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의 오해

 

권서각 (한국작가회의 이사)

 

문학이 죽고 시가 죽은 시대라고 말한다. 그래도 몇몇 시인의 시는 독자들이 깊이 공감하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도종환의 「담쟁이」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도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시에 속할 것이다. 마을과 집이 사라지고 빌과 아파트만 있는 삭막한 시대에도 시가 읽힌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도종환 시인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전교조는 우리 지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어버이연합의 노인들은 해체하라고 성화인 단체다. 이 시는 민주화 운동 관련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담쟁이는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면 아무리 높은 벽도 올라간다. ‘담쟁이’를 깨어 있는 민중에, ‘여럿이 함께’는 민중의 연대에 비유했다. 독재와 억압의 벽이 아무리 높아도 민중이 연대해서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도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며 진보적 생각을 가진 시인이다. 연탄은 자기 몸을 태워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는 희생적 삶의 비유다. ‘너’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아온, 힘 있는 자를 뜻한다. 「너에게 묻는다」는 자기의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남을 위해 희생한, 그러나 지금은 힘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도종환 시의 ‘벽’ 같은 사람, 안도현 시의 ‘너’ 같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의외로 이들 시를 자신의 애송시라고 한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가 된다. 그분들 나름대로 이 시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담쟁이’의 경우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자신의 삶을 담쟁이에 비유한 것이다.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는 자기를 지지하는 추종자들과 함께 한다는 뜻일 터이다. ‘너에게 묻는다’의 경우도 지금까지 남에게 비난 받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연탄재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향해 너는 나처럼 힘겹게 살아보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문학용어에 ‘의도의 오류’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문학작품이 작가가 쓸 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의도의 오해’라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교과부 교육평가원에서는 도종환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사실상 삭제하라는 공문을 교과서 발행 출판사에 보냈다가 국민적 저항으로 철회했다.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는 보기에도 민망한 헛발질을 하였다. 도종환이 자기네 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치졸한 권력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문학을 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저절로 떠오르는 물음이 있다. 누가 이들에게 권력을 주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