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것은 부분적 사실이요, 다른 부분에서 그 인간은 그의 혈통을 이은 후손에로 그의 생명이 이어진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일부분은 죽음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놓이고 나머지 일부분은 후손의 생명을 통하여 이어져 가는 것으로 받아들임으로 자기존재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죽은 뒤에 불멸하는 것은 육신도 영혼도 아니다. 다만 육신과 영혼이 돌아가는 우주 그 자체가 영원하고 후손에로 이어가는 생명이 무궁할 수 있다. 유교적 신념에서는 한편으로 인간의 죽음이란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요, 자연에로 돌아가는 것이라 확인하여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후손으로 무궁히 이어진 핏줄의 생명 속에 자신이 부분으로 살아있다는 확신이 죽음에 대한 유교적 달관의 방법이다.」 금 박사의 오랜 내공이 쌓인 위의 말을 비빌 언덕으로 하여 서학,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과 비교한 ‘유교적 달관의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인간은 육신과 정신의 합일체여서 그 둘 중 하나가 상실되면 이미 인간이 아니다. 육신이 상실되면 기껏해야 ‘누구의 魂’으로 불리고 정신이 상실되면 하등 동물이나 살아있는 肉塊로 취급된다. 인간이 숨을 마치면 육신을 이루었던 물질들은 빠르게 분해되어 우주 속으로 환원되고 육신에 퍼져있던 신경계의 감각과 의식은 소멸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두뇌 역시 육신의 일부로서 활동을 종료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저장된 정신의 결정들, 즉 魂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하여선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초기유교 등에서는 육신이 멸하여도 정신은 영혼의 옷으로 갈아입고 시공간 어느 때 어디서든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진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유일신이자 절대적 주재자인 야훼 휘하에 모든 영혼들이 포함된다는 교리를 가지나 불교와 유교는 주재자를 인정은 하되 그 강도가 약한 편으로 영혼 하나하나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인정되고 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에서는 주재자의 수명은 무궁무진하나 일반영혼들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다고 보면서도 그 기간을 명시하지 않는데, 몇 대 위의 조상에 대한 제사가 없고 나의 바로 앞대의 영혼에 대한 추도식만 있으므로 바로 앞의 영혼만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주재자의 수명 역시 무궁무진하나 일반영혼들은 위로 4대손까지 약 120년간 유효하다고 여겨 정성스레 제사를 모신다. 기독교와 천주교에서는 주재자인 야훼를 믿는 영혼은 천당으로, 반기독교인 영혼은 지옥으로 가 머문다고 하면서도 때가 되면 부활하여 다시 사람이 된다는 영혼불멸설을 말하고, 불교 역시 공덕 덕분으로 극락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거나 죄업 때문에 지옥에 가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후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짐승이나 벌레 등으로 태어난다는 윤회설을 말한다. 그에 비해 유교는 부활이나 윤회를 말하지 않고 소멸을 말할 뿐이다. 물론 기독교, 천주교, 불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 부활과 윤회란 어리석은 대중들을 상대로 한 교화 차원의 도구요 방편이다. 그러나 그 도구와 방편들이 초기엔 유효했을지 몰라도 인지가 발전하여 분별력이 향상되면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종교가 자꾸 쇠퇴하면서 사회적 통제의 자리를 법과 권력에 내주게 되었다. 유교에서 제사를 인정하고 정성껏 지내는 까닭이 경험적 사실에 기반 하지 않고 영혼이 120년간 흩어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영혼이 120년간 유효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체험하거나 증명한 사례는 전무하다. 단지 인간은 육신과 정신이 함께 이루어진 존재인데, 죽으면 기의 집합체인 육신의 소멸은 확실하지만 리인 정신의 소멸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리 존중 차원에서 가상한 것이 영혼 120년 유효론인 것이다. 그릇이 깨지면 물이 새 흩어지듯 육신의 기가 흩어지면 정신의 리 역시 흩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즉 영혼이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제사논리란 가상의 것이다. 그에 따른 풍수지리설, 음택론, 조상복덕설, 감응설, 제수설 등 모두 그 가상의 논리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단지 제사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이라면 ‘부모를 통하여 조상과 연결되고 자식을 통하여 후손으로 연결되는 한 매듭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게 하는 점이다. 제사를 통하여 현재의 시공간에 살고 있는 유전적 존재로서의 자기실존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고 조상의 뜻을 이어받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역사적 연결고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제사를 통하여 자신과 가족, 친척들의 심성을 순화하고 윤리도덕을 신장할 수 있으며 문중의 친목과 단결을 돈독히 하여 사회 속에서 건전한 한 부분으로 생활하게 할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제사가 조상 자랑이나 행세의 방편이 되어선 안 되겠지만 훌륭한 조상에 대한 긍지와 든든한 문중에 대한 자부심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좋은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제사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제사가 복잡한 현대문명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먼저, 꼭이 영혼 120년 유효설에 근거한 4대 봉사를 강조할 것은 없다. 그것을 고수하는 가정은 그대로 계속하고, 일반의 가정들은 바로 윗대 또는 할아버지 대까지 지내는 것이 알맞다. 왜냐면 살아서 대면할 수 있는 분들이 할아버지 때까지이기 때문에 그분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물론 그분들이 평소엔 하늘에서 자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횡액을 막아주고 복을 내리다가 제삿날에 자손의 집에 와 제수를 감응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해주시도록 바라는 자손들의 마음일 뿐이다. 제수 문제에 있어서도 과중한 음식 장만과 심리적 부담이 있다. 기일을 잊지 않고 추모하려다 보니 자손들이 모이게 되고, 제군들이 많다보니 음식을 많이 장만하게 되고, 음식을 많이 장만하다보니 이것저것 제상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제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제군들을 직계로 한정하고 제상에 간소하게 올리면서 제군들이 간소하게 식사하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며느리들의 과중한 심적 부담과 신체적 부담을 덜어주어서 제사가 조상 추모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제사 올리는 시간 역시 시대 상황과 제군들의 생활에 맞춰 일몰 직후로 하고 곧 이어 저녁 식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제사 올리는 순서도 가가예문이면서 간소하게 해야 한다. 장례 문제에 있어서도 삼일장으로 하고 부고의 범위를 친척과 지인들로 하며, 화장하여 평장으로 하고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서 후손들로 하여금 추억은 하되 매년마다 관리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얼굴을 아는 후손들이 죽은 다음에는 그 비석조차 저절로 쓰러져 묻힘으로서 모든 흔적을 말끔히 지워야 한다. 또한 원에 따라 수목장이나 풍장을 할 수도 있지만 강물이나 바다에 띄우는 것은 2차 오염 때문에 하지지 말아야 한다. 제사를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 유일신이냐 가신이냐 하는 문제로 보는 것은 좁은 관점이다. 조상이 있으므로 자손이 있는 것은 인간 역시 생물인 이상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만고의 진리이므로 죽은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손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조상의 영혼이 자손을 보우해주면 더욱 좋은 일이지만 영혼 자체가 없으므로 도움을 받을 일이 전혀 없으니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또한 조상이 살아있을 때도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성모님’만 숭배하고, 조상이 죽어서도 당대만 추모는 하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 숭배하면 되는 것이지, 일반 사람들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상숭배, 심지어 악마를 모시는 것이라고 하는 기독교와 천주교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멀게는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낳아주셨을지라도 가깝게는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고 애써 키워주셨으므로 살아계신 부모님께는 효도를 다하고 죽은 부모께는 간소한 제수와 차례로 제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인간의 도리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산 아버지보다 ‘하느님아버지’를 더 소중하게 받들고, 죽은 아버지는 내팽개치고 아득한 ‘하느님 아버지’를 추모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에 예수가 식민지배의 고통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가족과 이웃, 유태 민중들을 보며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인간의 도리를 생각한 바와 크게 다르게 변질되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개화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전통 유교사회와 충돌이 없었으나, 천주교는 17세기 초에 이 땅에 들어온 이후 18세기 말까지 약 150여 년간 잠복기를 가치는 동안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었으나, 교세가 팽창한 18세기 말부터는 유교 전통사회와 크게 갈등을 일으키면서 충돌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 때까지 서학 대접을 받으며 비교적 잠잠하던 천주교가 사회적 여론이 악화되어 조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탄압을 받게 된 것은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유교의 상례와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운 사건 때문이다. 