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전화를 받으면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애교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의 요지는 자기 회사의 상품을 사 달라는 주문이다. 이때 사랑한다는 말이 입에 발린 소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예쁘게 단장한 젊은 여성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물건을 살 때 에누리 한 푼 할 수 없는 비정함에서 그 웃음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선거철이 되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후보자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한다. 그리고 유권자 여러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당선되어 유권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유권자를 사랑한다던 그 말이 진정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사랑의 표현을 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기교를 배운다. 비싼 교육비를 내고 미소 짓는 법, 인사하는 법, 친절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후보자들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이미지 연출 지도를 받기도 한다. 사랑받기 위한 노력이다. 이쯤 되면 사랑이 이미 사랑이 아니라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내들도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남편들은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꽃을 사서 바치고, 보석을 사서 바치고, 아내와 분위기 있는 곳에서 우아한 식사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심지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지상의 모든 아내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백마 탄 왕자님의 사랑의 고백을 듣기를 원한다.

시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시에는 머리로 쓰는 시, 가슴으로 쓰는 시, 온몸으로 쓰는 시가 있다고 한다. ‘풀’이라는 시를 쓴 김수영 시인은 흔히 온몸으로 시를 쓴 시인으로 분류된다. 그의 시에는 절실함과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쓰지 않으면 죽을 만큼 절실한 표현 욕구를 통해 쓴 시라는 뜻이다. 쓰나마나한 시가 아니라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쓴 시 말이다. 그런 시가 감동을 준다. 덧붙이면 김수영은 아내를 늘 여편네라 불렀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다.

시를 사랑으로 바꾸면, 사랑에도 머리로 하는 사랑, 가슴으로 하는 사랑, 온몸으로 하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2000년 전 예수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런 사랑이 온몸으로 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자기희생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랑이라 했다. 그의 사랑은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들이 발을 다칠까봐 허리를 굽혀 유리를 줍는 사랑이었다. 말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학생도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가면 마음의 문을 연다. 교육이든 정치든 또 통일이든, 이 세상 사랑으로 풀지 못할 것이 어디 있으랴.

 

 글 권서각(한국작가회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