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너의 힘


   미워하는 마음은 제대로 바라보는 시야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그러나 때로는 질투와 욕망이 버무려진 마음은 어떤 일을 추진하게 하는 (사람을 포함한 생물진화의 우점종 속에 계대되어 강화되어온 현재 작동중인 유전자에 의한) 힘이 되기도 할 것이며, 그것의 순방향과 역방향은 스스로 선택과 폐기를 반복하면서 아슬하게 생태계와 문명을 이때껏 지켜온 동인들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불경이나 성경에 견주어 볼 때, 불온한 발상이거나 지극히 유물론적 사고의 경도인지도 모르나, 본시 사람은 부처나, 거룩함의 아들이라고 아무리 전파를 하여도, 지금껏 지구라는 행성의 우점종으로 남은 내력을 곱아보면, 오히려 이기적이고 사악한 고등유전자의 생물로  ‘살아 남아 번성한 지금’ 으로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요즘이다.


   총선의 결과분석 중에 드러난 현상인,  가난한 계급이 어찌하여 양의 가면을 하고 있는 야수의 계급에 투표했는 지가 ‘기억하고 의심하는 능력’ 을 퇴화시킨 우리와 주변의 기득권층임을 부인할 수도 없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차라리 터놓고 소담을 하는 술자리라고 해보자.  웃는 얼굴로 고민없이 부처님 같은 소재가 일견 폼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문화단체 운영비를 요구할 때나, 교육계나, 공적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폼나는 (좀 의심스럽더라도) 정부정책 동화적 사업계획서가 우선적으로 예산배정되고 있고, 그 앞줄에 서서 추진하는 대표자에게 힘이 쏠린다.  중요한 포탈에 있는 의사결정권자도 더 큰 욕망을 위해서는 어떤 결정들을 하고 있는지 뻔하게 보인다.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쓰는 것도 멋 적지만,  20세기를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달, 필자는 구제역 때문에 지연된 과제 하나를 마무리 했다.  가축의 기생충연구 중에 하나를 발표했는데, 뻔한 결론이지만, 기생충을 안전한 식육을 유지하면서 피해를 효율적으로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이러저러한 증거를 동원하여 백신을 개발하자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이따금씩 생각하고 여러나라의 과학적 자료들도 참고하다보니, 기생충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고 기생충의 마음속으로 들여다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구 껍질의 상판이 이동하기 전부터 버텨온 지극한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도 생겼다.


   생태계가 열악해질수록 몸집이 큰 생명체는 개체수의 포화점 도달이 빨라, 일찍 소멸한다는 것이다.  보잘것 없이 보이는 미물들은 적은 에너지로 살아남거나 버티면 그 열정 하나로 기어코 남는다는 것.

   나는 이 소망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50키로그램도 채 안되는 몸집으로 살아남았다.

   방송사 진짜노조는 공룡의 편에서 구축된 논리에 기대는 한편의 방송인들과 균열 되거나 구획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즈음에 이 대결국면은 의도적으로 연장되어 진행될 것이다.

   시를 공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필자도 일견한 장면이지만,  자유실천에 뿌리한 현재의 작가회의 소속 지역문단 시인(다른 단체도 겹가입하였는 지도 모르나)인,  나보다는 젊은 시인의 차에 동승한 적이 있었는데, “사대강 개발을 반대하는 빨갱이 문인이 있다” 라는 그의 의견을 듣고, 이런 작가도 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사실에 대한 나의 경악과 경의가 동시에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알것도 같다.  그런 지식인 또는 작가가 왜 지금 번성하는 토양인지를.

나는 아직도 소망한다.  내 아들이 삼성직원일지라도, 큰 공룡은 포화점이 빨리 도달할 것임으로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

지금, 힘이 있는 계급 또는 부류는 더 큰 결속력으로 왼손이 모르는 악행을 당연한 정의라고 구역예배를 할 것이고, 백일 불공을 드릴 것이다.

 

   바퀴벌레여, 좀 더 힘써 열망과 분노를 키워 버텨라.   10억년 후 태양계가 팽창하기 훨씬 전까지 너의 세계가 올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