이전까지 그래도 제사를 지내던 그들이 제사를 폐한 까닭은 1790년 북경에서 윤유일을 통해 보내진 질문에 대해 유교제사를 금지를 지시한 구베아 Gouvea 주교의 회답이 조선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사 문제에 대한 천주교 측의 지시가 어떠했는지 제19장 <제사문제와 유교 ․ 천주교의 이해>의 323p에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살펴보면, 제사 문제에 대한 대응이 처음부터 일관되지 않고 때때로 상반되게 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조선의 천주교인 역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조선 사회 역시 큰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고, 민심을 한 곳으로 모아도 감당해내지 못할 대격변의 19세기 100년 동안을 국론분열과 민심 이반의 내부투쟁으로 지새면서 국력을 갉아먹게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20세기의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을 겪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천주교가 명말 중국에 전래된 초기에는 예수회의 마테오리치에 의한 補儒論 내지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공자와 조상에게 드려지는 유교전통의 제사를 신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감사와 추모로 보면서 묵인하였다. 그러나 뒤따라 예수회 내부에서도 이견이 생겨 도미니꼬회와 프란치스꼬 회에서는 공자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숭배로 비판하면서 이른바 의례문제 Quaestio de Ritibus라 일컫는 논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황청도 선교단체의 상반된 주장에 휘말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1645년 9월 12일, 제사금지령을 내렸고 1656년 3월 23일, 교황 알렉산더 7세는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유교제사를 묵인하는 허용령을 내렸다. 다시 교황 클레멘스 Ⅱ세는 1704년 1월 20일, 제사에서 神位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死者의 이름만 사용할 것을 허용하였으며, 1715년 3월 19일, 더욱 강경하게 제사를 금지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742년 7월 11일, 교황 베네딕또 14세는 1715년 칙서를 재확인하여 제사금지령을 확립하는 칙서를 반포하여 100년간의 의례논쟁을 종결짓게 되었다.」 ‘마테오리치에 의한 補儒論 내지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공자와 조상에게 드려지는 유교전통의 제사를 신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감사와 추모로 보면서 묵인하였다.’라는 전래 초기의 제사관이 역시 가장 원만한 관점이었다. 그러나 교세가 확장되면서는 도미니꼬회와 프란치스꼬회가 각자 자기중심적 관점에 따라 제사를 평가함으로써 문제가 꼬이게 되고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즉 배고플 때는 무엇이든지 먹지만 포만해지면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는 것처럼 전래 초기에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발톱을 감추었다가 자리를 잡자 곧 본래의 발톱을 내밀고 제사를 금지하게 되었다. 묵인과 금지가 여러 번 되풀이 되었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천주교 교리 자체가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세 불리하면 적응이라는 미명 아래 숨었다가 세 유리 국면이 되면 까탈스럽게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이기적 교리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에 조선에서 벌어진 제반 상황에 대한 근원적인 책임은 천주교 교리 자체에 있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동방 선교 조직인 북경교구의 구베아 주교에게 있다. 이미 1742년에 제사금지령 칙서가 발표되었기 때문에 윤유일의 문의에 답한 1790년에는 그 칙서를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구베아 주교가 좀더 현명했다면 근본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원만한 응용책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도 갑자기 제사를 폐하는 바람에 당한 탄압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이전까지만 해도 서학에 흥미를 느껴 차츰차츰 연구하다가 천주교를 신앙하게 된 자생적 조선 천주교인의 역사가 두 세기 200년 가까이 됨에도 불구하고, 윤유일을 북경에 보내 구베아 주교의 판결을 자청한 당시의 조선 천주교 지도부들에게 더 깊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학을 통해 알게 된 천주교의 교리에 공감했으면 그 가르침대로 조선의 현실에 적응하면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외국인 중국 북경교구 주교의 유권해석을 구한 것은 그간의 자주적인 천주교 교리 탐구에 대한 불신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천주교가 외부 충격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하고 알찬 성장을 계속하였더라면 천주교도들이나 조선의 백성들 모두가 편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 땅에 뿌리 내린 조선의 천주교로 충실한 조선 교구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외세인 북경 교구 산하에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천주교도들뿐만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와 백성들 역시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한 채 불구가 되고 말았다. 종교의 토착화란 근본교리를 위하여 전통을 거부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의 환경과 전통을 인정하면서 그 속에 조용히 뿌리내리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이 영적인 평화인 이상, 어느 곳에 전래되어 문제를 일으키고 탄압을 초래한다면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물어야지 주변을 탓해선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조선말에 천주교인들이 당한 희생은 물론 안타깝지만 자업자득인 면이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나라보다 지적인 탐구심이 충만한 조선의 사대부들이 왜 천주교도들을 탄압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서학을 묵인했는데도 가장 민감한 제사 문제를 건드리는 천주교에 대항해 유교적 가치를 수호함으로써 봉건사회를 유지하려던 조선 사대부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동양 선교에서 제사 문제가 계속 대두되자 1939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제사금지령이 해제되고, 21세기 초에는 로마 교황청 발표로 제사문제가 해결된 것은, 제사가 꼭 동양 사회에 대한 선교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유교가 지향하고 있는 조상 추모와 공경심이 집약된 것으로 재인식되었기 때문으로, 동양문명에 대한 서양문명의 이해가 더욱 깊어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神主 문제 역시 조상을 상징하는 하나의 表物로 봐야지 거기에 무슨 조상귀신이 깃들어 있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의미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십자가, 불교의 불상의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물론 신주가 십자가와 불상이 갖는 전체적 의미와는 비중이 다르다. 하지만 크게 의지하고 보살핌을 받는 유일신이나 자연이 물론 중요하지만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조상신 역시 소중함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신주를 모시든 안 모시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작은 단위인 가정사 차원인 작은 일이고,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경배하는 것은 사회적 차원의 큰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에 절대자인 유일신만이 존재할 뿐 다른 신들은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거나, 무슨 작은 귀신, 큰 귀신의 위차와 우열을 따지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인간들의 하찮은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몇 십 년마다 인구가 폭증하여 현재로 약 70억이나 되는 데도 불구하고, 혼자인 하느님은 정말로 바빠서 지상의 인간 하나하나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지만, 각 가정의 조상신들은 자기 후손들만 챙기고, 각 마을의 동신들은 자기 지역을 챙기고, 지구 위 나라신들은 자기 나라만 챙기면 되므로 전체적 관리자인 하느님에 비해 훨씬 인간들과 가까워 세세하게 잘 챙겨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샤머니즘의 신들 역시 자기가 맡은 나무, 바위, 골짜기, 산, 물, 집, 방, 길, 모퉁이, 바다, 못 등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함으로써 자기를 숭배하는 인간들에게 보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신교의 교리대로, 유일신만이 존재하더라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는 이상은 작은 귀신들이 존재할 수밖엔 없다. 유일신이 찬송가와 기도, 꽃으로 숭배 받을 때 영혼들이 그 뒤에 시립해 있으므로 함께 숭배 받는 것과 진배없다. 즉 십자가 속에는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의 영혼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 이래 죽은 모든 영혼들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신주 속에는 조상신만이 단출하게 들어있으므로 숭배의 범위가 좁고, 십자가 속에는 하느님과 예수가 크게 들어있으므로 숭배의 범위가 광활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가정이든 교회든 대표인 십자가에 추모를 하고, 유교사회에서는 가정 단위로 자기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십자가와 신주는 크든 작든,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생명의 원천에 대한 고마움의 상징이다. 그렇게 하느님과 조상에 대해 경건한 정성을 표현하는 의례에 문화적 우열의 차이가 언급될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부정이요 불경이다.  
