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둔갑 타령


줄거리

서 첨지 영감이 쥐에게 손톱 발톱을 주며 키웠는데, 어느 날 쥐가 서 첨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둔갑해 사랑방을 꿰차고 서 첨지 영감을 내쫓았다. 쫓겨난 서첨지 영감은 산 속을 헤매다 절을 발견하고선 스님에게 자신의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자 스님은 고양이를 가져가 가짜 서첨지 앞에 던지라고 했다. 서첨지가 고양이를 갖고 내려와 가짜 서첨지 앞에 던지자 가짜는 쥐로 변하여 도망가고 서첨지는 비로소 가족과 재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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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늘 내게 물어요
"넌 뭐가 될래?
의사, 댄서,
잠수부?"
 
사람들은 늘 나를 괴롭혀요
"넌 뭐가 될래?"
마치 내가 나 아닌 게 되길
바라는 듯이

             - 데니스 리의 시 <넌 뭐가 될래?>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수렵 시대, 농경 사회에서는 ‘나’의 문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짐승과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져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도시 간에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가 대두하였다.

도시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하였다.

손톱과 발톱은 ‘내 것’이지만 버려도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어둠 속에 사는 쥐가 먹어 ‘나’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싫은 내 모습, 버려도 될 것 같은 내 모습들은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어두운 ‘내’가 되어 돌아온다.

사실 ‘내게서 버릴 것’은 하나도 없는데, 세상은 ‘나를 무엇이 되라’고 강요한다. 그러다보니 ‘무엇이 되지 못한 나’는 버려지게 된다.

한데 빛이 커질수록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고상하게 살려고 하던 사람이 위선자가 되어 감옥에 갇힐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황당할까?

고상하게 살기 위해 버렸던 자신의 속물근성이 결국은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양이가 필요하다. 어둠속을 꿰뚫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위선자가 된 자신을 ‘그냥 무심하게, 고양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위선자를 벗어날 수 있다.

물처럼 자신의 중심을 비우며 흘러가야 한다. 인간이 어디 정해진 게 있는가? 착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악이 강하게 우리 중심에 자리 잡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저런 것들은 내가 아니야!’라고 하면 할수록 저런 것들로 내가 바뀐다.

내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물처럼 천연덕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