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죽음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 /


  강태규/


   위인을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탄생만큼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자연의 섭리만큼 거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계절이다. 88세 까지 팔팔하다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잘 나누고 잠결에 혼백이 떠난다는 것은 큰 복인 것은 분명하다.


   객지 생활 속에 가장 부러운 장면들은 여전히 삼대가 같이 사는 고향 같은 터에 자리한 가족공동체들을 보는 것이다.  정치나 경제 뉴스 앞머리에는 지방 어디어디 출신이 어찌어찌 출세하여 나라를 대표하고 기업을 대표하고 청년 때부터 환갑이 넘도록 큰 일꾼이 되어 성공하여 노구를 이끌고도 나라걱정에 몰두하는 장면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소설적인 상상력을 발동하여 가족사의 속살들을 조합하여 들여다보면, 그리 부러울만한 가족공동체 또는 지역공동체의 더부살이에 성공적일까 하는 데는 좀 의심이 든다. 객지의 삶 속에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는 데는 그런 큰 일꾼들에게는 너무 바빠서, 또는 일중독으로 ‘휴’ 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였을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우린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들의 변화들 또한 계절만큼이나 급변하는 시대에 있다. 청량사(淸凉寺) 산 속에도 고밀도 방송수신 접시안테나로 속세를 그대로 들여다본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의 정련된 죽음에 대한 자세들까지 도전받고 있고 그 죽음조차도 인스탄트 일회용 접시요리처럼 값어치가 없어지고 있다.

두 번째, 제도권에 자리한 병원 침상만큼, 들어눕는 환자들도 많지만 그중에 약물연장형(藥物延長型) 노후들도 많다. 불확실한 노후에 버금가는 수익자책임전가형의 각종 보험상품들도 병원산업과 긴밀하고도 견고하게 결속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노후자금 탈취형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 가족부양비와 자녀양육비가 현재시점에서 중산층의 붕괴 및 신자유주의 소비양식에 견주어 볼 때, 너무 과도하여 예전의 자녀의존형이 부모의존형으로 급속하게 전이되고 있고 최종적으로 노인의 안락한 휴식을 빼앗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우려들은 지방형 가족공동체들에서는 그나마 보완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도시형 빈민층과 도시형 명목상 중산층에게는 치명적이다.


   우리 인간만이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과학자들의 연구들에 의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한 때 논리력, 언어, 문화, 자아인식 등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분짓는 특징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근년, 생물학 학술지인 Current Biology에 발표된 나이 많은 침팬지의 죽음을 대하는 동료와 자식의 반응을 본다면 침팬지가 장례를 지내거나 우리와 죽음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그것들의 인식을 엿보기 충분하다. 연구를 주도한 앤더슨박사는 동물원에서 돌보던 영장류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치료를 위해 동료들과 격리시킨채로 두거나 안락사시키는 것보다는 동료들이 곁에서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 더욱 인도적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걸맞는 죽음 또한 가족과 동료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연명형 치료는 우리의 거룩한 죽음을 빼앗는다는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유물론적인 사고에 닿을 때면, 사실 죽음 이후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우주의 먼지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극락과 환생은 종교적 상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기억을 유대하는 것은 우주만상의 생명현상의 하나로 인간 스스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기도 하겠지만 과장할 필요 또한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학정신에 천착하는 행위 또한 이야기를 유대하는 한가지 양식이며 소통이며, 우리가 언어도구를 가졌기 때문에 막사발이든, 접시든, 우아한 청자를 빚어내든, 단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잘 키운 자식이라 하더라도 노구의 부모를 모시는 자식만큼 훌륭한 자식은 없다. 현대의 변질된 죽음의식이 침팬지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 있음에 두려운 마음이 스며든다.  다시금, 가족애와 동료애가 우리의 관계망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게한다. 당대에는 답이 없을 듯한 암울한 현실에 망연자실해지더라도, 그 관계망을 위협하는 제도권의 전략들을 간파하여 복원해야하는 것이 차세대만의 몫이겠는가. 우리는 너무 많이 그리고 빨리 사는 것 같다. 젊은이도 마찬가지이지만 노인이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 빼앗겼다면 다시 되찾고 싶다. 벌써 가을이다.


※ 참고사이트

1.  http://www.youtube.com/watch?v=d89SlFc3qjI&feature=player_detailpage


2.  http://www.youtube.com/watch?v=3SQR_PaCtEE&feature=player_detail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