116 일본은 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가?/권서각 file
편집자
1559 2012-09-17
 일본은 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가? 우리를 가장 화나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독도 문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발견되고 있는 고지도를 살펴보아도 분명히 독도는 우리 땅이다.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경상북도 울릉군의 땅이다. 대한제국 때에는 일본의 어부들이 독도에서 전복을 따고 강치를 잡기도 했다. 일본 어부들이 독도에 올 때는 일본에 출국허가를 받아야 했고 어획물을 판 수입에 대해서 울릉도 도주에게 세금을 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증거다. 한반도를 침탈하기 위한 러일전쟁 때 일본이 무단점거 하였다가 한일합방이 되면서 한반도와 함께 독도는 일본의 식민지 영토가 되었다. 광복이 되어 일본이 물러가면서 독도는 다시 한국 땅이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점거한 땅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며 사실상 우리의 해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 있다. 일본이 패망하여 한반도에서 물러갔으니 당연히 우리의 국토는 우리의 것이 되고 독도도 우리 땅인 것이다. 일본에 우호적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갑자기 독도를 방문하면서 일본은 다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무슨 근거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승만 시대부터 일본은 한일회담을 시도했지만 이승만 정권도, 장면 정권도 일본과는 수교를 하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 침탈의 잔혹함을 우리 국민이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정희는 5.16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대학생들의 반대 데모에도 불구하고, 앞선 정권에 비해 턱없이 불리한 조건으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했다. 한일청구권자금이라는 것과 정치자금 6,600만 달러를 받고 일본 식민지 통치를 용서했다. 한일회담 과정에서 마지막 남은 협상 안건이 독도문제였다고 한다. 작년에 발간된 ‘독도밀약’(노 다니엘 지음)이라는 연구서에 따르면 독도밀약은 당시 범양상선 박건식 회장의 집에서 김종필의 형 김종락과 일본 건설부장관 고노 이치로 사이에 이루어 졌다. 그 내용은 일본 수상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어 재가를 받았다. 이로써 한일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밝혀진 독도밀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도밀약) 독도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로 본다. 따라서 한일 기본조약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부속조항) 1.독도(다게시마)는 한일 양국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하는 경우 양국이 독도(다게시마)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확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3.현재 한국이 점거한 상황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증축이나 건축은 하지 않는다. 4.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이 내용으로 보면 독도는 우리 영토이며 일본의 영토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본에 약속을 한 최종 결재자가 박정희 대통령이시다. 결국 박정희 시대의 독도밀약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분은 일찍이 천황에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다가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하시고 일본육사에 들어가 일본군 장교가 되어 광복군을 토벌하셨다. 이후 오카모토 미노루로 다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 충성하셨다. 지금 그의 생가는 성역화 되었고 서울에 기념관이 세워졌다. 글 권서각. 시인  
115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고석근 file
편집자
1392 2012-09-10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 장 루슬로의 시 <세월의 강물> 중에서 산에서 돌에 눌린 풀을 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돌을 걷어 내자 노랗게 견디고 있는 풀의 몸이 드러난다. 풀이 일어서려 몸을 꿈틀거린다. 언젠간 풀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다시 푸르게 자라날 것이다. 사람은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노랗게 쓰러져 버리곤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어떨 땐 ‘없는 무게’를 느끼곤 쓰러지기도 한다. 사람에겐 ‘생각’이란 게 있어서 헛것을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풀은 자연스레 ‘진초사(盡草事)’를 한다. 그래서 풀은 대천명(待天命)하며 산다. 하지만 사람은 거의 진인사(盡人事)를 하지 못한다. 진인사(盡人事)를 해야 대천명(待天命)을 할 수 있는데, 진인사(盡人事)를 하기도 전에 노랗게 쓰러져 말라버린다. 진인사(盡人事)하여 대천명(待天命)하는 삶은 얼마나 찬란할까? 내 안의 모든 것이 깨어나는 느낌! 우주에 자신이 충만하게 존재하는 신비감! 나혜석은 “나는 실컷 살지 못했어!”하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실컷 살지 못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114 거룩한 죽음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 / 강태규 file
무궁화
1438 2012-09-05
거룩한 죽음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 / 강태규/ 위인을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탄생만큼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자연의 섭리만큼 거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계절이다. 88세 까지 팔팔하다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잘 나누고 잠결에 혼백이 떠난다는 것은 큰 복인 것은 분명하다. 객지 생활 속에 가장 부러운 장면들은 여전히 삼대가 같이 사는 고향 같은 터에 자리한 가족공동체들을 보는 것이다. 정치나 경제 뉴스 앞머리에는 지방 어디어디 출신이 어찌어찌 출세하여 나라를 대표하고 기업을 대표하고 청년 때부터 환갑이 넘도록 큰 일꾼이 되어 성공하여 노구를 이끌고도 나라걱정에 몰두하는 장면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소설적인 상상력을 발동하여 가족사의 속살들을 조합하여 들여다보면, 그리 부러울만한 가족공동체 또는 지역공동체의 더부살이에 성공적일까 하는 데는 좀 의심이 든다. 객지의 삶 속에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는 데는 그런 큰 일꾼들에게는 너무 바빠서, 또는 일중독으로 ‘휴’ 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였을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우린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들의 변화들 또한 계절만큼이나 급변하는 시대에 있다. 청량사(淸凉寺) 산 속에도 고밀도 방송수신 접시안테나로 속세를 그대로 들여다본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의 정련된 죽음에 대한 자세들까지 도전받고 있고 그 죽음조차도 인스탄트 일회용 접시요리처럼 값어치가 없어지고 있다. 두 번째, 제도권에 자리한 병원 침상만큼, 들어눕는 환자들도 많지만 그중에 약물연장형(藥物延長型) 노후들도 많다. 불확실한 노후에 버금가는 수익자책임전가형의 각종 보험상품들도 병원산업과 긴밀하고도 견고하게 결속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노후자금 탈취형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 가족부양비와 자녀양육비가 현재시점에서 중산층의 붕괴 및 신자유주의 소비양식에 견주어 볼 때, 너무 과도하여 예전의 자녀의존형이 부모의존형으로 급속하게 전이되고 있고 최종적으로 노인의 안락한 휴식을 빼앗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우려들은 지방형 가족공동체들에서는 그나마 보완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도시형 빈민층과 도시형 명목상 중산층에게는 치명적이다. 우리 인간만이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과학자들의 연구들에 의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한 때 논리력, 언어, 문화, 자아인식 등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분짓는 특징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근년, 생물학 학술지인 Current Biology에 발표된 나이 많은 침팬지의 죽음을 대하는 동료와 자식의 반응을 본다면 침팬지가 장례를 지내거나 우리와 죽음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그것들의 인식을 엿보기 충분하다. 연구를 주도한 앤더슨박사는 동물원에서 돌보던 영장류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치료를 위해 동료들과 격리시킨채로 두거나 안락사시키는 것보다는 동료들이 곁에서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 더욱 인도적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걸맞는 죽음 또한 가족과 동료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연명형 치료는 우리의 거룩한 죽음을 빼앗는다는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유물론적인 사고에 닿을 때면, 사실 죽음 이후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우주의 먼지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극락과 환생은 종교적 상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기억을 유대하는 것은 우주만상의 생명현상의 하나로 인간 스스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기도 하겠지만 과장할 필요 또한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학정신에 천착하는 행위 또한 이야기를 유대하는 한가지 양식이며 소통이며, 우리가 언어도구를 가졌기 때문에 막사발이든, 접시든, 우아한 청자를 빚어내든, 단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잘 키운 자식이라 하더라도 노구의 부모를 모시는 자식만큼 훌륭한 자식은 없다. 현대의 변질된 죽음의식이 침팬지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 있음에 두려운 마음이 스며든다. 다시금, 가족애와 동료애가 우리의 관계망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게한다. 당대에는 답이 없을 듯한 암울한 현실에 망연자실해지더라도, 그 관계망을 위협하는 제도권의 전략들을 간파하여 복원해야하는 것이 차세대만의 몫이겠는가. 우리는 너무 많이 그리고 빨리 사는 것 같다. 젊은이도 마찬가지이지만 노인이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 빼앗겼다면 다시 되찾고 싶다. 벌써 가을이다. ※ 참고사이트 1. http://www.youtube.com/watch?v=d89SlFc3qjI&feature=player_detailpage 2. http://www.youtube.com/watch?v=3SQR_PaCtEE&feature=player_detailpage  
