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성격대로 살라(마르크스)


숟가락은 밥상 위에 잘 놓여 있고 발가락은 발끝에
얌전히 달려 있고 담뱃재는 재떨이 속에서 미소 짓고
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이성복,「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들은 그 당시에도 별로 힘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들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그 불편함이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참으로 신났다. 동네 또래들과 꼴을 베고, 냇가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고, 어둑한 골목길을 쏘다니고,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고. 눈이 가득 덮인 산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신나던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말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학교가 읍의 변두리에 있어 읍내 아이들과 우리는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다. 보자기를 메고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우리는 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콧물이 반질반질한 옷소매를 뒤로 감추고 나는 그들이 신나게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날 교실에서 한 아이가 처음 보는 하얀 얇은 종이 뭉치를 가져왔다. 나는 그 종이를 보고 저건 상처에 붙이는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코웃음을 치며 똥 누고 뒤를 닦는 거라고 말했다. 아! 나는 그 뒤 어디가면 말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얌전하고 조용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웃으려 해도 얼굴이 일그러지기만 했다. 쭈뼛쭈뼛 물 위의 기름처럼 아이들 속을 동동 떠다녔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공상이 난무했고 나는 그 공상 나라에서 버텼다.

결국 이 세상에서 튕겨 나오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대로’ 살아 보았다. 학창 시절에 못 해보던 것들을 다 해보았다. 문학 공부하며 밤새껏 술도 마셔보고, 밤거리를 휘젓고 다녀보기도 하고, 그러다 패싸움도 해보고, 경찰서에 끌려가 보기도 하고, 멀찍이서 보기만 하던 데모대에 끼여 도심거리를 행진해 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어깨 걸고 민중가요를 목청껏 불러보기도 하고, 최루탄 냄새를 피해 지하도로 도망가 보기도 하고....... .
‘지랄’을 몇 년 동안 한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랄의 양은 정해져 있다더니 청소년기에 못한 것을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했다. 그때 나는 아내와 아이를 둘이나 둔 가장이었다.

‘겪어야 할 발전 단계’를 겪고 나니 맑디맑은 내가 보였다. 그렇게 힘들었던 학창시절도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세상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아, 바로 내 성격이었다. 성격이 운명이었다.
융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융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그 이유를 찾다보니 성격을 연구하게 되었단다. 내 성격을 알고 나니 그 동안의 모든 나의 고통이 이해되었다. 나의 모든 고통은 내 자신이 내 성격대로 살지 않은 업보였다. 나는 여러 방면의 공부를 하며 내 업보를 풀어나갔다. 결국은 글을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하며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신나는 아이’로 돌아갔다.

융은 말한다. 인간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사람들의 성격이 여러 형태로 진화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사람은 각자의 성격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된다. 성격대로 신나게 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이제 나는 실컷 울고 난 아이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다. 내가 고토록 찾아 헤맸던 삶의 비의는 바로 이거였어!