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영감


줄거리

혹부리 영감이 어느 날 산으로 나무 하러 갔다가 길을 잃어 빈집에 들어갔다. 무서워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도깨비들이 나타났다. 도깨비들이 그 노래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자 혹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도깨비들은 그 혹을 떼고는 보물을 주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웃 마을의 또 다른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나오는 곳을 묻는 도깨비들에게 혹에서 나온다고 하자, 도깨비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다른 혹마저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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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중에서


노래 부를 때 우리는 ‘원래의 우리 자신’이 된다. 우주의 본질은 춤인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세상은 물질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에너지들이 들끓는 거대한 무도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이 좋으면 마음이 마구 설레고 저절로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마냥 좋아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처의 얼굴이 우리의 진면목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본 모습을 띨 때 모든 것이 잘 된다. 물론 세속적 가치들도 상으로 주어진다. 혹부리 영감이 노래를 불러 혹도 떼고 보물도 얻듯이. 하지만 나쁜 의도를 갖고 노래를 하면 그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기에 오히려 재앙이 따른다.

따라서 이 세상은 이 모습 이대로가 사실은 낙원인 것이다. 다만 우리의 나쁜 의도가 문제인 것이다.      

이 세상의 궁극적 도(道)란 ‘마냥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즐거워하려해서는 즐거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을 꾸준히 응시하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하게 된다. 우리의 나쁜 의도만 풀어주면 마음은 저절로 즐거워 춤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건 우리의 나쁜 의도를 알아채기 위한 것이다. 좋은 문학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있거나, 허황한 사상을 갖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특히 의도적으로 잘하려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잘하려는 마음’은 이미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이웃 마을의 혹부리 영감이 보물을 얻어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려 했어도 도깨비들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을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다. 노자는 이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했다.

혹부리 영감처럼 절망에 빠졌을 때,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자연스럽게 풀어줄 기회를 얻는다. 평소에는 아무래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 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