113 氣土理木論 자연주의와 인문주의/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1307 2012-08-22
 氣土理木論 자연주의와 인문주의 양백산인 박희용 금장태 著 『儒學思想의 문제들』 제16장 <楊朱의 자연과 인간> 2절 <양주사상에서의 자연과 진실존재> 263p 1행부터 12행까지에는 『列子』<天端篇>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실질적 존재의 기본범주인 천 ․ 지 ․ 인도 “氣의 맑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 天이 되고 흐리고 가벼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 地가 되며 조화된 氣는 人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천지도 氣의 精을 머금고, 만물도 氣를 바탕으로 변화 ․ 생성하는 것(淸輕者上爲天 濁重者下爲地 沖和氣者爲人 故天地含精 萬物化生)”이라 이해하였다.」 「이러한 氣論的 생성세계에서는 天 ․ 地 ․ 人 ․ 聖 ․ 物의 각 개별적 존재영역이 그 근거에는 공통적 동질요소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 개별 존재영역의 차이는 상하적 우열관계나 지배관계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기능적 독립성과 한계성을 밝힘으로써 상호평등적이고 자립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에서 자연주의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 두 문장을 비빌 언덕으로 하여 리기의 관계가 자연주의와 인간주의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列子에 ‘天地含精 萬物化生’과 금장태에 ‘그 근거에는 공통적 동질요소를 가지게 되는 것’이란 말처럼 氣의 세계인 자연주의는 모든 天 ․ 地 ․ 人 ․ 聖 ․ 物의 각 개별적 존재영역 뿐만 아니라 인간이 두뇌로 생각해 낸 모든 이념과 사상이 서 있는 바탕이요 논리 전개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자연주의가 각 개별적 존재영역과 사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꼭이 절대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나무가 흙에 바탕 하여 생장하나 나무와 흙, 나무와 나무는 이미 서로 별개이듯이 각 개별적 존재영역과 사상은 서로서로 별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흙에서 왔기 때문에 넓게 보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 상황에 적응하는 상태의 차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천지가 氣의 精을 머금은 단계까지는 자연주의이지만 일단 그 기가 동하기 시작하여 만물이 변화 ․ 생성하는 단계부터는 자연주의로 정의되는 본질이 아니라 인간주의로 정의되는 현상이 된다. 본질이 중요하나 현재하는 현상 역시 못잖게 중요하다. 氣土理木, 氣를 흙이라 하면 理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의 氣란 물질의 세계인 자연을 이름이고, 理란 기가 조립 ․ 합성된 상태와 작동을 이름이다. 즉 氣는 본질이고 理는 현상이다. 흙을 떠난 나무가 살 수 없듯이 본질을 떠난 현상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와 리의 관계는 비교나 우열이 아니라 상생과 의존의 관계이다. 기가 바탕이므로 밑에 놓이고 리가 현상이어서 그 위에 놓이기 때문에 理上氣下이고, 기가 源泉이고 리가 流水이나 앞에서 보아, 즉 현상을 중심으로 보아 理先氣後, 理前氣後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착시현상을 걷어내고 기와 리의 관계를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氣土理木과 氣泉理江으로 상징되는 氣先理後, 氣元理分, 氣一理殊가 된다. 기가 거대한 저수지이고 리는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지류이다. 氣는 검은 암컷, 즉 玄牝으로서 만물만사를 잉태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태어난 만물만사는 개체를 이룬 기가 방출하는 리에 따라 살아간다. 즉 생물의 육신은 기의 집합이고 살아가는 방법인 정신은 기의 감각적 표현, 즉 리인 것이다. 그래서 기와 리, 즉 육신과 정신은 경중을 다투는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하는 의존의 관계가 된다. 리와 기의 관계가 사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봉건시대 수많은 학자들이 설왕설래하면서 다양한 학설을 표출해 놓았다. 그런데 그 학설들의 대부분이 상하, 선후, 전후관계 등으로 리를 앞세우고 기를 뒤에 놓았다. 시대적 필요에 따라서는 理主氣從이라 하여 리를 극대화 하고 기를 극소화 하기도하였다. 등급 짓기 좋아하는 자들은 선현들의 말씀에 추종하여 리를 기보다 앞세우거나 위에 놓고는 리만이 만물만사를 주재하는 지선이라고 자리매김 했다. 그러고는 학문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봉건시대는 갈수록 우물 안이 되었다. 靜의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인데 왜 氣는 끝없이 움직이는가, 氣는 어떻게 조립되고 합성하고 작동하여 개별적 존재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 역시 바탕인 자연주의에 의거하고 있다. 태양열로 인하여 공기가 데워지면 상승하고, 냉각하면 하강하듯이 氣 역시 熱冷의 영향을 받는다. 熱은 원자, 수소폭탄의 원리처럼 우주의 점점에서 폭발하는 항성이고, 冷은 차갑게 침묵하는 우주공간의 면면이다. 우주의 원자들은 열과 랭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 수시로 움직이고 변화한다. 벽돌 하나는 단조롭지만 많은 벽돌을 쌓아 올리면 높은 탑이 된다. 탑을 높이 쌓으려는 것이 욕망이지만 과도한 부하에 걸리면 탑이 와르르 무너져 다시 하나의 벽돌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가 핵 융합하여 수소폭탄이 되기도 하고 무거운 우라늄이 핵 분열하여 원자폭탄이 된다. 둘 다 서서히 반응하면 열을 발생하지만 임계질량을 넘으면 갑자기 폭발하여 熱源이 된다. 단기적으로는 가벼운 수소와 무거운 우라늄 사이에 모든 원소들이 나열되나, 장기적으로는 수소가 중첩하여 차츰 무거운 원소로 변화하고 무거운 원소가 붕괴하여 가벼운 원소로 변화하면서 한계 질량의 범위 속에서 순환하고 있다. 원소들이 질량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순환하는 까닭은 熱과 冷이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소들은 항상 변화하고 유동하며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인력과 중력에 의해 뭉쳐지고, 뭉침이 과도하면 압력에 의해 열이 발생한다. 열이 오래 계속되면 원소들의 결합이 풀어지면서 다시 흩어진다. 흩어진 원소들은 다시 변화하고 유동하면서 집산의 때를 기다린다. 이러한 현상은 전체적으로는 모든 우주에서, 부분적으로는 우리 우주에서, 세부적으로는 은하계에서, 미시적으로는 태양계-지구에서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현란하게 일어나고 있다. 상상한다면,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실재적 현재가 다른 우주에서는 과거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우주, 즉 다른 세상에서 겪었던 일들이 우리 우주의 현재에 되풀이 되고 있으며, 내가 겪고 있는 현재가 다른 우주에서는 미래가 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상이 가능한 까닭은 자연주의, 즉 모든 우주가 공통적 동질요소를 갖기 때문이다. 더 짙은 공통적 동질요소를 공유하는 우리 우주-태양계-지구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사는 인간들의 생각과 행위, 발생하는 사건들은 서로 짙은 연관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氣土理木, 氣는 흙이요 理는 나무이기 때문에 理氣不相雜이요 不相離이다. 기는 본래부터 動性이 있어 움직이다가 상충, 응집하여 사물을 이루었다가 일정한 시간-일러서 수명-이 지나면 상충, 분해한다. 先人들이 금과옥조로 받드는 ‘태극을 이루는 陽이 動이고 陰이 靜이다’란 말은 핵심까지 통찰하지 못한 표피적인 말이다. 양이 동이라는 말은 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란 뜻인데, 목수가 재목을 하나하나 가져다가 집을 짓듯 양이 음을 하나하나 가져와서 사물을 구성한다는 것은 양이 목수의 역할을 한다는, 즉 主宰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성립하는 말로 양과 리의 가치가 음과 기의 가치보다 당연히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작위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선현들의 논리에 대하여 한 점 의심을 품거나 반론하는 것이 당최 금기시된 봉건시대에, 후학들이 처음부터 이러한 작위적 논리를 절대명제로 해서 성리학을 아무리 궁구해봐야 과정만 피로할 뿐이고 결과 역시 난삽할 뿐이다. 動靜은 理가 아니라 氣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陰인 氣의 세계에서 因緣한 氣가 聚하여 사물을 이룬 상태가 陽인데, 기의 면에서 말하면 氣靜이다. 陽인 聚氣가 散하여 자유인 상태로 환원하는 것이 氣動이다. 이 때 理는 聚하여 작동하는 원리, 散하여 환원하는 원리이다. 즉 기는 흙이나 그 기가 응집하여 이룬 나무는 리이다. 나무가 흙에서 나오듯 리가 기에서 나오나 형체를 달리하기 때문에 理氣不相雜이요 不相離인 것이다. 기와 리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자연주의와 인간주의의 관계를 살펴보자. 금장태의 말대로 자연주의에서는 개별 존재영역이 상호평등적이고 자립적인 관계를 갖지만 인간주의에서는 天 ․ 地 ․ 人 ․ 聖 ․ 物의 개별 영역들이 차별성을 갖는다. 우월한 인간들과 저급한 인간들의 天 ․ 地가 각기 다르며, 소유할 수 있는 聖과 物 역시 엄격히 차별된다. 자연주의의 보편적 원리와 인간주의의 보편적 질서가 서로 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날카롭게 충돌한다. 자연주의는 보기에 좋은 장식용 현수막으로 내걸어 놓고 실제로는 인간주의를 칼같이 적용하고 있다. 