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결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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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핵감염의 기원은 BC 7000년 전의 화석에서 발견되었다니 석기 시대 이후 인류와 동물이 같이 겪어온 내력의 세균성 질병 중의 하나다.  물론 이러한 사실도 19세기 세균학자 코흐에 의해 명명된 이후의 일이다.

 

   결핵은 에이즈의 발호 이전 까지만 해도 우리 문학에서 고통의 질병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잃게하는 소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의 병’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불치의 질병이었지만, 21 세기, 지금은 진단 기술과 치료 프로그램이 상당히 체계화 되어, 약제 내성을 가진 균만 아니라면 치료에 낙관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핵의 위험성은 그 발병 원인체를 알아내는 과정에 감기로 오인되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치료약제를 여러 달 이상 먹어야 하는 까다로운 세균성 질병이기도 하여, 잠복감염 기간 또한 길어 군인 막사나 학교와 같이 1 미터 이내에 접촉하는 환경에서는 쉽게 전파되기도 한다.  물론 개인별 유전력과 면역력에 따라 8할 정도는 감염을 비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약물사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에는 여러 약제에 듣지 않는 '다제 내성' 감염에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한 때, 미군병원에 집단질병 역학을 연구하는 방역관 일로 밥벌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예방의학 군의관이 들려준 이야기 중의 하나로, 핵잠수함 승무원의 결핵감염 연구를 소개해 주었는데, 좁은 복층 침대의 1 미터 이내가 임상적 감염범위라는 연구결과였다.  공기감염, 비말감염으로 전파된다 하여도 체외로 배출 되는 이 균의 감염력의 한계를 가늠하게하는 사례로 곱을 수 있겠다.

 

   집단 사육하는 동물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도태를 해야하는 법정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물은 사람처럼 생후 1 개월 이내 비씨지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  통상, 젖소를 포함하여 소와 사슴이 주요 감염대상이 되고 있지만, 여러 논문에 의하면 동물원의 코끼리를 포함한 모든 포유류도 적지않은 감염보고가 있고 사람과 교차감염이 됨으로 사육사에게도 쉽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구제역 유행 이후에 필자는 직업상 여러 농장의 순회 중에 결핵감염 여부를 선별적으로 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에서와 마찬가지로 목장주나 목장 직원이 소들을 보정틀에 목을 고정 시킨 후에 소의 꼬리 앞부분 내측이나 측면 부위에 투베르클린 반응검사용 약제 소량을 피부 밑에 주사하고 2 ~ 3일 후에 그 반응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사람과 동일하다.  문제는 사슴이다. 사슴은 요즘처럼 뿔을 자르는 시기가 아니면 정황적으로 어렵다.  물론 까다롭기도 하지만, 이 사슴들은 매우 민감하여, 마취하지 않고 접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깨죽지의 털을 제거한 후에 접종을 권하기도 하지만, 차선으로는 항문 또는 회음부의 잘 보이는 부위를 택하여 접종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접종하였다 해도 며칠 후 확인하는 과정에는 목장주가 바쁘거나 다시 보정 또는 마취하는 과정은 동물에게 대단한 압박임으로 필자는 작은 쌍안경과 인내만으로 소들과 사슴들을 관찰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교과서에 없는 일이다.

 

   사슴은 외부 동물인 나를 향하는 경계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목부와 같은 칙칙한 옷을 입고 척후병처럼 인내한다. 소의 경우는 꼬리를 들거나 흔들 때를 기다리거나, 사슴은 그의 옆구리를 나에게 노출시키는 대략 이 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표시한 접종 부위를 렌즈로 포착하는 것이다.

 

   노동자 시인인 고철은 혈혈단신으로 위로삼아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지티비 방송을 통해 그의 일상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나는 화면으로 강아지들의 건강진단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인에게 필자가 관찰한 바를 전했더니 모두 수긍을 했다. 관찰은 그래서 나를 지방에서도 수의사로 밥벌이를 하게하며, 목장주인들과도, 집짐승과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오형제의 넷째로 자란 나도 둘째형의 결핵감염으로 인해 나 또한 폐장 안에 초기감염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바쁘고 폼나는 일들과 소통의 부재로 옛시절의 좁게 같이 살던 기억은 이미 아득하다.  진작 나는 내 어머니와 형제들, 더 나아가 내 아들 까지 관찰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더욱 멀어진다. 나는 지방생활을 통하여 갇힌 짐승들과는 겨우 소통하면서도 진작 내 핏줄의 변연에 너무 멀리 왔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공을 연마하게 한다. 그리하여 글로써 또 다른 시인과, 또는 드물지만 독자들과 소통한다.  어쩌면, 시 쓰기가 아니었다면, 나를 관찰하고 나를 소통하지 못하였으리라.  내 가슴의 결핵흔적이 싫지 않음은 그 속에 피의 연대를 같이한 기억이 소중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와 부처의 시대도 그러했겠지만, 여전히 우리의 환경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생 면역력에 의존하는 시기로 더 가까이 몰리고 있는 것 같다. 기망과 허언 속에서라도, 상처의 흔적은 시를 쓰게 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동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느 때 즈음에서야 상처들이 연꽃처럼 피울 것인가.  내 삶의 초라한 훈장처럼 스스로 다독이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