자연주의는 고도의 정신작용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의 것이고 인간주의는 일상인들의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도의 정신작용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자연주의가 당연히 최선이겠지만, 현실세계는 그렇지 못하므로 차선인 자연주의와 인간주의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현실적이다. 그러나 현대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둘의 괴리 현상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자연주의는 창고 구석에 처박히다 못해 폐품으로 낙인찍혀서 아예 내다 버려지고 인간주의만이 지구 도처를 쏘다니고 있다. 상호평등성의 자연주의는 버림받고 상호차별성의 인간주의만 홀로 사랑받고 있다. 자연주의가 바탕으로서 중요하지만 인간주의 역시 소중하다. 기가 흙이고 리가 나무이듯이 자연주의는 흙이고 인간주의는 나무이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문명을 이루어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문명을 속성으로 하는 인간주의가 현실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간주의는 자연주의의 거대한 품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인간주의가 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주의를 먼저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반대로 자연주의를 무시하고 인간주의만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자연주의는 몸이고 인간주의는 옷이다. 옷은 상황과 계절에 따라 바꾸어 입을 수 있지만 몸은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 문명 역시 인류생활에 필요한 한 벌의 옷이다. 문명은 옷처럼 상황과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즉 인간주의도 변화한다. 봉건시대에 인간주의가 가졌던 불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현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우선 필요하다. 복잡다단한 현대문명에 자연주의를 직접 적용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다. 거시적 관점에서 자연주의가 갖고 있는 ‘상호평등적이고 자립적인 관계’를 투시함으로써 현대문명의 산물인 현대인간주의의 장단점을 걸러낼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의 신장으로 개체적 삶의 의미를 생산하고 겸허한 예의 실천과 법규 준수로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등, 뼈대는 자연주의로 세우고 살은 인간주의로 채움으로서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의 관계에 생기가 감돌 것이다. 氣土理木, 흙을 떠난 나무는 곧 고사하고 만다. 기의 드넓은 바탕을 망각하고 홀로 잘난 척하는 리는 곧 붕괴하고 만다. 자연주의의 넉넉한 품을 떠난 인간주의는 곧 고장이 나고 만다. 자연주의는 현대문명의 불구를 정형하고 지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이다. 자연주의는 玄牝 검은 암컷처럼 만물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다시 불러들여 치유하기도 한다. 2012년 8월 20일 초가을에 안동 열락연재에서  
112 강은 흘러야 한다/권서각 file
편집자
1537 2012-08-16
 강은 흘러야 한다 강을 막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강은 흘러야 강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의 문명은 강에서 발생했다고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도문명, 황하문명이 모두 강가에서 발생했다. 강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물을 주고, 물과 늪과 모래에 다양한 생물종을 서식하게 하며 숲에 물을 공급하여 자연을 살아있게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도 무수히 있을 것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의 문명이 강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강은 인간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자라듯이 인간은 강에 생명줄을 대고 살아왔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강은 인간이 함부로 파헤치거나 막거나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섬김의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강을 섬겨왔다. 강을 막기 시작한 것은 서양인들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 달리 서양 사람들은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이용해서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이른바 그들의 자연과학이라는 것이 자연을 이용하기 위해 자연의 분석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산업사회를 만들었고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자연을 이용해서 필요 이상의 생산을 하고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게 되었다. 한동안 과학의 발달로 인간은 분수에 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자연의 이용이 재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을 만큼 자연은 파괴되어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되었다. 지금 서양에서는 댐을 허물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는 4대강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국고를 들여 온 나라의 강에 보를 만들었다. 4대강을 개발하여 가뭄과 홍수를 막고 그 주위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여가도 즐기면 얼마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될까? 강물에는 유람선이 떠 있고 그 주위에는 상업시설과 문화시설을 만들어 여가를 즐기는 광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부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4대강 공사를 강행했다. 이미 강에는 녹조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강물이 죽어간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댐을 허무는 추세임에도 우리는 막고 있다. 강을 막는 것은 뒷북을 치는 일이며 헛발질을 하는 일이다. 미래 사회의 경쟁력은 자연을 얼마나 잘 보존했는가, 생물종을 얼마나 다양하게 보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강에 둑을 쌓고 보를 막는 일은 물을 어항에 담는 일과 같다. 그 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종은 한정된다. 생물종이 줄어든다는 것은 생태계가 파괴는 것이며 강을 죽이는 일이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다. 내성천 모래밭이 물에 잠기고 있다. 모래에 살던 수많은 생물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전국의 환경단체들이 내성천으로 모이고 있다. 권서각, 시인  
111 쥐 둔갑 타령/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1724 2012-08-10
 쥐 둔갑 타령 줄거리 서 첨지 영감이 쥐에게 손톱 발톱을 주며 키웠는데, 어느 날 쥐가 서 첨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둔갑해 사랑방을 꿰차고 서 첨지 영감을 내쫓았다. 쫓겨난 서첨지 영감은 산 속을 헤매다 절을 발견하고선 스님에게 자신의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자 스님은 고양이를 가져가 가짜 서첨지 앞에 던지라고 했다. 서첨지가 고양이를 갖고 내려와 가짜 서첨지 앞에 던지자 가짜는 쥐로 변하여 도망가고 서첨지는 비로소 가족과 재회하게 되었다. ........................................................................................................................... 사람들은 늘 내게 물어요 "넌 뭐가 될래? 의사, 댄서, 잠수부?" 사람들은 늘 나를 괴롭혀요 "넌 뭐가 될래?" 마치 내가 나 아닌 게 되길 바라는 듯이 - 데니스 리의 시 <넌 뭐가 될래?>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수렵 시대, 농경 사회에서는 ‘나’의 문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짐승과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져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도시 간에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가 대두하였다. 도시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하였다. 손톱과 발톱은 ‘내 것’이지만 버려도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어둠 속에 사는 쥐가 먹어 ‘나’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싫은 내 모습, 버려도 될 것 같은 내 모습들은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어두운 ‘내’가 되어 돌아온다. 사실 ‘내게서 버릴 것’은 하나도 없는데, 세상은 ‘나를 무엇이 되라’고 강요한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되지 못한 나’는 버려지게 된다. 한데 빛이 커질수록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고상하게 살려고 하던 사람이 위선자가 되어 감옥에 갇힐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황당할까? 고상하게 살기 위해 버렸던 자신의 속물근성이 결국은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양이가 필요하다. 어둠속을 꿰뚫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위선자가 된 자신을 ‘그냥 무심하게, 고양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위선자를 벗어날 수 있다. 물처럼 자신의 중심을 비우며 흘러가야 한다. 인간이 어디 정해진 게 있는가? 착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악이 강하게 우리 중심에 자리 잡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저런 것들은 내가 아니야!’라고 하면 할수록 저런 것들로 내가 바뀐다. 내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물처럼 천연덕스럽게.  
110 대통령은 우리의 무엇인가 file
무궁화
1491 2012-08-03
대통령은 우리의 무엇인가 강태규/ <대통령>은 어감 자체가, 제일 막중한 통감으로 해석될 때가 있다. 영어로 표현되는 내각의 최고책임자인 “미니스터”나 “the chief executive of a republic” 으로 표현되는 “프레지던트” 속에는 분명 위임받은 권한의 대행자임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지만 대통령이라는 언어의 감각은 사뭇 권위적이며 무소불위한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언어는 지속적으로 변위와 진화와 변동적인 시대의 감각적인 함의를 가진 동적인 ‘verse' 인 것은 분명한 듯하며, 그러한 연유로 사전의 개정판이 반복되는 것 또한 그 방증일 것이다. 지난, 서울 이전문제나 국어기본법의 한글전용정책의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등장한 관습헌법상 개념을 주목해 볼만하다. 쉬운 구어체로 풀어본다면, 오랫동안 (사실은 오랫동안이라 할 수도 없다. 재판관들의 습득된 법인식의 소요세월이 고작해야 30년 전후일 것이므로)사용해온 제도를 굳이 지금 바꿀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법이란, 과거에 쌓아온 판단의 근거에 준해서 제도적으로 설정된 울타리라고 볼 때는, 울타리 바깥을 넘지 않겠다는 법의 의지라고도 본다. 실로 우리 문학인은 심리적 울타리까지의 극복과 그 변연의 확장이 사명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닿을 때, 우리가 허물고 새로 구축해야 할 울타리 또한 만만치 않음도 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미래의 헤게모니 구축에 있어 새 의자에 앉힐 인물들은 그 교육에 의해 계급적 재생산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므로. 지금 우리 앞에는 정치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대선후보자가 등장했다. 강준만 교수의 <안철수의 힘>에서의 표현대로 “증오의 종식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의 가장 적합한 후보의 등장이다. 즉, 승자독식의 증오와 적대의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도 본다는 데 필자는 동감하며 통합과 타협을 통해, 리더십이 아니라 팔로십을 통해 진보와 보수의 양극단을 순리적으로 다듬어 가는, 이념대결에서 나아가 국민 실리의 대결국면을 즐겁게 누려보는 희망을 선사하리라 본다. 그리하여 국민의 위임을 총괄하여 수행하는 그런 국가대표에게 금메달의 얄팍한 국수적 희비를 넘어 노무현정부 시절처럼 끌어내리는 데 부화뇌동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부의 한계와 문제점 또한 일찌감치 그리고, 충분히 소통되는 말과 제도와 습관들을 개진하면서 새 정권의 성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제투성이의 민주당 또한 국민이 나서서 재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혀 다른 상머슴을 만나게 되는 꿈을 미리 준비한다. 차라리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쇼크” 먹을 준비를 미리 해야 할 것이다. 지난 시절 우리 스스로가 “쥐떼”가 아니었나를 무릎 치게 되는 그런, 마음의 울타리 조차 없이 율려의 세상으로 드는 빗장을 열어 볼 수 있는 시대가 목전이 아니리 코끝 앞에 왔다고 생각하니 신명이 난다. 나는 기도하듯 한 음, 한 소절 노래할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정도령이 왔음도 알게될 거라는 그런 여름밤의 꿈을 꾼다. 깨지 말지니, 그 꿈이 개꿈일지언정.  
109 성리학의 두 발, 사변과 실천/양백산인 박희용 file
편집자
2235 2012-07-23
 성리학의 두 발, 사변과 실천 양백산인 박희용 고려 말의 대학자인 익재 이제현(1287년~1367년)의 實學觀은 그의 문집 『익재난고』권9(하), 「史贊」, <成王>에 보이는 ‘거부과 去浮夸 , 무독실 務篤實, 구신민지리 求新民之理, 궁행심득 躬行心得’과 같은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이는 당시 원나라에서 성행하던 실천적인 주자학풍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큰 듯하다. - 최영성의 『한국유학통사』上卷 330p - 당대의 현인이었던 이제현이 원에서 수입한 것은, 그로부터 약 250년 뒤인 조선 중, 후기부터 극성한 ‘사변적 주자학풍’이 아니라 ‘실천적 주자학풍’이었다. 이 말은 주자학풍에는 ‘사변적’과 ‘실천적’의 양면이 있다는 것으로, 주자가 조선에 알려진 바인 ‘사변적 논리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현실을 개혁하려는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신시대를 지나 안향, 이제현, 백이정, 이색, 정몽주 등 현자들에 의해 새로이 싹튼 고려 문화가 최영, 이성계 등의 무장들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면 고려의 국운이 다시 흥성하였을 것이다. 고려 멸망이라는 역사적 변환이 없었다면 이제현에 의해 수입된 ‘실천적 주자학풍’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물론 개국파인 정도전, 권근 등에 의해 그 맥이 이어져 조선 초기의 문운을 융성케 했지만, 중기 이후 조선을 지배한 주류는 실세하여 산림에 은거한 학자들이 주자학의 사변성에 깊이 천착하여 배양한 ‘사변적 성리학’이었다. 고려 말기 유학의 학맥은 安珦(순흥. 1243~1306. 1289 주자전서 도입)-白頤正(1247~1323. 1314 주자학 연구)-禹倬(안동. 1263~1342. 역학 연구, 사변적 연구 방법 선구, 理學 창시자)-李齊賢(1287~1367. 경학과 성리학의 병진, 유학의 실학화)-李穡(1328~1396)으로 이어진다. 이색에 이르러 큰 호수를 이룬 유학은 고려를 유지하자는 절의파인 정몽주-길재-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사변적 성리학파와, 새 왕조 조선을 세운 혁신파인 정도전-권근-정인지-신숙주로 이어지는 실용적 경세학파로 양분되어 흘렀다. 1289년 안향이 『주자전서』를 원에서 수입한지 약 100년 뒤에 신유학의 번성과 함께 구왕조가 몰락하고 신왕조가 건립되었다. 시대 풍조에 맞는 『주역』을 중심으로 한 역성혁명파의 실용적 경세학이 주류가 되었고, 『춘추』를 중심으로 한 절의파의 사변적 성리학은 비주류가 되었다. 조선 건국 후 약 150년 동안 태평성대를 유지한 바탕은 관학파의 실용적 경세학이다. 그러나 산림으로 들어가 그동안 뿌리를 내린 성리학이 그 세력을 현실화하면서 차츰 관학파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한 갈등의 산물이 네 번에 걸친 士禍이다. 연속되는 士禍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은 지식인들에게 더욱 심화되어 마침내 1550년 이후부터는 관학파의 실용적 경세학을 밀어내고 주류 학문이 되었다. 안향이 『주자전서』를 수입한 고려 말 이후부터 서양 문명이 수입되기 시작한 조선말까지의 한국사를 관류한 두 흐름은 실용적 경세학과 사변적 성리학이다. 이 두 흐름은 동전의 양면이면서도 역사상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였다. 조선의 개국과 초기엔 실용적 경세학이 우세였고, 퇴계학과 율곡학이 융성한 조선 중기엔 성리학이 우세였다. 국력의 피폐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조선 말기엔 성리학 일변도의 위험성을 간파한 선각들이 실학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속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탐하면서도 겉으로는 정신을 논하는 성리학의 사변적 고답성을 끝내 돌파하지 못하였다. 실용적 경세학과 사변적 성리학은 사상의 양면이다. 한 시대에 그 둘이 조화롭게 나타나면 문명이 발달하고, 서로 상극이 되면 난세가 된다. 한 시대에 그 둘이 함께 등장하여 조화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시대마다 교대로 나타나야 국력을 유지할 수 있는데, 조선은 중기 이후 사변적 성리학의 시대가 계속 되었기 때문에 국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사변적 성리학을 마루고 실용적 경세학의 시대로 변화하였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후 강제된 시련기인 일제 침략,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사변적 성리학은 모든 책임을 지고 퇴장하고, 서양문명의 영향을 깊이 받은 실용적 경세학이 재등장함으로서 한국이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용적 경세학은 줄기이고 사변적 성리학은 꽃이다. 사변적 성리학만을 최고로 여기고 실용적 경세학을 천시하는 것은 꽃만 탐하고 줄기를 버리는 것과 같다. 줄기를 떠난 꽃은 잠시 화려하지만 곧 시들고 말듯이 성리학은 경세학이라는 받침이 든든해야만 번성할 수 있다. 성리학이 마음이라면 경세학은 몸이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면 건강을 곧 해치고 만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내가 사는 시대와 후손들이 살아갈 시대를 생각하는 지식인이라면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이 얼마나 큰 역사적 범죄인가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선현으로 추앙받는 대학자라 해도 자기 학문만을 고집하고 타 학설을 극력 부정하며, 심지어 반대 학파를 사문난적의 이단으로 몰아 정치적 탄압을 자행한 것은 ‘爲己之學’의 의미를 오독하였기 때문으로, 마땅히 후학들로부터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범부는 명분을 우습게 알아 명예욕을 가장 먼저 버리지만 識者는 명분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 명예욕을 가장 끝에 버린다. 명예욕은 정신적 가치이다. 한 생애 동안 학문으로 닦은 명예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자기 정신의 기둥이다. 그래서 늙어갈수록 명예, 자기 학문에 집착한다. 그 기둥이 훌륭하다는 말은 백번 들어도 흐뭇하지만, 옳지 않다거나 삐뚤어졌다는 말을 한 마디라도 들으면 극심한 분노에 빠진다. 선비라면 항상 불치하문하는 겸허한 자세여야 함에도, 명예욕에 집착된 자들은 그러한 분노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정신의 기둥을 더욱 장식하거나 비판자를 사문난적으로 매도하며 엄중히 문책하였다. 그러므로 명예욕에 들끓는 자들은 입으로는 아무리 유식한 말을 내뱉어도 뼈와 피는 이미 선비가 아니다. 정신의 기둥이 옳지 않는데도 장식에만 급급하는 것은 위선이요, 논리가 아니라 비방이나 형벌로 비판자를 억압하는 것은 폭력이다. 한국사에서 보면 이러한 학문적 폭력이 비일비재하다. 학설의 차이, 표현의 차이를 학문적으로 해결하지 아니하고 당파적, 정치적 폭력으로 해결한 경우가 매우 많다. 이런 면에서 이색에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조광조-이이-송시열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학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퇴계가 사변성이 짙은 안향-우탁-이색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정맥으로 치고, 백이정-이제현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접은 까닭은 그 역시 경세성보다 사변성을 추종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40세까지 경학을 공부하다가 40세 넘어서 비로소 『주자대전』을 접하고 그 깊이에 몰입하기만 하였지, 그것이 통달하고 난 다음에는 신속히 빠져나와야 할 정신의 늪인 것을 미처 몰랐다. 그러기에는 그의 몸과 마음이 이미 노쇠하여 빠져나올 시간이 없었다. 그가 20세 전후부터 주자학을 접하였더라면 생각의 폭이 훨씬 넓어져서 사변성과 경세성의 균형을 회복하였을 것이다. 그에 의해 본격적으로 흥기된 성리학은 경세성이 축소되고 사변성이 강조된 경직된 모습이 시대가 흐를수록 심해졌고, 그에 따라 士氣가 퇴전되어 국운이 피폐해졌다. 문명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에로 이동하기 시작한 21세기 벽두에, 그 중심의 핵인 新儒學이 사변과 실천의 두 발을 어떻게 행보하여야 할까. 줄기가 튼튼해야 꽃이 실하고, 두 발이 튼튼해야 역사의 지평을 굳세게 멀리 갈 수 있는 법.  
108 의도의 오해/권서각 file
편집자
1781 2012-07-16
 의도의 오해 권서각 (한국작가회의 이사) 문학이 죽고 시가 죽은 시대라고 말한다. 그래도 몇몇 시인의 시는 독자들이 깊이 공감하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도종환의 「담쟁이」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도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시에 속할 것이다. 마을과 집이 사라지고 빌과 아파트만 있는 삭막한 시대에도 시가 읽힌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도종환 시인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전교조는 우리 지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어버이연합의 노인들은 해체하라고 성화인 단체다. 이 시는 민주화 운동 관련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담쟁이는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면 아무리 높은 벽도 올라간다. ‘담쟁이’를 깨어 있는 민중에, ‘여럿이 함께’는 민중의 연대에 비유했다. 독재와 억압의 벽이 아무리 높아도 민중이 연대해서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도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며 진보적 생각을 가진 시인이다. 연탄은 자기 몸을 태워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는 희생적 삶의 비유다. ‘너’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아온, 힘 있는 자를 뜻한다. 「너에게 묻는다」는 자기의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남을 위해 희생한, 그러나 지금은 힘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도종환 시의 ‘벽’ 같은 사람, 안도현 시의 ‘너’ 같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의외로 이들 시를 자신의 애송시라고 한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가 된다. 그분들 나름대로 이 시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담쟁이’의 경우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자신의 삶을 담쟁이에 비유한 것이다.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는 자기를 지지하는 추종자들과 함께 한다는 뜻일 터이다. ‘너에게 묻는다’의 경우도 지금까지 남에게 비난 받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연탄재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향해 너는 나처럼 힘겹게 살아보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문학용어에 ‘의도의 오류’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문학작품이 작가가 쓸 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의도의 오해’라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교과부 교육평가원에서는 도종환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사실상 삭제하라는 공문을 교과서 발행 출판사에 보냈다가 국민적 저항으로 철회했다.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는 보기에도 민망한 헛발질을 하였다. 도종환이 자기네 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치졸한 권력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문학을 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저절로 떠오르는 물음이 있다. 누가 이들에게 권력을 주었는가?  
107 도깨비감투/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2530 2012-07-08
 도깨비감투 줄거리 한 나무꾼이 산에 갔다가 도깨비들을 만나 도깨비감투를 얻게 되었다. 그것을 쓰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감투를 쓰고 남의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번잡한 시장에서 지나가던 사람의 담뱃불에 감투에 구멍이 나게 된 그는 아내에게 감투를 기워 달라고 하였다. 아내는 빨간 헝겊을 받쳐서 기워 주었다. 또 다시 그는 도둑질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도둑을 맞은 사람들은 빨간 천 조각이 왔다 갔다 하면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빨간 천 조각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덮쳐 그를 붙잡고 흠씬 두들겨 팼다. .......................................................................................................................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그리고 나, 이 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詩)> 중에서 감투 없이 맨머리로 산다는 건 참으로 힘들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머리부터 보기 때문이다. 머리에 무엇을 썼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다. 감투는 곧 한 인간의 정체성이 되었다. 세상의 감투란 각자의 역할일 뿐인데, 우리는 감투(직업, 직책)를 신분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에 잘 맞지 않는 감투를 쓰려 한다. 그러니 우리 삶은 늘 버겁다. 머리가 무겁고 몸짓이 어색하다. 한평생이 뜬 구름처럼 흘러간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쓰는 모든 감투는 배역일 뿐이다. 배우가 그 배역이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연극이 어떻게 되겠는가? 연극 전체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맡는 여러 역할도 그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 전체가 망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무꾼이 도깨비감투를 쓰고는 연극한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인생은 얼마나 풍요로웠을까?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테고, 여러 어려움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도와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삶은 나날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감투를 쓰고는 완전히 그 감투가 되어버렸다. 인간의 마음이 없는 감투가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 그는 패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들 삶이 어찌 이다지도 그 나무꾼을 닮았는가? 멀쩡하던 사람도 감투를 쓰고 나면 갑자기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행동거지가 달라진다. ‘그’는 간 곳이 없다. 감투를 쓰고서 그 감투역(役)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은 끝까지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소에 자신을 마음껏 느끼며 살아야 한다. 뺨을 스쳐가는 바람, 흙을 밟는 즐거움, 온 몸을 감싸 안는 따스한 햇살, 지저귀는 새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 목소리...... 아이처럼 즐겁게 살아야 한다. 이 동심을 가슴 가득 품고 있으면 감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내가 맡고 싶고, 맡을 수 있는 감투를 쓰고 유쾌하게 그 배역을 즐기면 된다. 우리는 이미 많은 감투를 쓰고 있다. 즐거운 연극 놀이를 해 보자!  
106 시인의 결핵 / 강태규 file
무궁화
1748 2012-07-02
시인의 결핵 / 결핵감염의 기원은 BC 7000년 전의 화석에서 발견되었다니 석기 시대 이후 인류와 동물이 같이 겪어온 내력의 세균성 질병 중의 하나다. 물론 이러한 사실도 19세기 세균학자 코흐에 의해 명명된 이후의 일이다. 결핵은 에이즈의 발호 이전 까지만 해도 우리 문학에서 고통의 질병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잃게하는 소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의 병’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불치의 질병이었지만, 21 세기, 지금은 진단 기술과 치료 프로그램이 상당히 체계화 되어, 약제 내성을 가진 균만 아니라면 치료에 낙관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핵의 위험성은 그 발병 원인체를 알아내는 과정에 감기로 오인되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치료약제를 여러 달 이상 먹어야 하는 까다로운 세균성 질병이기도 하여, 잠복감염 기간 또한 길어 군인 막사나 학교와 같이 1 미터 이내에 접촉하는 환경에서는 쉽게 전파되기도 한다. 물론 개인별 유전력과 면역력에 따라 8할 정도는 감염을 비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약물사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에는 여러 약제에 듣지 않는 '다제 내성' 감염에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한 때, 미군병원에 집단질병 역학을 연구하는 방역관 일로 밥벌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예방의학 군의관이 들려준 이야기 중의 하나로, 핵잠수함 승무원의 결핵감염 연구를 소개해 주었는데, 좁은 복층 침대의 1 미터 이내가 임상적 감염범위라는 연구결과였다. 공기감염, 비말감염으로 전파된다 하여도 체외로 배출 되는 이 균의 감염력의 한계를 가늠하게하는 사례로 곱을 수 있겠다. 집단 사육하는 동물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도태를 해야하는 법정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물은 사람처럼 생후 1 개월 이내 비씨지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 통상, 젖소를 포함하여 소와 사슴이 주요 감염대상이 되고 있지만, 여러 논문에 의하면 동물원의 코끼리를 포함한 모든 포유류도 적지않은 감염보고가 있고 사람과 교차감염이 됨으로 사육사에게도 쉽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구제역 유행 이후에 필자는 직업상 여러 농장의 순회 중에 결핵감염 여부를 선별적으로 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에서와 마찬가지로 목장주나 목장 직원이 소들을 보정틀에 목을 고정 시킨 후에 소의 꼬리 앞부분 내측이나 측면 부위에 투베르클린 반응검사용 약제 소량을 피부 밑에 주사하고 2 ~ 3일 후에 그 반응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사람과 동일하다. 문제는 사슴이다. 사슴은 요즘처럼 뿔을 자르는 시기가 아니면 정황적으로 어렵다. 물론 까다롭기도 하지만, 이 사슴들은 매우 민감하여, 마취하지 않고 접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깨죽지의 털을 제거한 후에 접종을 권하기도 하지만, 차선으로는 항문 또는 회음부의 잘 보이는 부위를 택하여 접종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접종하였다 해도 며칠 후 확인하는 과정에는 목장주가 바쁘거나 다시 보정 또는 마취하는 과정은 동물에게 대단한 압박임으로 필자는 작은 쌍안경과 인내만으로 소들과 사슴들을 관찰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교과서에 없는 일이다. 사슴은 외부 동물인 나를 향하는 경계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목부와 같은 칙칙한 옷을 입고 척후병처럼 인내한다. 소의 경우는 꼬리를 들거나 흔들 때를 기다리거나, 사슴은 그의 옆구리를 나에게 노출시키는 대략 이 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표시한 접종 부위를 렌즈로 포착하는 것이다. 노동자 시인인 고철은 혈혈단신으로 위로삼아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지티비 방송을 통해 그의 일상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나는 화면으로 강아지들의 건강진단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인에게 필자가 관찰한 바를 전했더니 모두 수긍을 했다. 관찰은 그래서 나를 지방에서도 수의사로 밥벌이를 하게하며, 목장주인들과도, 집짐승과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오형제의 넷째로 자란 나도 둘째형의 결핵감염으로 인해 나 또한 폐장 안에 초기감염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바쁘고 폼나는 일들과 소통의 부재로 옛시절의 좁게 같이 살던 기억은 이미 아득하다. 진작 나는 내 어머니와 형제들, 더 나아가 내 아들 까지 관찰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더욱 멀어진다. 나는 지방생활을 통하여 갇힌 짐승들과는 겨우 소통하면서도 진작 내 핏줄의 변연에 너무 멀리 왔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공을 연마하게 한다. 그리하여 글로써 또 다른 시인과, 또는 드물지만 독자들과 소통한다. 어쩌면, 시 쓰기가 아니었다면, 나를 관찰하고 나를 소통하지 못하였으리라. 내 가슴의 결핵흔적이 싫지 않음은 그 속에 피의 연대를 같이한 기억이 소중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와 부처의 시대도 그러했겠지만, 여전히 우리의 환경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생 면역력에 의존하는 시기로 더 가까이 몰리고 있는 것 같다. 기망과 허언 속에서라도, 상처의 흔적은 시를 쓰게 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동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느 때 즈음에서야 상처들이 연꽃처럼 피울 것인가. 내 삶의 초라한 훈장처럼 스스로 다독이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